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자(1)
2006-08-2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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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리는 선교사입니다.
오늘 본문 제목을 외식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외식한다는 말은 누구도 부정도 못하고 긍정도 못하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목회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외식하는 것 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밖에서 성도들이 찾으면 웃고 나가야 합니다. 그게 전도사 때는 안 되는데 목사 되니 훈련되어서 잘 되는걸 봅니다. 훈련되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문제로 굉장히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앙생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이 단어에 걸릴 정도가 아니라 고통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 원천적으로 이 숙제를 풀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또 다른 나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땅이 다가 아니라 우리는 또 다른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천국의 축복된 나라를 기다리는 겁니다.
지난번에 신학원 메시지에서 황금아스팔트와 황금 집은 없다는 겁니다. 황금 집과 같은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맞습니다. 바울이 하늘나라를 보고 와서 현실적으로 이 땅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도 천국의 사역과 영광을 표현할 말도 사상도 없다,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황금 길을 만들었다는 것은 찬송에 황금보석 꾸민 집이라고 했는데 이 땅에 제일 좋은 보석이 녹보석, 홍보석이지만 그런 것을 비유해서 말씀한 것이지 진짜 황금으로 지었고, 보석으로 지었고, 그런 것은 더 이상 다른 표현이 안 되어서 그런 것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황금보석, 황금 길보다 훨씬 낫다는 겁니다. 이해됩니까? 지금 우리가 조그마한 진주만 있어도 좋아하는데 이 땅에 아무리 좋은 진주나 보석으로 치장해도 하늘나라의 영광의 집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겁니다. 이해됩니까? 할렐루야! 이정도만 이해되어도 행복합니까? 라고 하면 행복해서 미치겠습니다. 라고 표현할 만큼 복음 속에 설 때에 이것이 이해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나라는 성령으로 체험됩니다. 지혜로 체험되는 게 아니라 성령으로 조금만 체험되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어떤 어려움과 힘든 상태 속에 있어도 기뻐해서 미치겠습니다 라는 표현이 나올 자리가 우리 성도들의 자리입니다. 오늘 비 오는 속에도 이런 축복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찾아왔다 행복입니다.
밑에서 비디오로 여러분들을 비추는 것을 보니까 자리가 많이 허전했는데 올라와서 보니까 많이 왔습니다. 행복을 참 깨닫고 느끼면 비가 온다고 못 올 자리가 아닙니다. 조금만 하늘의 영광을 체험해도 기가 막힌 역사입니다.
그 전주의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 땅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대라, 이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되어지는 역사가 와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친구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응당히 해야 하지만 원수사랑은 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이 안 보이면 이 땅에서 고통당하고 힘들고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이 이해되어지면 여러 모양으로 헌신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은 헌신도 하늘나라의 큰 상급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외식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류목사님의 표현으로 복음에서 계속해서 내려오는 단어로 하늘나라의 맛을 복음의 맛을 보지 아니하면 모든 사람은 교회에 앉았으나 외식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의 맛을 모르고, 또 하늘나라의 맛을 안다는 가장 기본적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결론입니다. 바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복음 선교의 역사를 말하면서 토마스 목사님은 대원군 당시에 쇄국정책으로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배로 와서 성경책 한권 넘겨주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고종 황제때에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rant, 1859.7.19 ~ 1916]라는 선교사님이 와서 연희전문학교를 세웠습니다. 같은 때에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 1858.2.6 ~ 1902]라는 선교사님이 와서 세브란스병원을 세웠습니다. 연세대학은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이 합쳐져 세워진 것입니다. 고종 때에 알렌박사님이 와서 고종황제의 주치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알렌박사님과 고종황제사이에 벨을 설치해서 급할 때에 부르게 했습니다. 이게 전화기의 시초입니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문명을 깔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선교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한 나라에 들어가면 어떻게 축복받는가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기독교 의식과 기독교문화를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 없도록 그동안 100년 기독교역사속에 엄청난 발전과 축복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리석은 것이 기독교문화를 없애고 다른 것을 끼워 넣으려고 하니까 고통이 많은 겁니다. 무속문화를 따라가고,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도 정신적인 문제가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 당시에 미국 초등학교에서 성경공부를 학교 정규수업에서 빼고 난 뒤에 미국에 굉장한 문제가 왔습니다.
