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상과 싸워야 할 때
2012-04-08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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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8일 주일 2부 예배 노동휘 목사
지금은 세상과 싸워야 할 때
6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룻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시57:6~11
■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오늘 부활주일입니다. 우리가 늘 그리스도의 부활을 누리고 임마누엘의 비밀을 누리지만, 특별히 부활의 의미들을 확인하고 또 그 이름을 찬양해야겠습니다. 옆에 계신분과 인사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누립시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지금 남미 파나마 사역 중에 계십니다. 계속 기도해 주시고 오고가는 시간들도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건강과 모든 부분에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세상과 싸워야 할 때”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작하면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사람은 지형곤이라는 우리나라 사람이고, 한사람은 수피어 유소프라는 영국사람인데 상반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형곤이라는 사람은 풍자 만화가입니다. 카툰이라고 한 컷으로 그림을 그려서 정치를 풍자하고 세상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이 사람의 생은 좀 특별합니다. 1961년생이시고 경남 마산시 옥탑방에서 40년을 갇히다시피한 그런 삶이었습니다. 가로2미터, 세로3미터의 그런 공간에서 40년동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척추결핵을 앓아서 하체의 살이 말라붙는 병으로 고치속의 번데기같이 이불속에서 긴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분이 한 세상구경이라고는 마산 병원을 퇴원하면서 마산시내를 한 바퀴 돌고 돈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학력은 초등학교 4개월입니다. 글자도 제대로 모를 수 있겠지요. 저희 집의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여전히 받아쓰기하면 틀립니다. 이분은 동생이 빌려오는 만화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뺏기고 또 뺏기고, 따라서 그리고 또 그리면서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만화에 소질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장짜리 그 카툰 안에 셀 수 없이 많은 점들과 짧은 선들을 꼼꼼하게 찍으면서 그려낸 만화에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잘 그린다는 것을 넘어서서 이 사람의 카툰 속에 엄청난 통찰력과 유머와 무엇보다도 소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통찰력, 소망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일까? 거기에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반하고 놀라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가 나면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툭 튀어져 나옵니다. 내가 말했잖아! 하면서
화가 나면 분출하고 터트리고...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한이 있고, 불평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그리는 카툰 속에는 소망이 있고, 통찰력이 있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7년 7월에는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지형곤 카툰 기획전이 벌여지고 7,500명이 보러오고 반응이 좋아서 2008년 3월에는 한국 카툰작가로는 최초로 미국 뉴욕 아트리아 갤러리에 초청 받아서 “가능성으로부터 현실로” 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국어책과 미술책에 실리게 됩니다. 지학사에서 나온 국어책에 실린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시면 이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노아의 방주라고 합니다. 그 한 컷 안에서 아주 많은, 어떤 면에서는 설교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전달되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40년을 애벌레처럼 기고 번데기처럼 사는 사람이 나비가 되어 오르는 그런 느낌을 주는 그런 그림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운명에 대한 분노도 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이 가져서 불평하고 분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참 불행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사람의 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사람의 작품을 통해서 보고 있으면 아! 이 사람이 정말 복음을 담고 있고 정말 세계화 하고 있고, 유일성을 가졌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 ‘수피어 유소프(sufiah yusof)'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영국 사람입니다. 생후 14개월 만에 알파벳을 떼고, 3세 때에 영어로 읽고 쓰기를 시작하고, 4세 때에 그 어렵다는 히브리어를 마스터했습니다. 13세 때는 명문대학 옥스퍼드를 입학했습니다. 대단하지요. 가지고 태어난 것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사라져 버립니다. 뛰어난 천재가 없어지고 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으로부터 이 사람의 사진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샐퍼드라는 아파트에서 발견되었는데 매춘부로 전락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로는 “성공에 대한 아버지의 집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15년 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의 사진도 인터넷에 가면 있습니다.
