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신)
2009-03-0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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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한 번 더 인사하겠습니다. “오직예수 뿐입니다”오늘 제목을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제목이 좀 깁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8절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지난주 월요일에서 수요일까지 3일간 제 19차 대구노회 캠프가 강북영광교회를 베이스캠프로 서시찰 중심으로 진행되었었습니다. 대구노회가 참여하면서 현장으로 인도받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현장에서 보게 되어진 부분은 시스템을 갖추어 지속적으로 사역이 진행되어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시간표에 따라서 문들을 열어 가시는 것을 확인케 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도 보게 되어지는 부분입니다만, 지교회사역과 캠프사역에 뚜렷한 열매가 있다 없다를 떠나 지속해서 지교회 사역이 이뤄지면 저절로 시간표에 따라 흑암이 꺾여지면서 문들이 하나하나 열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하나교회 사역자들은 강북영광교회와 소망교회를 중심으로 인도를 받게 되었는데, 강북영광교회에서의 포럼이 "지난 해 선교사대회 캠프를 앞두고 하나교회를 중심한 25개 황금어장 중심으로 캠프가 진행되어졌는데, 강북영광교회에서 준비한 현장이 태전교 주변의 농산물시장 중심으로 선교사 캠프를 인도 받았는데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사역자와 함께 현장에 들어갔는데, 그때 박관호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참 부끄러웠습니다. 선교사님을 모시고 왔는데도 영접이 한 명도 안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을 모시긴 했는데 생명운동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부끄러웠다"
이번에도 그 태전교 주변과 농산물 시장현장에서 캠프가 진행되었는데, 많은 영접자와 생명운동이 일어나며 말씀운동과 연결되어지는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다른 곳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두고 기도하는 시스템이 세워지니까 그 시스템을 통해 문들이 열려지게 된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대회 캠프 이후에 강북영광교회에서 전도 팀이 매일 현장을 밟으며 부딪치는 대로 전도지 돌리고하는 사역을 진행해왔었습니다. 현장에서 중직자 편지와 전도지 계속해서 돌리며 현장을 밟았는데, 어느 날 박관호 목사님이 수요일 메시지를 준비하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당신들 교회서 전달해준 종이를 보고 전화했습니다만, 교회가 어디입니까? 목사님을 한번 뵙고 싶습니다”라는 겁니다. 그분이 전도지를 받고는 그냥 내팽겨 쳤었는데, 어느 날 그 불신자가 방을 청소하다보니 전도지가 눈에 띄어 읽어보니 자기가 가진 문제에 대한 답이 전도지에 있는 것 보고는 도움을 요청함으로 목사님 만나서 영접하게 되고, 그 이후에 강북영광교회 안수집사님이 그 주변으로 사무실이 세워지며 시스템이 갖춰지며 준비되어진 현장에서 캠프가 진행되었는데, “하나님이 응답의 문들을 여셨다”며 박관호 목사님이 너무 기뻐하며 보고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운동의 역사속서 얼마나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복음을 가진 언약의 백성들이 현장을 품고 기도하고 있으면, 문들은 하나님이 여시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교회 지교회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매주 지교회 사역에서 말씀포럼, 현장포럼, 기도포럼 이후에 현장을 나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낙심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당장 열매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 붙잡고 지역을 품고 기도가 시작되면 이미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 것입니다.
