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이 어떠한 말씀인고!
2006-06-11 00:00:00
관리자
조회수   32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흑판앞에 서니까 성도들 마음에 오늘 설교가 길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지만 최대한으로 빨리 마치게 하는게 설교할때마다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상하게 오늘날 교인들은 30분이상 설교를 듣지 못하고 시간을 잽니다. 그래서 상당히 주의합니다. 말씀에 취해 있으면 40~50분도 별 문제가 없는데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늘 설명하는 것이지만 잘안되고, 우리의 인식속에 잘 새겨지지 않기에 또 한번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한번 더 신실하게 새기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요즘은 계속 성령인도에 대한 부분이 집중해서 말씀합니다. 이것은 렘넌트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문제입니다. 오늘날 렘넌트들이 나는 왜 성령인도 못받느냐라는 질문한다는 자체가 굉장한 수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성령인도에 대해서 고민도 안했습니다. 그러다가 주일날 교회에 오면 내뜻대로 살았습니다 용서하옵소서. 이게 반복됩니다.
그런데 렘넌트들이 정말 말씀붙잡고 성령인도를 위해서 몸부림 친다는 것은 위대한 역사입니다.

오늘은 질문이 성령충만이 도데체 뭡니까? 늘 성령충만이라고 하는데 성령충만이 뭔가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충만에 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은사로 방언으로 성령충만이 온다면 확인하겠는데,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기도하는데 뭔가 느낌이 없습니다. 새벽기도회 마치고 30분마치고 나면 다 가고, 어떤면에서 뜨겁게 기도하면 장애가 되는 것 같아서 그것도 못하고, 뭔가 소리도 못지르고 끙끙 앓다가 돌아가고, 말로만 성령충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성령충만이라는 감각과 사실적인 역사가 안나타납니다.
저도 간절합니다. 병으로 인해서 머리도 망가져서, 설교할때에 전에는 말씀준비할때에 지혜가 생겨서 힘있게 말씀을 전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안되어집니다. 여러분이 저를 위해서 말씀중에서 영감이 떠오르면 정확한 말씀으로 인도되도록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은 성령충만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은 언제받느냐라는 말은 상당히 어렵고, 그래서 성령충만 받으려고 산에도 가고 금식도 하고 하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성령충만이 떨어지게 됩니다.
오늘도 구체적으로 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려면 성령인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언약잡고 말씀받을때에 성령충만이 오게 됩니다. 뭔가 몸에 이상이 안나타나도 언약잡고 말씀듣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이 집중적으로 메시지가 되어지는 이유가, 렘넌트와 우리가 성령인도만 받으면 성공합니다. 이것이 확실하게 붙잡혀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령인도 못받으면 열심히 하고 노력하고 애를 써도 실패합니다. 이 문제가 마음속에 확실한 줄을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성령인도 받을때에 특별히 기억할 것은 성령인도 받으면 왜 성공하고, 성령인도 못받으면 왜 실패하느냐? 오늘 눅4:36에 보면, 이 어떠한 말씀인고, 성령충만속에서 나오는 말씀이라야 능력과 권세로 역사합니다.
성령충만 받았다고 할때에 예수님이 성령충만 받았던 이야기를 눅3:21에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직전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때에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성령을 비둘기같이 내리시는데 형체로 임하시고 너는 나를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막1:9에 성령충만 받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공생애 첫 시간에 세례받는 동시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공생애는 완벽한 성령의 인도입니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완벽한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능력있고 권세가 있는 겁니다. 이게 성경전체의 배경입니다. 예수님이 시험받을때도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받으시고, 성령에 이끌리어 말씀하시니 권세있고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의 인도받으며 나아갈때에 힘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속에 말할때에 그 말에 권위가 생기고 능력이 생깁니다. 사무엘의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공의 역사입니다. 안믿는 사람과의 대화속에서 저 사람의 말이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고 감동이 된다, 성령의 충만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되면 사업과 직장생활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창41:38에 보면 안믿는 사람인 바로가 요셉을 보면서 성령충만의 역사가 확인되었습니다. 요셉의 말과 꿈해석이 너무 권위가 있어서 바로가 이 사람처럼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를 어디서 찾으리요, 이 사람을 총리로 삼아야겠다. 애굽의 모든 권세를 맡겼습니다. 요셉이 그냥 된게 아니라 성령충만함이 이런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촐3:12에 언제부터 모세에게 그 말이 바로를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열재앙과 위대한 힘이 나왔느냐?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권세와 권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 보내심에 이유와 핑개를 되며 거절했지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인도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니까 가는 곳마다 말씀하는 것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무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상3:10에 보니 하나님의 신이 사무엘을 불러서 사무엘에게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 첫 번째 역사입니다. 사무엘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인도받을때에 사무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그대로 응답되고 성취되는 것입니다.
내게 성령충만하게 하시면 내입을 통해서 하는 말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성령인도,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령충만하게 되면 그냥 대화하는 것 같아도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이 배경이 되면 반드시 성공하게 됩니다.
