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없다(노)
2009-02-0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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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저는 지난주에 산업선교회 산하 기도스쿨에서 운영하는 인턴쉽 비전 트립에 다녀왔습니다. 일정은 지난 24일부터 31일 까지였고, 독일 RUTC 중심으로 프랑크푸르트와 파리를 중심으로 문화와 그들의 삶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이름은 인솔자로 다녀왔는데 프랑스어도 안되고, 독일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영어도 안되고 해서 저도 그저 따라갔다 왔습니다. 권사님 한 분이 가이드 해주셔서 중요한 현장을 보고 온 귀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기도해주신 것 감사드리고, 유럽이란 곳이 역사가 깊고 굉장한 흑암이 덮인 곳임을 확인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없다」라는 제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완전함에 대한 갈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완전함 사람, 완전한 것을 한번도 본적도 없고 누려본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완전한 것에 대한 갈망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몸도 안전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몸에는 굉장한 축복들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육신의 축복과 정신과 마음에 힘을 봐도 또, 영적인 축복을 봐도 굉장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육신에도 아주 ㅁ낳은 호르몬이 흐르며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학자와 의사에 의해 보고되고 있습니다.
농약 때문에 과일도 깎아내지만 과일 껍질에도 농약을 이길 수 있는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뿐만 아니라 우리 몸은 웬만한 더러운 것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는 보고들이 많습니다.
손을 많이 씻으란 말도 있었죠. 작년 연말에 일본에서 이뤄진 포럼에는, 사람들이 손을 너무 많이 씻고 너무 깨끗한 환경 때문에 체내의 저항력과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보고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 보고들을 통해 볼 때, 우리 몸에는 이미 굉장한 호르몬과 이길 수 있는 저항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의 연구포럼에 따르면,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적인 부분에 약함이 와서 몸이 힘을 잃는 것이지 더러운 것을 먹든지 나쁜 것을 먹어 오는 병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오는 병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과 정신을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 뇌를 평생 써도 3~5%밖에 쓰지 못한다 하는데 그만큼 우리 뇌의 용량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뇌를 11% 정도 썼다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 뇌의 용량이 얼마인지에 대한 통계가 정확히 나와야지만 일반적인 사람이 뇌를 몇 퍼센트를 사용하는지가 파악이 가능한데, 어림짐작으로 이정도 아니겠냐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 것이다" 추측하는 것과 일반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뇌나 우리의 마음이 가지는 힘은 대단합니다. 마음이 생각하는바, 믿는 바에 의해 사람들이 되어지는 것은 굉장하다는 것은 요즘 많은 책들을 통해 보게 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람에게만 주신 축복이 있는데 바로 영적인 비밀입니다. 영적인 것을 회복할 때, 육신적인 것, 정신적인 것, 마음의 것들 이상의 축복과 비밀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학자 하루야마 시게오가 쓴 「뇌내혁명」이란 책을 보면, 인간의 뇌에는 신을 만나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며 그 부분이 자극을 받으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엔도르핀보다 수백 배, 수천 배의 달하는 효과의 호르몬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몸, 마음, 정신, 육신이 굉장히 안전하다, 그 어떤 것들보다, 그 어떤 인간이 만들 것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하다는 것들이 보여진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매 순간마다 느끼고 한계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여자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아이 교육에 대한 완벽함에 대한 갈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이죠. 그래서 아이가 원할 때, 울 때, 즉시 젖을 물리고 집도 깔끔하게 청소하고, 밖에서 사먹는것이 굉장히 나쁘다는 보도에 집에서 과자를 만들어서 먹이고, 결코 화가 난 상태에서 아이를 꾸중하거나 때리지 않는 등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언제나 남편의 필요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고,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요구하지 않고, 갓난 아이 때부터 책을 읽어줘서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고, 클래식 음악을 들려줘서 아이들이 클래식을 좋아하게 만들게 하는 등 완벽한 아이 이상의 완벽한 엄마에 대한 갈구들이 항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밤마다 매일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나는 오늘도 과연 좋은 엄마였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항상 부족한 엄마, 때로는 나쁜 엄마, 이렇게 자기를 추락시키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뭐 이만하면 됐지, 나 같은 엄마가 어디 있어?" 