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유일하신 주
2005-11-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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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살릴선교사입니다. 어떻게 하라고요? 인사할때는 깜짝놀라면서 인사하셔야죠.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와 축복을 누리고 이것이 가식이 아니라 우리안에서 터져나오는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인사도하고 즐겁게 사람 대할수 있도록 인도 받아야 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증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의 종들이 사람 만나는 것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며 우리가 살아있다는 자체가 환희로운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시고 하나님앞에 생명이 얼마나 귀해서 모든 것 책임지시겠다고 약속하신 바 주의 종들이 이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감격스러운 삶과 인생이되도록 복을 주시옵소서. 이미 받은 복을 누릴수 있는 눈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말씀들을때에 주께서 은혜로운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손이 말씀을 듣는자의 머리 머리 위에 영원토록 임하시는 기쁨이 있게 해 조옵소서. 오늘 특별히 우리의 중요한 결단을 요구하는 렘넌트공동체훈련장을 만들고자 하는 귀한 계획을 오늘도 작정을 통해 이루고자 합니다. 저들에게 은혜주셔서 작정할때마다 이룰수 있는 믿음과 경제와 역사도 축복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이 되도록 은혜 입혀 주시기를 원합니다. 흩어지는 교우들, 직장으로, 군문으로, 학창으로 나가있는 자들에게 같은 은혜주시옵시고 멀리해외에 있는 자들에게 날마다 말씀으로 풍성한 위로와 축복과 감사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 연약한 종을 날마다 도우시는 주여, 이 시간도 주님의 역사로 인도받도록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사람사람이 말씀을 듣다가 새 힘을 얻고 강건함을 얻고 주의 놀라운 역사가 예배중에 깨닫고 회복되는 큰 역사로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약한자들, 병든자들, 회복될뿐 아니라 경제어려움 당하는 자들도 주께서 완전히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의 시간이 되도록 복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제목을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쓰임받을 경우 하나같이 경제와 모든 환경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런면에서 중직자들을 세울일을 두고 확신해야 할 것이 중직자는 물론이고 중직자를 세우는 일에 함께 섰던 저들에게도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는 자들이라는 것이 이해되어야 하겠고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옛날 제가 어릴때의 시골에서는 장로가 된다고 하면 부자낫다고 하였습니다. 장로가 되어 하나같이 경제축복을 받는것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냥 장로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 직분이 얼마나 축복된 직분이고 귀중한 직분입니다. 받는자도 귀중히 여기고 또 우리도 귀중이 여기는 이 일에 우리 눈이 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귀한 자리에 세우시고 하나같이 영육간에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에 노아를 비롯하여 선택된 인물 중 한 사람도 가난하게 산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단 선택을 받으면 은혜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역사에 남을 정도록 경제 회복을 주었습니다. 노아는 당대에 전 세계를 장악하였습니다. 그 이름으로 토지가 등기될만큼 대등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물론 노아가 홍수이전에도 큼직한 배를 만들기까지 감당할수 있는 경제력도 주셨습니다. 일단 주님이 명령하셨을 때 그 명령을 순종하려고 나가면 행할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얘깁니다. 여러분들이 성도의 힘으로 하나님이 맡기실 때 나는 못합니다가 아니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맡기실때는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이것이 거의 내 수준에서 생각합니다. 직분을 맡기면 못 한다는 소리 먼저 하는데 그러면 영원히 못합니다. 뭐든지 맡기면 순종할 마음만 가져도 하나님이 이루시는 믿음 가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보잘것 없이 일단은 자기 아들들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들 보여라 할때에 다윗은 연락도 안하고 모였던 것이 2세의 다윗을 향한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윗을 불러놓고 주께서 기어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모든 부를 다윗을 통해서 이루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요셉도 빈손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신약에 바울을 만나게 한 브리스가 부부. 세계적인 부자라 기록될 만큼 부요를 누렸고 가이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 구약 인물들 들수록 하나님이 세워놓고 그냥둔 것이 아닙니다. 축복하셨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원래 축복받을 환경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롯을 보내면서 롯이 좋은 땅 다 차지하고 아브라함은 척박한 산지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모든 축복을 주셨습니다. 