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2013-06-0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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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마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6~20
■ 할렐루야! ‘뒤돌아 서지 않겠네.’ 진짜 오늘 예배를 통해서 중요한 약속을 붙잡음으로 다시 한 번 더 믿음을 회복하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가서 제자 삼으십시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오늘 이 한날 예배하는 가운데 모든 불신앙을 이기는 믿음 회복하시고 참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영적인 정상에 서는 최고의 축복의 예배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에는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우리가 붙잡았습니다.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기초가 되어지고 내 삶의 전부가 되는, 그런 실제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참 복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갈릴리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이 바로 ‘가서 제자 삼으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라는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명, 충성이라고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충성하고 사명 잘 감당하지만, 사실 교회 밖에서는, 우리의 현장 속에서는 이런 부분을 놓치고 있는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약점이 아닐까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명 감당하고 충성스럽게 일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사명 감당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참으로 사명 감당하는 것, 충성된 자로 서는 것, 그게 바로 전도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교회 안에서 충성스럽게 사명 감당하시고, 그리고 여러분, 이 충성스러운 사명 감당하는 부분들이 교회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삶의 터전으로 이어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통해서 참된 전도의 축복이 누려지는 그런 응답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아마 가장 많이 들었던 설교 중의 한 부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또다시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우리에게 주셨을 때는, 우리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본문을 주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일까?’에 대한 귀중한 답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은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한 번 따라합시다.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특별히 예수님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남기신 것과, 또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시는가하는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기시고자 하시는 것, 그리고 또 전도자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신 것이 무엇인가 짧은 본문 속에 너무 잘 나와 있는데,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두어 가지로 살펴 보면서 진짜 가서 제자 삼는 사역을 위해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할 것인데 그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에 관한 부분들을 두 가지로 정리하면서 함께 기도제목들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1. 훈련속으로 들어가라(16절)
먼저 첫 번째는, 우리가 훈련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소원을 누리라는 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부분들을 우리가 바로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진짜 전도자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사실 응답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충성스럽게 일하지 못하고 또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방향이 맞으면 우리의 삶은 누가 축복하시느냐, 하나님이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방향이 오늘 본문에 짧은 구절 속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제자 삼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이 응답받아야 할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훈련 속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여기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특별히 예수님께서 제자 삼으라, 이리 오라, 저리 가라, 지시하신 산에 가라, 오늘 우리가 본문을 보았습니다만 지난 주에 살펴 보았던 본문에 보면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그 모든 것들은 바로 훈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실 많은 무리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셨고 그 무리들 앞에 기적을 행하시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70인, 열두 명의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훈련시켜 나감으로 말미암아, 그 적은 제자들로 말미암아 전세계를 복음화했던 그 축복이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하나님의 응답을 누릴 수 있는 비밀 중의 비밀이 있다면, 저와 여러분이 다른 것이 아니라, 훈련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12명, 70명 훈련시켜 놓았는데 그들이 전세계를 복음화했어요. 그렇다면 오늘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셔서 훈련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들을 확인하고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제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가서 제자 삼기 이전에, 저와 여러분이 먼저 제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시는데 그 축복을 어디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훈련 속에서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가, 또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죽 인도받아왔던 부분들이, 물론 다른 교회들도 프로그램이 있고 여러 가지 훈련들이 다 있습니다만, 사실 우리 교회에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들 중 하나가 훈련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사실 많은 예산까지 전도비로 책정해서 투자하고 있고, 또 훈련 가시는 분들 지원하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 제자로 세워나가는 일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훈련들이 있기 때문에, 그 훈련은 그냥 훈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훈련이 응답으로 연결되어지는 축복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훈련 속에서 참된 응답을 확인하고 제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교회가 전체적인 이 방향 속에서 인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뭐 그렇게 훈련이 중요하냐, 아닙니다. 저는 좀 교회를 살피면서, 또 교인들, 성도님들을 살피면서 보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냥 평상시에는 잘 인도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길을 가게 되요. 그 차이가 어디 있느냐? 훈련 받고 안 받고 거기에 있습니다. 너무 중요해요. 그래서 제 마음에는 어떡하든지 정말로 제 자신이 먼저 훈련 속에서 모든 응답들을 확인해야겠다, 제 마음에 각오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특히 해외 나가는 현장 외에는 어떤 훈련의 자리든 항상 제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진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그 자리에서 제가 응답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교회도 사실 우리 교회가 진행되어지는 부분을 보면 많은 훈련들이 있는데 거기에 제가 한편으로 참 미안해요. 