참 상반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사람은 정말 절망할 수밖에 없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인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통찰력을 보여주고, 희망을 보여주고, 유머를 전달하고 소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데, 또 한사람은 타고난 것이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춘부가 되어있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 사람의 삶을 통해서 소망이 보여지고, 희망이 보여지고, 사람들에게 통찰력과 힘을 전달하고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의 차이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 가지고 태어나는 것보다 마음의 힘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우리 환경과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배경과 영적인 힘입니다. 영적인 힘이 없고, 영적인 배경이 없으면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그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내가 노예되어지고, 내가 소유한 것 때문에 내가 포로가 되어지고, 내 잘난 것 때문에 내가 파괴되어지고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쁜데 그 예쁜 것에 영적인 힘이 없으면 그것 때문에 노예가 됩니다. 정말 키 크고 잘 생기고 멋있게 생겼는데 영적인 힘이 없으면 그것 때문에 노예가 되어집니다. 영적인 힘을 가질 때, 가진 것 없고, 파괴되어져 있고, 없지만 거기에서 꽃을 피울 수 있고, 소망을 전달할 수 있고, 힘을 전달할 수 있고, 세상을 향해 비꼬고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라 웃음과 힘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도 다윗의 시편입니다. 이 사람의 생을 통해서 우리는 발견할 것이 있습니다. 56편 역시 마찬가지로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갔을 때 적진입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블레셋으로 도망을 갔겠습니까? 도망가서 쓴 시입니다. 또 57편은 도망다니다가 굴에 피해 있을 때 쓴 시입니다.
제가 한번은 사무실에 뭐가 있었는데 신봉준 목사님이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갔는데 주인이 나타났어요. 얼마나 답답하던지, 말을 할 수도 없고,, 15분 동안 참 힘든 상황이 있었습니다. 도망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다윗이 굴속에서 썼는데 거기에 희망이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확신이 있어요.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으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마음에 불평이 가득한데 노래가 나옵니까? 노래를 불러도 서글프고 우울해 집니다. 우울한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같이 듣는 사람이 우울해 집니다. 마음이 묵직해 지고. 우리가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내 마음에 희망이 오르고 즐거워질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그 마음속에 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시는 영광이 보이고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58편에는 또 그가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도망가고 있는 시입니다. 그런 시들을 통해서 우리가 봐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1. 우리는 시작하기 전에 임마누엘의 비밀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매일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임마누엘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73편을 다윗이 썼습니다. 그는 항상 찬양했고 그의 시편을 보면 그가 하는 양 지키는 일을 위해서 돌 던지는 일을 그렇게 많이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항상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시를 썼습니다. 아까 얘기했던 지형곤이라는 사람은 카툰을 그리면서, 만화를 그리면서 그에게 임한 하나님을 이야기 했습니다. 막3:13~15절에 보면 예수님이 부르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인간이 살아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혼을 가졌습니다. 그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가져도 만족이 없고, 성취해도 성취감이 없고, 어느 자리에 가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 하셨는데 어떻게 따라갑니까? 말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건전한 이성은 한계를 아는 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진짜 똑똑한 놈은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의 지식은 영원히 상대적이고, 유한적이고, 부분적이고, 불완전하고, 항상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내 주머니에 지금 얼마 들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면 여러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모른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맞추더라도 그것은 맞추는 것이지 아는 게 아닌 것이지요. 우리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자식을 위한 눈물. 그것은 과학적 지식과 철학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용서. 체험할 때 치유되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 우리는 변화되기 시작하고 그때에 참 행복이 오고, 참 만족이 오기 시작합니다. 가져서 행복한 게 아닙니다. 저 명품 가지면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저 자리에 가면 될 것 같은데 저 자리에 가면 내가 모자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왕상 21장에 보면 아합이 회개를 합니다. 그 지독한 왕. 아합이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쁘셔서 용서를 하시는 것이 나옵니다. 이해가 안되어지지요. 이놈의 아합왕, 이세벨..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용서가 되느냔 말입니다. 니느웨성에 가서 요나가 회개를 외쳤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기 위해 안달이 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안달이 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할 때에 불평, 원망, 분노가 나오고 후회하고 핑계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우리 속에 참된 평안이, 참된 능력이 임하게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의 죽음이 나옵니다. "예수님, 나사로가 죽으려고 합니다. 빨리 오셔서 나사로를 치유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안가셨어요. 까먹었는지, 바빴는지..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지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이 그 현장에 가십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어디 있느냐? 그리고 그곳에 가셔서 돌무덤의 돌을 옮겨 놓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어떤 분이 말씀하셨어요. 그냥 나오너라 하셨으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다 뛰어나왔을텐데. 나사로야 나오너라! 했기 때문에 나사로만 나왔다고 했습니다. 웃길 수 있는 이야기 같지만 하나님은 그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음성 앞에 그대로 몸을 동인채로 팔과 손이 묶인 채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앞에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유가 있습니까? 세상의 논리와 과학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 때문에, 세상이 그렇고, 대통령이 그렇고, 국회의원이 그렇고, 선생이 나쁘고, 경찰이 잘못되었고, 이유는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이유가 없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잠깐만요. 