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주를 아는 자들에게(신)
2009-04-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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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축복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한 번 더 축복하겠습니다. 영적인 정상에 서십시오. 감사합니다.
오늘 시편36:1-12의 말씀을 가지고 「주를 아는 자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들을 보면 각기 다 다른 것 같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삶의 근본은 두 영역은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두 가지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로 나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가지는 믿음의 역사 가운데 서있는 사람과 또 한 가지는 불신앙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 선이 역사와 악의 역사 가운데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시1:1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 안에서도 참 신앙의 역사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하고 불신앙의 역사에 가운데 서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믿는다 하면서도 불신앙의 역사와 믿음의 역사가 교차되고 자꾸 대립되어지며, 상반되어지는 부분을 보게 됩니다.
혹여나 교회를 보며 “교회가 이래서 되겠느냐?” 걱정하는 말들과 내용들이 있습니까? 그런 부분들에 대한 걱정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까? 여러분, 부정적인 시각에서 불신앙으로 보면, 믿음의 역사는 어디 간 곳 없는 것 같고, 전부 부정적으로 보이고 안 되는 것만 보이게 되어 있어요. 불신앙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불신앙에 사로잡히면 믿음은 전혀 안 보이고 안 되는 것만, 이상한 것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의 역사 속에 서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영역 속에 서 있습니까?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까? 믿음의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 불신앙적인 가치 속에 있느냐? 다시 말하면 믿음의 영역 속에 있느냐 불신앙의 영역 속에 있느냐? 여러분 자신들을 진단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불신앙과 신앙의 역사가 분명히 대치되게 되어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역사를 가지고 승리하며 살아갈 것인가? 중요한 답을 오늘 시편 36편을 통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시편 36편을 지은 다윗을 보면, 언제나 외로움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 편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어요. 소수의 사람이 다윗 편에 있었고, 믿음을 가진 다윗 주위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언제나 다윗은 승리했습니다. 이 말은 훌륭한 임금이 되어 승리한 차원이 아니라, 불신앙의 세상 속에서 믿음의 역사를 가지고 선택했고, 믿음의 통치자가 되었기에 믿음의 영역 속에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함으로 염려와 걱정과 상처와 모든 저주 재앙에 있는 이스라엘을 믿음의 역사로 인도해나간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훌륭한 임금이 된 정도가 아닌, 믿음 통치자가 되어서 믿음의 영역 속에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모든 불신앙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과 실패와 모든 상처 속에 있는 나라를 믿음의 역사 가운데로 인도하는 통치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비밀이 어디 있느냐? 이 부분을 본문을 통해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역사를 가지고 불신앙의 역사를 이기고, 불신앙의 역사의 현장을 믿음의 역사의 현장으로 바꾸는 축복을 누려야 하는데, 그 비밀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오늘 본문의 다윗을 통해 우리에게 정확히 말씀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오늘 시편 36편은 다윗이 특별한 배경에서 쓴 것은 아닙니다. 오늘 시편 36편은 평상시에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중요히 깨달은 부분들과 체험한 부분들을 시의 형식을 통해 읊은 것이 오늘의 시편 36편입니다. 다윗을 통해 보이는 것은 악의 역사와 선의 역사, 불신앙의 역사와 믿음의 역사에 대한 특성들을 설명하면서, 믿음의 역사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불신앙의 역사를 가진 자들을 이길 수 있는가? 중요한 답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각각 살아가는 것 같지만, 두 영역 속에서 살아가요. 선과 악의 영역, 믿음과 불신앙의 역사 속에서 세상이 이렇게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두 세계 속에서 어떻게 승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중요한 부분의 답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통해 두 가지로 설명하려 합니다. 첫 번째로 불신앙의 역사와 다윗이 체험한 믿음의 역사. 이 부분을 먼저 설명하고, 두 번째로 그러면 불신앙의 역사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승리하며 극복해 나갈 것인가?
