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가 있는 달음질
2009-11-1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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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이 전도기획의 주역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목표가 있는 달음질』이란 제목입니다. 추수감사주일에 정확한 본문과 제목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에게 일년에 세 차례씩은 꼭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유월절이죠. 우리의 모든 저주는 끝났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과거의 모든 저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꾸 우리를 속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저주를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그것이 유월절의 의미죠. 또한 오순절을 지킬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순절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금 현재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또 한 가지는 초막절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추수감사절이죠. 성경에서 말씀하는 추수감사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의 미래와 결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든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해동안 주신 응답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지만 또 한 가지로 주실 응답을 바라보면서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2009년 한해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산업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 응답의 은혜, 참 감사한 것이죠. 오늘 묵상기도시간에 읽었습니다만, 신16:15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말씀했습니다. 주신 응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실 응답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나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려분, 우리의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감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렘넌트 7명은 하나같이 어떤 문제와 사건 앞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특징이 바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왜 감사했으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느냐? 미래가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응답도 감사하지만, 주실 응답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영원한 축복, 썩어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축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에게 분명한 목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도 『목표가 있는 달음질』으로 삼았습니다만,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25절에,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지만 변하고 썩어질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썩지 아니할 영원한 목표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향방 없이 허공을 치는 싸움이 아니라 바른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분명한 목표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때문에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고전9:24에 보면, 바울이“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복음가진 자에게는 반드시 승리했고,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대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하게 되면 황제가 직접 월계수 면류관을 씌워줍니다. 그러나 그 월계수 면류관도 시간이 지날수록 썩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면류관을 주셨는데 그 축복을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찾아내어 참된 감사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붙잡을 내용이 있다면, 썩지 아니할 분명한 목표, 미래에 대한 확신이 무엇이냐? 이 부분들 속에서 두 가지로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복음운동을 위한 헌신은 영원한 것이고 썩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향방없는 허공을 치는 싸움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헌신은 분명한 목표가 있는 달음질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로 전도운동을 위한 헌신과 전도를 위한 수고는 하나도 헛되지 않는 영원한 천국의 상급이 준비되어 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위한 헌신을 한다는 것은 자그마한 일 같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하나도 헛되지 아니하고 응답으로, 상급으로, 영원한 축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고전15 에 보면,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부분 55절과 56절을 보게 되면,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중요한 말씀이죠. 율법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15:57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복음을 이야기 하고 있죠. 사망이 죄로 말미암아 왔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이김을 주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58절에 복음을 위한 수고와 헌신은 하나도 헛되지 않기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말씀했습니다 고백한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 복음 안에서의 수고가 절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와 복음을 위한 헌신들은 큰 일과 작은 일이 없습니다. 복음을 위한 헌신은 모두 상급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도 헛되지 않는것이 복음을 위한 헌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도 보면, 마지막 때 인자가 자기 영광을 위해 인자가 영광의 보좌 앞에 앉으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때에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서 인자(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일어나는 일로, 목자가 양들과 염소를 구분하는데, 양들을 오른편에, 염소를 왼편에 세우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31절부터 36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아! 창조로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으라!” 했습니다. 어떤 자에게 입니까?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가난한 자를 돕는 자들” 자신들은 그러한 일을 했는지 몰랐지만, 복음을 위한 자그마한 헌신들도 창조로부터 준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어 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복음을 위한 헌신은 영원한 것입니다. 썩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위해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기 때문에 영원한 썩지 아니하는 상급이 되어지느냐? 이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저주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 저주의 배경은 사탄이 붙잡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지옥의 권세 속에서 그 어떤 인생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해방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갑니다만,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은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 재앙 속에서 멸망의 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실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재앙 속에서 멸망의 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재앙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해요.
여러분, 재앙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운명을 운운하는데 운명에 빠진 것이 재앙입니다. 그와 더불어 불안하고 우리에게 숨은 고통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해결해보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불안하니까 우상숭배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우상숭배 빠진 그 자체가 재앙입니다. 표 안나게 질병가운데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표시가 안나는데, 많은 인생들이 마음의 고통과 고민가운데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마지막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 육신적인 질병가운데 실패하고 있고 재산문제 가운데 죽음을 선택하고, 결국 지옥의 권세에 빠지면서 후대에까지 고통이 물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저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이 재앙의 문제를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이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저주가 나의 가정과 가문에 그대로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자녀들에게 저주와 재앙이 그대로 전달되게 되어 있고 노년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주와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재앙의 배후에는 분명히 사탄이 붙잡고 있고 그래서 영원한 흑암가운데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지옥 권세에 붙잡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멸망의 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음에도 멸망받는 길인지도 알지 못해요. 왜냐? 세상의 쾌락 때문에 멸망의 차를 타고 있으면서도 그런줄도 모릅니다. 잠시 잠깐의 성공들 때문에, 노력으로 인한 일시적인 성취하는 성취감 때문에, 멸망의 차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멸망의 차를 타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어느 날,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저주와 재앙의 문제입니다. 훌륭하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자기의 아버지는 남을 도와주는 좋은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질적인 바람기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족들이 고생을 하는 거예요. 충분히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 있는 분인데, 바람기 때문에 처자식이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언어에 대해서도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이 귀찮아지면서 자기 홀로 가족들을 다 내팽게치고 사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처자식들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보면서 이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문의 흐르는 저주 재앙 아닙니까?
