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네 이웃이냐?
2007-02-1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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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삽니다. 희색을 발하며, 오늘 인사부터 하나님의 은혜 입는 축복 입는 시간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이 "네 이웃이 누구냐, 누가 네 이웃이냐?"입니다. 사실 이 설명은 굉장히 예리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있었든지 없었든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내 이웃이 되느냐하면 눅10:25에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참 어려운 문제가 종교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무슨 문제와 사건이든지, 좋은 사람이든지 악한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합니다. 오늘 본문도 상당히 신실한 율법사인데도 일단 예수님께 나갔을 때에 예수님을 시험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여기에 예수님의 대답이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예수님의 대답에 율법사는 좀 이해가 되지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하기를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했습니다. 그 때에 대답하신 말씀이 강도당한 일에 대해 사마리아인의 일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 아마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까지 가는 길을 굉장히 험한 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설명하실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말씀이 신5:6의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십계명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야 한다는 배경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이미 애굽 땅에서 그리스도 피를 상징하는 양의 피로 구속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십계명 행할 자격이 있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 이해되어 선민사상에 빠져 우리만 구원 받고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상 때문에 전체 유대인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세계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들이 핍박 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왜 세계가 핍박하고 독일의 히틀러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였겠습니까? 간단한 이유입니다. 자기들만 최고고 인간이며, 너희 이방인들은 개, 돼지 같은 짐승이라고 하니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들이 이렇게 어려움 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를 중심해서 특히 독일에서 유대인 말살정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망했느냐? 아닙니다. 전 세계 상권을 거의 쥐고 있습니다. 맨하탄의 40% 이상이 유대인 소유인입니다. 유대인들이 가는 곳곳마다 어디서든지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노벨상을 비롯해 세계의 이름난 상들은 유대인들이 휩쓸어 가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미움을 받고 있지만 괄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발을 딛고 있는 장소에서는 상권을 비롯해서 그 지역의 문명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5:3에 보면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냥 약속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히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할렐루야. 나와 여러분과 세우신 겁니다. 받아합시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빗나가려고 하다가도 지난주에 이 제목 붙잡고 하나님 뜻 안으로 인도받은 일이 많을 줄 압니다. 제목만 기억해도.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이 언약을 유대인들에게만 주었다는 생각들이 많은데 바로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은 언약하셨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특히 이 언약은 렘넌트들에게 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자식들에게 여러분 자신이 전수해 주어야 될 귀한 사명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신6:4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리고 6-9절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를 대면한 시간에는 이 말씀을 전하라 했습니다. 믿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믿을 때에 우리를 통해 자녀들에게 이 믿음이 바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의 지금까지 이 일이 잘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신 것은 전도가 이해되면 삶이 이해된다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서 제사장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종교인이지요. 제사장이 두들겨 맞아 죽기 직전에 있는 그 사람을 보고서도 피해 가버렸습니다. 이 말은 종교인으로서는 도저히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또 레위인을 언급했습니다. 그 때 당시 레위인은 중요한 교회 일들을 담당했습니다. 교회 안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교회 물건들을 만질 수 있는 특권이 레위인에게만 주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헌신하고 충성하는 자들도 생명가지지 못한 종교인, 교인으로서는 참 생명을 구원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언급한 것은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 앞서 존경받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배경입니다. 전도라는 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그런 사람들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을 통해서 전도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된 이웃이 누구냐? 전도에서 비로소 너와 내가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고서는 참된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주어지면 반드시 삶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전도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설명하신 이웃은 삶을 통해 전도가 이해되어야 이 사실이 이해됩니다. 그리고 이 삶을 너희 후손들에게 전하라 하십니다. 누웠든지 앉았든지 어딜 가든지 무얼 하든지 네가 갖고 있는 복음을 구체적으로 말하라 하십니다.
복음이 구체적으로 생명으로 와 있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생명 없이 그리스도를 말하면 반복이 됩니다. 그러나 생명 가진 자가 말하면 늘 양식이 됩니다. 우리가 눈만 뜨면 밥을 먹고 점심 저녁에도 밥을 먹습니다. 그러나 밥 먹는 사람이 왜 똑같은 것을 주느냐?, 좀 다른 것 내봐라하지 않습니다. 밥을 주든지 돌멩이 주든지 짚을 주든지 해봐라 하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생명 있는 사람은 밥을 보아도 늘 기쁩니다. 양식이 되고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으로 누리지 않고는 강단의 말씀이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지 못합니다. 누리지 못하면 부담이 됩니다. 이 축복된 생명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치지 않을 수 없지요. 생명이 되어 있다면 말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이 생명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아주 중요한 것이 경제문제입니다. 늘 메시지 통해서 강단에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가르치지 못한 것이 경제문제입니다. 우리 자신이 잘 되지 않습니다.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 심사조, 십오조. 그래서 하나님께 드린다?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왜 이렇게 해야 되느냐, 왜 이렇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느냐가 아직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한국 경제, 세계 경제가 다 어렵습니다. 여기의 여러분들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도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일 있든지 간에 경제 기적을 약속하셨습니다. 실제로 축복과 은혜로 풍성히 임했습니다.
