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과부의 헌금
2008-07-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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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강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오늘도 주의 종들을 앞세우고 또 약속을 부여하셔서 뜻을 이루고저 주께서 귀한 은혜의 반열 속에 세우셔서 영광을 받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하심이 오늘 개개인에게 가정에 가문에 하나님이 사실적인 능력과 권세로 비추사 이 일에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사실로 쓰임 받는 자들로 축복해 주옵소서.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정말 렘넌트들이 사용되고 또, 렘넌트들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실이 증거될 때에 온 땅이 참 복음으로 증인으로 역사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새 힘으로 은혜 입혀 주시옵소서. 연약한 종을 붙드시고 주께서 친히 말씀하셔서 모든 증거와 은혜 역사가 오늘도 렘넌트들 통해서 또, 이 자리에 참여한 하나님의 백성들, 특별히 귀한 렘넌트들을 통해서 성취되고 이루어지는 사실을 보도록 은혜 입혀 주시옵소서. 그래서 실시간 렘넌트들이 복음 붙잡고 설 때에 어디에 서든지, 어디에서 일하든지 새 힘으로 새 능력으로 축복받는 자들로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나이다 아멘.
오늘 말씀은, 렘넌트들이 복음 안에서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렘넌트들이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복음을 통해 실제적인 감사나 혹, 기쁨의 삶이 잘 누리지 못하는 부분을 봅니다. 이것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될 수 있으면 2부 예배순서에서는 렘넌트들이 가져야 할 복음의 약속에 대해 주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렘넌트들이 자라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날의 과거 속에서도 느꼈지만 대예배 시간 속 설교의 어느 부분을 붙잡고 약속을 성취해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성취되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꼭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계 복음화의 역사 속에 쓰임 받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이 성취되는 적은 한 부분이라도 구체적인 실행에 옮길 때에 메시지가 말씀의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이슈가 되는 것은, 실시간 메시지를 듣는 자와 똑같은 심정으로 복음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인터넷 방송이라 했을 때, 떠올리는 생각들이 열심 있는 교인이나 듣고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물론 열심 있는 교인이 들어야 합니다만, 열심 없는 교인들도 들을 수 있는 믿음만 되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열심 없는 교인들처럼 들으나 마나 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약속된 것을 붙잡아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씀 받을 것을 강조하고 있고 이렇게 이해되는 만큼 문제는 해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이런 시각을 통해 무엇이 이행되어지냐면, 하나님의 말씀은 붙잡히면 붙잡힐수록 또, 실제적으로 말씀이 붙잡혀서 성취되어 질수록 실제적으로 그 말씀은 나와 여러분과 또, 특별히 렘넌트들 마음속에 성취되어 가는 실제적인 메시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어떤 습관으로 메시지를 듣고 있는지가 훈련되어 있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반드시 메시지를 듣는 습관 속에서 열매 맺을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어린 렘넌트들의 습관이 대개 겉으로는 열심인 것 같고 메시지를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적은 것 하나라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는 메시지 듣다가 산만해져서 메시지를 채 듣지도 않고 밖에 나가버리기도 하는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말씀을 듣게 하실 때에 반드시 그 말씀을 그 사람을 통해 실천하게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메시지 듣는 훈련이 안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변명만 자꾸 늘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사람에게 듣게 하셨고 그 사람에게 말씀하실 때,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에 일일이 크고 작은 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특별히, 세계를 약속하신 렘넌트들에게 축복하셨다는 것이 꼭 시행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자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안되는 상태에서 렘넌트들이 언약을 가진다는 것은 막연한 일입니다. 언제 이뤄지고 언제 될는지 모를 것 같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메시지를 붙잡고 메시지가 성취되는 일이기에 구체적인 역사를 하나님이 이뤄나가시며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렘넌트들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2부 예배는 렘넌트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렘넌트들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야 하며 또, 일반 교우들이 어떻게 말씀을 받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설교 듣고 은혜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은혜 받은 그 증거를 약속하셨습니다. 렘넌트가 말씀에 은혜받고 증거의 역사를 붙잡는다는 것은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그 증거의 역사를 붙잡는 것에 실제적인 증거의 역사가 우리 가슴속에 사실화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 이 일이 이뤄지겠구나,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았는데, 이것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겠구나” 하는 이런 구체적인 헌신의 확증이 확실하게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붙잡고 증거를 내가 확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실제적으로 그 증거를 확보하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 속에 기록되어 집니다. “이 사람이 혹은, 이 아이가 어느 시기에 증거의 메시지를 붙잡았구나. 