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실패현장에 찾아오시는 예수님(노)
2008-11-2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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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오늘 이 본문을 가지고 「실패현장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고 때로는 실패하는 것 같아 보이는 문제들이 우리에게 닥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나고 보면 가장 좋은 시간이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실제로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는 굉장히 힘들고 어렵고 모든 것들이 무너질 것 같은,나만 이런 일을 당하는 듯 할 때가 많다는 것이죠. 하지만 성도에게는 분명히 준비된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어려움 속에 있던 성경의 인물들은 어떻게 지냈는가를 살펴볼까 합니다. 특별히 세계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8~19세기에 인본주의가 일어날 때, 하나님은 없고 인간이 중요하다 외치던 그때에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전 세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전 세계 경제가, 신자유주의라고 모든 것을 놔두면 된다고 하는 시대가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어렵고 힘든 시기가 왔다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일으킬 수 없는 역사라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그것을 생각하면서 이 시대를 바라보고 또, 우리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성경 속에 어려움을 당한 위대한 인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모세죠. 모세의 출신과 성장은 아주 호화롭고 멋있게 했습니다. 그가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었지만 애굽 최고의 국가의 왕족으로 왕국에서 교육받고 입고 먹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40을 넘어서면서 굉장한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광야로 도망갈 수밖에 없고,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며 남은 생을 보낼 수밖에 없는 모새의 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죠. 지금 이야기하자면 실직자가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이런 삶이 계속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죽어야 이런 삶이 끝날 것 같은 그런 절망과 낙망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차라리 목동으로 태어났다면, 차라리 교육받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 텐데, 이 모세에게는 많은 지식과 많은 것을 보고 들은 경험이 있었기에 그냥 이렇게만 살 수 없을 것 같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 속에 있는 모세의 현실입니다.
고통이 힘든 이유는 뭡니까?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은 바로 끝이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시험 치는 날짜만 지나면 영화 보러 갈 것이다, 그 날짜만 지나면 무엇을 할 것이라는 정해진 날짜를 두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지면서 보게 되는 것은 고통이 오는데 그 고통의 끝이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합니다. 병에 걸렸는데, 그 병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에 낙망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죠. 감기는 2주만 지나면 끝납니다. 버티거나 약 먹으면 되고, 약 먹지 않아도 그냥 지나가는데, 고통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때때로 저 사람 보다는 내가 났다고 생각했는데 저 사람은 승승장구하고 나는 계속 내리막길로 내리꽂고 있을 때, 어떻습니까? "저 불신자는 잘되는데 하나님 나는 왜 이렇습니까? 저 사람은 인본주의 쓰고 저 사람은 나쁜 짓하고 저 사람은 엉뚱한 짓하고 있는데도 저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나는 왜 안됩니까?" 라는 신세 한탄이 섞인 기도들이 우리에게 터져 나올 때가 있다는 것이죠.
가족들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고개들 수 없는 일들이, 기죽기 싫은데 기죽기 싫은 사람 옆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모세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는데, 모세는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애굽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줄로 알았는데, 애굽 근처도 못가는 그런 존재로 전락해버렸고, 남은 인생 몇 살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재산 하나 모을 수 없고 남에게 빌붙어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이 된 모세였던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계획을 가지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모세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40년, 이스라엘에게는 400년의 이라는 긴 시간이 하나님에게는 너무 너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고통이 있고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끝을 맺을 시간이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사실이죠. 그때는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어떤 봉사가 앉아 있었는데, 늘 한 곳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곳을 지나면서 "저 사람은 죄를 지어서 그렇다" 혹은 "부모가 더러워서 이런 인간이 나왔다"며 비난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사람과 그 제자들이 지나며 묻습니다. "예수님, 이 사람은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이 사람의 부모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시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돈 벌면 얼마나 벌고 권력을 가지면 얼마나 가지고, 성공을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다 되는 것입니다.