알다시피 이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언약 안에 섰다는 이유 때문에 한 해 농사를 지었는데 백 년 먹을 것이 생겼다 합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으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서 농사를 지어보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매년 가뭄 때문에 벼를 심어도 소출이 제대로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 볍씨만 남겨놓고 몽땅 다 먹었습니다. 밥 해먹으면 모자라니까 갱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쌀을 조금 넣고 거기다가 밭에서 나물을 뜯어와 가지고 그냥 같이 넣어서 끊인 죽입니다. 물하고 나물하고 쌀 몇 톨 넣고 물배를 채워 매 끼마다 넘겼습니다. 하루에 한 끼 밥을 먹는 사람은 부자였습니다. 전부 먹을 것이 없으니 거지들이 자연적으로 생기는데 가봐야 얻을 것이 똑같이 없으니까 굴뚝에 연기 나는 집으로 모였습니다. 저는 우리 집에 거지가 떼로 모이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거지가 오면 또 안 줄 수가 없습니다. 주기도 하고 실랑이 하는 것도 봤습니다.
농사짓고 열매를 얻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삭에게 한 해 백 년 먹을 소출이 있었다는 사실에 별 감흥 없이 가만히 있지만 까무러칠 사실입니다. 이 축복과 은혜를 알게 되면 이 한 해 뿐만 아니라 남은 시간 중 어떤 경제공황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역사를 위해 어릴 때부터 바른 습관을 길러줘야 합니다.
경제 개념이 잘못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경제의 바른 개념을 심어주지 못한 일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경제에 대한 것은 자녀들에게 심어주지도 않고 내버려두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헌금과 사회와 나에 대해 어떤 경제정책을 세워야 되는지에 대해 완전히 방치되어 왔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오냐 하면, 자기도 모르게 가난하다보니 돈이 있어야 되겠다 싶어 물질 제일주의가 되기도 합니다. 현대의 정주영씨 일대기를 기록한 내용을 보면서 그 사람이 부자가 된 배경이 너무 가난해서 집을 도망쳐 나와 이를 악물고 일했습니다. 책을 보면 그 사람 접촉하는 사람마다 ‘도대체 이런 악바리가 어디 있느냐!’며 놀랍니다. 돈을 벌고 난 후 다행히도 민족에 대한 사랑이 있어 그런 헌신들을 보게 됩니다. 돈을 벌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경제에 대한 개념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물질이 최고구나!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하겠구나! 하는 경제 개념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너무 가난했기에 거의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 속에 그런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일어섰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돈을 가진 사람은 돈이 최고다 싶어 안 놓습니다. 그다음에 돈 가진 자를 위해 헌신했던 노조들이 보니 말도 안 되는 겁니다. 누구 통해 벌었는데 너희들이 움켜쥐고 놓지 않느냐 하며 한국노조가 세계에 유례없는 노조로 변해버렸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노조위원이 있으면 분명히 노조운동 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도 망하고 노조도 망합니다. 한국 경제를 두고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입어야 합니다.
내가 돈을 번만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물질 세속화가 이루어져버렸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보면서 우리 교인들도 똑같다는 걸 느낍니다. TV에 혼수문제에 대해 나왔는데 보통 10억 내지 15억 이라고 나오더라고요. 여자들이 시집가려면 그만큼 들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느끼는 것은 이런 사상적 배경 때문에 교회 안에 결혼하는 가정들이 깨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우리 교회 안에서 혼수 때문에 깨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참 신앙생활 잘하는 장로, 권사 아들과 결혼했는데 혼수를 적게 해왔다고 계속 괴롭히는 겁니다. 도저히 살 수 없어 뛰쳐나와 이혼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된 문명 속에서 돈 제일주의, 현금제일주의가 되어있습니다. 세속화된 문화 배경을 다 없애야 됩니다. 탄식할 일이 교회 안에도 똑같이 이런 배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할 때 20만 원을 가지고 했습니다. 총신에 들어가야 될 입학금이 12만 원인데 나머지 7-8만 원을 가지고 결혼 여비를 해야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뭐라도 사줄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장인어른이 아무 것도 없이 결혼을 하니 간도 크다 하기도 했습니다. 자녀를 결혼시키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녀들이 직장생활 하면서 번 돈을 몽땅 결혼비용으로 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뭔가 이런 것은 교회 밖에 문화를 따라가지 말고 믿음으로 한 번 쇄신해 볼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결혼해 보면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좋고, 인간이 바로 되면 되는 것이지…. 돈 없이 와도, 반지 하나 못 사줘도 행복합니다. 오늘날 못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줘서 잘 살며 아들, 딸 결혼시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혼수라는 문제에 대해 교회에서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결혼문화는 지속해서 어렵게 되겠다고 느낍니다.
