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자(2)
2006-09-03 00:00:00
관리자
조회수 19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를 살리는 선교사입니다.
지난주에도 외식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이 제목이 우리마음에 새겨져야 할 이유는 근본적인 해결이 없으면 사람은 외식하게 되어있습니다. 특별히 지위가 높고, 자리가 안정되어질수록 이 문제는 심각하게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서 주님이 외식하는 자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들은 보통으로 생각한 행동이 예수님 앞에는 큰 죄로 보였고 사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시장에서도 손을 들고 소리쳐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기도는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지 사람 앞에 하는 것이 아니니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공예배때 대표기도 할 때에 거의다가 무의식중에 외식에 빠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청중과 교인들을 의식하면서 일장의 설교와 언변을 과시할 수 있습니다. 외식하는 게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을 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외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열심 속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기복신앙, 신비주의, 욕심에 빠집니다. 율법에 빠지고 기복에 빠진 자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엄청난 정죄를 하십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복음의 맛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의 맛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복음의 참 맛을 모르면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고, 자기의 일에 대해서 교만하게 되기도 하고, 헌신하면서 힘들게 되어집니다. 축복보다도 저주로 빠지는 엄청난 문제가 따라옵니다.
오늘 「외식하는 자」라는 것을 또 한번 더 설교하게 된 것은 우리교인들도 고칠 부분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똑같이 외식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 축복과 은혜가 내안에 있다면 본다, 안 본다. 상관없이 기쁨으로 하게 되고 모든 영광과 은혜가 우리 안에 쌓여지게 되고 미래도 축복되게 됩니다. 외식하지 않으려면, 먼저 성실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만약 성실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포장하게 되고, 급할 때에 체면 차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되면 늘 진실하게 됩니다.
오늘 렘넌트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뭔가?’ 할 때에 성실하게 살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중직자 수련회 때에 류목사님이 생각을 개혁해야 한다, 혁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뭔가 하면 우리생각이 너무 틀렸습니다. 혁명은 생명 걸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인데 생을 걸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 바꾸라고 강단에서 계속 말씀했는데 우리의 생각이 잘 안 바뀌는 겁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내려오는데 동료목사님이 “아무개 목사 많이 바뀌어졌어!”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하지만 제가 바뀌어졌다고는 이야기를 안 하는 겁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생각을 개혁해야 하는데 바꾸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돈과 명예에 목숨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돈과 명예를 바라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내가 지금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배설물입니다. 말하기 쉬울지는 몰라도 잘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명예와 자랑, 입만 열면 복음, 예수보다 다른 게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모든 여건과 조건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배설물은 뭘 말합니까? 옛날 성경에는 똥으로 표현했습니다. 대변보고 들다보는 사람 없고 얼른 물을 내립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명예, 부요 다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런 축복을 일반적으로 주실 것을 약속했고 주시고 누릴 수 있지만, 이것에 매여 있을 때에 노예가 되고, 이것이 오히려 축복받을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난과 재앙으로 빠뜨리는 문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하면, 바울은 복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복음과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복음이 너무 귀중하고 좋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복음은 실제로 내 생활과 삶의 실제적인 문제의 해결입니다. 이것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모든 지식과 지혜로 풍성하고 우리 삶과 생활과 부요케 합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골2:2~3 처럼 이것이 시간 갈수록 붙잡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자랑하든 것 부요, 심지어 내가 가지고 있는 돈도 복음위해서 쓰여지기 원하는 이것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들을 때는 마음으로 그렇다싶다가도 실제적으로 결단해야 할 때는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복음은 모든 문제해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안됩니다. 복음 그러지만 다른 것을 구하기도 합니다. 복음은 모든 문제해결이라고 하지만 다른 것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혁명을 일으킨다고 할 때에 생명 건 도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모든 문제 해결이라고 붙잡았는데 배설물로 여겼던 모든 축복을 하나님의 손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눈이 열려야 합니다. 자기 위해서 쓰는 것에는 사정이 사용합니다. 그동안 숨겨놓았던 돈까지 내어서 자기 욕심 위해서 쓰는 것은 잘 하지만 복음위해서 쓰는 것은 잘 안됩니다. 정말 복음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날 위해서 숨겨놓은 돈까지도 내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에 혁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바울이 말한 것처럼 배설물위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주의할 것은 우리 속에 혁명을 일으키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적인 혁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문제와 사건을 볼 때마다 영적인 것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렘넌트는 기다려야 합니다. 렘넌트가 당장 장관이 되는 게 아닙니다. 크려면 20~30년 후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어른도 렘넌트를 보면서 기다려야 하고, 렘넌트도 자신을 보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복음 위에 있다면 하나님이 성공시키십니다. 렘넌트는 지금 안 되는 것에 매이지 말고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미래에 나를 축복하도록 약속했다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언약의 주인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렘넌트는 앞으로 미래가 밝습니다. 언약 잡은 성경의 렘넌트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처럼 준비하는 기간에는 서툴 수 있고, 어색할 수 있고, 만족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되게 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으로 뿌리내려야 합니다.
