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여호와께서 싸우시리니
2011-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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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3일 주일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여호와께서 싸우시리니
(출애굽기 14장 1~14절)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5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6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8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9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 10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 출14:1~14

■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인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감사합니다.
오늘 제목을 “여호와께서 싸우시리니”로 정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너무 잘아는 말씀이며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회복해야 할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고 오늘 중요한 응답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는 비밀을 말씀하셨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승리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 성령의 인도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다보면 여기에 속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보이는 것을 위해 그것 중심으로 살며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며 믿는 성도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투자하는 삶이 믿는 성도들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저와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은 과연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이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살아갑니까?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 중심으로 살아갑니까? 오늘 중요한 응답들을 말씀을 통해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 기무라 라는 사람이 「기적의 사과」(이시카와 다쿠지 저)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NHK 방송국에 방영된 내용인데 책으로 엮은 것으로 국내 김영사 출판사에서 출판했고 이영미 씨가 번역한 책입니다. 그 내용 중에 “4000년 동안 흘러오던 사과 재배법의 틀을 바꾸어 놓았다” 해서 책의 내용이 “썩지 아니하는 사과를 발견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사과가 재배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과를 먹기 위해서 이미 예약들이 1년 전에 끝이 나고 그 사과를 가지고 도쿄에 유명한 프랑스 식당에서의 코스요리 중 사과스프가 있는데 이 스프를 먹기 위해서는 6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만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음식을 한번 먹는데 2만 엔으로 (27만원 상당의) 그 만큼 이름 있는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 기적의 썩지 아니하는 사과를 발견하게 된 동기는 책의 주인공은 대대로 사과농사를 하던 사람들인데 사과에 농약을 치고 비료작업을 하면 그 후에는 반드시 자기 아내가 농약 알레르기로 몸져누워 한 달 이상을 앓게 되는 것이 다반사여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과농사를 그만두고 온갖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를 겪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살아가야 할 소망이 잃어버려 결국 죽기를 각오하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주위 사람들 실망시키기도 싫고 모든 것을 실패했으며 가족들을 볼 면목도 없어서 죽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목매달아 죽으려고 끈을 가져갔는데 그 끈을 나무 위로 던졌는데 다행인 것은, 그 끈이 나무에 걸리지 않고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만약 나무에 걸렸다면 목 메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인데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끈이 떨어진 그곳에 보니 나무가 너무 우렁차고 윤기가 탁월한 한 열매가 맺혀있었는데, 이 사람이 발견한 것이 도토리 나무였습니다. 그렇게 깨닫게 된 것이 “아! 결국 열매는 나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흙에 있고 뿌리에 있는 것이구나” 하고 발견된 것입니다. 죽기위해 두 시간 동안 산을 들어갔다면 인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거기에 나무와 열매들이 땅에 떨어져 썪어 퇴비가 되면서 나무가 자라고 너무 윤기 있는 도토리가 자라게 되었는데, 너무 윤기 있는 도토리나무가 자란 것입니다. 결국 나무도 가지에 열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는 뿌리에서, 흙에서 좋은 열매가 나는 것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후에 다시 집으로 급히 돌아와서는 과수원에 사과나무를 심고 다시 재배를 시작했는데, 농약도 주지 않고, 비료도 두지 않고 그대로 둔 것입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든지 간에 관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한 10년이 지나니 탁구공만 한 사과 두 개가 맺히더라합니다. 그 후 4년이 지나니까 열매들이 맺혀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썪지 아니하는 기적의 사과라는 것입니다.
그 기적의 사과가 어떻게 발견되었느냐하면, 식당 종업원이 사과를 반을 나누어 반은 요리에 쓰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보관하게 되었는데, 2년 후에 냉장고를 정리하게 되면서 발견케 되었는데 그 사과가 썪지 않고 향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에 방송으로 방영되고 결국 그 사과를 사기 위해서는 벌써 1년 전부터 예약해야만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이 발견한 것은 “열매는 나무 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땅 속에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무엇을 말씀드리고 싶으냐하면, 우리는 보이는 것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닌 나무의 열매가 뿌리와 흙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보이는 것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싸움이 이 땅의 이 싸움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불신자들은 분명히 하나님이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에 빠지고 신자들의 문제는 분명히 하나님은 24시간 우리에게 응답하고 계시는데, 그 사실을 체험하지 못해 신자들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두 가지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성도들이 가장 먼저 체험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입니다.

