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의 권능이 언제 나타나는가?
2011-11-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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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8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3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마28:18~20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제자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특별히 우리 교회 이 시간 예배는 해외 지교회 현장들도 현장들이지만, 대구 근교인 창녕과 고령 그리고 성주에서도 차량을 갈아타고서라도 예배에 함께 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오늘 제목처럼 하나님의 권능을 회복함으로 모든 현장을 정복하는 참된 제자의 응답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오늘 이 자리에 영육간의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들 특히 질병의 문제를 가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처음부터 주신 약속은 세계를 복음화 하는 세계복음화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주신 복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말씀하셨고, 제자들을 부르시자 마자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나가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남겨 놓고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있다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16:1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1:8)”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주신 완벽한 축복은 세계복음화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수준대로 산다면, 우리에게 세계복음화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내게서 나타나야 세계복음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준이 어떻습니까? 우리의 수준은 일평생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이 우리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루 하루 밥먹고 살기가 바쁜 것이 우리의 수준이고 또, 할 수 있는 일들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며 단 1초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사랑합니다만 자녀들에게 닥치는 문제들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사랑합니다만, 가정에 닥친 문제들 앞에서는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수준인 것입니다. 우리의 수준으로는 안되기에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는다는 것은, 단지 밥 먹고 사는 수준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사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이 내 삶 속에 나타나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현장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내 삶 속에 나타나면 반드시 사탄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이고, 저주와 재앙가운데 빠진 가정과 가문을 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삶 속에 나에게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게 되는가? 그래서 오늘 제목을 하나님의 권능이 언제 나타나는가?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권능이 언제 나타나는가”

1. 언약적인 이유가 우리에게 있어야 함

여러분,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밖에 없는 언약적인 이유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건됨이나 우리의 수준을 보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언약이 있음을 보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인격이 모자란다 할지라도,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괜찮아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준은 우리 안에 언약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은 자들에게 그 언약의 언약됩을 성취하셔야 하기 때문에, 복음이 복음됨을 성취해야 하기에 언약 붙잡은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 다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 얼마나 비열한 사람입니까? 사기꾼 기질이 있으며 야비한 사람입니다. 속임수가 어쩌면 야곱을 일컫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야곱을 무엇 때문에 축복하셨습니까? 야곱을 끝까지 추적하셔서는 결국 이스라엘 전체를 정복하는 이름인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에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주셨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야곱 안의 언약, 장자권 의 축복을 알고 영적인 사실을 사모한였는데,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맡바꾸었습니다. 이 팥죽 한 그릇은 장자권의 측복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야곱은 알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고 “나는 하나님의 언약과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라는 언약에 대한 사모함과 갈급함이 야곱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자라고 부족하고 연약하였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주시고 그 이름 가지고 세계를 정복하는 귀한 축복을 주셨음으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신약의 한 사람을 든다면 무식하지만 무식은 둘째치고 성격은 다혈질이며 삐뚤어지고 이상한 짓만 하는 사람이 있었느데 바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날밤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는데 바로 세족식이었습니다. 그때 한 제자, 한 제자의 발을 씻기셨는데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님 절대 제 발은 씻을 수 없습니다”했습니다. 이때 “발을 씻지 않는 자는 나와 상관이 없다” 하셨는데 이에 베드로는 “그러면 몸까지 씻어주옵소서” 이런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실 때에 제자들은 유령이가 하여 두려워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제자들이 반응을 보였습니다. 베드로는 “만일 주님이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를 걸으라 하소서” 그래서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만일 주님이시어든” 여기에 왜 ‘만일’이란 말이 나오겠습니까? 주님이시거든 이라고 해도 될 것인데 말입니다.
또,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이 부니까 현실을 보고는 물 속에 빠진 사람도 베드로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성찬식 이후에 예수님이 팔려질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때 너희들 모두 흩어지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 뭐라고 하느냐? “다른 사람 모두가 주를 부인한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이 잡히시니 줄행랑 치고,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심지어 저주까지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우리가 보면, 축복 받을 이유가 전혀 없어요. 어떻게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겠습니까? 또, 변화산에서는 졸다가 깬 베드로가 예수님의 변화된 영광스런 모습들을 보고는 돈도 없으면서도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 다른 하나는 주님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했습니다. 그러면서 마가복음 9장 6절에 보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얼떨결에 한 말인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면, 주님을 따라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우리는 고기 잡으러 간다” 했습니다. 이것이 수제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일곱명의 제자들도 덩달아서 베드로를 따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할 사람들이 말입니다. 이런 모습이 베드로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같으면 괜찮은 사람을 찾거나 인간관계를 끊을 것인데 주님께서는 끝까지 베드로를 따라가셔서 베드로를 축복하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 중심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언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은 우리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열심히 교회 일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언약인 것입니다. 그 언약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언약 중심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언약은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찾자”고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자”고 많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명상이나 요가에 빠지기도 합니다. 자신을 찾자는 것이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상 자신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답이 나는 만큼, 그리스도가 깨달아지는 만큼 자신이 누군가인가에 대한 답이 내려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삶의 정체성과 살아야 할 이유와 사명이 그리스도가 깨달아지고 그리스도가 답이난 만큼만 깨달아지고 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내 자신을 알고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만 세상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언약을 붙잡아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언약을 바르게 붙잡으면 우리를 정확히 알게 되고 세상이 어떤 세상인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참 기준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있느냐 없느냐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언약의 역사를 위해 우리에게 왜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인가? 성경 전체와 언약에 대해 짚어본다면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언약적 핵심을 명심해야 하는데 크게 일곱 가지가 나옵니다. 이 사실을 살펴본 다면 그리스도 붙잡은 자에게만 역사하실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 성경 - 언약의 핵심을 명심하라

