가서 보신즉
2005-09-1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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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인사합시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추석 명절에 승리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성령께서 오늘도 고유의 명절을 통해서 오가는 길 함께 하시며 특별히 가서 복음으로 승리하는 축복의 귀한 장소가 되도록 또 만남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그동안 너무나 한국적인 배경 때문에 사단에 눌리고 우상에 눌리고 찌들리던 모든 삶에서 오늘로 통해 확실하게 해방되는 축복의 역사가 우리 교우들이 가는 곳마다 이루어지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오늘도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도 함께 하여주시옵소서. 구문으로, 직장으로, 학창으로, 멀리 해외에 나가있는 자들, 말씀이 그리워 늘 하나님의 교회를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함께 은혜를 주시옵시고, 오늘도 필요한 말씀으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종의 연약함과 상관없이 주님이 원하시는 말씀으로 현장에서 이루어질 말씀으로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에 주의 성령이 함께 해 주시며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와 은혜로 성령의 인도받는 개인되게 하시고 약한 자, 병든 자 확실하게 치료받는 믿음회복하여 주시옵소서. 종에게 오늘도 필요한 말씀으로 증거하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담대함으로 역사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말씀 속에서 제목을 ‘가서 보신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성경에서 제일 이해가 안되고 주석이 잘 안되는 곳이 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계절이나 사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여기에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뜻없이 뜻없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여러분과 저도 계속 해서 들어온 말씀대로 하나님의 주권이 반드시 포함이 되고 개개인이나 어떤 단체나 사회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본문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하면, 12절에서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있는 무화가 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생활과 삶에 관심깊게 보는 것이 예수님의 현장이 축복과 은혜의 현장이, 응답의 현장이 가서 보신 즉, 말하자면 우리 현장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생활 자체에서 가정 중요하게 보시는 현장이 주님의 축복과 은혜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도 ’가서 본즉‘ 하는 그런 말씀대로 일단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예언하시고 계획하신 것이 다 성취됩니다. 성취되면서 그 계획이나 예언이나 그 모든 역사의 배경에 반드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좀 더 나아가서 정말 예수께서 오늘은 합리성을 갖고 말씀한 것이 없습니다. 전혀 합리성이 없는데도 엄청난 기적과 예언이 여기에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배가 고팠다고 하는 것은 물리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에 가서 본 즉 어떤 경우가 생겼는가 하면, 무화가 잎사귀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러라. 이것을 합리화를 시키고 설명하려고 제가 주석을 찾아보니까, 여러 가지 말이 나와있습니다. ’무화과 나무 철이 아닌데, 그래도 무언가 혹시 있을까 해서 왔다‘라는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있는데 저도 잘 이해가 안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하면 무화과가 전혀 없었다는 이유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보면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러라‘.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열매없는 것이 당연하고 때가 아닌데 열매 맺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더라 엄청난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합리적인지 합리적이지 않던지 간에 일단 주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성취하는가 하는 것이 그 다음에 보여집니다. 20절입니다. 저희가 아침에 나갈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나서 여쫘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랐나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더러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던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며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할렐루야! 사실은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가 맺힐 때도 아닌데, 무화과 나무에 가서 예수님이 모르실리 없는데 무화과 나무를 향해서 저주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에 듣더라‘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냥 나온 예언이 아니고 앞으로 이스라엘에게 닥쳐질 문제를 예언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영원토록 망한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성전은 다시 세워지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아주 중요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때에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그 자리에서 말씀에 관심을 갖고 또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 이유를 그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신 그 이유를 그 자리에서 조금만 물어도 아니면 집에와서 물어도 중요한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 왜 무화과때도 아닌데 그 나무를 저주를 하였습니까? 