어떤 분은 자기 아버지가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자기 형님도 알콜중독으로 빠져 완전히 실패하고 일찍 객사해버렸는데, 그 분이 예수 믿는 이유가 알콜중독에 걸리지 않기 위해 예수 믿는다 하더라고요. 이 부분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반드시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아무리 열심히 다닌다 할지라도 완전 복음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느냐? 이 저주와 재앙은 끝까지 따라붙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 저주와 재앙이 나중에는 사회로 파고들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발전할수록 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고 문화화 되어서 말세에 고통의 때가 임할 것을 디모데후서 3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엉뚱한 것을 사랑하는 것 그 자체가 영적인 문제아닙니까?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는 말세에 엄청난 재난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12:1-9에 보면, 말세에 엄청난 영계의 혼란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든 인생들이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 이것이 사회를 파고드는 문제들, 이 저주와 재앙을 해결할 길이 없기에 하나님이 우링게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3:8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14:6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당해야 할 모든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끝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붙잡는 순간에 모든 것 끝났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끝내기 위해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어마어마한 축복들과 굉장한 축복들이 그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면서 어떤 축복을 주셨느냐? 벧전2:9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는 무너지게 되어 있고, 사탄은 꺽여지게 되어 있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 안에 있는 축복을 하나 하나 찾아 누려야 합니다. 복음으로 다 끝났습니다만 그 축복의 역사는 지금도 새롭게 계속해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1:6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착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의 역사, 저주와 재앙의 역사를 완전히 끝낸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그분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반드시 시간 지날수록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된 복음의 역사를 누리게 되어 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복음을 누리는 시작은 지금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현실문제. 그것이 바로 복음을 누리는 시작입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일에 빠져 있습니까? 아무리 몸부림쳐도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들이 있습니까? 이미 그리스도 안에 다 끝났을 뿐 아니라, 그 문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의 복음을 확인하고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 당하고 현실적인 어려움 당하면 현실보고 속습니다. 그래서 불신자 보다 더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속지마세요. 생각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의 현실은 복음의 축복을 찾아내는 기회인 것입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복음 가지고 보면, 전부 응답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문제 속에서 속지 마세요. 그것을 복음을 가지고 보면 그 속에 복음의 축복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 내라고 문제를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완벽한 복음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완전한 책임을 지실 것을 말씀하셨죠.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사실을 믿지 않았기에 현실 앞에, 당장 눈 앞에 보인 것이 기근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나안 땅에 있어야 할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현실바라보고 속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똑같아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완벽한 축복으로 불러내셨다면, 가나안 땅의 축복을 기도하며 기다려야 할 것인데, 그 현실을 피한다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것이 실패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려분, 우리의 현실이 어떤 현실이든간에 현실을 통해 하나님은 이미 모든 문제 해결한 복음의 능력들을 확인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어떤 문제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다 끝났을 뿐 아니라, 모든 문제는 복음을 찾아 누리는 기회라는 사실,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부분들있죠. 사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으로 사단이 속입니다. 또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돈만 있으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찾아 갑니다. 이것은 본능이고 인간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탄이 육신적인 것으로 속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음란에 대한 부분들. 이것도 인간의 본능이죠.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조금만 눈을 떠서 복음을 붙잡는다면, 그 속에서 모든 축복을 회복하게 될 것인데, 그 속에서 속아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놓치게 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여러분, 복음 안에서 조금만 눈을 떠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본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주 멋있는 사람이 될 것인데 이 사실을 놓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복음으로 저와 여러분의 모든 문제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시작이 그 속에 있습니다. 단순히 “복음이 이것이다”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한 축복이 복음 안에 있는데 그 축복이 지금 여러분의 현실의 문제 앞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더욱이 이 복음 아니고서는 악한 사탄의 세력을, 흑암의 세력을 꺾을 길이 없습니다. 악한 사탄이 하나님의 심부름 하는 존재였으나 공중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여 땅 위에 모든 권세를 장악했습니다. 이 세력을 꺾는 길은 복음운동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중심을 가지고 헌신하게 될 때,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쏟아 부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운동만이 진리이고 복음운동만이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으시고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승리하며 바른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전도운동을 향한 헌신은 헛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응답으로 다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진짜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추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역사가 무엇 중심으로 움직여집니까? 마24:14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했습니다. 전도 중심으로 해서 이 지구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에 증인되고자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땅 끝까지 증인될 수 있도록 증거거리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전도를 위한 헌신은 헛되지 않고 분명한 상급으로 우리에게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0:42에도 보면 “제자의 이름으로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자 그것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럼 전도가 무엇입니까? 전도는 우리가 힘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주사역이 전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 보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주관자가 누구시냐?