318명의 군인을 키울정도로. 소돔 고모라 함락당했을때에 롯을 구하기 위해 가서 전투를 벌이는데 아브라함의 군병들은 사병들을 따라 갈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요즘 세상으로 생각했을 때에 부부가 아이를 못낳아도 한 둘은 낳습니다. 그 당시는 주신 대로 낳았습니다. 줄줄이 낳았습니다. 왕들도 보면 60-70명 백병가까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최소한 아들 딸만 낳았다해도, 4명이고 아무리 못해도 1200여명의 입을 먹여야 하는 아브라함의 재산입니다. 그리고 훈련비가 보통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셨습니다. 부르실때에 아무것도 없이 떠났고 친척과 가진 모든 것 내어 던지고 ‘내가 네게 지시한곳으로 가라’ 어디로 가라고 하면 덜 할텐데 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아브라함의 걸어가는 걸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저도 얼마나 아브라함보다 쉬우냐, ‘지시한대로 가라’ 아니고 ‘천국으로 가라’ 그랬습니다. 천국으로 가라 그러면 죽으란 말이 아니라 이땅에 있는 동안에 천국을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으로 가라는것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진짜 고향은 천국입니다. 너무 이땅에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잘 산다 못 산다 잠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갔다, 담벼락에 있는 보석 하나만 떼어 팔아도 여러분 지금 있는 집을 수백채 살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을 약속받고 그 나라 향해 가라는데 왜 못 갑니까. 그러면서 인도하실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이래도 못 떠난다면 어쩌겠습까. 확실한 갈 길을 알고 방향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성령의 인도를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으로 주셨습니다. 인도하실것입니다. 조금만 우리 마음으로 열면 인도하실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양심을 조금만 열면 인도하실것입니다. 문제 생겼을 때 내가 어쩔까요 금방 답합니다. 물어보지도않고 마음대로 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놓고는 안될때는 전부 하나님 핑계댑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것은 노력이 아닙니다. 인도받는 것은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먼저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주 기초적인 것을 우리가 붙잡고 기초적인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오직 한 분 유일하신 하나님,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문제입니다. 그리고 경제에 축복받고 돈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하지 마세요. 교회와서 내게 무엇을 주신다 그 문제가 아니라 경제에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서라 그말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돼요. 이스라엘의 복의 개념은 물질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오늘 예수님께 물었던 것도 계명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이말은 복 받는것중에 첫 번째 계명이무엇입니까 이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이 영적으로 이해되지만 이 사람들은 물질적이고 인간적인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질문할때에 어떻게 해야 복을 받습니까 하는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것이 29절입니다. 첫 번째가 먼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참 생명이구나, 한분뿐이구나, 내게 있어서 다른길이 없구나, 유일하신 주시니라. 이 이야기입니다. 이 가치가 확실히 누려지지 않으면 종교로 빠지고 신비로 빠집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자꾸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곁눈질하는데 다른 방법이 나올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안 믿는 사람들은 우상숭배요, 뭔가 복을 받기 위해 섬기긴 섬겨야 되는데 오직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것이 이해가 안되고 그길 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니까 딴것으로 빠지는것입니다. 그래서 딴 것으로 빠지면 열심을 낼수록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먼저 이 축복의 자리에 서게 되면 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오직 참 생명의 역사위에, 기초위에 든든히 서게 되는 만큼 여러분 축복 받을 수 밖에 없다 그얘깁니다. 이 말이 간단한 것 같지만 전부입니다. 복 받을 첫 번째 계명입니다.