그랬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관심을 가진 그들에게 아주 놀라운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장차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할 것이다. 장차 예루살렘이 영원히 망해서 주님의 계획하신 때까지 회복하지 못하리라. 지금도 이스라엘이 회복이 안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지을 모든 재료나 모든 자재를 다 준비해놓고도 이슬람 회교도로부터 빼앗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회수하기 위해서 십자군을 비롯하여 수십번을 막강한 군대를 동원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하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까지 안되고 있습니다. 역시 말씀대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성전을 향한 예언이 바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그것이 성취되는 상황이요. 뜻깊은 내용을 말씀하였지만, 그 말씀에 듣기만 했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오늘 제일 무서운 신앙의 삶이 무엇인가하면 종교가 계속되고 어려움이 계속되고 고통이 계속되고 하는 그 내용의 중심이 무엇인가하면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우리 다락방에서는 주일날 말씀 붙잡고 계속 포럼을 하고 있습니다. 포럼을 하면서도 말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실패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다락방의 어떤 조직, 우리 교회만 해도 나가면 기도수첩을 줍니다. 한 주간 나온 메시지를 포럼하고 그 말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 불과 몇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씀의 제목을 잡고 말씀 속에서 기도수첩을 하고 정시, 무시기도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첫 번째부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앞에 날마다 나간다고 말을 하지만, 날마다 나가지 않고 어쩌다 한번씩 나아갑니다. 그것도 말씀에 관심을 갖고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나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이 오고 어떤 응답이 올것이냐? 그것은 현장에서 오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듣고 현장으로 가기까지가 상당한 기간이 걸립니다. 가다가도 중도에 머무르게도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나가긴 해도 구체적인 응답이 안온다는 것이 우리 신앙의 약점입니다. 바리새의 모든 종교가 무너지고 국가적인 위신이, 제사장적인 제도와 사명들이 완전히 무너지는 이 예언이 여기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제자들조차도 듣는 것으로 끝났지 구체적인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절의 말씀이 무엇인가하면 ’저희가 그 감람산에서 아침에 지나갈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그때야 베드로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말씀은 강단에서든지 우리가 구체적으로 말씀앞에서든지 깨달아지고 관심을 갖고 그것을 붙잡고 기도할 때에 반드시 여러분 현장에서 말씀이 성취됩니다. 특별히 그 주간에 강단에서 나왔던 말씀이 어떤 말씀이던간데 그 말씀이 우리의 한 주간 속에서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있습니다. 관심을 갖고 기도하면 성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성취되어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성취되어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써 우리 현장에 다 이루어놓았습니다. 그래서 가서 찾아라! 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 모든 형편속에서 개인과 생활과 가정, 가문 모두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취된 것을 못 보니까 우리 속에 감사가 안나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조금만 보게 되면 모든 사건 일마다 감사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쩌면 이렇게 적은 것까지도 세밀하게 나와 우리 가정에 기도의 제목들이 이루어졌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을 주셨을 때에는 집을 향한 엄청난 계획이 세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너무나 믿지 않으니까, 낙심부터 먼저 하는 것입니다. 가정 구원이라는 것이 쉽게 오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은 쉽게 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 “믿음을 가져라!” 믿는 자는 이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우라고 해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많은 성도들이 이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에 관심이 없으면 믿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이 나오고 좋다고 해도 그 믿음은 허황된 믿음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운명적인, 하나님의 계획적인,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인 그 믿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무화과의 때가 아닌데도 예수님은 그 무화과를 저주하고 도대체 합리성이 없는 이변의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개인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생각할 수 없는 합리성을 갖고 올 수 없는 문제들이 올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충분히 경험했다기보다도 고백하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쭉 이어지는 교회를 짓게 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럴 수가 없다. 