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자기에게 하신 말씀
2006-02-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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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속에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난주에는 특별히 말씀속에서 구원과 삶을 구분하지 못하고 이해가 안되어서 구원과 삶이 혼돈되면서 갈등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는 이런 분들이 많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것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인식이 들어갈까 염려되지만 분명히 알 것은 구원과 내 삶은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것은 뚜렷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성질이 더러워서 경건치못하고 하나님의 인도받기 보다도 자기동기와 의지가 짙어서 성령인도가 되지 않지만 그러나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이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삶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우리가 불신자와 다른 사건이 딱 하나있습니다. 불신자는 귀신의 영의 인도를 받고 성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 다른 것은 불신자속에 섞여서 삶을 살아갈때에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산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나는 성령의 인도받는다’ 믿습니까?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합니다. 어디서든지 어느 장소든지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실감하고 체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오늘 특별이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삶속에서, 과정속에서 위기가 온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에 어떻게 그 위기를 처리하느냐? 이겨나가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이 됨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위기가 기회임이 복음가진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신 분들이 우연히 온 게 아니라 많은 경우 개인적인 삶에서 건강, 경제, 사건속에서 위기를 통해서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위기는 축복과 은혜의 기회라 이해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위기가 왔을때에 그 위기속에서 빠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음과 멸망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똑같은 위기가 왔습니다. 가룟유다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베드로도 세 번이나 마지막에 저주까지 하면서 목전에서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위기속에서 영원한 멸망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뻔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위기속에서 72절에 보니까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회개하고 예수님의 축복된 역사속에 앉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이 말씀을 들었지만 베드로는 그 말씀이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붙잡을 수 있는 눈이 열렸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고 앞으로 나가는 삶에서 누구에게나 위기옵니다. 예수 잘 믿어도 옵니다. 실패도 올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마음과 생각에 새기는 순간, 우리는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때에 그 말씀을 한주간 내게 승리할 말씀으로 알고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과 생각에 심어야 하고 확실히 붙들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의 인물들이 귀한 사역을 한 배경은 반드시 말씀을 마음과 생각에 심을때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말씀이라고 할때에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통칭하여 로고스라 합니다. 이 말씀이 개개인의 마음과 생각속에 심겨질때에 레마라고 합니다. 똑같은 말씀이지만 내게 얼마나 심어지고 마음과 생각에 심어져서 하나님앞에 서게 되느냐가 응답입니다. 빌립보서에 하신 말씀처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붙드시고 마음과 생각에 말씀을 집어넣으시고 그 말씀을 붙드는 순간에 기적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창37:10-11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야곱은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에게 요셉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큰 꿈을 보여주었는데 그 꿈은 자기 형들과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앞에 나와서 절하는 사실, 별들과 해와 달이 한별앞에 절하는 것이 보여졌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마음과 생각에 심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요셉이 구체적으로 말을 안했지만 의미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새기는 순간 역시 야곱의 마음에도 그 말씀이 새겨졌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요셉에게 많은 문제와 사건이 계속해서 터졌습니다. 노예로 가고 감옥에 갔지만 그 속에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계시, 꿈을 붙잡았습니다. 어디가든지 낙심치 않고 어느 상황과 사건속에서도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중심에 심겨지는 순간 하나님은 그 말씀을 따라서 꿈을 따라서 축복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마음과 생각을 열어야 합니다.
사무엘이 비로소 하나님앞에 은혜의 약속을 붙잡는 순간입니다. 삼상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할때에 주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어서 엘리제사장을 찾아갔었는데 엘리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붙잡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하는 순간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붙잡는 순간에 하나님이 꿈과 계획을 보여주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게 되어있습니다.
옛날에는 잘 알지 못했기에 꿈으로 보였습니다. 옛날에는 글을 잘 못 배우고 단순했기에 꿈으로 많은 경우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꿈을 상당히 중요시 여겼습니다. 성경이 기록되기 전 요셉에게도 꿈으로 하나님이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특별히 설교시간을 통해서 주의 종을 통해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질 꿈과 하나님의 계획이 전달될때에 그것을 붙잡는 순간에 성취될 것입니다. 개개인이 확인될때에 이 순간이 우리에게 최고의 축복된 자리입니다.
