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2011-12-0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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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누가복음 11장 5~13절)
5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5~13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이 한번 뿐인 생애 가운데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에 우리를 쓰시기 위해 부르신 축복된 은혜를 생각게 하는 귀한 은혜로운 찬양을 주신 하나님과 찬양대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목은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여러분, 기도 잘 되고 있습니까? 기도가 누려지고 있습니까? 많은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과 숙제가 있다면, 기도가 안 되어진다는 것이고 기도 하려고는 몸부림은 치지만 기도가 안되는 것을 누구나 쉽게 이야기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도가 안되고 있고 기도가 어렵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에게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축복하셨는데,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 하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에게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축복을 주셨고 또한,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늘보좌의 축복을 누릴 열쇠 곧 기도응답의 중요한 열쇠를 주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곧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 맞다면, 당연히 응답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다른 것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만 기도만큼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사실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9절에 보면, 주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오늘 본문에도 11장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그 시대에는 요한이 기도를 가르쳤나봅니다. 그러면서 2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주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기도가 잘 안되느냐?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누구나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위해 이 방법과 저 방법도 사용해보는 등 많은 애씀과 몸부림이 있습니다만, 무엇 때문에 기도가 안되는가? 여러분,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닌, 기도가 되어지는 비밀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언약 붙잡고 언약 속에 들어가면 기도는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특별히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친히 기도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러 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은 기도하고 있으라는 의미죠. 예수님이 기도 후에 제자들을 보러 오셨을 때는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내일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 “깨어있으라” 하셨는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잠을 잘 상황이 아닙니다. 이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이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한 시라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마음으로는 원하는데 육신으로는 안되는구나”(마태복음26:41) 어떤 면에서 우리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다 기도하기를 원합니다만, 실제로 육신적으로는 기도가 안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기도가 잘 안되어지고 기도에 실패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특별히 시간을 정해놓고 정시기도 하는 등의 기도가 되어지는 응답의 역사를 누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고 성령인도를 받기 우해 몸부림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당연히 기도가 되어졌습니다. 기도가 되어짐과 함께 현장에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가 언약 안에 있지 못하면,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내 의와 내 열심과 내 방법으로 기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내 열심으로 기도는 할 수 있으나 한계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약 안에 있지 않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음으로 내 열심과 내 방법으로 기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계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하고자 하는 마음들은 있지만, 기도가 안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속의 제자들의 모습은 언약 안으로 들어감으로 삶 자체가 기도임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언약 안에 들어가니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니 기도가 되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방법이나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기도가 누림이 되어지고 안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라고 합니다. 호흡을 거칠게 하면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뜻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호흡을 평안한 가운데 하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여러분에게 기도가 평안해 지며 되어지는 축복의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언약 안에 들어갈 때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되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언약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는 사실 가운데서 되어지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기도에 대한 응답들을 누릴 수 있느냐? 크게 두 가지로 말씀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도 이전에 기도의 중요한 원리
먼저 첫 번째입니다. 기도 이전에 중요한 것은 기도 응답받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이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기도의 원리를 가져야 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 바람직해야 합니다.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고 보는 것에 따라 ‘판단’과 ‘결정’과 ‘선택’과 ‘해석’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판단과 해석이 달라짐에 따라 바른 기도제목이 나오고 바른 기도제목이 나와야 바른 응답을 받고 바른 응답을 받아야 바른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흑암이 꺾여지며 참된 제자들이 세워지고 전도가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삶인데, 이러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바른 응답을 받아야 바른 삶이 나타나게 되고 바른 삶을 위해서는 바른 기도제목이 잡혀져야 하며, 바른 기도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바르게 해석하고, 판단하며, 선택해야 바른 기도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른 선택과 판단이 어디에서 비롯되느냐는 무엇을 보느냐에 결정됩니다. 나의 관심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응답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바른 생각’입니다. 많은 경우 생각이 달라요. 바른 응답을 받을 수 없는 생각들로 붙잡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원죄 아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른 응답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른 관점을 가지고 문제를 봐야 그 문제에 대한 바른 해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 만약 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모든 것이 먹는 것으로 보입니다. 돈에 관심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는가 그 중심으로 보게 됩니다. 관심 있는 것에 따라 보여지게 되는 것이고 보여지는 것에 따라 선택하고 판단하고 해석하며 바른 제목들을 잡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의 기도를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의 주가 무엇인가?”, “주로 어떤 기도가 우리의 주를 차지하고 있는가?” 가만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 우리의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하면 육신적인 기도가 주를 이룹니다. 기도하는 많은 제목 중에 문제해결과 소원성취를 위한 육신적인 기도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는 점쟁이들도 하는 기도입니다. 일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도 하는 기도입니다. 모든 인간이 하는 기도가 육신적인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를 합ㅢ 니다.
그런데 그 문제 속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만 기도한다면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관심과 뜻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수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경제의 문제, 자녀의 문제 등 다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문제의 출처가 달라요. 겉으로는 문제가 같아 보여도 출처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이냐?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문제의 출처는 죄와 사탄이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의 문제의 출처는 죄와 사탄의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하나님이 문제의 출처입니다. 그러면 그 문제 속에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과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과 계획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주의 사자를 동원하셔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신 사실을 봅니다. 우리 대부분의 기도는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백이면 백 그렇게 기도합니다. “절대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게 되면 사자굴 속에 준비된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자굴 속에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심으로 그 일이 증인으로 서기를 원하시는데 그 응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우리 같으면 “풀무불 가운데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소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풀무불 속에 들어갔는데, 그 속에서 머리카락 하나도 거슬리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증인된 것 아닙니까? 대부분 우리의 기도는 무턱대고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의 기도와 같은 기도입니다. 문제 속에 그 문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와 사탄의 문제가 해결 된 자이기에 문제의 출처는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 속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집회 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습니다만 그런데 총리 된 것이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요셉의 걸음 속에는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음으로 노예로 들어가고, 누명을 씀으로 감옥 속으로까지도 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예와 감옥에 간 것 이 모든 것이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엄청난 어려움들을 당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중요한 고백들을 했던 내용이 있는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 이것도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의 고백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왕이 될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 다윗에게 본격적으로 문제가 오게 된 것입니다. 그 어려움이 어떤 어려움입니까?