교회를 짓고 심지어는 입당예배까지 참석못하도록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입원할 때에는 입당예배들어가기 전에는 건강을 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입당예배때가 최고 정점이었습니다. 곧 죽음직전이었습니다. 그러니, 말이 바르게 안나오고, 손발이 굳어가고 입술도 둔해지게 되고 두뇌가 자꾸만 파괴되고. 이렇게 되니 정신문제 왔다 안왔다가 아니라, 앞 뒤 말이 안되고 들을 수가 있는 귀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 옆에서 말을 하면 나는 멍하게 앉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말하는 것이 ‘나는 그때 벽을 대고 말하는 것 같더라.’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전혀 내가 이해되지 못하는 일.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까? 이런 질문까지 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변동이 없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쯤 되어서 “주여! 그러면 마음대로 하옵소서! 뜻대로 하옵소서” 제가 이런 말을 어떤 면에서는 자주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여러분과 제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찾고 있는데에도 전혀 엉뚱한 일이 우리 가정과 개인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 고민입니다. 무화과나무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무화가 열매를 찾으러 갔고, 무화가 나무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여서 그 이튿날 바짝말랐습니다. 이것은 전혀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관심을 갖고 물었다면 그 날 저녁에도 이스라엘에 닥칠, 예루살렘 성전에 닥칠 엄청난 예언을 들었을 것이고 제자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기도의 역사를 배웠을 것입니다. 전혀 이해되지 않는 모든 문제가 있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가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들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가 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이런 놀라운 축복이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안될줄 뻔히 알고 자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안되는 속에서도 우린 하나님의 계획, 손길 속에 있습니다. 믿음가지고 나가면 주의 종들에게 엄청난 미래와 하나님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숨은 깊은 계획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말씀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속에서도 내게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말씀으로 인해 부닺혀왔습니다. 그래도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그러면서 그 믿음 붙잡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과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어떤 때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고 어떤 때에는 전혀 받을 수 없는 불신앙이 오는 그러한 문제가 있을지라도 믿어라! 왜냐하면, 그 속에 나타나는 것만 응답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너무나 동감합니다. 내게 일어나고 모든 성도들 속에서 일어난 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합니다. 그러면 거의 보통 하나님이 죽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일수록 믿음을 가져라. 응답의 귀중한 요소입니다. 그 응답은 간단한 응답이 아닙니다. 두고두고 올 응답입니다. 나라와 민족과 예루살렘을 향한 응답입니다. 이 응답의 역사가 얼마나 깊습니까? 우리는 우선 다가올 문제만 생각하고 있지만, 그 문제가 내게 이해되지 않을수록 하나님은 그것에 더 깊은 계획과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베드로가 마른 것을 보고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의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하셨더라. 엄청난 배경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다시는 회복이 안된다고 하신 영영히 이 나무처럼 말라버린다고 하신 그 말씀처럼 지금 우리 눈에 사실적인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벌써 예루살렘을 회복할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습니다. 정치적인 배경인지는 몰라도 이스라엘이 국력도 훨씬 앞서 있습니다. 전쟁하면 거의다 승리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소원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통곡의 벽이라고 TV를 보면서 봤습니까? 그 벽에 무엇을 꼽아놓고 기도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주제목이 이스라엘 성전을 회복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후손들이 지금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렸지만, 예수께서 한마디 말씀인 그 예언대로 지금까지 회복이 안되고 있습니다. 제가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전에 들어갔더니만, 이삭을 바쳤던 큰 바위가 중앙에 있습니다. 위에서 햇볕을 그 바위가 받도록 해 놓았고, 그 주위에 무언가를 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유대교는 하나도 없고 전부다 이슬람교도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기도의 특징이 고개를 쳐박고 엉덩이를 쳐 듭니다. 이슬람 교도들이 꽉 찼습니다. 