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여호와의 이름
2011-03-27 00:00:00
관리자
조회수   34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2011년 3월 27일 주일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여호와의 이름
(출애굽기 20장 1~7절)

1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출20:1~7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은 장학헌금주일입니다. 의미 있는 인사를 나눕시다. 당신은 후대의 발판이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수준과 상관없이 언약의 전달자로써 저와 여러분을 세우셔서 후대들의 발판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후대들에게 오늘 제목처럼 여호와의 이름이 걸려있는 자들이 우리 후대들입니다. 이 일을 위해 마음과 중심으로 모으고 결단하고 드려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제목은 “여호와의 이름”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지난주에는 십계명 중, 제 1계명에 대해 말씀을 정리했고 계속해서 십계명에 관하여 본문을 읽고 있습니다. 제 1계명이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우리 인생에 대한 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가 축복이 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이 부분들을 해결하는 것이 전도와 선교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중심을 전도와 선교를 위해 방향을 맞춘다면 하나님이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하신 말씀이 마가복음 3장 13~15절에 보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와 같은 말씀입니다.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내게 주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에 대한 답을 십계명 중, 제 1계명부터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사라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데 그렇다면, 왜 이 땅에 고난과 어려움이 계속되는 것인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잠언 16장 25절에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망의 길이라 했습니다.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인생들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서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젖먹이 아기에게는 엄마가 가장 필요한 것처럼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아무리 좋은 차와 집이 있어도 아이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젖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곧 창세기 1:27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이 일을 회복하지 않고, 이 축복을 누리지 않고서는 그 어떤 인생도 방황하게 되어 있으며, 인생 자체가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공하고서도 행복하지 않으며 또, 무너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장사보다 이상하게 도박에 빠지고 마약이나 술 집, 창녀 촌 등으로 음란문화에 경제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일시적 쾌락을 따르며 참된 행복이 없다 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한국 가임 여성들 4~5명 중, 한 명은 술집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라는 통계가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음란 사이트나 포르노 등에 경제가 가장 많이 쏟아지는 국가 세계 1위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참된 행복이 없다 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유해지면 자신의 삶을 자기의 것을 가지고 즐기는 삶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돈이 있고 조금 부유하면 자기 삶 속에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 인생의 목표를 삼게 됩니다. 그래서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다 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이런 부분들이 음란문화와 연결되어지게 되고 그와 더불어 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연예인들, 인기인들, 가수들, 운동선수들 거의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에 관계있는 것을 보도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성공해놓고 결국 무너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면 굉장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이것은 우리 인생에 대한 중요한 답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 7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1계명이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이고 2계명은 우상숭배를 금하는 내용이며, 3계명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그런데 왜 2계명은 다루지 않고 3계명을 하느냐? 사실 1계명과 2계명은 같은 맥락입니다. 다른 신들, 그것에게 역사하는 통로가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 배후에는 귀신과 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배후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오늘 “여호와의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특별히 이번 주 핵심 메시지에서 배포된 중직자 편지(깊은 샘)에 우상숭배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었습니다. “과연, 우상숭배 때문인가” 라는 제목으로 우상숭배에 대한 내용을 아주 잘 정리되어져 있습니다. 꼭 참조를 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악한 다른 신들 때문에 거기에 속아서 인간이 우상숭배하고 결국 우상숭배로 망하게 되어지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 부분을 가지고 두 가지로 말씀을 생각고자 합니다. 먼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 말씀에 다른 부분에서 말씀드리자면, 복음 속에 모든 것이 다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복음은 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며 고난과 고통가운데 있으며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보는 눈이 세상을 보는 눈인데, 그 눈은 복음 속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창세기 3장상태인 세상을 보는 눈과 그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답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복음을 알고 있다면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알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치를 알게 됩니다.