참 감사한 것은, 목요일마다 진행되는 3주차 캠프에 연세 드신 할머니 권사님들이 많이 참석하어요. 그러니까 오래된 신앙인들(묵은 디)이 현장 살리기 위해서 캠프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뭔가 교회가 꿈틀거린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역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마음을 담고 현장가기 위해 캠프에 참여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얻게 되고 함께 참여한 성도들도 권사님들이 현장을 밟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지교회 중심으로 매주 캠프가 진행되어지고 또, 3주차 캠프를 활용해 제자와 시스템 전혀 없는 곳에서 지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진행 중입니다. 개인과 지역과 지교회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캠프에 대한 도표를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개인이 개인 현장을 놓고, 직장 다니는 분은 직장현장을 놓고 “어떻게 직장에 복음이 다 전달되어지도록 할 것인가?” 마치 행19:10의“아시아에 사는 모든 자는 말씀을 듣더라 ”말씀처럼 “어떻게 복음을 다 듣도록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한 도표들. 직장인은 직장에 대한 도표, 지교회 인도받는 사람은 지교회에 대한 도표들, 교회에서 전체 도표를 준비하는 가운데, 교역자실과 당회실에 도표를 갖춰 본격적으로 기도하면서 인도받으려고 준비 중입니다.
여러분 개인별로도 지교회 인도받으시는 모임 속에서 또, 직장에 생활하는 분은 직장 도표를 놓고 기도하시면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도표 속에서 아는 사람들, 복음을 전달해야 할 사람들, 시간과 장소에 관한 계획을 세워보시면 하나님과 맞아 집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맞아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정말 응답받기위해서는 전도의 도표와 그림을 개인과 직장마다 지교회마다 가짐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회복하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현장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다른 것 믿고 있습니다" 혹은 "시간이 없어서 못 나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무슨 재미로 교회 다니고 예수 믿습니까?" 말들을 하는데, 결국 안 믿겠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교회 나가면 친구관계든지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데 그래서 교회 나가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무엇인가 잃어버리고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과 단절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중요한 응답과 해답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이런 부분에 대한 중요한 답을 얻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울 왕의 공격으로 인해 도망질치는 가운데, 4년간 도망 다녔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도착한 곳이 블레셋 지역입니다. 블레셋 지역은 이방나라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이미 전에 꺾었던 적이 있었던 블레셋 족속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도망한 곳이 블레셋 지역입니다.
거기에 도착하니까 블레셋 왕 아기스(아비멜렉)가 처음에는 다윗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아기스의 신하 중 몇 명이 "왕이여 저 사람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했던 그 다윗이 이 사람입니다" 라고 왕에게 고했습니다. 그 말을 다윗이 듣는 순간에 가슴이 철컥 내려앉으며, "이곳은 완전히 사자굴이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그 순간 다윗이 미친 짓거리를 했어요. 대문짝에서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친 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기스 왕은 다윗을 내어 쫓았어요. 쫓긴 후 다윗은 아굴람 굴로 도망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고백한 시가 오늘 본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배경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죠? 보세요. 다윗은 다른 것 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이방나라를 꺾고 사울 왕에게도 어려움 준 것이 아닙니다만 다윗에게 일어난 문제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고, 블레셋에서도 미친척을 해가며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었습니다. 사울 왕을 도왔을 뿐인데, 다윗 왕에게 일어난 일들은 늘 쫓겨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나 그 쫓겨 다니는 가운데 중요한 언약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잃어버려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뭔가 단절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관계도 단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이지만 그 안에 중요한 응답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로 살펴보려 합니다. 첫 번째로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생각해보고, 두 번째로 맛보아 알아야 할 것을 말씀드리겠다.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무엘상 21장 10절부터 22장 2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여기 시편 34편을 보십시오. 오늘 다윗이 여호와를 찬송하는데 1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를 항상 찬송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도망치는 그 자리에서 읊은 내용이 늘, 항상 주님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개역 한글 성경에는 “내가 여호와를 항상 찬송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이다” 무슨 말입니까? 다윗은 도망치는 그 상황 속에서도 다윗의 중심이 항상 주님을 바라보고, 계속 주님을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입술로만 주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자랑한다면서 3절에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잘 못 보면, 다윗이 미친척을 해서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겉모습은 미친척해서 모면하는 것으로 보이나, 다윗 중심에는 늘, 항상,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 그 결과가 무엇이냐? 사울에게 쫓기고 블레셋에 쫓겨 아둘람 굴(삼상22:1)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사울 왕이 틀렸다는 결론을 가진 400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2절). 이들 400명으로 말미암아 다윗 왕국을 세우게 되고, 메시야 운동하게 되며 생명 걸고 끝까지 다윗을 도와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식으로 말하면, 이 사람들은 다윗을 도와 세계복음화한 400명의 요원입니다.
