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그 백성은 번성하고 강해지니라
2010-10-0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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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할렐루야! 오늘 사랑부와 농인부가 귀중한 찬양을 함께 해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찬양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입니다. “기억하렴 주가 이미 모든 것을 해결해놓으셨다는 것을…”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했습니다. 오늘도 참된 축복의 응답들을 그 안에서 찾아 누리는 시간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당신이 전도기획의 주역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11월에 있을 제 14차 세계렘넌트문화선교대회를 앞두고 온 교회가 함께 이 일에 인도받기 위해 헌금하는 시간을 예배 중에 가집니다. 특별히 이번 세계렘넌트문화선교대회는 미국에서는 뉴욕과 필라델피아와 워싱턴 등 3개 지역에서 진행되어지고 동시에 10국 20군데 지역에서 타운별로 진행되어집니다. 예전과 다르게 “언약의 여정(뮤지컬)”을 중심으로 전도캠프가 진행되어지고 이 일을 위해 이미 예비 캠프로 계속해서 인도 받고 있으며 전도캠프 팀이 먼저 입국하여 집회가 진행되어집니다. 예전과 다른 선교대회로써 문화선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전 세계의 렘넌트들과 선교사들이 참여하게 되고 국내외 다락방 가족들이 원니스 되어 함께 인도 받는 기회입니다. 특별히 미주복음화 뿐만 아니라, 선교사의 새로운 축복된 일꾼들이 일어나는 차세대 선교사들을 발굴하는 현장들이 되어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헌금에 함께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만들어 낸 문화. 그 속에서 인생이 고통당하고 저주받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시대마다 보게 됩니다. 특별히 네피림 문화 속에서 결국 홍수심판이 이뤄졌고, 하나님을 대적해서 하나님께 심판받은 바벨탑 문화 또, 모세가 출애굽 할 때의 이뤄진 기적들은 하나같이 애굽의 우상문화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 타락의 문화와 귀신의 문화들이 가나안 땅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 흐름 속에 있다가 같이 영향 받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저주받고 같이 망해버린 것입니다. 당대만 그런 일을 당하면 다행인데 미안하지만 이런 문화를 바꾸어 놓지 않으면 우리의 후대들,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렘넌트들은 노예 되고 포로 되고 속국 되어지는 비참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바꾸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이 바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고자 하는 장소만 아니라 타락하고 저주가 가득한 그 땅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 속의 타락한 우상과 귀신과 저주의 세력을 꺾고 몰아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금 이 시대를 가지고 문화전쟁의 시대라 합니다. 코드(code)자체가 문화를 말하는 코드입니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도 이제는 문화를 가지고 문화선교와 문화전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문화를 가지고 흑암의 문화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일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을 이 일에 쓰시도록, 쓰임 받도록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제목이죠.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문화를 가지고 흑암의 문화를 바꾸는 일을 위해 저와 여러분을 쓰시기 위해 부르셨다는 것. 이 사실에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를 위해 헌금을 얼마나 많게 하고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얼마를 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 일에 헌금을 조금씩 드리더라도 모두가 하나 되고 원니스 되어 참여할 때, 역사는 누가 이루시는가? 하나님이 이루시게 되어 있습니다. 주의 택한 백성들이 이 일에 가치를 알고 마음을 담고 기도하면서 하나 될 때 역사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마음을 담고 새로운 기도가 시작되기를 다시 한 번 더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그 백성은 번성하고 강해지니라」 출1:20를 보시면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이 구절을 중심으로 제목을 정하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축복을 주시기 위해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에 전도자의 삶을 살도록 불러주셨습니다.