이것 풀고 나가겠습니다. 풀어서 나가겠습니다..묶인 채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의심의 무덤 속에 있습니다. 세상근심과 허욕과 허영의 무덤 속에 있습니다. 유리 속에 파묻혀서 빠져나올 수 없는 무덤 속에 있고, 상처 속에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상처, 외모에 대한 상처, 학벌에 대한 상처, 배신에 대한 상처, 낙오에 대한 상처, 그 상처의 무덤 속에서 빠져 나오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일이라는 무덤도 있습니다. 마귀들이 전략 회의를 했습니다. 신앙생활방해 전략 회의를 했습니다. 그냥 들으십시오. 젊은 엘리트 마귀가 말했습니다. 죽입시다. 이런 믿는 것들..그러자 많은 마귀들이 말했습니다. 순교자는 교회의 씨가 된다. 절대 죽이면 안된다. 그러니까 어떤 마귀가 때립시다. 때리면 됩니다. 때리면 더 열심히 더 강하게 믿게 된다. 세 번째가 말했습니다. 믿는 것들은 가둡시다. 믿는 것들은 다 가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를 시작하기 때문에 성령이 역사하게 되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범죄케 합시다. 새로운 것 없느냐. 나이 많은 노련한 마귀가 말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열심히 기도하게 하고, 예배하게 하고, 전도하게 하자. 그런데 내일 하게 하자. 우리는 모두 내일에 빠져 있습니다. 내일이라는 무덤 속에서 빠져 나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무덤에서 빠져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거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능력이 있고, 죽음을 뛰어넘고 무덤을 뛰어넘는, 묶여있는 그 상황조차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속에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지니라. 그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그 은혜의 능력 속에 들어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이렇고 저렇고 다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말씀.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었습니다. 모든 만물이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믿음으로 안다 그랬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고 그 말씀의 능력 속에 들어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윗은 기름부음 앞에 섰습니다.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시대왕은 사울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떠난 왕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병을 들고 이새의 집에 갑니다. 그리고는 그 형들로부터 쭉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입니까? 나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 들판에 있는 다윗, 우리가 하나님 가까이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뭔가 어디 중심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다윗이 있는 그곳은 하나님이 아셔서 그를 부르십니다. 그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왕으로서 기름을 부으십니다. 그리고 그는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임하면 참된 소망이, 능력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언자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일 일을 알고 싶으시다고요? 일 년 뒤의 일을,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 주식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으시다고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노아는 홍수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예언했고,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전달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비젼을 가졌습니까? 예레미야29:11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을 향해서 말합니다. 나의 계획은 내가 아나니.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어 죽겠는데,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데,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인 줄로 믿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비젼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비젼이 임하게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기름부음, 성령의 충만함.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언약과 하나님이 주신 미래를 보게될 때, 그 계획을 보게될 때, 성령충만을 받게되고 비젼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3.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다윗이 그 이후에 골리앗을 만나게 됩니다. 싸움의 이유를 발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승리해야 하는 이유, 내가 성령충만해야 되는 이유, 이 사업과 이 직장에서 내가 승리해야 되는 이유, 그 이유를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덤속에서 빠져 나와야 되는 이유가 뭐죠? 이 냄새나는 무덤에서 그냥 썩어 죽으면 되는데 하나님이 나를 그 무덤으로부터 불러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 첫 번째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이유입니다. 기도를 왜합니까? 뭔가 궁핍해서? 내일 저 빚을 갚아야 되는데.. 지금 막을 돈이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내일 저 문제가 해결되어야 되는데 해결되지 않아서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그건 기도의 이유가 되지 않죠. 우리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께도 인사하는 이유가 뭡니까? 아버지에게 재산이 좀 있어요. 그 재산을 내가 상속받기 위해서 아버지께 잘하고 있다.. 인사하고 잘하고 효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효도가 아니죠. 꼼수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문제해결 받기 위해 기도한다면, 그건 기도가 아니고 꼼수입니다.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부모님께 효도하는 이유가 뭡니까? 부모님이 계시니까. 우리가 어른들을 찾아뵙는 이유가 뭡니까? 어른이 계시니까. 내가 오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 계시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출근 안 해도 되고 그 지긋지긋한 직장 상사 안 만나도 되고 오늘 거래처 안 가도 되니까 아이고 오늘 마음이 참 편하네. 기도할 마음이 안 나죠! 그건 꼼수입니다. 내가 오늘 기도의 싸움을 싸워야 될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그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그는 이미 왕이 되었습니다. 왕의 자리에 가지 않았지만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요, 이 나라가 내 나라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골리앗 앞에 갔는데 골리앗이 하나님의 나라를 모욕하고 있어요. 밑에서부터 욱하는 것이 올라오는 겁니다. 전도하러 나갔는데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그래요. 인터넷을 조금만 뒤졌는데 기독교를 개독교라 그래요. 사람들이 기독교를 얼마나 무시하고 멸시하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를 무시하는지, 전도하러 나갔는데 예수 이름 말하니까 3초 만에 나를 미워하기 시작해요. 자기가 나를 언제 봤다고.. 무엇 때문에 나를 미워하는지, 3초 만에 나를 미워하는 것 있죠. 예수 이름이 땅에 떨어졌어요. 여기에서 내가 분노가 없습니까? 이 다윗은 골리앗이 외치는 그 말에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당장 나갔습니다. 사울에게 나갔습니다. 왕에게 달려가면 순서가 있고 절차가 있는데 그냥 막 뛰어 나갔습니다. “나를 나가게 해 주십시오.” 갑옷을 입어야 되는데 맞는 갑옷도 없습니다. 그냥 나갔습니다. 왜요?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느냐? 왜 막대기를 들고 나왔느냐! 그 말이 마지막이었죠.