선교사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문화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불교병원이 잘 안됩니다. 기독교문화배경에서 병원, 학교가 들어섰습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선서를 할 때에 기독교문화로 시작된 그 시대에, 모든 종교 다 없애고 기독교만 국교라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미국같이 대법원장 앞에서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할 수 있었을 건데, 그런 거 못하고 죽었습니다. 정치 못하고 죽었습니다. 정치의 안방에 있던 박마리아가 불의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요즘도 안타까웠던 것이 그때에 기독교를 국교로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고 그 속의 흐름이 기독교형태가 될 것입니다.
어제 핵심에서 비유하기를 처음 언더우드, 아펜젤러나 알렌이 왔을 때에 정말 참 복음을 가지고 왔느냐? 생각도 안했습니다. 옛날에 응당히 그랬겠지, 참 복음을 가지고 온 복음이 오늘 같다면 그건 아닙니다. 그들이 사회봉사와 학교와 병원은 세워서 사회에 문명에 영향을 주었지만 복음의 참 맛을 가진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참 복음을 가지고 서게 되면 우리 후대의 결론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것이 안 되면 엄청난 결과가 오게 됨을 보아야 합니다. 그럼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참 복음으로 섰다, 앉았다, 말씀 듣는다면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영광이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짚고 넘어갈 것은
복음의 참 맛을 몰랐던 이스라엘을 봐야 합니다. 근원적으로, 이 땅에 복음의 근원지이면서도 참 복음의 맛을 몰랐던 이스라엘의 현황입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참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복음의 주인이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빠졌습니다.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율법으로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참 복음의 맛을 모르고 이해 안 되니까 전통으로 빠집니다. 이스라엘 전통이 무섭습니다. 민족사상, 선민사상으로 빠졌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아닌 이방인들은 전부 개, 돼지처럼 짐승같이 여겼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전 세계와 함께 연합해서 참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받아야 할 우리나라가 어디로 빠졌는가하면 “자주 국방”, “남의 도움 받지 말고 우리끼리 잘하자”, 우리민족, 일본도 미국도 연합해야 합니다. 우리 방어를 우리만 한다면서 미국을 배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정도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작통권」 우리만 행사한다고 해서 준비하려면 몇 백조가 듭니다. 일년 예산의 수십 배가 넘는 돈을 들여야 작통권 행사라든지 방위력이 생기지 그렇지 않으면 힘듭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이 없어도 얼마든지 북한을 이길 수 있는 작전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끼리만 한다는 자체가 현대를 떠난 구시대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끼리만 한다, 자주가 안 됩니다. 물론 우리가 한다. 생각은 좋지만,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시대는 연합하는 글로벌 시대입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잘되었다 그런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수조원의 돈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얼마만큼 빚이 있느냐? 많이 어렵습니다.
이런 시점에 개인적으로 복음의 참 맛을 모르게 되면 앞의 이스라엘이 빠진 문제와 같은 문제로 빠지게 됩니다. 복음의 참 맛을 모른 이스라엘은 율법과 전통에 빠져서 위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위선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했습니다.
오늘 예수 믿고 산다고 하면서도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독사의 자식이 됩니다. 엄청난 문제가 오게 됩니다. 위선이 그만큼 무섭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종교화되고 율법 화되고 문제 속에 빠지게 되고 저주 속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복음의 맛을 모르고 교회에 앉아있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했지만 하늘의 영광을 모르고 중직자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성도로서 신앙생활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위선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선자의 비참함이 얼만합니까?
송현교회에 있을 때에 강단에 올라갈 때에 힘이 없으니까 쇠 난간을 잡고 올라갑니다. 주일날은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집사람이 속 긁는 소리를 하면 열 받아서 싸우는 겁니다. 그러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네가 그래서 무슨 설교를 하냐?”면서 사단이 가만히 안둡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할 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맛을 깨닫고 난 뒤에 그런 생각이 들면 ‘복음 안에서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면서 자신감으로 말씀을 전하면 더 능력 있게 설교하게 됩니다.
저희 집사람이 저를 볼 때에 부정적인 인식으로 저를 이야기합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눈으로 보면 이래서 되고 저래서 됩니다. 가정을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가 보면서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그게 복음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집사람에게 이야기하기를 “나에게 용기 주는 말을 해 봤느냐?” 서로가 사기 꺾는 이야기를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복음의 참 맛을 개인적으로 누리고 하늘의 영광을 진짜 맛보지 못하면 우리자신이 전부 허구에 빠지게 됩니다. 진짜 복음의 참 맛을 누리고 깨닫게 될 때에 서로가 볼 때에 희색을 발하며 힘을 얻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무룩해 있는 가족, 그러면서 서로가 부정적으로 말한다, 힘듭니다. 자녀들에게도 이미 복음 안에서 축복하셨기 때문에 뭔가 안 되는 말을 하지 말고 렘넌트이기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승리하는 원천이 됩니다.