보통 성도들은 자녀들이 예쁘게, 착하게만 사는 것이 언약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곁길로 갈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발판이 되도록 준비를 하시는 겁니다. 돌아보면 발판이 됩니다. 어거스틴은 개혁신앙의 종주입니다. 그가 너무 타락할 때에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어머니 모니카를 향하여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눈물의 기도 위에 세워진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환경 속에 있었든지 그것은 인턴쉽이고,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렘넌트 안에도 계십니다. 그들이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 있어도 성령은 함께 하십니다. 필요에 따라 돌이키시고 뉘우치게도 하셔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보고 판단하지 말고 렘넌트를 위해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혁명이 일어나야 할 것이 영적인 사실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도가 체험되어야 합니다. 기도 응답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어렵습니다. 알지 못하면 너무 어렵습니다. 내 자신이 바로 기도응답입니다.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 자신이 기도응답입니다. 이 자리에, 이 시간에 앉아 있을 사람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자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지난 과거가 그렇습니다. 예수 안 믿는 게 주특기이지 예수 믿는 게 특기가 아닌 겁니다. 그런데 어느새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에 앉혀놓았습니다. 옆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참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행복자입니다. 할렐루야!
진짜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 자리에 왔다,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는 모든 기도의 응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벌써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면 응답자들이 나가면 가는 곳에 모든 기도응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찾으면 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면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응답하신 것을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셨는데도 모르고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모든 것에 응답이 왔습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곳과 장소에 하나님은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기도응답의 체험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단말씀이 보여지면 가는 곳마다 말씀이 성취됨을 보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감사함으로 말씀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이 축복과 역사가 이루어지면 증거의 삶이 나옵니다. 이것을 가지고 전도의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전도하기위해서 뛰어다니기 보다도 내가 있는 삶과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리스도를 비출 것인가? 류목사님이 비행기 탈 때도 사람만나면 전도하는 스케줄을 삼고 그에게 소책자를 준다거나, 교회의 기도수첩을 준다거나하면 모든 삶에서 전도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해도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응답하시는 겁니다. 이 사실이 이루어지게 되면 내가 이루어진다고 할 때에 나를 바라보는 나의 자녀는, 렘넌트는 저절로 이 축복 속에 세워집니다.
자녀들에게 생각 바꾸라 하면, 내가 안 되면서 바꾸라면 부모나 바꾸라고 합니다. 우리를 보고 생각 바꾸게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하고 이 훈련을 렘넌트에게 시켜야 합니다. 렘넌트에게 저절로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성실하게 살게 해야 합니다. 성실이 빠지면 외식이 나옵니다. 어떤 환경에 놓이든 렘넌트는 재난과 재앙에 빠지는 게 아니라 이곳이 바로 인턴하는 장소구나, 요셉처럼 감옥에 들어가도 여기가 인턴하는 곳이구나, 어디든지 낙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일하면 이것을 자녀들이 보고 배우게 됩니다. 자녀들의 선생은 부모입니다. 부모가 바로 안 되면 아무리 바로해라고 해도 제대로 안됩니다.