라고 말하는 용감한 분이 있다 할지라도 그런 분 마음에도 역시 모자람과 부족함에 대한 상처를 늘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남자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멋진 아빠, 회사가면 능력 있는 부하직원, 상사로서는 얼마든지 부하들을 능력껏 키워줄 수 있는 그런 상사로 서기 위해 몸부림치고 애쓰는데, 항상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남자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핑계거리를 찾고 나 아닌 나를 만들어 놓고 후회하고 원망을 하는 그런 우리들, 사람들,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만들어 놓은, 누구도 완벽한 엄마를 본적을 본 적도 없음에도 완벽한 엄마와 완벽한 아빠에 대한 그림들이 있어요. "나는 얼마나 완벽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갈구들이 계속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완벽합니까?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그런 그림들을 그려가고 후회하고 자책하고 원망하고 할 수 있으면 핑계거리를 찾는 그런 모습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는 과거의 경험과 상처들, 그 상처에 대한 기억들이 우리를 계속 쫓기고 쫓기는 삶으로 끌고 간다라는 것입니다. 어느 면으로 보든지 "우리에게는 복음이 필요하구나, 하나님이 없으면 안되는구나" 란 사실을 발견하는 현실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왜 예수가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한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말해줄 심판자가 있으면 된다" 라는 것입니다. "저 로마인들과 세상 사람들이 다 죽일 놈 들이다" 라고 말해줄 심판자가 있으면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우리는 한번도 노예된 적이 없으며, 우리는 완벽한 사람들이다. 그 어떤 면으로 봐도 우리만큼 깨끗한 사람이 있느냐?" 그런 자만심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신앙생활 할 수 없고 날마다 부딪히는 것이 늘 자신의 한계와 후회와 핑계들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울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 같은 제자 디모데를 향해 주시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서야 할 제자의 모습들을 발견하는 시간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세 가지를 찾으려 합니다. 첫 번째, 1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의 있는 은혜 속에 강하라"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나를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눅15:11-30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아들은 부자집 아들인데, 유산을 일찍 받아 독립하겠다 하고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후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돈도, 친구도 다 떠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결국 쥐엄열매도 먹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한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는구나" 자기를 발견한 것입니다. "나는 아들이라 칭함 받을 자격이 없다" 했는데 바로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라도 있을 동안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뭔가 남아 있고 뭔가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자기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돌아옵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그를 알아보고 달려가서 입을 맞추고 금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기웁니다. 신분이 회복되어진 것입니다. 아들의 신분이 회복되어진 것입니다.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너는 할 수 있어" 혹은 "나는 할 수 있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이 분명히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 그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모양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것이나,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라는 것이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라는 것입니다. 모양은 비슷하나 날마다 부딪히는 한계, "나는 할 수 없다" 라는 한계를 늘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렸습니다.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뭔가 되는 것 같더니만 날마다 안됩니다. 왜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나는 할 수 있어" 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내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내가 오늘도 하나님의 계획안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냐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내가 얼마나 귀한 축복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이 얼마나 크고 완전하냐는 것입니다. 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과거 속에서 나를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과거의 기억이 날마다 나를 짓누르고 과거의 상처가 오늘 나를 말해주고 있는, 누가 "너는 이런 존재였잖아" 라고 말하기 전에, 나 스스로 기억도 없는 문제에서 해방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내가 과거에 이러 이러했어" 라고 곱씹지도, 되내이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거기에 노예다라는 것입니다.
