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네 몸의 등불(1)
2007-03-2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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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지난주에 “복 있는 자”라 하여 말씀을 전했는데 첫 대지만 하고 시간이 모자라 그냥 마쳤습니다. 오늘은 렘넌트들이 이단에 대해 질문한 내용에 대한 대답을 말씀하려 했는데, 다음 주에 이성훈 목사님이 오셔서 다락방 역사와 이단에 대해 말씀하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이단에 대한 문제보다 복음에 대해 확인이 안 되면 늘 흔들립니다. 이단이라는 데 눌려서 할 일도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구체적으로 왜 이단이 되며, 진짜 이단이 무엇인지 성경적 이론이 뒷받침 되어야겠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안 되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복음의 가치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복음 들고 나갔다가도 늘 이단이라고 하면 풀이 죽어 오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 뭔가 이단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성훈 목사님을 모시고 왜 이단이 되었는가 설명을 들었으면 합니다. 이단 정죄한 사람을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좀 매정한 이야기이지만 다 죽었습니다. 옛날 교단에 있지 않으니 전혀 몰랐는데, 이상강 목사님이 이단 시비를 위해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이단이 아니라하니 이상강 목사님까지 면직했습니다. 그분은 재판을 해서 모든 직을 회복을 했습니다. 그분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은 다 병들어서 죽고 강단을 떠났다”고 그랬습니다. 구체적으로 사람들을 거론하는 걸 들었는데 그게 이목사님을 반대해서 그런 게 아니고 복음을 반대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나 봅니다. 그게 좋다 나쁘다 하기 이전에 복음 반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알아야 합니다. 그 배경이 사단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이단론으로 정죄되었는데도 왜 전세계적으로 복음 운동이 끊이지 않고, 이 일이 왜 이슈가 되어서 자꾸 이런 저런 말이 나오느냐? 만약 복음을 반대하고 하나님을 거역한다고 하면 우리는 다 죽어야 합니다. 복음 반대하는 이단은 살 가치가 없고 살 필요도 없습니다. 복음 가지고 있는데 이단 누명을 썼다면 그건 복음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으면 거기에 영향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죽기 전까지 이단 누명 안 풀린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단 풀리기 때문에 교회 오는 게 아니거든요. 이 시대에 복음이 자꾸 없어지는데 진짜 복음 전하기 위해서. 이것이 우리 교회의 중요한 방향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왜 제가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처음 교회 오셨다가 친척들이 이단이라고 하고 하니까 다른 교회 간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새신자반에게 “이단 설명을 좀 해라. 모르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괜히 말하니까 겁내서 가는 것 아니냐”라고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복음을 반대하고 복음 아닌 이단이라고 하면 진짜 죽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제가 (제 힘으로) 선 게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핍박해도 여러분이 갖고 있는 복음 들고 있다는 가치가 제일입니다. 그 곳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가치를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까지 역사한 겁니다. 류목사님이 이단 정죄 받은 것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이고 인도하셨음을 진전되는 과정에서 새삼 볼 수 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구원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구원 누리는 것이 다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7:21)라고 성경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고요. 로마서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그러니까 젊은 청소년들이 왜 성경에 여기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는 저렇게 말하냐고 질문이 나올만하지요. 지난주에도 조금 말했지만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된 배경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 대해서 이단 시비를 하고 자꾸 이상한 질문을 하며 시험에 빠져 들도록 올무를 내는 사람들이 전부 잘못된 배경 때문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예수님께서 지식을 가진 바리새인, 사두개인 같은 지도층에 있는 사람을 부르지 않고 저 갈릴리 어부들, 또 시골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서 순수하게 복음을 받도록 했다고 말씀했습니다.
■ 우리가 잘 알아야 되는 것은 내가 복음 받았다 할 때 지식이 있어서 받은 것 아닙니다. 지식이 있으면 도리어 못 받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무식해도 못 알아들어요. 그런데 무식하든, 지식 있든 은혜를 받으면 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은혜는 선물이지 노력으로 받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선물은 내가 뭘 잘 한다고 받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선물 주는 사람 마음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행위에 있지 않음을 알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성경이 말씀했습니다(엡2:9).