다섯 번씩 엉덩이를 쳐 들로 고개를 쳐 박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경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도 않지만 말씀한 것이 그대로 성취됩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붙잡았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한 주간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의 말씀을 붙잡고 조금만 기도한다고 하면 말씀대로 믿고 기도한다면 어떤 것이 왔던지 환경과 여건이 상관이 없습니다. 이해되고 안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잡고 기도하면 이룬 줄 믿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기도 응답의 조건이 무엇인가하면, 회개보다도 너희에게 용서한 자들을 용서하고, 너희에게 범죄하고 허물있는 자들을 용서하고 기도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 회개를 강조하니까 죄에 눌려서 기도를 바르게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어떤 잘못도 내게 한 사람을 우리는 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보다도 천배만배의 것을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화해하지 못할 앙금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구원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 우리 주인 하나님은 다 탕감해주셨습니다. 탕감을 받고 기분 좋게 나가는데 자기에게 백데나리온의 빚이 있는 자들을 멱살을 잡고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네가 일만달란트의 탕감을 받았는데, 그 조그마한 백데나리온의 빚을 용서못하겠느냐? 다시 잡아가두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다고 하면 우리가 너무 구원과 은혜에 감격해야 합니다. 그 구원이라는 것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구원입니다. 그래서 전적인 타락 속에 있었던 죄인입니다. 감각도 능력도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님이 무조건 선택하였습니다. 만세전부터 완전 죽었던 여러분과 저를 선택하였습니다. 때가 될 때에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나오게 된 배경이 선택받은 사람들만 구속해 주십니다. 아무나 교회 못나옵니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 믿음은 통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을 즈음되면 하나님이 무슨 일을 벌리던지 교회나오게 만듭니다. 지금까지도 고집이 쎄거든, 주여 믿나이다! 주여 영접합니다! 고백하세요. 버텨봐야 이로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추석에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없겠지만, 우리가 조금만 눈을 뜨면 이런 사람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되매 기어코 불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구원의 자리입니다. 불러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만들어 놓고 일생동안 책임지겠다. 영원토록 하나님이 인도하시겠다. 책임지겠다. 그런데, 무얼 그렇게 걱정을 하는지, 추석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사인데, 어떻게할까? 걱정할 것없이 가서 부닺히면 됩니다. 가서 본즉 하나님이 역사 다 해 놓았습니다. 기도하고 기다리고 믿음으로 가면 됩니다. 가서 본즉 하나님이 역사해 놓은 것이 현장 속에 나옵니다. 가기도 전에 반죽어버립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며칠 전부터 갈 걱정이 되어서 반 죽습니다. 가서 본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는 곳곳마다 만남과 사건속에서 완전히 우상과 눌림에서부터 해방받았습니다. 해방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남과 사건속에서 역사하시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가는 곳마다 성령의 인도받으시고 그 역사를 확인하는 만큼 기적이 나올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오늘 이 말씀 속에서 한번 다시 누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가서보신즉, 현장이 응답의 역사요. 베드로도 가서 본 즉, 만났던 사실이 절대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무화가 잎이 말랐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분과 제게 영원히 응답될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응답이 이루어질지 우리는 기대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엄청난 응답이 자손 만대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이 한두해 정도가 아닙니다. 수백년동안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흩어져서 이스라엘 성전은 완전히 소멸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는 그런 현상! 인간으로는 이해가 안됩니다. 저도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안되는 것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십자가 군병으로 모슬렘으로 쳐들어갔습니다. 나중에는 순수한 어린아이들로 십자가 군병을 만들었습니다. 전쟁터에 어린아이들이 나가서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슨 큰 역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단순하고 죄없는 어린아이들을 내보면 되지 않겠나?했는데, 안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이 성취될때에 나에게 간단하게 성취된다는 것을 물론이지만, 내가 모르는 상황과 환경, 내 자녀들 속에서 두고두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한번 다시 확신하십시오. 절대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맡아주셨다하면 믿어야 합니다.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영원까지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처럼 말해놓고 이행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한번 말씀하셨다고 하면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주시며 역사하시길 원합니다. 세계복음화! 