오늘 우리 속에 뭐가 있습니까? 오늘 내 속에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를 발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 속에서도 그가 굴속에 갇혀 있지만 그는 말합니다. 시편 56편 6절에 그들이 웅덩이를 파고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그들이 거기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말하죠.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뭐가 행복인줄 아십니까? 내 마음이 요동치 않는 것,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게 행복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확신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지금 다윗은 굴 속에 있는데 왕이 쪽팔리게 이게 뭐야! 그게 아니라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할렐루야! 우리 속에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최고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이 직장 속에 예수님이 최고로 높여지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집 아이를 통해, 이 렘넌트를 통해서 이 땅에 예수의 이름이 높여지게 하여주옵소서. 그런 분노가 있어야 되요. 이 시키들.. 인터넷에 들어가셔서 박주영을 한번 쳐 보십시오. 박주영을 욕하는데 꼭 붙는게 개독교 자식들.. 하면서 나옵니다. 그것을 한 1분만 읽고 있으면 머리에 뚜껑이 확 열립니다. 시대가 왜 이렇게 되었냐?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냐?
다윗은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편 10-11절).” 이것이 저의 마음이 되어져야 되겠고 우리 모든 성도들의 마음이 되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이여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최고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치유되게 되어 있고 그 무덤에서 살아나게 되어 있고 회복되게 되어 있고 응답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 오늘 그 말씀을 믿으시고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시기 위해서 결단하는 축복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4월 8일 주일 2부 예배 노동휘 목사
지금은 세상과 싸워야 할 때
(시57:6-11)
서론: 카툰 작가 지현곤씨와 매춘부 수피아 유소프의 이야기는 마음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배경과 힘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 다니다 굴에 숨어서 쓴 시에는 영광이 보이고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다윗의 시에서 우리가 봐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임마누엘을 누려야 합니다.
(1) 항상, 매일,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임마누엘을 누려야 합니다.
1) 다윗은 항상 찬양하고 기도하며 임마누엘을 누렸음
2)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살아나는 방법임(막3:13-15)
(2)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감으로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경험할 때 참된 평안과 능력이 임하게 됨
2)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유가 없음
3) 빠져있는 무덤에서 나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히4:16)
2. 다윗은 기름부음 가운데 성전건축의 비전을 받았습니다.
(1)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십시오.
(2) 하나님이 내게 주신 언약과 미래를 보게 될 때 성령충만 받고 비전을 잡게 됩니다.
3. 싸움의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1)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싸움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2) 내가 성령충만하고 승리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십시오.
1)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임(기도의 이유)
2)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셔야 되기 때문임
(3)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를 발견하십시오.
1) 다윗은 굴속에 피해있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확신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음(6절)
2) 내 현장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 나를 부르셨음
결론: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 응답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믿으시고,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기 위해 결단하고 축복을 누리십시오.