그게 안 되면 어느 순간 위선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게 종교입니다. 그런 것으로 흘러갑니다. 당회 속에서도 그런 걸 느낍니다. 의논할 때에, 말씀들을 때는 맞다 안 맞다 하지만 회의하면 율법과 종교로 빠집니다. 이것이 하늘의 영광, 복음의 참 맛을 보게 되면 생각이 바뀝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교회와 가정에 크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약속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몰랐던 중세교회가 어떻게 빠졌습니까? 공로와 행위로 빠지고, 선행과 구제와 사회봉사로 빠집니다. 얼마나 이것을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감리교에서 대회 할 때에 천주교와 루터교와 같이 참여해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천주교가 받아들이면서 루터교에 요구하기를 믿음과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공식교리로 택정해서 받았습니다. 감리교에서도 똑같이 천주교와 루터교와 감리교 대표들이 모여서 공식으로 받았습니다.
무얼 말합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할 때에 믿음으로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것으로만 모든 문제 해결이요 구원이 가능합니다. 여기에 다른 것이 들어올 때에 율법, 전통, 사회봉사, 공로로 빠집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 못 받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천하인간에게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다.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결과로 오늘날 세계교회가 어떤 문제가 옵니까? 교회가 14% 감소했습니다. 교회 운영난이 심각합니다. 미국 에덴장로교회에 가니까 박창복 목사님이 거기 가 있는데 미국교회인데 그걸 11시 예배 후에 세를 내어서 우리가 예배드립니다. 왜 미국교회에서 세를 줍니까? 세를 안주면 교회운영이 안됩니다. 이게 한 예입니다.
너무 큰 교회는 한국교회가 빌려서 못하니까 쉽게 세를 못 내니까 큰 교회가 전기세를 못 내어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교회는 다 무너졌습니다. 기본적인 게 안 되어서 관광지로 빠져서 교회에 돈을 주고 교회가 역사 탐방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유럽에 가보니까 교회 앞에 목사님이 휴가라서 휴양지에 갔기에 다른 교회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교회가 한달에 몇 교회가 무너진다 할 만큼 무너집니다.
점점 참 복음의 맛을 모르는 교인들이 모인 교회는 성장될 수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교회도 번창한 것 같은 곳은 다른 곳입니다. 14% 감소했다고 했는데 한국교회가 이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종교화로 떨어지니까 종교화되어가는 교회, 교리적인 문제를 막기에 역부족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교리를 확실하게 붙잡는 우리교단을 하나님이 이 시대에 세우셨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사회봉사를 많이 합니다. 그렇다고 구원받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봉사하기 전에 복음의 맛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교회에서도 한계가 나오니까 큰 교회마다 싸움이 벌어져서 야단입니다. 그리고 큰 교회가 외부적으로 크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이 확실히 안 되면 교회에 재난이 지속되게 되어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교회내외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가하면 미국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들이 교회 안에서 모여서 마약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옛날에 경원고등학교 쪽에 교회가 있었는데 점심때라든지 수업 끝나고 나면 전부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겁니다. 오늘 날에는 밖으로 나와서 담배 피는 게 아니라 마약을 주고받습니다. 축복된 복음이 없고 이 땅의 기쁨만을 추구하려고 하니까 바다이야기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도박천국입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것은 이 나라 백성들이 복음이 없으니까 한번 맛을 보면 도박에 빠져서 못 나오는 겁니다. 남편이 도박에 빠져있는가 확인하는 방법 십계명이 인터넷이 나와 있는 것을 봤습니다. 밥 먹으면서 밥상을 손으로 연속으로 두드린다, 도박에 빠진 것입니다. 컴퓨터에 앉아서 밥 먹으러 안나온다, 도박에 빠진 건지 의심해야 합니다. 참된 소망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교회가 이 복음의 맛을 보는 축복을 전달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가 건축의 축복을 누린 것은 하나님은 복음의 맛을 보고 이 사실을 이 지역에 증거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축복으로 교회건축을 주신 것입니다. 후손만대에 축복하실 증거입니다.
이 세대가 얼마나 어려운가하면 정신문제로 힘듭니다. 요즘 군대문제가 많습니다. 「무서운 후임 병」들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계속해서 정신문제로 인해서 군대에서 총기사고가 나오니까 일병, 이병은 못 믿으니까 할 수 없이 실탄주고 경계하던 것을 선임 병에게만 주고 유사시 후임 병에게 줄 수 있도록 선임 병에게 배를 주고 후임 병에게는 공포탄만 준다고 국방부에서 계획을 세워서 하고 있습니다. 후임 병들이 군대에서 적응 못할 정도로 정신문제가 심각합니다.