저는 우리 세염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참 생명이 귀하구나 싶습니다. 밤새도록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이가 운다고 젖먹이고 일어났다 누웠다 아침에는 잠을 못자서 비틀거리면서도 이 애 앞에서는 한번도 피곤한적이 없어요. 이름이 ‘현서희’ 인데 세상에 내가 듣지 못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서희야’ 하고 부르고. 한번도 찡그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생명의 신비구나, 새삼 느끼는 것이 저렇게 안 되면 키울수 없겠다 싶어요. 암만 울어도 밉지 않고 밤잠 못자도 생명이기 때문에 모든 사랑이 이상하게 쏟아집니다. 하나님의생명, 바로 여러분과 제게 함께 하신 하나님의 생명, 그 기초위에 그 자리에 섰다면 하나님 절대로 미워하실수가 없고 버려질수가 없습니다. 축복을 주지 않으실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되면 일단 가만히 있어보세요.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마시고 교회 왔으면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구나 확실히 잡고 일과 사건문제 생길때마다 주여 내가 다른길 없는 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 방향으로만 가도 축복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문제는 예수그리스도 믿고 은혜를 받고 살아가지만 구체적인 축복의 사실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복을 다 받고 약속 받았는데 왜 안됩니까. 아닙니다. 이미 되고 있습니다. 내가 몰라서 그렇습니다. 바보는 딴 것이 아니라 이미 응답을 받아놓고도 못 보는 것이 바보입니다. 쥐가 곡물 창고 앞에서 죽었다는 것은 바보 중의 바보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런 축복의자리에 섰음에도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바보입니다. 진짜 말씀 붙잡고 누려봅시다. 예배 시간에 들을 때는 깨달아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것을 막는 흑암세력이 있습니다. 문고리 잡고 나가면 잊어요. 또 알고 있다그래도 안 믿습니다. 실제와 사실로 믿읍시다. 여기에 하나님의 구체적인 응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돈을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축복을 자꾸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받을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받을수 있는 자리에 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다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이 이 일이 확인이 안되어 반평생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도 말합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고생했는데 이것을 깨닫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많은 재산과 많은 건강이 때에 따라 낭비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후대에게는 이런 헛 고생 시키지 말자는 것이 렘넌트 운동의 중요한 배경입니다. 깨닫기만 하면 회복이 됩니다. 모든 것 하나님이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창 12장에 불림을 받고 하나님앞에 나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 가나안땅을 정해놓고 아브라함에게 축복주시기 위해 가나안땅으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늘 원망합니다. 창17장에는 후손까지 약속했는데 왜 안 주십니까 차라리 아들보다 종을 세우겠습니다. 이런 반항을 합니다. 이래서 22장까지 쭉 끌고 나가십니다. 깨닫기까지. 그래서 우리는 내 후손에게는 진작 깨닫도록 만들자는 것이 지금 우리가 아까 말하고있던 것입니다. 내가 깨닫게 할 수 없다면 렘넌트공동체훈련장을 만들어 거기 보내어 내가 못한 것을 깨닫게 하자 이것이 공동체훈련장의 약속입니다.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이 아이에게 내 손을 대지 말라. 아무일도 그에게 하지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독자 이삭을 하나님앞에 드리겠다고 하나님이 인도하심 따라서 약속위에 섰을 때에 아브라함아 절대 네 아들 죽이지 말라.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을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예수그리스도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가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생명의 가치 더 이상 비교될 것 없습니다. 이 생명위에 서야 진짜 헌신이 나옵니다. 안그러면 조금만 뭣하면 하나님 왜 이럽니까. 내가 하나님앞에 헌신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가치가 아직 이해되지 않아 그런 불평이 나옵니다. 어떤 환경 어떤 문제라도 주여 생명까지 하나님 앞에 드리겠나이다. 왜? 이 가치가 생명보다 귀하다 이것이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럴때에 진짜 헌신이 나옵니다. 안 그러면 조금만 내 이익에 부딪혀서 문제 생기면 마귀 얼굴로 다 변하더라고요. 정말 여러분이 하나님의 생명을 깨닫고 그것을 누리고 있으면 그럴수가 없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잘 살펴보세요. 이것이 안 되어 있습니다. 안 되어있다는정도가 아니고 이것이 너무 확인이 안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기도할때는 생명 드리겠다고 울지만 막상 문제 닥치면 이 생명의 가치보다 내가 닥친 문제가 더 큰 문제로 보여집니다. 그러니까 더 큰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옵니다. 일단 교인들이 원망이 나오고 불평이 나오고 가정과 가족과 문제와 사건앞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면 생명의 가치가 되지 않았다는것입니다. 어떤문제도 주님이 나를 살리신 이 생명과 비교할수 없습니다. 성가대 찬양을 가만히 들으면서 정말로 저들이 하나님을 사랑할까. 한번 질문해 보세요. 하나님보다 다른 것 사랑하고 살았습니다. 이 질문 나오면 한 사람도 얼마나 제대로 대답할것인가.
