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다스림이 영원무궁하심
2011-02-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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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2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3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4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5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6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7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8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9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10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11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12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13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6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17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출15:1~18
■ 할렐루야! 하나님께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 보니 하나교회 성도님들이 대부분이 고향을 찾으셨다가 돌아오신 듯 하고, 몇 몇 분은 아직까지 고향을 가지 못하신 분들도 계시고 방송을 보니 어젯밤 늦은 정오까지 서울방면으로 많이 정체되기도 했습니다만 오늘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은혜 입는 최고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 명절이 되니 가정예배를 인도하고 난 후, 저에게 문자 메시지를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이번에 저희 가정에 처음으로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흑암세력이 많이 결박되어졌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실들을 예배를 통해 보게 됩니다” 등 고백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1부 예배 마치고 난 후에 어느 성도님께서도 “우리 자녀들 중 믿지 않는 아들이 있는데 이번 명절 가운데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할 것이 아닌가”하고 말씀을 전했다고 하십니다. 그런대 “영접을 못했습니다” 라며 안타까워 하셨는데 영접은 하나님의 시간표 가운데 열매 맺는 것이라 말씀드렸는데, 모두가 각 각 흩어진 현장에서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축복된 응답을 누리게 된 것에 감사를 드리며, 제가 그 문자 메시지를 보며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현장에서 끊임없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시는 것을 확인하며 마음으로 감사하며 기도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쉰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영적인 힘과 비밀이 없다면 쉰다 해도 더 피곤하고 힘들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그렇지 않겠습니다만, 영적인 비밀과 힘이 없이는 아무리 환경이 좋다 할지라도 그 환경이 편안할 수 없고 연휴가 길어 쉬는 시간이 많다 할지라도 뭔가 모르게 불편하고 안식이 없는 부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아마 영적인 싸움에 승리한 분도 계실 것이고 반면에 찾아볼 곳 찾아뵙고 인사드림에 분주함으로 말씀과 상관없이 지낸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 부르셨기에 어떤 모양으로 인도 받아오셨든 지간에 이 시간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오늘 회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구정 연휴를 통해 가정과 가문을 돌아보시며 세계복음화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붙잡은 것이 있습니까? 기도해야 할 제목들을 가정과 가문을 바라보며 붙잡은 것이 있다면, 낙심치 마시고 그것을 붙잡고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기도하는 그 사람을 통해 가정, 가문 복음화를 이루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 가정과 가문 이 복음화 되어지는 축복을 주시겠다는 사실인데, 이 사실을 누리시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여나 그런 분들이 없으시겠습니다만, 구정 명절을 통해 사람관계로 상처받고 낙심된 분들이 있습니까? 조금만 눈을 열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되느냐? 인간관계를 육신적으로 보지 말고 영적인 상태를 보시면 됩니다. 영적인 상태로 보게 되면 눈이 열림으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겠구나!” 하는 눈이 열리게 되어질 것입니다. 영적인 상태를 보게 되면 복음의 눈으로 가정과 가문을 보게 되고 사람관계 속에서 결국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임을 알게 될 것이며, 사탄이 가장 공격하는 부분이 바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케 될 것입니다. 조금만 눈을 열어 보면 모든 것이 축복과 응답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런 분들이 없겠습니다만 관계 속에서 낙심과 상처 가지신 분들은 문제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도록 눈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복음을 위한 발판이 되어질 수 있는 응답들을 누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지난 주 출애굽기 14장에 “나로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실 것을 말씀으로 붙잡았습니다. 오늘은 본문 18절에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시도록 다스리시도다” 모세의 중요한 신앙고백과 이스라엘의 중요한 신앙고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모세의 신앙고백, 사실 본문 1절과 같이 이 찬양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른 찬양이지만, 궁극적으로 보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할 때도 모세는 믿음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승리토록 이끌어간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면, 우리 현장 가운데 모든 불신앙 가운데 빠져 있다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의 한 사람을 통해 민족과, 가정과, 가문과, 자녀가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여러분이 받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믿음을 회복하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을 해나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축복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서 인도해 가시는구나!” 이 결론을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알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누리면 정말 축복받게 되어 있고 방향도 다르게 되어집니다.
