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하기를 사모하라
2009-12-13 00:00:00
관리자
조회수 37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이 전도기획의 주역이십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오늘 찬양대 찬양이 있었습니다.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할렐루야! 이 임마누엘의 축복이 이번 한주간 최고의 비밀로 누려지는 축복된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별 의미없는 것이 있고, 반대로 아주 간단히 이야기 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성경에 세 번만 나옵니다만 성경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7:14에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8:8에 임마누엘이란 단어가 또 나오고, 신약성경 마1:23에 사7:14을 인용해서 임마누엘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그렇게 많이 나오는 단어는 아니지만, 성경 전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나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성경단어는 세 군데에 나옵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임마누엘의 축복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것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에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자 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마28:20에 보면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임마누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것이 기도며,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사실들이 상대방에게 보여지는 것을 가지고 전도와 선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우리에게 참 행복과 참 만족이 느껴질 때가 언제입니까? 참 행복하다, 만족하다는 사실이 언제 체험하게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성공에 또, 가지고 있냐 그렇지 못하냐의 소유개념에 행복의 기준을 두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진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해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현장의 문제들을 조금만 눈을 떠 본다면, 그것이 참 행복과 참 만족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자살하고,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까? 또, 돈 있는 재벌가들이 자살하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자살해 죽는 등 결국은 권력도 부도 인기도 참 만족과 참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느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데서 참 만족과 행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이 사실을 확인하는데서 기쁨이 오고, 내가 일을 크게 하든 적게 하든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 맞구나!” 확인될 때, 참 힘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분명히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의 능력은 무한하시고 그와 더불어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들은 영적인 문제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심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결국은 다 가지고 있는 영적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며 삶과 경제에도 문제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날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고자하는 것은, 왜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는가? 조금만 눈을 떠서 보세요. 영적으로 너무 어려움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에 대한 이유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 고린도 교회내의 현실을 알아보며 안팎의 문제를 살펴보면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이며 하나님을 모르는데서 모든 문제가 찾아 온 것입니다.
요즘 가정들을 보면, 가면 갈수록 가정에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용 동물을 키우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한번은 제가 저희 집에 가기 위해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이웃에 사는 어떤 자매가 저에게 하는 말이“우리 집 개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갔는데 대구 내에서는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해 서울에까지 갔었는데도 병명을 발견치 못해서 그냥 데리고 왔습니다” 며 굉장히 슬픈 얼굴로 묻지도 않았는데 제게 말하더라고요. 그 집 개가 제가 봤을 때는 그렇게 귀엽지도 않아요. 개가 좀 무서워 보여요. 그런데 개가 병원에 갔는데 서울 병원에서도 모른다며 굉장히 슬픈 얼굴로 제게 이야기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그 자매와 마주쳤는데 그때는 개를 안고 있더라고요. “개가 살았습니다” 라며 기쁜 얼굴로 또 한 번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개가 아무리 수준 있고 똑똑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예배 하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와 비밀을 붙잡아야 하는데,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인간 외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창조된 것은 없습니다. 유일하게 인간만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창1:27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로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통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축복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도록 예배를 축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시간되길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모르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지 못하니까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인까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되니 어떤 일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모든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잘 모릅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가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간은 세상과 육신 속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역사를 보는 것 보다 먼저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이 보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죠. 하나님을 떠난 이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 때문에 우리와 관계된 모든 것들이 죄로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죄로 연결되게 된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악한 사탄이 멸망의 길로 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문제가 여러 가지인 것 같지만 눈을 떠서 제대로 보면, 창세기 3장에 나오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간이 육신이 되어 죄 가운데 빠져 사탄의 손에 묶이게 된 것을 창세기 3장 사건이라 하며 이것이 인생 문제의 근본 뿌리입니다. 이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주셨는데,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창세기 3장 사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봐야 제대로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문제를 당하든지 간에 우리의 눈은 항상 그 문제의 뿌리가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육신 속에 빠져 죄와 사탄으로 말미암아 온 문제라는 사실로 보여져야 제대로 답을 붙잡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들이 안 보여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말은 육신과 세상 속에 빠진 우리의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죄에 빠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탄의 손에 빠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말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은 “구별해서 세웠다”는 말이죠. 왕을 세울 때, 제사장을 세울 때,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말은, 단순한 제사장, 왕, 선지자로 오셨다는 말이 아니라, 참 왕으로, 수많은 세상의 왕들이 있지만, 그런 왕들과 다른 사탄의 왕국을 깨트려버리신 참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며, 참 제사장으로 오셨다는 말은, 수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지만, 그 제사장들도 인간인지라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참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대속물로써 다 갚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뿐만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 주시기 위해서 생명 되신 그리스도가 참 선지자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세상과 육신에 빠져있던 문제, 죄의 문제, 사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사건에서 완전히 건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 알면 알수록 세상이 제대로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우상숭배 열심히 하는데 망합니까? 왜 성경은 우상숭배 하지 말라고 합니까?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됩니다. 왜 사람들이 정성껏 최선을 다해 우상숭배를 하는데도 재앙과 재난이 계속되고 있는가? 기 이유를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착하고 바르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반복적인 실패가 왜 일어나는가?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스도를 알 때 보여지게 되어 있고, 그리스도를 알 때, 굉장한 지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상숭배 하지 않아도 되고 점쟁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의 지혜 곧 현장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그리스도 알 때, 비로소 깨닫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응답이 하나하나 열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고백한 것이 골2:3입니다.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할렐루야!
