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성령을 따라 행하라
2012-07-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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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령을 따라 행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갈5:16~18

■ 할렐루야! 오늘 우리에게 가장 축복된 성령의 충만함, 땅 끝까지 주의 복음 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우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사실 가지고 축복을 선언합시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삽니다! 당신은 참으로 행복자이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제목을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한 번 따라합시다. ‘주여! 내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할렐루야!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자에게 주신 최고의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 성령의 축복입니다. 아무에게나 주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성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 그것이 바로 성령의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은 성령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약속하셨어요. 승천하시기 직전에, 여러분,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죽지 전에 아무 소리나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승천하시기 직전에 가장 중요한 것을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라! 이스라엘 나라가 언제 회복될 것인가 그것도 걱정하지 말라!’ 그러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있는데 그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리하면 너희가 능력을 받게 될 것이고 그리하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다’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는 ‘너희는 그를 아나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우리가 말씀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전도자들이 가장 잘 알아야 할 부분이 성령의 인도와 성령의 충만한 역사라는 사실을 메시지를 통해 붙잡았죠. ‘너희는 그를 아나니.’ 성령이 무엇인가?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고 성령의 축복이, 성령의 충만함이 어떤 것인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특별히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며, 또 성령의 충만함은 누구에게 주시는가, 또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것인가? 그러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에 그 성령의 충만함은 어느 정도인가? 이런 부분들을 같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성령의 충만함은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누구에게나 약속하신 부분이라는 사실과, 또 우리의 성령의 충만함을 어떻게 받느냐, 기도할 때 받는다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릴 때 성령의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복음을 이해한 사람이 약속의 말씀을 나에게 주신 언약으로 붙잡게 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이고 특별히 하나님의 소원인 전도와 선교, 세계복음화. 전도에 대해서 마음과 생각 속에 담고 있으면 성령의 충만함으로 역사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주신 이유가, 목적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붙잡았습니까? 다른 것이 아니죠.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 그 성령의 충만함은 한계가 없어요. 다윗이 그렇게 고백했잖아요. 시편 23편 5절에 보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지금 자기 눈앞에 원수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상을 차려 주시고. 그리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기름으로 바르셨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성령께서 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느냐? 한 번 따라합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되면 한계가 없는, 잔이 넘치는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3장 14절~19절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편지 쓰면서 기도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시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 한계가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너희가 성령을 따라 행하라’ 이 제목 속에서 지난주에 이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에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게 되는가?’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될 때 우리가 어떤 축복 속에 들어가게 되는가, 그 비밀들을 한 번 살펴보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 방해들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누릴 수 있는가, 이런 부분들을 살펴보면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한 주간 승리할 수 있는 축복의 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에 어떤 결과가 오느냐 하면 여러분 모든 사건과 문제와 상관없게 됩니다. 어떤 문제와 사건이 여러분 앞에 있든지 간에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면 그 문제와 사건과 상관없게 되요. 수많은 핍박과 어려움과 죽음이 왔다고 할지라도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그 어려움과 핍박과 죽음조차도 상관없게 됩니다. 그게 성령의 충만함이에요. 오늘 우리 찬양대 마음과 생각과 육체까지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워 주소서 찬양했는데 진짜 성령의 충만함으로 우리가 채워지면 환경이 문제가 안되요. 여러분 앞에 펼쳐지는 문제, 사건들이 문제가 안되요. 문제는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니까 문제가 문제 되어지고 별 것 아닌 것도 다 문제가 되어져서 오히려 문제를 또 만들어내고요. 그래서 진짜 본론적인 인생은 살지도 못하고 서론적인 인생으로 인생을 허비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 분명히 기억하세요. 환경도,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도 상관없게 되어진다는 것. 어려움과 핍박과 죽음까지도 상관없게 되어진다는 것. 그게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초대교회 보십시오.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초대교회가 그 당시에 유대교회에서 이단으로 정죄해 버린 마가다락방 교회에 120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모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모여 가지고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 자리에 가면 엄청난 손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마가다락방 교회에 가면 손해 일어나는데 그래도 가야 되지 않겠냐?’ 그렇게 해서 모인 자리가 아니에요.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우리가 가야 되지 않겠냐?’ 그렇게 해서 모인 자리가 아니라니까요. 여기에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이 마가다락방 교회는 손해와 상관없는 자들이 모인 겁니다. 죽음과 상관없는 자들이 모인 것이죠.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게 되죠. 