또 한사람 엘리야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비 오지 않기를 기도하면 비가 안 옵니다. 비 오기를 기도하면 비가 오기 시작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근본적인 산업을 마음대로 쥐어 흔든 사람이 엘리야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 아합 왕이 엘리야를 죽이기 위해 추격했습니다. 또,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숨어 있다가 나타나서 아합 왕에게 제안을 합니다.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불러 모으라. 그리고 내가 누가 참 하나님인지 보이겠다"는 제안에 아합 왕이 수락하게 됩니다. 온 이스라엘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 때 당시는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왕의 수배령을 내린 엘리야가 몇 년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나타났습니다. 850명이나 되는 선지자들과 왕과 왕비, 그리고 모든 대신들과 백성들이 한 곳에 모여 이 재미있을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선지자들에게 "소를 잡고 각을 떠서 각 신에게 기도해라"고 엘리야가 제안합니다. "만약 제단위에 불이 떨어지면 그 신이 진짜 신이다" 그러고 나니까 850명의 선지자들이 기도를 합니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여기 오신 분이 다 무당이 되어 춤을 추는데, 급기야는 자기 몸에 피를 흘려가며 무당춤을 추는데, 아무리 춤을 추고 기도해도 불이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엘리야가 선지자들을 우롱합니다. "너희 신이 자는가보다 더욱 기도하라" 그런 후 엘리야가 엘리야가 쌓은 제단위에 물을 붓고 기도합니다. 기도하자마자 불이 떨어져서 그 쌓은 단들이 다 타버리는 일을 보게 됩니다. 850명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이는 불같은 선지자 엘리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왕기상 19장에는 "하나님 나를 죽여주십시오." 라고 합니다. "이제 내가 아무리 기적을 보이고 능력을 보이고 다 죽여도 아합과 이세벨은 회개하지 않고 그 누구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젠 나만 남았습니다. 나 밖에 없습니다" 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잘하는 것 같았는데, 전도도 하고 전도를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는데도 아무도 영접하지 않고 비난받게 되고 그러면서 감정적으로 고갈되어지고, 감정적으로 다운되어집니다. "하나님 이제 나 죽고 싶습니다" 라고 할 만큼 힘들어집니다.
자살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없다고 자살합니까? 문제 생겼다고 자살합니까? 만약 그렇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어야 했겠죠. 내가 믿었던 그 마지막 한 가지가 나를 무너트리고 나를 배신할 때, 아무것도 믿을 것이 없구나 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끊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아무런 결과가 없을 때, "내가 죽으면 네 양심을 가책을 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자살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죽고 싶을 만큼 코너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호렙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회오리바람이 지나지만 그 가운데도 하나님은 계시지 아니하시고 세미하게 말씀을 주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이 일어날 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엘리야에게 선포되어지는데, "내가 7000명을 숨겨놓았다 엘리사를 세우고 왕을 바꾸라"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아합 왕과 이세벨을 죽이고 싶었겠습니까? 이가 갈리도록 죽이고 싶었는데 이제는 자기도 죽고 싶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왕을 바꾸고 싶어도 ,내가 아무리 성공하고 싶어도 안되지만,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니 바벨탑을 쌓죠. "우리가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내 이름을 나타내고 싶었고, 나 자신이 잘난 것 같았고 절대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아 홍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고 바벨탑만 쌓으면 끝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흩어졌으며 언어도 혼잡케 되었습니다. 서로 의사소통이 어렵게 됨으로 저주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내가 너로 복의 근원을 삼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며, 너 때문에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큰 소리나 작은 소리나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면 되는 것입니다. 말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고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말씀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신앙생활 제일 잘 하는 줄 알았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얼마나 축복하시는지,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너를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가 제일 먼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저주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단 소식을 듣습니다만 고기 잡으러 간다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고기 잡으러 가버렸어요.