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누가 붙들고 계시냐? 하나님이 붙들고 계십니다. 불신자들의 생명 조차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내가 맘대로 죽고 싶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고요, 내가 살고 싶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가야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장하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엡1:3-5에 보면 “영세 전에 이미 예정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누가요? 하나님입니다. 영세 전에 이미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때가 되매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1:6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당신께서 친히 모든 것을 준비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행13:48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누가 구원을 하시느냐? 하나님이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를 준비시켜 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주사역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우리는 그 속에 쓰임 받을 뿐이고, 그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왔다가 갈급함으로 돌아가는 내시에게 하나님은 정확하게 전도자 빌립을 준비시키고 만나게 하신 것처럼. 누가 하신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와 더불어 다메섹 도상에 제자 아나니아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사울을 꺾으셔서 아나니아에게 붙이신 사건도 누가 하신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말씀하고요, 우리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12:3에 뭐라고 했습니까? “아무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시인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누가 하시느냐?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 전도 속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도를 미련하게 보지만, 고린도전서1:21에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는 그 전도를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28:16-20에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제자 삼는 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전도를 붙잡게 되면, 전도의 축복의 역사 속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그 속에서 모든 걸음과 사건 속에 하나님의 축복의 시간표를 이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교회 안에 참된 전도운동을 위해 우리가 인도받아야 할, 응답 받아야 될 부분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교회 안에 전도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중직자분들이 전도기획에 대한 응답들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중직자분들이 눈을 뜨지 않는 이상에는, 진짜 중직자분들이 응답 받지 못하는 이상에는, 교회가 부흥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직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봐야 되는 것이고요, 중직자들 한 사람 한사람이 제자로 쓰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전도기획이란 중요한 단어를 붙잡고 함께 우리 모든 장로님들이 정말 중심을 다해서 인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중직자분들이 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오래된 신앙생활 가운데 응답 받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은 불신앙하게 되고 결국은 온갖 염려하게 됩니다. 평신도 보다 중직자분들이 앞에 서 있으니까 교회의 전반적인 부분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짜 은혜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축복 받지 못하면 온갖 염려들로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중직자분들로 말미암아 축복이 전달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면, 그만큼 중직자들이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것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머리에 기름 부어 세우신 종들인데, 먼저 축복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온갖 상처들을 가지고 불신앙의 말을 하고 만나는 사람에게 불신앙의 말을 전달한다면 그 인생 자체가 얼마나 실패하는 인생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먼저 중직자분들이 진짜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지금 전도기획에 생을 걸고 인도받고자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직자분들은 전도기획의 첫 번째, 교회 내부를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 사실 우리 중직자분들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 내부를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히 각 기관과 전문인들, 새 가족들, 또 교역자와 성도들의 갖고 있는 기도제목들이 어떤 것이고, 그들이 갖고 있는 애로사항이 어떤 것이며, 그들의 사정과 형편이 어떤 것이고 그들의 문제들은 어떤 것인가? 한 부분 한 부분 놓고 기도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될 전도기획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있는 일꾼들을 이해해야 바른 기획이 나올 수가 있지요. 이것을 모르는데 어떻게 기획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교역자들의 애로사항이 뭐며 기도하는 제목들이 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고, 우리 평신도 성도님들 한분 한분이 정말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신앙생활이 무엇 때문에 힘든 것인가? 이 사실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부분들을 우리 중직자분들이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어야 되는 것이고, 새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이 진짜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 말씀을 통해 권면하고 기도로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이 되어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부를 이해하기 위해서 5인 1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모든 교역자들은 현장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알고 있는 교역자들이기 때문에 현장에 눈을 열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가 되면 되느냐? 교구를 맡은 교역자들은 “내가 이 지역(교구)을 살려야겠다” 이 결단이 되어져야 됩니다. 주일학교를 맡고 있는 교역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교사들과 현장에 들어가서 “지금 타락의 문화권 가운데 넘어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살려야겠다”
그래서 현장에 정확하게, 상세하게, 세밀하게, 현장을 훤하게 꿰뚫고 있어야 하는 자들이 누구냐? 바로 교역자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2010년도에는 교역자들 현장을 살리기 위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시겠다 말씀했습니다. 교회 내부를 알고 있는 교역자들은 현장을 알아야 되는 것이고, 현장을 알고 있는 중직자들은 교회 내부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 내부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왜 알아야 되느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다 현장과 관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부를 알고 있는 중직자들과 현장을 알고 있는 교역자가 준비되어 지는 만큼 교회 안에 캠프가 응답으로 성공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내부를 알고 있는 중직자들, 교회 밖의 현장을 알고 있는 교역자들이 준비되어 지는 만큼 실제로 전문 캠프팀이 나오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평신도 성도님들은 여러분 있는 현장에 말씀 붙잡고 현장에 들어가고 현장에서 그 말씀의 성취를 맛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장 말씀 성취의 증인이 되어야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바로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렘넌트들은 성경에 나오는 7명의 렘넌트들 처럼 중요한 응답들을 현장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요셉은 가정의 문제 가운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가정문제를 이기는 답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 답을 렘넌트들은 찾아내야 합니다.