우리에게 약속해주시고, 이 축복의 약속이 우리와 후손들 만대에 구체적으로 이루어가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의 종들이 가정과 개인의 만남 속에서 세계복음화의 일꾼으로 세워질때마다 주님이 영광을 받아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성령께서 오늘도 고유의 명절을 통해서 오가는 길 함께 하시며 특별히 가서 복음으로 승리하는 축복의 귀한 장소가 되도록 또 만남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그동안 너무나 한국적인 배경 때문에 사단에 눌리고 우상에 눌리고 찌들리던 모든 삶에서 오늘로 통해 확실하게 해방되는 축복의 역사가 우리 교우들이 가는 곳마다 이루어지도록 축복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오늘도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도 함께 하여주시옵소서. 구문으로, 직장으로, 학창으로, 멀리 해외에 나가있는 자들, 말씀이 그리워 늘 하나님의 교회를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함께 은혜를 주시옵시고, 오늘도 필요한 말씀으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종의 연약함과 상관없이 주님이 원하시는 말씀으로 현장에서 이루어질 말씀으로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에 주의 성령이 함께 해 주시며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와 은혜로 성령의 인도받는 개인되게 하시고 약한 자, 병든 자 확실하게 치료받는 믿음회복하여 주시옵소서. 종에게 오늘도 필요한 말씀으로 증거하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담대함으로 역사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말씀 속에서 제목을 ‘가서 보신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상 성경에서 제일 이해가 안되고 주석이 잘 안되는 곳이 이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계절이나 사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여기에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뜻없이 뜻없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여러분과 저도 계속 해서 들어온 말씀대로 하나님의 주권이 반드시 포함이 되고 개개인이나 어떤 단체나 사회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본문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였는가 하면, 12절에서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있는 무화가 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생활과 삶에 관심깊게 보는 것이 예수님의 현장이 축복과 은혜의 현장이, 응답의 현장이 가서 보신 즉, 말하자면 우리 현장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생활 자체에서 가정 중요하게 보시는 현장이 주님의 축복과 은혜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도 ’가서 본즉‘ 하는 그런 말씀대로 일단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예언하시고 계획하신 것이 다 성취됩니다. 성취되면서 그 계획이나 예언이나 그 모든 역사의 배경에 반드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좀 더 나아가서 정말 예수께서 오늘은 합리성을 갖고 말씀한 것이 없습니다. 전혀 합리성이 없는데도 엄청난 기적과 예언이 여기에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배가 고팠다고 하는 것은 물리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에 가서 본 즉 어떤 경우가 생겼는가 하면, 무화가 잎사귀외에는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러라. 이것을 합리화를 시키고 설명하려고 제가 주석을 찾아보니까, 여러 가지 말이 나와있습니다. ’무화과 나무 철이 아닌데, 그래도 무언가 혹시 있을까 해서 왔다‘라는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되어있는데 저도 잘 이해가 안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하면 무화과가 전혀 없었다는 이유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보면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러라‘.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열매없는 것이 당연하고 때가 아닌데 열매 맺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무화과더라 엄청난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합리적인지 합리적이지 않던지 간에 일단 주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성취하는가 하는 것이 그 다음에 보여집니다. 20절입니다. 저희가 아침에 나갈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나서 여쫘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가 말랐나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더러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던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며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할렐루야! 사실은 예수님께서 무화과 열매가 맺힐 때도 아닌데, 무화과 나무에 가서 예수님이 모르실리 없는데 무화과 나무를 향해서 저주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에 듣더라‘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냥 나온 예언이 아니고 앞으로 이스라엘에게 닥쳐질 문제를 예언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영원토록 망한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성전은 다시 세워지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아주 중요하고 깊은 의미를 가지고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때에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그 자리에서 말씀에 관심을 갖고 또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 이유를 그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신 그 이유를 그 자리에서 조금만 물어도 아니면 집에와서 물어도 중요한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 왜 무화과때도 아닌데 그 나무를 저주를 하였습니까? 