지난 금요전도학교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받은 응답 중 응답이 있다면,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함을 받았다 했습니다. 그 총명함이란, 이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며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이해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총명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복음을 안다면 창세기 3장 속에 있는 세상을 알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는 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십계명 이 한 부분만 봐도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무엇 때문에 문제가 왔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십계명 중 1~4계명까지를 영적인 원리라고 합니다. 영적인 원리라는 것을 종교인들, 지식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입니다. 지식인도 사실 정말 지식인은 알아듣습니다만 대충 대충, 얼렁뚱땅 그러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인데 1~4계명에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원리에 대새 말씀하고 있으며, 5~10계명은 도덕적인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1~4계명까지의 영적인 원리를 빼버리면 5~10계명은 다른 종교에서도 다들 강조하는 것들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아시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 당시에 주신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대를) 보세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현장에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가 아닙니까? 십계명을 받은 그 당시의 광야 길을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발생할 문제들에 대하여 십계명을 주신 부분인데,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지금 현장의 문제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이 도덕적 원리가 무너지게 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원리가 무너졌기 때문에 도덕적인 원리가 무너진 것입니다. 도덕적 원리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영적인 원리입니다. 1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하나님은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계명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으며, 3계명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백성들의 자세에 대해 말씀하고 있고, 4계명은 하나님 안에 있는 안식과 쉼이 있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모두 영적인 원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영적인 원리가 무너졌기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무너졌기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도덕적인 모든 것이 파괴되어지는 결과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 한 번 보세요.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이 없어요. 사고 자체가 상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그 어떤 곳에서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로마서 1장 28절에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다른 신을 섬기는데 바로 마귀, 사탄, 귀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악한 사탄, 마귀, 귀신을 섬기며 저주와 재앙의 역사 속에서 계속 당하는 것입니다. 그 문화인 우상숭배하게 되고 하늘의 악의 영들이 만들어 낸 우상숭배에 빠져 인생들이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왜 하지 말라하느냐? 그 배후에 사탄과 귀신이 역사하기 때문에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지 못하니 하나님이 없는 불신자들은 우상숭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인생들이 귀신에게 붙잡혀서 자자손손 귀신에게 끌려 다니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악한 사탄, 마귀, 귀신이 우상숭배 하게 할 뿐 아니라 큰 종교들을 만들어 그 종교들이 문화들을 만들어 냅니다. 문화 속에서 영혼이 황폐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들이 일어나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결국 그 길이 멸망의 길로 가는 줄도 모르고 따라갑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영원히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냥 빠져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멸망시키고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도 공격해오는데,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보면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섰다고 생각하는 자를 넘어뜨린다 했습니다. 성공한 자도 넘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에 보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불화살을 쏘며 공격해온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끝까지 공격해오는데 그 이유는 복음 못 깨닫고 복음 못 듣도록 하기 위해 복음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지옥과 멸망의 길로 끌고가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하나님이 인간들의 마음에 없으니 이 땅에는 심각한 질병이 오게 되고 영혼도 혼란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로마서 1장 28절)에 이 사실을 잘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들 마음에 없으니 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9~31절에서 나타나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28절에는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없는데 상실한 마음으로 못할 짓이 없잖아요? 이것이 바로 사회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들이 어떤 영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느냐가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달 되어진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만, 창세기 3장 인간의 원죄문제는 삼사 대(三四 代)까지 멸망시킨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난 그 원죄의 역사는 그 사실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우리 모든 삶을 무너뜨리는데 결국 어디까지 끌고가느냐? 지옥까지 끌고가는 것이 원죄문제입니다.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부모에게 있는 영적 상태가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달되어지는데, 여러분, 원죄문제 해결되어지지 않는 가운데 있다면 원죄문제는 얼마나 힘 있고 강하냐하면 우리 인생을 지옥에까지 끌고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모든 영역 속, 상하좌우 모든 부분에서 무너지는 역사로 나타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 원죄문제는 나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 이후에 태어난 모든 인생은 태어난 순간부터 태어난 이유만으로 원죄 가운데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원죄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은 삼사 대까지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삼사 대까지 망하는 것은 모두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죄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 원죄 보다 더 큽니다. 아무리 원죄가 힘 있고 가정과 가문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몇 만 배 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내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저주와 재앙의 길을 해결할 수 없기에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저주, 재앙이 공격해온다 할지라도 재앙의 역사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우리를 원죄 가운데서 건져내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 속으로 인도하시는데 원죄로 인해 멸망 받는 힘 보다 몇 수십 배, 수만 배 보다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할렐루야!