그 증거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을 뒤엎을 중요한 사명을 받았구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증거라든가 체험이라든가 구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기도 합니다만, 이것도 중요하지만 체험이 안되고 이해 안되도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체험이 되고 말씀으로 체험된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사실이 나의 사실로 확보된다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체험이나 우리의 생각으로 끌 고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은 당신의 사실 속에 여러분과 제를 세워 이 사실을 확보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해 안 되고 증거 속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참 힘듭니다. 그 이유는 증거로 세워주실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증거를 세워주실 이는 하나님이 그 증거로 세워주시기 위해서 확실히 예배드리는 개개인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의 사실이 내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예배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그 사람에게 분명한 증거로 체험을 주십니다. 성령을 통해 체험 하도록 하는 것이 약속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예배는 항상 허전하게 됩니다. 뭔가 기대하고 예배 드렸는데, 체험이 있을 줄 믿었는데 허전하다면 잘못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않으면 예배를 통해 약속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증거가 예배 속에서 모든 천하 만백성을 구원할 수 있는 성도의 증거가 확보되면, 어디를 가든 자기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잡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적인 배경을 가지고 반드시 이 증거의 언약은 내가 큰일을 사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이 이 일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은혜 못 받은 것이 나 때문에 그런가? 하나님이 은혜 안주셔서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 이런 생각 속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은혜 못 받습니다. 은혜받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성령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 했습니다.
초대 교회 모든 사람들은 다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았고 성령의 은혜의 충만함을 가지고 오신 하나님은 똑같이 예배드리는 순간에 초대교회에 첫 번째 시작이 성령 충만의 역사였습니다.
그 어느 단체보다도 가장 많이 성령의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교단이 있다면 그 중 한 교단은 장로교 교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첫 번부터 출발이 성령께서 반드시 예배 속에서 은혜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만, 그 약속한 증거가 본인에게 믿음으로가 아닌 희미한 부분으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예배 시간 안에는 예배를 통해서 분명히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약속 받았다고 해도, 장로교가 아닌 사람은 이 약속을 잘 잡고 있다는 것은 계약이 틀린 문제 입니다. 오늘, 이 문제부터 확인 시켜야 합니다. 반드시 여러분은 한 주간 동안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모든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성령 충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성령 충만을 주실 줄 믿고 매달리면 구체적인 증거를 주십니다.
옛날 장로교 시절에 힘들었잖아요. 그때 한참 오순절계에서 성령 충만을 강조하고 할 때, 뭔가 증거를 받고 해야 성령 충만을 받은 줄로 착각하고 예배를 드릴 때는 뭔가 찌릿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개념 없이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 주신다는 성령의 역사” 에 대한 간구조차도 없이도 예배에 이런 약속이 있다는 것을 믿고 예배에 참여했을 때는, 전혀 다른 능력을 표현할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이 살아계심으로 역사하시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예배드리게 하시고 예배드리게 하실 때, 반드시 예배 속에 참여하게 하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반드시 주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있고 없고의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나간 이야기들이지만 사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원래 장로교 교인들이 예배드리는 폼이 보통 눈을 지그시 감고 반 졸아 가면서 드리는 폼입니다. 초대 장로교 교인들이 모인 곳에서 성령 충만의 약속 믿고 예배를 드렸는데, 이상하게도 이 폼이 바꿔지더라는 것입니다. 장로교 교인들이 눈을 감고 다른 폼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눈은 감았는데 다른 폼으로 넘어가지 않고 확실하게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시작이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장로교 교인들이 핍박 속에서 은혜로 견뎌낸 일이 소문이 났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속에서 그때가 장로교 계통에서 핍박이 심했던 것이 고신측이라 했지요. 그런데 일단 작정하고 예배에 참석 했다면 생명 걸고 참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석하는 시간에 굉장한 속도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엇이 중요하냐?