여러분, 2010년을 시작하며 새로운 시작이란 주제로 말씀을 받아오는 가운데, 새로운 시작으로 이 한해에 주신 응답이 바로 “전도자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두 번째로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꼭 보아야 할 세상 즉 전도자가 보아야 할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말씀을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고 인도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엇 때문에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까? 아마 교회 내에 전도자의 삶을 살라는 말씀이 선포되어지면서 성령의 인도 받는 룰(Rule-규칙)을 만들고 점수제와 팀 구성을 하라는 지시들이 전달되었습니다. 지난주 전도기획 포럼에서도 장로님들께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교인들이 팀 구성을 통해 응답받고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이 일에 앞선 장로님들이 먼저 모델적인 축복을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기도하는 가운데 한 주간에 일어났던 전도에 대한 이야기만을 나눌 수 있는 팀을 두 분씩 이뤄 계획하시면서 인도를 받으십시오” 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사실, 팀을 구성하고 점수제와 체크리스트를 한다 했을 때, 모두 다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편하게 “옳지! 이것이다”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전도신학원과 선교사 훈련원이 본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전도신학원생들 가운데 절반이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더라고요. 졸업하신 분들이 다시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강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훈련원에서도 거의 절반이 저회 교회 성도님들이 등록해서 수강하고 있으시더라고요. 눈치를 채고 재수강 하신 줄 믿습니다. 전도신학원에 입학하신 분들도 체크리스트가 제공되니 부담을 가지시더라고요. 제가 봐도 “이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할 만큼 놀랄만한 체크리스트더라고요. 학생들 뿐 아니라 교수하시는 목사님들조차도 우왕좌왕해요. 다들 어렵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차피 우리가 하나님께서 가장 관심가지고 계신 전도자의 삶을 살 것이라면 도전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전도신학원과 선교사훈련원에 재학생들이 거의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주를 이루시는데, 제 마음에 욕심이 나요. 또 거룩한 부담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년까지 우리 교회 권찰들은 다 수강해야 할 것 아닌가?” 우리 교회의 부흥의 핵심이 바로 권찰들입니다. 내년쯤에는 모든 앞선 권찰이 전도신학원에 입학해야 할 것이고 지교회를 담당하는 조장들과 사역자들도 모두 입학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라는 욕심들이 생겨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당연한 것인데 워낙 안 해오던 체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살지 않다가 지금 하려니 힘든 것이죠. 특별히 젊은 렘넌트들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훈련을 해온 과정이 있기에 쉽게 인도 받는 것 같습니다만 장로님들과 중직자분들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할지라도 시작해야 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다가 보면 포기하고 중단할 때 또 다시 시작하고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어느 날 스스로 지속되어지는 시간이 옵니다. 그때까지는 교회에 앞선 중직자들이 앞서서 인도 받고 끌어당겨야 할 것입니다. 하다가 중단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스스로 하게 되는 시간표가 오고 그렇게 되어지면 현장과 연결되어지면서 제대로 현장에서 전도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부담을 가지시더라도 인도를 받아 보십시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하세요. “아니, 숨쉬기도 어려운데 무슨 호흡기도냐?” 복식호흡을 강조하다보니 그러시더라고요. 어렵다는 의미겠죠.
지난 주 우리교회 어느 청년중 하나가 서울에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일이 있어 잠시 집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아버지, 요즘 전도자의 삶을 산다고 엄청 고생입니다” 이유인즉, 전도자의 삶을 체크한다 하니까 안하던 새벽기도도 해야 하죠, 성경읽기 등 안할 수는 없고 힘들다는 것을 고백을 하더랍니다. 다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라도 인도해나가시고자 하느냐? 하나님이 제대로 된 응답과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당장 해봐도 어렵더라고요. 그러먼서 저 자신 스스로도 “전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교회를 섬기면서도 “관심 없이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것을 끄집어내서 골탕 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전도자의 삶의 축복 속으로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제대로 축복된 응답이 무엇인가를 맛보고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 받아 보세요. 어떤 면에서는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중 뭔가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또, 열심히 살아가고 신앙생활 하는데,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데도 불구하고 안 되는 분들 있습니까? 바로 그것이 응답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여러분을 전도자의 삶 속으로 인도하기 위한 응답인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의 초반을 살펴볼 때 한마디로 말하자면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창11:9에 보면 바벨탑 문화의 영향을 받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이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 부친과 형님이 죽게 되고 우상동네에 살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불러내셨습니다. 가나안 땅의 축복을 주시고자 불러내셨는데 당장 아브라함의 현실 앞에 닥쳐진 문제는 기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그 시대 전체에 일어난 기근은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피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지만 가족들이 위기를 당하게 되는데, 자기 부인을 바로 왕에게 빼앗기게 되는 위기를 겪습니다. 