감추어져 있다는 말은 누구나 다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알면 알수록 아는 사람에게 어마 어마한 축복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는 완벽한, 완전한 축복을 예비해놓았습니다. 이 비밀이 언제 보여지게 되느냐? 바로 그리스도 알 때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도 “은혜 받았다”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제대로 은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다른 역사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은사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만,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도 은사를 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도 능력 받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도 병 고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는데, 기도 받은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그때부터 영적인 문제가 와서 평생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눈을 떠서 보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르고도 능력을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기준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축복이 감추어져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것인가? 그 방법들을 터득해야 할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것인가?
이 부분들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예배시간이 그리스도 누리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하고, 또 말씀 읽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들이 그리고 찬송을 부르는 시간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시간이 될 수 있다합니다. 더 나아가서 정시기도와 정시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 다 있다면 그 사실을 누려야 할 텐데,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잘못 처방하거나 잘못 복용하면 부작용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정말 모든 것이 다 있다면, 그리스도를 누리는 방법들을 어떻게 터득해야 할 것인가가 전부입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방법을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하는데, 성공한 성경속의 렘넌트들을 보면, 실패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문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일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사건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응답 받았습니까? 그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어떠한 모양과 방법으로도 여러분의 나름대로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누리는 방법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주중에 현장에서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정시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하루 일과를 놓고 정시예배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서 하루 한 날을 이길 만큼의 영적인 힘을 가지는 시간을 여러분 나름대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천지차이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해도 그 말이 뭔가 달리 들려집니다.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누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은 어딘가가 달라지어 있습니다. 별스럽지 않은 말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충만히 누리는 사람이 자신에게 있었던 과거의 일을 간증을 하게 될 때, 간증을 통해 은혜 받게 되고 영혼이 변화되어지며“아, 여기에 참 된 길이 있구나” 영혼의 전환점이 되어지는 중요한 기회가 되어짐을 보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만큼 그 증거가 나오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만큼 계속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만큼, 강단의 말씀을 붙잡았는데 그 말씀이 내게 답이 되요. 주일에 와서 말씀듣기 위해 예배당에 앉아 있는데 오늘 주신 말씀 제목이 내게 답이 되고 주신 말씀 속에 답을 얻게 되고 그 답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가니까 현장에 너무 정확히 응답으로 성취되는 사실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니 계속해서 내 주위에 생명운동의 문들이 계속해서 열려지게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자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베드로가 고백할 때,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도다” 하시면서 “이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무슨 말씀입니까? 저와 여러분을 통해,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들을 통해 복음이 증거되도록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축복된 일이 있다면, 나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는 일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뿐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흑암을 결박할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늘보좌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응답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비밀을 아는 한 사람만 있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현장들은 모두 살아나게 됩니다. 모든 현장은 모두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한 사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으로 넘어가서 고린도교회의 현실 문제를 통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고 있으면 교회 안팎에 굉장한 역사가 일어날 것인데, 이것이 안 되어지니까 오히려 교회 안에 문제 될 것이 없는 것도 문제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린다, 누리지 않는다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 부분임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게 되면 과거에 아무리 안 좋은 것도, 과거의 상처들도 복음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될 것인데,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까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신 것도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실패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축복을 가로막고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의 엄청난 축복을 놓치고, 그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까 은사로 주신 것들 때문에 교회 안에 혼란스러움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것은 축복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며 축복입니다. 그런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까 그 축복이 더 이상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을 봅니다. 오히려 그 축복이 문제가 되어 고린도교회 안에 그것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르면 하나님이 축복을 줘도 문제예요. 그것이 오늘 고린도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은사 주신 것이 감사한 일이며 축복된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 때문에 고린도교회 안에 싸움이 일어나서 바울이 26-32절에 “왜 은사를 자랑하고 그 때문에 싸우느냐”고 했습니다. “너는 방언 받았느냐? 나는 이런 방언 받았다. 왜 투시도 못하느냐?”서로 은사 자랑하고, 서로 방언 자랑하고, 예언을 받았다 못 받았다 서로 자랑하는 부분들 때문에 이 고린도교회 안에 싸움이 일어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로 문제가 왔느냐 교회 안의 질서까지 무너트리는 문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주셨습니다만,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다는 것은 내가 원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죠.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랑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니까 그것이 전부 자랑이 되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교만하게 되고 은사 받지 못한 사람이 시시하게 보여지고 불쌍하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은사 가운데 빠진 사람들에게 오게 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해요. 너무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배경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방언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졌는데 저희 교회로 인도 받으면서 전 교인이 모두 다 방언을 하니 앞서서 일을 하려하니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마음에 늘 눌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로 받을까 싶어 아직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방언 받으러 기도하러 가기도했는데 같이 간 그분마저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더 주눅이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방언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가 늦게야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방언과 더불어 통역의 은사도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교회 내에 방언하는 사람들 보니 시시해보이고 방언만 하는 사람들이 우습게 여겨지더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놓치면 다 그렇게 됩니다. 은사를 하나 받은 사람과 은사 열 가지 받은 사람 중에 누가 더 높고 낮으며 더 큰 능력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싸움이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을 놓쳐버리게 되고 결국 교만하게 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 보면 우습게 여겨지며 불쌍하게 여기지는 것입니다.