지금은 세상과 싸워야 할 때
6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룻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시57:6~11
■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오늘 부활주일입니다. 우리가 늘 그리스도의 부활을 누리고 임마누엘의 비밀을 누리지만, 특별히 부활의 의미들을 확인하고 또 그 이름을 찬양해야겠습니다. 옆에 계신분과 인사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누립시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지금 남미 파나마 사역 중에 계십니다. 계속 기도해 주시고 오고가는 시간들도 굉장히 긴 시간입니다. 건강과 모든 부분에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세상과 싸워야 할 때”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작하면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한사람은 지형곤이라는 우리나라 사람이고, 한사람은 수피어 유소프라는 영국사람인데 상반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형곤이라는 사람은 풍자 만화가입니다. 카툰이라고 한 컷으로 그림을 그려서 정치를 풍자하고 세상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많습니다만, 이 사람의 생은 좀 특별합니다. 1961년생이시고 경남 마산시 옥탑방에서 40년을 갇히다시피한 그런 삶이었습니다. 가로2미터, 세로3미터의 그런 공간에서 40년동안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척추결핵을 앓아서 하체의 살이 말라붙는 병으로 고치속의 번데기같이 이불속에서 긴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분이 한 세상구경이라고는 마산 병원을 퇴원하면서 마산시내를 한 바퀴 돌고 돈 그것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학력은 초등학교 4개월입니다. 글자도 제대로 모를 수 있겠지요. 저희 집의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여전히 받아쓰기하면 틀립니다. 이분은 동생이 빌려오는 만화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뺏기고 또 뺏기고, 따라서 그리고 또 그리면서 어느 순간 이 사람이 만화에 소질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장짜리 그 카툰 안에 셀 수 없이 많은 점들과 짧은 선들을 꼼꼼하게 찍으면서 그려낸 만화에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잘 그린다는 것을 넘어서서 이 사람의 카툰 속에 엄청난 통찰력과 유머와 무엇보다도 소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통찰력, 소망을 뿜어낼 수 있는 것일까? 거기에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반하고 놀라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가 나면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툭 튀어져 나옵니다. 내가 말했잖아! 하면서
화가 나면 분출하고 터트리고...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한이 있고, 불평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그리는 카툰 속에는 소망이 있고, 통찰력이 있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07년 7월에는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지형곤 카툰 기획전이 벌여지고 7,500명이 보러오고 반응이 좋아서 2008년 3월에는 한국 카툰작가로는 최초로 미국 뉴욕 아트리아 갤러리에 초청 받아서 “가능성으로부터 현실로” 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국어책과 미술책에 실리게 됩니다. 지학사에서 나온 국어책에 실린다고 합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시면 이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노아의 방주라고 합니다. 그 한 컷 안에서 아주 많은, 어떤 면에서는 설교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전달되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40년을 애벌레처럼 기고 번데기처럼 사는 사람이 나비가 되어 오르는 그런 느낌을 주는 그런 그림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운명에 대한 분노도 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이 가져서 불평하고 분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참 불행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사람의 생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사람의 작품을 통해서 보고 있으면 아! 이 사람이 정말 복음을 담고 있고 정말 세계화 하고 있고, 유일성을 가졌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 ‘수피어 유소프(sufiah yusof)'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영국 사람입니다. 생후 14개월 만에 알파벳을 떼고, 3세 때에 영어로 읽고 쓰기를 시작하고, 4세 때에 그 어렵다는 히브리어를 마스터했습니다. 13세 때는 명문대학 옥스퍼드를 입학했습니다. 대단하지요. 가지고 태어난 것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사라져 버립니다. 뛰어난 천재가 없어지고 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으로부터 이 사람의 사진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샐퍼드라는 아파트에서 발견되었는데 매춘부로 전락해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로는 “성공에 대한 아버지의 집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15년 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의 사진도 인터넷에 가면 있습니다.
참 상반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사람은 정말 절망할 수밖에 없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인데도 많은 사람들에게 통찰력을 보여주고, 희망을 보여주고, 유머를 전달하고 소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데, 또 한사람은 타고난 것이 엄청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춘부가 되어있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 사람의 삶을 통해서 소망이 보여지고, 희망이 보여지고, 사람들에게 통찰력과 힘을 전달하고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의 차이일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 가지고 태어나는 것보다 마음의 힘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우리 환경과 삶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배경과 영적인 힘입니다. 영적인 힘이 없고, 영적인 배경이 없으면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저주입니다. 그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내가 노예되어지고, 내가 소유한 것 때문에 내가 포로가 되어지고, 내 잘난 것 때문에 내가 파괴되어지고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쁜데 그 예쁜 것에 영적인 힘이 없으면 그것 때문에 노예가 됩니다. 정말 키 크고 잘 생기고 멋있게 생겼는데 영적인 힘이 없으면 그것 때문에 노예가 되어집니다. 영적인 힘을 가질 때, 가진 것 없고, 파괴되어져 있고, 없지만 거기에서 꽃을 피울 수 있고, 소망을 전달할 수 있고, 힘을 전달할 수 있고, 세상을 향해 비꼬고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니라 웃음과 힘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도 다윗의 시편입니다. 이 사람의 생을 통해서 우리는 발견할 것이 있습니다. 56편 역시 마찬가지로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갔을 때 적진입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블레셋으로 도망을 갔겠습니까? 도망가서 쓴 시입니다. 또 57편은 도망다니다가 굴에 피해 있을 때 쓴 시입니다.