미안한 마음이 늘 우리 중직자 분들이나 성도님들 보면서 없지 않아 있습니다. 주일날 와서 1부 예배 드리고, 2부 예배 드리고, 좀 쉬었다 다시 와서 오후 예배 드리고 하루 좀 푹 쉬고 그렇게 월요일 생활, 삶의 현장 속에 들어가면 좋겠는데 사실 주일 오면 1부 예배 드리죠, 2부 예배 드리죠, 마치고 나면 점심 식사하고 소화도 안 됐는데 또 훈련이 있다 해서 훈련에 들어가야 하죠, 또 바로 이어서 네 시에 오후 예배 들어가죠. 또 마치고 나면 중직자 대학원도 있고 여러 가지 훈련들이 있죠. 참 미안해요. 너무 바쁘게 한 주일을 보내는 부분을 놓고 참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어요. 한 번씩은 이렇게 훈련을 빠질 때 보면, 제 방 바로 옆에 당회 장로님들이 계시는데 장로님들이 세상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부분을 보면 참 좋다 이런 생각도 가져요. 제가 제 방에 앉아 있으면서. 그런데 그런 시간들을 빼앗고 여러분을 훈련 속에 인도받도록 한다는 부분들이 교회를 섬기는 담임 목사로서 참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러나 제 마음에는 그런 훈련 속에 임하는 한 분 한 분이 진짜 한 시간을 참여한다 할지라도 그 한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보면 될 것이 아니냐, 이런 마음을 가지고 훈련 속에서 인도받도록 그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가 현장에서 물론 6일 동안 나름대로 인도 받다가 왔습니다만, 주일날 교회 와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맛보지 않고서는 진짜 현장에서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없습니다. 주중에 불러내어서 훈련을 하면 좋겠는데 요즘 시대가 워낙 바쁜 시대라서 그것은 가히 상상도 못합니다. 그래서 주일날 오셨을 때 하루에 다 끝내기 위해서 훈련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그냥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한 분 한 분이 훈련 속에 들어오셔서 응답 받는 실제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 훈련으로 인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훈련에 참여하면 훈련에 참여할수록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부담스럽고 피곤하게 됩니다. 주일날에 은혜 받고 현장에 들어가도 한 주간 영적싸움에 승리할까 말까한데 주일날 온갖 피곤함을 얻고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실패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진짜 훈련 속에 임할 때마다 응답 받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 훈련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물론 이런저런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왜 훈련 속에 인도 받아야 하느냐?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는 것, 그게 훈련의 목적입니다. 임마누엘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서 누린다면 모든 응답의 축복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복음화는 다른 게 아닙니다. 지금 내게 있는 일들과 사건과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이 일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하는 것을 누리는 데서 오는 응답이 세계복음화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훈련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임마누엘의 축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사실들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잘 안되지 않습니까. 교회 와서 예배 드릴 때는 되는 것 같은데 현장 나가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너무 어렵고 힘든 부분인 걸 압니다. 그래서 조금만 뭔가 잘 되면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이 축복을 주셨구나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고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뭔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면 나도 모르게 힘 빠지고 나도 모르게 우울함에 빠지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안다면 안 되어도 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가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아십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면 우울증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잘되면 내가 잘해서 잘 되는 거 같고 안 되면 내가 못해서 안 되는 거 같고……. 전부다 하나같이 그 중심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체질들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훈련 속에 인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훈련의 목적이 임마누엘의 축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중에 모여서 전도자의 삶 집중훈련을 하고, 말씀 붙잡아라, 기도와 전도를 체크하라, 정시·무시기도를 체크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자의 삶에 들어가서 나와 함께 하시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 삶을 바꾸자는 겁니다. 가장 축복이 전도고 기도고 말씀인데 우리가 주중에 말씀 인도 받고 전도하고 기도할 수 있는 상태가 안 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임마누엘을 못 누리기 때문입니다. 왜 임마누엘을 못 누리느냐? 우리 안에 다른 각인된 것들이 너무 많이 있어서 임마누엘의 비밀을 놓쳐버린 겁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 없이 살아왔다면, 40년을 살아왔다면 40년 살아온 만큼 다른 것들이 여러분 안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살아온 만큼 복음 누리지 못하고 있으면 반드시 다른 것들이 자리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기도가 축복인 것을 알면서도 기도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바꾸자는 겁니다. 내 안에 잘못 각인된 것들을 바꾸자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에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까? 어디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 영혼 속에 각인된 것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기도할 수 없고 전도할 수 없도록 황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와서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진짜 심각하구나하는 것을 느낌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대구 집회 후 두기고팀들이 모여서 지교회 현장 사역에 대한 포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60세 되신 교사분이 나와서 초등학교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정말로 저토록 우리 현장들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황폐해져 있느냐하는 하나님의 한을 그 분의 현장 이야기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교사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 분이 교사로 있는 학교는 대구에서 제일 잘나가는 1학군 속에 있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그 학교 안에 부장판사, 부장검사 부부의 자녀에게 영적문제가 와 있고,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온 학교 안에 너무 시끄럽고 자기 교실의 반 아이가 학용품 칼을 꺼내서 손목을 그으려고 하고, 완전히 교실 바닥 자체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그런 현장인 것을 이야기하면서 눈물로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현장에도 아이들이 빙의가 되어서 상담해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영적으로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 전도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황폐해져 있고 각인된 그 부분들을 바꿀 수 없는 것을 이미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바꾸기 위해서 40일 집중훈련 속에 들어가자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40일 집중훈련 속에 인도 받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자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나서도 고기 잡으러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모아서 40일 동안 감람산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제자들이 완전히 답을 내리고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는 순교의 자리까지 제자들이 가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 40일의 체험을 훈련 속에서 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뭔가 결단하고 결심하지만 자꾸 넘어집니다. 