한 때 저희 원로목사님께서 강단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부교역자로 시내 모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시절에 밤늦게까지 기도하는 팀들이 모여 기도하는데, 본격적으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연히 은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습게 여기면서 권사님들이 교역자라 할지라도 인정도 하지 않는 사례까지 있었다 합니다. 부득이 어느 경우에 까지 오게 되었느냐면, 권사의 가방을 목사가 들 정도였다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 은사를 하나 받은 사람과 열 개의 은사를 받은 사람 중 어느 것이 더 크냐는 식의 기준을 가지고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도저히 목사의 말에 권위가 서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목사가 많은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 은사를 많이 받은 평신도에게 눌리는 것입니다. 아예 목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신앙이 아주 좋은 것 같지만 목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안에 은사 문제로 인해 혼란스러운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어느 정도로 바울이 이야기 했느냐?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다” 했습니다. 본문 33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40절 마지막에도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말씀했습니다. 교회 안에 서로 은사 자랑하는 것으로 인해 질서가 파괴되어지는 혼란이 일어나니까 “모든 것들을 질서있게 하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또 고린도교회 내부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놓치면 이렇게 되어집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강조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 본문을 보면서 한국교회가 어디에 빠져 있는지를 봐야 할 것입니다. 34절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안에 있었던 문제를 바울이 지적하고 있지요. 여자 성도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4절 보니까 여자는 교회에서 어떻게 하라고요?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여자는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니, 똑같은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합니까? 지금은 교회 안에 여자 장로님들도 세워져서 지교회의 주역으로 각 각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안의 실제 구성원들을 보면 여자 분들이 3분의 2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 분들이 모두 말하지 말고 죄송한 표현입니다만, 입을 닫으라는 말입니까? 그런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교회 안에 여자들 때문에 시끄럽고 싸움이 계속해서 일어나니까 그래서 말 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사회 직장 속에서도 보면 여성상위시대입니다. 서울대의 중요한 정치 외교학과를 구성도를 보면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더라구요. 신입생들을 봐도 남자 1명에 여자들이 더 많아요. 사법연수원에도 보면 이제는 남자들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머리도 더 똑똑하고요 그런 자리들을 여자들이 더 차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할지니라.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다른게 아닙니다. 교회에서 너무 시끄럽고 계속해서 싸움이 일어나니까 “좀 싸우지 말라. 너무 시끄럽게 하지말라” 는 말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오느냐? 그리스도를 놓치니까 이런 문제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이런 문제를 보면서 오늘 고린도 교회만의 문제라고 보여집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이에요.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을 본문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전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오시는 날까지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 다 있다는데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은사가 앞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참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교회가 은사운동과 신비운동을 했지 않습니까? 주일 마치고 기도원 올라가고, 월요일에 핵심요원들을 모시고 주암산 기도원에 올라가고 수요예배, 금요철야기도 마치고 또 기도원 올라가는 등 일주일에 몇 차례씩 기도원 올라가서 밤새도록 “주여!” 하며 부르짖으며 그만큼 은사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말씀에 근거한 은사운동이었기 때문에 이상한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저는 감사가 되더라구요. 왜냐? 한번 신비주의에 맛을 보면 못 빠져 나와요. 그리고 아무리 복음을 이야기해도 못 깨달아요. 못 빠져 나오고 못 깨달아요. 그래서 진짜 신비주의 운동한 사람들은 다락방에서 결국은 문제를 가져와요. 다 떠나게 되든지. 신비 운동하는 자는 결국은 복음도 못 깨닫고 신비주의에서도 못 빠져나오고 다락방하면서도 영적문제를 다 가지고 있어요.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저는 우리 교회가 복음 운동하는 한 시대적인 축복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대해 정말 감사가 되어지더라구요. 우리가 어떻게 이런 축복을 받았느냐? 우리도 잘못하면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서 잘못된 이상한 신비운동을 해서 열심히 하고도 실패할 수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깊이 빠지지 않고 복음 안에 들어와서 복음운동, 전도 운동하는 교회로 전도만을 위해서 교회가 나갈 수 있는 교회로 인도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일어난 고린도 교회 모습이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진짜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참된 안식과 이 땅의 참 행복을 약속해 놨습니다. 그리스도 그 안에서 모든 것 다 찾아내야 되는데 그게 고린도 교회가 안되어지니까 축복으로 주신 은사도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주님오시는 날까지 진짜 마지막 날까지 붙잡고 있어야 될 부분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거기에 대한 중요한 해결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4:39입니다. 오늘 제목으로 주신 답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고린도전서 14장 전체가 방언과 예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고전14:1에도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그러면서 2절에는 방언에 대해서 3절은 예언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거기 보면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또 반대로 “예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23절에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이 볼 때는 방언 계속하는 것을 보면 미쳤다고 한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방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의 비밀을 말함이라 했습니다. 영의 비밀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없이 우리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을 말합니다.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우리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그것이 영의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비밀을 갖고 있으면 피곤하지도 않고 밤새도록 기도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 방언을 통해 자신의 감정들을 그대로 하나님께 쏟아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 3절과 4절에 보면 방언과 예언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이 예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고전14:39에도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방언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우리가 붙잡을 것이 뭐냐?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할지라도, 교회안 구석에서서 혀를 돌리며 아무리 방언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오늘 읽지 않았습니다만, 앞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9절에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깨달은 자의 다섯 마디 말이 더 힘 있느니라”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여기에 우리 교회와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답이 있다는 사실을 붙잡아야 됩니다.