제 딸을 시집보내면서도 혼수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있는 것 전부 바쳐서 혼수를 해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쫓겨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가정이 사회적 개념과 달리 이해심이 많은 것 같아요. 자기 아들이 박사 학위를 받기 직전에 있고, 일본 최고 명문대에 들어가 있는 가운데 우리 아이를 시집보냈습니다. 그 쪽에서 보기에 집이라도 해 와야 마땅할 텐데 일이천 혼수를 해 보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좋은 사람 만나는 게 복이고, 좋은 가정 만나는 게 복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가정이 축복받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하지 말고, 정말 언약 붙잡고 약속 안에서 은혜 받는 아들, 딸이 되게 하옵소서! 하십시오. 저는 요즘 기도할 때에 "내가 내 자녀를 감당할 수 없사오니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은혜 주시고 인도해주옵소서."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쓰임 받기에 합당한 건강과 지혜를 주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이것 외에는 기도할 게 없습니다.
물질 세속화 사상, 우리도 모르게 빠진 이런 사상들. 이런 사상들을 가지고 나오니 저절로 돈을 얻기 위해서 절도범, 사기꾼들이 나오는 겁니다. 교회 안에도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송현교회 있을 때 사택에 있으면서 몇 번이나 사기꾼에게 당할 뻔 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똑같은 사기꾼이 사기를 당하지 정상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사기꾼이 그럴 듯하게 말해도 알아차립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기꾼에 의해 여자들이 울기도 하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의 모든 사고가 사회문명과 같을 때 걸려드는 문제가 이런 것입니다. 정말 복음 가운데 있다면 걸려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 문화를 정말 바꿀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후대들에게 바른 교육 시켜야 이 일이 바로 될 수 있습니다.
옛날 같지 않아서 요즘은 점점 사회문명으로 더 빠지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나라는 기독교문명이 들어오고 난 뒤에 많이 기독교화 되었습니다. 요즘은 족두리 쓰고 결혼식 잘 안 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주례를 간단히 하며 결혼을 합니다. 장례예식 같은 예식들도 거의 기독교 문화에서 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줄어가는 상황에서 무속의 문화 등으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확실히 증거되지 않으면 군인들도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군종이 기독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종감은 바로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불교도인 군승이 더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할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군인들이 세례 받고 오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우리 후손들에게 복 받을 수 있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돈을 가진 후손들은 낭비를 하는 것이 자기들이 잘 살고 누리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생각이 잘못되어 돈을 잡았다 하면 놓지 않는 수전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로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아들은 개척교회의 어려운 형편 가운데 자랐기에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지만 돈이 생기면 절대로 안 씁니다. 그게 어릴 때부터 생긴 경제에 대한 습관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은행에 저금하고 돈을 가졌을 때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머리가 되어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돈은 쓰면 없어지니까 일단 돈이 생기면 가지고 있자고 하는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축복하실 수는 없습니다. 주의할 것이 축복해 주셨을 때 쓸 수 있는 머리가 필요합니다. 다락방에서 계속 메시지 가운데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통해서 한 교회를 살리게 하시고, 십이조 통해서 세계를 살리는 선교사 보낼 돈을 주옵소서! 십삼조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RUTC 만들고도 남을 수 있게 하옵소서. 그 다음에 십사조로, 적금은 내 인생을 바라보며 쓸 수 있는 돈이 되게 하옵소서!" 간단한 말 같지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기도하십시오. 내게 돈을 주었을 때에 어떻게 써야할 지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재정이 나오게 됩니다.
