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2013-05-2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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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마28:6~10)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 마28:6~10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한날도 예배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된 위로가 여러분에게 넘쳐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 장로님 기도가 있었습니다만 우리 교회가 40일 집중 훈련 가운데 있습니다. 특히 전도자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집중 훈련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여러분 인생에 있어 전도가 되어지는 인생이라면 가장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여러분 업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이든 상관없이 그것을 통해서 전도가 되어진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이고 거기에 모든 축복된 응답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도의 축복을 왜 못 누리느냐? 사실 그것들을 우리가 전도자의 삶 집중 훈련을 통해 발견해야 하는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체질들 때문이에요. 또 영적인 우리의 문제들 때문에 전도자의 삶, 참된 전도가 되어지는 그 축복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계속해서 여러분 기도하는 가운데 정말로 한 번 도전해 보시고 오늘의 말씀과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를 붙잡는 삶으로써, 우리 삶에 전도의 문이 열려지는 그런 축복된 증인의 걸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번 주간에는 미션으로 주어지는 부분이, 아마 여러분 받으시면 신경질 나는 분이 많을 거예요. 그 내용이 뭐냐, 나에게 있는 영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토요일 날 그것을 생각하는 날이었거든요. 생각해 보셨어요? 신경질 나죠? 그리고 또 오늘 미션이 뭐냐, 치유에 대한 미션인데 가족들이 나에게 있는 문제들을 뭐라고 보고 있느냐? 그것도 아마 여러분 깜짝깜짝 놀랄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계속해서 그 문제에 대한 배경이 무엇이고 그것을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으며 내가 그것을 위해 무엇을 실천하고 또 가족들이 나에게 실천하기를 원하는 부분이 무엇일까? 참 중요한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이번 사십일 집중 훈련을 통해서 여러분의 고질적인 영적인 문제들, 또 남에게 말 못하는 부분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이 있잖아요? 결국 그것 때문에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어느덧 되는 것같은데 무너지고 되는 것같은데 또 무너지는데, 그런 부분들이 발견됨으로 말미암아 참된 치유가 되어지고 참된 전도자의 삶이 되어지는 그런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어제는 우리 행복 나눔 축제가 있었는데 제가 오늘 잠시 1부 마치고 들어가니까 제 책상 위에 참여한 분들이 몇 분이냐 놓여 있는데, 대략 90여분 참여하셨고, 전혀 새가족으로 참여하였다고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감사를 드리고, 특히 어제 많이 참여한 팀들이 있는데, 다민족 팀에서도 많이 참여하셨고 농아부에서도 많이 참여하셨는데 아마 여러분 삼천 제자를 수첩에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한 분 한 분을 여러분 초청했는데, 설령 이 자리에 오시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러분,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가, 분명히 여러분을 기도하게 하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한 중요한 응답을 주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정말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을 보는 그런 증인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한 번 따라합시다.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응답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자세와 믿음의 그릇으로 신앙생활을 하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이것을 분명히 확인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지금 이 시대가 어려운 시대, 말세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어떤 사건과 어떤 문제와 어떤 일들이 부딪힐지 모르는, 일어날지 모르는, 그런 말세 시대를 지금 살아가고 있고, 더구나 계시록 12장에 이야기하고 있는 말씀처럼, 엄청난 영적인 혼란들이 이 땅에 가면 갈수록 더 심하게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분명한 하나님을 향한 기준과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축복 속에 세워진 확실한 기준이 없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왔다 갔다 하면서 방황하게 될 것이고 여기에 대한 확실한 기준이 없다면 많은 축복들을 놓치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전도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참된 응답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기준과 어떤 자세와 어떤 믿음의 그릇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확인을 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신앙 생활 걸음 속에 이 부분들부터 먼저 하나님께서 확인시켜 주셨어요. 창세기 37장에 보면 깊은 기도, 많은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요셉을 향한 분명한 계획을 보여 주셨어요. 그 계획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든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든 걸음 속에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이 있었지만 절대 흔들리지 아니하고, 넘어지지 아니하고, 그 모든 것들을 응답으로 누렸던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전도자로서 이 한 시대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우리 자신의 기준,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세와 어떤 믿음의 그릇들을 가지고 나갈 것인가, 여기에 대한 부분을 우리가 바로 깨닫는다면 그 때부터 응답의 역사는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특별히 본문을 가지고 전도자로서 내가 지금 어떤 자리에 어떤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예수님 부활하시고 나서 천사들과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부분들을 가지고 우리가 살펴보면서 귀중한 한 주간 은혜 입고 승리하는 그런 축복된 걸음들로 인도받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6절)
먼저 첫 번째입니다. 우리가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믿음의 그릇, 첫 번째로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 오늘 본문 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가 여기 계시기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물론 천사들이 지금 예수님의 죽으심 앞에 사모하며 두려움으로 기다리고 있는 이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만 여기에 중요한 말씀이 나와요. ‘그가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여기서 ‘말씀대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들과 사건과 문제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이 신앙의 바탕이 확인될 때, 이 배경이 세워지는 만큼 모든 우리에게 일어나는 문제와 사건을 보는 눈들과 해석하는 눈들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정말로 전도자로서 여러분이 첫 번째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믿음의 자세가 어떤 자세가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왜 보내어졌습니까? 돌들도 그냥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모든 주권 속에 모든 천지만물이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성경의 마태복음에 보면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신다고 말씀하셨고요, 또 공중에 나는 새도,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살아 있다는 이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내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내가 살아 있는 이 자체로 인해서 하나님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지금도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한 믿음,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시는구나.’하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전도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고, 병들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나이가 많아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죽는다는 것은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다하면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무엇 중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이루어가시고 심지어 우리의 생명조차도 그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오늘도 우리를 이 자리에 존재케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내가 살아있다는 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의 가치가 깨달아지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대부분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이 부분들이 안 되기 때문에 어디로 빠지느냐? 내 개인의 감정을 따라, 내 개인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되면 좋은데 미안합니다만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에요.
