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2006-07-3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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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분은 혀가 굳어서 마지막 부분 인사가 잘 안 되는가 봅니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라는 부분이 잘 안되어지는 모야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안팎이 그렇게 바꾸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목이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라는 제목으로 함께 짧은 시간에 은혜 받고 하나님의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렘넌트의 리더들이 광주에 모여서 이틀간 전도캠프로 현장에 나갔는데 1800명이 영접했습니다. 그들을 초청했는데 300명이 초청에 응해서 모였습니다. 초기에 대학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영접시켰는데, 영접한 사람들을 단위에 올라오라하니까 300명이 올라왔습니다. 뜨거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정지태선교사님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에 후원할 수 있는 후원자들 손들라하니까 거의다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1년 후에 선교비가 안 들어가서 보니 감정이 다 떠나서 선교비를 안 보내는 겁니다. 전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는데 300명이 영접하고 단위에 올라갔고, 그 뜨거운 분위기가 초창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전달됨을 경험했습니다.
광주에서 전도캠프로 영접한 자 1800명, 말이 1800명이지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중에 따로 초청한 사람이 300명 요원입니다. 이번 렘넌트 대회에 참가자가 만여 명입니다. 광주에 만 명이 모인 예가 없어서, 광주 시에서 경찰 2개 중대를 파송해서 도와준다고 합니다. 만 명이라니까 보통으로 듣겠지만 송현교회에서 핵심할 때에 그 주변 상가가 다 살았습니다. 배 고프니까 우선 불신자든 신자든 먹어야 하니까 식사 때는 음식점으로 갑니다. 이곳 하나교회로 옮긴 후 언젠가 토요일 그 앞으로 지나갈 일이 있어서 지나가보니까 조용한 겁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없는 겁니다.
한꺼번에 렘넌트들만 만 명입니다. 거기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숫자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면 그 지역의 상권이 삽니다. 엄청난 역사가 나오는 것을 봅니다.
지난 주 수재도 있었지만 인명피해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는 130명이 너무 더워서 죽었습니다. 파리에서는 수백 명이 죽게 되는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상이변입니다. 옛날에 도저히 없었던 일이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오니 눈뜨라고 이런 재앙이 오는 겁니다. 복음 있다던 미국과 유럽에도 복음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각 종교대표들이 모여서 믿음으로 구원받는것이 아니라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에 협약을 했습니다. 루터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하고, 천주교는 믿음으로 뿐만 아니라 행위로도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수용을 해서 협약했습니다. 게다가 이 협약에 감리교가 참여했습니다. 다 종교통합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후로 종교는 세계적으로 협력과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손뼉치고 마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리라」 이것 붙들고 나가고 있습니다. 행4:12에 천하인간에게 예수 이외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복음 모든 문제해결입니다. 이것잡고 갑니다.
지난주 성경학교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태영아부를 봤습니다. 보면서 이 아이들이 메시지를 받는데 너무 조용해서 태영아부 맞는가싶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주일학교 맡아서 할 때는 유치부였는데 자기 마음대로 놀고 했는데 이 태영아부를 보고 엄청나게 복음을 붙잡고 누림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유치부에 왔는데 메시지를 받아 적는 겁니다. 그런데 어른들보다 설교 듣는 수준이 더 높아보였습니다. 태영아부부터 부모와 함께 영적훈련을 받고 부모 없이 이제는 메시지 듣는데 놀라운 모습을 봤습니다. 유년부는 아이들이 거의 필기를 합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설교를 40분하는데 꿈쩍도 안 하고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 류목사님이 렘넌트 소망 있다고 하더니만 이 아이들이 소망이다. 저는 이런 일을 겪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정말 렘넌트 아이들이 복음으로 진지하게 커 나가는 것, 무슨 인물들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부에 가보니까 이 아이들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조금 산만해지는 것을 봅니다. 지각생들도 많지만 초등부는 완전 복음입니다. 복음전하는 어른들을 향한 느낌보다 훨씬 더 좋게 느껴졌습니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어릴 때부터 복음 확실히 붙잡고 자라면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계획되어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 말로만 아닙니다. 어느 지역이든지 렘넌트 아이들이 만 명 모이는 역사는 세계적으로 없습니다. 제가 나고야에 갔을 때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숨이 막힐 정도로 모였습니다. 보통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계획과 뜻이, 준비되어있음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앞으로 미래를 보는 일에 실망할 필요 없고 참된 희망과 확실한 계획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소망은 렘넌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분명한 사명은 우리에게 맡겨진 렘넌트들을 정말 잘 키워야겠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여하는 렘넌트들도 승리하는 축복 속에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복음이 되면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옵니다.