창13:1-13에서 보듯이 하나뿐인 조차 롯을 데리고 나왔는데 그 조카 때문에 가문의 문제가 생겨 늘 끊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상동네에서 빠져나왔고 구원받았지만 뭔가 되는 일이 없었던 것이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이런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고 있지 않는가 하고 돌이켜 봐야 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셨지만, 신앙생활 하면서 왔다 갔다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누리고 증거하는 증인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늘 신앙이 흔들거리고 늘 혼동가운데서 어떤 것이 신앙생활인지 알지 못하고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되는 일이 없는 것은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제가 교회를 섬기며 보게 된 것이 교회를 중심하고, 말씀 붙잡고 복음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형통하도록 인도하시더라고요. 조금 육신적인 부분이 채워지니까 영적인 부분을 놓치고 교회와 말씀을 멀리하니 반드시 오는 결과들이 “목사님, 제가 잘못 선택했었습니다” 라고들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중심한 신앙생활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모든 부분에 문을 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상한 것은, 이런 축복을 조금 받으면 마음이 교회와 멀어지고 육신적으로 눈들이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결국에는 이것이 아님을 알고 두 손 들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혹시, 이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교회를 다니지만 뭔가 모르게 혼란가운데 또 갈등가운데 참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은 진작 전도자의 삶 속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야 하는데,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모든 것을 가지고 말씀 속으로,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끊어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지고 참 축복인 전도자의 삶 속으로, 말씀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께 단을 쌓은 이것이 아브라함이 성공하는 결정적인 요건이었습니다. 창15:4-6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할렐루야!
하나님의 축복을 선언하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대답했습니다. “나는 자식이 없는데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뿐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씨를 주시지 아니하시니 내 상속자가 없기에 내 집에서 길리우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라 한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4절입니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6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여기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는 것은 말씀 속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삶인 말씀의 축복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한 후 하나님이 축복을 선언하셨는데,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완전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갈대아에서 당한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라 응답이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아가야 할 사람이 아니기에 거기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참된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구원의 축복을 주신 것은 이 축복의 비밀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문제와 사건이 있습니까?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엉뚱한 삶을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골탕 먹이고 실패시키려고 건드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 참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인도 하신 것입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누가 이루시느냐? 그 일을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모든 문제와 사건은 그 역사 속에 축복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가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하느냐? 지난 핵심집회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창세기 3장의 원죄 문제는 과학과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발전한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창세기 3장의 원죄로 인한 영적인 문제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예외일 수 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창세기 3장의 영적인 문제에 빠져 있고 그 영적인 문제가 사람들에게 육신문제와 정신문제를 통해 도박 등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분명한 것은 창세기 3장의 원죄문제로 인한 영적문제는 누구나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것이 가정과 가문을 파고들게 되는데 뭔가 번성하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빈곤합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네피림 문화 즉 우상문화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번성하는 것 같지만 개개인의 영적인 부분들은 갈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모르니 우상을 섬기는 것이고 네피림 문화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공하면 할수록 엘리트일수록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있습니다. 창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예언 했습니다. 네피림 문화로 홍수심판으로 모두 멸망 받게 되어 있는데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는 살게 될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바벨탑 문화, 우상의 문화, 타락의 문화에서 멸망 받게 되는데 가나안 땅을 향해 나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될 때 “너로 복 주고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 받게 하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3장의 문제, 6장의 문제, 11장의 문제는 지금도 우리를 공격해오고 있고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완전히 여기에 사로잡혀 있지만 하나님의 저녀들에게도 이 사실에 대해 눈을 열지 않으면 늘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창세기 6장, 창세기 11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지난주 우리 교회에 장례가 세 건이 있었습니다. 