여러분, 교회사 가운데 은혜로운 찬송 가사를 많이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장 많이 불려지고 있으며 아마 오고 오는 세대에 가장 많이 불려질 찬송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바로 크로스비 여사입니다. 생후 6주 만에 눈이 실명케 되어집니다. 태어나면서가 아니라 생후 6주 만에 의사의 실수로 인해 눈을 실명케 됩니다. 사실, 절망할 수밖에 없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할머니를 통해 심겨지게 되고 그 말씀의 역사를 통해 비록 소경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회복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그의 고백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과 찬양으로, 그래서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은 찬양이 되어진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온 찬송가를 보면 제일 많이 작사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크로스비의 찬송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즐겨 찬송하는“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라는 찬송도 크로스비가 작사한 것이고,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매 마른 땅을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이 곡도 사실 크로스비가 지은 것이며,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이것 또한 크로스비의 찬송입니다. 그리고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네” 은혜로운 찬양들이 모두 소경이었던 크로스비에 의해 작사된 찬양입니다. 그 중심에 말씀이 들어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니 아름다운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많은 생명들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찰스 웨슬레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주님의 역사를 찬송하겠다” 찬송가 23장입니다. 우리는 입이 하나밖에 없음에도 불과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남에게 상처 주는 등 하지 않는 말이 없는데, 웨슬레는 만개의 그 입으로 주님이 주신 은총을 찬송하겠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제대로 안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다 보니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고백이 바로 하늘의 속에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주셨는데, 창세전에 우리를 부르셨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문제와 환경이 와도 괜찮습니다. 모든 문제와 환경들을 이길 비밀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우리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
첫 번째로 우리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능력, 이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믿음을 회복하게 되어 있고 믿음을 회복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배후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 인생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 구정 설 명절을 앞두고 중요한 기본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현장에서 나누며 가정 예배 순서지로 전달되었던 내용도 동일한 내용이었습니다. 한 주간 지나고 난 후 우리 현장을 두고 다시 한 번 더 그 메시지를 다시 붙잡아 보길 원합니다. 지난 주 전달된 메시지의 그 범위를 넘어서지 아니하고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시간에 지난 한 주간에 인도하신 부분을 놓으시고 다시 한 번 더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메시지로 정리되어지는 축복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실상은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은 이런 말 저런 말 할 수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실상은 방황하고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지식인은 지식을 가지고 방황하고 있고, 지식을 찾기 위해 찾다가 공허하기에 다른 지식을 찾아 헤메입니다. 공허함과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몰두하고 집중하는 것이 방황하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돈 있는 사람은 돈 있는 것 가지고 밤새도록 방황합니다. 저는 그런 부분들을 보았습니다. 가진 돈 때문에 편리한 삶을 살지는 몰라도 밤새 몸부림이 방황하는 몸부림인 것입니다. 고상한 사람은 고상한대로 방황하고, 분명한 것은 어떤 사람도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고 현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황함이 그냥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영적인 문제에 메여서 방황한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문제가 어떻게 왔으며 왜 방황하는가? 지난 주 말씀드렸듯이 인간이 참 경배의 대상을 찾지 못함으로 귀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어 방황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나님 앞에만 영광돌리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놓쳐버렸고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을 찾는 본능은 있지만 길이 없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참 경배대상이 없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 보면 문제와 어려움을 당하면 어디로 달려갑니까? 교회는 모두 망하고 실패한 후 마지막에 오는 곳이고 가장 먼저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나무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경배대상이 다르기에 마땅히 그들은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따라가지 않으면 언제 두려움이 찾아올지 모르기에 그들은 점쟁이와 역술인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년들어 메스컴을 보면 유별나게 역술인들이 등장하여 연예인들와 사주를 이야기 하며 상반기에 누구누구는 조심해야 한다며 사주팔자를 이야기 합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상숭배 하지 말라 하는 말도 그들에게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 경배의 대상을 놓치고 귀신을 섬기기에 무당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 무당들의 말에 끌려가며 전 재산을 바치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는가? 이사날짜도 잡아야 하고 묘자리 방향을 잡아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참된 경배의 대상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두 주 전에 본 교회 성도님 가운데 부모님이 소천 하셔서 장례를 치뤘습니다. 먼 지역에 있는 관계로 그 지역 교회에서 집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관예배 후에 시신을 안치를 하는데 어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해요 “몇 년생, 몇 년생, 몇 년생은 이 자리에 있으면 어려움이 있으니 물러가라” 는 것입니다. 집례 하시는 목사님께서 “우리는 상관없으니 그냥 진행하십시오” 하셨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성도들이 많으니까 아침에는 장례식 갔다가 점심시간에는 잔치에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그것도 겁냅니다. 그들을 나무라지 못하는 이유가 경배대상이 다르기에 두려워하는 것이고 어려움 당하는 이유가 참 경배 대상을 놓치니 그런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영적인 고아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고아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아비가 없다 라는 말입니다. 어릴 때 보호자와 인도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 보호자, 인도자가 없다 라는 사실은 불행 중에 불행입니다. 어른들이 가정과 가문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양 부모님이 계신지를 살핍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 보호자 없이 자랐다면 불행인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이 영적인 고아란 말을 합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고아보다 더 불행한 것이 있다면, 밤낮 폭행을 하는 아비를 만난다면 차라리 고아가 더 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보도가 나왔습니다. 10년 전에는 가정에 사고가 날 때 경제문제로 부모가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남겨둔 자녀들이 고생이다 해서 동반자살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느냐 하면,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폭행해서 죽이는 집안들이 많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집안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아비를 만났다면 고아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고아로 사는 것이 더 났습니다.