성실함은 시간관리입니다. 렘넌트의 경우에는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어야합니다. 다윗도 새벽을 깨웠습니다. 새벽이라고 말할 때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서 할 공부를 미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 가서는 공부의 방향만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저의 딸이 신랑이야기를 하면서, 뭐라고 하는가하면 공부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는 겁니다.
우리는 공부하려면 시간 내어 머리 싸매면서 공부하는데 이 사람은 짬짬이 잠깐 들여다보는데 그때 집중해서 하고 한번 보면 안 잊어버리는 겁니다. 집중해서 여유와 여가를 사용해서 공부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말 중요한 때 시험 칠 때에도 공부하는 것을 못보고 노는데 짬짬이 여유 내어서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 내어 뭔가에 집중해서 노력하는 것 빼놓고 빈 시간, 여유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그때에 집중해서 볼 수 있으면 머리에 잘 들어가는 겁니다.
저는 학교 다니면서 소책자를 좋아했습니다. 거기에 그 책을 쓴 사람의 인생이 들었기에 상당히 좋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해야 하니까 학교에서 집에 오는 도중에 소책자를 한권씩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내릴 정류장을 놓친 적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메시지를 들고 강단에 서는 기본인격이 그때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때에는 책을 읽기 위해서 빈 시간을 잘 활용했습니다. 너무 우리자신들이 시간을 다 잃어버립니다. 요즘 저희집사람이 말하는 것이 집에 돌아오면 책한 권 읽어볼 여유가 없고 무엇에 쫓기다가 시간이 다 지나간다고 하는데 이게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이 습관이 되면 렘넌트는 부모보고 그대로 합니다.
박세광 목사나 사모가 짬짬이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희락이가 배운 게 책상에서 늘 책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안경을 쓰고 왔는데 책을 가까이에서 보다보니까 눈이 나빠졌다는 겁니다. 책을 들었다하면 2시간도 앉아있고 3시간도 앉아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눈이 0.3까지 가서 안경을 썼다는 겁니다. 부모들이 정말 독서의 습관이 있으면 자녀들은 저절로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렘넌트로 계획하셨다면 그 습관 속에 엄청난 축복으로 인도하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옛날의 습관이, 그런 적은 습관 속에서도 오늘 하나교회의 담임목사로 세우셨습니다. 다시 당부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혁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영적인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맛, 복음의 역사, 그래서 기도응답의 사실적인 응답이 내게 있다는 것을 보는 동시에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축복받은 나이고, 내가 가는 곳마다 응답이 와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흑암세력이 꺾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해되면 자녀 보는 눈, 이웃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사람이구나!’ 이 사실이 정말 여러분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삶이 성실하게 되는 삶으로 하나님이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모세가 왕궁에 있다가 비참한 미디안광야에서 양치는 목동 이였지만 성실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야곱은 무슨 문제든지 당하면 성실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자기욕심이 많아서 그렇지만 뭐든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열두지파의 조상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실하게 되는 게 귀중한 축복입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이것을 바로 못 배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녀들에게 심부름 시키고 거기에 대해서 성실하게 했다면 칭찬하고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호되게 꾸중을 해야 합니다. 일을 맡기면 조금도 빈틈이 없이 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생각과 말이 달라집니다. 생각과 말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입으로 나가게 됩니다. 눅6:45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여러분의 입에서 뭐엇이 나옵니까?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녀들에게 치명적인 실패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성경에 있는 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로 인도받으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눈을 열어주면 다들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머님이 교역자들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섬기는지, 그래서 생전에 나에게는 안주던 쌀밥도 주의 종이 왔다면 쌀밥해서 고기 굽고 생선 구워서 내어놓았습니다. 교역자에게 얼마나 충성을 하는지 모릅니다. 우연한 복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부모들이 교회와 교역자에 대해서 신실한 충성을 보는 감각 속에서 자랐습니다.
오늘부터 작정해야 합니다. 내 가정을 향해서, 자녀를 향해서, 강단과 교회를 위해서 주의 종을 위해서 축복의 말을 하리라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보지만 미래적인 것을 보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에 미래가 있기에 그것을 보면서 말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시작했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에 엄청난 미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고 인도받아야 합니다.