■ 그래서 원래 우리 자신도 모르게 출발하는 배경이 종교의 배경이고, 율법 배경이고, 인본주의와 신비주의 배경입니다. 이것이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배경인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여기에 예외는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은혜 받지 않으면 이런 것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늘 마음속에 체질이 되고 선지식이 되어서 모든 것을 그 잣대로 보게 됩니다. 특별히 여러분 보면 믿음의 배경이 유대적인 것이 많습니다. 유대인 속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이 나왔는데 벌써 오래전부터 예언된 내용입니다. 메시아, 소 잡고 양 잡는 제사 제도들. 전부 십자가에 피 흘리는 복음을 설명하는데 이것을 유대인들이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의 배경이 유대적인 배경을 근거로 합니다. 복음을 떠나면 모든 인간은 똑같이 종교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의 배경이 노력입니다.
유대교회의 배경이 토라, 쉐마, 탈무드, 그 다음에 조직, 전통, 제도와 의식, 율법, 선행, 행위, 공로. 이것이 유대주의 배경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여기서 모든 구원이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 믿습니다. 갈릴리에 가서 유대인 어부들에게 가서 예수를 아느냐 물으니 전혀 모른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벌써 오셨는데 지금도 세계를 통일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식이 여기에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왜? 유대인의 종교배경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든 일반인들의 일반적인 체질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복음이 안 될수록 종교로 돌아갑니다. 자기도 모르게 ‘예수 믿으면 행동이 착하게 되어야 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도 초기에 그런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거짓말 하면 지옥 간다고 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옥을 수천 번도 더 갔습니다. 지금도 거짓말 하고 있는데…. 특히 애기 키우는 엄마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합니다. 그러면서 그 아기가 잘 될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도 기가 찹니다. 복음이 아니면 벌써 멸망을 몇 번 받아도 마땅합니다. 점점 여러분이 이 복음 듣는 동안 정말 우리가 이런 데서 빠져나와야 되겠구나, 참 복음이 되어야 되겠구나 하고 이해를 하게 됩니다.
■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이 율법 같은 데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반사적으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처럼 무율법주의가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에게 류목사님이 규모에 대해서 많이 말씀했습니다. 지난 여름성경학교의 주제가 규모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렇게 설명하는 사람도 얼마나 규모가 잡혀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규모가 안 되어도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진전입니다. 저는 무조건 율법 같은 규모를 반대하면 방탕이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성경에서 말하는 규모가 있어야 됩니다.
■ 저는 잘하는 일인지 모르지만 오늘까지 나름대로 목회를 하면서 이것은 꼭 실행되어야 하겠다고 규모를 정한 게 있습니다. 교역자나 교인들에게 혹시 너무 과민한 것이 아니냐 하는데 그럴 때는 제가 또 할 말이 없어요. 집사람이 제가 그럴 때 율법이니 신비니 하면서 몰아붙이는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거든요. 무슨 말이냐 하면 제가 약간 끼가 있었습니다. 음악하는 그런 끼가 아니라 타락하는 끼가 있었습니다. 독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일단 맡으면 제 나름대로 규율을 정해놨어요. 절대로 나를 찾아올 때는 늙은 할머니 집사님이 와도 세 사람 이상이 와야 된다. 그랬더니 손자 둘을 데리고 오더라고요. 그래도 그걸 고집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흑암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런데 대해서 끼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남자치고. 더군다나 제가 젊을 때는 못났다는 소리를 안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면에 규율을 안 정해놓으면 제가 넘어지겠더라고요. 만약에 이것이 무너지는 날이면 여지없이 무조건 떴습니다. 시골교회를 혼자 독목회 하면서 7-8개 교회, 시내에서 2개 교회 정도를 지냈습니다. 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초기에 우리 교회 와서 사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방지를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총각 전도사를 데려왔다가 두세 번 실패를 했습니다. 그 때에 이 총각 전도사님을 따랐던 처녀들이 다 예쁘고 열심이었습니다. 참 복음 생활 하려고 애를 쓰는데. 한 번 시험 드니까 그 사람들 다 떠났어요. 일단 총각 전도사에게 육체적으로 마음이 뺏겨서 에로스가 나오면 신앙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그걸 봤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모든 전도사들은 교육 전도사를 막론하고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나온 이야깁니다.