하겠다고 하면서도 뭔가 자꾸 무너집니다. 정말로 훈련 속에 들어가서 40일의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여기에 완전히 답을 냄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그 축복 속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어떤 문제, 사건, 일들 속에 임마누엘이 되어진다면, 나와 함께하시는 사실이 늘 누려진다면 전도자의 삶 집중 훈련이 필요 없습니다. 그 때 가면 끝내도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진짜 우리의 체질을 바꿔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의 영적상태를 바꿔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훈련 속에서 그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축복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누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나를 인도해나가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자꾸 여기에서 멀어집니다. 이 축복의 비밀들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훈련 속에서 나의 잘못 각인된 부분들을 바꾸어 가고 그래서 제자로 세워지는 것. 그 때 현장에서 가서 제자 삼으라는 축복된 사명들을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훈련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된 역사를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의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훈련 속에 들어가면 의심하다가도 믿음 가지게 됩니다. 결국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교회를 섬기면서 많은 분들이 의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다가도 늘 훈련 속에 있는 분들 보면 어느 순간에 모든 불신앙을 버리고 염려들 의심들을 버리고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로 서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원래 체질이 의심, 염려,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훈련 속에 들어가면 훈련 속에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제자 삼으시는 축복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가 있더라고 했습니다. (17절)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의심거리, 염려 거리 있다고 해서 주저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훈련 속에 있게 되면 그 의심이 변하여 믿음의 역사들로, 믿음을 따라갈 수 있는 하나님의 제자들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심할 수 있어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염려할 수 있어야 참된 복음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 믿음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 자리에 혹이나 의심하거나 염려 가지고 있는 분들 계십니까? 괜찮습니다. 훈련 속에 있게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제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또 많은 사람들이 따라 올 수 있는 제자 삼는 사역에 증인으로 서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의심하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답을 주셨습니다. 18절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참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렇다 저렇다 상관하지 않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무슨 말입니까? 의심 거리, 염려 거리 있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라는 말입니다. 지난 주에 갈릴리로 가라. 우리의 현장은 의심 거리, 염려 거리, 근심 거리, 걱정 거리 있는 곳 입니다. 갈릴리 현장이 그런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의심, 염려, 걱정이 있더라도 훈련 속에 있게 될 때 그 모든 것들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돌아가면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어떤 문제, 염려, 걱정 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가장 근본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17, 18절에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일절 아무 상관도 안하시고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는 것. 그리고 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정말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의심, 염려, 걱정 모든 것들이 믿음으로 회복하는, 믿음을 회복하는 그 증거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세워지게 될 때에 바로 현장에서 나로 말미암아 제자 세우는 증인으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게 되어있다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제목을 그냥 '가서 제자 삼으라' 해도 되는데 왜 '너희는' 라는 말을 붙였는가? 우리가 먼저 훈련 속에 들어가서 우리의 잘못된 각인된 부분들이 치유 받고 응답받고 증인으로 세워질 때 우리가 제자가 되어지고 우리로 말미암아 현장에 제자들이 세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먼저 우리에게 훈련 속에 응답을 확인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각오하고 결단하세요. '정말 나도 평생 동안 훈련속 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확인하리라.' 이 결단들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부족함을 아십니다. 연약함도 아십니다. 우리의 무능함도 아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결단하고 각오할 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다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내 능력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얄팍한 지식으로 세상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13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배경입니다. 그 믿음의 배경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소원을 누려라(마태복음 결론 - 하나님의 소원)
두 번째, 하나님의 소원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결론을 말씀하고 있으면서 특별히 20절에 보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이유는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창조의 원리가 물고기는 물속에, 나무는 땅에 뿌리는 내리고, 새는 공중을 날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는 가장 중요한 축복이 바로 예배의 축복입니다. 특별히 요즘 애완견을 많이 키우지만 아무리 개가 예뻐도 예배드린 적이 없습니다. 인간만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교제하도록 축복하셨다는 사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축복이 무엇인지 알고 받아 누릴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예배를 통해서 밝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살도록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하나님과 연합된 부분들이 끊어졌다는 것을 가지고 창세기 3장 사건, 원죄라고 합니다. 배후에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므로 이 땅에 가면 갈수록 어려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들이 마귀의 자녀로 살아가고 우상 숭배 합니다. 특별히 꼭 돈을 세어놓고, 나무를 깎아놓고, 물 떠놓고 비는 것만 우상 숭배가 아니라 요즘은 어떤 식으로 우상숭배가 이뤄지냐면 자기를 우상화하고 자기를 강하게 합니다.