그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는 그 사건도 큰 문제를 가져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종교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이 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무어라 했습니까?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많은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이 “아니, 저 사람이 베드로 아니냐?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론데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 하느냐? 학문 없는 일반 범인으로 알았다.” 했습니다. “일반 사람으로 알았는데 어떻게 말을 잘 하느냐?” 사실 종교 법정 앞에서 죽을지 모르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경에 보면 ‘성령이 충만하여’라고 얘기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죽음조차도 상관없었습니다. 이게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그런데 응답받은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이 비밀을 누렸어요. 죽음과도 상관없었고, 환경과도 문제와도 상관없었고, 문제와도 상관없었어요.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초대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내용을 보면 핍박, 어려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문제 당하면 ‘하나님, 내게 왜 이런 문제 주십니까?’ 그 문제 없애 달라고 막 기도하잖아요. 그런데 초대교회는 문제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문제와 상관없었어요. 기도한 내용이 뭐냐, ‘하나님이여,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 이 자리를 보시옵소서!’ 그게 기도예요. 그러면서 ‘우리의 입술을 담대히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그 기돕니다. ‘왜 내게 이런 문제 왔습니까? 왜 이런 핍박이 왔습니까? 하나님, 이 핍박 없애 주옵소서.’ 그 기도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이여, 우리의 입을 열어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핍박과 상관없었습니다. 그게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모두가 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4장에 보면 초대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하게 될 때에 그 기도내용을 보면 그 핍박, 그 어려움들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문제 당하면, 하나님 왜 내게 이런 문제를 주십니까하며 그 문제를 없애달라고 막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초대교회는 문제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문제가 상관이 없었습니다. 기도한 내용이, “하나님이여 지금 이 시간에 이 자리를 보시옵소서.” “우리의 입술을 담대히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옵소서.”입니다. “왜 내게 이런 문제가 왔습니까, 왜 이런 핍박이 왔습니까, 하나님 이 핍박 없애 주옵소서.”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 입을 열어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핍박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게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모두가 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기를 축원합니다.
단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두라 평지에 큰 금신상을 만들어놓았습니다. 누구나 정치지도자들이 복음이 없으면 자기의 공적을 나타내기 위해 하는 일들이 아닙니까. 두라 평지에 큰 금신상을 만들어놓고 낙성제를 하면서 거기에 온 백성들로 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이여 우리가 왕이 세운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왕과 왕의 손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라며, 3:18에 보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고 했습니다. 상관 없다는 말입니다. 단6:10에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서에 어인이 찍힌 줄 알고도,” 같은 말입니다. 에스더 4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만의 궤계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위기를 당했습니다. 그 때 에스더가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작정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며 한 말이 있습니다. 에4:14에 보면 “죽으면 죽으리이다". 죽음조차도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함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걸려있고, 저 문제에 붙잡혀 있고, 여기에 쓰러지고 저런 환경 속에 넘어지고. 그게 아닙니다. 성령충만하면 모든 환경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밀들이 그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후4:7-8 말씀처럼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것, 그게 성령충만함입니다. 시91:7에 보면 "천인이 만인이 내 우편과 좌편에서 엎드려지지만 재앙이 내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할렐루야. 이게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이 축복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를 복음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들 앞에, 사업과 가정의 문제들 앞에 매여가지고 세계복음화 할 수 없어요. 그 환경과 상관없이, 그 환경은 여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상관없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1. 버려야 할 것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성령의 충만한 비밀을 누리면 분명히 세계를 복음화 하게 되어 있는데,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게 되어 있는데,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버릴 것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버릴 것을 제대로 버리지 못해서 성령의 인도와 충만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질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진짜 가져야 할 것을 알지 못해서입니다. 막10:29-30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집도 재산도 다 버려야 된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에는 굉장한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족을 버리라, 땅을 버리라. 어찌 버릴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진짜 가져야 할 것을 가지고, 쓸데없는 것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진짜 가질 것을 가지지 못하고 쓸데없는 것에 모든 것을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짜 가질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빌3장에 보면 바울이 중요한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까 그 그리스도가 나에게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필요 없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필요 없다는 말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이 얄팍한 지식들, 배경들 때문에 내가 이 복음을 깨닫지 못했구나. 그래서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다음에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고”라고 했습니다. 최고의 지식,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기에 이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못 버리는 겁니다. 