여러분, 복음이 우리가 쉽게 볼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라는 사실은 복음의 핵심인데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준이 아닙니다.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인생이 가지고 있는 원죄 문제, 그것이 하나님 떠난 문제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결국 원죄 때문에 사단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끝내버리는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 이름 붙잡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데 천대까지 복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모든 것입니다. 복음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누리면 누릴수록 한 가지로 결론이 납니다. 진짜 복음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구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다른 말로 하면 복음 안에 모든 것이 있으니까 그것을 누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확인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이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복음 안에 모든 것이 있으니까 그것 찾아 누려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의 비밀을 아는 자에게 모든 축복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은 귀신과 같은 이름이 아닙니다. 훌륭한 세상의 영웅들과 같은 이름이 아닙니다. 우상숭배자들이 주문해서 외우는 그런 수준의 이름이 아닙니다. 창조주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창세기 1장 1~13절에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창조주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것을 아무도 안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으로 오셨습니다(요한복음 1장 1~14). 정말 이 하나님의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 이 하나님의 이름의 비밀을 아는 자에게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앎으로 대표적으로 쓰임 받았던 사람이 있다면, 물론 성경에 나오는 렘넌트 7명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 그 비밀을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표적으로 한 사람을 예로 든다면 다윗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다윗은 사무엘상 17장 45절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여호와의 이름에 성공한 다윗의 고백입니다. 또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3절에는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나님 당신의 이름 때문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의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기뻐하셨고 쓰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 이 이름을 드러내고, 이 이름을 나타내고 이 이름 가지고 모든 것을 연결해서 봤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윗을 축복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장학헌금 주일로 작정을 하게 됩니다. 그냥 헌금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예배를 통해서 말씀 속에서 기도제목을 가지고 헌금해야 합니다. 언약이 있는 헌금을 해야 합니다. 제가 바라기는 성도님들의 후대 가운데 다윗과 같은 일꾼이 일어나는 그 언약을 붙잡고 헌금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가장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왕이 다윗입니다.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오실 조상으로 가장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왕 중의 왕이 다윗입니다. 우리 자녀들 가운데 다윗 같은 일꾼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이 중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헌금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느냐?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자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다윗에게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 그 이름이 땅에 짓밟히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한번 봅시다. 사무엘상 17장 26에 “다윗이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거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짓밟히는 것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현장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까? 지금 현장에 그리스도 이름이 막 짓밟히고 있는데, 미혹하는 이단들에 의해서 또 우상이 창궐함으로 짓밟히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까? 다윗은 그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6절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한번 받아합시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여기에 대한 다윗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이 거룩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이 거룩한 분노가 어디서 나오느냐? 어떤 사람이 이야기하기를 “사람에게 있는 꿈은 현실에 대해서 거룩한 분노를 가질 때 그것이 꿈(비전)이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이름이 여러분의 현장에 짓밟히고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무감각하잖아요. 감각이 없이 무디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7장 16절에 보면 40일 동안에 아침저녁으로 블레셋 사람이 나와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그 자리에 그 소리를 들은 다윗은 “이 할례 받지 못한 놈들 어찌 감히 하나님을 모욕하느냐” 거기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제 핵심에서도 말씀했습니다만, 지금 밖에서는 제 3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뉴에이지나 프리메이슨이나 모슬렘운동들이 일어남으로 여기에 사람들을 다 몰아가고 있습니다. 갈급한 사람을 낚아채 가고 있고 병든 사람을 낚아채 가고 있고 이 사람들을 영적 체험, 귀신들리게 해서 멸망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이 뭐냐? “지금 교회가 필요 없는 교회 파괴시대다, 교회가 필요치 않다” 뉴에이지 단체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더 이상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렇게 기독교를 놀리고 있고 비웃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얼마만큼 여러분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주시는 현장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습니까? 다윗은 오늘 그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다윗을 쓰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다른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볼 때 성실하게 되어 있고,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78편 70-72절에 다윗에 대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성경구절입니다. 다윗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 하셨도다” 했습니다.
다윗의 성실함. 손에 공교함은 기술, 실력이죠. 그 성실함이 어디서 나오느냐? 사실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사실을 가졌고, 사람들 앞에서 사실을 가졌고 자기 앞에서 사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을 가지고 있으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사실을 못 보기 때문에 시험에 듭니다. 진짜 사실을 보면 이해가 됩니다. 사실을 보지 못하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결국 영적문제로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자신 앞에 성실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실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이냐? 사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다윗은 성실했고 사실을 가지고 있었느냐? 목동으로 있을 때 사무엘상 16장 11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새(다윗의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자기 앞으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왜냐? 기름을 부어서 대신 왕 삼으려고… 그런데 이새의 일곱 명의 아들이 다 지나갔습니다. 사무엘이 물었습니다. “이 자들이 네 자식이 전부냐?” 그때 이새가 “아닙니다. 말째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고 있나이다.” 다윗은 자기의 주어진 일에 성실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무엘상 17장 33~34절에 보면 사실 사울 왕 앞에 섰을 때 사울 왕이 “너는 소년이고 지금 전쟁을 일으키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용사였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네가 어찌 감히… 너는 불가능 하다”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사무엘상 17장 34~35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성실했던 사실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목동으로 있을 때 주어진 일에 성실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 섰고 사람 앞에 섰고 자신 앞에 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성공한 것입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승리하고 무너집니다. 승리한 후에 실수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또 다윗은 인간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성실함과 사람 앞에 성실함과 자신의 성실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공격해 오는 그 피난 걸음 속에 충분히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종을 어떻게 해칠 수 있느냐? 그러면서 시편 23편을 기록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인간관계 속에서도 성실함으로 승리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대상 29장 10~14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그 일을 알고 성전 지을 준비를 다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성전 짓기 위해 다 준비 해 놓고도 고백이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 앞에 자신 앞에 사람 앞에 사실을 가지고 성실했습니다. 우리 후대, 렘넌트들이 이런 다윗과 같은 일꾼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작은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때그때 있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현실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주어진 환경과 사건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최고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으로 서는 렘넌트들이 되어져야 합니다. 이런 렘넌트들이 우리교회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저와 여러분이 헌금하는 것이고, 이 일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복된 일이고 우리 인생에 이런 일꾼들을 만들어 놓는다, 이 일꾼들을 세워 놓는다면 성공한 것입니다. 성공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를 통해서 다윗과 같은 이런 일꾼들이 나온다면 성공한 것 아닙니까?