우리 모습이 이렇습니다. "나는 신앙생활 제일 잘하고, 그래도 나는 주일날 교회는 못나가도 하나님을 제일 잘 섬기다" 하면서도 오늘 베드로 같이 엉뚱한 곁길로 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묻지요. "고기가 있느냐?" 왜 물으십니까? 고기 잡으러 갔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잡으러 갔으면 고기가 있어야죠. "내가 돈 벌로 가겠습니다" 했을 때, "돈이 있느냐?" 권력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했을 때, "네게 권력이 있냐? 네가 행복하냐?"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거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내가 찾으러간 그것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를 만났던 그 모습을 연상시키기 위해서 "다시 반대편에 그물을 던져보라" 말씀하십니다. 던졌을 때, 고기가 건져 올려집니다. 그제서야 예수님이심을 알아보고는 웃옷을 벗고 있다가 걸쳐 입고는 물속으로 뛰어들어서 예수님께로 갑니다. 예수님이 불을 지펴놓으시고는 "오늘 잡은 고기를 가져오라" 말씀하십니다. 그 고기는 다릅니다. 말씀 따라 간 것이기에 다른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실패는 오늘, 문제가 없는 것이 성공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떠서 잠자리 갈 때까지 아무 일이 없어서 잘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짜 문제는 말씀이 안 들려지고 기도가 안 되어지고 말씀 속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예배의 기쁨 속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란 책 중에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잠수함이 항해중인데 함장이 잠시 쉬기 위해 부함장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휴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흔들리기 시작해서 급히 부함장에게 묻습니다. "아무이상 없느냐?" 부함장은 경례를 하며 "아무이상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 함장은 문을 닫고 다시 쉬러 갔다는 것입니다. 여기 이 예화에서 말하고자하는 바는, 배가 심하게 흔들린다 할지라도 조종하고 있는 곳에서 아무 문제없고 컨트롤 되고 있다면 괜찮은 것이지만, 잠수함 밖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순항하고 있다 할지도, 조종하는 곳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기계가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본부와 연락이 안 되고 또, 군인들 끼리 싸우고 있다면 밖에 아무 문제없어도 이것은 곧 무너지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말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무 문제 없는 것. 그것이 괜찮은 것입니까? 수입이 계속 보장되고, 직장에서 쫓겨날 염려 없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영적 무기력 즉 내가 말씀 속에 있지 않고, 내가 기도 속에 있지 않고 내가 전도의 방향 속에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멀쩡하다면 그것은 정말 멀쩡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죠.
문제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가 가장 힘들고, 3년간 왜 그런 인생을 허비했는지 모르던 상황 속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 찾아오셔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힘이 없다면 세상이 시킨 일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TV에 나오는 광고 하나에 우리는 따라갑니다. 오늘 저녁에 건강프로에서 과일이 건강에 좋다하면, 그 다음날 이 마트에 그 과일 가격이 뛰어 오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다 인줄 압니다. 틀렸다 할 수는 없지만, 멀쩡한 과일을 그냥 먹으면 되는데, 굳이 가격을 올려서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없으면, 나가는 방향과 살아가는 길이 전혀 엉뚱한 것을 향해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풍속을 쫒고 공중권세를 따르고, 두려워하는 종의 영에 의해 지배되어지는 것입니다. 꼼꼼히 준비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만, 그것이 두려워하는 종, 무서워하는 종의 영에 의해 만들어 진 것들이 나를 파괴시키고 주변의 모든 것을 무너트린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발견되어 져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4:1-27에 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와 재앙과 멸망 꺾으셨기에, 그 이름에는 축복과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부르라고 주신 이름, 구원주시기로 주신 그 이름, 그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님에도 불과하고 내가 너무 모자람에도 불구해도 내가 예수 이름 붙잡을 때 지혜가 생기는 것이고, 내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6에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겠다 했습니다. 요한복음 14:14에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이제껏 기도하지 않았지만,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 이름에는 기도할 수 있는 비밀과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힘든 일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속에 내가 말씀 붙잡는 비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도망간 제자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실패한 현장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야곱도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무서워 들판에서 자고 있었는데, 언제 짐승이 나와서 혹은 전갈이 나와서 물지 모르고 얼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잠든 사이에 하나님이 사닥다리로 나타나시게 됩니다. 도망가는 그 현장에서도 하나님은 나타나십니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 이 고통이 끝날까?"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고 계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숨고 싶은 모세와 죽고 싶은 엘리야, 도망가고 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은 말씀을 역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가 완전 절망 속에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7:14에 "처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나라가 무너지고 포로 되어 갈 때는 곧 돌아올 줄 알았는데, 평생 돌아오지 못하고 아내가 죽고, 나라 망하고 왕이 눈이 뽑혀 끌려가게 되었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이사야가 잡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무능합니다. 또 실패하기도 합니다. 또, 영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그 속에 찾아오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와 렘넌트입니다. "저 아이가 무엇이 되겠나?" 싶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렘넌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부로 말할 수 없고 낙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낳아서 하나님의 이상이 보이지 않던 엘리에게, 엘리의 세상 속으로 엘리의 제국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그냥 집에서 키우는 것이 더 좋을 텐데, 한나는 사무엘을 엘리 대제사장에게 맡깁니다. 그 의미는 언약 속에, 말씀 속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 세대에 하나님은 렘넌트가 필요하시기 때문에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이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무능하고, 교회 와서 은혜 받았으면 좋겠는데, 말씀도 안 들리고 또, 영적문제가 모든 것을 함몰시킵니다. 노름에 영적문제를 가진 사람은 가정도 아내도 자식도 다 함몰됩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닌데, 생애를 영적문제가 블랙홀로 점점 끌고 들어갑니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키죠. 내 인생이 전부가 아닌데 영적문제로 인해 함몰시켜 나갑니다.