여러분, “이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것을 사모하라” 이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장에서 불신자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것을 사모하라” 그 말이 “예언을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언이라는 말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다른 말로 계시라고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상한 것을 듣고 본다고 해서 꿇어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요. 이미 하나님은 성경에 완전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들을 다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 붙잡고 이 말씀을 통해서 불신자 살리는 현장의 일을 감당하라는 말입니다. 왜 교회에 축복으로 주신 은사 때문에 문제가 되어지고 질서가 파괴되어지고 교회 안에 내분이 일어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갈등이 일어나고 영적인 문제에 빠지느냐? 정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 교회 밖에서는 우상과 역술과 점술이 판을 치면서 이것이 문화화 되어서 모든 백성이 여기에 속아 넘어가느냐? 살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현장에 선포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묵상기도 때 보았던 말씀입니다. 딤후4:1-3에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말세에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고 했습니다. 왜 교회가 엉뚱한 소리에 빠지는 줄 아십니까? 바른 진리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현장에 다른 엉뚱한 자기 사욕을 쫓을 스승을 두면서 그 귀를 쫑긋하면서 따르는 줄 아십니까?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 만나는 말씀운동, 죄 문제 해결 받는 말씀운동, 사탄의 손에서 해방되는 말씀운동을 선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복음을 선포하게 되면 틀린 소리를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축복하신 이유가 있다면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신 이유가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언을 사모하라, 현장에서 불신자를 살리는 유일한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죄 문제 해결 받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사단의 손에서 해방되어지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이 이유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모든 것 해결 됩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인간은 우상숭배하고요, 그래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의 원인을 하나님이 해결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것인가?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핵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모든 것을 다 담아 주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의 비밀 누리는 한 사람 때문에 교회 안에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여러분의 현장에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축복된 역사들을 맛보기를 바랍니다. 혹여나 오늘 처음오신 분이 있으시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을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있습니다.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제자를 세우는 축복을 주었습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그리스도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축복된 일꾼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모든 만물이 무릎 꿇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교회가 축복 받을 이유, 우리가 이 땅에 살아야 될 이유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지 못해서 멸망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오직 유일한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그리스도, 죄 문제 해결 받는 그리스도, 사단의 손에서 영원한 해방을 주시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말하라고 우리를 세우신 줄 압니다. 이 축복의 비밀에 증인되게 하시고 이 축복을 현장에서 말할 때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체험되고 누려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copyright ⓒ Hana presbyterian church for world evangelization
2009년 12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고전14:26-40)
서론: 사람들은 얼마나 가졌는지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나 감옥행, 돈이 많은 재벌과 인기 있는 연예인의 자살은 결국 권력도 부도 인기도 참 만족과 참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데서 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임마누엘. 사7:14, 8:8, 마1:23).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심에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결국 영적인 문제가 심각해지며 삶에 문제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려움 당하는 이유
(1) 사람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데서 나왔습니다.
1) 인간만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존재로 창조됨(창1:27)
2)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유(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간의 근본문제)
① 하나님을 떠남으로 육신 속에 빠져버림
② 우리 현장의 모든 일이 죄로 연결됨
③ 그 배후에는 악한 사탄이 멸망의 길로 끌고 감
(2)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1) 참왕으로 오셔서 사탄의 왕국을 깨뜨리심(요일3:8)
2) 참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갚으심(롬8:2)
3) 참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 만나는 참 길이 되심(요14:6)
(3)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1) 그리스도 알수록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세상이 제대로 보여지게 됨(반복적인 실패와 재앙의 이유)
2) 그리스도 안에 완벽하고 완전한 축복이 예비됨(골2:3)
3) 그리스도를 모르고서 은사와 능력을 받을 수 있으나 이는 악령의 역사임
4) 그리스도 누리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야 함(가장 좋은 것은 정시예배)
2. 고린도교회의 문제와 오늘날 교회의 문제 - 그리스도 비밀을 누리지 못함
(1) 은사를 서로 자랑하며 교회 안의 질서가 파괴되어 혼란스러워졌습니다(26-32절).
(2) 교회 안에서 여자들로 인해 계속해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34절).
3. 해결책 - 정확한 그리스도 복음 선포
(1)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39절).
1)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아서 사람에게 하는 것임
2) 이 말은 말씀 붙잡고 불신자 살리는 일을 감당하라는 말임(완전한 예언을 성경에 이미 주셨기 때문에)
(2) 교회 안과 세상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딤후4:1-3).