마지막으로 다윗은 모든 것들을 하나님 이름과 연결 되어진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7장 45절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된다는 사실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힘은 어디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 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정말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이름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능력은 뭐냐?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 그 이름”이 능력입니다. 왜 연약하고 왜 부족하고 왜 무너지고 왜 교회가 어렵습니까? 그리스도 이름이 희미해지고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개개인이 문제와 사건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이 희미해지고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 축복된 하나님의 이름, 그 축복의 비밀이 함께 함을 알아야 된다는 사실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우리의 후대들이 이런 후대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진짜 현장에 대한 안타까운 거룩한 분노를 가진 후대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또한 주어진 일에 작은 일이라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사실을 보면서 성실하게 설 수 있는 렘넌트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고, 정말로 믿는 곳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여 드러내는 그런 렘넌트들이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여러분이 마음으로 모으고 중심을 모으고 헌신한다면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제까지 내용은 다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한 가지만 딱 잡으세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이 무슨 말이냐? “나는 내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 그 이름을 높이리라” 이것만 붙잡으세요. 내가 살고 있는 그 지역에서 그리스도 그 이름을 높이리라.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과 사업처에서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리라. 우리 학생들은 학업 속에서, 이 학업을 통해서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과 맞아집니다. 그게 성공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 높이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시간표와 현장의 시간표와 나의 시간표가 맞아집니다. 그것이 응답입니다. 내 학업 속에서 나는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리라 그러면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나의 무능과 부족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이라도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이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내가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리라” 이것이 전도자의 삶입니다. 이 축복된 삶을 삶으로 여러분을 통해서 이 땅에 참된 올바른 후대들이 세워지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3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여호와의 이름(출20:1-7)

서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고난과 어려움이 계속 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잠언16:25).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않고는 어떤 인생도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된 행복이 없어서 일시적 쾌락을 따릅니다.


1.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모든 것이다(롬1:29-31).
(1) 복음을 알면?
1) 창세기 3장 문제에 놓인 세상을 보는 눈을 얻음
①영적인 원리가 무너져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덕적인 모든 것이 파괴 됨
②하나님이 없어 다른 신을 섬기다가 저주와 재앙의 역사 속에 계속 당함
2)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유일한 답을 알게 됨
(2)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롬1:28).
1) 하나님이 없으니 다른 신을 섬기며 우상문화에 빠짐
2) 사탄은 성공한 자도 넘어뜨리며(고전10:12), 인간을 공격하며(엡6:16), 범죄들이 일어나게 함(롬1:29-31)
3) 창세기 3장의 원죄 문제는 우리 자신과 후대의 모든 삶을 무너뜨림(5절)
(3) 에수 그리스도 - 모든 저주와 재앙의 역사를 꺾는 유일한 이름
1) 그 이름은 원죄로 인해 멸망 받게 하는 힘보다 수십 배, 수만 배 더 강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 속으로 우리를 인도함(6절)
2) 복음의 핵심: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마16:16)
(4)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 복음 안에 모든 것이 있으니 그것을 누리라.
2. 하나님의 이름의 비밀을 아는 자에게 모든 축복을 하시겠다(삼상17:26, 36).
(1) 하나님의 이름(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자는 쓰임 받을 수밖에 없다(대표적 인물, 다윗).
1) 하나님의 이름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이름임(창1:1-13)
2) 이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으로 오심(요1:1-14)
(2) 다윗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1)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짓밟히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음(삼상17:26, 36)
①뉴에이지, 프리메이슨, 모슬렘 같은 집단이 사람들을 멸망으로 끌고감
②기독교가 비웃음을 사는 현실
2)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시78:70-72)
①영적인 사실을 보았기에 성실할 수 있었음
②다윗은 목동이었을 때도, 성공하였을 때도, 왕이 되었을 때도 여전히 성실함
3)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앎
①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골리앗 앞에 나아감(삼상17:45)
②하나님의 이름을 기뻐하고 높이는 것이 우리의 힘(고전1:18)

결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 말은 한마디로, “나는 내가 사는 동안 그리스도 그 이름을 높이리라.”는 뜻입니다. 내가 사는 지역,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내가 하는 학업 가운데서 그리스도 이름을 높이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과 맞아떨어지며, 하나님과 현장과 나의 시간표가 맞게 됩니다.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삶입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