언약을 명심해야 할 부분들 중 첫 번째로는, 원래 인간은 창세기 1장 27~28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되, 정복하고 다스리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28절에 보면, “생육하고 정복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가진 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행복의 근원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간 창조 이전에 존재했던 사탄과 마귀과 아담과 하와 속에 들어가서 불순종 하도록 한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 불순종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과 단절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트려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악한 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 법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 법을 싫어하고 벗어버림으로 악한 사탄의 말을 듣고는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가 끊어지고 이것을 영적 사망상태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인생에는 실패와 고통과 어려움이 계속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인생들은 육신적인 인생을 살고 나그네생을 살다가 본향으로 가게 되는데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사는 축복을 누리다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요.
그래서 모든 인생들이 창세기 3장 사건에 붙잡혀서 고통하고 멸망 받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사탄의 운명 가운데 빠진 인생의 결론은 사망이며 지옥입니다. 원죄문제의 결과는 사망이요 지옥입니다. 창세기 3장 원죄문제의 결과는 사망이요 지옥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해서 지옥가는 것이 아닙니다. 원죄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사라람이 지옥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인간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바로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시는 것입니다.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구약의 이미 많은 예언들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창세기 3장에 일어났던 일들을 대신 해결하셨는데 그 이일을 그리스도의 일이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그리스도의 일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최고의 축복이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복음' 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좋은 소식이 뭐냐? 예수님이 하신 그리스도의 일이 우리 인생에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만이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냥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접할 때 우리 안에 들어오셔요. 우리가 오시라고 영접 초청할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데 이것을 가지고 '믿음' 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창세기 3장의 영적인 문제는 끝나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우리의 영적인 신분이 바뀌는데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뀝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영적인 상태가 바뀌는데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영적인 소속이 바뀌는데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뀝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가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인격과 수준과 상관없이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참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가진 자입니다. 믿습니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권능 가진 자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고 그 권세를 가지고 세계를 살릴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흔들리지 마세요.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이미 권능을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이미 권세와 권능을 가진 자이지만, 세 가지 싸움을 싸울 때 우리에게 참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첫 번째 싸움은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지난날 까지, 어제까지는 악한 사탄과 친근했고 서로 도와주는 관계에 있었고 사탄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사탄이 건드릴 이유가 없었어요. 