그래서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있는지라 아브라함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시더라. 바로 이 시간까지 아브라함은 그렇게 약속을 받고 하나님이 모든 축복을 주셨다 했는데도 누려지지가 않아요. 언약속에 확실히 들어오는 시간까지 안되더란것입니다. 우리가 언약언약 하지만 언약의 가치가 아직 확인이 안되고 체험이 안되고 누림이 안됩니다. 제게도 질문해 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류목사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브라함은 그 후에 양고기를 절대로 안 먹었을 것이다 그래요. 왜? 이삭을 대신해서 양이 죽었기 때문에. 그말은 그 만큼 피 흘리는 양에 대해 가슴에 각인이 찍혀 있습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은 양을 볼때마다 제단에서 피 흘린 양의 모습, 자기의 모습이 그려질것입니다. 그것이 깊이 각인되어있을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 후부터 아브라함에게는 계속해서 축복의 역사가 문이 열리는데 실수해도 상관없었습니다. 자기 아내를 누이라 그러면서 아비메렉에게 빼앗겼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셨습니다. 빼앗은 왕에게 저주와 재앙을 내리고 다시 아브라함품으로 아내를 돌아가게 하시고 오히려 복을 주는 역사. 아브라함이 이런 실수를 했는데도 어찌해서 이런 축복을 계속받느냐. 창 22장까지 오면서 아브라함이 그렇게 축복을 약속받다가 계속 원인 모를 실패를 하다가 22장 이후에 넘어서면서 실패조차도 축복으로 넘어섰습니다. 언약을 깨달았다고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도 역시 있습니다. 왜? 나는 언약깨달을 때나 후나 나는 나입니다. 언약깨닫고 누려도 웃는 모습이 다를 뿐 그 속에 시커먼 양심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언약을 깨달았다는 이유 때문에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섰고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약속 받은 자들에게 돈 받고 물질 받으란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 수준에 이르기까지 준비시키십니다. 눈을 뜨라고 했는데 이 언약에 눈을 안 뜨고 다른것에 눈을 떠왔던 것이 지난 잘 종교생활, 신비생활, 인본주의 생활인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한 줄 알았노라. 오직 그리스도 뿐이구나. 내 모든 인생이 여기에 달려있다는 것이 이해되어야 합니다. 실패와 상관없이 그때마다 주여 나는 주의 것입니다. 주의 생명이 내것이요, 내가 주님의 생명입니다. 이 말 한마디만 해도 하나님은 알아듣습니다. 이것이 안된 상황에서는 아무리 하나님 안그랬습니까. 내가 언제 그랬냐. 네가 축복의 자리에 서 있으라 그래도 자꾸 딴곳으로 가는데. 하고 싶어도 안된다. 이런 것이 성경의 배경이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다는 것이 뭐냐하면 제단은 피 흘리는 제단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는곳마다 이때부터 제단을 쌓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 각인이 되어서 가는곳마다 피 흘리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언약속에 섰다는것입니다. 가는곳마다 사건마다 예배 드리고 싶은 마음이 먼저 생겨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앞에 내 인생을, 내 사업을 드립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형식으로, 축복받기 위한 수단으로 드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업 예배 드릴때에 그 기업 정말 하나님 앞에 드려서 주님이 원하실때에 이 기업 쓰겠다는 심정으로 드릴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상배 목사님이 가정예배 안 드리는 사람 이상하다고 했는데 중직자들이 안 드린답니다. 진짜 예배의 귀한 것이 느껴지면 저절로 가는곳마다 모든 문제 앞에서 예배로 시작됩니다. 언약속에 서서 그 언약부터 붙잡고 일을 시작한다는 얘깁니다. 제단 쌓았다는 것은 전부 그런 얘깁니다. 아브라함이 전부 안된다 안된다 그런 것이 여러분과 제 모습입니다. 그래서 창 12:2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할렐루야. 복의근원이라 그래도 안 믿어요. 내가 무슨 복의 근원이 되느냐. 그래서 내 만나는 사람들과 일에 자신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십시오. 이 언약속에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너를 복의 근원으로 만들것입니다 그얘깁니다. 여러분과 저는 할수 없습니다. 내게 능력주신 자 안에서 모든 것을 이를수 있습니다. 확신하십시오.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기도하실때에 여러분 자녀를 향해 세계적인 꿈을 꾸시고 세계적인 설계를 그리시고 어차피 내가 못하는 것을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역사로 주님 이루실 것을 우리는 기도합니다. 우리는 기도조차도 내가 할 만한 것은 하고 안 할만한 것은 안합니다. 내가 할수 없는 것 원대한 세계복음화의 놀라운 계획 세우십시오. 하나님이 하실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번성해서 세계적인 가문이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역사속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이름만큼 위대한 이름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이름이 된 이유가 하나님이 내가 하겠다 하고 이루셨습니다. 언약의 자리에 아브라함이 가는곳마다 섰습니다. 여기서 복의 근원이 될찌라는 일이 성취된 것을 봅니다. 여러분과 저는 복의 근원입니다. 만남과 사건속에 복의근원이 될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것입니다. 할렐루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이 고생은 끝나지 않았어요. 이것이 마음속에 진짜 누리기 전까지는 약속은 받았지만 또 역시 아브라함이 고생이 계속되고 있어요. 창17:7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22장 17절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이래도 아브라함이 안믿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는데 내 아내는 아직까지 자식이 없습니다. 나는 벌써 늙어서 끝났고 내 아내는 쳐다보니까 벌써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있습니다. 자식을 낳을 소망은 조금도 없습니다. 불신앙했습니다. 안 믿었습니다. 내년 이 맘때면 너에게 씨를 허락하겠다. 