여러분, 어느 장인이 사위를 죽이기 위해 눈이 뒤집혀서 쫓아 다닙니까?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을 죽이기 위한 추격을 합니다. 어떤 면에서 가만히 있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본격적으로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고 나서는 비로소 어려움과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생애 2/3이상이 어려움 속에서 결국 승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에게 있었던 그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들이 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문제 생기면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말은 잘 하지만, 어느 날 보면 하나님의 주권이 온데간데 없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러십니까? 제게 원한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렇게 나옵니다. 그 문제가 축복이고 응답인데 말입니다. 문제 속의 숨겨둔 하나님의 응답을 찾지 못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중요한 복음이 복음 되도록 드러났을 때가 언제입니까? 가장 문제가 있었던 그때 복음이 드러났습니다. 창세기 3장의 하나님을 떠남으로 모든 인류가 원죄 가운데 빠졌을 때, 그 원죄를 해결할 답을 주셨는데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탄의 세력을 깨트려버릴 것을 말씀하시고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또 복음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생활 하는 가운데 소망도, 가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려니하며 안주하며 살아야 했었습니다. 한두 해도 아닌 400년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일제에 37년 치하에 있었는데도 여전히 그 잔재들이 남아 있는데, 하물며 노예로써 400년입니다. 말이 노예이죠. 주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짐승처럼 400년간 산 것입니다. 완전한 저주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장 18절에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희생제사의 복음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포로되었습니다. 거기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 속국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복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문제의 출처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우리는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그 응답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하며 문제 속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악한 사탄이 믿는 자에게 문제를 주는데 속이기 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이 모두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시험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함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창세기 22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했습니다. 네 사랑하는 네 독자, 네 아들을 내게 번제로 드리라. 그것은 아브라함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제대로 된 응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22장 17-19절에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고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게 될 것이다" 원수 사탄의 세력을 깨뜨려 버린다는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왕들이 나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서 입니까? 그 문제를 통과하고 나니까 주신 것입니다. 문제를 당했다면, 아!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내게 주실 것인가! 기대를 하시고 그 문제 속에서 응답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인간관계가 있습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내야 됩니다. 교회에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를 가만히 보면 각자가 앉는 자리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혹시 새로 오신 분이나, 교회 생활이 얼마 안 된 분이 빈자리에 앉으려고 하면 꼭 자기 자리를 사수합니다. 안으로 좀 들어가 주세요 하면 본 척도 안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뭐 이래 하는 마음도 생길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런 것부터 우리가 속습니다. 그런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과 응답을 찾아내라고 주신 겁니다. 성경을 보고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성경을 잘못보고 있는 것이고 이 문제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신학자 중에 일반인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낸 C.S.루이스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 내용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축복은 어려움과 문제를 가장해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문제 앞에 속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바른 기도제목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다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도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정말 바른 기도제목을 잡아야 바른 응답이 나옵니다. 바른 응답을 받아야 우리 삶에 전도가 되어지고 선교, 흑암이 꺾이고 후대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 있어요.
이 바른 기도제목이 바른 생각 속에서 주어집니다. 바른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느냐?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는 내 인생의 분명한 답과 결론이 내려지게 될 때 거기서 바른 생각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인생의 삶의 방향과 목적과 우선순위가 바르게 잡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나를 바르게 볼 수 있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답이 뭐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않고는 절대 나를 못 봅니다. 나를 알 수가 없어요.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그리스도를 깨닫는 만큼만 세상을 볼 수 있고 나를 알 수가 있어요.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는 사실에 분명한 내 인생의 해답이 나오고 결론이 내려질 때, 그때부터 바른 생각이 나오고 그 속에서 바른 판단과 바른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는 결론을 가지면 판단 자체가 육신적인 판단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결국 아브라함을 복 주시기 위해 롯과 띄워 놓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 네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해라" 하고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때 조카 롯이 눈에 언뜻 보기에 좋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했습니다. 육신적으로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택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소돔 고모라가 멸망 받기 직전이었는데 여호와의 동산 같았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풍성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롯은 한 가지 볼 것을 못 봤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 악하고 큰 죄인이었더라" 이 사실을 못 본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다 양보하고 창세기 13장 18절에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눈에 보기에 좋은, 육신적인 좋은 땅을 선택한 롯은 결국 전쟁이 나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러나 언약 잡고 단을 쌓았던 아브라함은 결국 가병 318명을 이끌고 가서 포로로 있던 롯을 구출해 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떤 것이냐?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라는 분명한 해답과 결론을 가지고 있으면 육신적인 판단을 하라고 해도 안 하게 되어 있어요. 이 뿌리가 안 내려지니까 육신적 판단, 육신적 선택을 합니다. 결국 망할 것인데 그것을 못 보는 겁니다.