1. 가장 먼저 체험할 것 -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 최고의 응답, 최고의 계획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계획이며 최고의 응답이고 최고의 축복입니다. 어떤 면에서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는 늘 들어왔습니다. 가장 쉬운 단어입니다. 그러나 안 믿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쓰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지속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기에서 “보라” 라는 말은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사용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했으면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셨겠습니까? 마태복음 1:23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사야 7장 14절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곳곳에서 그 백성들이 기억하도록 하신 말씀이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쉬운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안 누리고 있고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못 붙잡고 있는, 못 누리고 있는 이 임마누엘의 역사.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가장 먼저 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항상 체험하고 누려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내 삶 속에 나타나는 임마누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삶입니다. 올 한해 전도자의 삶 그 시작과 실천이란 주제로 시작했습니다. 전도자의 삶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래서 기도제목이 “임마누엘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입니다. 왜 교회가 전도와 부흥이 안되느냐? 임마누엘이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이란 단어를 몰라서가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는 사실은 들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이며 참왕, 참선지자, 참제사장. 누구나 다 압니다. 임마누엘의 의미도 다 압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구원의 역사 속에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비밀들이 사실적으로 누려지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구원 속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임마누엘의 역사가 지속되게 되어 있는데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우리 성도들이 현장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는 입학식 할 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13~15절입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말씀하시면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처음 입학식 때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졸업식 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입학식과 졸업식 때 주신 말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할렐루야!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내 삶속에 역사하고 나타나시는 임마누엘을 당연히 누려야 하겠죠. 많은 사람들이 임마누엘 역사에 대해 신학적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임마누엘 신앙과 신학도 있습니다만 실제로 임마누엘을 누리지는 못합니다. 임마누엘의 비밀 곧 내 삶속에 나타나는 역사를 누리면 누릴수록 여기에 복음이 참 복음이 되어지고 전도가 참 사람 살리는 전도가 될 것이며 임마누엘, 내 삶에 역사하는 이 비밀을 누릴수록 말씀이 사람을 살리는 말씀이 될 것인데 이 사실을 놓침으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고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임마누엘을 누린 대표적인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에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히브리서 11장에 다 기록해놓았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로마서 16장에 임마누엘을 누린 사람들을 기록해놓았습니다. 26~30명 정도가 등장하는데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임마누엘을 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어떤 문제도 문제 안 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요셉만큼 어려움 당한 사람이 있습니까? 요셉은 임마누엘을 누림으로 가정의 문제가 문제가 안되었습니다. 심지어 죽음의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를 보십시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 무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임마누엘 누리는 자를 삼키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한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참된 전도자의 삶이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6절에 보면 모세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든 구약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임마누엘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주신 응답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 11장입니다. 그래서 결국 히브리서의 결론은 하나님이 내셨는데 히브리서 11장 38절에“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임마누엘을 누리는 사람, 다시 말해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축복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세워나간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응답으로 기도할 때 이런 저런 응답을 받게 되는데, 불신자들도 자기가 믿는 신 앞에 기도하고 응답받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할 때 당연히 응답받게 되지요. 그런데 그 응답 중에 가장 큰 응답이 무엇이냐 하면, 임마누엘이라는 사실입니다. 혹여나 이 자리에 질병가운데 있다가 예수 믿으면 났는다 해서 예수 영접하고 교회에 오신 분이 있습니까. 빨리 넘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구원의 역사, 성경 속에 말씀하고 있는 이 구원의 역사, 이것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여나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들 가운데서 고민하고 있다가 예수 믿게 되신 분들있습니까? 잘 오셨습니다만 거기에 메여있기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하며 넘어서야 합니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느냐 구원받은 사실로 인해 감사한 수준까지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새벽에 말씀을 보았습니다만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서 3:17~18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우리에게 만약 이러한 일을 당했다면 “하나님, 왜이러십니까?” 하며 원망과 불평을 할 것 아닙니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할렐루야!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이 사실로, 구원받은 사실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고백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여러분, 정말 임마누엘,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의 비밀을 누리면 여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이 어디에서 부터 시작이 되느냐? 이 구원의 역사, 이것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거기에서 참된 신앙이 시작된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육신으로 빠집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철저히 부지런히 살아갑니다만 그들이 가진 것이 육신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으며 육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원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바리새인들의 이야기는 모든 종교에서 하는 이야기와 같은 것입니다. 