그래서 어제 핵심에서 류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오늘 잘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500억을 받는 결과가 나온다고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멍청합니다. 500억의 숫자개념이 안되는지 너무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니까 실감이 안되는지 가만히 있습니다. 조금만 눈을 떠서 보면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보여주시는 순간에 붙잡기만 하면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래서, 이 사실을 후대들에게 이 큰 축복과 역사를 전하기 위해서 특별히 말씀하신 것이 신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특별히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마음과 생각을 새겨지도록 말씀을 계속 앉았을때든지 어디가든지 누워있더라도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손목에 매여 기호를 삼으며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마음과 생각에 심는 것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붙이고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서 주신 말씀이 축복된 말씀이지만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육체에 붙이기만 하지 마음과 생각에는 안 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받고 재앙받은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때에 바로 이 순간 마음을 열고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그 말씀을 붙잡으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말씀이 안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가장 축복받고 은혜받아야 할 중직자들이 말씀을 잘 못받습니다. 그래서 교회 사각지대가 중직자입니다. 중직자가 잘 못한다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중직자가 얼마나 귀중한가 알아야 합니다. 중직자가 살면 여러분이 저절로 삽니다. 중직자가 산다는 것은 말씀이 마음과 생각에 붙잡혀야 합니다. 이게 안되기에 사각지대이지 한국교회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평신도는 잘 받는데 장로가 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류목사님이 중직자신학교를 만든다고 하는데, 가장 중직자중에 중직자가 사모입니다. 사모가 목사뒤에 버티고 앉아서 말씀 못들으면 가장 큰 문제요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사모학과를 개설했습니다. 그래서 봄학기부터 사모를 훈련시킬려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가장 축복된 자리에 앉아서 메시지가 안들립니다. 목사와 같이 살고 늘 다투고 입씨름하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말씀이 잘 안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제일 어렵습니다. 이래서, 이들을 이 사각지대에 이들을 일으켜 세우면 교회가 달라집니다. 그 한사람만 있어도 교회가 변화됩니다. 목사의 배경에서 사모가 메시지가 들어가면 다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제일 말씀이 안 들어간다면 축복된 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이게 안 되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장 큰 축복의 자리에 있으면서 말씀을 받는 순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요즘 감사한 것은 교회마다 메시지를 하고 나면 메시지를 정리해서 나누어줍니다. 그걸 한주간 메시지 붙잡고 모일때마다 포럼하는 겁니다. 모일때마다 남의 흉하고 앉아있는데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그 메시지잡고 포럼하는 순간에 우연히 놓쳤던 말씀을 붙잡게 되고 한주간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속에 우리가 서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이 말씀을 듣고 새겨지게 될 때에 가정에 전달되고 후손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꼭 할일이 아이들에게 마음과 생각에 이런 축복을 심어주는 겁니다.
축복받을 자리가 렘넌트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시대적, 대표적, 이런 축복을 받고 누리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한 특정의 형식의 사람이 아니라 이 메시지를 붙잡고 나와 후손에게 전달하고 마음과 생각에 심어줄때에 우리 대뿐만 아니라 후손까지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늘 감사한 것이 렘넌트를 마음에 품을때에 삼대가 복을 받습니다. 렘넌트를 마음에 품은 그 세대, 어른들에게 축복하십니다. 그 다음에 우리 후손세대에 축복하시고, 그 후손세대에 축복하십니다. 말씀을 전달하고 말씀을 품을때에 축복하십니다.
어른들이 메시지붙잡지 못하고 축복을 누리지 못할때에 사단의 이용물이 되어서 불평과 원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적으로 자녀들에게 들어갑니다. 태도와 표정이 불평이 됩니다. 자기들도 모르게 나오는 한 두마디의 불평이 후손에게 전달됩니다. 부모들이 복음속에 서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속에 있을때에 자녀들이 망합니다. 엄격한 사실이기에 눈을 열어야 합니다. 집에 가서 표정으로라도 교회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주의 종에게 대해서 불평하면 너무나 무섭게 자녀들에게 전달됩니다.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후손을 망치는 문제입니다.

자녀들이 세상에 나가기 전에 준비시켜야 할 부분
성경이해
그래서 후손들에게 자녀들에게 밖에 나가서 사회에 부딪히기 전에 꼭 이해시킬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성경에 대한 지식을 최소한 기본적인 것이라도 가지고 나가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하면 성경은 과학이나 역사책이 아닙니다. 초과학이요, 초역사입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구원을 목표하고 기록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이 따지고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노예로 팔려갔던 노예시대를 400년이라고도 하고 430년이라고도 합니다.