세상이 어렵습니다.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될 세상입니다. 그 세상을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요,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아야 되는데 어떻게 은혜를 받을 것인가 그 답들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요, 사회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회 속에서 응답받고 승리하는 증인이 될 것인가? 그 답들을 찾아내야 될 것이고요, 현장에 우상의 역사로 말미암아 멸망과 재난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거기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다 망해도 괜찮습니다. 그와 함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완전한 답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야 될 것이 뭐냐? 렘넌트들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RUTC를 지어 나가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RUTC에서 집중적으로 렘넌트들에게 교육해야 될 부분 7가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도에 대한 축복을 깨달으면 깨닫는 만큼 분명한 것은 1년이 지나면 그 응답이 다르고, 2~3년이 지나면 그 응답이 분명히 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말 전도에 대한 사실들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고 있으면 왜 중직자들이 전도기획을 통해서 초대교회가 가졌던 축복들을 놓쳐버렸는데 그 축복을 회복해야 될 것인가?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운동하는 지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답이 나오게 되어 있고, 이 전도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 렘넌트들이 일어나야 된다는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렘넌트들을 통해서 정말로 문화권을 바꿔야 되는데 이 일을 위해 RUTC 이게 왜 중요한 것인가? 답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헛되지 않은 썩지 않는 복음운동, 전도운동, 우리가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 갈수 있는 축복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운동, 전도운동은 영원한 것입니다. 헛되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한 목표가 복음운동을 통해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고, 전도운동을 통해서 이 현장에 영적문제 가운데 빠진 자들을 건져 내자는 것입니다. 이 사역에 방향 맞추어 나갈 때에 여기서 하나님은 중요한 응답과 축복들을 쏟아 부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복음운동, 전도운동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달음질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은혜를 입혀 주셨습니다.
여러분, 복음운동만 진리입니다. 복음 외에 진리는 없습니다. 전도운동 외에 시급한 것은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제자를 확립하고 우리 중직자분들이 일어나 전도기획을 하고 이를 위해서 우리 렘넌트들이 일어나서 문화를 살리는 역사 이 사역에 방향을 맞추어 나간다면 앞으로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엄청난 응답들로 우리의 걸음 속에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가올 축복을 붙잡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가올 축복을 붙잡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시고요. 그것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신16:15절을 한 번 봅시다. 13절부터 초막절(추수감사절)을 이야기 하면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아멘.
한번 받아합시다. “나는 미래가 준비된 사람이다!”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까지 우리에게 엄청난 응답을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마는 오늘 이 시간 또 다른 응답, 주실 응답 바라보고 감사를 회복하는 시간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 뿐인 생애에 영원히 썩어지지 아니하는 복음운동, 전도운동을 위해서 달음질 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축복의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도 감사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역사 앞에, 상 주시는 이를 바라보고 달려갈 수 있는 역사 앞에 감사하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서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썩어 없어지지 않는 분명한 목표를 주셨습니다. 마라톤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황제가 수여하는 월계수관도 시들고 썩어 없어질 것이나, 성도에게는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을 주셨습니다. 이 축복을 찾아내면서 참된 감사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썩어 없어지지 않는 분명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1. 복음운동을 위한 헌신은 분명한 목표가 있는 달음질입니다.
(1) 복음 안에서의 수고는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 복음 위한 어떤 헌신에든 상급이 준비되어 있음(고전15:58). 복음 위한 작은 헌신에도 창조로부터 준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됨(마25:31-36). 복음을 위한 헌신은 썩지 않는 영원한 것임
(2) 복음운동만이 진리이며,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떠난 인생이 당하는 저주
- 재앙 속에서 멸망의 차를 타고 달려감(운명에 빠짐, 우상숭배, 육신문제, 정신문제, 후대에 저주 전달, 지옥). 저주와 재앙이 개인과 사회를 파고들고, 미래에도 계속해서 일어남(마24-25장, 계12:1-9)
2) 복음은 하나님을 떠나 저주 가운데 빠진 인생을 해방시키는 것
- 예수 그리스도 붙잡는 순간에 인생의 모든 저주가 해결됨(요일3:8, 요14:6). 복음이 아니고서는 악한 사탄의 세력을 꺾을 수 없음
3) 복음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찾아 누려야 함
-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벧전2:9). 복음의 축복된 역사는 지금도 새롭게 계속해서 시작되고 있음(빌1:6). 개인이 가지고 있는 현실문제는 복음을 누리는 시작이자 기회임(아브라함 사례)
2. 전도운동을 위한 수고에 대해 영원한 천국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1) 전도운동을 향한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선교,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출 때 모든 필요를 채우심(마6:33). 전도 중심으로 세상 일이 돌아감(마24:14). 전도를 위한 헌신에는 분명한 상급이 준비 됨(마10:42)
(2)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주사역입니다.
-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심. 하나님이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심(엡1:3-5, 행13:48). 우리는 이 일에 쓰임 받을 뿐임(빌립→에디오피아 내시/ 아나니아→바울).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심(고전1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제자 삼는 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심(마28:16-20)
(3) 전도운동을 위해 중직자 전도기획에 응답 받아야 합니다.