언젠가 목사님께서 송구영신예배 신년 메시지를 전해주시면서 원통한자들이 모였는데, 이 사람들이 생명 걸고 다윗 왕국을 이루는 시초가 되어졌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내가 정리해야 할 것을 정리하시고 떠나가야 할 사람은 떠나가게 하시고 단절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단절해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진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언약잡고 나갈 때,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시고 제거할 것을 제거하시는데,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필요 없는 사람을 떠나보내게 하시고 우리를 실패시키는 사람도 떠나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알아서 정리해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축복된 만남의 역사를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피난길과 도망가는 자리에서 중요한 일꾼을 다 만나게 됩니다. 삼상21장과 22장에 보면, 다윗에게 생명 건 군사들이 다윗과 함께하게 됩니다. 삼상20장에 보면, 다윗이 도망하는 가운데,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이 나타나서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은 부자지간입니다. 요나단은 당연히 아버지인 사울을 도와야하는데, 요나단이 얼마만큼 다윗을 사랑했느냐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다윗을 사랑했다했습니다. 혈육을 뛰어넘는 축복된 하나님을 하나님이 다윗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
여러분, 혈육의 관계를 어떻게 끊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혈육을 뛰어넘는 축복된 만남을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다윗을 선택케 하는 만남을 다윗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잃어버리고 빼앗긴다는 부분으로 인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하다가 말씀 속에서 만남이 되어져야 하고 기도 속에서 만남이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만남은 다 무너지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만남입니다. 기도 속에서 만남이 무너지지 않는 만남이며 하나님은 그런 만남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람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만, 저와 여러분이 언약잡고 하나님 바라보고 나갈 때 하나님이 그 문제들을 정리해주신다는 사실. 때에 따라서는 가족들조차도 멀리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가 네 집안 식구니라” 그것도 잠시잠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통해 다 살릴 계획을 가지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왜 갈대아 우르에서 빠져나오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갈대아 우르를 살리라고 참된 축복을 준비해놓고 불러내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기억할 것은 우리가 응답 못 받는 것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내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인해 힘 빠질 것이 아니라, 내가 늘 주님을 계속해서 바라보지 못함 때문에 안타까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볼 수 있다면 주님이 모든 필요한 것을 정리하시고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시고 제거할 것은 제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울은 이후에 홀로되어 칼에 맞아 자살하지만, 다윗은 블레셋에서 쫓겨 다니고 아굴람 굴에 도망했지만 중요한 응답을 도망치는 자리에서 모든 중요한 응답을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만남과 일과 경제가 말씀 속에서와 기도 속에서 언약 붙잡는 속에서 나가는 속에서 올바른 만남이 되어지는 것이고, 언약과 말씀 속에 인도받게 될 때, 무너지지 않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편과 환경에 처하든지 간에 늘,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우리 신앙생활의 기준과 표준이 무엇입니까? 찬양이 계속되어지고 항상 되어질 때, 모든 관계를 축복의 관계로 인도해나가신다는 사실. 그래서 당장 앞의 문제 보고 속지마시기 바랍니다. 영의 눈을 여시고 주님과 날마다 내가 동행하고 바라보는지 점검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최선의 걸음으로 최고의 축복으로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축복이 확인되어지고 누려지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우리가 맛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원수들에게 쫓겨 다녔지만 그 어려운 가운데 늘 주님을 바라본 사실을 보게 됩니다. 6절을 보세요.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어려운 위기 가운데서 계속 주님께 기도했음을 보게 되죠. 7절을 보면,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다윗이 그 어려움 속에서 머리를 잘 굴려서 미친척 함으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기에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영적인 비밀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 본문이 말하는 것은, 8절 말씀같이 너희도 이 체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에게 응답의 문을 여실 때마다 천군과 천사가 동원되어지는 이 체험을 할 것과 하늘 군대가 둘러 진치고 있는 이 체험을 하라는 것입니다.