제가 한번은 사무실에 뭐가 있었는데 신봉준 목사님이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갔는데 주인이 나타났어요. 얼마나 답답하던지, 말을 할 수도 없고,, 15분 동안 참 힘든 상황이 있었습니다. 도망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다윗이 굴속에서 썼는데 거기에 희망이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확신이 있어요.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으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마음에 불평이 가득한데 노래가 나옵니까? 노래를 불러도 서글프고 우울해 집니다. 우울한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같이 듣는 사람이 우울해 집니다. 마음이 묵직해 지고. 우리가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내 마음에 희망이 오르고 즐거워질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그 마음속에 뭔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시는 영광이 보이고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58편에는 또 그가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도망가고 있는 시입니다. 그런 시들을 통해서 우리가 봐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1. 우리는 시작하기 전에 임마누엘의 비밀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매일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임마누엘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73편을 다윗이 썼습니다. 그는 항상 찬양했고 그의 시편을 보면 그가 하는 양 지키는 일을 위해서 돌 던지는 일을 그렇게 많이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항상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시를 썼습니다. 아까 얘기했던 지형곤이라는 사람은 카툰을 그리면서, 만화를 그리면서 그에게 임한 하나님을 이야기 했습니다. 막3:13~15절에 보면 예수님이 부르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인간이 살아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혼을 가졌습니다. 그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가져도 만족이 없고, 성취해도 성취감이 없고, 어느 자리에 가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 하셨는데 어떻게 따라갑니까? 말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건전한 이성은 한계를 아는 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진짜 똑똑한 놈은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의 지식은 영원히 상대적이고, 유한적이고, 부분적이고, 불완전하고, 항상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내 주머니에 지금 얼마 들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면 여러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모른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맞추더라도 그것은 맞추는 것이지 아는 게 아닌 것이지요. 우리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자식을 위한 눈물. 그것은 과학적 지식과 철학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용서. 체험할 때 치유되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때 우리는 변화되기 시작하고 그때에 참 행복이 오고, 참 만족이 오기 시작합니다. 가져서 행복한 게 아닙니다. 저 명품 가지면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저 자리에 가면 될 것 같은데 저 자리에 가면 내가 모자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왕상 21장에 보면 아합이 회개를 합니다. 그 지독한 왕. 아합이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쁘셔서 용서를 하시는 것이 나옵니다. 이해가 안되어지지요. 이놈의 아합왕, 이세벨..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용서가 되느냔 말입니다. 니느웨성에 가서 요나가 회개를 외쳤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기 위해 안달이 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안달이 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할 때에 불평, 원망, 분노가 나오고 후회하고 핑계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우리 속에 참된 평안이, 참된 능력이 임하게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의 죽음이 나옵니다. "예수님, 나사로가 죽으려고 합니다. 빨리 오셔서 나사로를 치유해 주십시오." 예수님이 안가셨어요. 까먹었는지, 바빴는지..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지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이 그 현장에 가십니다.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어디 있느냐? 그리고 그곳에 가셔서 돌무덤의 돌을 옮겨 놓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어떤 분이 말씀하셨어요. 그냥 나오너라 하셨으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다 뛰어나왔을텐데. 나사로야 나오너라! 했기 때문에 나사로만 나왔다고 했습니다. 웃길 수 있는 이야기 같지만 하나님은 그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음성 앞에 그대로 몸을 동인채로 팔과 손이 묶인 채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앞에 이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유가 있습니까? 