미국의 가장 높은 빌딩이 경제 공황 때 지어졌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경제적으로 공황 시대에 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지어놓으시고 유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손길로 드리는 헌금 통해 유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축복과 역사를 하나님이 주어놓으셨는데 경제를 그냥 두실 수 있느냐? 절대로 그냥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바른 경제생활이 지혜로 내 머리에 수립되고, 어린 아이들에게 숙지되어 습관이 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 경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저는 자녀들에게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를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지만 그래도 드린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자라고 개척해 나간 목사님들도 꼭 이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십이조까지 가르치는 데도 참 어렵더라고 합니다. 박목사님 경우는 십이조를 작정하기로 한 주일 전에 밤에 잠이 오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십이조 작정하라고 고함을 지르면 다 도망갈 것 같아 잠이 안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십이조를 작정하라고 하는데 한 사람도 거역하지 않고 다 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개척교회인데도 프랑스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전도와 선교에 길을 맞추게 되면 하나님이 전도자에게 아낌없이 경제적으로 기적의 축복을 안겨주십니다. 초대교회의 안디옥 교회로부터 이루어졌던 사실을 봅니다.
경제 이전에 중요한 상황을 다시 한 번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경제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 생각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내게 주신 돈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대상 29:10에 보면 다윗이 큰 부자가 되고 온 나라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금이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부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돈으로 드린 것뿐이라 했습니다. 경제관이 얼마나 철저합니까. 몸도 마음도 건강도 솔직히 말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가 건강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보니 절대 건강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신 때에 건강관리도 바로 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돈 관리 문제는 원천적으로 이것이 안 되면 잘 되지 않습니다. 초기에 십이조를 바쳤다가 빼냈다가를 반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내 것으로 아니까 그렇습니다. 바치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내가 씁니다하면서 빼내 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습관이 되어서) 사례를 받을 때 몸에 베인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십의 오조까지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적다 많다 상관 않고 목회 초기부터 자연스럽게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얼마 남지 않았네 하면서 생활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깨닫게 되었는데, 십이조, 십삼조를 모아두었다가 잘못해서 불타버렸는데 하나도 아까운 마음이 없더라고요. 하나님의 것이라 구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면 이 나쁜 놈 하실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내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뭔가 가져가실 이유가 있어 가져갔겠지 하면서 평안했습니다. 그 일 후로는 십일조, 십이조 떼는 문제에 전혀 다른 생각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런 축복과 역사의 배경에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구원과 관련해서 모든 경제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이 땅에서 세계 복음화 하시기 위해 구원하시는 역사, 메시아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방해하는 악한 요소들을 강한 구원의 능력의 역사로 물리치시고, 사단의 역사를 물리치시고, 오늘도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귀한 축복의 역사로 인도받는 귀중한 은혜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축복하셔서 은혜 주신 하나님,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구원 받게 하시고,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사랑하는 후손들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며, 그리고 여러 가지 유익한 습관들로 축복해 주옵소서. 그 중에 경제에 하나님이 유익한 축복으로 인도하시되 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 어떤 율법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비유(눅10:25-37).
1)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야 십계명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신5:6).
2) 이 사실을 오해하고 선민사상에 빠진 유대인은 가는 곳마다 핍박 받지만 언약을 따라 그 지역 문명을 장악합니다(신5:3).
3) 하나님은 이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우리와도 맺으셨습니다.
4) 그리고 렘넌트들에게도 하신 것이기에 자식에게 분명히 전수해 주어야 합니다(신6:4-9).
2. 전도가 이해되면 삶이 이해됩니다.
1) 전도는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인가와 상관없이 생명 가진 자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2) 생명을 주고받는 전도를 통해서 비로소 참된 이웃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3) 생명이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삶이 나와서 전도가 됩니다.
4) 이 삶을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경제적 축복을 받도록 어릴 때부터 바른 습관을 길러줘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전도자에게 어떤 일이 있든 간에 경제 기적을 약속하셨습니다(창26:12, 이삭의 예).
2) 잘못된 경제 개념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① 물질 제일주의 ② 물질 세속화
3) 후손들이 복 받을 수 있는 생각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① 낭비(×) ② 수전노(×)
③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어야(○) ④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전도․선교에 방향 맞춰야(○)
4) 경제 이전에 내게 주신 돈이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대상29:10-14).