제가 해군에서 3개월간 훈련받으면서 느낀 것은 진짜 정신문제가 나올 만 합니다. 밤새도록 훈련시키는데 두부 자른 것처럼 모포를 말아서 넣어야 하는데 이 훈련시킨다고 12시, 1시까지 훈련시킵니다. 계속해서 비상 걸어서 훈련을 시킵니다. 계속하니 정신 돌 정도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힘든데 사회에서 정신문제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면 총으로 쏘아죽이고 싶어집니다.
교사 중에도 정신문제가 많은 사람이 많습니다. 5분 늦었다고 200대를 때려서 종아리가 터지게 때린다는 것은 돈 사람입니다. 절대로 못 때리게 하자라고 하는데 교육계에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교사들이 너무 힘들어집니다.
참 복음의 맛을 봐야 이 맛으로, 이 복음의 문화로 주변을 덮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음의 맛을 사실적으로 체험되느냐? 숙제 중의 숙제입니다. 이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부르짖고 해도 잠시 보이기는 했지만 갈수록 힘듭니다.
복음의 맛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교회에서 말씀을 전파할 때에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 주간 이루어지고 성취될 말씀이기에, 기도할 때에 무작정 신비적으로 기도하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중요합니다.
사도들로 인해서 계속해서 말씀의 인도를 받았던 것이 초대교회입니다. 계속 말씀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절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 속에 참 맛이 옵니다. 그래서 말씀잡고 기도할 때에 정시기도, 무시기도가 되어집니다만, 말씀부터 붙잡혀져야 합니다. 무근디일수록 귀에 들어오고 끝나고 말씀잡고 기도하는 게 안 됩니다.
말씀잡고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의 역사의 맛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게 되는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내 자신이 하늘의 영광이 없고 축복된 나라가 없는데 어떻게 축복된 나라를 이웃에게 전합니까? 안됩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니 전도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는데 마다 전할 수 없으니까 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는 스케줄만 세워라. 이것만 세워서 조금만 행동해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복음의 맛을 보게 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전도입니다. 전도는 스케줄입니다. 나가서 뭘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에게 이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 전할 것인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자를 주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전할 수 있는 소책자가 나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 책을 전할 수 있을까? 전도의 스케줄이 내 삶의 전체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느냐? 이것만 되면 하나님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만 바꾸면 돌아갑니다. 복음의 맛을 깨닫고 감격하는 문화로 이 사실을 이웃에게 전달하는 축복된 교회로 성도로 승리하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외식이라는 말은 부정도 못하고 긍정도 못하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제 자신도 이 부분을 굉장히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애쓰는 분들은 외식이라는 말에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원천적으로 이 숙제를 풀어야 합니다.
1. 하늘나라의 맛, 복음의 맛을 보지 못하면 교회에 다녀도 외식에 빠지게 됩니다.
1)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기독교 문화로 바탕을 깔았습니다.
2) 그들은 사회봉사를 하며 사회에 영향을 주었지만 복음의 참맛을 가진 교회를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3) 오늘 우리는 참복음을 가지고 섰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후대는 아무 문제 없을 것입니다.
2.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엄청난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1) 참 복음의 맛을 모른 이스라엘은 율법, 전통, 선민사상(민족사상)에 빠졌습니다.
2) 중세시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공로, 행위, 선행, 구제, 사회봉사를 강조하였습니다.
3) 세계의 교회는 감소하고 있으며 교회운영이 곤란할 정도입니다. 한국 교회는 교회의 종교화를 막을 힘이 없습니다.
4) 참 복음의 맛을 보아야 복음의 문화로 주변을 덮을 수 있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세움 받았습니다.
3. 어떻게 복음의 맛이 사실적으로 체험됩니까?
1) 말씀 - 교회에서 말씀이 전파될 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 기도 - 말씀 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전도 - 말씀 잡고 기도하다보면 하나님 나라의 맛을 보게 됩니다. 이 때 당연히 오는 축복을 사실적으로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스케줄입니다. 나가서 뭘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 전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면 생각지도 못한 일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만 바꾸면 됩니다. 복음의 맛을 깨닫고 감격하는 문화로, 이 사실을 이웃에게 전달하는 축복된 교회와 성도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제목을 외식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외식한다는 말은 누구도 부정도 못하고 긍정도 못하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목회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외식하는 것 이었습니다.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밖에서 성도들이 찾으면 웃고 나가야 합니다. 그게 전도사 때는 안 되는데 목사 되니 훈련되어서 잘 되는걸 봅니다. 훈련되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문제로 굉장히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신앙생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이 단어에 걸릴 정도가 아니라 고통을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 원천적으로 이 숙제를 풀어야 합니다.