다윗은 삼상16:13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뿔을 취해서 목동인 다윗에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더니,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이 다윗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랬더니 다윗의 하는 일마다 능력이 나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왕의 궁에서 수금을 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니 사울왕에게 붙었던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성령충만의 역사로 하나님의 역사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생활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믿음의 전부입니다. 이게 바로되면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말세에 성령인도받는다는 것은 간단한 말이 아니라
엘리사의 경우에도 왕하2:1~11에 보면 엘리야에게 영감을 배나 더하게 해 달라고 할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후대를 키우고 렘넌트를 키우는 엘리사 그배경이 성령충만이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생활의 전부입니다.
슥4:6에 보면 우리 기도의 최고의 보류가 있습니다. 힘이 없고 연약할때에 오직 성령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내 자녀에게 내 직장에서 내 말이 능력과 권세로 역사하게 하옵소서. 성령충만하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받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흑판을 가지고 온 것은 늘 설명하지만 잊어버립니다.
만세전부터 인도를 받는데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하게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 이전에도 성령인도 받았습니까? 못받았습니까? 성령인도를 받았습니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선택해서 하나님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오늘까지 이끌어오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시간동안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타락하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살았지만, 이 배경에서 하나님이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주셔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선택받고 난 후에 인도받았습니다.
저는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 전에는 구약시대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봤습니다. 이때는 성령의 임재였습니다. 어떨때는 감동받고 어떨때는 감동못받고 하는 겁니다. 감동받을때에는 좋은데 돌아서면 옛날과 똑같이 변화된 것도 없습니다. 감동을 한번받고 끝나는게 아니라 어떤 기회나 시기가 오면 감동을 받습니다. 왔다갔다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기전에는 구약입니다. 은혜가 임했다가 떠났다가, 그래서 집중해서 말씀의 인도를 못받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성령이 내주한 시간이 언제부터입니까? 예수그리스도가 기점입니다. 그전을 주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다. 그다음에 그 이후를 주후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오늘 성령충만을 받는다고 할때에 성경에도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다윗도 기름뿔을 취해서 머리에 부을때에 하나님의 신에 감동받았다고 했습니다. 모세도 가시떨기 나무 불꽃가운데 불러서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해서 나가서 말하는 곳마다 그 완악한 바로를 완전히 제압하고 출애굽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난 후에 체험이 되었습니다.
바울같은 경우에도 다메섹에 믿는자를 잡으러 올라가다가 하늘로부터 강한 빛이 임하고 아나니아에게 기도받고 안수받고 눈봉사로 있다가 삼일만에 눈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붙잡고 나아갈때에 일생을 복음위해서 살았던 성령충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늘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의 삶이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그러니 바울이 가는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지교회와 다락방을 할때에 우리자신이 성령충만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입으로 나오는 말이 권세있고 권능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저는 어떻게 해야 성령충만을 받습니까?
또 인간적인 동기로 뭘 해야 하는가 합니다. 개인적으로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말씀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이 있도다, 내주하는 순간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성경에 나오는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도다, 이 어떠한 말씀인고 감탄하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내주하는 순간부터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점부터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가 나옵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축복된 역사속에 오기 위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이 내안에 오셨습니다(고전3:16), 이때부터 내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요14:16~17에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는데 그 성령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실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7절에 보면 한번 내주하시는 성령하나님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겁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인도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할때에 무섭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위한 주권이요 은혜주시기 위한 주권입니다. 우리를 절대로 고아처럼 내어버려두지 않고 허무에 안빠지고 염려하는것에 안빠지도록 인도하시는 것이 주권입니다.

주권속에 인도를 받아가는데 동기가 생기면 위로 올라갑니다. 위로 올라가다가 또 동기가 생기면 밑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 주기를 반복으로 삼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동기가 생겨서 신비를 깨닫고 할때는 말씀으로 인도받다가 말씀밖으로 올라갑니다. 올라가면 말씀보다 하나님과 직통하는 겁니다.
신나게 올라갔다가 타락하고 말씀밖으로 빠지게 될 때에 타락하게 됩니다. 신비를 체험하고 신비를 깨닫고 신비를 알아도 말씀으로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말씀밖의 감정이 오면 안됩니다. 말씀까지 와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실패해도 절대로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실패가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인도를 받는 것은 말씀안에 있을때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시게 됩니까? 성령이 내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조금만 말씀붙잡고 인도받으면, 축복하실때에도 겸손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겸손하게 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을때에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는 방법이 구원의 확신입니다. 구원의 확신이라고 할때에 신분에 대한 확신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때에 큰 기점이 되어서 성령이 내안에 내주하십니다. 내주하시는 이 순간부터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구원을 확신하는 삶이 지속되면 지금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게 방법중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5대확신의 제일 첫 번째가 구원의 확신입니다. 성령인도받는 순간에 함께 하시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순간에 성령은 내주하시고 내주하시는 순간에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이 순간에도 바로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내가 기도할때에 이 순간 성령충만 주십니다. 말씀볼때도 이순간 성령충만 주십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시고 확인하시고 믿을때에 믿는자의 모든 하는 일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대화와 사건과 직장속에서도 하나님은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