저는 성경을 보면서 불신자 상태에 대한 부분들이 에베소 2장 1절~7절에 죽 나와 있는데 우리가 많은 경우 우리도 모르게 불신자 상태 그대로 있다는 것을 제가 봤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에베소 2장 1절에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라 했잖아요. 바로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가지고 ‘죄와 허물로 죽었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죠. 그리고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여러분,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행하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대로 여러분 판단하고 생각하고 인도받는 것, 그게 불신자 상태라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 인도 받는 것이 뭐냐? 내 마음에 원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욕심나는 대로 인도받지 않는 것이 성령의 인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원하는 대로 살아가요. 내 감정 나오게 되고, 그래서 거기에 흑암이 틈타는 통로들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복음에 뿌리 내린다 할 때 무엇을 가지고 복음에 뿌리내린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의 삶의 기둥이 되어지고 우리의 삶의 바탕이 되어지는 것을 가지고 복음에 뿌리 내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떤 문제와 사건이 있든지, 하나님의 계획이 내 삶의 바탕과 기준이 되어 있으면 문제가 생기면 생길수록 우리는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때 흑암이 꺾이고 무너지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이 악한 흑암의 세력이 결박될지어다.”하는 권세를 누리는 기도도 물론 있어야 합니다만, 권세를 사용하는 기도도 사용해야 합니다만, 진짜 문제와 사건 당할 때에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선언하고 그 속에 들어가는 순간, 거기에 저절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흑암의 역사들이 무너지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와 사건이 있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잡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도 여기에 대해 갈등했던 부분들을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어요.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는 이 일에 있어서 많은 갈등들이 있었던 부분을 마태복음 26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26장을 넘어갔습니다만 예수님의 겟세마네에서의 기도가 나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임 당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그것이 고통스러우니까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그 어려운 고통과 고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어가는 과정임을 확인하고 또 믿음으로 이 사건을 맞이하기 위해 예수님이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세 번의 간절한 기도 중 그 첫 번째 기도가 뭐였냐 하면 마태복음 26장 39절에 보면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입니다.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이 잔을 내게서 물리칠 수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진짜 이 잔을 마시지 않고, 다시 말해서 십자가 지지 않고도 메시야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능히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잔을 마시지 않고 다시 말해서 십자가 지지 않고, 십자가 고통을 당하지 않고 메시야 될 수 있는 일을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그것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기 위해서 어떻든지 참고, 인내하고 그 고통 가운데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내게 이런 고통, 문제를 없애실 수도 있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없애주시는 것은 하나님에게 쉬운 것 아닌가.’ 이렇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너무 힘들다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문제를 우리가 안당하고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6:42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겠습니까” 내가 이 잔을 안마시고 다시 말해서 십자가 안지고 메시야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기도 끝 부분에 결국 결론 맺는 것은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여기에서 전도자로서 가져야 할 믿음의 중요한 자세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와 사건 때문에 갈등할 수 있지만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 있든지 간에 전도자들은 어떤 믿음으로 서야 하는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이 일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고백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세 번이나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가 문제와 사건을 놓고 어떤 자세로, 어떤 그릇으로, 어떤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있는가? 내가 어떻게 그 사건과 문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가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뿌리내리지 못하면 여기에서 잘못 인도받게 됩니다. 복음에 뿌리 내린다는 말은 이런 문제와 사건들 속에 결국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나아갔던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들,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들은 사실은 어떤 인간의 어떤 감정, 느낌,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어집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은 무조건 선한 계획이고 축복된 계획입니다. 우리의 기분과 감정을 따라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 이렇다 저렇다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다가 안되겠구나 하고 철수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한번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은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하나님이 이루어가신다는 사실. 이 사실이 우리의 믿음의 배경이 되어질 때 어떤 문제와 사건이 와도 그 안에 먼저 오는 것이 평안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려지는 축복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이 이 축복을 알았습니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그러면서 13절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14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으니라.” 분명히 하나님이 나에게 작정하신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전도자로서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믿음의 그릇, 믿음의 자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고난당하는 모습을 살펴보면 너무나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조롱, 고통, 괴로움을 당하시는 부분들은 어떤 면에서는 사단의 조롱같이 보여지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가 되어 가시 면류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덮어씌우고 그 가시 면류관을 짓누르니까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홍포를 입히고 조롱하는 것을 다 당하도록 그대로 두셨습니다. 