1)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그리스도 2) 죄 문제 해결 받는 그리스도 3) 사탄의 손에서 해방 주시는 그리스도
결론: 하나님을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인간은 우상숭배하며,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멸망의 원인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누릴 것인지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팎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것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별 의미없는 것이 있고, 반대로 아주 간단히 이야기 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성경에 세 번만 나옵니다만 성경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7:14에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8:8에 임마누엘이란 단어가 또 나오고, 신약성경 마1:23에 사7:14을 인용해서 임마누엘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그렇게 많이 나오는 단어는 아니지만, 성경 전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나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성경단어는 세 군데에 나옵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임마누엘의 축복에 대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것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에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자 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마28:20에 보면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임마누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것이 기도며,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사실들이 상대방에게 보여지는 것을 가지고 전도와 선교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우리에게 참 행복과 참 만족이 느껴질 때가 언제입니까? 참 행복하다, 만족하다는 사실이 언제 체험하게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성공에 또, 가지고 있냐 그렇지 못하냐의 소유개념에 행복의 기준을 두고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진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에 대해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현장의 문제들을 조금만 눈을 떠 본다면, 그것이 참 행복과 참 만족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자살하고, 전직 대통령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까? 또, 돈 있는 재벌가들이 자살하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인기 있는 연예인들이 자살해 죽는 등 결국은 권력도 부도 인기도 참 만족과 참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느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데서 참 만족과 행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이 사실을 확인하는데서 기쁨이 오고, 내가 일을 크게 하든 적게 하든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 맞구나!” 확인될 때, 참 힘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분명히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의 능력은 무한하시고 그와 더불어 온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들은 영적인 문제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심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결국은 다 가지고 있는 영적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며 삶과 경제에도 문제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날 말씀을 통해 생각해보고자하는 것은, 왜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는가? 조금만 눈을 떠서 보세요. 영적으로 너무 어려움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에 대한 이유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 고린도 교회내의 현실을 알아보며 안팎의 문제를 살펴보면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데서 오는 문제이며 하나님을 모르는데서 모든 문제가 찾아 온 것입니다.
요즘 가정들을 보면, 가면 갈수록 가정에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용 동물을 키우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한번은 제가 저희 집에 가기 위해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이웃에 사는 어떤 자매가 저에게 하는 말이“우리 집 개가 아파서 동물병원에 갔는데 대구 내에서는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해 서울에까지 갔었는데도 병명을 발견치 못해서 그냥 데리고 왔습니다” 며 굉장히 슬픈 얼굴로 묻지도 않았는데 제게 말하더라고요. 그 집 개가 제가 봤을 때는 그렇게 귀엽지도 않아요. 개가 좀 무서워 보여요. 그런데 개가 병원에 갔는데 서울 병원에서도 모른다며 굉장히 슬픈 얼굴로 제게 이야기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그 자매와 마주쳤는데 그때는 개를 안고 있더라고요. “개가 살았습니다” 라며 기쁜 얼굴로 또 한 번 묻지도 않았는데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개가 아무리 수준 있고 똑똑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예배 하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와 비밀을 붙잡아야 하는데,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인간 외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창조된 것은 없습니다. 유일하게 인간만 예배하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창1:27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로 저와 여러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통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축복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도록 예배를 축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시간되길 축복의 시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모르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지 못하니까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인까지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되니 어떤 일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모든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잘 모릅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가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간은 세상과 육신 속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역사를 보는 것 보다 먼저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육신적인 것, 세상적인 것이 보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죠. 하나님을 떠난 이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원죄 때문에 우리와 관계된 모든 것들이 죄로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관계된 모든 현장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죄로 연결되게 된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악한 사탄이 멸망의 길로 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인생의 문제가 여러 가지인 것 같지만 눈을 떠서 제대로 보면, 창세기 3장에 나오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간이 육신이 되어 죄 가운데 빠져 사탄의 손에 묶이게 된 것을 창세기 3장 사건이라 하며 이것이 인생 문제의 근본 뿌리입니다. 이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주셨는데,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창세기 3장 사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봐야 제대로 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문제를 당하든지 간에 우리의 눈은 항상 그 문제의 뿌리가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육신 속에 빠져 죄와 사탄으로 말미암아 온 문제라는 사실로 보여져야 제대로 답을 붙잡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들이 안 보여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말은 육신과 세상 속에 빠진 우리의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죄에 빠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탄의 손에 빠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참 왕, 참 제사장, 참 선지자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말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은 “구별해서 세웠다”는 말이죠. 왕을 세울 때, 제사장을 세울 때,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말은, 단순한 제사장, 왕, 선지자로 오셨다는 말이 아니라, 참 왕으로, 수많은 세상의 왕들이 있지만, 그런 왕들과 다른 사탄의 왕국을 깨트려버리신 참 왕으로 오셨다는 것이며, 참 제사장으로 오셨다는 말은, 수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지만, 그 제사장들도 인간인지라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참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대속물로써 다 갚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뿐만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 주시기 위해서 생명 되신 그리스도가 참 선지자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세상과 육신에 빠져있던 문제, 죄의 문제, 사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사건에서 완전히 건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 알면 알수록 세상이 제대로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우상숭배 열심히 하는데 망합니까? 왜 성경은 우상숭배 하지 말라고 합니까? 그 이유에 대해 알게 됩니다. 왜 사람들이 정성껏 최선을 다해 우상숭배를 하는데도 재앙과 재난이 계속되고 있는가? 기 이유를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착하고 바르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반복적인 실패가 왜 일어나는가?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스도를 알 때 보여지게 되어 있고, 그리스도를 알 때, 굉장한 지혜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상숭배 하지 않아도 되고 점쟁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의 지혜 곧 현장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그리스도 알 때, 비로소 깨닫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응답이 하나하나 열려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고백한 것이 골2:3입니다.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할렐루야!