왜냐?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을 때는 아비가 마귀니까 건드릴 이유가 없는 겁니다. 가만히 놔두어도 망하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가만 보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지, 전도한다고 좇아다니지, 전도는 흑암 꺾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탄이 가만히 있겠어요? 여러분이 사탄 같으면 가만히 놔두겠어요? 그래서 악한 사탄이 속이는데 그리스도만 빼버리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도록 합니다. 착하게 살도록 하고 굉장히 많은 헌신을 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빼버리고 종교생활 하도록 속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사탄과는 상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굉장한 헌신을 교회에서 한다 할지라도 사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미안하지만 사탄과는 상관 없습니다. 사탄은 예수 이름만으로 꺾어집니다. 사탄이 가장 기뻐하는 것, 가장 즐거워하는 것이 뭐냐? 그리스도 이름 빼 버리고 열심히 하는 것, 열심히 헌신하고 충성하는 이것을 사탄이 좋아하는 겁니다.
여러분, “인격이 좋아야지…”하는 그런 말을 합니다. 물론 인격이 좋아야합니다. 그런데 인격 좋은 것과 믿음이 좋은 것은 별개입니다. 우리가 착각할 수 있어요. 인격이 좋은 사람을 보고 믿음 좋다고 볼 수 있는데 아닙니다. 좀 인격이 모자란다 할지라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 가진 사람이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인격 좋은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악한 사탄이 이것을 가지고 속입니다. 악한 사탄이 어제까지는 친구로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예수를 믿으니까 사탄이 공격해 옵니다. 사탄의 공격이 우리에게는 어려움과 문제와 갈등들로 올수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서 10년, 20년 신앙생활 했는데 나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물론 축복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과연 그 사람이 제대로 응답 받고 있는 사람인가? 분명히 예수를 안 믿다가 믿으면 악한 사탄과 원수관계에 있기 때문에 사탄이 공격해 오게 되어 있어요. 초대교회 제자들이 복음 증거 하는 일을 위해 순교하기까지 제물로 드려졌잖아요. 그런 어려움도 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내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이 없다, 문제 없다, 갈등이 없다면 정말 그 사람이 응답 받고 있는가? 우리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와 어려움을 통해 우리는 망하고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과 문제가 없다는 것은 사탄이 그 사람을 볼 때 별 건드릴 가치가 없기 때문에 가만 놔두는 겁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문제나 어려움이 많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 사탄이 그런 존재로 우리를 봤어요. 가만히 놔두면 안 되겠다. 그러니까 어려움과 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못 누리도록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정말 깨달으면 어려움이 없다, 문제가 크면 클수록 이 짜식이 나를 알아보는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탄이 알아보고 건드리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 가지고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겁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영적 싸움에서 기억하실 것은 이미 사탄의 권세는 꺾였습니다. 이긴 싸움을 싸우는 겁니다. 게임은 이미 끝난 겁니다. 세상 싸움은 내가 열심히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싸워야 되고 힘을 다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러나 정말 복음 안에서 영적 싸움은 힘을 다해 열심을 다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게임 끝난 사실을 알고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에 확신 가지는 것이 영적 싸움입니다. 세상 싸움은 싸우면 싸울수록 힘들고 피곤하고 지칩니다. 왜냐? 경쟁사회 속에서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하니까요. 반드시 패배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 싸움은 싸울수록 내가 살게 되고 다른 사람도 살게 되고 힘을 얻게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누림'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싸움과 영적인 싸움은 분명히 다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사탄의 세력을 결박하고 꺾으셨고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리스도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이미 우리에게 권세를 주신 겁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영적인 싸움입니다.