다른 예로는 탈북자들의 보고내용을 보니 북한이라는 나라가 참 비참했습니다. 어느 정도냐? 죽은 딸의 인육을 돼지고기라고 속여 먹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없다는 공산주의의 유물사관 그 지도자인 김정일이 붙잡고 있고, 그 백성이 태어나면 공산주의 백성이 되고 바르게 사는 것과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공산주의에서 태어나는 것이기에 잘못된 아비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니 헐벗고 굶주리며 죽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마찬가지입니다. 참 경배대상을 찾지 못해 귀신을 섬기면서 영적 고아로써 결국 인생이 영육간의 죄로 인한 저주의 열매들만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인생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저주의 열매들이 맺혀집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살고 난 후 현장을 변화시킬 제자가 세워지고 축복된 전도자의 삶을 통해 후대들이 세워지기는커녕 저주의 열매들이 맺혀집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은 일시적인 쾌락은 있을지 몰라도 참된 행복은 없습니다. 참 만족이 없습니다. 모두 멸망 길을 가며 저주의 열매들이 맺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에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 계획이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속에서 빠져나오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시는 증거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그리스도를 지식으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역사로 깨닫게 되는 날 모든 응답과 축복의 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경배의 대상을 찾지 못 한 채 영적인 고아로 저주의 열매를 맺힐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해방 받았다는 것, 그 구원의 열매를 깨달으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왜 감사가 없느냐면, 이 사실에 대한 해방 받은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지에 대한 가치를 모르니까, 구원받은 가치를 알지 못하니 생애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해방케 하신 그 축복의 역사, 하나님이 능력으로 우리 생애 가운데 역사하심으로 그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결국 이런 문제를 발생시키는 장본인이 있는데, 바로 마귀 곧 사탄이라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한 피조물이 있는데 바로 천사들의 그룹입니다. 에스겔 28장 14절, 이사야 14장 12~14절, 요한계시록 12장 1~9절에 보면, 천사중의 그룹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섬기는 천사로 그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28장 14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그룹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지키는 천사들입니다. 이사야 14:12~14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찬양하는 천사가 타락하여 저주 받은 영이 된 것인데 바로 사탄 마귀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14장 14절에 보면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결국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천사의 타락으로 인해 저주받은 영이 되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탄, 마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의 존재가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온 천하를 꾀하는 자라” 했습니다. 말세가 오면 올수록 사람가운데 엄청난 혼란을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존재가 결국 땅으로 내어 쫓겼다 했는데, 결국 아담과 하와 속에 들어가 타락한 영, 저주받은 영인 사탄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인간에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떠나도록 만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 이후에 모든 인생은 사도행전 10장 3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모두 마귀에게 눌려 있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눌림으로 인해 현실로 나타나는 결과를 고상한 말로 인간의 실존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실존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탄의 역사로 인한 결과가 결국 모든 인생은 마귀를 아비로 섬기고 마귀의 자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로 인한 궁극적인 결과는 지옥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삶을 사는 것인데, 이 지옥으로 가기 이전에 현실적으로 저주와 재앙으로 이 땅에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심판 아래에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상숭배를 왜 하지 말라고 합니까? 하라, 하지말라가 아니라 우상숭배하면 결국 그 배후에 재앙이 임하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현실에 임하는 그 저주와 재앙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 해방 받았습니다. 믿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로마서 8장 2절)”. 할렐루야! 이 축복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인생에 역사하신 겁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더 불행하고 억울한 것은 평생을 종도 아닌데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도 아닌데 종으로서 종노릇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종도 아닌데 종노릇한다면 억울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인생들을 살아갑니다.
송현동에 있는 어떤 무당을 찾아가 이야기 했습니다. “당신 하는 일이 행복합니까?” 물으니까 “행복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할지라도 이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것이 저주인지, 재앙인지 알지도 못하고 지금 자기가 망하고 있으면서도 망하는 줄도 모르고 그 일을 계속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집을 나오면서 참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해서 종도 아닌데 완전 거기에 종노릇하면서 평생을 그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또 다시 태어나도 그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종도 아닌데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것만큼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없잖아요. 그러면서 진노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납니까? 아니잖아요.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죽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 죽음은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존재가 누구냐? “마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 죽음을 무서워함으로 말미암아 일평생 그 죽음에 매여서 종노릇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의 죽음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했습니다.
이 죽음이 어떻게 해서 왔습니까?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온 것이 죽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장 23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영적으로 먼저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그것이 죽음이고, 그리고 이 땅에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으로 끝나느냐? 아닙니다. 영원한 심판 지옥의 형벌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영원한 죽음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는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에게는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영원한 축복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천국에 입성하는 그 축복의 시작이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안식하게 되는 그 축복의 시작이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죽음은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똑같은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하게 되는 그 소망이,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서 영원한 왕권을 가지고 축복을 누리는 그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죽음이 심판이고, 그 죽음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영원한 고통인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을 가보지도 않고 무슨 지옥을 그렇게 이야기 하느냐? 합니다만, 여러분 말씀이 하나도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는 성경 말씀에 분명히 지옥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닙니다. 후손들에게 더욱 더 영적인 문제를 가중적으로 물려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알아듣고 깨닫게 된다면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구나!”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이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인생 속에 역사하신 이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듣고도 반응이 없거나 무감각하다면 그런 사람을 보고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속에서 빠져 나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인생에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신분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셨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이 부분은 우리가 모른척한다고 해서 지나갈 문제가 아닙니다. 똑똑하다고 해서 이 부분들이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하시고 다른 조건이 필요치 않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조건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장 13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에베소서 2장 8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인생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 이것을 찾아내시고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누리는 것.