감추어져 있다는 말은 누구나 다 안다는 말이 아닙니다. 알면 알수록 아는 사람에게 어마 어마한 축복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는 완벽한, 완전한 축복을 예비해놓았습니다. 이 비밀이 언제 보여지게 되느냐? 바로 그리스도 알 때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도 “은혜 받았다” 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제대로 은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것은 다른 역사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은사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만,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도 은사를 받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도 능력 받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모르고서도 병 고칠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는데, 기도 받은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그때부터 영적인 문제가 와서 평생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눈을 떠서 보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르고도 능력을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아느냐 모르느냐가 기준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축복이 감추어져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것인가? 그 방법들을 터득해야 할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것인가?
이 부분들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예배시간이 그리스도 누리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하고, 또 말씀 읽는 시간과 기도하는 시간들이 그리고 찬송을 부르는 시간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시간이 될 수 있다합니다. 더 나아가서 정시기도와 정시예배를 통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 다 있다면 그 사실을 누려야 할 텐데,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잘못 처방하거나 잘못 복용하면 부작용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정말 모든 것이 다 있다면, 그리스도를 누리는 방법들을 어떻게 터득해야 할 것인가가 전부입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방법을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하는데, 성공한 성경속의 렘넌트들을 보면, 실패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문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일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사건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응답 받았습니까? 그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누렸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어떠한 모양과 방법으로도 여러분의 나름대로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누리는 방법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면, 주중에 현장에서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정시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하루 일과를 놓고 정시예배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서 하루 한 날을 이길 만큼의 영적인 힘을 가지는 시간을 여러분 나름대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천지차이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해도 그 말이 뭔가 달리 들려집니다. 상대방에게 어떤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누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은 어딘가가 달라지어 있습니다. 별스럽지 않은 말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충만히 누리는 사람이 자신에게 있었던 과거의 일을 간증을 하게 될 때, 간증을 통해 은혜 받게 되고 영혼이 변화되어지며“아, 여기에 참 된 길이 있구나” 영혼의 전환점이 되어지는 중요한 기회가 되어짐을 보게 됩니다.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만큼 그 증거가 나오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만큼 계속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만큼, 강단의 말씀을 붙잡았는데 그 말씀이 내게 답이 되요. 주일에 와서 말씀듣기 위해 예배당에 앉아 있는데 오늘 주신 말씀 제목이 내게 답이 되고 주신 말씀 속에 답을 얻게 되고 그 답을 가지고 현장에 들어가니까 현장에 너무 정확히 응답으로 성취되는 사실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니 계속해서 내 주위에 생명운동의 문들이 계속해서 열려지게 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자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베드로가 고백할 때,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도다” 하시면서 “이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무슨 말씀입니까? 저와 여러분을 통해,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들을 통해 복음이 증거되도록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축복된 일이 있다면, 나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는 일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뿐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흑암을 결박할 권세를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하늘보좌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응답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비밀을 아는 한 사람만 있으면,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현장들은 모두 살아나게 됩니다. 모든 현장은 모두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한 사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으로 넘어가서 고린도교회의 현실 문제를 통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고 있으면 교회 안팎에 굉장한 역사가 일어날 것인데, 이것이 안 되어지니까 오히려 교회 안에 문제 될 것이 없는 것도 문제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린다, 누리지 않는다 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 부분임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게 되면 과거에 아무리 안 좋은 것도, 과거의 상처들도 복음 안에서 가장 아름답게 될 것인데,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까 우리에게 축복으로 주신 것도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실패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축복을 가로막고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리스도의 엄청난 축복을 놓치고, 그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까 은사로 주신 것들 때문에 교회 안에 혼란스러움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것은 축복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며 축복입니다. 그런 엄청난 축복을 받고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지 못하니까 그 축복이 더 이상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을 봅니다. 오히려 그 축복이 문제가 되어 고린도교회 안에 그것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르면 하나님이 축복을 줘도 문제예요. 그것이 오늘 고린도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은사 주신 것이 감사한 일이며 축복된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 때문에 고린도교회 안에 싸움이 일어나서 바울이 26-32절에 “왜 은사를 자랑하고 그 때문에 싸우느냐”고 했습니다. “너는 방언 받았느냐? 나는 이런 방언 받았다. 왜 투시도 못하느냐?”서로 은사 자랑하고, 서로 방언 자랑하고, 예언을 받았다 못 받았다 서로 자랑하는 부분들 때문에 이 고린도교회 안에 싸움이 일어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로 문제가 왔느냐 교회 안의 질서까지 무너트리는 문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주셨습니다만,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다는 것은 내가 원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죠.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랑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니까 그것이 전부 자랑이 되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교만하게 되고 은사 받지 못한 사람이 시시하게 보여지고 불쌍하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은사 가운데 빠진 사람들에게 오게 된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해요. 너무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배경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방언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졌는데 저희 교회로 인도 받으면서 전 교인이 모두 다 방언을 하니 앞서서 일을 하려하니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마음에 늘 눌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로 받을까 싶어 아직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방언 받으러 기도하러 가기도했는데 같이 간 그분마저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 더 주눅이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방언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가 늦게야 방언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방언과 더불어 통역의 은사도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교회 내에 방언하는 사람들 보니 시시해보이고 방언만 하는 사람들이 우습게 여겨지더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놓치면 다 그렇게 됩니다. 은사를 하나 받은 사람과 은사 열 가지 받은 사람 중에 누가 더 높고 낮으며 더 큰 능력을 받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싸움이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을 놓쳐버리게 되고 결국 교만하게 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 보면 우습게 여겨지며 불쌍하게 여기지는 것입니다.