잉태하는 축복을 주겠다하니까 하도 가짢아서 아브라함이 도저히 이것이 안믿어졌어요. 그런데 이 말을 듣는 사라도 하도 안믿어지는 일이 되기 때문에 골방에서 이 말을 들으면서 씩 웃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라를 보고 네가 왜 웃느냐고 하니까 깜짝 놀래서 아니웃었습니다. 아니 웃었잖아. 그러니까 이삭을 놓고나서 이름을 웃음이라고 지었습니다. 웃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안믿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너무 성취가 안되었다는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이게 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때 정말 이 말씀이 성취되리라 이루어지리라. 믿습니까? 할렐루야. 진짜 하나님은 이루십니다. 틀림없이 이루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누구에게? 언약속에 서있는 자에게입니다. 믿는자에게. 하나님이 일을 이루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계속해서 언약이 계속되는데 그러면서 무엇을 주느냐 최고의 언약을 받고도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지 못해서 고난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것이 22장까지 전반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 지금 조금만 눈을 뜨고 하나님이 이 시대에 이 언약 속에 세워주셨을 때에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렘넌트 운동입니다. 우리가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이나 저나 렘넌트 운동이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리고 렘넌트 운동을 위한 공동체 훈련장 건립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헌금한다고 그럴때 그냥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이중삼중으로 헌금이 많습니다. 삼년간 약속을 해서 정말 내가 키울 수 없는 렘넌트. 집에서는 훈련이 안되거든요. 제가 제 아내에게도 무언가를 가르치면 훈련이 안되요. 조금만 잘못해도 성내고. 일이 안되요. 그러니까 내 자식은 말할 것도 없어요. 여러분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가르친다 잘 안되요. 뭐냐하면 조금만 모르면 그것도 모르냐고 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할 수 없는 훈련, 정말 복음의 깊은 체험, 어디에서? 렘넌트 훈련장에 보내서 모든 체험을 내가 겪었던 모든 고난과 이유없이 불행하게 되었던 그 시절, 체험하지 않고도 그 고난 시험을 당하지 않고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언약을 일찍부터 눈을 띄어주겠다. 그것이 렘넌트 공동체 훈련장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여러분 나뿐 아니고 여러분의 후대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이것이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앉기 전까지 얼마나 고생했습니다. 여러분 솔직히.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계속되는 불행속에서 이유모르는 불행속에서 허덕였습니까? 하나님이 내 후손에게는 이런 일이 이루어지지 말아야겠습니다. 그것이 렘넌트공동체 훈련장의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내가 힘들더라도 이중삼중으로 부담을 갖고 있지만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최선을 다해서 참여하자 그것이 지금 이 운동입니다. 근데 우리 교회는 특별히 교회 건축 이후에 이중삼중으로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부분을 붙잡아야 합니다. 창22:17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아브라함에게 번성을 약속 했습니다. 세계적인 번성을 약속했습니다. 그 다음에 복을 주시는 약속을 주신 것을 보면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원수를 쳐서 이기리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죠. 그 다음 세 번째를 보면, 22:18에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그랬습니다. 이것은 세계복음화입니다. 여러분 22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자리에 세워지는 동시에 이 세가지의 엄청난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 사실을 현실로 시켜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브라함이 22장까지 얼마나 고생했던 것처럼 이 자리에 오기까지도 고생고생했습니다. 이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 마지막 언약, 럼넌트 공동체 훈련장 여기에 참석하자 이것이 오늘 제가 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뭔가 헌금하는 일에 약속을 하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손자, 며느리까지 포함을 시켜서 그건 걔들이 해야지 왜 내가하느냐. 그래도 당신이 해야된다고. 한 사람당 500만원이 적은 돈입니까? 그게 일단 당신이 기도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예, 할겁니다. 기도하고 안하면 성령의 인도따라서 작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3년에 천만원해보니까 한달에 30만원정도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것을 이루어야합니까? 하나님의 언약속에 서면 실수라도 하나님이 축복과 은혜로 연결시켜주시는데. 그렇다고 계속 실수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실수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반대로 바꿔서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팔아먹는 사건을 보면서 이건 내보다도 더 못한 인격이구나. 