결론: 하나님의 목적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구원입니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구원과 관련해서 모든 경제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 제목이 "네 이웃이 누구냐, 누가 네 이웃이냐?"입니다. 사실 이 설명은 굉장히 예리한 문제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있었든지 없었든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의 비유가 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내 이웃이 되느냐하면 눅10:25에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참 어려운 문제가 종교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무슨 문제와 사건이든지, 좋은 사람이든지 악한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합니다. 오늘 본문도 상당히 신실한 율법사인데도 일단 예수님께 나갔을 때에 예수님을 시험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여기에 예수님의 대답이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예수님의 대답에 율법사는 좀 이해가 되지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질문하기를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했습니다. 그 때에 대답하신 말씀이 강도당한 일에 대해 사마리아인의 일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언급하셨습니다. 아마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까지 가는 길을 굉장히 험한 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설명하실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말씀이 신5:6의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십계명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야 한다는 배경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이미 애굽 땅에서 그리스도 피를 상징하는 양의 피로 구속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십계명 행할 자격이 있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 이해되어 선민사상에 빠져 우리만 구원 받고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상 때문에 전체 유대인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세계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들이 핍박 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왜 세계가 핍박하고 독일의 히틀러가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였겠습니까? 간단한 이유입니다. 자기들만 최고고 인간이며, 너희 이방인들은 개, 돼지 같은 짐승이라고 하니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들이 이렇게 어려움 당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를 중심해서 특히 독일에서 유대인 말살정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망했느냐? 아닙니다. 전 세계 상권을 거의 쥐고 있습니다. 맨하탄의 40% 이상이 유대인 소유인입니다. 유대인들이 가는 곳곳마다 어디서든지 그 지역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노벨상을 비롯해 세계의 이름난 상들은 유대인들이 휩쓸어 가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미움을 받고 있지만 괄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발을 딛고 있는 장소에서는 상권을 비롯해서 그 지역의 문명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5:3에 보면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냥 약속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분명히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할렐루야. 나와 여러분과 세우신 겁니다. 받아합시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빗나가려고 하다가도 지난주에 이 제목 붙잡고 하나님 뜻 안으로 인도받은 일이 많을 줄 압니다. 제목만 기억해도.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이 언약을 유대인들에게만 주었다는 생각들이 많은데 바로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은 언약하셨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붙잡아야 합니다.
특히 이 언약은 렘넌트들에게 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자식들에게 여러분 자신이 전수해 주어야 될 귀한 사명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신6:4에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리고 6-9절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 기가 막힌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녀를 대면한 시간에는 이 말씀을 전하라 했습니다. 믿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믿을 때에 우리를 통해 자녀들에게 이 믿음이 바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의 지금까지 이 일이 잘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신 것은 전도가 이해되면 삶이 이해된다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서 제사장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종교인이지요. 제사장이 두들겨 맞아 죽기 직전에 있는 그 사람을 보고서도 피해 가버렸습니다. 이 말은 종교인으로서는 도저히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또 레위인을 언급했습니다. 그 때 당시 레위인은 중요한 교회 일들을 담당했습니다. 교회 안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교회 물건들을 만질 수 있는 특권이 레위인에게만 주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헌신하고 충성하는 자들도 생명가지지 못한 종교인, 교인으로서는 참 생명을 구원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언급한 것은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 앞서 존경받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배경입니다. 전도라는 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그런 사람들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을 통해서 전도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된 이웃이 누구냐? 전도에서 비로소 너와 내가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고서는 참된 이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주어지면 반드시 삶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전도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설명하신 이웃은 삶을 통해 전도가 이해되어야 이 사실이 이해됩니다. 그리고 이 삶을 너희 후손들에게 전하라 하십니다. 누웠든지 앉았든지 어딜 가든지 무얼 하든지 네가 갖고 있는 복음을 구체적으로 말하라 하십니다.
복음이 구체적으로 생명으로 와 있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생명 없이 그리스도를 말하면 반복이 됩니다. 그러나 생명 가진 자가 말하면 늘 양식이 됩니다. 우리가 눈만 뜨면 밥을 먹고 점심 저녁에도 밥을 먹습니다. 그러나 밥 먹는 사람이 왜 똑같은 것을 주느냐?, 좀 다른 것 내봐라하지 않습니다. 밥을 주든지 돌멩이 주든지 짚을 주든지 해봐라 하는 사람이 전혀 없습니다. 생명 있는 사람은 밥을 보아도 늘 기쁩니다. 양식이 되고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으로 누리지 않고는 강단의 말씀이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지 못합니다. 누리지 못하면 부담이 됩니다. 이 축복된 생명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치지 않을 수 없지요. 생명이 되어 있다면 말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이 생명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아주 중요한 것이 경제문제입니다. 늘 메시지 통해서 강단에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일 가르치지 못한 것이 경제문제입니다. 우리 자신이 잘 되지 않습니다.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 심사조, 십오조. 그래서 하나님께 드린다?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왜 이렇게 해야 되느냐, 왜 이렇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느냐가 아직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한국 경제, 세계 경제가 다 어렵습니다. 여기의 여러분들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전도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일 있든지 간에 경제 기적을 약속하셨습니다. 실제로 축복과 은혜로 풍성히 임했습니다.