목표가 다른데 있기에 연대에 대해서 크게 집중해서 관심을 가지고 말씀한게 아닙니다. 한국사람의 나이는 보통 서너살 올라갔다 내려갔다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내가 나이가 얼마라고 하지 않고 대략 서른살, 서른한살이라고 합니다. 호적나이가 젊은 사람은 젊게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사람의 나이는 물어서 정확하게 해답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이라는 것을 목적을 두었기에 그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조금 모자라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창4:12을 보고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성경에 가인,아벨,셋 셋뿐인데 어떻게 많은 사람이 가인을 죽입니까? 그것밖에 이름이 안나오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어서 표를 가지고 가서 맞아죽을 걱정을 합니까?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창4:3에 보면 세월이 지난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재물을 삼아 여호와께 제물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게 얼마만큼의 세월인지, 그간에 얼마나 많은 인구수가 늘어난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많은 사람을 제쳐놓고 가인과 아벨과 셋만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른보면 그때에 가인과 아벨과 셋 뿐인줄 압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백년이상의 세월은 흘렀습니다. 그런중에서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기록을 제쳐놓고 구원에 필요한 구원에 목표를 두고 가인과 아벨과 셋에 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의 이것이 이해안되면 당장 밖에 나가서 질문이 들어오면 성경이 이해안되면 마음과 갈등과 혼돈이 오기 시작합니다. 구원을 목표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혼란이 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씀을 주시고 성경을 주셨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사람들만 기록해 놓았습니다. 구원에 필요한 연대만 집중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 안되면 현장에 가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사이해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우리 자녀들이 세상에 나갈때에 교회사적인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시간에도 설명했지만 그리스도가 누구냐라는 질문속에서 세계가 계속해서 교회사속에 싸움이 생겼습니다. 반대하는 자와 지지하는 자와의 싸움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에베소회의에서는 반대하는편, 보수를 반대하는 편이 길에 숨었다가 보수주의자들을 때려죽이는 이것은 교회사에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사, 우리가 교회의 흐름이 뭐냐? 율법과 종교의 싸움입니다. 개인적인 흐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안에는 종교와 복음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율법으로 봤다가 복음으로 봤다가 복음으로 보면 마음이 편한데 율법으로 보면 짐지고 삽니다. 짐지만 안되는 줄 알면서 이렇게 삽니다. 이게 교회사의 갈등이요 성도의 갈등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이것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현장으로 보내면 전부 율법으로 보고 갈등이요 절망으로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으로 서지 못하면 도저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질문했습니다. 나를 누구라하느냐 할때에 선지자중의 하나라고 할때에 그때에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할때에 승리와 축복을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나갈때에 전문성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속에 전문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교회에서 어릴때부터 배운 것이 창조설입니다. 그런데,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은 진화론입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되고 진화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라고 결론내립니다. 아닌줄 알면서도 거기에 빠져갑니다. 이땅의 전문지식인들은 진화론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안 맞는 겁니다. 진화론 과정속에 중간매체가 있어야 하는데 사람과 원숭이 사이에 이상한 동물을 본 적 있습니까? 동물의 세계를 아무리 봐도 원숭이 틈 사이에 중간매체가 없습니다. 침팬지가 제일 인간을 닮았습니다. 그 사이에 발전된 동물이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동물은 원숭이도 종류대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중에 원숭이가 사람되는 것이 없습니다. 창조할때에 종류대로 만든 것입니다. 지금도 진화하고 발전해야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사람 이후에 발전되는게 외계인입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외계인이라고 합니다. 사람되고 난 다음에 그 이상으로 인간이 이상한 종류로 발전된 적이 없습니다. 외계인들은 이상한 개구리모양으로 머리는 크고 손은 길고 징그러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현실이 아닙니다. 전문지식인들이 말하고 내어놓으면 그걸 자꾸 따라갑니다. 화석을 제시해놓았는데 돼지뼈이기도 하고 이상한 것 가지고 사람의 진화를 설명하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종류대로 동물을 내고 사람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세상에 나갈때에 어떤 문제든지 어떤 사건이든지 갈등속에 빠지지 말고 생각은 최고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사람과 사람을 대할때는 최고의 낮은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최저의 자리에서 봉사하는 자리에서 해야 합니다.
상당히 기분좋은 이야기를 아이들이 합니다. 손자가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여자아이를 괴롭히지 않고 도와줄려고 하고 봉사할려고 하는 것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여학생들이 자기짝을 만들려는 겁니다. 나를 안 닮은것 같습니다.
낮은자리에 쳐하고 우리가 하나님앞에 조금만 이웃사람과 다른사람에게 봉사의 정신을 가지면 다 좋아하게 되어있습니다. 사업할때도 낮은자리에서 하고 생각은 최고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임마누엘. 뭐든지 사실과 사건을 착각하지 말고 사실대로 보는 눈을 열어야 합니다. 이게 잘 안됩니다.
내 동기에서 그 사실을 왜곡시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되어야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복음을 복음의 사실대로 전달할 기능이 생깁니다.