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우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우리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생들이 스트레스 받고 우울증에 걸리고 온갖 정식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쉽게 죽이고 참을성이 없어지고 자기 자신도 쉽게 자살해버리는 육신적인 문제 속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지옥 가기 전에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 후대들에게 영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더 심각한 문제로 후대들이 영적문제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 사귐이 끊어진데서 온 문제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이키는 것,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것을 해결할 때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위해서 계획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교제하시고자, 사귀고자 구약에 보면 피의 제사를 말씀했습니다. 피의 제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 함께 교제하고 사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결국은 이방인에게 이 복음이 증거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지금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는 자리에 서게 됬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보면 하나님의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 이 복음의 역사가 증거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피의 제사로, 한 백성과 한 나라를 선택하시고 또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사실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친히 내가 가야되겠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성육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무엇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표현이 성탄절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또 이것도 안되니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만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요한복음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안 되겠다. 너희 속에 들어가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믿는 자들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 위에 성령의 역사로, 말세에 남녀종들에게 물 붓듯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성령의 역사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소원인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들어오신 성령은 우리를 완벽하게 책임지시고 인도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고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군대가 동원되면서 보이지 않는 내 가정, 가문에 역사하는 흑암의 역사를 꺾으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고 제자 삼는 귀한 축복된 역사 속에 우리를 세우십니다. 그 역사가 바로 성령이 우리 속에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28:20에 하나님의 소원 중에 소원, 훈련 중에 훈련을 말씀하고 있는데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어떤 문제, 사건, 일들 속에 주님이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게 될 때 모든 불신앙, 흑암의 세력이 꺾이고 모든 축복의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의 소원 중 소원,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훈련 중 훈련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세상 끝날까지 어떻게?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구하면 그 속에 모든 것 다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407장을 다시 봅시다. 우리가 그냥 부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은 하나님의 소원이 거기에 담겨져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의 축복 가운데 인도하시는 축복의 응답이 오늘 찬송 407장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 날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마음 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마음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내 몸에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가 나와 함께 계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 날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도 주님이 임마누엘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누리는 것이 제자입니다. 이 사실을 누리게 될 때 현장에서 제자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전도자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훈련 속에 들어가서 나의 잘못 각인된 부분들이 치유 받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소원인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충만함의 비밀을 사실로 붙잡게 될 때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사실적인 응답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전도자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6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마28:16-20)
서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현장에서 사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직장, 생활, 삶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는 사명을 잘 감당하지만, 현장과 삶의 터전에서는 사명을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의 현장에서 삶으로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 전도라는 말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중요하게 끝을 맺는 본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동안 사역하시면서 무엇을 남기시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보며 하나님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또 그 축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1. 훈련 속으로 들어가라 (16절)
(1)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제자로 세워지기 원하십니다.
1)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비밀 중의 비밀은 훈련 속에서 이루어짐 (16절 : 예수께서 지시한 산에 이르러)
2) 예수님께서도 전 생애를 통해 하신 것이 제자들을 훈련시키신 것임
(2) 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과 내용은 임마누엘(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의 축복을 누리는 것임
1) 임마누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의 잘못 각인된 것들 때문임
2) 기도와 전도가 안 될 만큼 황폐해진 영적상태와 체질을 훈련을 통해 바꾸어야 됨 (40일 훈련 이후의 제자들의 모습)
3) 문제와 사건, 의심과 근심이 있을지라도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께 돌아가면 믿음이 회복됨 (부활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
2. 하나님의 소원을 누려라 (20절. 마태복음의 결론=하나님의 소원)
(1)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이유도,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함임
2)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훈련 중의 훈련은 바로 예배임
(2)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습니다.
1) 사단의 역사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모든 문제(원죄) 가운데 빠짐
2) 하나님께서 피 제사로 회개를 약속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하길 원치 않음
(3)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그리스도입니다(성육신).
1) 하지만 사탄의 배경아래 인간은,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조차 거부함(요1:11)
2)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함께하시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승천하심
(4)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소원의 성취).