원죄를 인정치 않고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와 더불어 재앙의 역사도 인정하지 않기에 고스란히 재앙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습니다. 아멘이지요. 바울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로마서 1장 17절에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멘이지만 바리새인들에게는 굉장히 기분 나쁜 이야기인 것입니다. 바르게 살아야지, 율법을 지켜야지 등 육신으로 전락케 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함으로 육신적으로 전락케 되고 심각한 영적문제에 걸려듦에도 불구하고 못 빠져 나오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는 모든 프로그램이 나와야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을 누리며 생명운동이 일어나는 이 일에 바빠야 하는데 방법과 프로그램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은 프로그램 만들어 내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입니다. 탈무드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사람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구원 받지 못하고 임마누엘이 없습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늘 자녀들에게 토라, 쉐마를 늘 읽어줍니다. 모이면 토라와 쉐마를 읽습니다. 그 토라, 쉐마 안에 얼마나 많이 여호와의 이름이 있습니까? 그렇게 여호와의 이름을 계속 이야기 하고 부르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그 속에 구원이 없어요. 임마누엘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놓쳐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문제가 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속에서 임마누엘을 누리는 한 교회가 나왔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마가 다락방 교회입니다. 특별히 우리 다락방에서 다섯 가지 기초훈련이 있는데 그 기초훈련의 가장 핵심이 뭡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With"(위드)입니다. 함께 하시는 그것이 훈련입니다. 그런데 임마누엘 신앙을 가진 교회가 나왔는데 그 교회가 마가 다락방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1장 1-3에 보면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며 데오빌로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거기 처음에 보면 바로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러면서 그분이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사도행전 1:1에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2절에 해 받으신 후에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우릴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 하셨다. 그리고 부활 하신 주님이 우리를 위해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 사도행전 1장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고 기도할 때, 하늘 군대가 동원되어지고 하늘 보좌의 축복의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고 하나님 나라 가기 전에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린다는 것을 사도행전 1장에 말씀하고 있고,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된다는 것이 사도행전 1장 8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이고, 그 약속 붙잡고 기도했더니 사도행전 2장 1-47에 다섯 가지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면서, 삶 속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되어지는 역사입니다. 진짜 임마누엘 하니까 성령으로 오순절의 마가다락방의 함께 하는 역사 속에서 있으니까 그 속에서 되어지는 응답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초대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바르게 몸부림치며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누림, 이 속에 되어지는 은혜를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세요. 예전에는 베드로가 그렇게 불안해서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임마누엘을 누리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사도행전 3장 6절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유대인들이 다 있는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무슨 말입니까?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그 이름으로 네게 준다 말씀했습니다.
유대 문중들이 다 둘러 서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그 앞에 뭐라고 했습니까?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임마누엘입니다. 이 축복 가운데 베드로가 나가는 걸음을 보십시오. 많은 대제사장의 무리가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사도행전 6장 1-7절에 나왔고 한 번도 복음이 증거 되지 않은 사마리아 땅에 그로 말미암아 영적인 문제가 많이 일어난 사마리아 땅에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 하니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리고 사울이 돌아오게 되고 종교인이 복음을 받았는데 이 사람이 간부요, 군대의 장군이요, 백부장입니다. 누구입니까? 고넬료였습니다. 베드로로 인해 복음을 받게 되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축복가운데 서게 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을 누리면 되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진짜 우리가 예수생명, 성령의 인도하심 그 속에 있으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사실을 지금 내가 누리고 있으면 되어지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글을 보다가 우리 교회 성도님이 올린 글인데 제가 허락을 안 받았고, 양해를 안 구했지만,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참 중요한 내용입니다. 자신의 신앙 고백을 담은 내용인데 글을 올려놓으신 분은 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도구로 쓰여 지니까 양해를 하시고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주는 전도자의 삶 집중훈련으로 코피까지 났네요. 그래도 너무 기쁘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안 될 것 같았지만, 전도자의 삶은 할수록 힘이 솟아나는가 봅니다. 복음 없이 살던 시절에는 비록 열심히는 살았지만 늘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하루 15시간, 16시간을 무엇이든지 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혹여 이 자리에 임마누엘을 놓치고 이런 가운데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연속적으로 문제들이 닥쳐왔습니다. 문제에서 빠져 나올 만할 때마다 연이어서 온 가족이 수년간 고통을 겪어야 해결될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그래서 가족 들 얼굴 보기가 미안해서 어쩔 수 없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합숙 받고 2년간의 중직자 학교, 또 2년간의 전도신학원, 이번에 집중훈련까지.. (그러면서 중요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의지와 동기를 내려놓고 매주 강단의 말씀과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 가시는 전도자의 삶을 누리면서 참된 평안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 많던 문제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한 가운데 어느새 다 풀려가고 모든 일들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 분께만 이 축복을 허락하신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임마누엘 놓쳐 버릴 때 우리가 아무리 몸부림치고 애써도 뭔가 이루어 가는 것 같지만 무너지고 무너지고… 그래서 결국은 뭘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하루 15시간, 16시간씩 일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수많은 피해를 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말씀 들으면서 복음 속에 전도자의 삶 속에 들어오니까 어느 날 돌아보니까 하나님께서 다 문제를 해결 하신 이 사실.