나는 그렇다고 해도 죽는다는 시간까지 한번 가볼건데 절대로 안내어놓습니다. 아내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상해도 나한테는 그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안내어놓습니다. 근데 아브라함은 순순히 내어놓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언약잡은 아브라함의 편에 서서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될 정도 아닙니까? 그게 뭡니까? 복음이 이해 안되면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복음이 깨달아지게 되면 실수가 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로 실수가 우리에게 축복과 은혜의 발판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후대들에게 이 축복을 넘겨줄 수 있으며 어떻게 이 이일을 이룰 수 있느냐? 여러분 먼저 우리에게 적다많다가 아니라 우리는 일단 절약을 해야합니다. 진짜 절약해야 합니다. 제가 돈을 써보고 무엇을 느끼냐고 하면 절약하려고 하면 얼만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집에 있다보니까 50만원 적금넣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50만원 돈이 어딨는데?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안됩니까? 잘살아요 지금까지. 50만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잘 살아요. 또 와서 한 50만원 적금해야겠습니다. 또 잘 살아요. 여러분 이상합니다. 절약하고 살때에 이게 안될 줄 알았는데 살아가더라고요. 사실은 교회헌금도 있죠, 또 이쪽 헌금도 내야되죠. 뭐 이중삼중인데 절약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먹는건 아닙니다. 잘먹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에 섰을 때에 실수도 축복하신다. 절약도 축복하신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우리는 절약을 해야합니다. 큰 돈이 아니지만, 습관이 되면 큰 역사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이 습관이 안되어있습니다. 거저 주는대로 먹고 절약하는 건 생각을 안해요. 그러면 절약한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절약한다는 말은 그 돈을 저축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으는 습관이 평소에 되어있으면 필요한 시기에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드릴 수도 있고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류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수치가 가난한게 수치가 아니고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다른 사람들한테 돈을 빌리고 하는 것이 수치지 가난한 것은 수치가 아니다. 절약해서 못먹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것이 바로 이해가 되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아이들에게 이것이 어릴때부터 경제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마음대로 씁니다. 요즘 아이들은 문제입니다. 주는대로 다 씁니다. 절약할 수 있고 저축할 수 있는 이런 눈을 어릴때부터 열어주어야 이 습관이 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 큰일을 당했을 때에 쓸 수 있는 경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절약하고 저축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연적으로 돈에 대해서 전문성이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머리가 두뇌가 되면 예를 들어서 시계방에 가서 이것을 고쳐오너라라고 하면 적어도 아이들이 세계방 한군데만 가는 것이 아니라 세군데 이상 들려서 여기가 제일 잘하고 제일 싸더라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줘야합니다. 전문성을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경제의 눈을 띄어주라는 것입니다. 앞에 것이 안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되었다는 것이 언약을 잡고 하나님 앞에서 이 축복과 역사가 우리 후손들에게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열려주라 이것이 내가 잘 안되지만 공동체 훈련장에서 훈련시키고 체험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위해서 우리 후손들도 이 일을 위해서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어야합니다. 앞의 것이 되어야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어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내 생활비의 30%를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어야 앞으로 어떠한 문제와 사건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잘 안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제 개인적은 문제로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투자하고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이 다 책임지신다는 이런 믿음 때문에. 그러나 책임지실때에 책임지실 수 있는 언약을 잡고 합당한 습관을 기르는 것이 참 중요하다. 그래서 국민보험에 조금 넣어놨는데 제가 장애자가 되고 나니까 장애자 신청하고 국민보험에 연결을 하니까 값도 헐하고 내는 것도 적고, 그리고 한달에 얼마씩 나오는가 하면 지금 나는 노후가 되어가지고 보증받을 수 있는 나이도 안되는데 한달에 한 30~40만원 나옵니다. 가만히 있어도 나와요. 그런데 내가 미래를 위해서 조금만 투자를 했더나 나오더라고요. 이것이 젊을때부터 투자해보세요. 