1)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며, 기도할 때 응답하심
2) 또 하늘 군대를 동원하시고, 모든 흑암을 결박하시며, 천국시민권자로 제자 삼는 사역을 허락하심
3) 하나님의 소원 :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결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제대로 붙잡아야 합니다. 전도자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 가운데 ¹훈련 속에서 잘못 각인된 것을 치유하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려면 됩니다. 그리고 ²하나님의 소원인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성령충만의 역사를 누려야 됩니다.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마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6~20
■ 할렐루야! ‘뒤돌아 서지 않겠네.’ 진짜 오늘 예배를 통해서 중요한 약속을 붙잡음으로 다시 한 번 더 믿음을 회복하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가서 제자 삼으십시다! 할렐루야! 예, 감사합니다. 오늘 이 한날 예배하는 가운데 모든 불신앙을 이기는 믿음 회복하시고 참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영적인 정상에 서는 최고의 축복의 예배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에는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 ‘갈릴리에서 나를 보리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우리가 붙잡았습니다.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기초가 되어지고 내 삶의 전부가 되는, 그런 실제를 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참 복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갈릴리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이 바로 ‘가서 제자 삼으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라는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명, 충성이라고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는 충성하고 사명 잘 감당하지만, 사실 교회 밖에서는, 우리의 현장 속에서는 이런 부분을 놓치고 있는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약점이 아닐까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명 감당하고 충성스럽게 일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사명 감당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우리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참으로 사명 감당하는 것, 충성된 자로 서는 것, 그게 바로 전도라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교회 안에서 충성스럽게 사명 감당하시고, 그리고 여러분, 이 충성스러운 사명 감당하는 부분들이 교회 안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삶의 터전으로 이어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통해서 참된 전도의 축복이 누려지는 그런 응답의 사람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아마 가장 많이 들었던 설교 중의 한 부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또다시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우리에게 주셨을 때는, 우리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본문을 주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일까?’에 대한 귀중한 답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은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한 번 따라합시다.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특별히 예수님의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남기신 것과, 또 무엇을 하시기를 원하시는가하는 부분들이 오늘 본문에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기시고자 하시는 것, 그리고 또 전도자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신 것이 무엇인가 짧은 본문 속에 너무 잘 나와 있는데,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두어 가지로 살펴 보면서 진짜 가서 제자 삼는 사역을 위해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할 것인데 그 축복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에 관한 부분들을 두 가지로 정리하면서 함께 기도제목들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1. 훈련속으로 들어가라(16절)
먼저 첫 번째는, 우리가 훈련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소원을 누리라는 부분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부분들을 우리가 바로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진짜 전도자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교회에 충성하고 봉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사실 응답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충성스럽게 일하지 못하고 또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방향이 맞으면 우리의 삶은 누가 축복하시느냐, 하나님이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방향이 오늘 본문에 짧은 구절 속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제자 삼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이 응답받아야 할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훈련 속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여기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특별히 예수님께서 제자 삼으라, 이리 오라, 저리 가라, 지시하신 산에 가라, 오늘 우리가 본문을 보았습니다만 지난 주에 살펴 보았던 본문에 보면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그 모든 것들은 바로 훈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실 많은 무리들 앞에서 기적을 행하셨고 그 무리들 앞에 기적을 행하시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70인, 열두 명의 제자들을 따로 세워서 훈련시켜 나감으로 말미암아, 그 적은 제자들로 말미암아 전세계를 복음화했던 그 축복이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하나님의 응답을 누릴 수 있는 비밀 중의 비밀이 있다면, 저와 여러분이 다른 것이 아니라, 훈련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12명, 70명 훈련시켜 놓았는데 그들이 전세계를 복음화했어요. 그렇다면 오늘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셔서 훈련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이 주신 응답들을 확인하고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제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가서 제자 삼기 이전에, 저와 여러분이 먼저 제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시는데 그 축복을 어디서 누리기를 원하느냐, 훈련 속에서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가, 또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죽 인도받아왔던 부분들이, 물론 다른 교회들도 프로그램이 있고 여러 가지 훈련들이 다 있습니다만, 사실 우리 교회에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들 중 하나가 훈련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사실 많은 예산까지 전도비로 책정해서 투자하고 있고, 또 훈련 가시는 분들 지원하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 제자로 세워나가는 일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훈련들이 있기 때문에, 그 훈련은 그냥 훈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훈련이 응답으로 연결되어지는 축복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훈련 속에서 참된 응답을 확인하고 제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교회가 전체적인 이 방향 속에서 인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뭐 그렇게 훈련이 중요하냐, 아닙니다. 저는 좀 교회를 살피면서, 또 교인들, 성도님들을 살피면서 보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냥 평상시에는 잘 인도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길을 가게 되요. 그 차이가 어디 있느냐? 훈련 받고 안 받고 거기에 있습니다. 너무 중요해요. 그래서 제 마음에는 어떡하든지 정말로 제 자신이 먼저 훈련 속에서 모든 응답들을 확인해야겠다, 제 마음에 각오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특히 해외 나가는 현장 외에는 어떤 훈련의 자리든 항상 제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진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그 자리에서 제가 응답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참여합니다. 