본문의 말씀 중에 19절에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난다, 복음 붙잡으면 주 예수 그리스도 붙잡으면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이 축복의 역사를 붙잡으면 승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롬11:36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축복을 붙잡으면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는 자들이 죽으면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게 복음의 원리고 복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원리입니다. 순간순간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살다가 죽으면 주님께서 돌아갑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확실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렘넌트를 어떻게 키워나가야 합니까?
개개인들이 분명히 붙잡을 중요한 것이 성실성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키워야 합니다. 전문성을 가르쳤는데 어릴 때부터 성실하게 성장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성실하게 키우면 전문성은 따라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어린 아이들 주변에는 이것이 너무 안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무능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심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성실성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성실해서 부자 된 사람은 수전노,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입니다. 주변이 다 그런 문제입니다. 그리고 성실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로 율법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아이들이 정말 성실한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허풍쟁이입니다. 부풀려서 말합니다.
아이들이 성실을 배우는 가운데 성장하게 하면 저절로 전문성이 나옵니다. 그래서 인도받으면 저절로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첫째로, 우리 모두가 물질에 눌리거나 물질에 너무 풍족하기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교회는 물질에 눌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쫄딱 망하고 교회에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패하고 어렵게 모인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옵니다. 이런 사람들의 배경에 정신적인 문제도 많습니다.
물질에 눌린 자들은 인색하게 됩니다. 궁색을 면치 못합니다. 이 가난한 자들이 가난을 누리고 가난을 통해서 발판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인색과 궁핍에 빠지게 됩니다. 돈이 없어도 궁핍하지 말고 쓸 때는 써야 합니다. 이런 궁핍을 렘넌트들이 보게 되면 궁색의 대물림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되면 스케일이 좁습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하면 답답해서 속이 터지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큰 교회를 지을 수 있느냐? 은혜입니다. 헌금문제를 강조하지만 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궁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서 다 옵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대상 29장에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헌금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모든 나라가 부유했음을 보게 됩니다.
물질에 궁색하게 되면 자식들에게 대물림이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습니다. 우리 가정이 그렇게 못사는 것도 아닌데 내 기억에는 물질에 눌려 살았음을 보게 됩니다. 마음과 생각에 부유함이 없었음을 보게 됩니다. 뭔가 생각이 궁핍하고 궁색하고 눌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젊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생각의 폭을 넓히고 궁색에서 벗어나고 대물림에서 벗어나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부자요 엄청난 자리에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물질을 낭비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계산 안하고 씁니다. 앞으로 뭐가 다가올지도 모르고 씁니다. 카드로 절제 없이 쓰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합니다. 낭비의 습관으로 말미암아 문제에 부딪힙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면 일터가 어렵고 힘듭니다. 그래서 자랄 때에 마음대로 쓰다가 일터에 들어가 일하면서 낙망하게 되고 무능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부자의 자식들을 일터에 보내어 놓으면 오래 못 견디고 문제 생기는 게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부자도 아닌 것들이 낭비하고 현실에 부딪히면 낙심하고, 직장의 일 하나 박차고 못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게 영적문제입니다. 확실히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문제 생기면 자기를 포장하는 사기꾼이 됩니다. 성실만 가지고는 망합니다. 복음 붙잡고 성실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바탕이 안 되면 성실자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실성을, 자녀들에게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계발해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전문성 이전에 성실해야 합니다. 이 성실한 사람들을 보면 지난 과거에 느낀 것이 성실하게 산다고 애를 썼는데 사람이 답답해 질 수 있습니다. 복음이 없으면 성실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창39:2~3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성실 이전에 복음 안에서 성실하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전문성의 역사가 나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리면서도 저항하거나 욕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하고 형제들에게 팔리고, 노예로 팔려서 노예로 생활하면서 아무 소리 없이 성실하게 자기 의무를 감당했습니다. 감옥에 가서도 아무 소리 없이 성실하게 자기 의무를 감당했습니다. 성실해야 어디를 가든지 인턴쉽이 됩니다.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전문성이 나오게 됩니다. 성실성이 있어야 전문성이 됩니다. 그래야 성공의 역사로 나가야 됩니다. 복음 붙잡고 성실하게 되면 성공과 직결됩니다.