사실, 우리의 가정과 개인과 가문에 귀중한 답이 여기에 있고, 앞으로 교회를 섬기는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답이 여기 본문에 나와 있어요. 교회를 위해 전도제자가 되고 교회 속에서 중요한 일꾼으로 쓰임받길 원하시죠? 그렇다면, 불신앙하는 현장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면 나갈 것인가? 에 대한 중요한 답이 본문에 나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한 날, 답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붙잡고 돌아가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불신앙과 믿음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오늘 분문에 다윗이 1~4절을 보면, 불신앙의 역사 곧 사단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고 있고, 5~9절을 보면, 다윗이 체험한 건강한 세계관, 믿음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1절에서 9절에 불신앙의 영역 속에 있는 자들의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들의 삶의 절대적 기준이 무엇인가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하니”
여러분, 불신자들 곧 생명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절대적인 기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악(惡)입니다. 어떤 것이 악이냐? 거기에 대한 설명을 1절에 하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불신자이 말과 기준입니다. 여러분, 현장에서 전도하다 부딪히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들을 합니다. “나는 지옥 갈게, 너는 천국가라” 아무 거리낌 없이 너무나 쉽게 내뱉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것의 배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없다는 것입니다.
롬1:28에 보면, 창세기 3장의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한다 했습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다른 것이 악이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인생의 생명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없다하는 불신자들의 생명조차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는 그 자체가 무엇입니까? 바로 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할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 안에 있어야 참된 행복과 만족이 있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가장 최고의 가치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이후에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삶의 방식이 시기하고 분쟁하고 살인하고 미워하고 그 결과로 모든 불신앙의 열매들이 점점 이 땅에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악의 기준이 뭐냐?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신자들이 우상숭배와 운명 속에 빠져 저주와 재앙 받는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 없다고 하니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니 분명히 삼사 대가 저주받게 되는 우상숭배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으니까 우상 숭배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저주가 임하는데도 저주를 알지 못하니까 실패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불신자의 삶의 기본 배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불신자뿐만 아니라 믿음의 영역 속에 있는 사람도 자칫 잘못하면 걸려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하실 때에 중요한 것은, 교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피로 값주고 사진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에 대해 말할 때 그 배경을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이 교회를 하나님의 주권 따라서 인도해 나가시는 이 배경을 가지고 말을 해야 그 말이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놓쳐 버리고 생각나는 대로, 입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 배경 속에서 기도하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뿐 아니라 가정의 문제도 마찬가지며, 남편과 아내, 자녀의 문제, 모든 삶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되고 하나님 언약과 주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 자녀를 볼 때도 그 배경에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 아이를, 남편을, 내 자녀를 하나님의 역사로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믿음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리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자칫 잘못하다 보면 그냥 말을 해요.
제가 지난주 한 주간에 막내아들 이야기를 하며, 깨달은 것은, “이것이 아닌데”하는 생각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우리 아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나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고 나의 아이의 주인도 하나님이시기에 아이를 볼 때, 하나님이 하실 역사가운데서 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순간에 제가 깨달았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다. 복음의 능력을 이길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아이를 놓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놓고 말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 가까이 있기에 남편과 아내에 대해 말할 때 하나님 살아 계심을 배제해버리고 그냥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셔서 자녀들을 붙들고 계시고 인도해 나가시는데, 그냥 생각나는 대로 신경질나면 그대로 말을 해버립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바라보며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맞는 말이며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모든 배후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한 사람이 진행해 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인이 교회를 끌어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교회 주인 되시고 하나님이 이 교회를 진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말할 때 하나님의 역사를 기준으로 해서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마음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어요. 하나님에 대해 무서워하지 않아요.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자들조차도 모든 일을 판단하고, 생각하고, 결정할 때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판단과 생각이 달라질 것인데 그것이 안 되어 집니다. 여러분, 모든 역사를 진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에 대한 믿음 회복하는 축복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악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무슨 말입니까? 자기 죄지은 부분에 대해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심판의 날에 모든 육체는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나게 될 것인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죄 지은 것에 대해서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게 됩니다. 감각이 무뎌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 죄를 지었음에도 불과하고 거기에 대해“다른 사람도 그러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지 않냐?”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관대해 봅니다만 사실 그것이 죽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근본 죄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원죄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날마다 죄악 가운데서 죄를 지으며 삽니다. 여기에 대한 죄에 대한 감각들이 사라지는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불신자들 믿음의 영역 속에 있지 않고 불신앙의 영역 속에 있는 자들은“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여러분, 분명히 우리의 원죄, 하나님 떠난 원죄, 그로 말미암아 짓게 되는 자범죄와 조상숭배 죄와 우상숭배 죄는 반드시 보응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모든 과거의 죄들 오늘 짓는 죄들, 미래 지을 죄들도,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원죄문제 완전히 해결되어 졌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앞에 죄를 내놓고 회개하면 됩니다. 그런데 은혜 받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죄에 대해 그렇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신에 대해 관대해 집니다. 그 자체가 은혜가 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불신자들의 죄는 하나같이 다 드러나게 될 것인데 스스로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3절에 보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여러분, 여러분이 하는 말씀들을 녹음해서 들어보세요. 저는 가끔가다가 제가 설교한 메시지를 차 안에서 한 번씩 들어 봅니다. 그러면 듣다가 민망해서 얼른 빼버립니다. 고함을 치기도 하고, 목소리도 너무 큰 것 같고, “내가 이런 말들을 했었나?” 하는 부분들이 보이기에 제가 듣기 민망해서 그냥 빼버립니다.