바른 판단과 바른 선택을 하게 되면 지금 우리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는 매일 내 놓으라는 기도 아닙니까? 바른 판단 속에 들어가면 매일 내 놓으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를 한 시대에 복음 전하기 위해 부르신 사실에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정말 그리스도 알고 나니까 하나님 억만 죄악 가운데 있는 나를 건지시고 부족하고 미련하지만 나를 들어서 하나님이 세계복음화 하시겠다는데 이 일에 쓰임 받도록 나를 불러주신 것 감사합니다. 내가 가는 걸음에 흑암이 꺾이고 저주와 재앙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 후대들이 살아나게 하시고.." 이런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결론이 내려지면 이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하는 기도도 “자녀들이 잘 되고 성공하게 하시고…”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성공자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우리의 자녀들이 그들을 살리는 성공자가 되게 하시고 복음 하나 몰라 무너지는 훌륭한 사람들을 살리는 슈퍼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가 달라진다니까요. 그래서 바른 생각들, 이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답이 내려지는 만큼 그 속에서 바른 생각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강단을 통해서 날마다 그리스도가 전부라는 사실을 듣는 것이 축복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응답이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고 몸부림 치며 살아도 선택, 판단 잘 못하면 그것 때문에 실패하게 되고 나중에 오판 했다고 깨닫게 됩니다. 잠언서 4:12, 16:25 에 보면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졌다는 것은 한 시대에 가장 축복받은 자리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사실을 깨달으면 됩니다. 여기에 대한 믿음 가지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두 번째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언약기도를 해야 합니다. 육신의 기도가 있고, 종교기도가 있고, 율법적인 기도가 있고, 신비주의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기도하면 종교적인 응답을 받습니다. 율법적인 기도하면 율법적인 응답을 받아요.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과학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신비주의적인 기도를 하면 신비주의적인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세계복음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언약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고 그 언약 기도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계복음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자가 어디 있으며 알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자가 어디 있느냐? 하고 말씀했죠. 다른 성경(마태복음 7장)에는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줄자가 어디 있느냐? 아버지가 아들이 달라는 것을 줍니다. 아들이 생선을 달라했는데 뱀을 줄자가 어디 있습니까? 누가복음 11장 13절 같이 읽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다른 성경(마태복음 7장)은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에는 좋은 것이 뭐냐?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약적인 기도라고 할 때 그 기도는 어떤 기도냐?
성령께서 역사하고 성령의 인도받는 기도가 언약적인 기도입니다. 종교적인 기도는 성령께서 절대 역사하지 않습니다. 율법적인 기도에는 절대 역사하지 않습니다. 언약적인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적인 기도가 뭐냐? 마태복음 6장 9-13절에 주님 가르치신 기도가 나옵니다. 주기도문에 육신적인 기도가 한 가지 있는데,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그것만 나오고 달라는 기도는 없습니다. 주기도문의 핵심이 뭐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이 주기도문 속에 있는 언약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 이 일을 놓고 기도했는데 육신적인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언약의 기도는 놓쳐버리고 육신적인 것,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태복음 6장 25-32절에 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너희 천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임을 안다고 했습니다. 주신다는 겁니다. 영적인 기도, 언약 기도를 하게 될 때 하나님은 필요한 우리 육신의 모든 것들도 채우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기도해서 육신의 응답 받는 것보다 영적인, 언약기도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보너스로 채워주시는 축복을 누려야 될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신분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무턱대고 달라는 기도는 믿는 사람이 할 기도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1-14절에 보면 초대교회인 마가다락방 교회가 무엇을 달라고 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그 이름으로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부활하신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그 권능으로 세계복음화를 하게 하옵소서. 이 사실을 붙잡은 초대교회 그 결과로 하나님이 세계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밥 먹고 살기 위해 교회 다닌다면 교회 다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예를 얻고 권세를 누리기 위해 신앙생활 한다면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노력하면 되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또 어떤 면에서 불신자들이 하는 것처럼 귀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시대를 살려야 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언약적인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 속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한 시대 살리는 귀중한 응답을 주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우리 남편이 직장에서 승진하고 잘 되고, 내가 열심히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더니 우리 자녀가 1등을 하고…” 그런 간증들은 다른 종교 생활 하는 사람들이나 불교신자들이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응답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그리스도의 약속을 붙잡고 그 비밀을 누리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내 직장의 문화가 바뀌어 지고, 나를 만나는 사람이 인생의 답을 얻게 되고 저주가운데 있던 삶이 복음을 만남으로 저주에서 빠져 나오는, 이것이 참된 응된 응답인 것입니다. 이 응답이 하나님의 자녀인 언약 붙잡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기도응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자들도 하는 기도이고, 종교인들도 하는 기도입니다. 내 현장에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현장이 살아나고 후대가 살아나고 또 문화가 바뀌는 이 땅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응답을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 붙잡고 기도할 때 주어지는, 참된 응답입니다.