유럽에 잠깐 가봤지만, 굉장히 많은 유산들과 문화들을 느꼈습니다. 같이 간 렘넌트들이 "파리는 도시 전체가 관광지 같아요" 가는 곳마다 돈 내야 하고, 가는 곳마다 볼거리이고, 가는 곳마다 감탄이 터지고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키는 또 얼마나 큰지요. 얼굴은 작은데 코는 얼마나 큰지. 눈도 쑥 들어가고 말이죠. 거울을 보는데, 여기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존재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유산들은 1~2년 만에 만들 수 없는 굉장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삶과 생각의 패턴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여졌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변화를 싫어하고 자기 것만 지키면 되는 나라 였습니다. 파리에는 1년에 수천만 명이 관광을 다녀간다고 합니다. 그 관광 수익만으로도 살 수 있는 나라였습니다. 변화를 싫어하고 변화를 일으킬 필요도 없는, 자기 것들만 지키면 되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교회가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교회,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예수,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역사. 그렇다는 것이죠. 이 사람들은 항상 역사 속에서 자기를 찾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루터 성(바르트부르크 성)을 보러 갔는데, 루터가 있었던 방은 한쪽 귀퉁이였습니다. 문을 닫아 놓았던데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루터가 집필했던 장소를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역사 속에만 있고 현재는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속에서만 나를 찾아서는 결코 승리할 수 없고, "너는 할 수 있어" 해서는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1절에서 말씀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너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우리도 아무것도 아니다" 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할 수 있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향한 계획이 있구나, 내가 지금 곤두박칠 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지금 내게 계획이 있구나"란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이 계획이 발견되는 축복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그 속에서 강해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영적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문제 당하면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망갑니다. 또, 이혼합니다. 도망하면 더 큰 문제, 다른 문제들, 다른 자기를 만들어 놓고 살아가게 됩니다. 현실을 피하고 싶어서 또 학교에 들어갑니다. 대학을 가고, 대학원을 가고, 박사가 되기도 하고 유학까지 갑니다만 그렇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망가면 도망 갈수록 나 아닌 다른 것이 더 많이 붙어서 더 많이 배우고, 더 괜찮은 나라에 갔기 때문에 포장은 더 잘 되어졌겠지요.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발물 같은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영적 문제를 감추고 있던 사람이 자기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영적문제가 터져 나올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되어 졌지" 라고 한탄하지만 그것을 거둘 수 없어요. 도망간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야 합니다. 그 강함이 무엇입니까? 정말 이 문제 속에서 강해질 수 있는 것은 감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감사가 바로 강함 중에 강함이요, 지혜 중에 지혜요, 능력 중에 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돈이 없는데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자기 위로입니다. 이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이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오늘 돈이 없습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오늘은 책 봐도 되고, 공부해도 되고, 오늘은 두류공원 가서 놀아도 되고, 달성공원 가서 놀아도 되는데, 오늘은 두류공원 가보자" 할 수 있죠. "오늘은 수학 공부할 수도 있고 영어 공부도 할 수 있는데, 수학공부 하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반드시, 이 일을 내게 주셔야만 하기 때문에 이 일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필연적인 것입니다.
오늘 내게 돈이 없습니까? 오늘 내게 돈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오늘 누구에게 심한 말을 들었습니까? 반드시 그래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오늘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내일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오늘 이렇게 되었다" 란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2009년 3월에 해도 되는데, 하나님이 어쩌다가 앞당겨서 일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내가 실수해서 당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반드시 그 문제를 내게 주셔야만 하기 때문에 내가 그 문제 속에 있고, 이 사람을 만났고, 이 과정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감사가 강함 중에 강함이고 능력 중에 능력이며, 지혜중의 지혜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평안이며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 속에, 이 능력 속에, 우리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모를 때, 우리는 영적 성장이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강해지고 싶지만 또, 몸부림치지만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애쓰고 몸부림쳐도 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라! 강함을 누리라!" 란 것입니다. 우리에게 분명히 영적인 권세를 주셨고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흑암과 저주와 멸망의 생각들, 내 생각 속에 주는 상처들 예수 이름으로 꺾고 결박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셨습니다. 세상 이길 축복과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이 비밀이 있기에 우리가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며, 감사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모르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감사할 제목도, 기뻐할 제목도 없는데,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인도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인도받으려는 그 순간,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몇 번 반복되어지면, "나는 안돼" 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 순간에도 가능성이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 순간에는 더 더욱 험악하고 안 좋은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존재라는 착각 속에 살기 때문에 몇 번의 실수가 우리를 자책하게 만들고, 원망하게 만들고, 핑계대게 만들고, 후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도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100년 전에 영접했다고 할지라도, 오늘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를 믿었다 할지라도, 오늘 나는 예수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님이 나를 강하고 완전하게 하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삶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니까 좋은 군사로, 농부로, 경기자로 우리를 부르셨죠. 사명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부르셨는가?"