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예배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성령의 충만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삼스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한 주간 준비하고 한 주간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그렇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예배드릴 때에 축복하시기 위한 약속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과 함께 예배드리는 자와 성령으로 함께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깨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깨트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예배의 열매가 있도록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다는 것이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실패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 번도 예배를 실패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실패하셔서 하나님이 예배 분위기를 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서 분위기를 깨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준비하게 하시고 한 주간 동안 알게 하신 분은 반드시 한 주간 동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만 하나님께 확인되어도 그 예배는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이상한 행동을 안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중심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이 믿음으로 가는 길을 조정해도 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굉장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배에 성공하도록 하게 하실 때 예배에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임재의 역사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조용히 앉아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역사하심을 내가 보장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이 예배드리는 동안 확인되면 10사람이면 10사람 20사람이면 20사람 하나님은 그 확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확인이 내게 조금만 이뤄지면 함께 그 만큼 함께 드린 여러분 예배는 굉장한 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교회가 당장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들이 예배드릴 때에, 내가 예배드리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만 내 개인에게 체험되어도 실제적인 능력과 역사가 나오는데 어찌해서 나는 그것이 안 나오느냐 그 실제적인 증거를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믿지를 않아요.
그래서 여러분, 다음 주에 오실 때에 조금만 생각해보세요. 내가 이번 주일이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이 체험된다면 역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체험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반드시 거기에 힘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성령으로 역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요, 신령과 진정으로 정말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이 세계복음화 하시기 위해서 이미 시작을 하셨다 할 때는 나와 상관없이 하십니다. 왜? 내가 잘 알았고, 내가 열심히 했고, 내가 노력했기 때문에 알았다 그게 아닙니다. 이 사실을 나도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이 아는 걸로 끝나지 않고 나와 동행하며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축복이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일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고 실제로 이 역사를 위해서 기다리고 역사를 위해서 체험하기를 바라고 나가는 그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체험이 도비니다. 기억이 도비니다. 그리고 그것은 간단하게 체험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우리 인간이 좀 바보스럽고 좀 멋스러운 것이 없어도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자의 심정을 헤아려 굉장히 멋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이 정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로 체험하고, 이런 구체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하나님은 약속하고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만큼 변화가 나옵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첫 번부터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되느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우리 장로교에서 많은 경우 예배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 분위기가 참 성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분위기가 되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어떤 자세로 했던지 이런 자세로 조금만, 아니 이런 자세로 몇 달만 흐르면, 아,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구나,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체험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은혜 많고 아무리 예배드리는 품성들이 좋다고 할지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이 훈련, 준비가 안 되면 그 다음에는 따라오는 게 없어요. 그 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아주 무절제한, 습관적으로도 이것이 잘 교감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에서 특별히 예배에 중요한 과정에 있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데,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라. 그런데 그 성령으로 예배를 드릴 때에 중요한 것이 뭐냐? 지금 성령으로 예배드리는 교감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된다.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배드리는 사람이 오래도록 예배드리고 살았지만 실제적인 이런 예배의 순서가 안 된다면 예배는 그건 그냥 멍하게 있다가 가는 겁니다. 그리고 또 사실로, 이런 실제적인 예배의 분위기나 예배의 규제가 내가 어떤 뭐 이런 소리 질렀다, 저런 소리 질렀다 그게 아니고 정말 내가 예배드리는 속에 한 번씩 스쳐가거나 한 번씩 내 인간 속에 지나가거나 이거는 말하자면 거짓이 아닌 사실적인 체험으로 한 번씩이라도 부딪힌다면 달라집니다. 한 달에 한 번씩만 해도 됩니다. 아니 한 달에 반 번씩만 해도 됩니다.