시78:70~72에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사람이 범사에 성실하게 되면 저절로 실력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뭐가 마음에 느껴지는가 하면 지금 건강을 통해서 내 마음에 성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아프다는 핑계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집사람과 식탁 앞에서 대화하다보면 부정적인 사고와 무엇이든지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이 답답해지고 그래서 싸우게 되는 겁니다. 나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병적인 요소가 나도 모르게 나와서 화를 내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정도 화를 내다가 화해하기도 하고 했습니다.
지난주에 네 손을 내밀라 바짝 마르고 쓸모없는 손인데 우리가 내미는 손은 무슨 손인가 묻는데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정적이고 상대를 향해서 좋게 말하지 못하고 현장에 못나가는 겁니다. 집안만 뱅뱅 돌고 있습니다. 아파트 이웃들을 바라보면서 밥인데 문이 안 열립니다. 이것이 우리가정에 손 마른 자의 문제인데 이것을 내어놓자고 했습니다.
현장에 구체적으로 모든 사건을 대할 때에 긍정적으로 성실하게 나가는 이런 문제가 안 되면 내밀어봅시다, 얼마나 성실해서 손 마른 것을 내미는 축복이 있습니까? 손을 내밀 때에 내밀 수 있는 힘을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성실한 자들이 성실한 만큼 축복과 은혜로 인도하시게 되어있습니다.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에 단행본을 일주일에 두 권 정도 읽었습니다. 주로 버스 안에서 읽었습니다. 어떤 책은 너무 취해서 내가 내릴 정류장을 지나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불성실하냐? 일주일에 한권도 못 읽습니다. 한달에 한권도 못 읽습니다. 앉아서 집중이 안 됩니다. 제가 힘들게, 토요일에 설교방향을 생각하면서 집중해서 원고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안 됩니다. 저의 문제가 손 마른 것이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집중이 안 되고 어떤 사람을 보던지 부정적으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내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대구율법이다. 맞다. 거기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대물림에서부터 스스로 그런 자리에 빠졌다면 오늘 복음 붙잡고 성실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성공하게 하실 겁니다.
저는 저의 손자를 보니까 눈이 별로 안 좋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안경을 쓰고 온 겁니다. 그 미남의 인상이 달라지는 겁니다. “왜 안경을 썼느냐?”하니까 TV를 보는 것은 아니고 늘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겁니다. 깜깜한 방 안에서 책을 읽는데 한두 시간 문제없이 책을 읽는 겁니다. 그래서 급격하게 눈이 나빠진 것입니다. ‘눈은 나빠져도 습관하나는 좋다. 하나님의 은혜입고 약속 붙잡으면 성공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다른 것보다 성실성이 습관 되게 해야 복음 붙잡고 승리하는 축복이 됩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실력이 나오고 그 실력으로 인해서 자기도 모르게 규모가 나오게 됩니다.