출4:19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 이르렀는데, "이스라엘 진 앞에 나간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여기에 보면 앞서서 인도하던“주의 사자가 뒤로 옮겨갔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의 택한 백성을 통해 하나님이 위기 가운데 응답의 문을 여시는데 천군과 천사들을 동원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14을 보면, 믿는 자를 섬기는 후사로 천사를 보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하6장에 보면, 아람나라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해왔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가 공격할 때마다 이스라엘에게 패했는데, 화가 난 아람 왕이 “혹시 우리 군 안에 정탐꾼이 있는 것 아니냐?” 그때 아람을 섬기는 신하중 한 사람이 "왕이여, 이스라엘에는 왕이 침상해서 한 말이라도 알아듣는 선지자 엘리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이 “엘리사를 잡아오라!” 명합니다. 그 사건을 알게 된 사환이 보며 "이제 큰일났다" 그때 엘리사가 사환에게 말하길 "우리와 함께한 사람이 저들과 함께한 사람보다 많으니라" 했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사환의 눈을 열어 볼 것을 보도록 했습니다. 엘리사의 집 주위를 불말과 불병거로 둘러 지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완벽하게 지키시게 되어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왕하19:35에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 왔을 때에도, 히스기야 왕이 기도했는데, 그 밤에 주의 사자가 친히 역사하셔서 18만 5천의 병사가 송장되는 역사가 일어났어요. 이것이 만화이며 동화입니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 지금도 천군과 천사를 동원하셔서 완벽히 보호하시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행11:1-25에 보면 초대교회가 위기를 당했는데, 요한은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는데, 초대교회는 모여 기도했는데 그때 주의 사자가 베드로를 끄집어내는 사건을 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행27:25에 풍랑 가운데 “주의 사자가 말하여 가로되” 이것은 그냥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사실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지금 이 시간에 나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주의 사자를 둘러 진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와 관계된 현장에, 직장에,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둘러진치게 하소서" 이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사자를 동원하사 우리 자녀를 지키시고, 우리 직장과 사업장을 지켜주옵소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군대가 동원되어져야 축복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윗이 그냥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둘러 진쳤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여러분, 맛을 어디에 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낚시에 맛을 들인 사람은 금요일 오후에 직장을 마치고는 곧장 낚시터에 가서 금요일에서 주일까지 보내더라고요. 어떤 가정은 남편이 주말마다 낚시질이나 하고 있으니 아내가 바람까지 나서 문제 온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낚시하는 사람들 보면 고기 있든 없든 소주 한잔씩 마시고는 거지처럼 앉아서 고기를 잡습니다. 왜 거기에 앉아 있느냐? 맛을 봤기 때문입니다. 왜 노름하는 사람이 이틀 삼일 밤새가면서 노름합니까? 맛을 봤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저희 아버지가 노름을 좀 하셨는데, 저의 어릴 적 기억입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업으시고는 형님과 누님을 데리고 노름판에 계시는 아버지를 빼내오셨어요. 집으로 가는 길에, 아버지께서 소변 좀 보러 간다고 하시면서 가셨는데, 오실 시간이 되어도 안 오셔서 알고 보니 또 노름판에 계시는 것을 보고 데리고 왔었습니다만, 노름하는 사람은 2~3일 밤새는 것은 끄떡없어요. 노름에 맞을 봤기 때문입니다.
