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십자가의 도
2009-07-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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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한 가지 더 하겠습니다. 당신이 전도기획의 주역입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입니다.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축복 된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절기는 모두 감사 절기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 년에 세 번의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갈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유월절과 오순절과 수장절.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애굽에서 빠져나온 사건을 기념함으로 지키는 것으로 저주받은 구원받은 것을 기념해서 지키는 것이 유월절이고, 오순절은 다른 이름으로 맥추절이라고 합니다. 한해 농사를 처음 거둔 것을 기념해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맥추절이라 합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사실에 대한 감사를 나와 함께 하시는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그와 더불어 수장절 곧 다른 이름으로는 추수감사절이라고도 하지요. 한해 농사를 마무리 하며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가는 것을 추수감사절(수장절)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천국 미래가 준비되어 있는 사실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추수감사절기라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맥추절로써 지금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만 이 사실에 대한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축복된 날이 되길 다시 한 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가지고 「십자가의 도」라는 제목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세계복음화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오늘도 우리 모든 걸음들을 정확하게 인도해 나가고 계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말씀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나님의 계획은 세계 복음화요,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쓰시고 계시는 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건에 부딪히다보면 “나 같은 힘없고 수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변화시켜야 할 상황이 너무 강하고 엄청난 것이기에 나 자신을 보면 볼수록 나의 약함이 보이기에 “내 수준으로는 안 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생각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그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지역을 변화시키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 가지고 능력가지고 세상 현장을 변화시킬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 수준을 보면 그렇고 그렇잖아요, 불신자나 우리나 별 나은 것이 없어요. 50보 100보 일 뿐이죠. 그래서 우리 수준보고 우리가 낙심할 필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수준을 가지고 지역을 변화시키고 민족을 살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준과 능력을 높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변화시키길 원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현장이 변화됨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나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이 엄청난 축복의 역사 앞에서 우리가 자칫 잘못하다 보면 우리 자신을 바라보다가 속고 우리 수준과 인격을 바라보고 속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비밀을 모르니까 다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령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세상이 너무 사치를 하니까 “그래도 우리만큼은 검소하게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자” 물론 나쁜 것은 아니죠. 검소하게 살고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자신들은 그런 마음으로 자전거 타면서 고급승용차 타는 사람들 욕하는 것은 아닌 것 아닙니까. 그것이 방법은 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근본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지역 살리고 이 지역의 영적 인 판도를 바꾸고 시대를 변화시킬 것인가? 이 답들을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릴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셨는데, 어떻게 이 축복을 누릴 것인가? 지난 임직식에서도 말씀을 주셨습니다만, 대구지역의 모든 영적인 판도를 어떻게 바꾸어나갈 것인가? 그 답들을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고린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시간동안 계속해서 고린도서를 살펴보려 합니다.
이 고린도 성경은 사도 바울이 쓴 것으로, 바울의 저작은 옥중서신과 목회서신과 교리서신들이 있는데, 이 고린도 서신은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어떻게 체험하고 누리는가? 이 부분을 설명한 것이 고리도 서신입니다. 우리의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누리고 이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현장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우리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중요한 비밀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고린도서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시간 동안 고린도서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서 실생활 속에서 어떻게 복음의 능력의 역사를 누릴 것인가? 여기에 대한 중요한 답들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로, 고린도 도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는 대구와 흡사합니다. 항구도시란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다른 모든 부분이 대구 지역과 흡사한 도시가 바로 고린도입니다. 대구도 한 때는 상권이 많이 발전해서 상업도시라 불렸었습니다. 이 고린도 도시는 항구도시와 더불어 상업도시였으며 우상도시였습니다. 더불어 연결된 것이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이 대구도 우상도시며 소돔고모라를 뺨칠 정도로 음란문화들이 지역 지역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가 이 고린도 지역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고린도 내부 일꾼 또한 사람들의 수준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 만큼 수준 낮은 사람들이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었어요. 그 지역이 우상지역이었기에 그 영향이 교회 안에도 고스란히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들이 무엇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느냐? 