이번에 주일학교 보니까 규모를 이야기하는데 태영아부부터 초등부까지 다 규모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길이 복음이다. 복음을 설명하는 겁니다. 이 복음 설명을 유년부에서는 40분이나 설교하는데도 꼼짝없이 듣는 겁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 축복이 바로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가지고 성실하게 되면 실력이 따라오고 실력이 따라오면 자기도 모르게 규모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 규모가 바로 세워지는 배경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어떤 집의 어머니가 자랑하는데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기도수첩을 가지고 잠자기 전에 성경을 읽고 잠자고, 아침에 깨우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일어나서 성경보고 밥 먹고, 아무소리 않고 학교에 가방 들고 간다는 겁니다. 제가 듣고 절대로 저런 일이 있을 수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아이가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성실이 따라오고 그에 의해서 실력이 따라옵니다. 대구에서 살았던 사람이 서울에 갔는데 자기반에서 1등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복음 통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인도하시고, 이런 규모로 자라게 되면 자녀들이 성공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규모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어른들의 역할을 말씀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교훈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가서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필요합니다. 잔소리교육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잔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라야 올바르게 성장합니다. 복음 가지고 믿음으로 잔소리 한 것은 어린아이들의 심령에 규모를 만드는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엄청난 문제가 오는 게 이게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구체적인 교육이 나와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경제현장의 성공 자들과 면담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스쿨이 이런 배경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간에도 성공한 사람을 세워서 질문하고 답하고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 성공한 자들과 이야기 해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너무 내 주변에는 실패하고 무능한 자들만 많았습니다. 앞을 제시할 수 있는 만남이 전혀 없었습니다. 선생들조차도 그러니까 말입니다. 시골에 온 선생들은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왔다고 좋아했는데 술을 처먹는 겁니다. 그리고는 행패를 부리는데 동네 우물가에서 행패를 부리는 겁니다. 그래서 수업 때 보니까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욕을 하는 겁니다. 주변에 성공한 자들을 통해서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제 나름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각이 좀 있어서 집을 나와서 한 달 동안 무전여행을 했습니다. 무전여행하면서 얻어먹고 살고 했는데 얻어먹기 위해서 들어가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밥 얻어먹으러 가면 어떤 사람은 반기면서 잠자리를 주기도 했습니다. 주말이 되어 교회를 찾아가 풍금을 4부로 치고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겁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다고 하면 밥도 주고 주일학교 아이들 앞에 서서 말씀도 전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체험들이 나도 모르게 발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도스쿨이 필요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듣는다는 것이 중고생 때에 힘듭니다. 법조인과 경제인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만남은 어릴 때에 엄청난 비전을 줍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한 인턴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궁무진한 자료가 책 속에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성공한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준다면 성공하게 되어있습니다. 자료를 보면서 그 속에서 무한한 인격을 만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책을 낸 사람의 인격과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성도들 자체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보다도 더 중요한 성경을 읽어야겠다. 성경 읽는 자세가 조금만 되어도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게 되는 겁니다. 이게 말 아무리 하는 것보다도 보여주기만 해도 충격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이것만 되어도 후손들이 복음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분은 혀가 굳어서 마지막 부분 인사가 잘 안 되는가 봅니다. “당신은 세계를 살릴 선교사입니다.”라는 부분이 잘 안되어지는 모야입니다. 조금만 지나면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 안팎이 그렇게 바꾸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목이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라는 제목으로 함께 짧은 시간에 은혜 받고 하나님의 인도받기를 원합니다.
렘넌트의 리더들이 광주에 모여서 이틀간 전도캠프로 현장에 나갔는데 1800명이 영접했습니다. 그들을 초청했는데 300명이 초청에 응해서 모였습니다. 초기에 대학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영접시켰는데, 영접한 사람들을 단위에 올라오라하니까 300명이 올라왔습니다. 뜨거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정지태선교사님을 해외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에 후원할 수 있는 후원자들 손들라하니까 거의다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1년 후에 선교비가 안 들어가서 보니 감정이 다 떠나서 선교비를 안 보내는 겁니다. 전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는데 300명이 영접하고 단위에 올라갔고, 그 뜨거운 분위기가 초창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전달됨을 경험했습니다.
광주에서 전도캠프로 영접한 자 1800명, 말이 1800명이지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그중에 따로 초청한 사람이 300명 요원입니다. 이번 렘넌트 대회에 참가자가 만여 명입니다. 광주에 만 명이 모인 예가 없어서, 광주 시에서 경찰 2개 중대를 파송해서 도와준다고 합니다. 만 명이라니까 보통으로 듣겠지만 송현교회에서 핵심할 때에 그 주변 상가가 다 살았습니다. 배 고프니까 우선 불신자든 신자든 먹어야 하니까 식사 때는 음식점으로 갑니다. 이곳 하나교회로 옮긴 후 언젠가 토요일 그 앞으로 지나갈 일이 있어서 지나가보니까 조용한 겁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없는 겁니다.
한꺼번에 렘넌트들만 만 명입니다. 거기에 따라오는 부수적인 숫자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면 그 지역의 상권이 삽니다. 엄청난 역사가 나오는 것을 봅니다.