그랬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관심을 가진 그들에게 아주 놀라운 대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장차 이스라엘이 이렇게 망할 것이다. 장차 예루살렘이 영원히 망해서 주님의 계획하신 때까지 회복하지 못하리라. 지금도 이스라엘이 회복이 안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지을 모든 재료나 모든 자재를 다 준비해놓고도 이슬람 회교도로부터 빼앗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회수하기 위해서 십자군을 비롯하여 수십번을 막강한 군대를 동원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하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까지 안되고 있습니다. 역시 말씀대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성전을 향한 예언이 바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고 그것이 성취되는 상황이요. 뜻깊은 내용을 말씀하였지만, 그 말씀에 듣기만 했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오늘 제일 무서운 신앙의 삶이 무엇인가하면 종교가 계속되고 어려움이 계속되고 고통이 계속되고 하는 그 내용의 중심이 무엇인가하면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우리 다락방에서는 주일날 말씀 붙잡고 계속 포럼을 하고 있습니다. 포럼을 하면서도 말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실패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다락방의 어떤 조직, 우리 교회만 해도 나가면 기도수첩을 줍니다. 한 주간 나온 메시지를 포럼하고 그 말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 불과 몇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말씀의 제목을 잡고 말씀 속에서 기도수첩을 하고 정시, 무시기도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잘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첫 번째부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앞에 날마다 나간다고 말을 하지만, 날마다 나가지 않고 어쩌다 한번씩 나아갑니다. 그것도 말씀에 관심을 갖고 이 말씀이 구체적으로 나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이 오고 어떤 응답이 올것이냐? 그것은 현장에서 오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듣고 현장으로 가기까지가 상당한 기간이 걸립니다. 가다가도 중도에 머무르게도 됩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나가긴 해도 구체적인 응답이 안온다는 것이 우리 신앙의 약점입니다. 바리새의 모든 종교가 무너지고 국가적인 위신이, 제사장적인 제도와 사명들이 완전히 무너지는 이 예언이 여기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제자들조차도 듣는 것으로 끝났지 구체적인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0절의 말씀이 무엇인가하면 ’저희가 그 감람산에서 아침에 지나갈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그때야 베드로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말씀은 강단에서든지 우리가 구체적으로 말씀앞에서든지 깨달아지고 관심을 갖고 그것을 붙잡고 기도할 때에 반드시 여러분 현장에서 말씀이 성취됩니다. 특별히 그 주간에 강단에서 나왔던 말씀이 어떤 말씀이던간데 그 말씀이 우리의 한 주간 속에서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있습니다. 관심을 갖고 기도하면 성취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성취되어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성취되어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써 우리 현장에 다 이루어놓았습니다. 그래서 가서 찾아라! 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 모든 형편속에서 개인과 생활과 가정, 가문 모두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취된 것을 못 보니까 우리 속에 감사가 안나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조금만 보게 되면 모든 사건 일마다 감사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쩌면 이렇게 적은 것까지도 세밀하게 나와 우리 가정에 기도의 제목들이 이루어졌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을 주셨을 때에는 집을 향한 엄청난 계획이 세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너무나 믿지 않으니까, 낙심부터 먼저 하는 것입니다. 가정 구원이라는 것이 쉽게 오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은 쉽게 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 “믿음을 가져라!” 믿는 자는 이 산을 들어서 바다에 던지우라고 해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많은 성도들이 이 믿음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에 관심이 없으면 믿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이 나오고 좋다고 해도 그 믿음은 허황된 믿음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운명적인, 하나님의 계획적인,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인 그 믿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무화과의 때가 아닌데도 예수님은 그 무화과를 저주하고 도대체 합리성이 없는 이변의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개인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생각할 수 없는 합리성을 갖고 올 수 없는 문제들이 올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충분히 경험했다기보다도 고백하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쭉 이어지는 교회를 짓게 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럴 수가 없다. 