여러분,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예배 간 속에 여러분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이 나의 마음을, 나의 생각을 붙잡고 있구나 한 번만 체험하면 눈이 달라집니다. 이 체험이 안 되고 그것이 오래도록 습관이 되어져가지고 오늘 뭐 또 되겠나 지금까지도 안 됐는데……. 이러고 오니 첫 번부터 시작을 안 해요. 그래가지고는 처음부터 축 늘어져서 졸리기부터 하고.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이 있는데도 이런 사실적인 성령의 역사와 축복이 없다면 진짜 죽는 문제 아닙니까. 예배 속에 딱 한 시간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아니 두 시간을 드린다고 합시다. 한 시간을 드리며 이런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든지 두 시간을 드리며 체험하든지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내가 어떤 자로 예배를 체험했느냐 입니다. 어떤 방관자로 예배에 참여했느냐, 아니면 말도 안 되는 건달식 예배로 참여했느냐. 그거는 표현할 수 없는 이것과 저것과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류 목사님이 핵심집회 와서 예배드릴 때에 예배에 대한 자세를 강조하시더라고요. 내가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심정입니다. 한 시간을 참여해도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참여해야 합니다. 아니면 두 시간을 참여해도 성령의 역사로 참여하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 시간, 두 시간 참여하고 나면 솔직히 말해서 어느 때보다도 속이 시원했다하는 것도 괜찮아요. 안 시원하고 답답한 것보다는 백 번 천 번 낫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내 영혼이 은혜를 입었구나, 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구나 하는 것과 나가면서 뭔 말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거는 죽을 맛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생각하지 마시고 반드시 이 시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다. 반드시 이 시간에 하나님이 나가 예배드리고 은혜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원하심이 바로 이것이구나. 그렇게 되면 앉아가지고 기도하는 첫 자세부터 달라집니다. 괜히 그렇지도 않은데도 예배를 드린다고 앉아있으면 몸부터 떨려요. 그러면서 이상하게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부여하지요. 아 이번 시간에는 은혜 주시겠다. 사실 별로 은혜 주시지도 않는데 은혜 많이 받았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왜 제가 이런 말을 자꾸 하느냐? 실제화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 드렸다? 실제화 되어야 합니다. 한 주간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 듣고 나가는 자들이, 예배 끝나고 나가면서 실제화 되어야 합니다. 아, 맞다. 이런 은혜와 축복을 내가 받았구나. 그리고 그 힘을 얻은 사람들이 집에 가서 모여서 예배드리면 더 말할 것 없어요.
그래서 오늘 제가 많은 것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구요. 렘넌트들이 예배 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나오면 하나님이 그에게 그 준비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주변을 또 준비시켜서 엄청난 은혜의 역사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꼭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목사가 유능하다, 목사가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이후부터는 반드시 조금이라도 마음에 이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세계 속에 약속한 바를 이루시기를 원하시오니 주의 은혜와 능력으로 축복하시며 주께서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복음 안에서 렘넌트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서 쓰시기 위해서 부르셨는데, 받은 말씀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때 그 메시지가 성취되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메시지를 받는 습관이 중요한데, 작은 것 하나라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렘넌트와 일반 교우들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야 할 것인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 속에서 실제적인 증거를 보아야 합니다(사실화).
1)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잡고 성취의 증거를 내 자신이 확보해야 합니다.
① 예배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붙잡고 실제적인 증거를 내가 확보하는 것임
② 증거와 체험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이 와야 함
2) 실제적인 말씀 성취의 증거 속에 세워져야 합니다.
① 증거로 세워주실 이는 하나님이심
② 증거가 체험되도록 예배 드리는 개개인에게 성령충만을 약속하심
3)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면 예배를 통해 약속한 증거를 확보하게 됩니다.
① 천하 만백성을 구원할 수 있는 성도의증거가 확보되면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능력 잡고 승리할 수 있음
② 은혜 받을 수 있도록 성령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음
③ 예배 시간에는 예배드림으로 성령충만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
④ 이 약속을 믿고 예배에 참여해야함
2. 예배자의 자세
1)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①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바탕이 되어야 함
② 하나님은 반드시 성령의 충만으로 우리를 인도하심
③ 예배의 열매가 있도록 하나님께 드리고자 해야 함
2) 예배에 성공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① 예배드리는 동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다는 체험이 되어야 함
② 하나님은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나, 나와 동행하시며 그 일을 이루심
③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자의 심정을 헤아리심
3)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① 실제적으로 성령과의 교감이 있어야 함
② 예배 속에서 성령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붙잡고 있음을 체험해야 함
결론: 예배가 실제화 되어야 합니다. 예배 가운데 받은 은혜와 축복을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렘넌트들이 예배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나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렘넌트의 주변을 또 준비시켜서 엄청난 은혜의 역사로 인도하십니다. 이 사실을 꼭 붙잡으십시오.