경제관리에 좋은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관리를 들이도록 어릴 때부터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있으면 낭비하고 없으면 궁색해집니다. 어린아이들이 용돈을 주면 그것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습관이 안 되면 엄청난 피해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무슨 돈이든지 주면 절약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절약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뭐든지 쓸 때는 분수를 알고 써야 합니다. 내 분수답게 쓸 수 있는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이게 어릴 때부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복음 안에서 규모라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여름성경학교에서 규모를 가르쳤습니다. 복음의 규모, 삶의 규모를 가르쳤는데 렘넌트들에게 경제의 규모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말 필요한 렘넌트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이일에 쓰임 받는 렘넌트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없이는 사람은 외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 특히 지위가 높고 자리가 안정될수록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외식하는 자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들이 보통으로 생각한 행동이 예수님 앞에는 큰 죄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외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1. 외식하지 않으려면 성실해야 합니다. 성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1)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합니다.
① 아무리 좋은 것도 복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② 복음은 모든 문제의 해결입니다.
③ 배설물로 여겼던 모든 축복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여질 수 있도록 눈이 열려야 합니다
2) 모든 문제와 사건을 볼 때마다 영적인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① 기도응답의 체험
② 강단말씀 성취
③ 전도의 삶
2. 렘넌트에게 성실한 습관이 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1) 시간관리(새벽시간, 빈 시간 활용)하는 습관
2) 성실한 삶을 살 때 - 하나님이 모세와 야곱처럼 축복하십니다.
3) 생각과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 부모가 먼저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4) 경제 규모 - 어릴 때부터 경제 관리하는 좋은 습관이 들도록 도와야 합니다.
지난주에도 외식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특별히 이 제목이 우리마음에 새겨져야 할 이유는 근본적인 해결이 없으면 사람은 외식하게 되어있습니다. 특별히 지위가 높고, 자리가 안정되어질수록 이 문제는 심각하게 나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서 주님이 외식하는 자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들은 보통으로 생각한 행동이 예수님 앞에는 큰 죄로 보였고 사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시장에서도 손을 들고 소리쳐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기도는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지 사람 앞에 하는 것이 아니니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공예배때 대표기도 할 때에 거의다가 무의식중에 외식에 빠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청중과 교인들을 의식하면서 일장의 설교와 언변을 과시할 수 있습니다. 외식하는 게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을 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외식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열심 속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기복신앙, 신비주의, 욕심에 빠집니다. 율법에 빠지고 기복에 빠진 자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엄청난 정죄를 하십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복음의 맛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의 맛을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고백되어져야 합니다. 복음의 참 맛을 모르면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고, 자기의 일에 대해서 교만하게 되기도 하고, 헌신하면서 힘들게 되어집니다. 축복보다도 저주로 빠지는 엄청난 문제가 따라옵니다.
오늘 「외식하는 자」라는 것을 또 한번 더 설교하게 된 것은 우리교인들도 고칠 부분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똑같이 외식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 축복과 은혜가 내안에 있다면 본다, 안 본다. 상관없이 기쁨으로 하게 되고 모든 영광과 은혜가 우리 안에 쌓여지게 되고 미래도 축복되게 됩니다. 외식하지 않으려면, 먼저 성실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만약 성실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포장하게 되고, 급할 때에 체면 차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되면 늘 진실하게 됩니다.