두 번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뭐냐? 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속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 이 사실을 믿고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어렵지 않은 것은 이 사실을 믿는 믿음 고백하면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우리 배후에 역사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넘어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모세가 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출애굽기 15장 1절에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애굽의 군대를 완전히 멸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출애굽기 15장 3절에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 창조주가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8절에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하나님이 바람을 불어서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들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11절에 “여호와여 신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귀신과 같은 그런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단지를 가져다 놓고 빌고 뭔가 형상을 다듬어 놓고 빌고 그런 귀신과 같은 이름이 아니라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15절에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여러분, 이렇게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17절과 18절에 고백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모세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그냥 된 것이 아니고 이미 모세는 그의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 그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에 보면 출생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고,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미디안 광야 생활 속에서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하나님이 부르신 사실을 체험했고, 출애굽기 4장 애굽에 들어갔을 때 열 가지 기적을 일으키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고,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홍해 앞에서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셔서 육지처럼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이 고백 가운데 찬송하면서 마지막 결론이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나가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는 길이 있습니다.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느냐 거기에 따라서 모든 응답의 문들이 다 열려지고 모든 축복의 문들이 열려지고 우리 인생의 방향도 여러분의 사업도 학업도 진짜 얼마만큼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누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느냐? 여러분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 해결자로 주신 창세기 3장 15절. 우리 모든 인생은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왔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바로 답을 주셨는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사실을 진짜 알아들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여러분의 현장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8절에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내 백성을 데리고 나가라” 무엇하러 말입니까? 제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사는 뭡니까? “피 흘리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보이지만 별스럽지 않게 보이지만 그 피 흘리는 제사 드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애굽에서 빠져 나왔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 제사의 비밀.
포로 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답을 주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7:14)” 여기 “처녀가 잉태하여…”는 중요한 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와 같은 말입니다. 원죄 아래 놓여 있지 않으면서 원죄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분이 오셨는데 바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복음16:16)”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 고백했을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네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16:17)”
그러면서 “반석 같은 축복”과 함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늘보좌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천국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 그 이름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5~17절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셨고 거기에 보면 후사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것으로 누릴 수 있는 후사로. 누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누리는 길입니다. 그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에게 말씀으로 기도로 전도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삶의 시작인 3오늘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호와의 다스림이 영원무궁하시도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신 그 사실을 찾아내시고 믿음 회복하게 될 때 그러한 자들 통해 하나님은 현장에서 고백토록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 어떤 증거를 주시느냐? “여호와의 다스림이 영원무궁하시도다”
미래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의 통치, 우리 인생에 역사들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하나님의 다스림. 그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도록 증거 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정말 “여호와의 다스림이 영원무궁하시도다” 여러분의 받은 응답들을 찾아냄으로 믿음 가지고 이 사실을 고백하는 축복의 증인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응답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들을 하나하나 찾아 누려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우리 인생의 역사 가운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신 부분을 찾아낼 수 있도록 이번 한 주간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그것을 찾아내는 참된 믿음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증거의 역사들이 또다시 시작되어지는 한 주간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모세의 응답의 결과로 나온 고백이 아니라 오늘 나의, 우리의 고백이 되어 지도록 한 주간 현장에서 하나님이 증거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구정 연휴에 가정과 가문을 돌아보며 기도할 제목을 붙잡은 것이 있다면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그를 통해 가정과 가문 복음화를 이루실 것입니다(행16:31). 혹시 사람 때문에 상처 입은 분이 있으십니까? 육신적으로 사람을 보지 마시고, 그의 영적 상태를 보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두 불신앙 가운데 빠져 있어도 나 한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한 사람을 통해 민족, 가정, 가문, 자녀가 살게 됩니다. 크로스비, 웨슬레처럼 이러한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1. 우리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찾아내라.
(1) 왜 인생은 영적인 문제에 매여서 방황하는가?
1)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참 경배 대상을 찾지 못해 귀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임
2) 그로 인해 인간은 영적 문제에 걸려들고, 영적인 고아 상태에 빠짐
3) 참 기쁨과 참 만족을 얻지 못한 채 저주의 열매만 맺힘
(2) 문제를 발생시키는 장본인이 있습니다(겔28:14, 사14:12-14, 계12:1-9).
1)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 천사 중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천사가 타락함
2) 저주 받은 영이 되어 온 천하에 혼란을 가져옴(계12:1-9)
3)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듦(창3:1-6, 행10:38)
(3) 마귀에게 눌린 결과(상태)
1) 모든 인생이 마귀에게 눌리게 되고 그 결과 마귀의 자식이 됨
2) 평생을 종노릇하며, 우상숭배하게 됨
3) 사는 동안 저주와 재앙을 받게 됨
4) 저주의 결과로 죽음을 맞게 되고(히2:14, 롬6:23), 지옥으로 가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됨
5) 자녀들에게 더 큰 영적인 문제가 물려지게 됨
(4)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 그리스도(롬5:8, 요1:12, 롬10:13, 엡2:8)
2.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누리는 것.
(1)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고백하면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십니다.