그래서 오직 복음으로만 세상을 살리고 일으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심어야 우리자녀들이 승리합니다. 복음은 절대적이고 유일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조금만 전하면 세상이 달라지고 사건이 달라지고 가정과 가문이 놀라웁게 달라짐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사이해
그리고 한국사회를 아이들이 너무 모릅니다. 이상하게 좌경으로 흐를때에 전교조가 출발은 건전했는데 지금은 이북사상으로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때에 조금만 여기에 부딪히면 넘어갑니다. 인식시켜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한 30년간 군부독재로 급성장했습니다. 어떤 한 국가가 급성장하는 길은 민주주의가 되어서는 잘 안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통해서 경제쪽으로 집중투자하면서 고속도로 닦고 그가 제직하는 동시에 눈부신 발전이 왔습니다. 그로인해 독재가 나오니까 눈이 뜨인 사람들, 지식인들,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호남지역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니까 반대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민심을 단합시킬려고 북한을 이용했습니다. 평화댐을 통해서 급조해서 돈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게 독재시절에 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나라가 보수세력, 이게 영남지역입니다. 그 다음에 반대하는 세력, 이념의 갈등이 거기서부터 왔습니다.
저는 어떤때는 걱정하다가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 마음을 놓고 바라봅니다. 이념갈등이 너무나도 위태한 지경까지 왔습니다. 진보적인 세력이 북쪽에 있는 사상, 만경대사상으로 남북통일하자고 합니다만 류목사님 말씀이 김일성고향이 만경대인데 그 사람의 사상으로 남북통일하자고 하는데 그건 아닌데 반대하는 진보세력이 그 배경으로 통일하자고 합니다. 이런 일에 자녀들이 물들 수 있습니다. 대학에 북쪽에 있는 사상을 똑똑한 아이들에게 집어넣는 겁니다. 아무리 때려도 안되고 훈계해도 안되고 그래서 탄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복음은 세상을 살리는 정답
우리나라가 이런 배경에서 이념갈등, 사상갈등이 오고 있지만, 보수도 일수도 있고, 진보도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복음이외에는 모든 문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복음의 사상을 마음과 생각에 심어야 합니다. 이념갈등으로 왔다갔다합니다. 학교에서 조차 이런 갈등속에 헷갈리고 있습니다. 기도할 문제이지만 하나님은 보수주의 영남을 중심으로 할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진보주의로 할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뜻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제대로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것이 심어지는 구체적인 역사로 자녀들이 분명히 알 것이 너는 구원받았다 동시에 모든 원죄에서 해방받고, 사단의 운명에서 해방받았다는 사실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말씀처럼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되는 순간에 하나님이 저절로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 전도와 선교입니다. 전도라는 것은 내게 주신 구원의 축복을 말하는게 전도입니다. 이것을 멀리가서 말하는게 선교입니다. 문화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순간 교회가 건축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건축됩니다. 교회당이 건축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고, 이렇게 될 때에 사단과 흑암의 세력이 물러갑니다. 벧전5:8-9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사단을 대적해야 합니다. 전투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를 향해서 사단권세를 알고 꺾으면 피하고 도망갑니다.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갑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면 붙잡힙니다. 생활과 사건속에서 흑암세력을 보는 눈을 열어야 합니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확신가지고 사단세력을 꺾으면 결단코 너희를 해할자가 없다, 흑암세력 꺾을 예수그리스도 이름붙잡고 나갈때에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청소년시기와 대학으로 연결되는 시기에 개인적으로 시달렸습니다. 밤에 잠도 못자고, 방황도 하고 확실하게 이것이 안 되어 있으니까 믿기는 믿는데 사회에 갈등되는게 너무 많으니까 시계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려서 잠을 못 잔적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붙잡지 않으면 청소년과 청년이 버티지 못합니다.
이 사실이 되면 기도응답이 옵니다. 마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확실하게 약속붙잡게 되고 말씀이 임하게 되면 우리를 성화시키시는데 반석같이 만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성화의 과정에서 기도응답이 약속됩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흑암세력을 꺾는 사실속에 이것이 됩니다.
구원받게 되면 우리를 반석같이 만들어주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때에 흑암이 꺾이는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에 우리를 이상한대로 끌고가는 흑암세력을 꺾으시고 그때부터 기도의 응답이 사실대로 이루어집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하나님앞에 나갈때에 우리의 후손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평안과 안식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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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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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469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단6:16-28 2025-01-12
146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단5:17-31 2025-01-05
1467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갈4:4-7 2024-12-31
1466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단4:28-37 2024-12-29
1465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2024-12-22
1464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3:8-18 2024-12-15
1463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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