여러분이 일주일의 삶을 살면서 여러분의 말들을 녹음해서 들어보세요. 수준 낮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말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특별히 가족 남편과 아내,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그런 말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오늘 불신앙의 배경과 영역 속에 있는 말 그 자체가 죄악이며 속임수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그 어떤 인생도 아무리 의로운 행위를 하고 아무리 착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살아가는 그 자체가 죄악입니다.
우리가 자주 듣는 메시지 가운데 해적선의 비유를 듣게 되는데 해적선에 탄 선원이 착하면 착한 만큼 해적 선장에게 유익일 뿐입니다. 착한 만큼, 말 잘 듣는 만큼 해적 선장에게 유익입니다. 거기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그 어떤 것도 죄악이고 속임수 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 보면,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침상에서 죄악을 꾀한다 했는데 정말 믿음의 영역 속에 있는 사람은 침상에서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고 말씀 붙잡고 은혜 속에 들어가고 영적인 은혜 속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악인의 침상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멸망시킬 것인가? 모함하고 모략하고 그런 것을 상상하며 계책을 꾸미는 것이 그들의 침상입니다. 의인들의 침상은 영적인 포럼의 침상이라면, 불신앙의 영역 속에 있는 자들의 침상은 모략과 음모와 술수와 궤계가 도사리고 있는 침상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에 악의 영역 속에 불신앙의 영역 속에 있는 부분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답답할 만큼 안타까운 만큼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답을 다윗을 통해 보이고 있는데 10절입니다.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아멘.
여기에 불신앙의 영역 속에 있는 자를 소개하면서 다윗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체험의 역사를 고백하면서 한 말이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5~9절에 보면, 믿음의 영역에서 다윗이 체험한 부분들. 다시 말해서 건강한 세계관을 가진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체험들을 이야기 하면서 “이 역사 속으로 들어오십시오” 권유하면서 한 말이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하시며” 여기서 주를 안다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체험해서 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야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부분간이 관계를 통해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침실관계를 통해 아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적인 체험을 통해 안다는 것을 가지고 고백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5~9절에“주의 역사를 체험한 이 고백이 주를 아는 자들에게”단순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체험해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간에 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안다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어떤 부분이기에 이 고백을 계속할 수 있었느냐? 5절에서 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자연만물을 비유 들어 체험한 것을 간증하는 부분인데, 5절에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다 했습니다. 그러면서 6절에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흥행하는 것 같고 힘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아무리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힘 있어 보여도 그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주의 의가 하나님의 산과 같다했는데, 높은 것을 체험했다는 고백입니다. 산보다 더 깊은 바다가 있어요. 12000~13000m의 심오한 바다가 있어요. 여기에 주의 심판은 깊은 바다 같다 했는데, 사람들의 말에 늘 흔들렸는데, 주의 심판, 주의 판단이 너무 깊고 심오하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불법의 역사 앞에 믿음의 역사를 가지고 주눅 들지 마시길 바랍니다. 다윗이 체험한 이 부분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그냥 시가 아닙니다. 다윗이 사실적으로 체험한 부분을 기록한 시입니다. 오늘 7절에 보니까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너무나 평안함을 체험했어요. 마치 병아리가 어미 닭 품에 품어 져 있는 것처럼 그런 평안함을 다윗이 체험했어요. 8절에는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살찐 것으로 복락의 강물이라 했는데 무슨 말입니까? 사실적으로 체험했다는 말입니다. 9절에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여러분 그렇습니다. 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새롭게 시작하고 소생시키는 역사가 주님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요.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하나님이 시작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실패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시작하시면 소생케 되고 새로운 축복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귀한 사실을 사실적으로 체험한 다윗이 10저에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믿음의 영역 가운데 있지만 우리도 모르게 불신앙의 영역에 침범 받아 그 속에 실패할 수도 있고 어려움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기존 신자를 살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다시 말해, 기존신자가 믿음의 역사 속에 서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불신앙의 영역 속에 불신앙의 결과를 가지고 실패의 역사를 증거로 보이기에 믿음의 영역을 회복하란 사실을 보게 됩니다.