알다시피 이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언약 안에 섰다는 이유 때문에 한 해 농사를 지었는데 백 년 먹을 것이 생겼다 합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으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서 농사를 지어보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이 매년 가뭄 때문에 벼를 심어도 소출이 제대로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해 볍씨만 남겨놓고 몽땅 다 먹었습니다. 밥 해먹으면 모자라니까 갱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쌀을 조금 넣고 거기다가 밭에서 나물을 뜯어와 가지고 그냥 같이 넣어서 끊인 죽입니다. 물하고 나물하고 쌀 몇 톨 넣고 물배를 채워 매 끼마다 넘겼습니다. 하루에 한 끼 밥을 먹는 사람은 부자였습니다. 전부 먹을 것이 없으니 거지들이 자연적으로 생기는데 가봐야 얻을 것이 똑같이 없으니까 굴뚝에 연기 나는 집으로 모였습니다. 저는 우리 집에 거지가 떼로 모이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거지가 오면 또 안 줄 수가 없습니다. 주기도 하고 실랑이 하는 것도 봤습니다.
농사짓고 열매를 얻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삭에게 한 해 백 년 먹을 소출이 있었다는 사실에 별 감흥 없이 가만히 있지만 까무러칠 사실입니다. 이 축복과 은혜를 알게 되면 이 한 해 뿐만 아니라 남은 시간 중 어떤 경제공황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 역사를 위해 어릴 때부터 바른 습관을 길러줘야 합니다.
경제 개념이 잘못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실패하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경제의 바른 개념을 심어주지 못한 일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경제에 대한 것은 자녀들에게 심어주지도 않고 내버려두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헌금과 사회와 나에 대해 어떤 경제정책을 세워야 되는지에 대해 완전히 방치되어 왔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오냐 하면, 자기도 모르게 가난하다보니 돈이 있어야 되겠다 싶어 물질 제일주의가 되기도 합니다. 현대의 정주영씨 일대기를 기록한 내용을 보면서 그 사람이 부자가 된 배경이 너무 가난해서 집을 도망쳐 나와 이를 악물고 일했습니다. 책을 보면 그 사람 접촉하는 사람마다 ‘도대체 이런 악바리가 어디 있느냐!’며 놀랍니다. 돈을 벌고 난 후 다행히도 민족에 대한 사랑이 있어 그런 헌신들을 보게 됩니다. 돈을 벌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경제에 대한 개념이 바로 되어야 합니다. 물질이 최고구나!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하겠구나! 하는 경제 개념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너무 가난했기에 거의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 속에 그런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일어섰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돈을 가진 사람은 돈이 최고다 싶어 안 놓습니다. 그다음에 돈 가진 자를 위해 헌신했던 노조들이 보니 말도 안 되는 겁니다. 누구 통해 벌었는데 너희들이 움켜쥐고 놓지 않느냐 하며 한국노조가 세계에 유례없는 노조로 변해버렸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노조위원이 있으면 분명히 노조운동 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도 망하고 노조도 망합니다. 한국 경제를 두고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입어야 합니다.
내가 돈을 번만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물질 세속화가 이루어져버렸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보면서 우리 교인들도 똑같다는 걸 느낍니다. TV에 혼수문제에 대해 나왔는데 보통 10억 내지 15억 이라고 나오더라고요. 여자들이 시집가려면 그만큼 들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느끼는 것은 이런 사상적 배경 때문에 교회 안에 결혼하는 가정들이 깨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우리 교회 안에서 혼수 때문에 깨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참 신앙생활 잘하는 장로, 권사 아들과 결혼했는데 혼수를 적게 해왔다고 계속 괴롭히는 겁니다. 도저히 살 수 없어 뛰쳐나와 이혼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된 문명 속에서 돈 제일주의, 현금제일주의가 되어있습니다. 세속화된 문화 배경을 다 없애야 됩니다. 탄식할 일이 교회 안에도 똑같이 이런 배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할 때 20만 원을 가지고 했습니다. 총신에 들어가야 될 입학금이 12만 원인데 나머지 7-8만 원을 가지고 결혼 여비를 해야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뭐라도 사줄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장인어른이 아무 것도 없이 결혼을 하니 간도 크다 하기도 했습니다. 자녀를 결혼시키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처녀들이 직장생활 하면서 번 돈을 몽땅 결혼비용으로 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뭔가 이런 것은 교회 밖에 문화를 따라가지 말고 믿음으로 한 번 쇄신해 볼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안 되고 있습니다. 제가 결혼해 보면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좋고, 인간이 바로 되면 되는 것이지…. 돈 없이 와도, 반지 하나 못 사줘도 행복합니다. 오늘날 못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해줘서 잘 살며 아들, 딸 결혼시켜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혼수라는 문제에 대해 교회에서 개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결혼문화는 지속해서 어렵게 되겠다고 느낍니다.