그리고 교회도 사실 우리 교회가 진행되어지는 부분을 보면 많은 훈련들이 있는데 거기에 제가 한편으로 참 미안해요. 미안한 마음이 늘 우리 중직자 분들이나 성도님들 보면서 없지 않아 있습니다. 주일날 와서 1부 예배 드리고, 2부 예배 드리고, 좀 쉬었다 다시 와서 오후 예배 드리고 하루 좀 푹 쉬고 그렇게 월요일 생활, 삶의 현장 속에 들어가면 좋겠는데 사실 주일 오면 1부 예배 드리죠, 2부 예배 드리죠, 마치고 나면 점심 식사하고 소화도 안 됐는데 또 훈련이 있다 해서 훈련에 들어가야 하죠, 또 바로 이어서 네 시에 오후 예배 들어가죠. 또 마치고 나면 중직자 대학원도 있고 여러 가지 훈련들이 있죠. 참 미안해요. 너무 바쁘게 한 주일을 보내는 부분을 놓고 참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어요. 한 번씩은 이렇게 훈련을 빠질 때 보면, 제 방 바로 옆에 당회 장로님들이 계시는데 장로님들이 세상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는 부분을 보면 참 좋다 이런 생각도 가져요. 제가 제 방에 앉아 있으면서. 그런데 그런 시간들을 빼앗고 여러분을 훈련 속에 인도받도록 한다는 부분들이 교회를 섬기는 담임 목사로서 참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러나 제 마음에는 그런 훈련 속에 임하는 한 분 한 분이 진짜 한 시간을 참여한다 할지라도 그 한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보면 될 것이 아니냐, 이런 마음을 가지고 훈련 속에서 인도받도록 그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가 현장에서 물론 6일 동안 나름대로 인도 받다가 왔습니다만, 주일날 교회 와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맛보지 않고서는 진짜 현장에서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없습니다. 주중에 불러내어서 훈련을 하면 좋겠는데 요즘 시대가 워낙 바쁜 시대라서 그것은 가히 상상도 못합니다. 그래서 주일날 오셨을 때 하루에 다 끝내기 위해서 훈련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그냥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한 분 한 분이 훈련 속에 들어오셔서 응답 받는 실제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 훈련으로 인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고 훈련에 참여하면 훈련에 참여할수록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부담스럽고 피곤하게 됩니다. 주일날에 은혜 받고 현장에 들어가도 한 주간 영적싸움에 승리할까 말까한데 주일날 온갖 피곤함을 얻고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실패하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진짜 훈련 속에 임할 때마다 응답 받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 훈련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물론 이런저런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왜 훈련 속에 인도 받아야 하느냐?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는 것, 그게 훈련의 목적입니다. 임마누엘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서 누린다면 모든 응답의 축복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복음화는 다른 게 아닙니다. 지금 내게 있는 일들과 사건과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이 일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하는 것을 누리는 데서 오는 응답이 세계복음화의 응답입니다. 그래서 훈련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임마누엘의 축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사실들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잘 안되지 않습니까. 교회 와서 예배 드릴 때는 되는 것 같은데 현장 나가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너무 어렵고 힘든 부분인 걸 압니다. 그래서 조금만 뭔가 잘 되면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이 축복을 주셨구나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고 교만해집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뭔가 안 되는 것들이 있다면 나도 모르게 힘 빠지고 나도 모르게 우울함에 빠지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안다면 안 되어도 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가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지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를 아십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면 우울증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잘되면 내가 잘해서 잘 되는 거 같고 안 되면 내가 못해서 안 되는 거 같고……. 전부다 하나같이 그 중심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사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체질들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축복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훈련 속에 인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훈련의 목적이 임마누엘의 축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중에 모여서 전도자의 삶 집중훈련을 하고, 말씀 붙잡아라, 기도와 전도를 체크하라, 정시·무시기도를 체크하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누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전도자의 삶에 들어가서 나와 함께 하시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 삶을 바꾸자는 겁니다. 가장 축복이 전도고 기도고 말씀인데 우리가 주중에 말씀 인도 받고 전도하고 기도할 수 있는 상태가 안 되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임마누엘을 못 누리기 때문입니다. 왜 임마누엘을 못 누리느냐? 우리 안에 다른 각인된 것들이 너무 많이 있어서 임마누엘의 비밀을 놓쳐버린 겁니다. 분명한 것은 복음 없이 살아왔다면, 40년을 살아왔다면 40년 살아온 만큼 다른 것들이 여러분 안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살아온 만큼 복음 누리지 못하고 있으면 반드시 다른 것들이 자리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기도가 축복인 것을 알면서도 기도를 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걸 바꾸자는 겁니다. 내 안에 잘못 각인된 것들을 바꾸자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에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까? 어디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 영혼 속에 각인된 것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기도할 수 없고 전도할 수 없도록 황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와서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진짜 심각하구나하는 것을 느낌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대구 집회 후 두기고팀들이 모여서 지교회 현장 사역에 대한 포럼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60세 되신 교사분이 나와서 초등학교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정말로 저토록 우리 현장들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황폐해져 있느냐하는 하나님의 한을 그 분의 현장 이야기를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교사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이 분이 교사로 있는 학교는 대구에서 제일 잘나가는 1학군 속에 있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그 학교 안에 부장판사, 부장검사 부부의 자녀에게 영적문제가 와 있고,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온 학교 안에 너무 시끄럽고 자기 교실의 반 아이가 학용품 칼을 꺼내서 손목을 그으려고 하고, 완전히 교실 바닥 자체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그런 현장인 것을 이야기하면서 눈물로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현장에도 아이들이 빙의가 되어서 상담해오는 아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금 우리 청소년들이 영적으로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 전도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황폐해져 있고 각인된 그 부분들을 바꿀 수 없는 것을 이미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바꾸기 위해서 40일 집중훈련 속에 들어가자는 겁니다. 우리 교회가 40일 집중훈련 속에 인도 받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나의 영적인 상태를 바꾸자는 겁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나서도 고기 잡으러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모아서 40일 동안 감람산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제자들이 완전히 답을 내리고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는 순교의 자리까지 제자들이 가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 40일의 체험을 훈련 속에서 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뭔가 결단하고 결심하지만 자꾸 넘어집니다. 