오늘 말씀은, 렘넌트들이 복음 안에서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렘넌트들이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복음을 통해 실제적인 감사나 혹, 기쁨의 삶이 잘 누리지 못하는 부분을 봅니다. 이것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될 수 있으면 2부 예배순서에서는 렘넌트들이 가져야 할 복음의 약속에 대해 주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렘넌트들이 자라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난날의 과거 속에서도 느꼈지만 대예배 시간 속 설교의 어느 부분을 붙잡고 약속을 성취해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성취되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꼭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계 복음화의 역사 속에 쓰임 받도록 하기 위해서 말씀이 성취되는 적은 한 부분이라도 구체적인 실행에 옮길 때에 메시지가 말씀의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 이슈가 되는 것은, 실시간 메시지를 듣는 자와 똑같은 심정으로 복음 메시지를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인터넷 방송이라 했을 때, 떠올리는 생각들이 열심 있는 교인이나 듣고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물론 열심 있는 교인이 들어야 합니다만, 열심 없는 교인들도 들을 수 있는 믿음만 되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열심 없는 교인들처럼 들으나 마나 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약속된 것을 붙잡아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말씀 받을 것을 강조하고 있고 이렇게 이해되는 만큼 문제는 해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이런 시각을 통해 무엇이 이행되어지냐면, 하나님의 말씀은 붙잡히면 붙잡힐수록 또, 실제적으로 말씀이 붙잡혀서 성취되어 질수록 실제적으로 그 말씀은 나와 여러분과 또, 특별히 렘넌트들 마음속에 성취되어 가는 실제적인 메시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실은, 어렸을 때부터 어떤 습관으로 메시지를 듣고 있는지가 훈련되어 있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반드시 메시지를 듣는 습관 속에서 열매 맺을 수 있는 실제적인 힘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어린 렘넌트들의 습관이 대개 겉으로는 열심인 것 같고 메시지를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적은 것 하나라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입니다.
그리고 어릴 때는 메시지 듣다가 산만해져서 메시지를 채 듣지도 않고 밖에 나가버리기도 하는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말씀을 듣게 하실 때에 반드시 그 말씀을 그 사람을 통해 실천하게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메시지 듣는 훈련이 안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변명만 자꾸 늘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사람에게 듣게 하셨고 그 사람에게 말씀하실 때,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통해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에 일일이 크고 작은 일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특별히, 세계를 약속하신 렘넌트들에게 축복하셨다는 것이 꼭 시행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자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안되는 상태에서 렘넌트들이 언약을 가진다는 것은 막연한 일입니다. 언제 이뤄지고 언제 될는지 모를 것 같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메시지를 붙잡고 메시지가 성취되는 일이기에 구체적인 역사를 하나님이 이뤄나가시며 이뤄주신다는 것입니다.