두 분은 여든 중반이 넘어 소천 하셨는데 축복된 하나님의 부르심을 맞이했습니다. 가문 가운데 목회자와 중직자등 믿음의 유산으로 축복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또 그중에 한 사람은 아시듯이 교회 전체가 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문혜진 청년인데, 비로 나이는 31세 짧은 생애였지만 진행되는 과정을 보았고 암 투병하는 가운데에서도 볼 때마다 웃음을 잊지 않았고 복음 붙잡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몸부림 친 사실을 보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장례를 치른 후 듣게 된 이야기는, 혜진 양이 자기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고등부 사역을 교사로서 감당해오고 사역을 해 오면서도 불신자 아이를 영접시키고 제자 세우는 사역을 감당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세 건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누구나 다 죽는 것이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보다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래 산 사람도 잠시 잠간이라 하고 오래 산 사람도 잠간이라 합니다. “어차피 다 죽는 것인데, 얼마나 오래 살았냐 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느냐를 생각해 할 부분이 아닌가?” 하고 마음속에 담겨졌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한번뿐인 생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까?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전도자가 보아야 할 세상인데, 분명히 전도자의 삶을 살고자 할 때 악한 사탄은 공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가 보아야 할 세상 첫 번째가 사탄의 역사이며 두 번째가 그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전도자가 가져야 할 눈입니다.
먼저 전도자가 보아야 할 사탄의 역사는 어떤 것입니까? 분명히 악한 사탄이 전도자의 삶을 살고자 할 때 공격해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공격하냐하면, 일꾼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공격해 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사탄이 공격하는 부분은 교회 안에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저와 여러분이 걸려들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되느냐? 교회 안에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초월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어려움 당하는 것이 인간관계와 사람들의 말 때문에 시험 들게 됩니다. 여러분, 전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초월하고 수용한다면 흑암은 꺾여집니다.
제가 교역자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희 원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일꾼을 세우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세워나가야 한다” 는 말씀을 하셨고, 더 중요한 말씀으로 “일꾼을 기도하는 가운데 세웠다면 다 맡겨야 한다” 제가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면 그 앞에서는 듣는 것 같지만 듣지 않고 바뀌지도 않는다. 결국 그 사람을 붙잡고 있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이런 저런 말들이 있고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판단만 하고 그렇게 되면 일꾼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두 치유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 사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은, 그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것 중 하나는 전도자의 삶을 사는 일꾼들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출1:10에 “그들이 더 많게 되면…”일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제는 사람의 말이 이렇다 저렇다 하지 마시고, 인간인지라 어떤 분이 저에게 특정한 사람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물론 위로해주고 이해해주는 척 하면서도 그 말을 듣게 되면 이상하게 그러한 시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된 응답을 놓치는 것입니다. 정말 이제는 세계복음화 하는 교회로써 어떤 사람이든지 용납하고 어느 누구나 이 교회에 들어오면 다 살아나는 축복된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탄에게 속지 마십시오. 어느 누가 오든지 평안할 수 있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힘을 얻으며 일꾼이 세워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사탄의 전략이 있다면을 14절을 보십시오.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일에 빠지고 분주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바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전도자의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긴급하고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악한 사탄은 일에 빠지게 해서 분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전도 스케줄이란 단어가 선포되어서 인도 받고 있는데, 한번 해보십시오. 그러면,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구역에도 전달했습니다만 개개인이 스케줄대로 기록해보세요. 그러면, “내가 어떤 인생으로 살고 있는가?” 가 보여집니다. 스케줄을 보면 다른 것은 모두 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3 오늘)는 없어요. 사탄의 속임수에 빠짐으로 분주한 일에 빠져서 말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교회가 전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전도로 인해 바빠야 하고 교회가 전도보다 더 시급한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로 악한 사탄이 속이는 것은, 출1:15-22에 나오는데, “남자 아이를 낳거든 그 자리에서 모두 죽여 버리라” 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씨를 말리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의 전략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인해 참된 생명운동이 일어나는 것, 영적인 참 생명운동 즉 재생산 운동이 이 교회 안에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데,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지 못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운동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할지라도, 영적 비밀과 복음의 비밀을 가진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일어나지 않고 그 사람들로 인해 생명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교회는 헛된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로 인해 헌금은 많이 나올 수 있겠지요. 