당할 만큼 다 당하고 결국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수모를 다 당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에 다 완성하시고 예수님께서 고백하신 것이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일들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계획하신 것을 하나님이 다 이루십니다. 계획한 것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축복과 계획은 완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완전하게 이루십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천만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전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계획과 내 뜻대로 이뤄진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상관없이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이뤄진다는 것이 천만다행 아닙니까. 이 축복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서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내 인생, 가정, 가문, 직장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말씀을 통해서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주일날 예배 드리러 와서 분위기 따라 예배 드리고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말씀을 하나도 붙잡지 못하고 나가는 것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이 시간이 여러분의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밝히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가정과 가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말하는 시간이 말씀 듣는 이 시간입니다. 기도수첩하면서도, 강단말씀 들으면서도 그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또 주일날 들은 말씀을 기록한 부분을 현장에서 말씀 읽고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서 그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말씀 속에 우리 인생 전체를 향해 계획하신 바가 있고 지금 이 시간, 이 순간, 이 문제 앞에서의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도와 선교, 세계복음화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동일한 계획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방향을 여기에 맞추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응답받을 수 밖에 없는 축복의 걸음으로 인도받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지금 내게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내 직분에 맞도록 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고, 신분에 맞도록 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는데 말씀 들으면서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을 보고 전도자의 삶이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지금을 놓고, 우리 인생 전체를 놓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적고 큰 하나님의 계획과 상관없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여러분의 지금 형편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여러분의 모든 삶의 기준을 전도라는 사실에 대한 방향을 가지고 보면 거기에 정확하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저와 여러분에게 붙잡혀지는 은혜를 주시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씀 속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고 승리하는 전도자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를 누려라. (10절)
두 번째로, 우리는 어떤 믿음의 자세, 믿음의 그릇이 되어야 하는가?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를 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10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에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두려움, 공포, 고통가운데 빠져있을 때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에서 나를 보리라. 갈릴리가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으로부터 부름 받았던 곳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된 축복과 응답 속으로, 그리스도의 놀라운 역사 속에 들어온 배경이 갈릴리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갈릴리로 가라고 한 것은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현장입니까? 사실은 죽음과 멸망에 처해있던 현장, 사단과 저주 속에 빠져있던 그 현장에서 예수님이 그들을 불러내셨습니다. 그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저주와 재앙의 현장, 사단과 흑암의 현장, 실패의 현장, 고통의 현장 그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갈릴리로 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제자들이 있던 실패와 저주와 고통의 현장들이었고 사망과 사단의 운명가운데 있는 현장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인생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실력이 있든 없든, 수준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다 거짓말하고 있고 속이고 있고 속고 있고 숨겨놓고 있을 뿐 행복이 없고 저주 재앙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은 창세기 3장 문제를 그리스도로 해결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어느 날 닥쳐오는 저주와 재앙의 길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 저주와 재앙, 실패와 고통, 사망의 현장에 가라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나를 보리라.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다시 살아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신 사실들을 바로 너희들이 있는 그 현장으로 돌아가서 그 현장에서 체험하고 누리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옛날로 돌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만나고 그 분과 함께 임마누엘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역사는 내 직장 속에서, 내 삶의 현장 속에서, 삶의 본래 모습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본래 모습 속에서 확인해야 될 것이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이라는 것을 말하는 부분이 갈릴리로 가라. 거기에서 나를 보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사람들 보면 자칫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한다는 것을 현실도피, 세속과 등지는 것인 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약속하신 부분이 그 현장을 향해 나아가라고 한 것입니다. 기도생활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은 죄악 투성이고 더럽기 때문에 세상을 피하려, 현실을 도피하려 합니다. 다음 시간에 나옵니다 만은 주님은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고 했습니다. 죄악, 저주, 실패, 고통이 있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제자 삼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가장 중요한 응답들을 어디에서 확인해야 하는가? 현장 속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장에서 모든 문제 해결하는 능력의 역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고 현실 속에서 참된 승리를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이겨냄으로 말미암아 정말 예수가 그리스도 되시는구나 라는 사실,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구나 라는 사실을 지금 저와 여러분이 속해있는 현실 속에서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갈릴리로 가라. 거기에서 나를 보리라.”