렘넌트들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2부 예배는 렘넌트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렘넌트들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야 하며 또, 일반 교우들이 어떻게 말씀을 받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설교 듣고 은혜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은혜 받은 그 증거를 약속하셨습니다. 렘넌트가 말씀에 은혜받고 증거의 역사를 붙잡는다는 것은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그 증거의 역사를 붙잡는 것에 실제적인 증거의 역사가 우리 가슴속에 사실화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 이 일이 이뤄지겠구나,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았는데, 이것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겠구나” 하는 이런 구체적인 헌신의 확증이 확실하게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붙잡고 증거를 내가 확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실제적으로 그 증거를 확보하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 속에 기록되어 집니다. “이 사람이 혹은, 이 아이가 어느 시기에 증거의 메시지를 붙잡았구나. 그 증거의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을 뒤엎을 중요한 사명을 받았구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증거라든가 체험이라든가 구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기도 합니다만, 이것도 중요하지만 체험이 안되고 이해 안되도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이 말씀으로 체험이 되고 말씀으로 체험된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사실이 나의 사실로 확보된다면,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체험이나 우리의 생각으로 끌 고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은 당신의 사실 속에 여러분과 제를 세워 이 사실을 확보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해 안 되고 증거 속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참 힘듭니다. 그 이유는 증거로 세워주실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증거를 세워주실 이는 하나님이 그 증거로 세워주시기 위해서 확실히 예배드리는 개개인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의 사실이 내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예배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그 사람에게 분명한 증거로 체험을 주십니다. 성령을 통해 체험 하도록 하는 것이 약속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예배는 항상 허전하게 됩니다. 뭔가 기대하고 예배 드렸는데, 체험이 있을 줄 믿었는데 허전하다면 잘못된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않으면 예배를 통해 약속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증거가 예배 속에서 모든 천하 만백성을 구원할 수 있는 성도의 증거가 확보되면, 어디를 가든 자기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잡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적인 배경을 가지고 반드시 이 증거의 언약은 내가 큰일을 사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이 이 일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은혜 못 받은 것이 나 때문에 그런가? 하나님이 은혜 안주셔서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나?” 이런 생각 속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은혜 못 받습니다. 은혜받기 위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성령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 했습니다.
초대 교회 모든 사람들은 다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았고 성령의 은혜의 충만함을 가지고 오신 하나님은 똑같이 예배드리는 순간에 초대교회에 첫 번째 시작이 성령 충만의 역사였습니다.
그 어느 단체보다도 가장 많이 성령의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교단이 있다면 그 중 한 교단은 장로교 교단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첫 번부터 출발이 성령께서 반드시 예배 속에서 은혜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만, 그 약속한 증거가 본인에게 믿음으로가 아닌 희미한 부분으로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예배 시간 안에는 예배를 통해서 분명히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을 약속 받았다고 해도, 장로교가 아닌 사람은 이 약속을 잘 잡고 있다는 것은 계약이 틀린 문제 입니다. 오늘, 이 문제부터 확인 시켜야 합니다. 반드시 여러분은 한 주간 동안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인 모든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성령 충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성령 충만을 주실 줄 믿고 매달리면 구체적인 증거를 주십니다.
옛날 장로교 시절에 힘들었잖아요. 그때 한참 오순절계에서 성령 충만을 강조하고 할 때, 뭔가 증거를 받고 해야 성령 충만을 받은 줄로 착각하고 예배를 드릴 때는 뭔가 찌릿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개념 없이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 주신다는 성령의 역사” 에 대한 간구조차도 없이도 예배에 이런 약속이 있다는 것을 믿고 예배에 참여했을 때는, 전혀 다른 능력을 표현할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이 살아계심으로 역사하시면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예배드리게 하시고 예배드리게 하실 때, 반드시 예배 속에 참여하게 하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반드시 주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있고 없고의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지나간 이야기들이지만 사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원래 장로교 교인들이 예배드리는 폼이 보통 눈을 지그시 감고 반 졸아 가면서 드리는 폼입니다. 초대 장로교 교인들이 모인 곳에서 성령 충만의 약속 믿고 예배를 드렸는데, 이상하게도 이 폼이 바꿔지더라는 것입니다. 장로교 교인들이 눈을 감고 다른 폼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눈은 감았는데 다른 폼으로 넘어가지 않고 확실하게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시작이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장로교 교인들이 핍박 속에서 은혜로 견뎌낸 일이 소문이 났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속에서 그때가 장로교 계통에서 핍박이 심했던 것이 고신측이라 했지요. 그런데 일단 작정하고 예배에 참석 했다면 생명 걸고 참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석하는 시간에 굉장한 속도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무엇이 중요하냐?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예배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성령의 충만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삼스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한 주간 준비하고 한 주간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 그렇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예배드릴 때에 축복하시기 위한 약속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과 함께 예배드리는 자와 성령으로 함께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깨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깨트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예배의 열매가 있도록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다는 것이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실패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 번도 예배를 실패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실패하셔서 하나님이 예배 분위기를 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서 분위기를 깨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준비하게 하시고 한 주간 동안 알게 하신 분은 반드시 한 주간 동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만 하나님께 확인되어도 그 예배는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이상한 행동을 안 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중심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나도 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이 믿음으로 가는 길을 조정해도 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굉장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배에 성공하도록 하게 하실 때 예배에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임재의 역사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조용히 앉아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역사하심을 내가 보장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사모하고 있다는 것이 예배드리는 동안 확인되면 10사람이면 10사람 20사람이면 20사람 하나님은 그 확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확인이 내게 조금만 이뤄지면 함께 그 만큼 함께 드린 여러분 예배는 굉장한 힘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교회가 당장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들이 예배드릴 때에, 내가 예배드리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만 내 개인에게 체험되어도 실제적인 능력과 역사가 나오는데 어찌해서 나는 그것이 안 나오느냐 그 실제적인 증거를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믿지를 않아요.