지난 주 수재도 있었지만 인명피해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는 130명이 너무 더워서 죽었습니다. 파리에서는 수백 명이 죽게 되는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상이변입니다. 옛날에 도저히 없었던 일이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오니 눈뜨라고 이런 재앙이 오는 겁니다. 복음 있다던 미국과 유럽에도 복음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각 종교대표들이 모여서 믿음으로 구원받는것이 아니라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것에 협약을 했습니다. 루터파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하고, 천주교는 믿음으로 뿐만 아니라 행위로도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수용을 해서 협약했습니다. 게다가 이 협약에 감리교가 참여했습니다. 다 종교통합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후로 종교는 세계적으로 협력과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손뼉치고 마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리라」 이것 붙들고 나가고 있습니다. 행4:12에 천하인간에게 예수 이외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복음 모든 문제해결입니다. 이것잡고 갑니다.
지난주 성경학교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태영아부를 봤습니다. 보면서 이 아이들이 메시지를 받는데 너무 조용해서 태영아부 맞는가싶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주일학교 맡아서 할 때는 유치부였는데 자기 마음대로 놀고 했는데 이 태영아부를 보고 엄청나게 복음을 붙잡고 누림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유치부에 왔는데 메시지를 받아 적는 겁니다. 그런데 어른들보다 설교 듣는 수준이 더 높아보였습니다. 태영아부부터 부모와 함께 영적훈련을 받고 부모 없이 이제는 메시지 듣는데 놀라운 모습을 봤습니다. 유년부는 아이들이 거의 필기를 합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이 설교를 40분하는데 꿈쩍도 안 하고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 류목사님이 렘넌트 소망 있다고 하더니만 이 아이들이 소망이다. 저는 이런 일을 겪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정말 렘넌트 아이들이 복음으로 진지하게 커 나가는 것, 무슨 인물들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부에 가보니까 이 아이들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조금 산만해지는 것을 봅니다. 지각생들도 많지만 초등부는 완전 복음입니다. 복음전하는 어른들을 향한 느낌보다 훨씬 더 좋게 느껴졌습니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어릴 때부터 복음 확실히 붙잡고 자라면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계획되어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 말로만 아닙니다. 어느 지역이든지 렘넌트 아이들이 만 명 모이는 역사는 세계적으로 없습니다. 제가 나고야에 갔을 때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숨이 막힐 정도로 모였습니다. 보통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향하신 계획과 뜻이, 준비되어있음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앞으로 미래를 보는 일에 실망할 필요 없고 참된 희망과 확실한 계획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소망은 렘넌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분명한 사명은 우리에게 맡겨진 렘넌트들을 정말 잘 키워야겠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여하는 렘넌트들도 승리하는 축복 속에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복음이 되면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옵니다.
본문의 말씀 중에 19절에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난다, 복음 붙잡으면 주 예수 그리스도 붙잡으면 모든 것이 거기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이 축복의 역사를 붙잡으면 승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롬11:36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축복을 붙잡으면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는 자들이 죽으면 그에게로 돌아갑니다. 이게 복음의 원리고 복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원리입니다. 순간순간 위로부터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살다가 죽으면 주님께서 돌아갑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확실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렘넌트를 어떻게 키워나가야 합니까?
개개인들이 분명히 붙잡을 중요한 것이 성실성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키워야 합니다. 전문성을 가르쳤는데 어릴 때부터 성실하게 성장하도록 가르치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성실하게 키우면 전문성은 따라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어린 아이들 주변에는 이것이 너무 안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무능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낙심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성실성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성실해서 부자 된 사람은 수전노,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입니다. 주변이 다 그런 문제입니다. 그리고 성실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주로 율법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들로 꽉 차 있어서 아이들이 정말 성실한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허풍쟁이입니다. 부풀려서 말합니다.
아이들이 성실을 배우는 가운데 성장하게 하면 저절로 전문성이 나옵니다. 그래서 인도받으면 저절로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첫째로, 우리 모두가 물질에 눌리거나 물질에 너무 풍족하기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교회는 물질에 눌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쫄딱 망하고 교회에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패하고 어렵게 모인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옵니다. 이런 사람들의 배경에 정신적인 문제도 많습니다.
물질에 눌린 자들은 인색하게 됩니다. 궁색을 면치 못합니다. 이 가난한 자들이 가난을 누리고 가난을 통해서 발판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인색과 궁핍에 빠지게 됩니다. 돈이 없어도 궁핍하지 말고 쓸 때는 써야 합니다. 이런 궁핍을 렘넌트들이 보게 되면 궁색의 대물림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되면 스케일이 좁습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하면 답답해서 속이 터지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큰 교회를 지을 수 있느냐? 은혜입니다. 헌금문제를 강조하지만 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궁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서 다 옵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대상 29장에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헌금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모든 나라가 부유했음을 보게 됩니다.