오늘 렘넌트를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이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뭔가?’ 할 때에 성실하게 살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중직자 수련회 때에 류목사님이 생각을 개혁해야 한다, 혁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뭔가 하면 우리생각이 너무 틀렸습니다. 혁명은 생명 걸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인데 생을 걸고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 바꾸라고 강단에서 계속 말씀했는데 우리의 생각이 잘 안 바뀌는 겁니다.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내려오는데 동료목사님이 “아무개 목사 많이 바뀌어졌어!” 이사람 저사람 이야기하지만 제가 바뀌어졌다고는 이야기를 안 하는 겁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생각을 개혁해야 하는데 바꾸는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돈과 명예에 목숨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도 돈과 명예를 바라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내가 지금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배설물입니다. 말하기 쉬울지는 몰라도 잘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명예와 자랑, 입만 열면 복음, 예수보다 다른 게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모든 여건과 조건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배설물은 뭘 말합니까? 옛날 성경에는 똥으로 표현했습니다. 대변보고 들다보는 사람 없고 얼른 물을 내립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명예, 부요 다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런 축복을 일반적으로 주실 것을 약속했고 주시고 누릴 수 있지만, 이것에 매여 있을 때에 노예가 되고, 이것이 오히려 축복받을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난과 재앙으로 빠뜨리는 문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 하면, 바울은 복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복음과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복음이 너무 귀중하고 좋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복음은 실제로 내 생활과 삶의 실제적인 문제의 해결입니다. 이것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모든 지식과 지혜로 풍성하고 우리 삶과 생활과 부요케 합니다. 그래서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 골2:2~3 처럼 이것이 시간 갈수록 붙잡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내가 지금까지 자랑하든 것 부요, 심지어 내가 가지고 있는 돈도 복음위해서 쓰여지기 원하는 이것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들을 때는 마음으로 그렇다싶다가도 실제적으로 결단해야 할 때는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복음은 모든 문제해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안됩니다. 복음 그러지만 다른 것을 구하기도 합니다. 복음은 모든 문제해결이라고 하지만 다른 것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혁명을 일으킨다고 할 때에 생명 건 도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모든 문제 해결이라고 붙잡았는데 배설물로 여겼던 모든 축복을 하나님의 손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눈이 열려야 합니다. 자기 위해서 쓰는 것에는 사정이 사용합니다. 그동안 숨겨놓았던 돈까지 내어서 자기 욕심 위해서 쓰는 것은 잘 하지만 복음위해서 쓰는 것은 잘 안됩니다. 정말 복음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날 위해서 숨겨놓은 돈까지도 내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에 혁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바울이 말한 것처럼 배설물위에 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주의할 것은 우리 속에 혁명을 일으키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적인 혁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모든 문제와 사건을 볼 때마다 영적인 것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렘넌트는 기다려야 합니다. 렘넌트가 당장 장관이 되는 게 아닙니다. 크려면 20~30년 후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어른도 렘넌트를 보면서 기다려야 하고, 렘넌트도 자신을 보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복음 위에 있다면 하나님이 성공시키십니다. 렘넌트는 지금 안 되는 것에 매이지 말고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미래에 나를 축복하도록 약속했다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언약의 주인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렘넌트는 앞으로 미래가 밝습니다. 언약 잡은 성경의 렘넌트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처럼 준비하는 기간에는 서툴 수 있고, 어색할 수 있고, 만족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되게 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으로 뿌리내려야 합니다.
보통 성도들은 자녀들이 예쁘게, 착하게만 사는 것이 언약 잡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곁길로 갈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발판이 되도록 준비를 하시는 겁니다. 돌아보면 발판이 됩니다. 어거스틴은 개혁신앙의 종주입니다. 그가 너무 타락할 때에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어머니 모니카를 향하여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눈물의 기도 위에 세워진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환경 속에 있었든지 그것은 인턴쉽이고, 하나님이 지켜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렘넌트 안에도 계십니다. 그들이 어떤 환경과 여건 속에 있어도 성령은 함께 하십니다. 필요에 따라 돌이키시고 뉘우치게도 하셔서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보고 판단하지 말고 렘넌트를 위해서 기도하면 성령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혁명이 일어나야 할 것이 영적인 사실에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도가 체험되어야 합니다. 기도 응답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어렵습니다. 알지 못하면 너무 어렵습니다. 내 자신이 바로 기도응답입니다.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 자신이 기도응답입니다. 이 자리에, 이 시간에 앉아 있을 사람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자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지난 과거가 그렇습니다. 예수 안 믿는 게 주특기이지 예수 믿는 게 특기가 아닌 겁니다. 그런데 어느새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에 앉혀놓았습니다. 옆 사람을 보시기 바랍니다. 참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행복자입니다. 할렐루야!