교회를 짓고 심지어는 입당예배까지 참석못하도록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입원할 때에는 입당예배들어가기 전에는 건강을 주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입당예배때가 최고 정점이었습니다. 곧 죽음직전이었습니다. 그러니, 말이 바르게 안나오고, 손발이 굳어가고 입술도 둔해지게 되고 두뇌가 자꾸만 파괴되고. 이렇게 되니 정신문제 왔다 안왔다가 아니라, 앞 뒤 말이 안되고 들을 수가 있는 귀가 되지 않습니다. 누가 옆에서 말을 하면 나는 멍하게 앉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말하는 것이 ‘나는 그때 벽을 대고 말하는 것 같더라.’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전혀 내가 이해되지 못하는 일.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까? 이런 질문까지 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변동이 없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쯤 되어서 “주여! 그러면 마음대로 하옵소서! 뜻대로 하옵소서” 제가 이런 말을 어떤 면에서는 자주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하면, 여러분과 제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찾고 있는데에도 전혀 엉뚱한 일이 우리 가정과 개인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 고민입니다. 무화과나무때가 되지도 않았는데 무화가 열매를 찾으러 갔고, 무화가 나무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여서 그 이튿날 바짝말랐습니다. 이것은 전혀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관심을 갖고 물었다면 그 날 저녁에도 이스라엘에 닥칠, 예루살렘 성전에 닥칠 엄청난 예언을 들었을 것이고 제자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기도의 역사를 배웠을 것입니다. 전혀 이해되지 않는 모든 문제가 있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가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다 들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가 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이런 놀라운 축복이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안될줄 뻔히 알고 자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안되는 속에서도 우린 하나님의 계획, 손길 속에 있습니다. 믿음가지고 나가면 주의 종들에게 엄청난 미래와 하나님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숨은 깊은 계획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대로 말씀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속에서도 내게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말씀으로 인해 부닺혀왔습니다. 그래도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입니다. 그러면서 그 믿음 붙잡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과 제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어떤 때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고 어떤 때에는 전혀 받을 수 없는 불신앙이 오는 그러한 문제가 있을지라도 믿어라! 왜냐하면, 그 속에 나타나는 것만 응답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너무나 동감합니다. 내게 일어나고 모든 성도들 속에서 일어난 것을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합니다. 그러면 거의 보통 하나님이 죽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일수록 믿음을 가져라. 응답의 귀중한 요소입니다. 그 응답은 간단한 응답이 아닙니다. 두고두고 올 응답입니다. 나라와 민족과 예루살렘을 향한 응답입니다. 이 응답의 역사가 얼마나 깊습니까? 우리는 우선 다가올 문제만 생각하고 있지만, 그 문제가 내게 이해되지 않을수록 하나님은 그것에 더 깊은 계획과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베드로가 마른 것을 보고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의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하셨더라. 엄청난 배경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다시는 회복이 안된다고 하신 영영히 이 나무처럼 말라버린다고 하신 그 말씀처럼 지금 우리 눈에 사실적인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벌써 예루살렘을 회복할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습니다. 정치적인 배경인지는 몰라도 이스라엘이 국력도 훨씬 앞서 있습니다. 전쟁하면 거의다 승리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소원하고 있으면서도 지금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통곡의 벽이라고 TV를 보면서 봤습니까? 그 벽에 무엇을 꼽아놓고 기도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주제목이 이스라엘 성전을 회복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후손들이 지금까지 기도하면서 기다렸지만, 예수께서 한마디 말씀인 그 예언대로 지금까지 회복이 안되고 있습니다. 제가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전에 들어갔더니만, 이삭을 바쳤던 큰 바위가 중앙에 있습니다. 위에서 햇볕을 그 바위가 받도록 해 놓았고, 그 주위에 무언가를 쳐 놓았습니다. 그런데, 유대교는 하나도 없고 전부다 이슬람교도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기도의 특징이 고개를 쳐박고 엉덩이를 쳐 듭니다. 이슬람 교도들이 꽉 찼습니다. 다섯 번씩 엉덩이를 쳐 들로 고개를 쳐 박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경의 말씀은 절대로 변하지도 않지만 말씀한 것이 그대로 성취됩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붙잡았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한 주간 계속해서 하나님의 역사의 말씀을 붙잡고 조금만 기도한다고 하면 말씀대로 믿고 기도한다면 어떤 것이 왔던지 환경과 여건이 상관이 없습니다. 