그 돈으로 이런 일 저런 일들은 많이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적은 숫자가 모였다 할지라도 참 복음의 비밀을 알고 현장의 영적인 비밀을 아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명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맞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 계속 훈련을 이야기 하느냐?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교회로 나아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방향과 하나님의 목적인 참된 전도자의 삶을 한 살마 한 사람 세워가는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훈련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70명이 애굽으로 들어가서 애굽을 살렸습니다.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을 살렸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가보면 전도자의 삶을 산 요셉 한 사람이 애굽을 살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배경은 요셉 이후 400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70명이 아닌 60만 명의 어마 어마한 숫자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살리긴 커녕 애굽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전도자의 삶을 사람이 없다 라는 것이며 전도의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출1:7,9,12). 모든 현장에 불신앙이 가득차 있다 할지라도 히브리 산파, 믿음 있는 한 사람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처럼 핍박과 압제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케 되어지는 역사, 이것이 전도자가 보아야 할 눈입니다. 현장에는 반드시 사탄의 역사가 있는 가운데 더 크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 보아야 할 결론인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학대와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반드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성취되어지는 귀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사실을 전도자가 가져야 할 귀중한 답으로 가져야 합니다. 사탄의 역사가 있는 반면에 더 큰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 백성은 매우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이 결론을 가지고 영원한 축복인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년 10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 백성은 번성하고 강해지니라
(출1:8-22)


서론: 11월에 있을 14차 세계렘넌트문화선교대회를 두고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흑암의 문화 속에서 고통과 저주를 받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타락문화, 귀신문화에 영향 받아 그 땅의 주민들과 같이 저주 받고 망해버렸습니다. 이런 문화를 바꾸어 놓지 않으면 우리 후대들은 비참하게도 노예, 포로, 속국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언약은 저주가 가득한 그 땅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흑암의 문화를 복음의 문화로 바꾸는 일을 두고 기도해주십시오.
올해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 아래 하나님이 주신 응답은 “전도자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1. 무엇 때문에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1) 하나님께서 가장 관심 갖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제대로 된 응답과 축복을 받기를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원하심
2) 전도자의 삶을 실천하는 게 어렵고 잘 안되어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임
3)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간 아브라함
① 아브라함은 우상동네에서 빠져나왔고 구원 받았지만 뭔가 되는 일이 없었음(창12:10, 1-20; 13:1-13)
② 아브라함은 말씀 속으로,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갔음
․ 창13:18 제단을 쌓음
․ 창15:4-6 자신의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믿음
․ 창22: 아브라함이 완전한 축복을 약속받음
③ 전도자의 삶을 살아서 구원의 축복을 바르게 누리라고 갈대아에서 어려움 당하게 하셨음(빌1:6)
(3) 창세기 3, 6, 11장의 세상문제를 이기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1) 창3장의 원죄문제-아무도 해결할 수 없음
2) 창6장의 사회문제-갈수록 네피림 문화, 우상 문화에 빠짐
3) 창11장의 엘리트 문제-엘리트 일수록 무너질 수밖에 없는 바벨탑을 쌓음
4) 해결책은 창3:15, 여자의 후손 밖에 없음-곧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
2. 전도자가 보아야 할 세상
(1) 사탄의 역사
1) 일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전도자의 삶을 살지 못하게 공격해옴(10절)-모든 사람을 이해, 수용, 초월
2) 전도 스케줄을 갖지 못하도록 일에 빠져 분주하게 만듦(14절)-전도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음
3)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인해 생명운동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듦(15-22절)-훈련 속으로
(2)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역사(7, 9, 12절)
1) 전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히브리 산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남
2) 학대와 핍박을 받을수록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짐

결론: 사탄이 역사하지만 하나님은 더 크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전도자가 가져야 할 귀중한 답으로 가지십시오. “그 백성은 매우 번성하고 강해지니라” 이 사실을 결론으로 붙잡고 영원한 축복인 전도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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