한 때 저희 원로목사님께서 강단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부교역자로 시내 모 교회에서 사역하시던 시절에 밤늦게까지 기도하는 팀들이 모여 기도하는데, 본격적으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연히 은사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습게 여기면서 권사님들이 교역자라 할지라도 인정도 하지 않는 사례까지 있었다 합니다. 부득이 어느 경우에 까지 오게 되었느냐면, 권사의 가방을 목사가 들 정도였다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 은사를 하나 받은 사람과 열 개의 은사를 받은 사람 중 어느 것이 더 크냐는 식의 기준을 가지고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도저히 목사의 말에 권위가 서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목사가 많은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 은사를 많이 받은 평신도에게 눌리는 것입니다. 아예 목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신앙이 아주 좋은 것 같지만 목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 안에 은사 문제로 인해 혼란스러운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어느 정도로 바울이 이야기 했느냐?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다” 했습니다. 본문 33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40절 마지막에도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말씀했습니다. 교회 안에 서로 은사 자랑하는 것으로 인해 질서가 파괴되어지는 혼란이 일어나니까 “모든 것들을 질서있게 하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또 고린도교회 내부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놓치면 이렇게 되어집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강조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 본문을 보면서 한국교회가 어디에 빠져 있는지를 봐야 할 것입니다. 34절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안에 있었던 문제를 바울이 지적하고 있지요. 여자 성도만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4절 보니까 여자는 교회에서 어떻게 하라고요?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여자는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니, 똑같은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말하지 말라고 합니까? 지금은 교회 안에 여자 장로님들도 세워져서 지교회의 주역으로 각 각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안의 실제 구성원들을 보면 여자 분들이 3분의 2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 분들이 모두 말하지 말고 죄송한 표현입니다만, 입을 닫으라는 말입니까? 그런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교회 안에 여자들 때문에 시끄럽고 싸움이 계속해서 일어나니까 그래서 말 하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사회 직장 속에서도 보면 여성상위시대입니다. 서울대의 중요한 정치 외교학과를 구성도를 보면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많더라구요. 신입생들을 봐도 남자 1명에 여자들이 더 많아요. 사법연수원에도 보면 이제는 남자들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 머리도 더 똑똑하고요 그런 자리들을 여자들이 더 차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할지니라. 어떻게 적용해야 합니까? 다른게 아닙니다. 교회에서 너무 시끄럽고 계속해서 싸움이 일어나니까 “좀 싸우지 말라. 너무 시끄럽게 하지말라” 는 말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오느냐? 그리스도를 놓치니까 이런 문제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이런 문제를 보면서 오늘 고린도 교회만의 문제라고 보여집니까?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모습이에요.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을 본문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은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전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오시는 날까지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 다 있다는데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은사가 앞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참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교회가 은사운동과 신비운동을 했지 않습니까? 주일 마치고 기도원 올라가고, 월요일에 핵심요원들을 모시고 주암산 기도원에 올라가고 수요예배, 금요철야기도 마치고 또 기도원 올라가는 등 일주일에 몇 차례씩 기도원 올라가서 밤새도록 “주여!” 하며 부르짖으며 그만큼 은사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말씀에 근거한 은사운동이었기 때문에 이상한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저는 감사가 되더라구요. 왜냐? 한번 신비주의에 맛을 보면 못 빠져 나와요. 그리고 아무리 복음을 이야기해도 못 깨달아요. 못 빠져 나오고 못 깨달아요. 그래서 진짜 신비주의 운동한 사람들은 다락방에서 결국은 문제를 가져와요. 다 떠나게 되든지. 신비 운동하는 자는 결국은 복음도 못 깨닫고 신비주의에서도 못 빠져나오고 다락방하면서도 영적문제를 다 가지고 있어요.
저는 이 부분을 보면서 저는 우리 교회가 복음 운동하는 한 시대적인 축복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대해 정말 감사가 되어지더라구요. 우리가 어떻게 이런 축복을 받았느냐? 우리도 잘못하면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서 잘못된 이상한 신비운동을 해서 열심히 하고도 실패할 수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깊이 빠지지 않고 복음 안에 들어와서 복음운동, 전도 운동하는 교회로 전도만을 위해서 교회가 나갈 수 있는 교회로 인도받았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에 일어난 고린도 교회 모습이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진짜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에 참된 안식과 이 땅의 참 행복을 약속해 놨습니다. 그리스도 그 안에서 모든 것 다 찾아내야 되는데 그게 고린도 교회가 안되어지니까 축복으로 주신 은사도 그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주님오시는 날까지 진짜 마지막 날까지 붙잡고 있어야 될 부분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거기에 대한 중요한 해결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4:39입니다. 오늘 제목으로 주신 답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고린도전서 14장 전체가 방언과 예언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고전14:1에도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그러면서 2절에는 방언에 대해서 3절은 예언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거기 보면 “방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 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또 반대로 “예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23절에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이 볼 때는 방언 계속하는 것을 보면 미쳤다고 한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방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영의 비밀을 말함이라 했습니다. 영의 비밀을 말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없이 우리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을 말합니다. 전혀 의식하지 않았는데 우리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 “그것이 영의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비밀을 갖고 있으면 피곤하지도 않고 밤새도록 기도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 방언을 통해 자신의 감정들을 그대로 하나님께 쏟아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 3절과 4절에 보면 방언과 예언에 대해 이야기 하며 “이 예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고전14:39에도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방언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우리가 붙잡을 것이 뭐냐?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할지라도, 교회안 구석에서서 혀를 돌리며 아무리 방언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오늘 읽지 않았습니다만, 앞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9절에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깨달은 자의 다섯 마디 말이 더 힘 있느니라”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여기에 우리 교회와 이 땅의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답이 있다는 사실을 붙잡아야 됩니다.