제사문제와 제사음식문제로 인해 혼란이 있었고 다툼이 일어났으며 그 때문에 은사 문제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고 교회 안에 음란의 문제가 들어온 것이 고린도 교회의 내부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린도 교회가 사실은 그 문제에 상관하지 않고 그 문제를 뛰어넘어서 고린도 지역을 살려나간 사실을 보게 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통해 고린도 교회가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능력을 회복시키셔서 그 도시를 변화시키는 역사를 하나님이 이룬 사실을 보게 됩니다. 고린도 내부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를 통해 지역을 살리는 응답을 받았다는 사실.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 살리기 전에 교회문제부터 집안문제부터 해결해야지”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는 교회 내부의 문제가 여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 속에 빠지지 않고 그 지역을 살리는 축복을 누린 교회가 고린도 교회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축복의 역사를 우리도 같이 누릴 수 있느냐? 이 문제 속에서도 고린도 지역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신앙사상을 고린도전서 1장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중 특별히 18절이 요절이 될 수 있고, 주제가 될 수 있는데,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할렐루야! 고린도 교회가 사실, 내부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지역을 살릴 비밀 중의 비밀이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에 생을 걸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멸망 받느냐? 성공하느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다른 것에 기준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아무리 모든 것을 가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그 이름 듣게 될 때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이 없다면, 그 사람은 가면 갈수록 흑암에게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고 그 인생의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할지라도 지금 여러분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이 최고의 축복과 최고의 가치로 붙잡혀지느냐? 그 인생은 반드시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기준을 무엇에 두고 있습니까? “내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가 십자가의 도 즉 그리스도다!” 여기에 기준 두고 있는 사람은 성공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현장을 사실적으로 보세요. 이 땅에 절대적 기준은 없습니다. 무엇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습니까? 다른 그 어떤 것도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절대적인 기준은 생명, 구원의 역사인 그리스도 그 이름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이 내게 붙잡혀 있다면, 그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통해 한 고백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 비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고린도 교회의 축복이 우리 모든 삶의 현장에 그대로 이루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이 어떤 것인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이 사실을 고린도 교회에 이야기 했고, 우리도 이 시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한 이 축복의 비밀을 회복해야 할 것인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이 무엇이냐? 오늘 본문을 통해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의 비밀이 무엇인가?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우리가 응답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세우셨는데 이 사실을 놓쳐버린다면 응답을 놓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 열심히 나갔더니 직분자로 세웠고 그냥 열심히 헌금했더니 중직자로 세웠다” 면 응답을 놓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저와 여러분, 저주와 멸망가운데 빠진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부르셔서 직분을 주심으로 귀한 일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백되어지는 것이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를 부르셨구나!” 그렇습니다. 목사로 부르셨고, 중직자로 부르셨고, 성도로 부르셨는데,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믿습니까? 이 사실이 확인되어야 여기서 나오는 것이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영적인 힘입니다. 세상과 동화되지 않는 영적인 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구나”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로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많은 중직자를 세웠습니다. 저는 이번에 세워진 중직자를 보며 “하나님의 역사구나! 하나님이 이 한 시대에 새로운 역사를 여시고 대구전역을 복음화 하기 위해 너무 급하시기 때문에 일꾼들을 세우시는구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해서가 아니라 가진 것 없지만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를 부르셨는데,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여기서 감사가 나오고 기적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2-3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 2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 여러분 우리가 거룩합니까? 양심적으로 아니잖아요. 여러분은 거룩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거룩과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본문에 보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 받았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입니다. 우리의 양심으로는 거룩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원니스를 이루는 이 축복가운데 저와 여러분에게 거룩하다 선언하시고, 인정하시고, 공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라 부름 받은 것입니다. 내가 주도적이 아니라 주님이 주도적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살도록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이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서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 받은 자” 주님이 주도적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이 축복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성도의 축복이죠.
그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참된 평안함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 마지막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 안의 축복이 무엇인가? 4절과 5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의 풍성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 가진 주님 안에 내가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축복입니다. 믿습니까?