- 중직자는 교회 내부를 이해해야 함. 교역자-현장을 훤하게 알고 있어야 함. 평신도-현장에서 말씀성취의 증인이 되어야 함. 렘넌트- 일곱 렘넌트처럼 중요한 응답을 현장에서 찾아내야 함
결론: 복음운동과 전도운동은 영원한 것입니다. 복음 외에 진리는 없으며, 전도보다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복음운동 통해 저주 문제 해결하고, 전도운동 통해 현장에서 영적문제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이 사역에 방향 맞추어 나갈 때 하나님은 여기에 중요한 응답과 축복을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달음질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은혜를 입혀주셨습니다. 다가올 축복을 붙잡고 감사하시며 예물을 드리십시오(추수감사절의 의미, 신16:15).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에게 일년에 세 차례씩은 꼭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유월절이죠. 우리의 모든 저주는 끝났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과거의 모든 저주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끝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꾸 우리를 속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저주를 모두 담당하셨습니다. 그것이 유월절의 의미죠. 또한 오순절을 지킬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순절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금 현재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또 한 가지는 초막절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추수감사절이죠. 성경에서 말씀하는 추수감사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의 미래와 결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든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해동안 주신 응답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지만 또 한 가지로 주실 응답을 바라보면서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2009년 한해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산업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 응답의 은혜, 참 감사한 것이죠. 오늘 묵상기도시간에 읽었습니다만, 신16:15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말씀했습니다. 주신 응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실 응답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나갈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려분, 우리의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면 감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렘넌트 7명은 하나같이 어떤 문제와 사건 앞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특징이 바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었습니다. 왜 감사했으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느냐? 미래가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응답도 감사하지만, 주실 응답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영원한 축복, 썩어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축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에게 분명한 목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도 『목표가 있는 달음질』으로 삼았습니다만,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25절에,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지만 변하고 썩어질 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썩지 아니할 영원한 목표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향방 없이 허공을 치는 싸움이 아니라 바른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도록 분명한 목표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때문에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고전9:24에 보면, 바울이“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복음가진 자에게는 반드시 승리했고,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대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하게 되면 황제가 직접 월계수 면류관을 씌워줍니다. 그러나 그 월계수 면류관도 시간이 지날수록 썩어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면류관을 주셨는데 그 축복을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찾아내어 참된 감사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붙잡을 내용이 있다면, 썩지 아니할 분명한 목표, 미래에 대한 확신이 무엇이냐? 이 부분들 속에서 두 가지로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가 복음운동을 위한 헌신은 영원한 것이고 썩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향방없는 허공을 치는 싸움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헌신은 분명한 목표가 있는 달음질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로 전도운동을 위한 헌신과 전도를 위한 수고는 하나도 헛되지 않는 영원한 천국의 상급이 준비되어 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위한 헌신을 한다는 것은 자그마한 일 같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하나도 헛되지 아니하고 응답으로, 상급으로, 영원한 축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고전15 에 보면,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부분 55절과 56절을 보게 되면,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중요한 말씀이죠. 율법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15:57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복음을 이야기 하고 있죠. 사망이 죄로 말미암아 왔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이김을 주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58절에 복음을 위한 수고와 헌신은 하나도 헛되지 않기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말씀했습니다 고백한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 복음 안에서의 수고가 절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와 복음을 위한 헌신들은 큰 일과 작은 일이 없습니다. 복음을 위한 헌신은 모두 상급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도 헛되지 않는것이 복음을 위한 헌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도 보면, 마지막 때 인자가 자기 영광을 위해 인자가 영광의 보좌 앞에 앉으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때에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서 인자(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일어나는 일로, 목자가 양들과 염소를 구분하는데, 양들을 오른편에, 염소를 왼편에 세우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31절부터 36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아! 창조로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으라!” 했습니다. 어떤 자에게 입니까?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가난한 자를 돕는 자들” 자신들은 그러한 일을 했는지 몰랐지만, 복음을 위한 자그마한 헌신들도 창조로부터 준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어 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복음을 위한 헌신은 영원한 것입니다. 썩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위해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기 때문에 영원한 썩지 아니하는 상급이 되어지느냐? 이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저주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그 저주의 배경은 사탄이 붙잡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지옥의 권세 속에서 그 어떤 인생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해방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갑니다만,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은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 재앙 속에서 멸망의 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사실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생은 재앙 속에서 멸망의 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재앙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해요.
여러분, 재앙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운명을 운운하는데 운명에 빠진 것이 재앙입니다. 그와 더불어 불안하고 우리에게 숨은 고통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해결해보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불안하니까 우상숭배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우상숭배 빠진 그 자체가 재앙입니다. 표 안나게 질병가운데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표시가 안나는데, 많은 인생들이 마음의 고통과 고민가운데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마지막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 육신적인 질병가운데 실패하고 있고 재산문제 가운데 죽음을 선택하고, 결국 지옥의 권세에 빠지면서 후대에까지 고통이 물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저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이 재앙의 문제를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이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내가 가지고 있는 저주가 나의 가정과 가문에 그대로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자녀들에게 저주와 재앙이 그대로 전달되게 되어 있고 노년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주와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재앙의 배후에는 분명히 사탄이 붙잡고 있고 그래서 영원한 흑암가운데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지옥 권세에 붙잡혀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멸망의 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음에도 멸망받는 길인지도 알지 못해요. 왜냐? 세상의 쾌락 때문에 멸망의 차를 타고 있으면서도 그런줄도 모릅니다. 잠시 잠깐의 성공들 때문에, 노력으로 인한 일시적인 성취하는 성취감 때문에, 멸망의 차를 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멸망의 차를 타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어느 날,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저주와 재앙의 문제입니다. 훌륭하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자기의 아버지는 남을 도와주는 좋은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질적인 바람기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족들이 고생을 하는 거예요. 충분히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 있는 분인데, 바람기 때문에 처자식이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언어에 대해서도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이 귀찮아지면서 자기 홀로 가족들을 다 내팽게치고 사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처자식들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보면서 이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문의 흐르는 저주 재앙 아닙니까?