하겠다고 하면서도 뭔가 자꾸 무너집니다. 정말로 훈련 속에 들어가서 40일의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체험하고 여기에 완전히 답을 냄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그 축복 속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어떤 문제, 사건, 일들 속에 임마누엘이 되어진다면, 나와 함께하시는 사실이 늘 누려진다면 전도자의 삶 집중 훈련이 필요 없습니다. 그 때 가면 끝내도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진짜 우리의 체질을 바꿔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의 영적상태를 바꿔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훈련 속에서 그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축복을 누리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누리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이 나를 인도해나가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자꾸 여기에서 멀어집니다. 이 축복의 비밀들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훈련 속에서 나의 잘못 각인된 부분들을 바꾸어 가고 그래서 제자로 세워지는 것. 그 때 현장에서 가서 제자 삼으라는 축복된 사명들을 감당할 수 있는 축복의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훈련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된 역사를 보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의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훈련 속에 들어가면 의심하다가도 믿음 가지게 됩니다. 결국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저는 교회를 섬기면서 많은 분들이 의심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다가도 늘 훈련 속에 있는 분들 보면 어느 순간에 모든 불신앙을 버리고 염려들 의심들을 버리고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로 서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원래 체질이 의심, 염려, 걱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훈련 속에 들어가면 훈련 속에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제자 삼으시는 축복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가 있더라고 했습니다. (17절)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의심거리, 염려 거리 있다고 해서 주저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훈련 속에 있게 되면 그 의심이 변하여 믿음의 역사들로, 믿음을 따라갈 수 있는 하나님의 제자들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심할 수 있어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염려할 수 있어야 참된 복음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 믿음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 자리에 혹이나 의심하거나 염려 가지고 있는 분들 계십니까? 괜찮습니다. 훈련 속에 있게 되면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제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또 많은 사람들이 따라 올 수 있는 제자 삼는 사역에 증인으로 서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의심하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답을 주셨습니다. 18절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참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렇다 저렇다 상관하지 않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무슨 말입니까? 의심 거리, 염려 거리 있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라는 말입니다. 지난 주에 갈릴리로 가라. 우리의 현장은 의심 거리, 염려 거리, 근심 거리, 걱정 거리 있는 곳 입니다. 갈릴리 현장이 그런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의심, 염려, 걱정이 있더라도 훈련 속에 있게 될 때 그 모든 것들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돌아가면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어떤 문제, 염려, 걱정 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가장 근본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17, 18절에서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일절 아무 상관도 안하시고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는 것. 그리고 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정말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의심, 염려, 걱정 모든 것들이 믿음으로 회복하는, 믿음을 회복하는 그 증거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세워지게 될 때에 바로 현장에서 나로 말미암아 제자 세우는 증인으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게 되어있다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훈련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제목을 그냥 '가서 제자 삼으라' 해도 되는데 왜 '너희는' 라는 말을 붙였는가? 우리가 먼저 훈련 속에 들어가서 우리의 잘못된 각인된 부분들이 치유 받고 응답받고 증인으로 세워질 때 우리가 제자가 되어지고 우리로 말미암아 현장에 제자들이 세워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먼저 우리에게 훈련 속에 응답을 확인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각오하고 결단하세요. '정말 나도 평생 동안 훈련속 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확인하리라.' 이 결단들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부족함을 아십니다. 연약함도 아십니다. 우리의 무능함도 아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결단하고 각오할 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다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내 능력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얄팍한 지식으로 세상을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13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배경입니다. 그 믿음의 배경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소원을 누려라(마태복음 결론 - 하나님의 소원)
두 번째, 하나님의 소원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결론을 말씀하고 있으면서 특별히 20절에 보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이유는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창조의 원리가 물고기는 물속에, 나무는 땅에 뿌리는 내리고, 새는 공중을 날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귀는 가장 중요한 축복이 바로 예배의 축복입니다. 특별히 요즘 애완견을 많이 키우지만 아무리 개가 예뻐도 예배드린 적이 없습니다. 인간만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교제하도록 축복하셨다는 사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축복이 무엇인지 알고 받아 누릴 수 있는 통로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예배를 통해서 밝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살도록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하나님과 연합된 부분들이 끊어졌다는 것을 가지고 창세기 3장 사건, 원죄라고 합니다. 배후에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므로 이 땅에 가면 갈수록 어려운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들이 마귀의 자녀로 살아가고 우상 숭배 합니다. 특별히 꼭 돈을 세어놓고, 나무를 깎아놓고, 물 떠놓고 비는 것만 우상 숭배가 아니라 요즘은 어떤 식으로 우상숭배가 이뤄지냐면 자기를 우상화하고 자기를 강하게 합니다.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우리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우리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생들이 스트레스 받고 우울증에 걸리고 온갖 정식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쉽게 죽이고 참을성이 없어지고 자기 자신도 쉽게 자살해버리는 육신적인 문제 속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지옥 가기 전에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결국 후대들에게 영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더 심각한 문제로 후대들이 영적문제를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 사귐이 끊어진데서 온 문제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이키는 것, 하나님을 만나는 것. 이것을 해결할 때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위해서 계획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교제하시고자, 사귀고자 구약에 보면 피의 제사를 말씀했습니다. 