제 딸을 시집보내면서도 혼수를 많이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있는 것 전부 바쳐서 혼수를 해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쫓겨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가정이 사회적 개념과 달리 이해심이 많은 것 같아요. 자기 아들이 박사 학위를 받기 직전에 있고, 일본 최고 명문대에 들어가 있는 가운데 우리 아이를 시집보냈습니다. 그 쪽에서 보기에 집이라도 해 와야 마땅할 텐데 일이천 혼수를 해 보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좋은 사람 만나는 게 복이고, 좋은 가정 만나는 게 복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가정이 축복받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하지 말고, 정말 언약 붙잡고 약속 안에서 은혜 받는 아들, 딸이 되게 하옵소서! 하십시오. 저는 요즘 기도할 때에 "내가 내 자녀를 감당할 수 없사오니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은혜 주시고 인도해주옵소서." 그리고 내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쓰임 받기에 합당한 건강과 지혜를 주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이것 외에는 기도할 게 없습니다.
물질 세속화 사상, 우리도 모르게 빠진 이런 사상들. 이런 사상들을 가지고 나오니 저절로 돈을 얻기 위해서 절도범, 사기꾼들이 나오는 겁니다. 교회 안에도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송현교회 있을 때 사택에 있으면서 몇 번이나 사기꾼에게 당할 뻔 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똑같은 사기꾼이 사기를 당하지 정상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리 사기꾼이 그럴 듯하게 말해도 알아차립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기꾼에 의해 여자들이 울기도 하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의 모든 사고가 사회문명과 같을 때 걸려드는 문제가 이런 것입니다. 정말 복음 가운데 있다면 걸려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 문화를 정말 바꿀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말 후대들에게 바른 교육 시켜야 이 일이 바로 될 수 있습니다.
옛날 같지 않아서 요즘은 점점 사회문명으로 더 빠지더라고요. 그래도 우리나라는 기독교문명이 들어오고 난 뒤에 많이 기독교화 되었습니다. 요즘은 족두리 쓰고 결혼식 잘 안 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주례를 간단히 하며 결혼을 합니다. 장례예식 같은 예식들도 거의 기독교 문화에서 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줄어가는 상황에서 무속의 문화 등으로 흘러갑니다.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확실히 증거되지 않으면 군인들도 문제입니다. 옛날에는 군종이 기독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종감은 바로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불교도인 군승이 더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할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군인들이 세례 받고 오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우리 후손들에게 복 받을 수 있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돈을 가진 후손들은 낭비를 하는 것이 자기들이 잘 살고 누리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생각이 잘못되어 돈을 잡았다 하면 놓지 않는 수전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바로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아들은 개척교회의 어려운 형편 가운데 자랐기에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지만 돈이 생기면 절대로 안 씁니다. 그게 어릴 때부터 생긴 경제에 대한 습관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은행에 저금하고 돈을 가졌을 때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머리가 되어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돈은 쓰면 없어지니까 일단 돈이 생기면 가지고 있자고 하는 쓸 줄 모르는 사람을 축복하실 수는 없습니다. 주의할 것이 축복해 주셨을 때 쓸 수 있는 머리가 필요합니다. 다락방에서 계속 메시지 가운데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통해서 한 교회를 살리게 하시고, 십이조 통해서 세계를 살리는 선교사 보낼 돈을 주옵소서! 십삼조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RUTC 만들고도 남을 수 있게 하옵소서. 그 다음에 십사조로, 적금은 내 인생을 바라보며 쓸 수 있는 돈이 되게 하옵소서!" 간단한 말 같지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기도하십시오. 내게 돈을 주었을 때에 어떻게 써야할 지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재정이 나오게 됩니다.