어떤 분은 자기 아버지가 알콜중독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자기 형님도 알콜중독으로 빠져 완전히 실패하고 일찍 객사해버렸는데, 그 분이 예수 믿는 이유가 알콜중독에 걸리지 않기 위해 예수 믿는다 하더라고요. 이 부분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반드시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아무리 열심히 다닌다 할지라도 완전 복음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느냐? 이 저주와 재앙은 끝까지 따라붙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 저주와 재앙이 나중에는 사회로 파고들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발전할수록 문제가 드러나게 되어 있고 문화화 되어서 말세에 고통의 때가 임할 것을 디모데후서 3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엉뚱한 것을 사랑하는 것 그 자체가 영적인 문제아닙니까?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는 말세에 엄청난 재난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계12:1-9에 보면, 말세에 엄청난 영계의 혼란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든 인생들이 다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저주와 재앙의 문제들, 이것이 사회를 파고드는 문제들, 이 저주와 재앙을 해결할 길이 없기에 하나님이 우링게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3:8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14:6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당해야 할 모든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저주를 끝내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붙잡는 순간에 모든 것 끝났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끝내기 위해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어마어마한 축복들과 굉장한 축복들이 그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면서 어떤 축복을 주셨느냐? 벧전2:9에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주는 무너지게 되어 있고, 사탄은 꺽여지게 되어 있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이 복음 안에 있는 축복을 하나 하나 찾아 누려야 합니다. 복음으로 다 끝났습니다만 그 축복의 역사는 지금도 새롭게 계속해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1:6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착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의 역사, 저주와 재앙의 역사를 완전히 끝낸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그분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반드시 시간 지날수록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된 복음의 역사를 누리게 되어 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복음을 누리는 시작은 지금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현실문제. 그것이 바로 복음을 누리는 시작입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일에 빠져 있습니까? 아무리 몸부림쳐도 해결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들이 있습니까? 이미 그리스도 안에 다 끝났을 뿐 아니라, 그 문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의 복음을 확인하고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 당하고 현실적인 어려움 당하면 현실보고 속습니다. 그래서 불신자 보다 더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속지마세요. 생각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의 현실은 복음의 축복을 찾아내는 기회인 것입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복음 가지고 보면, 전부 응답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문제 속에서 속지 마세요. 그것을 복음을 가지고 보면 그 속에 복음의 축복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 내라고 문제를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시면서 완벽한 복음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완전한 책임을 지실 것을 말씀하셨죠.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사실을 믿지 않았기에 현실 앞에, 당장 눈 앞에 보인 것이 기근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나안 땅에 있어야 할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현실바라보고 속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똑같아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완벽한 축복으로 불러내셨다면, 가나안 땅의 축복을 기도하며 기다려야 할 것인데, 그 현실을 피한다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것이 실패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려분, 우리의 현실이 어떤 현실이든간에 현실을 통해 하나님은 이미 모든 문제 해결한 복음의 능력들을 확인케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어떤 문제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다 끝났을 뿐 아니라, 모든 문제는 복음을 찾아 누리는 기회라는 사실,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부분들있죠. 사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으로 사단이 속입니다. 또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돈만 있으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찾아 갑니다. 이것은 본능이고 인간의 욕구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탄이 육신적인 것으로 속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음란에 대한 부분들. 이것도 인간의 본능이죠.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조금만 눈을 떠서 복음을 붙잡는다면, 그 속에서 모든 축복을 회복하게 될 것인데, 그 속에서 속아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놓치게 되는 것을 보게됩니다.
여러분, 복음 안에서 조금만 눈을 떠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본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주 멋있는 사람이 될 것인데 이 사실을 놓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복음으로 저와 여러분의 모든 문제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시작이 그 속에 있습니다. 단순히 “복음이 이것이다” 말하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한 축복이 복음 안에 있는데 그 축복이 지금 여러분의 현실의 문제 앞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더욱이 이 복음 아니고서는 악한 사탄의 세력을, 흑암의 세력을 꺾을 길이 없습니다. 악한 사탄이 하나님의 심부름 하는 존재였으나 공중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여 땅 위에 모든 권세를 장악했습니다. 이 세력을 꺾는 길은 복음운동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중심을 가지고 헌신하게 될 때, 하나님은 모든 축복을 쏟아 부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운동만이 진리이고 복음운동만이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붙잡으시고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승리하며 바른 영적인 싸움을 싸우는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전도운동을 향한 헌신은 헛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응답으로 다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진짜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추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역사가 무엇 중심으로 움직여집니까? 마24:14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했습니다. 전도 중심으로 해서 이 지구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에 증인되고자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땅 끝까지 증인될 수 있도록 증거거리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전도를 위한 헌신은 헛되지 않고 분명한 상급으로 우리에게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0:42에도 보면 “제자의 이름으로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자 그것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럼 전도가 무엇입니까? 전도는 우리가 힘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주사역이 전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에 보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주관자가 누구시냐?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누가 붙들고 계시냐? 하나님이 붙들고 계십니다. 