1)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고백함(1, 3, 8, 11, 18절)
2) 모세는 그의 인생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음
(2)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는 길 - 오직 그리스도
1)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는 길임
2) 창3:15, 출3:18, 사7:14, 마16:16을 진짜 알아들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
2) 양자의 영을 주셔서 후사로 부르심 (롬8:15-17),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심(롬8:32)
3) 그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로 역사하고 계심
결론: 삶 속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찾아내십시오. 믿음 회복할 때 인생을 이끄시는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다는 답을 주실 것입니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4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5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6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7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8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9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10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11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12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13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6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17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출15:1~18
■ 할렐루야! 하나님께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 보니 하나교회 성도님들이 대부분이 고향을 찾으셨다가 돌아오신 듯 하고, 몇 몇 분은 아직까지 고향을 가지 못하신 분들도 계시고 방송을 보니 어젯밤 늦은 정오까지 서울방면으로 많이 정체되기도 했습니다만 오늘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큰 은혜 입는 최고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 명절이 되니 가정예배를 인도하고 난 후, 저에게 문자 메시지를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목사님, 이번에 저희 가정에 처음으로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흑암세력이 많이 결박되어졌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실들을 예배를 통해 보게 됩니다” 등 고백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1부 예배 마치고 난 후에 어느 성도님께서도 “우리 자녀들 중 믿지 않는 아들이 있는데 이번 명절 가운데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할 것이 아닌가”하고 말씀을 전했다고 하십니다. 그런대 “영접을 못했습니다” 라며 안타까워 하셨는데 영접은 하나님의 시간표 가운데 열매 맺는 것이라 말씀드렸는데, 모두가 각 각 흩어진 현장에서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축복된 응답을 누리게 된 것에 감사를 드리며, 제가 그 문자 메시지를 보며 너무나 기뻤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현장에서 끊임없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시는 것을 확인하며 마음으로 감사하며 기도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쉰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영적인 힘과 비밀이 없다면 쉰다 해도 더 피곤하고 힘들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그렇지 않겠습니다만, 영적인 비밀과 힘이 없이는 아무리 환경이 좋다 할지라도 그 환경이 편안할 수 없고 연휴가 길어 쉬는 시간이 많다 할지라도 뭔가 모르게 불편하고 안식이 없는 부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아마 영적인 싸움에 승리한 분도 계실 것이고 반면에 찾아볼 곳 찾아뵙고 인사드림에 분주함으로 말씀과 상관없이 지낸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 부르셨기에 어떤 모양으로 인도 받아오셨든 지간에 이 시간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오늘 회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구정 연휴를 통해 가정과 가문을 돌아보시며 세계복음화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붙잡은 것이 있습니까? 기도해야 할 제목들을 가정과 가문을 바라보며 붙잡은 것이 있다면, 낙심치 마시고 그것을 붙잡고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기도하는 그 사람을 통해 가정, 가문 복음화를 이루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 가정과 가문 이 복음화 되어지는 축복을 주시겠다는 사실인데, 이 사실을 누리시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여나 그런 분들이 없으시겠습니다만, 구정 명절을 통해 사람관계로 상처받고 낙심된 분들이 있습니까? 조금만 눈을 열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되느냐? 인간관계를 육신적으로 보지 말고 영적인 상태를 보시면 됩니다. 영적인 상태로 보게 되면 눈이 열림으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하겠구나!” 하는 눈이 열리게 되어질 것입니다. 영적인 상태를 보게 되면 복음의 눈으로 가정과 가문을 보게 되고 사람관계 속에서 결국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임을 알게 될 것이며, 사탄이 가장 공격하는 부분이 바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케 될 것입니다. 조금만 눈을 열어 보면 모든 것이 축복과 응답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런 분들이 없겠습니다만 관계 속에서 낙심과 상처 가지신 분들은 문제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도록 눈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복음을 위한 발판이 되어질 수 있는 응답들을 누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지난 주 출애굽기 14장에 “나로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실 것을 말씀으로 붙잡았습니다. 오늘은 본문 18절에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시도록 다스리시도다” 모세의 중요한 신앙고백과 이스라엘의 중요한 신앙고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모세의 신앙고백, 사실 본문 1절과 같이 이 찬양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른 찬양이지만, 궁극적으로 보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할 때도 모세는 믿음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승리토록 이끌어간 사실들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면, 우리 현장 가운데 모든 불신앙 가운데 빠져 있다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의 한 사람을 통해 민족과, 가정과, 가문과, 자녀가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여러분이 받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믿음을 회복하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을 해나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축복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서 인도해 가시는구나!” 이 결론을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알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누리면 정말 축복받게 되어 있고 방향도 다르게 되어집니다.