못 버릴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 성령의 충만한 역사 속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가짜를,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뭡니까? 절대적인 겁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함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졌다는 것은 모든 것에서 우리가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16장에 주를 그리스도라 고백했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끝났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 그리스도 이름 부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는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 이름 부를 때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리스도가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소유한 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요일2:20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진짜 완전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신분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게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와 계신 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는 모든 걸음 속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과 더불어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지게 되어있고, 하늘 군대가 동원되어지면서, 현장이 변화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축복이 내게 와 있다니까요. 내가 가진 자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 우리의 무능도 문제가 안 됩니다. 무능하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진짜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기 바랍니다. 무능이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왜 권능을 받는다고 했습니까? 무능하기 때문에 권능을 받는다고 한 게 아닙니까. 여러분, 가난합니까? 가난도 문제가 안 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가난도 치유하겠다는 사실입니다. 이 축복이 내 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가진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제대로 알 때에 우리가 완전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어집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 오직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모든 문제는 사실 끝났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니까 자질구레한 문제와 사건 속에, 상처들 속에서 못 빠져나옵니다. 이미 완벽한 축복을 허락하셨는데 이 사실을 누리지 못하니까 뭔가 모르게 과거와 상처에 매여서 죽니 사니 우을증에 시달립니다.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을, 절대적인 축복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는데 깨닫지 못하니까 자꾸 과거로 돌아갑니다. 정말 눈들이 열리길 축원합니다. 정말 가질 것을 가지고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을 버려야 되느냐? 오늘 찬양 가운데, “나의 상처 입은 마음을 주의 성령으로 치유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상처들, 체질들, 습관들 이걸 버려야 합니다. 이걸 그냥 두면 오늘의 갈등으로 드러납니다. 또 그냥 두면 이것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과거에 매여서 오늘을 실패시키고 있고, 과거에 매여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상처들, 과거 습관들, 과거 체질들 이걸 버려야 되는데 버리지 못하니까 결국 성령의 인도를 제대로 못 받는겁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상처들, 내가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처들, 습관과 체질들 갖고 있으면 진짜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른 것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나중에는 전부 자기 기준이 됩니다. 자기가 기준 되니까 결국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특별히 성경에도 보면 하나님 앞에 응답 받고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한 사람들 중에 상처 있는 사람들이 응답 받은 역사가 없어요. 치유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역사가 없어요. 요셉을 보십시오. 형제들에 의해서 구덩이에 던져 넣어졌습니다. 한 번 상상해보십시오. 정신적인 충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건물이 무너져 그 밑에 있다 구조되어 나오면 꽤 오랫동안 정신적인 치유를 받아야 하잖아요. 가장 믿었던 형제들, 물론 형제들의 마음을 화나게 한 일을 했지만 형제들이 이 요셉을 구덩이에 집어 넣었습니다. 마침 구덩이가 비었고 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게 다행이지요. 그리고 또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서 결국 은 20을 받고 미디안 사람에게 팔렸습니다. 그리고 보디발 집에 팔리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우리는 쉽게 요셉이 당한 어려움들을 이야기합니다만, 찌르면 원망과 불평만 나올 수 있는 상처투성이 사람이 요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한 번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는 이 비밀을 그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이 더 컸기 때문에 요셉은 상처가 상처 되지 않고 문제가 문제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요셉이 나중에 총리가 되어 전 세계를 살리는 응답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를 보면, 모세가 사실 80세에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나서게 됩니다. 그런일을 하겠다고 할 때 모세가 계속해서 다섯 번 머뭇거립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왕에게 가며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리이까” 이게 어디서 나온지 아십니까? 모세 깊이 내재된 상처들입니다. 자기가 뭔가 해보겠다고 나왔을 때는 애굽 백성들에게 쫓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멸시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양무리를 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들 가운데 있었겠습니까?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 앞에 가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또 한 번 말씀하시니까 모세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분명히 내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가면 너를 보낸 이가 누구냐 물을 것인데 뭐라 할 것입니까?”, “이름이 무엇이라 하시겠습니까?” 이것도 머뭇거린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듣지 아니하고, 내 말을 믿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했다. 내가 가긴 가는데, 내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그래도 입이 뻣뻣하나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래도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옵소서.” 다섯 번이나 하나님께 못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이미 그 안에 깊이 내제 되어있는 상처들, 상처들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죽이려고 까지 하시면서 모세에게 사명을 줘서 다시 내어 보내면서 나아가는 걸음 속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역사하심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되잖아요. 오늘 이시간에 그리스도 예수의 능력으로 깊이 내제되어 있는 상처들이 치유되길 축원합니다. 분명히 상처가 치유 받아야 합니다.