골2:2-3에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고백했습니다. 엡1:3에 보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다” 말씀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 안에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 있기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나가는 모든 걸음마다 만남이 응답이고 가정과 산업, 생업에 하나님이 증거 주시게 되어 있어요. 왜냐?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 있기에 그 이름으로 나갈 때마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 비밀을 체험하지 못하면,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6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복음을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견고함의 축복입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한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그리스도 비밀을 아는 자에게 주신 축복이 무엇이냐? 반석 같은 축복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흔들리지 아니하는 견고한 축복을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고 자신의 영적문제를 받기 위해 몸부림치며 늘 흔들리고 속임을 당하다가 말씀인도 받는 가운데 어느 날 보니까 문제가 문제가 아니고 문제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찾는 자로 감사함을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복음 안에 있으면 견고케 됩니다.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복음 안에 있는 축복이 시간 가면 갈수록 우리를 견고한 사람들로 만들어 가시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의 역사 가운데서도 속지 않는 사람으로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시며 만들어 가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붙어만 있으면 됩니다.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복음 안에 있기만 한다면 결국 우리도 모르게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고 문제를 발판 삼게 되는 반석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죠. 본문 7~8절에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 이름만 붙잡으면 됩니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것을 가져야 하지 않느냐?” 그리스도 그 안에 다 있고 그 이름만 붙잡으면 됩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본문 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수준도 그리스도 안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격도 그리스도 안에서 나오는 인격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수준 있는 자로, 인격자로 세우시겠다는 사실입니다.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그렇다!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시다”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 하시다가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고 끝까지 책임지시고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고백한 것이죠. “네 부모는 너를 버릴지 모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붙드신다”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상관없이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붙드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언제까지? 끝까지. 구원은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오늘,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악한 사단은 끝까지 이 사실을 모르게 할 것입니다. 이 복음에 뿌리 내리지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을 모르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서 있으면 흑암은 끝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엡6:11에 보면, 악한 사단이 여기에 뿌리 못 내리도록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개역한글 성경에는 “궤계를 쓴다” 라고 번역했고, 지금 개역개정성경은 “간계를 쓴다”라고 번역 했습니다. 속인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교묘하게 속이느냐? 저와 여러분의 장점과 단점을 악한 사단은 다 압니다. 거기에 궤계를 써서 속입니다.
그뿐만 아니죠. 벧전5:7~8에 보면 우는 사자처럼 공격해온다 했습니다. 복음 붙잡지 못하도록,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견고히 서지 못하도록 악한 사단이 공격해 올 것입니다. 고후11:14에는 광명의 천사로 속인다 했는데, 그래서 우리가 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끝내버리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단의 권세를 완전히 끝내버린 것입니다.
성경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라”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먼저 이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12:28-29에 보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왜 자꾸 사단이야기를 하느냐? 지금도 현장에는 사단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구원이며 여기서 속지 않아야 참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지금 현장에는 보이는 것이 다 인줄 알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현장은 보이지 않지만 현장에는 사망의 법과 생명의 법이 있습니다. 사망의 법은 악한 사단이 붙잡고 있고 생명의 법은 성령께서 붙잡고 있습니다. 어디에 속해 있느냐? 사망의 법에 속해 있다면, 가면 갈수록 저주, 재앙, 실패가 끊임없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명수의 법 곧 성령에 붙잡혀 있다면, 그 인생은 가면 갈수록 되는 축복된 응답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현장을 안다면 사단 이야기를 말 할 수밖에 없고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린도서를 통해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축복이 어떤 것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축복에 대해 눈 열려지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느냐?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저와 여러분이 기도응답을 받아야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리게 되어 있는데, 기도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들이 본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10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 말은 분쟁이 있다는 말입니다. 11절 마지막에 보면,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맛을 보지 못하니 분쟁이 나오는 것입니다. 기도응답 받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이 바로 분쟁입니다. 분쟁을 가져 온다는 것은 인간관계 배후의 역사하는 영적인 사실을 모른다는 말이죠. 이 말은 정말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맛보지 못했다는 말이죠.