불신자들의 생명 조차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내가 맘대로 죽고 싶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고요, 내가 살고 싶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부르시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가야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장하고 계시는데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엡1:3-5에 보면 “영세 전에 이미 예정하시고 선택”하셨습니다. 누가요? 하나님입니다. 영세 전에 이미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때가 되매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1:6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당신께서 친히 모든 것을 준비시키고 계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행13:48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누가 구원을 하시느냐? 하나님이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를 준비시켜 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주사역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우리는 그 속에 쓰임 받을 뿐이고, 그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치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왔다가 갈급함으로 돌아가는 내시에게 하나님은 정확하게 전도자 빌립을 준비시키고 만나게 하신 것처럼. 누가 하신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와 더불어 다메섹 도상에 제자 아나니아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사울을 꺾으셔서 아나니아에게 붙이신 사건도 누가 하신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말씀하고요, 우리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12:3에 뭐라고 했습니까? “아무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시라 시인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누가 하시느냐? 전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 전도 속에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도를 미련하게 보지만, 고린도전서1:21에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는 그 전도를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28:16-20에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가서 주님의 이름으로 제자 삼는 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전도를 붙잡게 되면, 전도의 축복의 역사 속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그 속에서 모든 걸음과 사건 속에 하나님의 축복의 시간표를 이루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교회 안에 참된 전도운동을 위해 우리가 인도받아야 할, 응답 받아야 될 부분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교회 안에 전도운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중직자분들이 전도기획에 대한 응답들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중직자분들이 눈을 뜨지 않는 이상에는, 진짜 중직자분들이 응답 받지 못하는 이상에는, 교회가 부흥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직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봐야 되는 것이고요, 중직자들 한 사람 한사람이 제자로 쓰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전도기획이란 중요한 단어를 붙잡고 함께 우리 모든 장로님들이 정말 중심을 다해서 인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중직자분들이 이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오래된 신앙생활 가운데 응답 받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은 불신앙하게 되고 결국은 온갖 염려하게 됩니다. 평신도 보다 중직자분들이 앞에 서 있으니까 교회의 전반적인 부분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짜 은혜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축복 받지 못하면 온갖 염려들로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 중직자분들로 말미암아 축복이 전달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면, 그만큼 중직자들이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것만큼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머리에 기름 부어 세우신 종들인데, 먼저 축복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온갖 상처들을 가지고 불신앙의 말을 하고 만나는 사람에게 불신앙의 말을 전달한다면 그 인생 자체가 얼마나 실패하는 인생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먼저 중직자분들이 진짜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지금 전도기획에 생을 걸고 인도받고자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직자분들은 전도기획의 첫 번째, 교회 내부를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 사실 우리 중직자분들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 내부를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히 각 기관과 전문인들, 새 가족들, 또 교역자와 성도들의 갖고 있는 기도제목들이 어떤 것이고, 그들이 갖고 있는 애로사항이 어떤 것이며, 그들의 사정과 형편이 어떤 것이고 그들의 문제들은 어떤 것인가? 한 부분 한 부분 놓고 기도하면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될 전도기획인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있는 일꾼들을 이해해야 바른 기획이 나올 수가 있지요. 이것을 모르는데 어떻게 기획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정말 교역자들의 애로사항이 뭐며 기도하는 제목들이 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고, 우리 평신도 성도님들 한분 한분이 정말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신앙생활이 무엇 때문에 힘든 것인가? 이 사실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부분들을 우리 중직자분들이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있어야 되는 것이고, 새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이 진짜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 말씀을 통해 권면하고 기도로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이 되어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부를 이해하기 위해서 5인 1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모든 교역자들은 현장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알고 있는 교역자들이기 때문에 현장에 눈을 열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가 되면 되느냐? 교구를 맡은 교역자들은 “내가 이 지역(교구)을 살려야겠다” 이 결단이 되어져야 됩니다. 주일학교를 맡고 있는 교역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교사들과 현장에 들어가서 “지금 타락의 문화권 가운데 넘어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살려야겠다”
그래서 현장에 정확하게, 상세하게, 세밀하게, 현장을 훤하게 꿰뚫고 있어야 하는 자들이 누구냐? 바로 교역자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2010년도에는 교역자들 현장을 살리기 위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시겠다 말씀했습니다. 교회 내부를 알고 있는 교역자들은 현장을 알아야 되는 것이고, 현장을 알고 있는 중직자들은 교회 내부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교회 내부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왜 알아야 되느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다 현장과 관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부를 알고 있는 중직자들과 현장을 알고 있는 교역자가 준비되어 지는 만큼 교회 안에 캠프가 응답으로 성공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내부를 알고 있는 중직자들, 교회 밖의 현장을 알고 있는 교역자들이 준비되어 지는 만큼 실제로 전문 캠프팀이 나오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평신도 성도님들은 여러분 있는 현장에 말씀 붙잡고 현장에 들어가고 현장에서 그 말씀의 성취를 맛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장 말씀 성취의 증인이 되어야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바로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렘넌트들은 성경에 나오는 7명의 렘넌트들 처럼 중요한 응답들을 현장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요셉은 가정의 문제 가운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가정문제를 이기는 답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 답을 렘넌트들은 찾아내야 합니다.