여러분, 교회사 가운데 은혜로운 찬송 가사를 많이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장 많이 불려지고 있으며 아마 오고 오는 세대에 가장 많이 불려질 찬송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바로 크로스비 여사입니다. 생후 6주 만에 눈이 실명케 되어집니다. 태어나면서가 아니라 생후 6주 만에 의사의 실수로 인해 눈을 실명케 됩니다. 사실, 절망할 수밖에 없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할머니를 통해 심겨지게 되고 그 말씀의 역사를 통해 비록 소경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회복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그의 고백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과 찬양으로, 그래서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은 찬양이 되어진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온 찬송가를 보면 제일 많이 작사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크로스비의 찬송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즐겨 찬송하는“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라는 찬송도 크로스비가 작사한 것이고,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매 마른 땅을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이 곡도 사실 크로스비가 지은 것이며,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이것 또한 크로스비의 찬송입니다. 그리고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 하시네” 은혜로운 찬양들이 모두 소경이었던 크로스비에 의해 작사된 찬양입니다. 그 중심에 말씀이 들어가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니 아름다운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많은 생명들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찰스 웨슬레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주님의 역사를 찬송하겠다” 찬송가 23장입니다. 우리는 입이 하나밖에 없음에도 불과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남에게 상처 주는 등 하지 않는 말이 없는데, 웨슬레는 만개의 그 입으로 주님이 주신 은총을 찬송하겠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제대로 안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다 보니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고백이 바로 하늘의 속에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주셨는데, 창세전에 우리를 부르셨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문제와 환경이 와도 괜찮습니다. 모든 문제와 환경들을 이길 비밀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두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우리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
첫 번째로 우리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능력, 이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믿음을 회복하게 되어 있고 믿음을 회복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배후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 인생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 구정 설 명절을 앞두고 중요한 기본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현장에서 나누며 가정 예배 순서지로 전달되었던 내용도 동일한 내용이었습니다. 한 주간 지나고 난 후 우리 현장을 두고 다시 한 번 더 그 메시지를 다시 붙잡아 보길 원합니다. 지난 주 전달된 메시지의 그 범위를 넘어서지 아니하고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시간에 지난 한 주간에 인도하신 부분을 놓으시고 다시 한 번 더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메시지로 정리되어지는 축복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실상은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은 이런 말 저런 말 할 수 있습니다만 어떤 사람이든지간에,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실상은 방황하고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지식인은 지식을 가지고 방황하고 있고, 지식을 찾기 위해 찾다가 공허하기에 다른 지식을 찾아 헤메입니다. 공허함과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몰두하고 집중하는 것이 방황하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돈 있는 사람은 돈 있는 것 가지고 밤새도록 방황합니다. 저는 그런 부분들을 보았습니다. 가진 돈 때문에 편리한 삶을 살지는 몰라도 밤새 몸부림이 방황하는 몸부림인 것입니다. 고상한 사람은 고상한대로 방황하고, 분명한 것은 어떤 사람도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고 현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황함이 그냥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영적인 문제에 메여서 방황한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문제가 어떻게 왔으며 왜 방황하는가? 지난 주 말씀드렸듯이 인간이 참 경배의 대상을 찾지 못함으로 귀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어 방황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나님 앞에만 영광돌리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놓쳐버렸고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을 찾는 본능은 있지만 길이 없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도, 찾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참 경배대상이 없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 보면 문제와 어려움을 당하면 어디로 달려갑니까? 교회는 모두 망하고 실패한 후 마지막에 오는 곳이고 가장 먼저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나무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경배대상이 다르기에 마땅히 그들은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따라가지 않으면 언제 두려움이 찾아올지 모르기에 그들은 점쟁이와 역술인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년들어 메스컴을 보면 유별나게 역술인들이 등장하여 연예인들와 사주를 이야기 하며 상반기에 누구누구는 조심해야 한다며 사주팔자를 이야기 합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상숭배 하지 말라 하는 말도 그들에게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 경배의 대상을 놓치고 귀신을 섬기기에 무당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죠. 그 무당들의 말에 끌려가며 전 재산을 바치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는가? 이사날짜도 잡아야 하고 묘자리 방향을 잡아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참된 경배의 대상을 찾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두 주 전에 본 교회 성도님 가운데 부모님이 소천 하셔서 장례를 치뤘습니다. 먼 지역에 있는 관계로 그 지역 교회에서 집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관예배 후에 시신을 안치를 하는데 어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해요 “몇 년생, 몇 년생, 몇 년생은 이 자리에 있으면 어려움이 있으니 물러가라” 는 것입니다. 집례 하시는 목사님께서 “우리는 상관없으니 그냥 진행하십시오” 하셨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성도들이 많으니까 아침에는 장례식 갔다가 점심시간에는 잔치에 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그것도 겁냅니다. 그들을 나무라지 못하는 이유가 경배대상이 다르기에 두려워하는 것이고 어려움 당하는 이유가 참 경배 대상을 놓치니 그런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영적인 고아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고아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아비가 없다 라는 말입니다. 어릴 때 보호자와 인도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 보호자, 인도자가 없다 라는 사실은 불행 중에 불행입니다. 어른들이 가정과 가문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양 부모님이 계신지를 살핍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 보호자 없이 자랐다면 불행인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이 영적인 고아란 말을 합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고아보다 더 불행한 것이 있다면, 밤낮 폭행을 하는 아비를 만난다면 차라리 고아가 더 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한번은 이런 보도가 나왔습니다. 10년 전에는 가정에 사고가 날 때 경제문제로 부모가 자살하는 경우가 있는데, 남겨둔 자녀들이 고생이다 해서 동반자살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느냐 하면,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폭행해서 죽이는 집안들이 많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너지는 집안이 많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아비를 만났다면 고아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고아로 사는 것이 더 났습니다.