1) 사탄과의 싸움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눈을 부라리고 사탄아 물러갈지어다 하는 것이 사탄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번 주간에 박지온 원로 목사님께서 전도신학원에서 특강을 하셨습니다. 사탄 결박될지어다! 하고 고함 안 지른다고 할지라도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저절로 사탄이 알아서 도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날 악한 사탄을 추방시키기 위해 얼마나 목이 쉬게 했습니까? 기도도 쌔게 하고 목도 쉬고 영빨, 영권 가진다고 막 몸부림 쳤잖아요.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 앞에서 기선을 제압해야 되니까 큰 소리로 찬송하고 그랬잖아요. 그런다고 해서 귀신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영적인 싸움은 뭔가 하면, 사탄과의 싸움에서 완전 승리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이미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내 안에 계심을 아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미 사탄의 권세는 꺾어졌다는 것을 아는 것, 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신분과 권세를 주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게 영적인 싸움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장 12절)'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이것을 아는 것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2) 자신과의 싸움
두 번째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어떤 면에서 한국의 교회는 정체 될 뿐만 아니라 완전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그리스도)이 완전히 땅에 짓밟혀 지고 있습니다. 교회에 일어나는 일들 중에 조금만 잘못되는 일이 있으면 금방 신문에 나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너무 힘 없이 지금 현장에서 기독교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이 복음됨을 놓쳐 버리고 그리스도가 땅에 짓밟힌 이유, 교회가 교회의 명예를 놓쳐버린 이유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가장 주범은 '나' 에게 있습니다. 이제까지 복음 모르고 열심히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장에 복음이 오해되게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정말 복음의 가장 걸림돌이 있다면 '나' 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나름대로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데 정말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면 복음에 보탬이 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전부 복음에 역행하는 것 밖에는 내게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지난 주간에 저 자신의 모습이 보이면서 하나님이 나를 쓰실 때 얼마나 답답해하실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기에 복음 속에서도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나를 보면서 쓰신다고 부르기는 했는데 참 답답한 놈이구나! 이렇게 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이 오히려 복음에 역행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내 자신을 살펴보면 전혀 복음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복음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왜냐? 우리는 복음 이라고 하지만 내 욕심, 내 기준, 내 생각, 내 고집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것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복음과는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다면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삶을 온전히 맡기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맡겼다가도 우리는 금방 금방 되찾습니다. 그래서 염려하고 대책세우고 그럽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기도가 어떤 기도입니까? 내 계획과 내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기도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응답 안 해주면 금식하겠습니다. 그래서 금식하고 내 생각 내 고집들, 내 뜻과 내 계획들, 내 기준을 버리지 못하고 내게 있는 것에 하나님을 끌어들여서 이것을 관철 시키려고 그래서 며칠씩 금식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또 우리의 고집과 생각들이 물론 좋은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고집과 생각들이 복음은 아니잖아요. 어떤 면에서 우리의 고집과 생각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우리도 모르게 가졌던 종교적인 체질들, 율법적인 부분들, 불신앙의 부분들이 우리 안에 가득 있어요. 이것이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고 있고 우리의 고집으로 남아 있어요. 여러분, 정말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래적으로 율법적인 율법주의입니다. 모든 삶이 사실은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대로 우리에게 자리 잡혀 있어요. 종교적인 부분들, 그리고 우리의 어떤 상처들, 그러니까 우리의 고집과 생각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가장 큰 것은 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기준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가장 큰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내 고집과 내 생각들을 내려놓으면 망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닙니다. 내 고집, 내 생각, 내 기준들을 내려놓을 그 때 하나님이 내 생각 속에 응답을 주십니다. 그걸 가지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비전이라고 합니다. 그 비전을 붙잡았는데 이상하게 지난 날에는 그렇게 해결해 볼려고 몸부림 쳤던 육신적인 부분들도 이상하게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나갔는데 육신적인 부분들도 해결되어 있어요. 이게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내가 내 계획을 이루려고 했는데 안 되던 것이 내가 하나님의 계획을 나의 비전으로 붙잡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내 육신적인 부분은 이미 해결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빨리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3) 세상과의 싸움
세 번째로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세상은 지금 흑암에 덮여 있습니다. 세상 풍속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의 싸움은 세상을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또 세상을 부러워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 세상과의 싸움은 세상에 동화 되라는 말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 속에 우리가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겁니다. 왜냐?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을 이기는 비밀입니다. 분명히 세상의 법을 우리는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야 합니다. 왜냐?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 살 수가 없어요. 경건주의자들, 수도원운동 하는 자들이 속세를 떠난 것처럼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어요. 우리는 세상을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 세상을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찬양대가 찬양한 것처럼 가서 제자 삼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세상 속에 들어가서 그 세상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세상 속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는 곳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모든 걸음마다 장소마다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생활 하는 분들이 밥 벌어 먹기 위해 일을 한다면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 직장생활 그곳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에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관계에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 중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최고의 계획은 전도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비로소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방향 맞는 삶이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분명히 하나님의 권능으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받는 것은 목을 쉬게 하고 기도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방향 맞는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은 우리 은사를 자랑하라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라고 주신 것도 아닙니다. 왜 주시느냐?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면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언제 나타나는가? 우리가 이제까지 하나님의 능력과 상관없이 내 수준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이후로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붙잡으시고 지역과 민족과 세계와 후대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11월 27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의 권능이 언제 나타나는가?(마28:18-20)