그 다음에 기도응답 받지 못하는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12절과 16절에 보면 파벌과 인맥을 따라 움직이며 인본주의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안에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아볼로에게” 등 파벌이 생겼는데 이것이 기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교회는 파벌과 인맥으로 움직여지면 안됩니다. 인본주의가 통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교회가 복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제자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전도와 선교와 렘넌트의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교회입니다. 인맥 따라 움직이는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왜 인맥 따라 움직이느냐?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모든 인본주의가 무너지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응답받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17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교회의 목적과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 교회 임직식 때 중요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교회부흥을 위한 전도가 아니라 전도를 위한 교회가 필요하기에 하나님이 우리 하나교회를 축복하신다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목적을 상실하면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왜 교회가 힘들어지느냐? 이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목적이 여기에 있고 전도를 위해 있는데, 이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사업이 왜 힘드냐? 이 목적과 방향이 맞지 않기에 축복 받을 여러분을 하나님이 건드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응답받는 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거기에 방향 맞추면 하나님은 모든 삶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맛보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능력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잘한다고 하는 것이 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패 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나도 모르게 가는 곳마다 인맥을 형성하게 되고 인본주의를 쓰게 되는데 이것은 각오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철야기도 하고 금식기도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맛보면 됩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교회 안의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며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맛 본사람 한 사람 세워질 때 이런 사람의 말도 힘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복음의 역사는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미련한 자냐? 지혜로운 자냐?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에게는 미련해 보이는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러분 미련한 자는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에 대해 감동이 없는 자입니다. 결국 멸망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지혜로운 자냐? 그리스도 이름만 들어도 마음에 감화 감동이 있고 그 이름만 들어도 흥분이 되고 기쁘고 감사가 되는 자입니다.
여러분, 이번 한 주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들이 최고로 체험되어지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26절부터 읽어보면 “세상 지혜가 참된 지혜냐? 참된 지혜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 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세상의 강한 것을 의지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래서 27절과 28절에 하나님의 지혜를 붙잡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것까지도 쓸데없다고 2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된 자랑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자랑입니다. 그래서 31절에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참된 축복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이번 한 주간 어떤 현장에서든지 그리스도 그 이름만을 자랑하는 축복된 증인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론: 하나님은 세계복음화의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오늘도 우리의 모든 걸음들을 정확히 인도해 나가고 계십니다. 그러나 세상에 비해 나 자신이 약하게 보여 내 수준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가지고 세상 현장을 변화시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이 지역을 살리고, 영적인 판도를 바꾸고, 시대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고린도는 항구 도시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에서 대구와 흡사했습니다. 상업과 우상과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그 도시를 살려야 했는데, 우상숭배의 영향이 교회 내에도 고스란히 들어왔고, 성도들조차 그 지역민들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교회 내부의 문제가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 속에 빠지지 않고 지역을 살리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축복을 우리도 같이 누릴 수 있겠습니까?

1.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에 생을 걸어야 합니다.
(1) 성공과 멸망의 기준 - 십자가의 도를 최고의 가치로 잡고 있는가?
(2) 이 땅에 절대적인 기준은 생명과 구원의 역사인 그리스도 이름밖에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1) 내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부름 받은 것이 축복입니다(1절).
(2)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지고 성도로 부름 받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2-3절).
(3) 이 사실 알수록 참된 평안함이 임하게 됩니다(3절).
(4) 모든 것을 가지신 주님 안에 내가 있습니다(4-5절).
(5)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축복, 반석 같은 축복을 주셨습니다(6절).
(6) 그리스도 안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수준 있는 자로, 인격자로 세우십니다(7-8절).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축복에 대해 눈이 열려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기도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
(1) 분쟁하게 됨(10절) - 인간관계 배후에 역사하는 영적인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해서.
(2) 파벌과 인맥을 따라 움직이며 인본주의를 쓰게 됨(16절) - 그리스도 몰라서.
(3) 목적을 상실하게 됨(17절) - 교회는 전도를 위해 존재함.

결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거기에 방향 맞추면 하나님은 모든 삶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응답 받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 이름의 비밀과 능력을 맛보고 체험할수록 교회 안의 문제들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미련한 자는 그리스도의 도에 대해 감동이 없으며, 결국 멸망 받게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리스도 그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고 기쁘고 감사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그 이름의 비밀을 최고로 체험하시고, 그리스도 그 이름만을 자랑하는 축복된 증인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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