그래서 저절로 되어지는 이 축복의 은혜, 이것이 임마누엘 누림 속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우리가 임마누엘 누리면 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 나타나는 이 임마누엘 누리면 세계복음화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 나타나는 이 임마누엘 누리면 누릴수록 하나님의 목표와 하나님의 방향과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이정표가 보여지기 때문에 그 어떤 문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참된 임마누엘이 실제적으로 누려질 수 있는 축복, 이것이 이 땅에 끊어졌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는 것이고, 이것이 이 땅에 끊어졌기 때문에 전쟁이 터진 것이고, 이 임마누엘 누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고 이 땅에 재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임마누엘 누리는 사람이 없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전쟁을 통해 그때그때 또한 하나님의 개혁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자의 삶, 특별히 임마누엘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참된 되어지는 은혜를 입는,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 가운데 충만케 되어지는 그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세가 승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출14:13-14)

두 번째입니다. 모세가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오늘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늘 우리가 말씀 듣는 부분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와서 가나안 땅을 가는 길에 홍해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놓았던 바로 왕이 이래서 안 되겠구나! 제정신이 들어가지고 모든 군사와 병거, 장군들을 동원해서 추격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사면초가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앞에는 홍해바다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인들이 추격해 왔습니다. 이런 어려움과 문제를 당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나왔습니까?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왜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와가지고 이곳에서 고생하며 죽게 하느냐? 그렇게 원망하며 대들었습니다.
우리가 문제와 어려움을 당하면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문제와 어려움을 당하면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 어려운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내게 응답하셨고 은혜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오늘 내게 닥친 이 어려운 문제도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이라는 믿음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과거에 실패한 사람은 안 좋았던 것만 기억합니다. 응답 받지 못한, 안 좋았던 실패했던 것만 기억하며, 문제 앞에서 왜 또 이 문제를 허락했을까? 낙심하고 좌절해 버립니다. 두 부류가 나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째 나오는 부류의 사람들이고, 모세는 여기서 하나님의 귀한 계획을 붙잡은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홍해를 나중에 건너게 되고 또 광야의 길을 가는 동안을 한번 보십시오. 늘 문제 당하면 원망하고 불평해요. 물이 없으니까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또 먹는 것이 없으니까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먹을 것이 없다면서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는데.. 고기가마, 그 가마 돌리면서 그 곁에 있으면서 풍족한 고기를 먹고, 언제 고기를 먹었습니까? 그런데 늘 문제 당하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이것이 어떤 면에서 4백 년 동안의 애굽에 종살이 하고 있던 체질이 아닌가? 애굽의 노예 체질들이 아닌가?
그런데 결국 오늘의 이 위기 앞에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3-14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아멘.