여러분, 불신자들의 기도응답, 종교인들의 기도응답, 또 우상숭배자들의 기도가 응답이 됩니다. 응답 안 되면 안 할 것인데 응답이 됩니다. 우리교회의 어떤 분은 예수 믿기 전에 팔공산 에 가서 부처에게 열심히 빌어서 남자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심방을 갔더니 "목사님 저 아이가 부처 앞에 빌어서 낳은 아입니다." 지금 그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니까 예수를 믿고 복음 안에 들어와 신앙생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 응답 받습니다. 그러니까 못 빠져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응답이냐? 아닙니다. 망하는 응답입니다. 불신자들, 특별히 우상숭배자거나 종교지도자들 보면 능력도 기적도 행합니다. 엄청난 증거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증거가 다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확실한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 받은 것이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12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증거는 뭐냐? 내가 아들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 이것이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영적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인 상태가 바뀌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영적인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증거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불신자들, 종교지도자들,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열심히 기도해서 응답 받습니다. 응답 받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게 망하는 응답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모르는데 일이 잘 된다?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는데 사업이 잘된다? 착각하지 마세요. 사업이 잘 되는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응답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화를 당하게 되어 있고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류광수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돈 빌려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 반드시 실패할 것이니까요. 그런데 예배에 성공안되고 잘 된다? 잘 되는게 아닙니다. 결국 무너지고 망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아야 하는데 악한 사탄은 기도한대로 즉각적인 응답을 줍니다. 나중에 망해서 문제지, 기도한대로 응답됩니다. 그래서 기도는 과학입니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하는대로 응답 주시는 것도 있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빨리 안 주시고 기다려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릇을 준비하고 갱신시키는 작업을 하십니다. 또 전혀 기도응답 안할 때도 있습니다. 응답 안 하는 그 자체가 응답입니다. 또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다른 것으로 기도응답을 주실 때가 있어요. 왜냐?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현장을 아시고 우리를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따라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했는데 기도한 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가지고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불신자는 기도한대로 응답 받아서 그래서 망하지만, 우리는 응답 받는 것도 있지만 안 하시는 것도 있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고,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도 있어요. 그 전체가 비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누가 주는 응답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아야 되는데 먼저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자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느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만이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이 내 안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이름이 어떻게 내 안에 오느냐? 내가 오라고 영접하게 될 때 내 안에 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모신 자가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게 되어 있어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복음 16장 24절)"
여러분, 안 믿는 자도 예수 이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도 예수 이름 말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응답 안 옵니다. 역사 안 일어납니다. 예수 이름을 가진 자만이 응답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유대인 가운데 마술을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귀신들린 사람이 네가 누구냐? 내가 예수 이름도 알고 바울 이름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 오히려 귀신들린 사람이 그들을 덮쳐서 벗은 몸으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모르는 불신자도 예수 이름 사용할 수 있어요. 그것은 가짜입니다. 정말 그리스도 영접하고 내 안에 있는 사람,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에게 응답 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만 내 뜻과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모든 관계된 현장에 역사하시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흑암 세력 꺾으시고 하늘군대 동원하시고 그 속에서 현장을 바꿔가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응답과 함께 결국 나중에 예수이름 붙잡고 있는 결과로 여러분을 하나님이 만방에 높이 그리스도 이름을 드러낼 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영적인 정상에 여러분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나가는 우리 후대들을 최고 정상의 자리에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시고 분명히 예수 이름 모르는 자들은 가면 갈수록 망하게 되어 있어요. 예수 이름 아는 자들은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그의 이름을 높이게 되어 있어요. 왜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될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과학이라는 말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하늘 군대가 동원되는 것이고 거기에 흑암이 꺾이는데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파도같이 내게 둘러섰던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과 더불어 현장이, 사람이 변화되는 응답이 일어나게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번 받아 합시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정확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정확하시고 사탄도 정확합니다. 정말 영적인 과학, 기도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여러분, 천만 다행이죠. 우리가 이 사실을 몰라서 생판 고생하며 살아야 되는데 제대로 기도할 수 있는 비밀을 알았다는 것은 큰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이 기도의 비밀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한 시대의 현장 살리는 전도자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12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눅11:5-13)
서론: 기도가 누려지고 있습니까? 많은 신앙인들의 고민이 기도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도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가 잘 안되고 어렵다면 이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기도에 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마16:16-20, 6:1-13, 눅11:1-13). 기도가 잘 되는 비밀이 있습니다. 만약 내 의와 열심을 가지고, 나의 방법대로 기도하면, 응답이 올지라도 결국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 안으로 들어가면 성령이 역사하시기에 기도는 절로 됩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가 되어지는 응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1. 기도 이전에 기도의 중요한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1)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1) 생각에 따라 보는 게 달라지며, 보는 것에 따라서 판단과 선택과 해석이 달라짐. 판단과 해석에 따라 바른 기도제목이 나옴. 바른 기도제목이 나와야 바른 응답을 받음. 바른 응답을 받아야 우리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남.
2) 그러나 창세기 3장 원죄 속에는 바른 생각을 가질 수조차 없음
(2) 문제를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1) 어떤 기도를 주로 하는 지 살펴보라(육신적인 기도-문제 해결, 소원 성취).
2) 성도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옴(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숨겨져 있음)
3) 가장 문제 있을 때마다 복음으로 답을 주셨음(창3:15, 출3:18, 사7:14, 마16:16)
(3) 이 때 기도가 달라집니다.
2.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1) 육신·종교·율법·신비주의적인 기도는 기도한 대로 응답이 오나, 결국 망하게 됩니다(틀린 기도).
(2) 그러나 우리는 언약기도를 해야 합니다(바른 기도).
1)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성령의 인도 받는 기도임(눅11:13)
2)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임(주기도문)
3)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를 두고 하는 기도(마6:33 그의 나라와 그의 의)
(3)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1) 사탄은 불신자가 기도한대로 응답함
2) 하나님은 기도한대로 응답하시거나, 기다리게 한 후에 응답하시거나,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심
3) 현장과 후대가 살아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응답 옴
(4) 먼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자격자가 되십시오(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 소유. 요16:24).