지난주에 또 다른 나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땅이 다가 아니라 우리는 또 다른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천국의 축복된 나라를 기다리는 겁니다.
지난번에 신학원 메시지에서 황금아스팔트와 황금 집은 없다는 겁니다. 황금 집과 같은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맞습니다. 바울이 하늘나라를 보고 와서 현실적으로 이 땅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도 천국의 사역과 영광을 표현할 말도 사상도 없다,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황금 길을 만들었다는 것은 찬송에 황금보석 꾸민 집이라고 했는데 이 땅에 제일 좋은 보석이 녹보석, 홍보석이지만 그런 것을 비유해서 말씀한 것이지 진짜 황금으로 지었고, 보석으로 지었고, 그런 것은 더 이상 다른 표현이 안 되어서 그런 것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황금보석, 황금 길보다 훨씬 낫다는 겁니다. 이해됩니까? 지금 우리가 조그마한 진주만 있어도 좋아하는데 이 땅에 아무리 좋은 진주나 보석으로 치장해도 하늘나라의 영광의 집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겁니다. 이해됩니까? 할렐루야! 이정도만 이해되어도 행복합니까? 라고 하면 행복해서 미치겠습니다. 라고 표현할 만큼 복음 속에 설 때에 이것이 이해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나라는 성령으로 체험됩니다. 지혜로 체험되는 게 아니라 성령으로 조금만 체험되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어떤 어려움과 힘든 상태 속에 있어도 기뻐해서 미치겠습니다 라는 표현이 나올 자리가 우리 성도들의 자리입니다. 오늘 비 오는 속에도 이런 축복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찾아왔다 행복입니다.
밑에서 비디오로 여러분들을 비추는 것을 보니까 자리가 많이 허전했는데 올라와서 보니까 많이 왔습니다. 행복을 참 깨닫고 느끼면 비가 온다고 못 올 자리가 아닙니다. 조금만 하늘의 영광을 체험해도 기가 막힌 역사입니다.
그 전주의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 땅에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대라, 이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되어지는 역사가 와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친구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응당히 해야 하지만 원수사랑은 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이 안 보이면 이 땅에서 고통당하고 힘들고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영광이 이해되어지면 여러 모양으로 헌신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은 헌신도 하늘나라의 큰 상급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외식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류목사님의 표현으로 복음에서 계속해서 내려오는 단어로 하늘나라의 맛을 복음의 맛을 보지 아니하면 모든 사람은 교회에 앉았으나 외식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의 맛을 모르고, 또 하늘나라의 맛을 안다는 가장 기본적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아무리 노력해도 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결론입니다. 바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복음 선교의 역사를 말하면서 토마스 목사님은 대원군 당시에 쇄국정책으로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배로 와서 성경책 한권 넘겨주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고종 황제때에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rant, 1859.7.19 ~ 1916]라는 선교사님이 와서 연희전문학교를 세웠습니다. 같은 때에 아펜젤러[Appenzeller, Henry Gerhard, 1858.2.6 ~ 1902]라는 선교사님이 와서 세브란스병원을 세웠습니다. 연세대학은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이 합쳐져 세워진 것입니다. 고종 때에 알렌박사님이 와서 고종황제의 주치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알렌박사님과 고종황제사이에 벨을 설치해서 급할 때에 부르게 했습니다. 이게 전화기의 시초입니다.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문명을 깔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선교역사를 보면 기독교가 한 나라에 들어가면 어떻게 축복받는가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기독교 의식과 기독교문화를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 없도록 그동안 100년 기독교역사속에 엄청난 발전과 축복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리석은 것이 기독교문화를 없애고 다른 것을 끼워 넣으려고 하니까 고통이 많은 겁니다. 무속문화를 따라가고, 그러는 동안 우리나라도 정신적인 문제가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 당시에 미국 초등학교에서 성경공부를 학교 정규수업에서 빼고 난 뒤에 미국에 굉장한 문제가 왔습니다.
선교사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문화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불교병원이 잘 안됩니다. 기독교문화배경에서 병원, 학교가 들어섰습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선서를 할 때에 기독교문화로 시작된 그 시대에, 모든 종교 다 없애고 기독교만 국교라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미국같이 대법원장 앞에서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할 수 있었을 건데, 그런 거 못하고 죽었습니다. 정치 못하고 죽었습니다. 정치의 안방에 있던 박마리아가 불의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요즘도 안타까웠던 것이 그때에 기독교를 국교로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고 그 속의 흐름이 기독교형태가 될 것입니다.