세상의 논리와 과학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 때문에, 세상이 그렇고, 대통령이 그렇고, 국회의원이 그렇고, 선생이 나쁘고, 경찰이 잘못되었고, 이유는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이유가 없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잠깐만요. 이것 풀고 나가겠습니다. 풀어서 나가겠습니다..묶인 채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의심의 무덤 속에 있습니다. 세상근심과 허욕과 허영의 무덤 속에 있습니다. 유리 속에 파묻혀서 빠져나올 수 없는 무덤 속에 있고, 상처 속에 있습니다. 부모에 대한 상처, 외모에 대한 상처, 학벌에 대한 상처, 배신에 대한 상처, 낙오에 대한 상처, 그 상처의 무덤 속에서 빠져 나오시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일이라는 무덤도 있습니다. 마귀들이 전략 회의를 했습니다. 신앙생활방해 전략 회의를 했습니다. 그냥 들으십시오. 젊은 엘리트 마귀가 말했습니다. 죽입시다. 이런 믿는 것들..그러자 많은 마귀들이 말했습니다. 순교자는 교회의 씨가 된다. 절대 죽이면 안된다. 그러니까 어떤 마귀가 때립시다. 때리면 됩니다. 때리면 더 열심히 더 강하게 믿게 된다. 세 번째가 말했습니다. 믿는 것들은 가둡시다. 믿는 것들은 다 가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를 시작하기 때문에 성령이 역사하게 되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범죄케 합시다. 새로운 것 없느냐. 나이 많은 노련한 마귀가 말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열심히 기도하게 하고, 예배하게 하고, 전도하게 하자. 그런데 내일 하게 하자. 우리는 모두 내일에 빠져 있습니다. 내일이라는 무덤 속에서 빠져 나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무덤에서 빠져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거기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능력이 있고, 죽음을 뛰어넘고 무덤을 뛰어넘는, 묶여있는 그 상황조차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말씀 속에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지니라. 그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그 은혜의 능력 속에 들어가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이렇고 저렇고 다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말씀.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었습니다. 모든 만물이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믿음으로 안다 그랬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고 그 말씀의 능력 속에 들어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윗은 기름부음 앞에 섰습니다.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시대왕은 사울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떠난 왕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병을 들고 이새의 집에 갑니다. 그리고는 그 형들로부터 쭉 하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입니까? 나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 들판에 있는 다윗, 우리가 하나님 가까이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뭔가 어디 중심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다윗이 있는 그곳은 하나님이 아셔서 그를 부르십니다. 그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왕으로서 기름을 부으십니다. 그리고 그는 블레셋에게 빼앗긴 언약궤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임하면 참된 소망이, 능력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언자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일 일을 알고 싶으시다고요? 일 년 뒤의 일을,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 주식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으시다고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노아는 홍수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예언했고,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전달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비젼을 가졌습니까? 예레미야29:11에 보면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을 향해서 말합니다. 나의 계획은 내가 아나니.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되어 죽겠는데,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데,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인 줄로 믿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비젼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비젼이 임하게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기름부음, 성령의 충만함.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언약과 하나님이 주신 미래를 보게될 때, 그 계획을 보게될 때, 성령충만을 받게되고 비젼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3.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다윗이 그 이후에 골리앗을 만나게 됩니다. 싸움의 이유를 발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승리해야 하는 이유, 내가 성령충만해야 되는 이유, 이 사업과 이 직장에서 내가 승리해야 되는 이유, 그 이유를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덤속에서 빠져 나와야 되는 이유가 뭐죠? 이 냄새나는 무덤에서 그냥 썩어 죽으면 되는데 하나님이 나를 그 무덤으로부터 불러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가 있는 것이죠.