특별히 다른 이방 종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앙을 가지고 그 신앙들을 구체화, 현실화, 실제화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이상하게 기독교는 가장 현실화, 구체화, 실제화 시키는 것이 복음, 말씀, 기도 인데 말씀과 삶 따로, 기도와 삶 따로 전도와 삶 따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현장에서 성도들이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그것이 아닙니다. 말씀, 기도, 전도가 내 삶으로 인도되어지고, 연결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삶입니다.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를 왜 이야기 합니까? 말씀, 기도, 전도가 오늘의 말씀, 오늘의 기도, 오늘의 전도로. 나의 말씀, 나의 기도, 나의 전도는 그 말씀이 나와 연결된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과 삶 따로, 말씀과 삶 따로, 기도와 삶 따로, 전도와 삶 따로가 아니라 연결되는 것이 전도자의 삷 입니다. 말씀을 기록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노트가 붙잡고 있으라고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록한 그 말씀 속에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한 주간 그 말씀을 누리고 또 기도제목들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서 누리라고 말씀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 놓쳐버리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다 현실화, 실제화, 구체화 시키고 기도도 구체화 시키는데 기독교만 사실화, 구체화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갈릴리로 가라. 거기에서 나를 보리라.” 지금 있는 여러분의 현장이 그 어떤 현장이든지 간에 거기에서 참 왕이요, 참 제사장이요, 참 선지자이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심을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이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전도자입니다. 여러분이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사건을 대할 때도 보고, 느끼고 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 때도 갈릴리로 가라 거기에서 나를 보리라는 것은 전부 그리스도로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현장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최고의 현장인 것을,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어지는 최고의 현장인 것을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부른 찬송이 456장인데 그냥 찬송이 아닙니다. 거기에 보면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 손 못자국 만져라. 내가 어둠 속을 걸어갈 때에 그 손 못자국 만져라. 내가 부활의 주 따라가거든 그 손 못자국 만져라. 너의 죄악의 짐 무거울 때에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지금 여러분이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라는 말입니다. “갈릴리로 가라. 거기에서 나를 보리라.” 이런 저런 모든 현장 말할 수 있지만 가장 저주와 재앙 가운데 있는 그 현장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체험하시고 그리스도 그리스도로서 모든 문제 해결한 이 사실을 체험한 증인으로 승리하는 전도자의 삶이 되어지는 축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5월 2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마28:6-10)




서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응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와 그릇으로 생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은 어려운 말세시대로 앞으로 어떤 사건과 문제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계12장, 영적인 혼란들이 갈수록 일어남). ¹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기준과 ²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축복 속에 세워진 확실한 기준이 없다면 자신도 모르게 신앙생활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분명한 자세와 믿음의 그릇을 준비해야합니다(창37장, 하나님께서 요셉을 향한 분명한 계획을 보여주심). 이때 문제와 사건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응답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부활 이후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부분을 보면서, 전도자로서 어떤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나가야 할까요?
1. 하나님의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6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 모든 일들과 사건도 말씀(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어야 함
2)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역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함
3) 신앙생활은 복음의 뿌리를 내리는 것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기둥과 바탕이 되는 것)
(2)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앞에 서기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도 인간이셨기에 갈등이 있었음
a. 마26:39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b. 마26:42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2) 하지만 갈등에 빠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앞에 서기 위해 기도하심.
a. 마26:39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b. 마26:42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은, 하나님께서 직접 완전하게 이루십니다.
1) 마지막 고백 “다 이루었다.”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 모두 성취된 것을 뜻함
2)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내 인생과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 수 있음
3) 예배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직분, 신분에 맞는 계획을 (말씀 속에서, 전도 방향 가운데) 찾아내라!!
2.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를 누려야 합니다 (10절)
(1)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예수님을 처음 만난 현장으로 돌아가라는 말임 (저주와 재앙, 사단과 흑암, 실패와 고통의 현장)
2) 이 현장은 저주와 죽음 속에서 우리가 택함 받고 세움 받은 현장으로, 우리가 살려낼 현장임.
(2) 그리고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 그 현장에서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라는 역사를 누리고 체험하라는 말임 (우리의 본래모습과 삶, 직장 속에서)
2) 지금 자신이 속한 모든 곳에서 전도자의 삶을 제대로 살아라!! (우리의 삶과 오늘의 말씀, 기도, 전도는 별개가 아님)


결론: 전도자의 자세로서 ¹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속에서 계획과 뜻을 항상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²지금 여러분이 있는 그 현장에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라는 말씀처럼, 저주와 재앙이 가장 많은 그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 승리하는 한 주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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