다윗을 보세요.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 막내는 인간 취급을 못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다윗의 형제들을 불렀을 때에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인간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을 세웠습니다. 공을 세워놓고도 인정 못받고 장인 사울왕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죽는 것을 목도했고, 또 자기 민족에게 있는 것 보다 적국에 도망가서 미친 체하는 게 그 안전한 그런 삶까지 왔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고통과 배신과 배반, 모든 악품들을 다 맛본 사람이 다윗입니다.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다윗이 마지막 자기 생애를 정리하면서 중요한 고백을 했었습니다. 인생이 겪어야 될 것들을 모두 다 겪은 다윗이 자기 인생을 정리하면서 마지막 했는 말이, “사무엘하22:29에 보면,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이 말은“자기 인생에 대한 내 인생의 어둠을 밝히는 이 어두운 삶을 살았는데, 이 상처많은 삶을 살았는데, 이 어둠을 밝히는 것은 내 배경, 지식, 자리, 명예도, 세상의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어두움을 밝히셨습니다”입니다. 이것이 치유받은 모습입니다. 진짜 치유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여자 고등학생 하나가 집으르 가출했습니다. 부모님이 사방팔방으로 다 찾아헤맸습니다. 그러나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출 신고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신 딸이 술집에 남자들과 함께 술을 팔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이쁘게, 아무 문제없이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그 딸이 술집에 남자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기가 막힐 것 아닙니까. 그 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니가 왜이러느냐, 돈이 없느냐, 돈이 없으면 달라고 하면 되지않느냐, 이 가정은 부유한 가정입니다. 또 자녀에게 너무 잘하는, 지극정성으로 배포하는 가정이예요. 그런데 딸은 가정이 싫다며 남자들과 술잔을 나누며 생활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부모는 전혀 아이가 혹이나 알까봐 싸우지도 않고, 전혀 입밖에 내지 않았던 말이었는데, 어디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가 이 집의 딸이 아니고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습니다. 그러니깐 집을 나간것이었습니다. 마음안에 숨겨진 상처들, 이것이 치유가 안되어지면, 언제든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여름행사들 진행되었고 진행될부분들 까지, 렘넌트들을 두고 기도해 주시고, 세계렘넌트대회나 리더수련회의 메시지 방향이 어릴때에 과거의 상처들, 이 부분이 반드시 치유되어 질 수 있도록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 특별히 세계렘넌트대회를 지원하기 위해서 우리교회가 바자회를 했잖아요. 많이 협조하여 주셔서 그 어느 때보다 렘넌트들이 신청하고, 훈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자회를 열기 전에 훈련비를 지원받고자 하는 렘넌트는 본인이 사연을 적어서 넣을 수 있는 창고를 만들었었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본인이 신청 못해도, 주위에서 이 렘넌트를 꼭 지원하고 싶다라고 하면, 교육국에서 검토해서 후원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사연들이 다 정리되어서 저에게 메일이 왔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본인과 상관없이, 부모 때문에, 환경 때문에 오는 많은 상처들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봤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참 많은 부분에 생각이 났습니다. 자기가 전혀 상관없이 태어나니깐 그런 환경이있고, 초등학교 들어가야 하는데 부모가 갑작스럽게 집을 나가고,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씻으시다가 식물인간이 되어지고,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과연 이 아이들이 이 상처를 가지고 그대로 자라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면서 여러분의 헌신, 수고들 너무 귀중한 것이다를 생각해보면서 그냥 여름행사들, 렘넌트 대회가 아니라, 한 렘넌트, 한 아이에게 정말 이 복음을 심겨져서 어릴 때의 상처들을 치유 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기도하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의 과거 상처들 치유받아야 합니다.