어제 핵심에서 비유하기를 처음 언더우드, 아펜젤러나 알렌이 왔을 때에 정말 참 복음을 가지고 왔느냐? 생각도 안했습니다. 옛날에 응당히 그랬겠지, 참 복음을 가지고 온 복음이 오늘 같다면 그건 아닙니다. 그들이 사회봉사와 학교와 병원은 세워서 사회에 문명에 영향을 주었지만 복음의 참 맛을 가진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참 복음을 가지고 서게 되면 우리 후대의 결론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것이 안 되면 엄청난 결과가 오게 됨을 보아야 합니다. 그럼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참 복음으로 섰다, 앉았다, 말씀 듣는다면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영광이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짚고 넘어갈 것은
복음의 참 맛을 몰랐던 이스라엘을 봐야 합니다. 근원적으로, 이 땅에 복음의 근원지이면서도 참 복음의 맛을 몰랐던 이스라엘의 현황입니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참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복음의 주인이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빠졌습니다.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율법으로 빠지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참 복음의 맛을 모르고 이해 안 되니까 전통으로 빠집니다. 이스라엘 전통이 무섭습니다. 민족사상, 선민사상으로 빠졌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아닌 이방인들은 전부 개, 돼지처럼 짐승같이 여겼습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전 세계와 함께 연합해서 참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받아야 할 우리나라가 어디로 빠졌는가하면 “자주 국방”, “남의 도움 받지 말고 우리끼리 잘하자”, 우리민족, 일본도 미국도 연합해야 합니다. 우리 방어를 우리만 한다면서 미국을 배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정도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작통권」 우리만 행사한다고 해서 준비하려면 몇 백조가 듭니다. 일년 예산의 수십 배가 넘는 돈을 들여야 작통권 행사라든지 방위력이 생기지 그렇지 않으면 힘듭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이 없어도 얼마든지 북한을 이길 수 있는 작전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끼리만 한다는 자체가 현대를 떠난 구시대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끼리만 한다, 자주가 안 됩니다. 물론 우리가 한다. 생각은 좋지만,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시대는 연합하는 글로벌 시대입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되었다, 잘되었다 그런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수조원의 돈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얼마만큼 빚이 있느냐? 많이 어렵습니다.
이런 시점에 개인적으로 복음의 참 맛을 모르게 되면 앞의 이스라엘이 빠진 문제와 같은 문제로 빠지게 됩니다. 복음의 참 맛을 모른 이스라엘은 율법과 전통에 빠져서 위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위선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했습니다.
오늘 예수 믿고 산다고 하면서도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독사의 자식이 됩니다. 엄청난 문제가 오게 됩니다. 위선이 그만큼 무섭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종교화되고 율법 화되고 문제 속에 빠지게 되고 저주 속에 빠지게 되어있습니다.
복음의 맛을 모르고 교회에 앉아있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했지만 하늘의 영광을 모르고 중직자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성도로서 신앙생활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위선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선자의 비참함이 얼만합니까?
송현교회에 있을 때에 강단에 올라갈 때에 힘이 없으니까 쇠 난간을 잡고 올라갑니다. 주일날은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집사람이 속 긁는 소리를 하면 열 받아서 싸우는 겁니다. 그러면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네가 그래서 무슨 설교를 하냐?”면서 사단이 가만히 안둡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할 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맛을 깨닫고 난 뒤에 그런 생각이 들면 ‘복음 안에서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면서 자신감으로 말씀을 전하면 더 능력 있게 설교하게 됩니다.
저희 집사람이 저를 볼 때에 부정적인 인식으로 저를 이야기합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눈으로 보면 이래서 되고 저래서 됩니다. 가정을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가 보면서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그게 복음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집사람에게 이야기하기를 “나에게 용기 주는 말을 해 봤느냐?” 서로가 사기 꺾는 이야기를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복음의 참 맛을 개인적으로 누리고 하늘의 영광을 진짜 맛보지 못하면 우리자신이 전부 허구에 빠지게 됩니다. 진짜 복음의 참 맛을 누리고 깨닫게 될 때에 서로가 볼 때에 희색을 발하며 힘을 얻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무룩해 있는 가족, 그러면서 서로가 부정적으로 말한다, 힘듭니다. 자녀들에게도 이미 복음 안에서 축복하셨기 때문에 뭔가 안 되는 말을 하지 말고 렘넌트이기에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승리하는 원천이 됩니다.