세상이 어렵습니다.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될 세상입니다. 그 세상을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요, 교회에 나와서 은혜를 받아야 되는데 어떻게 은혜를 받을 것인가 그 답들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요, 사회가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사회 속에서 응답받고 승리하는 증인이 될 것인가? 그 답들을 찾아내야 될 것이고요, 현장에 우상의 역사로 말미암아 멸망과 재난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거기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다 망해도 괜찮습니다. 그와 함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완전한 답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야 될 것이 뭐냐? 렘넌트들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RUTC를 지어 나가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RUTC에서 집중적으로 렘넌트들에게 교육해야 될 부분 7가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도에 대한 축복을 깨달으면 깨닫는 만큼 분명한 것은 1년이 지나면 그 응답이 다르고, 2~3년이 지나면 그 응답이 분명히 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말 전도에 대한 사실들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고 있으면 왜 중직자들이 전도기획을 통해서 초대교회가 가졌던 축복들을 놓쳐버렸는데 그 축복을 회복해야 될 것인가?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운동하는 지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답이 나오게 되어 있고, 이 전도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우리 렘넌트들이 일어나야 된다는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렘넌트들을 통해서 정말로 문화권을 바꿔야 되는데 이 일을 위해 RUTC 이게 왜 중요한 것인가? 답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헛되지 않은 썩지 않는 복음운동, 전도운동, 우리가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 갈수 있는 축복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운동, 전도운동은 영원한 것입니다. 헛되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한 목표가 복음운동을 통해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고, 전도운동을 통해서 이 현장에 영적문제 가운데 빠진 자들을 건져 내자는 것입니다. 이 사역에 방향 맞추어 나갈 때에 여기서 하나님은 중요한 응답과 축복들을 쏟아 부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복음운동, 전도운동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달음질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은혜를 입혀 주셨습니다.
여러분, 복음운동만 진리입니다. 복음 외에 진리는 없습니다. 전도운동 외에 시급한 것은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제자를 확립하고 우리 중직자분들이 일어나 전도기획을 하고 이를 위해서 우리 렘넌트들이 일어나서 문화를 살리는 역사 이 사역에 방향을 맞추어 나간다면 앞으로 우리의 모든 걸음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엄청난 응답들로 우리의 걸음 속에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다가올 축복을 붙잡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가올 축복을 붙잡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시고요. 그것이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신16:15절을 한 번 봅시다. 13절부터 초막절(추수감사절)을 이야기 하면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아멘.
한번 받아합시다. “나는 미래가 준비된 사람이다!” 승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오늘까지 우리에게 엄청난 응답을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마는 오늘 이 시간 또 다른 응답, 주실 응답 바라보고 감사를 회복하는 시간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 뿐인 생애에 영원히 썩어지지 아니하는 복음운동, 전도운동을 위해서 달음질 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축복의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도 감사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실 역사 앞에, 상 주시는 이를 바라보고 달려갈 수 있는 역사 앞에 감사하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서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썩어 없어지지 않는 분명한 목표를 주셨습니다. 마라톤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황제가 수여하는 월계수관도 시들고 썩어 없어질 것이나, 성도에게는 썩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을 주셨습니다. 이 축복을 찾아내면서 참된 감사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썩어 없어지지 않는 분명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1. 복음운동을 위한 헌신은 분명한 목표가 있는 달음질입니다.
(1) 복음 안에서의 수고는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 복음 위한 어떤 헌신에든 상급이 준비되어 있음(고전15:58). 복음 위한 작은 헌신에도 창조로부터 준비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됨(마25:31-36). 복음을 위한 헌신은 썩지 않는 영원한 것임
(2) 복음운동만이 진리이며, 저주와 재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떠난 인생이 당하는 저주
- 재앙 속에서 멸망의 차를 타고 달려감(운명에 빠짐, 우상숭배, 육신문제, 정신문제, 후대에 저주 전달, 지옥). 저주와 재앙이 개인과 사회를 파고들고, 미래에도 계속해서 일어남(마24-25장, 계12:1-9)
2) 복음은 하나님을 떠나 저주 가운데 빠진 인생을 해방시키는 것
- 예수 그리스도 붙잡는 순간에 인생의 모든 저주가 해결됨(요일3:8, 요14:6). 복음이 아니고서는 악한 사탄의 세력을 꺾을 수 없음
3) 복음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찾아 누려야 함
- 성도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벧전2:9). 복음의 축복된 역사는 지금도 새롭게 계속해서 시작되고 있음(빌1:6). 개인이 가지고 있는 현실문제는 복음을 누리는 시작이자 기회임(아브라함 사례)
2. 전도운동을 위한 수고에 대해 영원한 천국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1) 전도운동을 향한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선교,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출 때 모든 필요를 채우심(마6:33). 전도 중심으로 세상 일이 돌아감(마24:14). 전도를 위한 헌신에는 분명한 상급이 준비 됨(마10:42)
(2) 전도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주사역입니다.
-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심. 하나님이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심(엡1:3-5, 행13:48). 우리는 이 일에 쓰임 받을 뿐임(빌립→에디오피아 내시/ 아나니아→바울).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심(고전1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제자 삼는 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심(마28:16-20)
(3) 전도운동을 위해 중직자 전도기획에 응답 받아야 합니다.
- 중직자는 교회 내부를 이해해야 함. 교역자-현장을 훤하게 알고 있어야 함. 평신도-현장에서 말씀성취의 증인이 되어야 함. 렘넌트- 일곱 렘넌트처럼 중요한 응답을 현장에서 찾아내야 함
결론: 복음운동과 전도운동은 영원한 것입니다. 복음 외에 진리는 없으며, 전도보다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복음운동 통해 저주 문제 해결하고, 전도운동 통해 현장에서 영적문제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야 합니다. 이 사역에 방향 맞추어 나갈 때 하나님은 여기에 중요한 응답과 축복을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달음질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은혜를 입혀주셨습니다. 다가올 축복을 붙잡고 감사하시며 예물을 드리십시오(추수감사절의 의미, 신16:15).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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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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