이어령 교수 아시지요? 문교부 장관 역임하셨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도 쓰셨습니다. 기독교 인이라 세례도 받고 있었는데, 그 분보다 그 분의 딸, 이미나 변호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실제로 ‘땅 끝의 아이들’이라는 책을 써 냈었다. 책을 쓴 이유들을 정리를 했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면서, 따님은 자기 아버지가 너무 유명하니까 자기는 너무 불편하고 외로웠다고 합니다. 그럴 거 같아요. 사실 목사라는 부분 때문에 목사 자녀가 불편한 것도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그러나 이 분이 자기 아버지가 너무 유명하지 자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이 자기에게 불편하고, 외로움으로, 옆에 아이들보면, 자기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웃고, 재롱부리는 것을 보며 너무 부러웠다고 합니다. 자기는 자기 아버지가 너무 바쁘니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재롱부리는 것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고백을 했다. 외롭고 우울하고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었는데, 죽도록 공부했다고 합니다. 왜냐?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그런데, 결국 결혼하기 까지도 인생자체가 어두운 삶이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그 분이 5년 만에 파경 되고 결혼도 세 번까지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기 몸에 암이 들어오고, 자기 자녀가 아주 뛰어난 수재였는데 이름 모를 질병으로 먼저 죽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이 분이 신앙을 가졌는데,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니 황무지에 장미꽃이 피는 것을, 사막가운데 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답니다. 그 때부터 복음을 전하면서,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생각가지고 인도받았었다. LA에서 검사로 있으면서, 이 분이 마약하는 청소년들을 기소하기 위해서 상담하고 대화를 했는데, 그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의 모두가 부모의 사랑에서 멀어져있고, 부모에게 냉대당하고, 부모에게 멸시받았던 것이었습니다. 마약은 한 부분이지, 어디든지 그 아픔을 살처를 달래기 위해서 어디든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봤습니다. 그냥 땅 끝에 서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밀면 저 나락 아래로 떨어질 그런 아이들이었을 거 같다.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니깐, 그 아이들에게 희망이 생기고, 부모님과 화해가 되어지고, 회복이 되어지고, 부틍켜 안고 울게 되어지고, 그러면서 눈이 열려졌는데, 우리 아버지도 벼랑 끝에 서 있는 분이구나. 그래서 자기 아버지를 두고 기도를 시작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되었잖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냐, 자기 생애는 어두운 삶이었고, 자기가 만났던 청소년들이 전부다 상처를 가지고 벼랑 끝에선 아이들이었다는 것. 우리 주위에 그런 아이들이 있잖아요. 그 상처들 가운데 있잖아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회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경우든 저와 여러분에게 있는 상처는 반드시 치유가 되어져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결국 성령의 인도를 못 받고 성령충만함 속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여러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여러분 개개인들이 정말 하나님의 깊은 치유의 손길을 체험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들, 과거의 습관들, 체질들, 오늘의 갈등들, 미래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버려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완벽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2. 기다릴 것
두 번째로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기다릴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가진 것입니다만, 그것을 또 지금 우리의 현장에서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거가 나의 현장에 나타나기까지, 그리스도가 내 현장 속에 증거로 나타나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 산업에, 가정에, 자녀의 문제 속에, 학생들은 학업 속에 진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결론이 내려지기까지 기다려야합니다. 이것이 시간표입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막 움직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결론도 없이 막 움직입니다. 여러분이 움직이면 움직이는 만큼 손해입니다. 늦는것 같지만 늦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답을 가지고 나갈 때 그것이 오히려 더 빠른 것입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 그리스도는 모든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요.

어제 제가 우리교회에 연결되어 있는 렘넌트 4명의 자매가 가정에서 자기의 기능들을 악기를 가지고 제2회 가족음악회를 하는데 초청을 받아서 갔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참여 하면서 너무 좋더군요. 이런 렘넌트들이 좋은 기능을 가지고 전문성 있는 현장을 살리는 전도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거기 한 시간 정도 음악회를 참여 하면서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전문인들일수록 사실 영적인 문제가 심각한, 겉으로는 박수갈채를 받고 휘황찬란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한 사람 한사람 전문인들이 사실 영적문제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왜 어려운지 모르고 있어요. 그것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그리스도로 결론 내려지는 만큼 사실 보는 눈이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많이 배웠으면서도 왜, 그렇게도 열심히 살았으면서도 왜?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느냐? 많은 영적인 문제속에 허덕이고 있느냐? 그것을 보는 눈이 어디서 열려지느냐? 그리스도가 결론 내려지는 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게 이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이 렘넌트들이 정말 기능이 준비되어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전문인들을 살리는데 쓰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 엘리트로 자라서 유학을 가는 친구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미국 이라는 현장에 가면 분명히 많은 것들이 보일 건데 사실적인 것을 봐야 된다. 사실적인 것을 보고 영적인 부분에 답을 줄 수 있는 자가 된다면 하나님은 너를 그 이유 때문에 축복하실 것이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적인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어디서 열려지느냐? 다른게 아니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결론이 내려지는 만큼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어디서 열려지느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그 순간순간마다 거기서 보여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 이전에 여러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결론도 안 내렸는데 열심을 낸다면, 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에 결론 가지고 움직여져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구나!!