(5) 내 뜻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결론: 기도는 영적인 과학입니다. 기도는 정확합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시고, 사탄도 정확합니다. 영적인 과학인 기도를 누리시고, 한 시대 현장 살리는 전도자의 삶을 사십시오.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누가복음 11장 5~13절)
5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5~13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이 한번 뿐인 생애 가운데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에 우리를 쓰시기 위해 부르신 축복된 은혜를 생각게 하는 귀한 은혜로운 찬양을 주신 하나님과 찬양대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목은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여러분, 기도 잘 되고 있습니까? 기도가 누려지고 있습니까? 많은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과 숙제가 있다면, 기도가 안 되어진다는 것이고 기도 하려고는 몸부림은 치지만 기도가 안되는 것을 누구나 쉽게 이야기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기도가 안되고 있고 기도가 어렵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에게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축복하셨는데,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라 하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우리에게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축복을 주셨고 또한,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늘보좌의 축복을 누릴 열쇠 곧 기도응답의 중요한 열쇠를 주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곧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 맞다면, 당연히 응답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다른 것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만 기도만큼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사실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9절에 보면, 주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오늘 본문에도 11장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그 시대에는 요한이 기도를 가르쳤나봅니다. 그러면서 2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주님이 가르치신 주기도문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기도가 잘 안되느냐?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누구나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위해 이 방법과 저 방법도 사용해보는 등 많은 애씀과 몸부림이 있습니다만, 무엇 때문에 기도가 안되는가? 여러분,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닌, 기도가 되어지는 비밀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언약 붙잡고 언약 속에 들어가면 기도는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특별히 마태복음 26장에서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친히 기도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셔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러 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은 기도하고 있으라는 의미죠. 예수님이 기도 후에 제자들을 보러 오셨을 때는 제자들이 자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내일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 “깨어있으라” 하셨는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잠을 잘 상황이 아닙니다. 이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이 “너희가 시험에 들지 않게 한 시라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마음으로는 원하는데 육신으로는 안되는구나”(마태복음26:41) 어떤 면에서 우리의 모습입니다. 누구나 다 기도하기를 원합니다만, 실제로 육신적으로는 기도가 안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복음서에 보면 제자들이 기도가 잘 안되어지고 기도에 실패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특별히 시간을 정해놓고 정시기도 하는 등의 기도가 되어지는 응답의 역사를 누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도하고 성령인도를 받기 우해 몸부림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당연히 기도가 되어졌습니다. 기도가 되어짐과 함께 현장에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가 언약 안에 있지 못하면,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내 의와 내 열심과 내 방법으로 기도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내 열심으로 기도는 할 수 있으나 한계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약 안에 있지 않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음으로 내 열심과 내 방법으로 기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계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하고자 하는 마음들은 있지만, 기도가 안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속의 제자들의 모습은 언약 안으로 들어감으로 삶 자체가 기도임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언약 안에 들어가니 성령이 역사하시고 성령이 역사하시니 기도가 되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방법이나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기도가 누림이 되어지고 안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라고 합니다. 호흡을 거칠게 하면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뜻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호흡을 평안한 가운데 하게 됩니다. 그런 것처럼 여러분에게 기도가 평안해 지며 되어지는 축복의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언약 안에 들어갈 때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되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언약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는 사실 가운데서 되어지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기도에 대한 응답들을 누릴 수 있느냐? 크게 두 가지로 말씀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도 이전에 기도의 중요한 원리
먼저 첫 번째입니다. 기도 이전에 중요한 것은 기도 응답받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이 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기도의 원리를 가져야 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 바람직해야 합니다.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고 보는 것에 따라 ‘판단’과 ‘결정’과 ‘선택’과 ‘해석’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판단과 해석이 달라짐에 따라 바른 기도제목이 나오고 바른 기도제목이 나와야 바른 응답을 받고 바른 응답을 받아야 바른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흑암이 꺾여지며 참된 제자들이 세워지고 전도가 되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삶인데, 이러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바른 응답을 받아야 바른 삶이 나타나게 되고 바른 삶을 위해서는 바른 기도제목이 잡혀져야 하며, 바른 기도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바르게 해석하고, 판단하며, 선택해야 바른 기도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른 선택과 판단이 어디에서 비롯되느냐는 무엇을 보느냐에 결정됩니다. 나의 관심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응답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바른 생각’입니다. 많은 경우 생각이 달라요. 바른 응답을 받을 수 없는 생각들로 붙잡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원죄 아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른 응답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바른 관점을 가지고 문제를 봐야 그 문제에 대한 바른 해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 만약 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모든 것이 먹는 것으로 보입니다. 돈에 관심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는가 그 중심으로 보게 됩니다. 관심 있는 것에 따라 보여지게 되는 것이고 보여지는 것에 따라 선택하고 판단하고 해석하며 바른 제목들을 잡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의 기도를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의 주가 무엇인가?”, “주로 어떤 기도가 우리의 주를 차지하고 있는가?” 가만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 우리의 소원 성취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한 마디로 말하면 육신적인 기도가 주를 이룹니다. 기도하는 많은 제목 중에 문제해결과 소원성취를 위한 육신적인 기도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는 점쟁이들도 하는 기도입니다. 일반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도 하는 기도입니다. 모든 인간이 하는 기도가 육신적인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를 합ㅢ 니다.
그런데 그 문제 속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만 기도한다면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관심과 뜻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수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경제의 문제, 자녀의 문제 등 다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문제의 출처가 달라요. 겉으로는 문제가 같아 보여도 출처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이냐?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문제의 출처는 죄와 사탄이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저와 여러분의 문제의 출처는 죄와 사탄의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하나님이 문제의 출처입니다. 그러면 그 문제 속에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과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턱대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과 계획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 주의 사자를 동원하셔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신 사실을 봅니다. 우리 대부분의 기도는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백이면 백 그렇게 기도합니다. “절대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게 되면 사자굴 속에 준비된 하나님의 역사와 계획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자굴 속에서 사자들의 입을 봉하심으로 그 일이 증인으로 서기를 원하시는데 그 응답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우리 같으면 “풀무불 가운데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소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풀무불 속에 들어갔는데, 그 속에서 머리카락 하나도 거슬리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증인된 것 아닙니까? 대부분 우리의 기도는 무턱대고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의 기도와 같은 기도입니다. 문제 속에 그 문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와 사탄의 문제가 해결 된 자이기에 문제의 출처는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 속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집회 때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총리가 되었습니다만 그런데 총리 된 것이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요셉의 걸음 속에는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음으로 노예로 들어가고, 누명을 씀으로 감옥 속으로까지도 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총리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예와 감옥에 간 것 이 모든 것이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엄청난 어려움들을 당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중요한 고백들을 했던 내용이 있는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 이것도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의 고백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음으로 왕이 될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 다윗에게 본격적으로 문제가 오게 된 것입니다. 그 어려움이 어떤 어려움입니까?