다른 예로는 탈북자들의 보고내용을 보니 북한이라는 나라가 참 비참했습니다. 어느 정도냐? 죽은 딸의 인육을 돼지고기라고 속여 먹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없다는 공산주의의 유물사관 그 지도자인 김정일이 붙잡고 있고, 그 백성이 태어나면 공산주의 백성이 되고 바르게 사는 것과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공산주의에서 태어나는 것이기에 잘못된 아비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니 헐벗고 굶주리며 죽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마찬가지입니다. 참 경배대상을 찾지 못해 귀신을 섬기면서 영적 고아로써 결국 인생이 영육간의 죄로 인한 저주의 열매들만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인생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저주의 열매들이 맺혀집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살고 난 후 현장을 변화시킬 제자가 세워지고 축복된 전도자의 삶을 통해 후대들이 세워지기는커녕 저주의 열매들이 맺혀집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땅은 일시적인 쾌락은 있을지 몰라도 참된 행복은 없습니다. 참 만족이 없습니다. 모두 멸망 길을 가며 저주의 열매들이 맺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에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그 계획이란,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속에서 빠져나오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시는 증거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그리스도를 지식으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역사로 깨닫게 되는 날 모든 응답과 축복의 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경배의 대상을 찾지 못 한 채 영적인 고아로 저주의 열매를 맺힐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해방 받았다는 것, 그 구원의 열매를 깨달으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왜 감사가 없느냐면, 이 사실에 대한 해방 받은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지에 대한 가치를 모르니까, 구원받은 가치를 알지 못하니 생애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해방케 하신 그 축복의 역사, 하나님이 능력으로 우리 생애 가운데 역사하심으로 그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결국 이런 문제를 발생시키는 장본인이 있는데, 바로 마귀 곧 사탄이라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한 피조물이 있는데 바로 천사들의 그룹입니다. 에스겔 28장 14절, 이사야 14장 12~14절, 요한계시록 12장 1~9절에 보면, 천사중의 그룹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섬기는 천사로 그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28장 14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그룹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지키는 천사들입니다. 이사야 14:12~14에 보면,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찬양하는 천사가 타락하여 저주 받은 영이 된 것인데 바로 사탄 마귀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14장 14절에 보면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결국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천사의 타락으로 인해 저주받은 영이 되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탄, 마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 마귀의 존재가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온 천하를 꾀하는 자라” 했습니다. 말세가 오면 올수록 사람가운데 엄청난 혼란을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존재가 결국 땅으로 내어 쫓겼다 했는데, 결국 아담과 하와 속에 들어가 타락한 영, 저주받은 영인 사탄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인간에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떠나도록 만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6절 이후에 모든 인생은 사도행전 10장 3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모두 마귀에게 눌려 있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눌림으로 인해 현실로 나타나는 결과를 고상한 말로 인간의 실존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실존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탄의 역사로 인한 결과가 결국 모든 인생은 마귀를 아비로 섬기고 마귀의 자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로 인한 궁극적인 결과는 지옥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삶을 사는 것인데, 이 지옥으로 가기 이전에 현실적으로 저주와 재앙으로 이 땅에 삶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심판 아래에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상숭배를 왜 하지 말라고 합니까? 하라, 하지말라가 아니라 우상숭배하면 결국 그 배후에 재앙이 임하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현실에 임하는 그 저주와 재앙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 해방 받았습니다. 믿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로마서 8장 2절)”. 할렐루야! 이 축복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인생에 역사하신 겁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더 불행하고 억울한 것은 평생을 종도 아닌데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도 아닌데 종으로서 종노릇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종도 아닌데 종노릇한다면 억울한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인생들을 살아갑니다.
송현동에 있는 어떤 무당을 찾아가 이야기 했습니다. “당신 하는 일이 행복합니까?” 물으니까 “행복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할지라도 이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것이 저주인지, 재앙인지 알지도 못하고 지금 자기가 망하고 있으면서도 망하는 줄도 모르고 그 일을 계속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집을 나오면서 참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해서 종도 아닌데 완전 거기에 종노릇하면서 평생을 그 일을 하겠다는 겁니다. 또 다시 태어나도 그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종도 아닌데 종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것만큼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없잖아요. 그러면서 진노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납니까? 아니잖아요.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제로 “죽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 죽음은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존재가 누구냐? “마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이 죽음을 무서워함으로 말미암아 일평생 그 죽음에 매여서 종노릇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의 죽음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했습니다.
이 죽음이 어떻게 해서 왔습니까?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하나님을 떠난 결과로 온 것이 죽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장 23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남으로 영적으로 먼저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그것이 죽음이고, 그리고 이 땅에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으로 끝나느냐? 아닙니다. 영원한 심판 지옥의 형벌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영원한 죽음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는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있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에게는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영원한 축복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천국에 입성하는 그 축복의 시작이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안식하게 되는 그 축복의 시작이 죽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죽음은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똑같은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하게 되는 그 소망이,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서 영원한 왕권을 가지고 축복을 누리는 그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죽음이 심판이고, 그 죽음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영원한 고통인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을 가보지도 않고 무슨 지옥을 그렇게 이야기 하느냐? 합니다만, 여러분 말씀이 하나도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는 성경 말씀에 분명히 지옥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닙니다. 후손들에게 더욱 더 영적인 문제를 가중적으로 물려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대로 알아듣고 깨닫게 된다면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구나!”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이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인생 속에 역사하신 이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듣고도 반응이 없거나 무감각하다면 그런 사람을 보고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속에서 빠져 나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내 인생에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신분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셨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이 부분은 우리가 모른척한다고 해서 지나갈 문제가 아닙니다. 똑똑하다고 해서 이 부분들이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하시고 다른 조건이 필요치 않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조건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장 13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고 에베소서 2장 8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인생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 이것을 찾아내시고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누리는 것.