제가 시골교회에서 독목회를 하면서 처녀들은 제 방에도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규례가 지켜지지 않으면 여지없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나름대로 규모랄까 그렇게 철저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지나온 과정을 하나님의 은혜로 숨 쉬며 살아왔습니다. 잘못하면 이상하게 될 뻔했던 모든 일에도 하나님이 보호하셨습니다. 나름대로 선한 규례를 삼고 복음 때문에 나가려 할 때는 하나님이 지켜주심을 알고 있지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됩니다. 흑암에 빠지면 언제 뭐가 닥칠지…. 흑암에 빠지면 순간에 넘어갑니다.
뭔가 규모가 없고 규례가 없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방탕에 빠집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복음 복음 말하면 다 된 줄 알지만 복음이라고 하면서 엉뚱한 짓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복음을 가졌으면 가진만큼 규례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에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용서도 규모를 가지고 용서를 해야지 아무렇게나 한다면 타락입니다. 오히려 죄악의 온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또 강조를 많이 해버리면 율법이 되고 맙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지혜롭게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 유대교와 바리새인의 교리가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토라, 쉐마, 탈무드 정도입니다. 그리고 조직, 전통, 제도, 의식, 율법, 선행, 행위, 공로. 이것들이 복음보다 앞섰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이 있어야 되고 행위가 있어야 되고 선행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복음보다 앞서면 끝납니다. 거기에 모든 흑암은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점을 잘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 그리고 특별히 여러분들도 모르게 원래 갖고 있던 신앙의 역사가 천주교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천주교 뿌리가 있습니다. 강단 자체도 천주교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루터를 통해서 개신교가 나왔지 그 전에는 전부 한 뿌리였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에서는 7가지 성례가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고해성사라고 있습니다. 신부에게 나가서 지은 죄를 다 고백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교리입니다. 천주교에서 어지간히 신앙생활 한 사람들은 자기 과거를 신부에게 다 내어놓았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이 만약 자기 과거를 박목사에게 다 내어놓았다면 부끄러워서 여기에 못 옵니다. 그래서 옛날에 제가 신비할 때는 교인들이 제 앞에 서지를 못했습니다. 성도들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줄 압니다. 그래서 어른들일 수록 지금도 제 앞에 잘 못 섭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걸 못 느끼니까 인사도 하고 웃으며 앞에 서기도 하는데 어른들은 그러지를 못합니다. 천주교인들은 제대로 신앙생활 한 사람은 신부 앞에 못 서게 됩니다. 부끄러워서도 못 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말씀이 좋고 신부가 좋아서 두려워하는 게 아니고 지난 과거의 부끄러운 소치를 다 말해놓았기에 본성적으로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천주교인들은 절대로 신부에게 반항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죄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라는 이것이 엄청나게 잘못된 교리입니다. 고백은 누구에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해야 됩니다. 사람 앞에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분이 제게 와서 “목사님, 이건 목사님만 아십시오. 이건 제가 고백을 안 하면 마음이 괴로워서 안 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뭔가를 고백하려는 분은) 한 번도 용납을 안 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그걸 들었다면 그분은 우리 교회 교인이 안 될 사람입니다. 떠나지요. 그 부끄러움을 가지고 어떻게 평생 목사님 앞에 살겠습니까. 천주교는 이렇게 만들어놓았습니다. 도저히 신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도록 근본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 그 다음에 또 문제 교리가 뭐냐 하면, 종부성사라 해서 죽을 때 되면 영세를 받게 되고 고백을 하고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종부성사를 해야 천국 간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죽을 때 되면 무조건 종부성사한다고 찾아옵니다. 종부성사를 한다고 천국에 가는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갑니다. 그 믿음은 평소에 구원을 누리다가 죽을 때에 구원을 누리면서 가는 게 가장 축복된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구원을 못 누리다가 죽을 때 쯤 되어서 뭔가 지옥도 두렵고 천국도 가고 싶고 해서 어떤 분은 죽을 때에 마지막으로 (믿음을) 고백을 하면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라도 하나님이 믿음 아니 주시면 믿을 수 없고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제가 침산제일교회 박경남 목사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아들 셋이 다 목사인데 주암산에서 집회를 할 때 아버지가 죽음에 임박했습니다. 