여러분, 어느 장인이 사위를 죽이기 위해 눈이 뒤집혀서 쫓아 다닙니까?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을 죽이기 위한 추격을 합니다. 어떤 면에서 가만히 있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본격적으로 머리에 기름 부음을 받고 나서는 비로소 어려움과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생애 2/3이상이 어려움 속에서 결국 승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에게 있었던 그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들이 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문제 생기면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말은 잘 하지만, 어느 날 보면 하나님의 주권이 온데간데 없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러십니까? 제게 원한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렇게 나옵니다. 그 문제가 축복이고 응답인데 말입니다. 문제 속의 숨겨둔 하나님의 응답을 찾지 못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중요한 복음이 복음 되도록 드러났을 때가 언제입니까? 가장 문제가 있었던 그때 복음이 드러났습니다. 창세기 3장의 하나님을 떠남으로 모든 인류가 원죄 가운데 빠졌을 때, 그 원죄를 해결할 답을 주셨는데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탄의 세력을 깨트려버릴 것을 말씀하시고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또 복음을 놓쳤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노예생활 하는 가운데 소망도, 가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려니하며 안주하며 살아야 했었습니다. 한두 해도 아닌 400년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일제에 37년 치하에 있었는데도 여전히 그 잔재들이 남아 있는데, 하물며 노예로써 400년입니다. 말이 노예이죠. 주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짐승처럼 400년간 산 것입니다. 완전한 저주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3장 18절에 저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희생제사의 복음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포로되었습니다. 거기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 속국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복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문제의 출처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우리는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그 응답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하며 문제 속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악한 사탄이 믿는 자에게 문제를 주는데 속이기 위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이 모두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시험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함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창세기 22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했습니다. 네 사랑하는 네 독자, 네 아들을 내게 번제로 드리라. 그것은 아브라함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제대로 된 응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22장 17-19절에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고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게 될 것이다" 원수 사탄의 세력을 깨뜨려 버린다는 사실을 말씀했습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왕들이 나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서 입니까? 그 문제를 통과하고 나니까 주신 것입니다. 문제를 당했다면, 아!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내게 주실 것인가! 기대를 하시고 그 문제 속에서 응답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인간관계가 있습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내야 됩니다. 교회에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를 가만히 보면 각자가 앉는 자리가 다 정해져 있습니다. 혹시 새로 오신 분이나, 교회 생활이 얼마 안 된 분이 빈자리에 앉으려고 하면 꼭 자기 자리를 사수합니다. 안으로 좀 들어가 주세요 하면 본 척도 안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뭐 이래 하는 마음도 생길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런 것부터 우리가 속습니다. 그런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계획과 응답을 찾아내라고 주신 겁니다. 성경을 보고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여러분이 성경을 잘못보고 있는 것이고 이 문제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여러분은 성경을 모르는 것입니다.
신학자 중에 일반인도 읽을 수 있는 책을 낸 C.S.루이스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쓴 책 내용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축복은 어려움과 문제를 가장해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문제 앞에 속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바른 기도제목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다 육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도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정말 바른 기도제목을 잡아야 바른 응답이 나옵니다. 바른 응답을 받아야 우리 삶에 전도가 되어지고 선교, 흑암이 꺾이고 후대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어 있어요.
이 바른 기도제목이 바른 생각 속에서 주어집니다. 바른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느냐?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는 내 인생의 분명한 답과 결론이 내려지게 될 때 거기서 바른 생각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인생의 삶의 방향과 목적과 우선순위가 바르게 잡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나를 바르게 볼 수 있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답이 뭐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않고는 절대 나를 못 봅니다. 나를 알 수가 없어요.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요. 그리스도를 깨닫는 만큼만 세상을 볼 수 있고 나를 알 수가 있어요.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는 사실에 분명한 내 인생의 해답이 나오고 결론이 내려질 때, 그때부터 바른 생각이 나오고 그 속에서 바른 판단과 바른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다는 결론을 가지면 판단 자체가 육신적인 판단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결국 아브라함을 복 주시기 위해 롯과 띄워 놓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 네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해라" 하고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때 조카 롯이 눈에 언뜻 보기에 좋은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했습니다. 육신적으로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택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소돔 고모라가 멸망 받기 직전이었는데 여호와의 동산 같았고 애굽 땅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풍성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롯은 한 가지 볼 것을 못 봤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 악하고 큰 죄인이었더라" 이 사실을 못 본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다 양보하고 창세기 13장 18절에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눈에 보기에 좋은, 육신적인 좋은 땅을 선택한 롯은 결국 전쟁이 나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러나 언약 잡고 단을 쌓았던 아브라함은 결국 가병 318명을 이끌고 가서 포로로 있던 롯을 구출해 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 어떤 것이냐?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라는 분명한 해답과 결론을 가지고 있으면 육신적인 판단을 하라고 해도 안 하게 되어 있어요. 이 뿌리가 안 내려지니까 육신적 판단, 육신적 선택을 합니다. 결국 망할 것인데 그것을 못 보는 겁니다.