미국의 가장 높은 빌딩이 경제 공황 때 지어졌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경제적으로 공황 시대에 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지어놓으시고 유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손길로 드리는 헌금 통해 유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축복과 역사를 하나님이 주어놓으셨는데 경제를 그냥 두실 수 있느냐? 절대로 그냥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바른 경제생활이 지혜로 내 머리에 수립되고, 어린 아이들에게 숙지되어 습관이 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 경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저는 자녀들에게 십일조, 십이조, 십삼조를 한 번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지만 그래도 드린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자라고 개척해 나간 목사님들도 꼭 이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십이조까지 가르치는 데도 참 어렵더라고 합니다. 박목사님 경우는 십이조를 작정하기로 한 주일 전에 밤에 잠이 오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십이조 작정하라고 고함을 지르면 다 도망갈 것 같아 잠이 안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십이조를 작정하라고 하는데 한 사람도 거역하지 않고 다 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가 개척교회인데도 프랑스 선교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전도와 선교에 길을 맞추게 되면 하나님이 전도자에게 아낌없이 경제적으로 기적의 축복을 안겨주십니다. 초대교회의 안디옥 교회로부터 이루어졌던 사실을 봅니다.
경제 이전에 중요한 상황을 다시 한 번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경제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 생각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내게 주신 돈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대상 29:10에 보면 다윗이 큰 부자가 되고 온 나라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금이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부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돈으로 드린 것뿐이라 했습니다. 경제관이 얼마나 철저합니까. 몸도 마음도 건강도 솔직히 말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가 건강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보니 절대 건강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신 때에 건강관리도 바로 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돈 관리 문제는 원천적으로 이것이 안 되면 잘 되지 않습니다. 초기에 십이조를 바쳤다가 빼냈다가를 반복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내 것으로 아니까 그렇습니다. 바치고 나니 너무 힘들어서 내가 씁니다하면서 빼내 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습관이 되어서) 사례를 받을 때 몸에 베인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십의 오조까지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적다 많다 상관 않고 목회 초기부터 자연스럽게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얼마 남지 않았네 하면서 생활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를 깨닫게 되었는데, 십이조, 십삼조를 모아두었다가 잘못해서 불타버렸는데 하나도 아까운 마음이 없더라고요. 하나님의 것이라 구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면 이 나쁜 놈 하실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내 마음이 그렇더라고요. 뭔가 가져가실 이유가 있어 가져갔겠지 하면서 평안했습니다. 그 일 후로는 십일조, 십이조 떼는 문제에 전혀 다른 생각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런 축복과 역사의 배경에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구원과 관련해서 모든 경제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이 땅에서 세계 복음화 하시기 위해 구원하시는 역사, 메시아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방해하는 악한 요소들을 강한 구원의 능력의 역사로 물리치시고, 사단의 역사를 물리치시고, 오늘도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귀한 축복의 역사로 인도받는 귀중한 은혜의 성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축복하셔서 은혜 주신 하나님,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구원 받게 하시고,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사랑하는 후손들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며, 그리고 여러 가지 유익한 습관들로 축복해 주옵소서. 그 중에 경제에 하나님이 유익한 축복으로 인도하시되 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 어떤 율법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비유(눅10:25-37).
1)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라야 십계명을 행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신5:6).
2) 이 사실을 오해하고 선민사상에 빠진 유대인은 가는 곳마다 핍박 받지만 언약을 따라 그 지역 문명을 장악합니다(신5:3).
3) 하나님은 이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우리와도 맺으셨습니다.
4) 그리고 렘넌트들에게도 하신 것이기에 자식에게 분명히 전수해 주어야 합니다(신6:4-9).
2. 전도가 이해되면 삶이 이해됩니다.
1) 전도는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인가와 상관없이 생명 가진 자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2) 생명을 주고받는 전도를 통해서 비로소 참된 이웃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3) 생명이 주어지면 자연스럽게 삶이 나와서 전도가 됩니다.
4) 이 삶을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경제적 축복을 받도록 어릴 때부터 바른 습관을 길러줘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전도자에게 어떤 일이 있든 간에 경제 기적을 약속하셨습니다(창26:12, 이삭의 예).
2) 잘못된 경제 개념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① 물질 제일주의 ② 물질 세속화
3) 후손들이 복 받을 수 있는 생각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① 낭비(×) ② 수전노(×)
③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어야(○) ④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전도․선교에 방향 맞춰야(○)
4) 경제 이전에 내게 주신 돈이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대상29:10-14).
결론: 하나님의 목적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구원입니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고, 구원과 관련해서 모든 경제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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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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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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