제가 렘넌트들과 기차를 타고 가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도스쿨은 대구에 있는 다락방 교회내의 10%성적권 안에 있는 아이들이며 목사님의 추천을 받아 모인 아이들입니다. 그중에서 5명이 함께 유럽을 가게 되었습니다. 시차도 있고 해서 기차 안에서 졸기도 했습니다만 그 중에 중학교 3학년 한명에게 가는 중에 제가 종이를 하나 주면서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써봐라" 했더니, 가족, 교회, 여행, 독서, 사랑, 기도, 훈련, 혼자 있는 시간을 써놓더라고요. 거기에 대하 이야기 하다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에 세계 복음화가 없네?" 하고 물었더니 아이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아이가 늘 세계복음화에 방향 두고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단어 속에는 없었습니다.
이 가정을 보니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었습니다. 휴대폰 로밍을 통해 가족사진을 부모님이 전송하셨던데 보니, 언니, 엄마, 아빠를 보며 행복해 보이는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건전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 같았습니다.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꿈은 건전하고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복음화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너의 모습이다" 라고 이야기 해주면서 앞으로 새로 그러야 할 그림도 있고 그 차이 속에서 굉장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중요하나 했을 때, 정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방향 속에 있지 않다면, 건전하고 괜찮은 것임에도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죠. 하지만 때로는 전혀 반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면, 그 건전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지고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괜찮은 가정 때문에 이 아이가 복음 속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아이는 계속 세계 복음화와는 거리가 먼 다른 것에 향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세계 복음화와 오늘부터 시작하는 주일 훈련 모임 속에, 이 방향 속에 우리가 서있지 않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엉뚱한 문제와 사건들 속에 자꾸 뒹굴고 터지게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삶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축복을 회복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행11:16을 보니까, 안디옥 교회가 드디어 그리스도인이라 칭함 받게 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 사람들이 굉장히 착하고 똑똑하고 선하고 건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그들 속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 비밀들이 그들에게 일어났기에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란 칭함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본문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얼마나 착했기에, 얼마나 대단했기에, 얼마나 선했기에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을 향해 늘 함께 기도하러 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함께하기 싫어했습니다. 왜입니까? 초대교회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 지도자 자신들이 가짜라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선하게 살고, 깨끗하게 살고, 열심히 살았는데, 저 초대교회를 보니 우리는 가짜이구나" 라는 것들이 보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제목이「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없다」입니다. 그리스도인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그린스도인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완전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하게 살고,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의 역사 곧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완벽한 것 없습니다. 완벽한 아빠, 완벽한 사회인, 완벽한 그리스도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은혜 속에서 강하고, 그 권세 누리는 강함을 누리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삶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축복과 은혜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완벽할 수 없는 우리가 완벽하길 애쓰지만, 늘 상처와 갈등과 후회와 핑계와 또, 한계를 날마다 발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우리를, 교회를 발견하게 하시고 그 안에서 강하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참된 삶 속에 축복이 있도록 역사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우리에게는 완전함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 완전한 것을 본적도 없고, 누려본 적도 없지만, 항상 완전함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불완전한 모습을 인식하면서 항상 핑계와 후회, 원망을 합니다. 누구든지 복음이 필요하며, 현실 속에서 복음의 필요를 인식해야 합니다.

[본론]
1. 그리스도 은혜 속에서 나를 발견 찾으라.
1) 나를 발견한 사람
(1) 눅15:11-30 탕자
(2) 요셉
2) 하나님 안에서 나를 향한 계획과 믿음을 발견
-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가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발견
3) 과거 속에서 나를 찾으면 실패.

2. 은혜 속에서 강하라.(영적 권세)
1) 문제 생기면 참는 사람과 도망가는 사람이 있음
2) 문제의 크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은혜 속에 있는 나를 찾아야 함
3) 이때, 감사가 회복
4) 감사는 지혜 중 지혜, 강함 중 강함, 능력 중 능력
5) 하나님의 절대적 시간표를 인정할 때, 감사가 회복
6) 이 비밀을 모르면 우리의 영적 성장이 정체됨

3. 그리스도 안에 주신 삶 속에서 나를 발견
1) 영적 군사, 농부, 경기자
2) 하나님과 방향을 맞춰 서 있지 않으면 건전한 것일지라도 하나님과 반대의 것이 될 수 있음.
3) 우리의 삶의 방향이 세계 복음화와 전도와 선교, 훈련의 방향에 서 있어야 함

[결론] 행11:26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착하고 선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그 속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만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하고, 착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권세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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