바른 판단과 바른 선택을 하게 되면 지금 우리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는 매일 내 놓으라는 기도 아닙니까? 바른 판단 속에 들어가면 매일 내 놓으라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를 한 시대에 복음 전하기 위해 부르신 사실에 너무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정말 그리스도 알고 나니까 하나님 억만 죄악 가운데 있는 나를 건지시고 부족하고 미련하지만 나를 들어서 하나님이 세계복음화 하시겠다는데 이 일에 쓰임 받도록 나를 불러주신 것 감사합니다. 내가 가는 걸음에 흑암이 꺾이고 저주와 재앙의 세력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우리 후대들이 살아나게 하시고.." 이런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결론이 내려지면 이런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하는 기도도 “자녀들이 잘 되고 성공하게 하시고…” 그런 기도가 아닙니다. "성공자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우리의 자녀들이 그들을 살리는 성공자가 되게 하시고 복음 하나 몰라 무너지는 훌륭한 사람들을 살리는 슈퍼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기도가 달라진다니까요. 그래서 바른 생각들, 이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답이 내려지는 만큼 그 속에서 바른 생각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강단을 통해서 날마다 그리스도가 전부라는 사실을 듣는 것이 축복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응답이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고 몸부림 치며 살아도 선택, 판단 잘 못하면 그것 때문에 실패하게 되고 나중에 오판 했다고 깨닫게 됩니다. 잠언서 4:12, 16:25 에 보면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졌다는 것은 한 시대에 가장 축복받은 자리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사실을 깨달으면 됩니다. 여기에 대한 믿음 가지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두 번째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언약기도를 해야 합니다. 육신의 기도가 있고, 종교기도가 있고, 율법적인 기도가 있고, 신비주의적인 기도가 있습니다. 여러분, 종교기도하면 종교적인 응답을 받습니다. 율법적인 기도하면 율법적인 응답을 받아요.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과학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신비주의적인 기도를 하면 신비주의적인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는 세계복음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언약기도를 해야 되는 것이고 그 언약 기도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계복음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자가 어디 있으며 알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줄 자가 어디 있느냐? 하고 말씀했죠. 다른 성경(마태복음 7장)에는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줄자가 어디 있느냐? 아버지가 아들이 달라는 것을 줍니다. 아들이 생선을 달라했는데 뱀을 줄자가 어디 있습니까? 누가복음 11장 13절 같이 읽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다른 성경(마태복음 7장)은 좋은 것을 주신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에는 좋은 것이 뭐냐?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약적인 기도라고 할 때 그 기도는 어떤 기도냐?
성령께서 역사하고 성령의 인도받는 기도가 언약적인 기도입니다. 종교적인 기도는 성령께서 절대 역사하지 않습니다. 율법적인 기도에는 절대 역사하지 않습니다. 언약적인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언약적인 기도가 뭐냐? 마태복음 6장 9-13절에 주님 가르치신 기도가 나옵니다. 주기도문에 육신적인 기도가 한 가지 있는데,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그것만 나오고 달라는 기도는 없습니다. 주기도문의 핵심이 뭐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이 주기도문 속에 있는 언약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 이 일을 놓고 기도했는데 육신적인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언약의 기도는 놓쳐버리고 육신적인 것,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태복음 6장 25-32절에 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너희 천부께서는 그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임을 안다고 했습니다. 주신다는 겁니다. 영적인 기도, 언약 기도를 하게 될 때 하나님은 필요한 우리 육신의 모든 것들도 채우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기도해서 육신의 응답 받는 것보다 영적인, 언약기도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보너스로 채워주시는 축복을 누려야 될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신분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무턱대고 달라는 기도는 믿는 사람이 할 기도가 아닙니다. 사도행전 1장 1-14절에 보면 초대교회인 마가다락방 교회가 무엇을 달라고 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그 이름으로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부활하신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그 권능으로 세계복음화를 하게 하옵소서. 이 사실을 붙잡은 초대교회 그 결과로 하나님이 세계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밥 먹고 살기 위해 교회 다닌다면 교회 다닐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예를 얻고 권세를 누리기 위해 신앙생활 한다면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노력하면 되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또 어떤 면에서 불신자들이 하는 것처럼 귀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시대를 살려야 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언약적인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 속에 들어갈 때 하나님은 한 시대 살리는 귀중한 응답을 주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우리 남편이 직장에서 승진하고 잘 되고, 내가 열심히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더니 우리 자녀가 1등을 하고…” 그런 간증들은 다른 종교 생활 하는 사람들이나 불교신자들이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응답이 아닙니다. 내가 정말 그리스도의 약속을 붙잡고 그 비밀을 누리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내 직장의 문화가 바뀌어 지고, 나를 만나는 사람이 인생의 답을 얻게 되고 저주가운데 있던 삶이 복음을 만남으로 저주에서 빠져 나오는, 이것이 참된 응된 응답인 것입니다. 이 응답이 하나님의 자녀인 언약 붙잡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기도응답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신자들도 하는 기도이고, 종교인들도 하는 기도입니다. 내 현장에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현장이 살아나고 후대가 살아나고 또 문화가 바뀌는 이 땅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응답을 우리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 붙잡고 기도할 때 주어지는, 참된 응답입니다.