개는 후각이 사람보다 10000배 뛰어나ㄴ며 청각, 듣는 것은 40배 뛰어나다 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문밖에 걸어오더라도 안다고. 그러나 아무리 청각과 후각이 발달해도 결국 찾는 것은 뼈다귀와 고기 덩어리 하나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면, 우리가 하나님께 관심 없고 세상 것에 맛들이면 맛들일수록 결국은 가치없는 인생이 됩니다. 그리고 모두 가치 없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말씀했는데,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에서 말씀 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맛보란 말은 체험하란 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나의 모든 문제 해결자시다!” 여기에 답이 내려지지 않으면, 결국 다른 것에 답이 내려지게 됩니다. 여기에 답이 내려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내 힘과 능력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과 능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대한 체험과 맛이 없기에,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 충만함의 사실에 대한 체험이 없기에 내 힘으로 살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힘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걸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 임하는 축복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축복을 알지 못하니까 현장은 사단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려움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란 사실이 모든 것의 답인데 이 사실에 대한 답이 없으니 인생은 끊임없는 방황 속에 있는 것입니다. 왜 방황하고 힘들고 어려움 당하느냐?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맛보아야 하는데 다른 것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 그 맛을 봐야 하는데 다른 것 보았기에 어려움 당하는 것입니다.
늘 항상 언제라도 확인하고 맛봐야 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시구나!"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함 그 맛을 볼 때, 나타나는 응답이 사도행전 2장의 응답입니다. 그 응답 속에는 교회부흥과 여러분의 사업과 축복이 모두 다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응답은 불과 바람 같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입니다. 이 말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쓰고 전도하려고 힘썼는데,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함,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고 나니까, 저절로 열려지는 전도의 문과 말씀을 받을 때,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어제 어떤 분과 말씀을 나누는데, “목사님, 참 감사한 것은 월요일 직장에 가면 직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주일날에 받은 말씀의 답을 가지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요일 저녁예배 드리고 다음날 목요일 직장현장에 가보면, 직장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답이 메시지 속에 다 있다는 것이 보여집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신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 있다했는데, 말씀이 살아서 성취되는 것을 어떻게 체험하느냐?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며,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갈 때,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나를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말씀으로 체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비밀을 체험하고 나갈 때, 숨겨져 있던 제자들이 몰려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성취되어지는 말씀이 보여지니까 거기에 숨겨진 참된 제자들이 몰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또,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모든 현장이 변화되는 역사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과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며 성령충만함 속에 들어갈 때, 현장이 변화되어지는 역사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이 모든 것입니다. 이 속에 가정문제가 있는 것이고, 교회부흥이 있는 것이고, 여러분이 사업이 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된 응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다른 것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응답주신 응답으로 인해 기뻐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늘 바라보는 가운데 찬양할 때 정복하는 응답을 누렸던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면, "내 평생에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따르리니 정녕 나를 따르리라" 평생 여호와를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으로 인해 현장이 정복되어지고, 정치․문화․경제․사회가 정복되어지고, 우상이 꺾여지는 역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응답 맛보면 그 속에 모든 응답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기도만 하고 생각만 해도 응답되는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즐거운 것임을 알고 인도받는데, 시간가면 갈수록 신앙생활에서 내가 가진 것 없는 것 같고, 포기할 것이 있는 것 같고 또, 단절되어진 것을 느낄 것입니다. 다윗의 걸음 속에서도 승리만 있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면서 승리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본격화되어지면서 다윗은 도망 다니고, 노예 되는 것 같고,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 같은 환경들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최고의 축복을 준비해놓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눈이 열려져야 합니다. 그뿐 만아니라 다윗은 정말 기뻐해야 할 것을 기뻐했습니다. 거기에 모든 것을 정복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기뻐하고 맛보아야 할 것은“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이 비밀을 안 다윗은 정복하는 역사가 나타났는데, 오늘 우리가 맛 보아야 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과 그리스도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곧 성령의 충만함을 맛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응답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 축복의 역사들이 사실화 되어지는 역사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언약 안에서 늘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나갈 수 있도록 축복해주심 감사드립니다. 육신의 보이는 것으로 인해 속지 않게 해 주시고 언약가진 우리를 위해 중요한 영적인 축복을 이루어 가심을 알게 하시고 이 일에 눈이 열려짐으로 계속해서 늘 항상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다윗이 고백한 그 고백 속에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다윗의 걸음마다 완벽한 승리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한 맛보며 체험할 때, 그 속에 모든 응답을 준비하고 계신 사실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 일에 응답을 주옵소서. 흔들리지 않는 저들 되게 하시고 보이는 것으로 인해 속지 않는 저들 되게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놓고 우리를 부르셨기에 가장 최고의 것으로, 가장 최상의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심을 알게 하시고 믿음 회복하는 저들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복음을 가진 언약의 백성들이 현장을 품고 기도하고 있으면, 문들은 하나님이 여시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전체에게 복음이 전달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개인과 직장, 지역 현장에서 응답을 받기 위해 캠프도표를 그려보십시오(행19:10).