진짜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이 자리에 왔다,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는 모든 기도의 응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벌써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면 응답자들이 나가면 가는 곳에 모든 기도응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찾으면 됩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면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응답하신 것을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셨는데도 모르고 내어놓으라고 합니다. 모든 것에 응답이 왔습니다. 우리가 가는 모든 곳과 장소에 하나님은 이미 응답하셨습니다.
기도응답의 체험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단말씀이 보여지면 가는 곳마다 말씀이 성취됨을 보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감사함으로 말씀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이 축복과 역사가 이루어지면 증거의 삶이 나옵니다. 이것을 가지고 전도의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전도하기위해서 뛰어다니기 보다도 내가 있는 삶과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리스도를 비출 것인가? 류목사님이 비행기 탈 때도 사람만나면 전도하는 스케줄을 삼고 그에게 소책자를 준다거나, 교회의 기도수첩을 준다거나하면 모든 삶에서 전도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해도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응답하시는 겁니다. 이 사실이 이루어지게 되면 내가 이루어진다고 할 때에 나를 바라보는 나의 자녀는, 렘넌트는 저절로 이 축복 속에 세워집니다.
자녀들에게 생각 바꾸라 하면, 내가 안 되면서 바꾸라면 부모나 바꾸라고 합니다. 우리를 보고 생각 바꾸게 우리가 먼저 바뀌어야 하고 이 훈련을 렘넌트에게 시켜야 합니다. 렘넌트에게 저절로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성실하게 살게 해야 합니다. 성실이 빠지면 외식이 나옵니다. 어떤 환경에 놓이든 렘넌트는 재난과 재앙에 빠지는 게 아니라 이곳이 바로 인턴하는 장소구나, 요셉처럼 감옥에 들어가도 여기가 인턴하는 곳이구나, 어디든지 낙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일하면 이것을 자녀들이 보고 배우게 됩니다. 자녀들의 선생은 부모입니다. 부모가 바로 안 되면 아무리 바로해라고 해도 제대로 안됩니다.
성실함은 시간관리입니다. 렘넌트의 경우에는 일단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어야합니다. 다윗도 새벽을 깨웠습니다. 새벽이라고 말할 때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서 할 공부를 미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 가서는 공부의 방향만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저의 딸이 신랑이야기를 하면서, 뭐라고 하는가하면 공부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른 것 같다는 겁니다.
우리는 공부하려면 시간 내어 머리 싸매면서 공부하는데 이 사람은 짬짬이 잠깐 들여다보는데 그때 집중해서 하고 한번 보면 안 잊어버리는 겁니다. 집중해서 여유와 여가를 사용해서 공부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정말 중요한 때 시험 칠 때에도 공부하는 것을 못보고 노는데 짬짬이 여유 내어서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 내어 뭔가에 집중해서 노력하는 것 빼놓고 빈 시간, 여유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그때에 집중해서 볼 수 있으면 머리에 잘 들어가는 겁니다.
저는 학교 다니면서 소책자를 좋아했습니다. 거기에 그 책을 쓴 사람의 인생이 들었기에 상당히 좋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해야 하니까 학교에서 집에 오는 도중에 소책자를 한권씩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내릴 정류장을 놓친 적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지금 메시지를 들고 강단에 서는 기본인격이 그때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때에는 책을 읽기 위해서 빈 시간을 잘 활용했습니다. 너무 우리자신들이 시간을 다 잃어버립니다. 요즘 저희집사람이 말하는 것이 집에 돌아오면 책한 권 읽어볼 여유가 없고 무엇에 쫓기다가 시간이 다 지나간다고 하는데 이게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이 습관이 되면 렘넌트는 부모보고 그대로 합니다.