서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처음부터 주신 약속이 세계복음화입니다(창1:27-28, 12:1-3, 마28:18-20, 행1:8). 그런데 우리가 우리 수준대로 산다면 세계복음화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밥 먹고 살기 바쁘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며, 일평생 염려하고 근심하는 게 우리 수준입니다. 하나님의 권능, 예수님의 권능이 우리에게 나타나야 현장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언제 나타납니까?

1. 먼저, 하나님이 역사할 만한 언약적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언약을 보십니다.
1) 야곱: 비열하고 사기꾼 기질이 있는 야곱을 끝까지 추적하셔서 축복하심. 야곱 안에 있는 언약과 그가 영적인 복을 사모하는 것(장자권에 대한 욕심)을 보심. 이스라엘의 복을 주시고 세계를 정복하게 하심.
2) 베드로: 무식하고 다혈질이며 비뚤어지고 이상한 짓만 하던 베드로.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며 저주까지 하던 베드로를 예수님은 끝까지 따라가서 축복하심. 베드로 중심에 마16:16의 언약이 있었기 때문임.
(2) 언약 되신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내가 누군지, 세상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참 기준).

2. 성경의 7가지 언약 핵심을 명심하라(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
(1) 7가지 언약 핵심
1)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창1:27-28).
2)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 인간이 하나님께 불신앙하였습니다(창3:1-6 언약 깨어짐).
3) 그 결과 인생에 실패와 고통과 어려움이 계속되게 되었습니다.
4) 이 땅에서 육신적인 삶을 살고, 본향(천국 또는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5)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6)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습니다(복음).
7) 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 인간의 영적문제(창3장 문제)가 해결되며, 영적소속이 바뀝니다.
(2)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권능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임하게 됩니다.

3. 이때부터 세 가지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영적싸움).
(1) 사탄과의 싸움 - 목이 쉬도록 기도한다고 사탄이 떠나가는 것 아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내게 주어졌으며, 그 이름으로 이미 사탄의 권세가 꺾였다는 사실을 알라.
(2) 자신과의 싸움 - 나 때문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명예가 땅에 짓밟혔음. 복음에 역행하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 내 뜻과 계획, 내 고집, 내 생각, 불신앙, 상처 등을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을 나의 비전으로 붙잡으라.
(3) 세상과의 싸움 - 세상을 무시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동화되지도 말고, 성령의 인도 받아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살리는 증인이 되라.



결론: “하나님의 권능이 언제 나타나는가?” 우리가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능력과 상관없이 내 수준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이후로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붙잡으시고, 지역과 민족과 세계와 후대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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