그 첫 번째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이유입니다. 기도를 왜합니까? 뭔가 궁핍해서? 내일 저 빚을 갚아야 되는데.. 지금 막을 돈이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내일 저 문제가 해결되어야 되는데 해결되지 않아서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그건 기도의 이유가 되지 않죠. 우리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께도 인사하는 이유가 뭡니까? 아버지에게 재산이 좀 있어요. 그 재산을 내가 상속받기 위해서 아버지께 잘하고 있다.. 인사하고 잘하고 효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효도가 아니죠. 꼼수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문제해결 받기 위해 기도한다면, 그건 기도가 아니고 꼼수입니다.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부모님께 효도하는 이유가 뭡니까? 부모님이 계시니까. 우리가 어른들을 찾아뵙는 이유가 뭡니까? 어른이 계시니까. 내가 오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 계시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출근 안 해도 되고 그 지긋지긋한 직장 상사 안 만나도 되고 오늘 거래처 안 가도 되니까 아이고 오늘 마음이 참 편하네. 기도할 마음이 안 나죠! 그건 꼼수입니다. 내가 오늘 기도의 싸움을 싸워야 될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그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그는 이미 왕이 되었습니다. 왕의 자리에 가지 않았지만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요, 이 나라가 내 나라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골리앗 앞에 갔는데 골리앗이 하나님의 나라를 모욕하고 있어요. 밑에서부터 욱하는 것이 올라오는 겁니다. 전도하러 나갔는데 사람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그래요. 인터넷을 조금만 뒤졌는데 기독교를 개독교라 그래요. 사람들이 기독교를 얼마나 무시하고 멸시하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수를 무시하는지, 전도하러 나갔는데 예수 이름 말하니까 3초 만에 나를 미워하기 시작해요. 자기가 나를 언제 봤다고.. 무엇 때문에 나를 미워하는지, 3초 만에 나를 미워하는 것 있죠. 예수 이름이 땅에 떨어졌어요. 여기에서 내가 분노가 없습니까? 이 다윗은 골리앗이 외치는 그 말에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당장 나갔습니다. 사울에게 나갔습니다. 왕에게 달려가면 순서가 있고 절차가 있는데 그냥 막 뛰어 나갔습니다. “나를 나가게 해 주십시오.” 갑옷을 입어야 되는데 맞는 갑옷도 없습니다. 그냥 나갔습니다. 왜요?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느냐? 왜 막대기를 들고 나왔느냐! 그 말이 마지막이었죠.
오늘 우리 속에 뭐가 있습니까? 오늘 내 속에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를 발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 속에서도 그가 굴속에 갇혀 있지만 그는 말합니다. 시편 56편 6절에 그들이 웅덩이를 파고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지만 그들이 거기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말하죠.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뭐가 행복인줄 아십니까? 내 마음이 요동치 않는 것,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게 행복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확신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 지금 다윗은 굴 속에 있는데 왕이 쪽팔리게 이게 뭐야! 그게 아니라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할렐루야! 우리 속에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최고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이 직장 속에 예수님이 최고로 높여지게 하여주옵소서. 우리 집 아이를 통해, 이 렘넌트를 통해서 이 땅에 예수의 이름이 높여지게 하여주옵소서. 그런 분노가 있어야 되요. 이 시키들.. 인터넷에 들어가셔서 박주영을 한번 쳐 보십시오. 박주영을 욕하는데 꼭 붙는게 개독교 자식들.. 하면서 나옵니다. 그것을 한 1분만 읽고 있으면 머리에 뚜껑이 확 열립니다. 시대가 왜 이렇게 되었냐?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냐?
다윗은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편 10-11절).” 이것이 저의 마음이 되어져야 되겠고 우리 모든 성도들의 마음이 되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이여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최고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되게 되어 있습니다. 치유되게 되어 있고 그 무덤에서 살아나게 되어 있고 회복되게 되어 있고 응답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그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 오늘 그 말씀을 믿으시고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시기 위해서 결단하는 축복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년 4월 8일 주일 2부 예배 노동휘 목사
지금은 세상과 싸워야 할 때
(시57:6-11)
서론: 카툰 작가 지현곤씨와 매춘부 수피아 유소프의 이야기는 마음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배경과 힘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 다니다 굴에 숨어서 쓴 시에는 영광이 보이고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다윗의 시에서 우리가 봐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임마누엘을 누려야 합니다.
(1) 항상, 매일,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 임마누엘을 누려야 합니다.
1) 다윗은 항상 찬양하고 기도하며 임마누엘을 누렸음
2)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고 살아나는 방법임(막3:13-15)
(2)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감으로 임마누엘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경험할 때 참된 평안과 능력이 임하게 됨
2)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유가 없음
3) 빠져있는 무덤에서 나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라(히4:16)
2. 다윗은 기름부음 가운데 성전건축의 비전을 받았습니다.
(1)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십시오.
(2) 하나님이 내게 주신 언약과 미래를 보게 될 때 성령충만 받고 비전을 잡게 됩니다.
3. 싸움의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1)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섰을 때 싸움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2) 내가 성령충만하고 승리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십시오.
1)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임(기도의 이유)
2)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 받으셔야 되기 때문임
(3)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이유를 발견하십시오.
1) 다윗은 굴속에 피해있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확신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음(6절)
2) 내 현장에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 나를 부르셨음
결론: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 응답되게 되어있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믿으시고,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기 위해 결단하고 축복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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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
1469 |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 단6:16-28 | 2025-01-12 | |
1468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단5:17-31 | 2025-01-05 | |
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1466 |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 단4:28-37 | 2024-12-29 | |
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1463 | 손대지 아니한 돌 | 단2:25-35 | 2024-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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