그래서 여러분, 다음 주에 오실 때에 조금만 생각해보세요. 내가 이번 주일이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이 체험된다면 역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체험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반드시 거기에 힘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성령으로 역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요, 신령과 진정으로 정말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이 세계복음화 하시기 위해서 이미 시작을 하셨다 할 때는 나와 상관없이 하십니다. 왜? 내가 잘 알았고, 내가 열심히 했고, 내가 노력했기 때문에 알았다 그게 아닙니다. 이 사실을 나도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이 아는 걸로 끝나지 않고 나와 동행하며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축복이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일날 하나님이 성령의 역사고 실제로 이 역사를 위해서 기다리고 역사를 위해서 체험하기를 바라고 나가는 그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체험이 도비니다. 기억이 도비니다. 그리고 그것은 간단하게 체험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우리 인간이 좀 바보스럽고 좀 멋스러운 것이 없어도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자의 심정을 헤아려 굉장히 멋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이 정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로 체험하고, 이런 구체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하나님은 약속하고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만큼 변화가 나옵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첫 번부터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되느냐, 이런 문제를 가지고 우리 장로교에서 많은 경우 예배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 분위기가 참 성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분위기가 되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어떤 자세로 했던지 이런 자세로 조금만, 아니 이런 자세로 몇 달만 흐르면, 아,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구나,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깨닫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때부터 실제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체험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은혜 많고 아무리 예배드리는 품성들이 좋다고 할지라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이 훈련, 준비가 안 되면 그 다음에는 따라오는 게 없어요. 그 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아주 무절제한, 습관적으로도 이것이 잘 교감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에서 특별히 예배에 중요한 과정에 있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데,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라. 그런데 그 성령으로 예배를 드릴 때에 중요한 것이 뭐냐? 지금 성령으로 예배드리는 교감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된다.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예배드리는 사람이 오래도록 예배드리고 살았지만 실제적인 이런 예배의 순서가 안 된다면 예배는 그건 그냥 멍하게 있다가 가는 겁니다. 그리고 또 사실로, 이런 실제적인 예배의 분위기나 예배의 규제가 내가 어떤 뭐 이런 소리 질렀다, 저런 소리 질렀다 그게 아니고 정말 내가 예배드리는 속에 한 번씩 스쳐가거나 한 번씩 내 인간 속에 지나가거나 이거는 말하자면 거짓이 아닌 사실적인 체험으로 한 번씩이라도 부딪힌다면 달라집니다. 한 달에 한 번씩만 해도 됩니다. 아니 한 달에 반 번씩만 해도 됩니다.