또 한 가지는 교회를 살펴보면, 교회가 믿음의 역사 속에서 현장을 변화시키는 귀중한 응답들로 인도 받아야 하는데, 교회들이 어려워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교회가 싸우게 되고 서로 분쟁하며 모함하게 되고, 헐뜯게 되는 등 이것은 어느 한 순간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불신앙의 영역 속에 하나하나 쌓여오다가 어느 날 터트려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도 늘 깨어 있지 않으면 불신앙의 영역 속에 빠져서 망하지는 않지만, 신앙생활에 실패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불신앙의 영역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여러분, 교회를 섬길 중요한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과 현장 변하시키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신앙의 영역에 빠져 있지 말고, 거기에 억눌려 있지 말고, 더 좋은 믿음의 역사, 풍성한 하나님의 역사로 빠져나와서 이 축복을 맛보라는 것입니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된 역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불신앙의 역사 속에서 빠져나와서 축복된 세계로 돌아오라는 것이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불신앙의 영역을 어떻게 이길 것입니까? 같이 맞붙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엉키게 되요. 맞붙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관계 속에서도 말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하면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길 수 있는 것인가?
여러분, 옛날 시골에서 모내가 하고 나면, 논에 물을 대지 않으면 논바닥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물이 넉넉하면 괜찮은데 늘 물이 모자라니 싸움이 일어나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셨기에, 어머님이 몇 마지기 안 되는 밭농사를 지으셨습니다. 물을 대기 위해 새벽부터 나가셔서 삽을 들고 나가서 물을 대기 위해 남정네들과 다투시는데, 논바닥에 쓰러지시더라고요. 저는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에는 저와 어머니 밖에 없으니까, 농사는 지어야 하고 물은 대야 하는데, 윗물부터 대면 돌아올 물이 없어요. 그래서 새벽부터 나가서 남자들 틈 속에서 다투는데 쓰러질 수밖에요. 물이 넉넉하지 못하니까.
여러분, 불신앙의 영역을 이기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넉넉함을 누리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의 부요함을 누리면 불신앙은 저절로 추방되게 되어 있고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제 핵심에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며 현장 변화시킬 힘이 있어야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중직자가 가진 힘, 렘넌트 7명이 가진 힘, 다른 힘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 현장을 변화시킬 힘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했습니다.
그러면, 현장을 변화시킬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불신앙의 역사가 강하다 할지라도 내가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확장되어지면 불신앙의 영역은 추방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영역 통치의 개념입니다. 악한 사단이 불신 현장을 잡고 있습니다. 사단의 영역 속에 온 지구를 붙잡고 있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의 깃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불신앙의 세력을 이기는 길이며 해결하는 길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투지 마시고 고민하지 마시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이미 주셨기에 누리면서 그 부분들이 확장되어지고, 확산되어지는 만큼 불신앙의 역사는 꺾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가지고 현장 변화시키는 비밀은 이 비밀을 아는 제자를 얼마큼 찾아 세워 모든 지역 지역에 말씀운동 일으키느냐? 이것이 불신앙의 세력과 흑암세력 꺾을 수 있는 축복의 역사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마12:28-29에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늑탈하겠느냐”말씀하고 계시죠. 그러면서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이루어 졌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 나라의 축복 누리면 됩니다. 그 리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는 제자를 찾아 전 지역에 세워 말씀운동 일으키는 그 역사가 이 땅에 불신앙의 영역들을 해결하는 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오늘 본문을 통해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 후, 불신앙과 악의 영역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축복된 역사를 소개하며 이 축복된 역사 속에 나오길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다윗과 같은 이 축복을 누리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불신앙의 영역 속에서 여러분이 이기려 말고, 싸우지 마시고 다투지 마시고 고민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 축복을 풍성히 누리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싸움의 결론을 하나님이 내신다는 사실을 보는데, 11절과 12절을 보세요. 오직 하나님만 해결하시는데,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불신자들은 반드시 넘어지고 망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결론을 내십니다. 불신자들이 잘 되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반드시 불신앙의자들은 망하게 됩니다.