물질에 궁색하게 되면 자식들에게 대물림이 됩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습니다. 우리 가정이 그렇게 못사는 것도 아닌데 내 기억에는 물질에 눌려 살았음을 보게 됩니다. 마음과 생각에 부유함이 없었음을 보게 됩니다. 뭔가 생각이 궁핍하고 궁색하고 눌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젊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생각의 폭을 넓히고 궁색에서 벗어나고 대물림에서 벗어나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부자요 엄청난 자리에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풍족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물질을 낭비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계산 안하고 씁니다. 앞으로 뭐가 다가올지도 모르고 씁니다. 카드로 절제 없이 쓰다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합니다. 낭비의 습관으로 말미암아 문제에 부딪힙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면 일터가 어렵고 힘듭니다. 그래서 자랄 때에 마음대로 쓰다가 일터에 들어가 일하면서 낙망하게 되고 무능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부자의 자식들을 일터에 보내어 놓으면 오래 못 견디고 문제 생기는 게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부자도 아닌 것들이 낭비하고 현실에 부딪히면 낙심하고, 직장의 일 하나 박차고 못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게 영적문제입니다. 확실히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문제 생기면 자기를 포장하는 사기꾼이 됩니다. 성실만 가지고는 망합니다. 복음 붙잡고 성실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 바탕이 안 되면 성실자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실성을, 자녀들에게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계발해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전문성 이전에 성실해야 합니다. 이 성실한 사람들을 보면 지난 과거에 느낀 것이 성실하게 산다고 애를 썼는데 사람이 답답해 질 수 있습니다. 복음이 없으면 성실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창39:2~3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성실 이전에 복음 안에서 성실하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전문성의 역사가 나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리면서도 저항하거나 욕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하고 형제들에게 팔리고, 노예로 팔려서 노예로 생활하면서 아무 소리 없이 성실하게 자기 의무를 감당했습니다. 감옥에 가서도 아무 소리 없이 성실하게 자기 의무를 감당했습니다. 성실해야 어디를 가든지 인턴쉽이 됩니다. 배우게 됩니다. 여기서 전문성이 나오게 됩니다. 성실성이 있어야 전문성이 됩니다. 그래야 성공의 역사로 나가야 됩니다. 복음 붙잡고 성실하게 되면 성공과 직결됩니다.
시78:70~72에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사람이 범사에 성실하게 되면 저절로 실력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뭐가 마음에 느껴지는가 하면 지금 건강을 통해서 내 마음에 성실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아프다는 핑계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집사람과 식탁 앞에서 대화하다보면 부정적인 사고와 무엇이든지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이 답답해지고 그래서 싸우게 되는 겁니다. 나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병적인 요소가 나도 모르게 나와서 화를 내는 겁니다. 그래서 하루정도 화를 내다가 화해하기도 하고 했습니다.
지난주에 네 손을 내밀라 바짝 마르고 쓸모없는 손인데 우리가 내미는 손은 무슨 손인가 묻는데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부정적이고 상대를 향해서 좋게 말하지 못하고 현장에 못나가는 겁니다. 집안만 뱅뱅 돌고 있습니다. 아파트 이웃들을 바라보면서 밥인데 문이 안 열립니다. 이것이 우리가정에 손 마른 자의 문제인데 이것을 내어놓자고 했습니다.
현장에 구체적으로 모든 사건을 대할 때에 긍정적으로 성실하게 나가는 이런 문제가 안 되면 내밀어봅시다, 얼마나 성실해서 손 마른 것을 내미는 축복이 있습니까? 손을 내밀 때에 내밀 수 있는 힘을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성실한 자들이 성실한 만큼 축복과 은혜로 인도하시게 되어있습니다. 이 눈이 열려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에 단행본을 일주일에 두 권 정도 읽었습니다. 주로 버스 안에서 읽었습니다. 어떤 책은 너무 취해서 내가 내릴 정류장을 지나칠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불성실하냐? 일주일에 한권도 못 읽습니다. 한달에 한권도 못 읽습니다. 앉아서 집중이 안 됩니다. 제가 힘들게, 토요일에 설교방향을 생각하면서 집중해서 원고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게 바로 안 됩니다. 저의 문제가 손 마른 것이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집중이 안 되고 어떤 사람을 보던지 부정적으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내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대구율법이다. 맞다. 거기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대물림에서부터 스스로 그런 자리에 빠졌다면 오늘 복음 붙잡고 성실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성공하게 하실 겁니다.