여러분,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예배 간 속에 여러분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성령이 나의 마음을, 나의 생각을 붙잡고 있구나 한 번만 체험하면 눈이 달라집니다. 이 체험이 안 되고 그것이 오래도록 습관이 되어져가지고 오늘 뭐 또 되겠나 지금까지도 안 됐는데……. 이러고 오니 첫 번부터 시작을 안 해요. 그래가지고는 처음부터 축 늘어져서 졸리기부터 하고.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이 있는데도 이런 사실적인 성령의 역사와 축복이 없다면 진짜 죽는 문제 아닙니까. 예배 속에 딱 한 시간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아니 두 시간을 드린다고 합시다. 한 시간을 드리며 이런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든지 두 시간을 드리며 체험하든지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내가 어떤 자로 예배를 체험했느냐 입니다. 어떤 방관자로 예배에 참여했느냐, 아니면 말도 안 되는 건달식 예배로 참여했느냐. 그거는 표현할 수 없는 이것과 저것과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류 목사님이 핵심집회 와서 예배드릴 때에 예배에 대한 자세를 강조하시더라고요. 내가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심정입니다. 한 시간을 참여해도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참여해야 합니다. 아니면 두 시간을 참여해도 성령의 역사로 참여하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 시간, 두 시간 참여하고 나면 솔직히 말해서 어느 때보다도 속이 시원했다하는 것도 괜찮아요. 안 시원하고 답답한 것보다는 백 번 천 번 낫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내 영혼이 은혜를 입었구나, 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구나 하는 것과 나가면서 뭔 말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거는 죽을 맛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생각하지 마시고 반드시 이 시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다. 반드시 이 시간에 하나님이 나가 예배드리고 은혜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원하심이 바로 이것이구나. 그렇게 되면 앉아가지고 기도하는 첫 자세부터 달라집니다. 괜히 그렇지도 않은데도 예배를 드린다고 앉아있으면 몸부터 떨려요. 그러면서 이상하게 자기도 모르게 감동을 부여하지요. 아 이번 시간에는 은혜 주시겠다. 사실 별로 은혜 주시지도 않는데 은혜 많이 받았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왜 제가 이런 말을 자꾸 하느냐? 실제화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 드렸다? 실제화 되어야 합니다. 한 주간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 듣고 나가는 자들이, 예배 끝나고 나가면서 실제화 되어야 합니다. 아, 맞다. 이런 은혜와 축복을 내가 받았구나. 그리고 그 힘을 얻은 사람들이 집에 가서 모여서 예배드리면 더 말할 것 없어요.
그래서 오늘 제가 많은 것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은 없구요. 렘넌트들이 예배 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나오면 하나님이 그에게 그 준비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주변을 또 준비시켜서 엄청난 은혜의 역사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꼭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목사가 유능하다, 목사가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이후부터는 반드시 조금이라도 마음에 이 마음만 먹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세계 속에 약속한 바를 이루시기를 원하시오니 주의 은혜와 능력으로 축복하시며 주께서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복음 안에서 렘넌트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서 쓰시기 위해서 부르셨는데, 받은 말씀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때 그 메시지가 성취되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메시지를 받는 습관이 중요한데, 작은 것 하나라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렘넌트와 일반 교우들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야 할 것인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 속에서 실제적인 증거를 보아야 합니다(사실화).
1)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잡고 성취의 증거를 내 자신이 확보해야 합니다.
① 예배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붙잡고 실제적인 증거를 내가 확보하는 것임
② 증거와 체험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믿음이 와야 함
2) 실제적인 말씀 성취의 증거 속에 세워져야 합니다.
① 증거로 세워주실 이는 하나님이심
② 증거가 체험되도록 예배 드리는 개개인에게 성령충만을 약속하심
3)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면 예배를 통해 약속한 증거를 확보하게 됩니다.
① 천하 만백성을 구원할 수 있는 성도의증거가 확보되면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능력 잡고 승리할 수 있음
② 은혜 받을 수 있도록 성령을 주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음
③ 예배 시간에는 예배드림으로 성령충만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
④ 이 약속을 믿고 예배에 참여해야함
2. 예배자의 자세
1)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①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바탕이 되어야 함
② 하나님은 반드시 성령의 충만으로 우리를 인도하심
③ 예배의 열매가 있도록 하나님께 드리고자 해야 함
2) 예배에 성공할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① 예배드리는 동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다는 체험이 되어야 함
② 하나님은 나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나, 나와 동행하시며 그 일을 이루심
③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자의 심정을 헤아리심
3) 반드시 성령의 역사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① 실제적으로 성령과의 교감이 있어야 함
② 예배 속에서 성령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붙잡고 있음을 체험해야 함
결론: 예배가 실제화 되어야 합니다. 예배 가운데 받은 은혜와 축복을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렘넌트들이 예배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나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 렘넌트의 주변을 또 준비시켜서 엄청난 은혜의 역사로 인도하십니다. 이 사실을 꼭 붙잡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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