반대로,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와 개인과 가정에 문제 일어난다 해도,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면 불신앙의 역사는 꺾입니다. 믿음의 역사와 믿음의 역풍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자, 단합하자” 그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면 하나 되고 단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일어나는 것은 믿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믿음.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역사가 일어나면 불신앙의 역사는 꺾이게 되고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엡6:13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무슨 말입니까? 마지막에 망하게 하는 역사, 달콤하게 하면서도 결국 망하게 하는 사단의 역사라는 사실. 그러나 언약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10절 본문에,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심이여”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을 깊이,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 가시고 최고로 체험하는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 주시는 능력을 공급을 받길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참된 능력을 공급받길 바랍니다. 악한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생명줄을 끊어버리려고 문제와 사건과 일을 가지고 공격할 것입니다. 거기에 속지 마시고, 아무리 불신앙의 세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믿음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역사 앞에서는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언약을 붙잡으시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신앙의 역사 가운데 여러분을 통해 믿음의 진원지와 축복의 출발점이 되어 걸음마다 불신앙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는 축복된 주역이 되어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비밀을 깊이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보이는 육신적인 것에 속지 않게 하시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체험함으로 모든 불신의 영역들을 꺾고 승리케 되어지는, 불신앙의 영역들을 참된 하나님의 영역들로 바꾸어나가는 일에 쓰임 받는 참된 증인들로 증거 주시옵소서. 특별히 이번 한 주간 믿음의 역사 가운데 서게 하시고, 걸음마다 하나님의 하실 일들이 보이는, 그래서 참된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의 고백과 더불어 그 속에서 하나님의 귀한 계획들이 성취되어지는 축복된 증인들 되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지만 삶의 영역은 두 가지 가치관(세계관)으로 나뉩니다. 믿음의 영역 가운데 서 있는 사람과 불신앙의 영역에 서 있는 사람들로 나뉘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믿음의 역사 속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언제나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불신앙의 세상 가운데서 믿음의 영역에 속해 있었기에 언제나 승리했습니다. 그는 불신앙 때문에 저주와 재앙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믿음의 영역으로 이끄는 믿음의 통치자였습니다. 본문을 통해 그 비밀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1. 불신앙의 역사와 다윗이 체험한 믿음의 역사
(1) 불신자(생명 비밀 모르는)가 겪는 불신앙의 역사, 사탄의 역사(1~4절)
1) 생명 모르는 자들의 절대적 기준은 악(惡)
①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 않는 것 자체가 악
②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우상숭배에 빠져듦
③ 믿음의 영역 속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을 두려워 않고 불신앙의 말 내뱉는 실수를 함
2) 자신의 죄에 대해 무뎌짐(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은 저주)
①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떠난 근본 죄악, 즉 원죄가 있음
② 원죄, 자범죄, 조상의 죄(우상숭배)에 대해 반드시 보응 받게 됨
3) 불신앙의 영역 속에 있는 말 자체가 죄악이며 속임수임(해적선 비유)
4) 다른 사람을 어떻게 멸망시킬 것인가 모략을 상상하며 계책을 꾸밈
(2) 건강한 세계관을 가진 다윗이 체험한 믿음의 역사(5~9절)
1)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심(5절)
2) 주는 의로우며 주의 판단은 깊고 심오함(6절)
3) 병아리가 어미 닭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듯 평안함(7절)
4) 아무리 실패했어도 새롭게 소생시키는 역사가 그리스도께 있음(9절)
2. 불신앙 역사 속에서 어떻게 믿음 가지고 승리하며 극복할 것인가?
(1) 불신앙에 눌려 있지 말고 복된 역사로 들어와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십시오.
(2) 맞붙어서 싸우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복의 넉넉함을 누리십시오.
1) 일곱 명의 렘넌트와 초대교회가 가졌던,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힘이 있어야 함
2) 내가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 확장되면 불신앙이 추방됨(마12:28-29)
3) 전 지역에서 제자를 찾아 세우면 불신앙을 이김
(3) 하나님이 내리신 결론은 반드시 불신앙의 사람은 망하고, 믿음의 사람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엡6:13).
결론: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 가시고 최고의 복을 체험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참된 능력을 공급받으십시오. 악한 사탄은 이 생명줄(그리스도)을 끊기 위해 문제와 사건을 일으켜 공격합니다. 여기에 속지 마십시오. 믿음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역사 앞에서 사탄의 역사, 불신앙의 역사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불신앙이 무너지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믿음과 복의 주역, 진원지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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