여러분, “이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것을 사모하라” 이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장에서 불신자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것을 사모하라” 그 말이 “예언을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언이라는 말은 선지자들이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다른 말로 계시라고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상한 것을 듣고 본다고 해서 꿇어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요. 이미 하나님은 성경에 완전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들을 다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 붙잡고 이 말씀을 통해서 불신자 살리는 현장의 일을 감당하라는 말입니다. 왜 교회에 축복으로 주신 은사 때문에 문제가 되어지고 질서가 파괴되어지고 교회 안에 내분이 일어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 갈등이 일어나고 영적인 문제에 빠지느냐? 정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왜 교회 밖에서는 우상과 역술과 점술이 판을 치면서 이것이 문화화 되어서 모든 백성이 여기에 속아 넘어가느냐? 살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현장에 선포되지 않아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묵상기도 때 보았던 말씀입니다. 딤후4:1-3에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말세에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둔다고 했습니다. 왜 교회가 엉뚱한 소리에 빠지는 줄 아십니까? 바른 진리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현장에 다른 엉뚱한 자기 사욕을 쫓을 스승을 두면서 그 귀를 쫑긋하면서 따르는 줄 아십니까? 교회가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 만나는 말씀운동, 죄 문제 해결 받는 말씀운동, 사탄의 손에서 해방되는 말씀운동을 선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복음을 선포하게 되면 틀린 소리를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축복하신 이유가 있다면 저와 여러분을 축복하신 이유가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언을 사모하라, 현장에서 불신자를 살리는 유일한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죄 문제 해결 받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사단의 손에서 해방되어지는 그리스도를 선포하라” 이 이유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모든 것 해결 됩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인간은 우상숭배하고요, 그래서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의 원인을 하나님이 해결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릴 것인가?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핵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모든 것을 다 담아 주셨습니다.
이번 한 주간 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 그리스도의 비밀 누리는 한 사람 때문에 교회 안에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여러분의 현장에 문제들이 해결되어지는 축복된 역사들을 맛보기를 바랍니다. 혹여나 오늘 처음오신 분이 있으시면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있습니다.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하심을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가 있습니다. 흑암이 꺾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늘군대가 동원되어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제자를 세우는 축복을 주었습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그리스도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축복된 일꾼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모든 만물이 무릎 꿇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교회가 축복 받을 이유, 우리가 이 땅에 살아야 될 이유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지 못해서 멸망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오직 유일한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그리스도, 죄 문제 해결 받는 그리스도, 사단의 손에서 영원한 해방을 주시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말하라고 우리를 세우신 줄 압니다. 이 축복의 비밀에 증인되게 하시고 이 축복을 현장에서 말할 때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체험되고 누려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copyright ⓒ Hana presbyterian church for world evangelization
2009년 12월 1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고전14:26-40)
서론: 사람들은 얼마나 가졌는지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기도 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나 감옥행, 돈이 많은 재벌과 인기 있는 연예인의 자살은 결국 권력도 부도 인기도 참 만족과 참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데서 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임마누엘. 사7:14, 8:8, 마1:23).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심에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결국 영적인 문제가 심각해지며 삶에 문제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어려움 당하는 이유
(1) 사람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데서 나왔습니다.
1) 인간만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누리는 존재로 창조됨(창1:27)
2)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유(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간의 근본문제)
① 하나님을 떠남으로 육신 속에 빠져버림
② 우리 현장의 모든 일이 죄로 연결됨
③ 그 배후에는 악한 사탄이 멸망의 길로 끌고 감
(2)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1) 참왕으로 오셔서 사탄의 왕국을 깨뜨리심(요일3:8)
2) 참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갚으심(롬8:2)
3) 참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 만나는 참 길이 되심(요14:6)
(3)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1) 그리스도 알수록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세상이 제대로 보여지게 됨(반복적인 실패와 재앙의 이유)
2) 그리스도 안에 완벽하고 완전한 축복이 예비됨(골2:3)
3) 그리스도를 모르고서 은사와 능력을 받을 수 있으나 이는 악령의 역사임
4) 그리스도 누리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야 함(가장 좋은 것은 정시예배)
2. 고린도교회의 문제와 오늘날 교회의 문제 - 그리스도 비밀을 누리지 못함
(1) 은사를 서로 자랑하며 교회 안의 질서가 파괴되어 혼란스러워졌습니다(26-32절).
(2) 교회 안에서 여자들로 인해 계속해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34절).
3. 해결책 - 정확한 그리스도 복음 선포
(1) 예언하기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39절).
1)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것이고,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아서 사람에게 하는 것임
2) 이 말은 말씀 붙잡고 불신자 살리는 일을 감당하라는 말임(완전한 예언을 성경에 이미 주셨기 때문에)
(2) 교회 안과 세상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딤후4:1-3).
1)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신 그리스도 2) 죄 문제 해결 받는 그리스도 3) 사탄의 손에서 해방 주시는 그리스도
결론: 하나님을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몰라서 인간은 우상숭배하며, 멸망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멸망의 원인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누릴 것인지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팎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