이해되고 안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잡고 기도하면 이룬 줄 믿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기도 응답의 조건이 무엇인가하면, 회개보다도 너희에게 용서한 자들을 용서하고, 너희에게 범죄하고 허물있는 자들을 용서하고 기도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 회개를 강조하니까 죄에 눌려서 기도를 바르게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어떤 잘못도 내게 한 사람을 우리는 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보다도 천배만배의 것을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화해하지 못할 앙금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은 구원이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 우리 주인 하나님은 다 탕감해주셨습니다. 탕감을 받고 기분 좋게 나가는데 자기에게 백데나리온의 빚이 있는 자들을 멱살을 잡고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네가 일만달란트의 탕감을 받았는데, 그 조그마한 백데나리온의 빚을 용서못하겠느냐? 다시 잡아가두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다고 하면 우리가 너무 구원과 은혜에 감격해야 합니다. 그 구원이라는 것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구원입니다. 그래서 전적인 타락 속에 있었던 죄인입니다. 감각도 능력도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하나님이 무조건 선택하였습니다. 만세전부터 완전 죽었던 여러분과 저를 선택하였습니다. 때가 될 때에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나오게 된 배경이 선택받은 사람들만 구속해 주십니다. 아무나 교회 못나옵니다.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 믿음은 통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을 즈음되면 하나님이 무슨 일을 벌리던지 교회나오게 만듭니다. 지금까지도 고집이 쎄거든, 주여 믿나이다! 주여 영접합니다! 고백하세요. 버텨봐야 이로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추석에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없겠지만, 우리가 조금만 눈을 뜨면 이런 사람이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되매 기어코 불러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구원의 자리입니다. 불러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만들어 놓고 일생동안 책임지겠다. 영원토록 하나님이 인도하시겠다. 책임지겠다. 그런데, 무얼 그렇게 걱정을 하는지, 추석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사인데, 어떻게할까? 걱정할 것없이 가서 부닺히면 됩니다. 가서 본즉 하나님이 역사 다 해 놓았습니다. 기도하고 기다리고 믿음으로 가면 됩니다. 가서 본즉 하나님이 역사해 놓은 것이 현장 속에 나옵니다. 가기도 전에 반죽어버립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며칠 전부터 갈 걱정이 되어서 반 죽습니다. 가서 본 즉,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는 곳곳마다 만남과 사건속에서 완전히 우상과 눌림에서부터 해방받았습니다. 해방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남과 사건속에서 역사하시게 되어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가는 곳마다 성령의 인도받으시고 그 역사를 확인하는 만큼 기적이 나올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오늘 이 말씀 속에서 한번 다시 누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가서보신즉, 현장이 응답의 역사요. 베드로도 가서 본 즉, 만났던 사실이 절대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무화가 잎이 말랐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분과 제게 영원히 응답될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응답이 이루어질지 우리는 기대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엄청난 응답이 자손 만대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이 한두해 정도가 아닙니다. 수백년동안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흩어져서 이스라엘 성전은 완전히 소멸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는 그런 현상! 인간으로는 이해가 안됩니다. 저도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안되는 것이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십자가 군병으로 모슬렘으로 쳐들어갔습니다. 나중에는 순수한 어린아이들로 십자가 군병을 만들었습니다. 전쟁터에 어린아이들이 나가서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슨 큰 역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단순하고 죄없는 어린아이들을 내보면 되지 않겠나?했는데, 안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말씀이 성취될때에 나에게 간단하게 성취된다는 것을 물론이지만, 내가 모르는 상황과 환경, 내 자녀들 속에서 두고두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한번 다시 확신하십시오. 절대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맡아주셨다하면 믿어야 합니다.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영원까지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처럼 말해놓고 이행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한번 말씀하셨다고 하면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주시며 역사하시길 원합니다. 세계복음화! 우리에게 약속해주시고, 이 축복의 약속이 우리와 후손들 만대에 구체적으로 이루어가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의 종들이 가정과 개인의 만남 속에서 세계복음화의 일꾼으로 세워질때마다 주님이 영광을 받아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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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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