그래서 맏이는 머리를 붙들고, 둘째 아들은 가슴을 흔들고, 셋째는 다리를 붙잡고 막 흔들면서 “아버지 한 번만 믿는다고 하고 가세요.”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하는 말이 “야야, 안 믿어지는 데는 어떻게 하노?”하고 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믿는 것이지 죽음 직전이라고 해서 몸을 막 흔든다고 믿는 게 아닙니다. 은혜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오신 것이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옛날의 나라면 믿을 것 같습니까? 안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느니 나를 믿어라”고 했을 사람인데 그런 마음이 언제 꺾여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하며 천국의 영광을 깨닫고 누리는 것이 보통 역사가 아닙니다.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만큼 참 행복은 없다는 것을 늘 말씀합니다. 구원은 참 생명을 받는 자라야 이 축복을 누리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주로 천주교에서 공로를 많이 강조하고 그리고 헌금을 많이 강조합니다. 일반 종교계에 다 그런 것이 있지만, 천주교는 별다른 방법으로 강조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직접적 배경이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한 헌금입니다. 돈이 엄청나게 들어간 아주 잘 지은 건축물입니다. (헌금을 걷기 위해) 연옥설을 강조해서 조상이 교회를 옳게 안 나오고 죽으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여기 들어간 사람을 위해 후손들이 돈을 넣으면 돈이 돈 통에 들어가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에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하며 속죄표를 팔았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세계적으로 화려한 베드로 성당입니다. 너무 성경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 루터가 이를 계기로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천주교 비리를 설명하며 95개의 신조를 들어 개혁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루터의 편에 섰습니다. 요즘 우리가 믿는 개신교입니다.
개신교가 프로테스탄트라 하여 무엇에 반항한다는 의미가 있는 배경이 이것입니다. 행위를 강조하고, 특별헌금을 강조하고, 연옥설을 강조합니다. 더군다나 유아림보 사상이 있습니다. 얘들도 믿어야 갑니다. 아니면 부모 믿음을 통해서 이 믿음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잘 모릅니다. 그래서 태․영아부를 중요하게 여기고 많이 장려하고 있잖아요. 어떤 경우든지. 아이들에게도 믿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아림보는 말이 안 됩니다. 얘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하면서 죽어서 지옥도 천국도 아닌 유아림보에 간다고 해서 부모에게 돈을 내게 합니다. 사실상 그 때는 천주교 하나뿐이었으니까 많은 경우 구속과 상관없는 그런 잘못된 교리들이 인본주의를 통해 많이 나왔습니다.
마리아에게 숭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인잔치 때 예수님이 마리아의 말을 잘 들은 것을 근거로 예수님은 효성이 있어서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는다 합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기도문이 나왔습니다. 전부 인본주의입니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려고 보니 마리아를 신성시해야 되어 마리아 무죄설도 만들고 승천설도 만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물으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보지 않습니까. 기도할 때 마리아에게 기도를 많이 합니다. 카톨릭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보니 예수의 이름이 하나도 안 나와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합니다. 같이 동격인가 봅니다. 예수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옵니다. 공적인 메시지를 보낼 때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부터 열까지 복음서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 이루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보증수표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여러분과 저를 위해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대속하신 정도가 아니고 보증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후에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증을 서주겠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이름이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 해결입니다.
■ 오늘날 숨겨져 흐르는 정통의 탈을 쓴 이단이 참 많습니다. 이 이야기를 다음 주에 좀 더 상세히 하기를 원합니다. 정통의 탈을 쓴 집단일수록 삶을 많이 강조합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만 삶 이전에 죽은 자에게 무얼 요구하겠습니까. 생명부터 들어가야 합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생명 들어가면 성장하고 성장하면 바꾸어집니다. 열 살 아이와 서른 살 청년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참 생명으로 성장하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달라집니다.