저는 저의 손자를 보니까 눈이 별로 안 좋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안경을 쓰고 온 겁니다. 그 미남의 인상이 달라지는 겁니다. “왜 안경을 썼느냐?”하니까 TV를 보는 것은 아니고 늘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겁니다. 깜깜한 방 안에서 책을 읽는데 한두 시간 문제없이 책을 읽는 겁니다. 그래서 급격하게 눈이 나빠진 것입니다. ‘눈은 나빠져도 습관하나는 좋다. 하나님의 은혜입고 약속 붙잡으면 성공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다른 것보다 성실성이 습관 되게 해야 복음 붙잡고 승리하는 축복이 됩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실력이 나오고 그 실력으로 인해서 자기도 모르게 규모가 나오게 됩니다.
이번에 주일학교 보니까 규모를 이야기하는데 태영아부부터 초등부까지 다 규모를 가지게 될 수 있는 길이 복음이다. 복음을 설명하는 겁니다. 이 복음 설명을 유년부에서는 40분이나 설교하는데도 꼼짝없이 듣는 겁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이 축복이 바로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가지고 성실하게 되면 실력이 따라오고 실력이 따라오면 자기도 모르게 규모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 규모가 바로 세워지는 배경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어떤 집의 어머니가 자랑하는데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기도수첩을 가지고 잠자기 전에 성경을 읽고 잠자고, 아침에 깨우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일어나서 성경보고 밥 먹고, 아무소리 않고 학교에 가방 들고 간다는 겁니다. 제가 듣고 절대로 저런 일이 있을 수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아이가 하는 게 아니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성실이 따라오고 그에 의해서 실력이 따라옵니다. 대구에서 살았던 사람이 서울에 갔는데 자기반에서 1등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복음 통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도록 인도하시고, 이런 규모로 자라게 되면 자녀들이 성공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규모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어른들의 역할을 말씀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교훈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가서는 어른들의 잔소리가 필요합니다. 잔소리교육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잔소리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라야 올바르게 성장합니다. 복음 가지고 믿음으로 잔소리 한 것은 어린아이들의 심령에 규모를 만드는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결손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엄청난 문제가 오는 게 이게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구체적인 교육이 나와야 합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경제현장의 성공 자들과 면담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스쿨이 이런 배경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간에도 성공한 사람을 세워서 질문하고 답하고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 성공한 자들과 이야기 해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너무 내 주변에는 실패하고 무능한 자들만 많았습니다. 앞을 제시할 수 있는 만남이 전혀 없었습니다. 선생들조차도 그러니까 말입니다. 시골에 온 선생들은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왔다고 좋아했는데 술을 처먹는 겁니다. 그리고는 행패를 부리는데 동네 우물가에서 행패를 부리는 겁니다. 그래서 수업 때 보니까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욕을 하는 겁니다. 주변에 성공한 자들을 통해서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
제 나름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각이 좀 있어서 집을 나와서 한 달 동안 무전여행을 했습니다. 무전여행하면서 얻어먹고 살고 했는데 얻어먹기 위해서 들어가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밥 얻어먹으러 가면 어떤 사람은 반기면서 잠자리를 주기도 했습니다. 주말이 되어 교회를 찾아가 풍금을 4부로 치고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겁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다고 하면 밥도 주고 주일학교 아이들 앞에 서서 말씀도 전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체험들이 나도 모르게 발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도스쿨이 필요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듣는다는 것이 중고생 때에 힘듭니다. 법조인과 경제인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만남은 어릴 때에 엄청난 비전을 줍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한 인턴쉽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궁무진한 자료가 책 속에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성공한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준다면 성공하게 되어있습니다. 자료를 보면서 그 속에서 무한한 인격을 만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책을 낸 사람의 인격과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성도들 자체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보다도 더 중요한 성경을 읽어야겠다. 성경 읽는 자세가 조금만 되어도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게 되는 겁니다. 이게 말 아무리 하는 것보다도 보여주기만 해도 충격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이것만 되어도 후손들이 복음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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