그 다음에 분명히 이 언약을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을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았는데 현장이 변화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자꾸 움직이니까 문제가 생겨요.

요셉은 노예로 들어갔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보는 주위의 사람들이 요셉에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것을 봤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 아닙니까! 거기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여러분 신호등이 있습니다. 빨간 신호등은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가다가 갈 수는 있지만 결국 사고로 죽게 됩니다. 녹색 신호등에 가야 됩니다. 빨간 신호등에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가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결론을 가지고 그 증거가 나타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분명히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가 나타나기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임하겠다고 했습니다. 성령충만 주시기까지 기다리세요. 늦는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기다려야 될 것은 뭐냐?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우리의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그게 시간표입니다. 그리고 움직이면 됩니다. 사업도 그 시간표를 보고 움직이면 됩니다. 그리고 분명히 성령충만 주시겠다 했어요. 그 성령충만 임하기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많이 기다리지 못하고 설쳐가지고 결국 실패하는 인생을 살아가요. 아브라함도 25년 기다렸고 야곱도 21년 기다렸고...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 과정속에 모든 축복과 응답이 다 이루어진 사실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제목이 성령을 따라 행하라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우리에게는 지금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아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죄 사함만 받는 것이 아니고 죄와 저주의 영이 떠나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우리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신의 소욕이 멀어지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두가지의 싸움이 일어나는데 성령의 생각과 육신의 소욕을 따라 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육신의 소욕 다시 말해서 내 육신적인 것, 갈등, 두려움, 과거의 상처들, 오늘의 불안들과 같은 육신적인 것들이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24시간 성령께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버려야 될 것을 버리면 됩니다. 버리고 갱신하면 되요. 주님은 버리시기까지 기다리고 계셔요. 갱신하기까지 기다리고 계셔요. 창세기 34장에 보면 야곱의 가정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의 강간 사건 때문에 위기가 왔는데 세겜 사람이 일어나서 야곱의 가정을 공격해 왔어요. 그때 창세기 3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창세기 35:2절에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버리고 정결케 하고 너희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버릴 것을 버리고 갱신하라는 말이죠. 그러면서 야곱이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그렇게 할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느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창세기 35:5절) 했습니다. 여러분 버려야 될 것 버리고 갱신해야 할 것 갱신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든 삶을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일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버리기까지 기다리십니다. 어떤 면에서 어려움을 당한다면 하나님이 갱신하고자 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24시간 성령은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버릴 것 버리고, 가진 것 붙잡고 오늘도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의 증거의 역사들이 여러분의 현장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 가장 완전한 것,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주의 종들에게 성령을 물 붓듯 부으시마 약속하셨사오니 그 성령의 충만함 속에 들어가서 성령을 따라 행함이 있게 하여 주시고 그래서 우리의 모든 문제와 사건과 죽음과 어려움과 핍박 조차도 상관없는 성령의 충만함의 비밀을 누릴 수 있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2년 7월 2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5:16-18)






서론: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성도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한계가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새로운 나를 찾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 핍박과 어려움과 상관없는 새로운 나를 찾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행1:14, 3:1-10, 4:1-12, 단3장, 6:10, 에4:14, 고후4:7-8, 시91:7).

1.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참된 것을 가지기 위해서 가짜를 버려야 합니다.
1) 막10:29-30, 빌3:7-8
2) 가진 것(참된 것)이 무엇인지 알면 버릴 수 있음
① 그리스도
② 하나님의 나라
③ 성령충만
2) 우리가 버려야 할 것(사탄의 통로가 됨):
1) 과거의 실패에 대한 상처, 습관, 체질
2) 현실의 갈등
3) 미래에 대한 두려움

2. 가진 것들이 현장에 나타나기까지 기다리십시오.
(1) 예수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에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2)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기다리십시오.
(3) 성령충만 주시기까지 기다리십시오.




결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죄 사함만 받는 것이 아니고 죄와 저주의 영이 떠나고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신의 소욕이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육신의 소욕, 다시 말해 내 육신적인 것, 갈등, 두려움, 과거의 상처들, 오늘의 불안들과 같은 육신적인 것들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위해 버려야 될 것을 버리고 갱신하면 됩니다(창35:2).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든 삶을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버리기까지 기다리십니다. 24시간 성령은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에 버릴 것 버리고, 가진 것 붙잡고 오늘도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의 증거의 역사들이 여러분의 현장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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