그게 안 되면 어느 순간 위선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이게 종교입니다. 그런 것으로 흘러갑니다. 당회 속에서도 그런 걸 느낍니다. 의논할 때에, 말씀들을 때는 맞다 안 맞다 하지만 회의하면 율법과 종교로 빠집니다. 이것이 하늘의 영광, 복음의 참 맛을 보게 되면 생각이 바뀝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교회와 가정에 크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약속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몰랐던 중세교회가 어떻게 빠졌습니까? 공로와 행위로 빠지고, 선행과 구제와 사회봉사로 빠집니다. 얼마나 이것을 강조하는지 모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감리교에서 대회 할 때에 천주교와 루터교와 같이 참여해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을 천주교가 받아들이면서 루터교에 요구하기를 믿음과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공식교리로 택정해서 받았습니다. 감리교에서도 똑같이 천주교와 루터교와 감리교 대표들이 모여서 공식으로 받았습니다.
무얼 말합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할 때에 믿음으로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 가능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것으로만 모든 문제 해결이요 구원이 가능합니다. 여기에 다른 것이 들어올 때에 율법, 전통, 사회봉사, 공로로 빠집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 못 받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베드로의 고백처럼 천하인간에게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한다.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결과로 오늘날 세계교회가 어떤 문제가 옵니까? 교회가 14% 감소했습니다. 교회 운영난이 심각합니다. 미국 에덴장로교회에 가니까 박창복 목사님이 거기 가 있는데 미국교회인데 그걸 11시 예배 후에 세를 내어서 우리가 예배드립니다. 왜 미국교회에서 세를 줍니까? 세를 안주면 교회운영이 안됩니다. 이게 한 예입니다.
너무 큰 교회는 한국교회가 빌려서 못하니까 쉽게 세를 못 내니까 큰 교회가 전기세를 못 내어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교회는 다 무너졌습니다. 기본적인 게 안 되어서 관광지로 빠져서 교회에 돈을 주고 교회가 역사 탐방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유럽에 가보니까 교회 앞에 목사님이 휴가라서 휴양지에 갔기에 다른 교회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교회가 한달에 몇 교회가 무너진다 할 만큼 무너집니다.
점점 참 복음의 맛을 모르는 교인들이 모인 교회는 성장될 수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교회도 번창한 것 같은 곳은 다른 곳입니다. 14% 감소했다고 했는데 한국교회가 이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종교화로 떨어지니까 종교화되어가는 교회, 교리적인 문제를 막기에 역부족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교리를 확실하게 붙잡는 우리교단을 하나님이 이 시대에 세우셨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사회봉사를 많이 합니다. 그렇다고 구원받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봉사하기 전에 복음의 맛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교회에서도 한계가 나오니까 큰 교회마다 싸움이 벌어져서 야단입니다. 그리고 큰 교회가 외부적으로 크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이 확실히 안 되면 교회에 재난이 지속되게 되어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교회내외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가하면 미국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들이 교회 안에서 모여서 마약을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옛날에 경원고등학교 쪽에 교회가 있었는데 점심때라든지 수업 끝나고 나면 전부 밖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겁니다. 오늘 날에는 밖으로 나와서 담배 피는 게 아니라 마약을 주고받습니다. 축복된 복음이 없고 이 땅의 기쁨만을 추구하려고 하니까 바다이야기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도박천국입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것은 이 나라 백성들이 복음이 없으니까 한번 맛을 보면 도박에 빠져서 못 나오는 겁니다. 남편이 도박에 빠져있는가 확인하는 방법 십계명이 인터넷이 나와 있는 것을 봤습니다. 밥 먹으면서 밥상을 손으로 연속으로 두드린다, 도박에 빠진 것입니다. 컴퓨터에 앉아서 밥 먹으러 안나온다, 도박에 빠진 건지 의심해야 합니다. 참된 소망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교회가 이 복음의 맛을 보는 축복을 전달해야 합니다.
지난주에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가 건축의 축복을 누린 것은 하나님은 복음의 맛을 보고 이 사실을 이 지역에 증거 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축복으로 교회건축을 주신 것입니다. 후손만대에 축복하실 증거입니다.
이 세대가 얼마나 어려운가하면 정신문제로 힘듭니다. 요즘 군대문제가 많습니다. 「무서운 후임 병」들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계속해서 정신문제로 인해서 군대에서 총기사고가 나오니까 일병, 이병은 못 믿으니까 할 수 없이 실탄주고 경계하던 것을 선임 병에게만 주고 유사시 후임 병에게 줄 수 있도록 선임 병에게 배를 주고 후임 병에게는 공포탄만 준다고 국방부에서 계획을 세워서 하고 있습니다. 후임 병들이 군대에서 적응 못할 정도로 정신문제가 심각합니다.