사단의 큰 전략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이 흑암이며 사단의 세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나를 실패하라고 하지 않는데도 무의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너는 실패할 인생이야" 라고 하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 있는 부정적인 사고들이 나를 끌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당을 몇 번 만나면 무당의 세계관으로 끌려가고 몇 번 더 만나게 되면 결국 신까지 받게 됩니다.
깊은 생각과 무의식속에 말씀이 뿌리내리도록 기도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1:13-14 말씀같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했습니다. 그들이 무능하고, 힘없고, 가치 없고, 그들의 환경은 불리했고, 그들에게는 기도할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무엇을 알았습니까?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증인된다는 사실을 붙잡았기 때문에 기도 속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종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포럼입니다. 요셉은 팔리고 감옥가고 노예로 갔었습니다. 좀 되는듯하더니 팔리고,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안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고 있는 시간표인 것입니다. 이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내 환경을 보며, 문제를 보며, 사건을 보며, 우리 후대를 보면, 교회를 보며 하나님의 언약과 계획을 보는 눈 열리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종일 기도하고 포럼하다가 하나님의 계획 붙잡는 축복과 응답 있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실패하기도 하고 무능하기도 하고 또, 영적문제 속에 있지만 이 흑암권세를 보고 예수 이름 붙잡고 기도의 비밀 속에 들어가는 축복과 응답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기도하다가 응답받게 하시고 기도하다가 생각 바뀌게 하시고 기도하다가 새 힘 얻는 축복 있도록 인도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우리에게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려운 문제가 닥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때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듯 힘들 수도 있지만 성도에게는 분명히 준비된 시간입니다.
1. 어려움을 당할 때 말씀 따라간 성경 속 위인들
(1) 모세
1) 왕궁에서 자랐으나 40세에 고통스런 삶이 시작됨
2) 고통스러운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모세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준비하셨음
3)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고통을 끝내시고 역사를 일으키심
(2) 엘리야
1)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영적대결에서 승리함
2) 그러나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하자 감정적인 고갈상태에 이름(왕상19:4)
3) 죽기를 원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준비하심(왕상19:18)
(3) 베드로
1)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고기 잡으러 가버렸음
2) 진짜 문제는 영적 무기력 속에 있는 것임(말씀․기도․전도의 방향 속에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낌)
3) 베드로가 가장 힘들어 할 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영적인 힘)을 주심
(4) 우리에게 말씀이 없으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 가진 자를 따르고, 두려워하는 종의 영에 의해 지배됩니다.
2.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1)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요14:1-27).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와 재앙, 멸망을 꺾으셨습니다.
2) 그 이름에 축복, 권세, 구원, 능력, 지혜가 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성도에게 주어졌습니다(요14:14).
(2) 하나님은 실패한 현장에 찾아오셔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1)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한 야곱이 잠든 사이에 꿈속에 사닥다리를 보게 하심
2) 숨고 싶은 모세, 죽고 싶은 엘리야, 도망가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말씀 주심
3) 이사야 선지자가 절망 속에 있을 때 사7:14의 말씀을 주심
(3) 우리는 무능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영적인 문제도 있지만, 하나님이 찾아오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3. 더 중요한 것은 렘넌트(후대, 미래)입니다.
(1) 하나님이 언약(말씀) 속에서 렘넌트를 세우십니다(한나가 사무엘을 엘리 대제사장에게 맡김).
(2) 하나님은 분명히 렘넌트를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결론: 영적문제가 우리 인생을 함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큰 전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잠재의식, 무의식, 깊은 생각에 말씀이 뿌리내리도록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종일 할 것은 기도와 포럼입니다. 내 환경, 문제, 사건, 후대, 교회를 보며, 하나님의 언약과 계획을 보는 눈이 열리기를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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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4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3:8-18 2024-12-15
1463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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