선함을 강조하고, 말씀보다 구제라든가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행위축복을 많이 강조합니다. 구원 받는 것이 믿음이냐, 행위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성경 자체가 믿음이라고 했지 행위라고는 안 했습니다. 만약 행위가 강조된다면 “구원의 행위가 내게 자랑이 될까 두렵다“고 바울이 친히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합니다. 구원 받는 데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래서 류목사님이 처음 초기에 개척교회를 할 때에 제일 어려웠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이런 환경에서 내가 될 수 없다’는 불신앙 꺾는 것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공할 수 없는 자리에 서면 믿음 없어집니다.
요즘은 내가 조금만 약해지면 건강이 이래서 무엇을 하겠나 하면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빠집니다. 그런데 구원 받고 하나님의 축복 받는 것은 건강문제와 상관없습니다. 안 그러면 벌써 옛날에 죽었지요. 그러니까 무엇을 이해하셔야 하냐 하면, 건강문제 올 때라도 우리에게 믿음 주시기 위해서, 이 믿음의 축복 더하시기 위해서 은혜 더하신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아야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 이런 의미에서 마지막 결론을 내립니다. 렘넌트가 꼭 이해해야 할 것이 복음입니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단, 삼단 아무리 그래도 복음이 이루어지면 그 복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천 년 만 년 이단으로 있다 하더라도 참 복음을 가졌다면 비교가 안 됩니다. 복음은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이것이 잘 이해 안 된 채 렘넌트들이 성장해서 사회에 나가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이해 안 되고 밖에 나가면 하나교회 이단이라고 하더라 하는 소리에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단 속에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복음 가치 바로 붙잡고 있다면 안 넘어집니다. 예전에는 조금 잘못되면 제가 걱정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별로 없습니다. 생명 가지고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면 이단 아니라 백단이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인도와 역사를 붙잡으면 모든 문제가 당할 리 없습니다.
렘넌트를 훈련시키기 이전에 여러분 자신이 복음 바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마16:16,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안 되고, 공자도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길을 주신 적이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생명이 긴급한 재판 상황에서 한 고백입니다.
우리가 정말 이 복음에 대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 베드로가 분명히 성경에 그 고백을 하고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성경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종교가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소크라테스, 공자, 석가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들은 좋지만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은 없습니다. 오직 구원 주는 예수 그리스도. 그것이 확실히 잡혀야 합니다. 이 시간에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이 땅에, 나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할렐루야.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야, 오늘도 정말 복음의 확실한 사실을 붙잡고 구원의 능력을 누리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1. 우리의 신앙 - 처음부터 잘못된 배경
1) 종교 배경, 율법 배경, 인본주의와 신비주의 배경
- 모든 것을 이 잣대로 보려 합니다.
2) 유대적인 배경이 많습니다.
- 구원의 길: 토라, 쉐마, 탈무드, 조직, 전통, 제도와 의식, 율법, 선행, 행위, 공로.
3)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엡2:8-9). 복음이 안 될수록 종교로 돌아갑니다.
4) 율법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고 해서 무(無)율법 주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 복음을 가졌으면 가진 만큼 나름대로 규례가 있어야 합니다(규모가 없으면 방탕해짐).

2. 천주교 교리의 문제
1) 천주교의 7성례 중 문제시 되는 성례 - 고해성사, 종부성사
① 그러나 고백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② 천국은 본인의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만 갑니다.
2) 공로와 헌금을 강조
3) 연옥설을 강조
4) 유아림보 사상
5) 마리아 숭배 사상

3. 정통의 탈을 쓴 이단
1) 삶을 많이 강조(복음보다 삶)
2) 선함을 강조(말씀보다 구제)
3) 행위구원, 행위축복 강조


결론: 렘넌트들과 어른들은 복음을 꼭 이해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이것이 이해 안 되면 렘넌트는 사회에 나가면 넘어지게 됩니다. 렘넌트를 훈련시키기 이전에 어른들은 복음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오직 구원주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마16:16, 행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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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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