두 번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뭐냐? 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속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 이 사실을 믿고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어렵지 않은 것은 이 사실을 믿는 믿음 고백하면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우리 배후에 역사하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넘어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모세가 찬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출애굽기 15장 1절에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애굽의 군대를 완전히 멸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출애굽기 15장 3절에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 창조주가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8절에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하나님이 바람을 불어서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들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11절에 “여호와여 신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 귀신과 같은 그런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단지를 가져다 놓고 빌고 뭔가 형상을 다듬어 놓고 빌고 그런 귀신과 같은 이름이 아니라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15절에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여러분, 이렇게 큰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고 있으며, 17절과 18절에 고백하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모세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그냥 된 것이 아니고 이미 모세는 그의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 그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출애굽기 2장에 보면 출생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고,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미디안 광야 생활 속에서 떨기나무 불꽃가운데서 하나님이 부르신 사실을 체험했고, 출애굽기 4장 애굽에 들어갔을 때 열 가지 기적을 일으키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고,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홍해 앞에서 하나님이 바다를 가르셔서 육지처럼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이 고백 가운데 찬송하면서 마지막 결론이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나가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는 길이 있습니다.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얼마만큼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느냐 거기에 따라서 모든 응답의 문들이 다 열려지고 모든 축복의 문들이 열려지고 우리 인생의 방향도 여러분의 사업도 학업도 진짜 얼마만큼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누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길을 내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느냐? 여러분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 해결자로 주신 창세기 3장 15절. 우리 모든 인생은 창세기 3장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왔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바로 답을 주셨는데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사실을 진짜 알아들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여러분의 현장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8절에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내 백성을 데리고 나가라” 무엇하러 말입니까? 제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사는 뭡니까? “피 흘리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보이지만 별스럽지 않게 보이지만 그 피 흘리는 제사 드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애굽에서 빠져 나왔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 제사의 비밀.
포로 되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답을 주셨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7:14)” 여기 “처녀가 잉태하여…”는 중요한 말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와 같은 말입니다. 원죄 아래 놓여 있지 않으면서 원죄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분이 오셨는데 바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복음16:16)”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 고백했을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네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16:17)”
그러면서 “반석 같은 축복”과 함께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늘보좌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천국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 그 이름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5~17절에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셔서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하셨고 거기에 보면 후사로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것으로 누릴 수 있는 후사로. 누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누리는 길입니다. 그 그리스도가 지금 우리에게 말씀으로 기도로 전도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삶의 시작인 3오늘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 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호와의 다스림이 영원무궁하시도다”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신 그 사실을 찾아내시고 믿음 회복하게 될 때 그러한 자들 통해 하나님은 현장에서 고백토록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 어떤 증거를 주시느냐? “여호와의 다스림이 영원무궁하시도다”
미래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의 통치, 우리 인생에 역사들을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하나님의 다스림. 그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도록 증거 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정말 “여호와의 다스림이 영원무궁하시도다” 여러분의 받은 응답들을 찾아냄으로 믿음 가지고 이 사실을 고백하는 축복의 증인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응답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들을 하나하나 찾아 누려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우리 인생의 역사 가운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신 부분을 찾아낼 수 있도록 이번 한 주간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그것을 찾아내는 참된 믿음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증거의 역사들이 또다시 시작되어지는 한 주간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모세의 응답의 결과로 나온 고백이 아니라 오늘 나의, 우리의 고백이 되어 지도록 한 주간 현장에서 하나님이 증거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서론: 구정 연휴에 가정과 가문을 돌아보며 기도할 제목을 붙잡은 것이 있다면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그를 통해 가정과 가문 복음화를 이루실 것입니다(행16:31). 혹시 사람 때문에 상처 입은 분이 있으십니까? 육신적으로 사람을 보지 마시고, 그의 영적 상태를 보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싸움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두 불신앙 가운데 빠져 있어도 나 한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한 사람을 통해 민족, 가정, 가문, 자녀가 살게 됩니다. 크로스비, 웨슬레처럼 이러한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1. 우리 인생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찾아내라.
(1) 왜 인생은 영적인 문제에 매여서 방황하는가?
1)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참 경배 대상을 찾지 못해 귀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임
2) 그로 인해 인간은 영적 문제에 걸려들고, 영적인 고아 상태에 빠짐
3) 참 기쁨과 참 만족을 얻지 못한 채 저주의 열매만 맺힘
(2) 문제를 발생시키는 장본인이 있습니다(겔28:14, 사14:12-14, 계12:1-9).
1)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 천사 중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천사가 타락함
2) 저주 받은 영이 되어 온 천하에 혼란을 가져옴(계12:1-9)
3)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듦(창3:1-6, 행10:38)
(3) 마귀에게 눌린 결과(상태)
1) 모든 인생이 마귀에게 눌리게 되고 그 결과 마귀의 자식이 됨
2) 평생을 종노릇하며, 우상숭배하게 됨
3) 사는 동안 저주와 재앙을 받게 됨
4) 저주의 결과로 죽음을 맞게 되고(히2:14, 롬6:23), 지옥으로 가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됨
5) 자녀들에게 더 큰 영적인 문제가 물려지게 됨
(4)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 그리스도(롬5:8, 요1:12, 롬10:13, 엡2:8)
2.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누리는 것.
(1)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고백하면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배후에서 역사하십니다.
1)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고백함(1, 3, 8, 11, 18절)
2) 모세는 그의 인생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음
(2)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는 길 - 오직 그리스도
1) 그리스도를 깨닫는 것이 곧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믿고 누리는 길임
2) 창3:15, 출3:18, 사7:14, 마16:16을 진짜 알아들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
2) 양자의 영을 주셔서 후사로 부르심 (롬8:15-17),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심(롬8:32)
3) 그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로 역사하고 계심
결론: 삶 속에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찾아내십시오. 믿음 회복할 때 인생을 이끄시는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다는 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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