현장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다보면, 시간이 없어 교회 못나간다, 무슨 재미로 예수 믿느냐, 교회 가면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시간을 많이 뺏긴다고 말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본문은 거기에 대한 해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34편은 다윗이 지은 시로서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이 위험을 무릅쓰고 블레셋에까지 이른 적이 있었는데,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척 하여 쫓겨나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그 뒤에 아둘람 굴로 도망했는데 그 때 이 시를 지었습니다.
1. 언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일어나는 일
(1) 다윗이 도망 중에 만난 400여 명의 원통한 자들은 다윗을 끝까지 도왔습니다(삼상22:1-3).
1) 언약의 백성 다윗은 쫓기는 가운데서도 계속 하나님을 바라며 찬양하였음(1-3절)
2) 아둘람 굴에 숨어 있을 때 사울에 대해 원통한 400명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왕국을 세우고 메시아 운동하였음
(2) 하나님께서 내 삶과 주변을 정리하시고, 무너지지 않는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1) 하나님을 바라보며 복을 누린 자와 그렇지 않은 자
① 다윗 - 요나단 만남(삼상20:17), 다윗을 위해 생을 건 군사들을 만남(삼상22:2)
② 아브라함 - 우상숭배에 빠진 사람들 살리도록 복을 준비해놓고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심(창12:1-3)
③ 반면에 사울은 결국 홀로 되고 활에 맞은 뒤 자살함
2) 하나님은 문제를 통해 나를 살릴 계획을 갖고 계심
2. 맛보아 알아야할 것
(1) 영적인 비밀을 체험해야 합니다.
1) 다윗은 위기 가운데서도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동원해 구원하시는 것을 보았음(6-7절)
2) 그가 머리를 잘 굴려서 미친 척 연기하고 빠져나온 것이 아님
3) 성경의 증거들: 출4:19, 히1:14, 왕상6:17, 왕하:19:35, 행11:1-25, 27:25
4) 내가 관계된 현장에, 직장에,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동원하사 지켜달라고 기도할 것
(2)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1)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8절)
2) 세상 것에 맛들일수록 가치 없는 인생이 됨
3) 임마누엘, 곧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라는 것
4) 내 힘으로 살려 하면서 방황과 어려움을 겪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지 못해서임
5)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사실과 그 이름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면;
① 교회가 부흥되고 사업에 복이 임함
② 말씀이 살아서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됨
③ 현장에 숨겨져 있던 제자들이 몰려옴
④ 절대적, 필연적으로 모든 현장이 변화됨
결론: 다윗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본격화되면서 쫓겨 다니게 되고 사람들이 다 떠나가는 환경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최고의 복을 예비해두셨습니다. 이것을 보는 눈을 여십시오. 우리가 맛보아 알며 체험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 그리스도 안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충만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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