제가 해군에서 3개월간 훈련받으면서 느낀 것은 진짜 정신문제가 나올 만 합니다. 밤새도록 훈련시키는데 두부 자른 것처럼 모포를 말아서 넣어야 하는데 이 훈련시킨다고 12시, 1시까지 훈련시킵니다. 계속해서 비상 걸어서 훈련을 시킵니다. 계속하니 정신 돌 정도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도 힘든데 사회에서 정신문제 가진 사람들이 들어가면 총으로 쏘아죽이고 싶어집니다.
교사 중에도 정신문제가 많은 사람이 많습니다. 5분 늦었다고 200대를 때려서 종아리가 터지게 때린다는 것은 돈 사람입니다. 절대로 못 때리게 하자라고 하는데 교육계에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교사들이 너무 힘들어집니다.
참 복음의 맛을 봐야 이 맛으로, 이 복음의 문화로 주변을 덮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음의 맛을 사실적으로 체험되느냐? 숙제 중의 숙제입니다. 이것을 체험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부르짖고 해도 잠시 보이기는 했지만 갈수록 힘듭니다.
복음의 맛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교회에서 말씀을 전파할 때에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 주간 이루어지고 성취될 말씀이기에, 기도할 때에 무작정 신비적으로 기도하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중요합니다.
사도들로 인해서 계속해서 말씀의 인도를 받았던 것이 초대교회입니다. 계속 말씀잡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절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 속에 참 맛이 옵니다. 그래서 말씀잡고 기도할 때에 정시기도, 무시기도가 되어집니다만, 말씀부터 붙잡혀져야 합니다. 무근디일수록 귀에 들어오고 끝나고 말씀잡고 기도하는 게 안 됩니다.
말씀잡고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의 역사의 맛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게 되는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내 자신이 하늘의 영광이 없고 축복된 나라가 없는데 어떻게 축복된 나라를 이웃에게 전합니까? 안됩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니 전도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는데 마다 전할 수 없으니까 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는 스케줄만 세워라. 이것만 세워서 조금만 행동해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복음의 맛을 보게 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전도입니다. 전도는 스케줄입니다. 나가서 뭘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에게 이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 전할 것인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자를 주기도 하라고 했습니다. 전할 수 있는 소책자가 나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 책을 전할 수 있을까? 전도의 스케줄이 내 삶의 전체를 가지고 나갈 수 있느냐? 이것만 되면 하나님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만 바꾸면 돌아갑니다. 복음의 맛을 깨닫고 감격하는 문화로 이 사실을 이웃에게 전달하는 축복된 교회로 성도로 승리하시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외식이라는 말은 부정도 못하고 긍정도 못하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제 자신도 이 부분을 굉장히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애쓰는 분들은 외식이라는 말에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원천적으로 이 숙제를 풀어야 합니다.
1. 하늘나라의 맛, 복음의 맛을 보지 못하면 교회에 다녀도 외식에 빠지게 됩니다.
1)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기독교 문화로 바탕을 깔았습니다.
2) 그들은 사회봉사를 하며 사회에 영향을 주었지만 복음의 참맛을 가진 교회를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3) 오늘 우리는 참복음을 가지고 섰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후대는 아무 문제 없을 것입니다.
2.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엄청난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1) 참 복음의 맛을 모른 이스라엘은 율법, 전통, 선민사상(민족사상)에 빠졌습니다.
2) 중세시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공로, 행위, 선행, 구제, 사회봉사를 강조하였습니다.
3) 세계의 교회는 감소하고 있으며 교회운영이 곤란할 정도입니다. 한국 교회는 교회의 종교화를 막을 힘이 없습니다.
4) 참 복음의 맛을 보아야 복음의 문화로 주변을 덮을 수 있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세움 받았습니다.
3. 어떻게 복음의 맛이 사실적으로 체험됩니까?
1) 말씀 - 교회에서 말씀이 전파될 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 기도 - 말씀 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전도 - 말씀 잡고 기도하다보면 하나님 나라의 맛을 보게 됩니다. 이 때 당연히 오는 축복을 사실적으로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스케줄입니다. 나가서 뭘 말하라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 전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면 생각지도 못한 일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생각만 바꾸면 됩니다. 복음의 맛을 깨닫고 감격하는 문화로, 이 사실을 이웃에게 전달하는 축복된 교회와 성도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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