박세광 목사나 사모가 짬짬이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희락이가 배운 게 책상에서 늘 책보는 것입니다. 어느 날 안경을 쓰고 왔는데 책을 가까이에서 보다보니까 눈이 나빠졌다는 겁니다. 책을 들었다하면 2시간도 앉아있고 3시간도 앉아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눈이 0.3까지 가서 안경을 썼다는 겁니다. 부모들이 정말 독서의 습관이 있으면 자녀들은 저절로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렘넌트로 계획하셨다면 그 습관 속에 엄청난 축복으로 인도하실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옛날의 습관이, 그런 적은 습관 속에서도 오늘 하나교회의 담임목사로 세우셨습니다. 다시 당부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혁명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영적인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맛, 복음의 역사, 그래서 기도응답의 사실적인 응답이 내게 있다는 것을 보는 동시에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축복받은 나이고, 내가 가는 곳마다 응답이 와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흑암세력이 꺾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해되면 자녀 보는 눈, 이웃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사람이구나!’ 이 사실이 정말 여러분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삶이 성실하게 되는 삶으로 하나님이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모세가 왕궁에 있다가 비참한 미디안광야에서 양치는 목동 이였지만 성실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의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야곱은 무슨 문제든지 당하면 성실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자기욕심이 많아서 그렇지만 뭐든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열두지파의 조상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실하게 되는 게 귀중한 축복입니다. 저는 성장하면서 이것을 바로 못 배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녀들에게 심부름 시키고 거기에 대해서 성실하게 했다면 칭찬하고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호되게 꾸중을 해야 합니다. 일을 맡기면 조금도 빈틈이 없이 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생각과 말이 달라집니다. 생각과 말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입으로 나가게 됩니다. 눅6:45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여러분의 입에서 뭐엇이 나옵니까?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녀들에게 치명적인 실패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성경에 있는 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로 인도받으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눈을 열어주면 다들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머님이 교역자들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섬기는지, 그래서 생전에 나에게는 안주던 쌀밥도 주의 종이 왔다면 쌀밥해서 고기 굽고 생선 구워서 내어놓았습니다. 교역자에게 얼마나 충성을 하는지 모릅니다. 우연한 복이라고 볼지 모르지만 부모들이 교회와 교역자에 대해서 신실한 충성을 보는 감각 속에서 자랐습니다.
오늘부터 작정해야 합니다. 내 가정을 향해서, 자녀를 향해서, 강단과 교회를 위해서 주의 종을 위해서 축복의 말을 하리라하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보지만 미래적인 것을 보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에 미래가 있기에 그것을 보면서 말해야 합니다. 복음으로 시작했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에 엄청난 미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고 인도받아야 합니다.
경제관리에 좋은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관리를 들이도록 어릴 때부터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있으면 낭비하고 없으면 궁색해집니다. 어린아이들이 용돈을 주면 그것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습관이 안 되면 엄청난 피해가 되어집니다. 그래서 무슨 돈이든지 주면 절약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절약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뭐든지 쓸 때는 분수를 알고 써야 합니다. 내 분수답게 쓸 수 있는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이게 어릴 때부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복음 안에서 규모라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여름성경학교에서 규모를 가르쳤습니다. 복음의 규모, 삶의 규모를 가르쳤는데 렘넌트들에게 경제의 규모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정말 필요한 렘넌트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이일에 쓰임 받는 렘넌트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이 없이는 사람은 외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 마음에 새겨져야 합니다. 특히 지위가 높고 자리가 안정될수록 이 문제는 심각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서 외식하는 자라고 나무랐습니다. 그들이 보통으로 생각한 행동이 예수님 앞에는 큰 죄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복음의 맛을 모르면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외식하게 되어 있습니다.
1. 외식하지 않으려면 성실해야 합니다. 성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1)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야 합니다.
① 아무리 좋은 것도 복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② 복음은 모든 문제의 해결입니다.
③ 배설물로 여겼던 모든 축복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여질 수 있도록 눈이 열려야 합니다
2) 모든 문제와 사건을 볼 때마다 영적인 사실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① 기도응답의 체험
② 강단말씀 성취
③ 전도의 삶
2. 렘넌트에게 성실한 습관이 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1) 시간관리(새벽시간, 빈 시간 활용)하는 습관
2) 성실한 삶을 살 때 - 하나님이 모세와 야곱처럼 축복하십니다.
3) 생각과 말이 달라져야 합니다. - 부모가 먼저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4) 경제 규모 - 어릴 때부터 경제 관리하는 좋은 습관이 들도록 도와야 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