여러분, 불신자들의 기도응답, 종교인들의 기도응답, 또 우상숭배자들의 기도가 응답이 됩니다. 응답 안 되면 안 할 것인데 응답이 됩니다. 우리교회의 어떤 분은 예수 믿기 전에 팔공산 에 가서 부처에게 열심히 빌어서 남자 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심방을 갔더니 "목사님 저 아이가 부처 앞에 빌어서 낳은 아입니다." 지금 그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니까 예수를 믿고 복음 안에 들어와 신앙생활하는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 응답 받습니다. 그러니까 못 빠져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응답이냐? 아닙니다. 망하는 응답입니다. 불신자들, 특별히 우상숭배자거나 종교지도자들 보면 능력도 기적도 행합니다. 엄청난 증거도 나타납니다. 그런데 증거가 다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확실한 능력이 있습니다. 구원 받은 것이 증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1-12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증거는 뭐냐? 내가 아들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 이것이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영적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인 상태가 바뀌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영적인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증거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불신자들, 종교지도자들,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열심히 기도해서 응답 받습니다. 응답 받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게 망하는 응답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모르는데 일이 잘 된다?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는데 사업이 잘된다? 착각하지 마세요. 사업이 잘 되는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응답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화를 당하게 되어 있고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류광수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돈 빌려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 반드시 실패할 것이니까요. 그런데 예배에 성공안되고 잘 된다? 잘 되는게 아닙니다. 결국 무너지고 망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아야 하는데 악한 사탄은 기도한대로 즉각적인 응답을 줍니다. 나중에 망해서 문제지, 기도한대로 응답됩니다. 그래서 기도는 과학입니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하는대로 응답 주시는 것도 있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빨리 안 주시고 기다려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릇을 준비하고 갱신시키는 작업을 하십니다. 또 전혀 기도응답 안할 때도 있습니다. 응답 안 하는 그 자체가 응답입니다. 또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다른 것으로 기도응답을 주실 때가 있어요. 왜냐?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현장을 아시고 우리를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따라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했는데 기도한 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가지고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불신자는 기도한대로 응답 받아서 그래서 망하지만, 우리는 응답 받는 것도 있지만 안 하시는 것도 있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있고,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도 있어요. 그 전체가 비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누가 주는 응답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아야 되는데 먼저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자가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느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만이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스도 이름이 내 안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이름이 어떻게 내 안에 오느냐? 내가 오라고 영접하게 될 때 내 안에 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을 모신 자가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시게 되어 있어요.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한복음 16장 24절)"
여러분, 안 믿는 자도 예수 이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도 예수 이름 말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응답 안 옵니다. 역사 안 일어납니다. 예수 이름을 가진 자만이 응답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유대인 가운데 마술을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때 귀신들린 사람이 네가 누구냐? 내가 예수 이름도 알고 바울 이름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 오히려 귀신들린 사람이 그들을 덮쳐서 벗은 몸으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모르는 불신자도 예수 이름 사용할 수 있어요. 그것은 가짜입니다. 정말 그리스도 영접하고 내 안에 있는 사람,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자녀에게 응답 하시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만 내 뜻과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 모든 관계된 현장에 역사하시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흑암 세력 꺾으시고 하늘군대 동원하시고 그 속에서 현장을 바꿔가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응답과 함께 결국 나중에 예수이름 붙잡고 있는 결과로 여러분을 하나님이 만방에 높이 그리스도 이름을 드러낼 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영적인 정상에 여러분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나가는 우리 후대들을 최고 정상의 자리에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시고 분명히 예수 이름 모르는 자들은 가면 갈수록 망하게 되어 있어요. 예수 이름 아는 자들은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그의 이름을 높이게 되어 있어요. 왜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될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과학이라는 말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하늘 군대가 동원되는 것이고 거기에 흑암이 꺾이는데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파도같이 내게 둘러섰던 흑암의 세력이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과 더불어 현장이, 사람이 변화되는 응답이 일어나게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번 받아 합시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정확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정확하시고 사탄도 정확합니다. 정말 영적인 과학, 기도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여러분, 천만 다행이죠. 우리가 이 사실을 몰라서 생판 고생하며 살아야 되는데 제대로 기도할 수 있는 비밀을 알았다는 것은 큰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이 기도의 비밀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한 시대의 현장 살리는 전도자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년 12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기도는 영적인 과학이다
(눅11:5-13)
서론: 기도가 누려지고 있습니까? 많은 신앙인들의 고민이 기도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도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가 잘 안되고 어렵다면 이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기도에 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마16:16-20, 6:1-13, 눅11:1-13). 기도가 잘 되는 비밀이 있습니다. 만약 내 의와 열심을 가지고, 나의 방법대로 기도하면, 응답이 올지라도 결국 한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언약을 붙잡고, 그 언약 안으로 들어가면 성령이 역사하시기에 기도는 절로 됩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가 되어지는 응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1. 기도 이전에 기도의 중요한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1)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1) 생각에 따라 보는 게 달라지며, 보는 것에 따라서 판단과 선택과 해석이 달라짐. 판단과 해석에 따라 바른 기도제목이 나옴. 바른 기도제목이 나와야 바른 응답을 받음. 바른 응답을 받아야 우리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남.
2) 그러나 창세기 3장 원죄 속에는 바른 생각을 가질 수조차 없음
(2) 문제를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1) 어떤 기도를 주로 하는 지 살펴보라(육신적인 기도-문제 해결, 소원 성취).
2) 성도에게 일어나는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옴(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숨겨져 있음)
3) 가장 문제 있을 때마다 복음으로 답을 주셨음(창3:15, 출3:18, 사7:14, 마16:16)
(3) 이 때 기도가 달라집니다.
2.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1) 육신·종교·율법·신비주의적인 기도는 기도한 대로 응답이 오나, 결국 망하게 됩니다(틀린 기도).
(2) 그러나 우리는 언약기도를 해야 합니다(바른 기도).
1)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성령의 인도 받는 기도임(눅11:13)
2)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임(주기도문)
3) 전도와 선교와 세계복음화를 두고 하는 기도(마6:33 그의 나라와 그의 의)
(3)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1) 사탄은 불신자가 기도한대로 응답함
2) 하나님은 기도한대로 응답하시거나, 기다리게 한 후에 응답하시거나,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심
3) 현장과 후대가 살아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응답 옴
(4) 먼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자격자가 되십시오(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 소유. 요16:24).
(5) 내 뜻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결론: 기도는 영적인 과학입니다. 기도는 정확합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시고, 사탄도 정확합니다. 영적인 과학인 기도를 누리시고, 한 시대 현장 살리는 전도자의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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