피의 제사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 함께 교제하고 사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결국은 이방인에게 이 복음이 증거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지금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는 자리에 서게 됬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보면 하나님의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 이 복음의 역사가 증거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피의 제사로, 한 백성과 한 나라를 선택하시고 또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 사실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친히 내가 가야되겠다. 그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아닙니까. 그것을 가지고 성육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무엇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최고의 표현이 성탄절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또 이것도 안되니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만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요한복음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안 되겠다. 너희 속에 들어가겠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믿는 자들 속에 성령으로 들어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 위에 성령의 역사로, 말세에 남녀종들에게 물 붓듯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성령의 역사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소원인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들어오신 성령은 우리를 완벽하게 책임지시고 인도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하시고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군대가 동원되면서 보이지 않는 내 가정, 가문에 역사하는 흑암의 역사를 꺾으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고 제자 삼는 귀한 축복된 역사 속에 우리를 세우십니다. 그 역사가 바로 성령이 우리 속에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28:20에 하나님의 소원 중에 소원, 훈련 중에 훈련을 말씀하고 있는데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어떤 문제, 사건, 일들 속에 주님이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리게 될 때 모든 불신앙, 흑암의 세력이 꺾이고 모든 축복의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의 소원 중 소원,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는 훈련 중 훈련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세상 끝날까지 어떻게?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을 구하면 그 속에 모든 것 다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407장을 다시 봅시다. 우리가 그냥 부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은 하나님의 소원이 거기에 담겨져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의 축복 가운데 인도하시는 축복의 응답이 오늘 찬송 407장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 날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마음 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마음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내 몸에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가 나와 함께 계시네.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그 날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도 주님이 임마누엘로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누리는 것이 제자입니다. 이 사실을 누리게 될 때 현장에서 제자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전도자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훈련 속에 들어가서 나의 잘못 각인된 부분들이 치유 받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소원인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충만함의 비밀을 사실로 붙잡게 될 때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사실적인 응답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전도자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6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
(마28:16-20)
서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현장에서 사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모든 족속으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직장, 생활, 삶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는 사명을 잘 감당하지만, 현장과 삶의 터전에서는 사명을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의 현장에서 삶으로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 전도라는 말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중요하게 끝을 맺는 본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동안 사역하시면서 무엇을 남기시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보며 하나님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또 그 축복을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요?
1. 훈련 속으로 들어가라 (16절)
(1)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제자로 세워지기 원하십니다.
1)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비밀 중의 비밀은 훈련 속에서 이루어짐 (16절 : 예수께서 지시한 산에 이르러)
2) 예수님께서도 전 생애를 통해 하신 것이 제자들을 훈련시키신 것임
(2) 훈련의 가장 중요한 목적과 내용은 임마누엘(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의 축복을 누리는 것임
1) 임마누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의 잘못 각인된 것들 때문임
2) 기도와 전도가 안 될 만큼 황폐해진 영적상태와 체질을 훈련을 통해 바꾸어야 됨 (40일 훈련 이후의 제자들의 모습)
3) 문제와 사건, 의심과 근심이 있을지라도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께 돌아가면 믿음이 회복됨 (부활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
2. 하나님의 소원을 누려라 (20절. 마태복음의 결론=하나님의 소원)
(1)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이유도,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함임
2)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훈련 중의 훈련은 바로 예배임
(2)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습니다.
1) 사단의 역사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모든 문제(원죄) 가운데 빠짐
2) 하나님께서 피 제사로 회개를 약속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하길 원치 않음
(3)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그리스도입니다(성육신).
1) 하지만 사탄의 배경아래 인간은,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조차 거부함(요1:11)
2)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함께하시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승천하심
(4) 예수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소원의 성취).
1)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며, 기도할 때 응답하심
2) 또 하늘 군대를 동원하시고, 모든 흑암을 결박하시며, 천국시민권자로 제자 삼는 사역을 허락하심
3) 하나님의 소원 :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결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제대로 붙잡아야 합니다. 전도자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 가운데 ¹훈련 속에서 잘못 각인된 것을 치유하고,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려면 됩니다. 그리고 ²하나님의 소원인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성령충만의 역사를 누려야 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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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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