여러분, 여기에 모세가 눈앞에 다가온 홍해를 못 본 것이 아닙니다. 뒤에 따라오는 애굽 군대를 못 본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지금 나의 모든 삶 속에 역사하시는 임마누엘 하시는 이 사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그 약속을 붙잡고 있었고 그것을 이루기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역사 이 사실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위기 가운데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지금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그 임마누엘로 말미암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출애굽기 14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하나님이 우리와 임마누엘 하시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사실을 이 모세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문제를 당하면 사실을 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실을 보는 사람은 성공합니다. 나중에 가서 문제지만, 성공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믿는 기독성도들이 사실을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을 봐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보는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 모세는 그것을 사실적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 영적인 지식, 영적인 사실을 가진 것입니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도 과학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과학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불신자 상태 속에서 망하는 것들은 영적인 과학 중의 과학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우상숭배하고 우상숭배 하기 때문에 저주와 재앙이 임하는데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저주와 재앙이 임하는 과학 중의 과학입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 가진 저와 여러분은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과학 중의 과학입니다. 보이는 것만 과학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과학. 특별히 우리 렘넌트들, 진짜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과학, 영적인 과학, 영적인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왜 정치하는 사람들이, 경제인들이 무너집니까? 보이지 않는 영적인 과학, 영적인 지식을 알지 못하니까 열심히 해놓고 무너지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우리 렘넌트들, 진짜 영적인 지식, 영적인 과학에 눈들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가 이 사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더더욱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임마누엘 하셔서 이 시간 구원하시는 그 사실을 보라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지금 우리와 임마누엘 하시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시는 그 사실을 보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이번 한 주간에 여러분 모든 걸음 속에 이 축복의 눈들이 열려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앞에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난 것처럼 위기와 어려움들을 심지어 사람들에게 말 못할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편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실수해서 홍해 앞으로 인도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선한 걸음으로 인도하시는데 출애굽기 13장 17-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는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같이 봅시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바로 가나안 땅을 가는 지름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부러 돌려서 보냈습니다. 왜냐? 그 앞에 블레셋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들의 마음이 바뀌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돌아갈까 싶어가지고..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 그냥 실수해서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서 심지어 돈으로 해결할 수 없고 과학으로, 정치로,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문제 속에 있다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 바라보면 하나님 주시는 힘을 얻게 됩니다.

저는 신앙생활 속에서 그렇게 어려움을 당한 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간간히 때에 따라서, 순간순간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문제와 사건을 통해 진짜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시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사실 통해 하나님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주시는 힘을 얻게 되는데 그때그때마다 문제와 사건 통해서 영적인 영권이 한 단계, 한 단계 하나님께서 업그레이드 시켜 나가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실수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 붙잡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앞서서 싸우시는 역사로, 또 출애굽기 14장 19절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자연계를 움직여 가면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이 사실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
그래서 이번 한주간 임마누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이 임마누엘의 축복이 회복되어지는 한 주간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사실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이 땅의 모든 저주와 재앙의 역사는 임마누엘 하시는 이 축복의 역사들이 중단되어짐으로 이 땅의 저주와 재앙의 역사들이 일어난 사실을 알게 하시사 특별히 우리로 말미암아 이 축복의 비밀들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함을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모든 주의 백성들, 진짜 단어가 아니라 신학이 아니라 지금 내 삶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이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림으로 참 전도가 전도되게 하시고 말씀이 사람 살리는 말씀이 되게 하시며, 복음이 참 복음 되어지는 귀한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1년 1월 2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여호와께서 싸우시리니
(출14:1-14)



서론: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보이는 것을 위해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보이는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1. 가장 먼저 체험할 것 - 임마누엘을 누리는 것
(1)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
1)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임마누엘을 말씀하심(사7:14, 마1:23)
2) 임마누엘을 사실적으로 누리지 못하여 교회와 성도가 어려움 당함
3)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임마누엘을 말씀하심(막3:13, 마28:20)
4) 신구약의 대표적 인물들(히11, 롬16)도 임마누엘을 누림
(2)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응답
1) 기도응답 중 가장 큰 응답은 임마누엘
2) 참된 신앙은 임마누엘을 누리는 데서 나옴(합3:17-18)
① 임마누엘 누리지 못하면 육신적인 삶을 살게 됨(바리새인)
② 임마누엘 누리지 못하면 방법(프로그램)을 만들어내게 됨(유대인)
(3)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계획
1) 임마누엘(그리스도가 내 삶 속에 나타나는 축복) 누리면 세계복음화 할 수 있음
2) 임마누엘 누릴수록 하나님의 목표와 시간표와 이정표가 보여짐
3) 임마누엘 누리는 사람이 없을 때 재앙과 전쟁이 일어남

2. 모세가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13, 14절)
(1)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
1) 홍해 바다에 막힌 채 애굽 군대가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하고 불평함
2) 위기 앞에서 모세는 임마누엘의 역사를 사실로 붙잡고 흔들리지 않음(13, 14절)
(2)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으라.
1) 문제를 당하면 사실을 보되 영적인 사실까지 봐야 함(13, 14절)
2) 하나님은 선한 계획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홍해로 인도하심(17, 18절)
3)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속에 있어도 하나님 바라면 하나님이 힘을 주심


결론: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 계획을 붙잡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앞서서 싸우시는 사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누리십시오. 임마누엘이 회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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