나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미래를 위해서 적어도 30%이상 내가 받는 급료에서 투자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습관이 되면 어느 때에 나도 모르게 필요한 때에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꼭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가 헌금을 필요로 할때에 낼 수 있는 사람. 낼 수 있는 준비. 이것이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의 것이 되어야 그동안 준비하고 그동안 이 것이 이때를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임을 이제 내가 알았나이다. 헌금할 수 있죠. 헌금하라고 하면 없는 돈에 갑자기 할려고 하면요 온통 찡그러집니다. 무엇을 할까? 돈이 없는데. 앞의 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서 내게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앞에 헌금할 수 있습니다. 당장 적금을 찾아서 그냥 필요한 것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었고 이것이 우리 후손에게 준비가 안되기 때문에 먼저 우리 자신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해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을 붙잡고?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소원에 설 수 있도록. 언약없이 이 자리에 서 있다면 아무리 투자를 해도 딴길로 다 빠져버립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 습관을 언약잡고 이 습관을 길러줄 때에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바뀌어집니다. 간단한 이야기같지만요 귀한 언약의 약속입니다. 다시 말해서 앞의 습관을 잘 길러올 수 있을때 우리 후손들의 내 자식의 미래가 미래의 운명이 안 믿는 사람은 바뀌어지고요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속에 확실히 서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식의 후대의 미래가 바뀌어진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조금더 이런 것을 일찍 깨달았다고 하면 내 경우 노후에서 엄청난 준비를 했을텐데, 조금 늦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지금이라도 필요하다고 하면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한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헌금드릴 수 있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적금하는거 계속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내가 어떤 자리에 섰든지간에 이건 계속 하고 싶어요. 죽을때까지. 후손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실때에 헌금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경제보다도 경제를 운용할 수 있는 머리가 돌아가야 합니다. 전혀 그 머리가 없어요. 예수 믿는 사람은 특히 더 없어요.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믿습니다. 하면됩니다. 뭐가 되요? 다 망했는데. 그래서 개업예배를 드리고 폐업예배를 안드려서 그렇죠 개업예배보다 폐업예배가 더 많을 수도 있어요. 다 망해버렸는데요. 믿습니다. 뭐가 믿어요? 언약 잡고 이런 구체적인 축복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서서 그런 습관과 자질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나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부자도 부자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기다렸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어떤 수준에 세워서 교회가 헌금이 필요하다고 할때 낼 수 있는 자질이 되어야 하나님이 주시죠. 주면 주는대로 절대로 안내고 딴데 다 쓰고 딴데 다 흘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줄 수가 없어요. 이런 자질이 되면요 하나님이 시대에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이런 자의 마지막 언약의 약속, 공동체 훈련장을 만들어서 내가 비록 지금까지 부족하게 살았지만 주여 힘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헌금을 작정할때에 마지막 하나님이 내 후손을 위한 언약의 자리에 섰다는 약속이다 믿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야겠습니다. 기도하고 삼년안에 갚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삼년안에 큰 마음을 먹어봤습니다. 큰 마음을 먹었다고 해도 얼마안되더라고요. 한달에 30만원을 내겠습니까? 40, 60, 100만원을 내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100만원도 상관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조금만 눈을 뜨면 할 수있고 이 일을 내가 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후대에까지 습관을 길러 나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서 후대가 엘리트가 되려고 하지 말고 아예 엘리트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으려고 하지말고 축복의 삶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 수준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산업선교 지금 돈 많이 벌어서 산업하는 사람이 아니다. 산업선교가 될 수 밖에 없는 산업인의 삶이 되도록 산업선교 준비해야 합니다. 안그러면 백번천번 말로만 그치지 삶에 서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아놓고 감당을 못해요. 딴짓을 하게되요. 하나님은 그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기다리십니다. 승리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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