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2013-08-2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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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행2:41~47)
22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1~4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을 해 주셨습니다. 인사합시다. 그리스도로 충만합시다! 오늘 찬양이 한 마디로 말하면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미 2000년 전에 교회 안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올 것을 말씀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나아가는 길에 있어,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다가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려고 여러분을 세우셨다고 장로님에게 말씀하시면서 29절에 보면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 안에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여기서 말하는 사나운 이리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사단, 마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양떼들을 아끼지 않는다 했는데 양떼들인 교회와 교인들을 흔들 것이라는 사실이죠. 그러면서 30절에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한다...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복음 아닌 다른 것을 자꾸 가르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을 이야기한 것이죠. 사실은 이 에베소 장로들을 이제는 보지 못한다는 생각 속에서 밀레도에서 장로들을 불러서 고별 설교를 한 내용인데, 그것이 2000년 전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 현장에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무슨 말이냐? 사실 그 당시에 바울의 교회를 향한 염려는 복음이 변질될까봐 염려한 것이고 또 교회가 원색적인 복음을 말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이런 두려운 염려들 속에서 말한 것인데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가졌던 교회를 향한 이 마음을 오늘 여러분들 마음에 새기고, 정말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마지막 시대에 악한 사단, 마귀가, 물론 우리 성도 개개인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공격하지만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교회 안팎에서 공격해오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뉴 에이지 운동이나 프리메이슨, 또 유대인들이 일어나서 사실은 기독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도 복음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사람들이 좋게 여기는 것들, 그런 것들을 통해서 교회가 방향 맞추어 감으로 말미암아 교회 본질을 놓쳐 버리고 원색적인 복음을 놓쳐 버리고, 그렇게 지금 교회 안에서 사단의 전략으로 말미암아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이단들이 나오고 교회 안에서 사이비가 나오고 이런 것들이 일어나서 점점 교회에 복음을 희석시키고 복음을 변질시키는, 이런 일들이 우리 현장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 교계에 비상이 걸려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다 들어보셨죠, 신천지라고. 혹시 우리 교회에 신천지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믿고 회개하고 구원 받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들어와 있는 분들 계시다면. 지금 교회들마다 사실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신천지가 어떻게 활동을 하느냐? 그래도 한국에서 큰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합동 교단과 통합 교단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합동측 이렇게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측입니다만. 그런데 교단마다 교단패가 있지 않습니까? 그 교단을 특정 짓는 패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 교회들이 위장을 해서 합동 교단의 교단패를 붙여 놓고, 또 교단소속증명서, 노회소속증명서까지 다 발급받아서, 위조된 것들을 받아서 버젓이 합동 교단으로 행세를 하면서 신천지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드러났는데 제가 알기로 이건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 합동측으로 위장해서 활동하고 있는 신천지가 67개 교회라고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교회 이름과 함께 장소가 기독교 신문에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교회 안에 사이비들이나 이단들이 일어나서 자꾸 복음을 희석시키고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 사단의 가장 큰 공격 중의 공격이 있다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하냐? 에베소서 3장 21절에 보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사단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공격하고 있고, 이미 성경에도 곳곳에 마지막 때 악한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가 힘을 잃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한 시대 세계복음화해야 하기 때문에, 또 이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성경에 나와 있는 올바른 교회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교회를 공격해 오는 이런 사단의 궤계들 앞에서 그 사단의 궤계를 꺾을 수 있는 참된 복음이 복음되어지도록 하는 교회,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올바른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어떤 교회가 올바른 교회인가? 오늘 특별히 본문에 초대교회, 다른 말로 하면 예루살렘 교회죠, 이 초대교회를 통해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살펴보고 우리 함께 기도제목을 붙잡고, 교회를 살려야 하겠고 그 속에 내가 참된 축복의 응답을 받아 누림으로 말미암아 한 시대를 살리는 응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부분들은 초대교회, 다른 말로 하면 예루살렘 교회죠, 그리고 사도행전 11장부터 보면 안디옥 교회가 나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발판 삼아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그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세계 선교, 로마를 복음화하는 귀중한 응답의 역사들이 일어났는데 그렇다면 그 안디옥 교회의 발판 되어지는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교회였는가?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과 방향이 맞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도행전 2장에 초대교회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방향 맞는 교회는 이렇다고 결과로 된 교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과 방향이 맞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과 방향이 맞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1. 언약을 붙잡은 교회
먼저 첫 번째입니다. 언약으로 시작하였고 언약을 붙잡은 교회가 초대교회였고 마가다락방 교회였습니다. 언약을 붙잡는 교회... 언약을 잡았는가 못 잡았는가? 언약을 발견한 자는 구원을 받았고 언약을 체험한 자는 진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의 멋을 아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고, 또 그 언약을 누리는 자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 충만한 역사가 그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언약을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체험하게 될 때에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 멋있는 신자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고 그 언약을 체험함과 더불어 그 언약을 누리게 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언약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불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불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약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이 영원한 것이고 또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것이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고 인간의 영혼이 영원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데 그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만나는 길,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 사단 이기는 길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만나는 길,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 사단 이기는 길을 말씀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냐? 바로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만 믿어야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만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아니라면 굳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음부의 권세까지, 음부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그 저주를 당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어야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고, 음부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그 저주를 친히 당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만이어야 하느냐?
여러분,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이 땅에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백년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려 지느냐, 천년 수고하고 애쓴다고 해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려 지느냐, 아닙니다. 도저히 인간에게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땅에 그 어느 누가, 그 어떤 훌륭한 사람이, 그 어떤 훌륭한 성인이 세상을 이겼습니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을 이기시는데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죠. 그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러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단의 종노릇에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 사단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이 땅에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단의 세력을 꺾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이 안 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안 되고,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유일한 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 그래서 이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이 사실을 발견한 자는 구원받은 것이고, 이 그리스도, 이 사실을 체험하는 것을 가지고 신앙 생활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를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우리의 모든 문제와 사건 보는 눈들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진짜 그리스도 체험한 자는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구나,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 그리스도란 말이 이 말이구나, 이게 깨달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는 구원 받고, 그리스도를 체험한 자는 분명한 것은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건과 문제 속에서 오히려 기다려집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가 기다려지게 되어 있어요. 왜냐? 그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되고 정말 모든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이 말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기다려지게 되어 있어요. 마치 여러분,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시험을 기다립니다. 그렇잖아요. 공부 못하는 사람이 시험하면 지겨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 적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어떤 생각이 드느냐? 시험 때 되면 교무실에 불이 나서 시험지가 타 버리는 것이 안 좋겠냐는 그런 생각도 했다니까요. 공부를 못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부 잘 하는 사람은 기대가 됩니다.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까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 수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영 못하는 사람은 물만 보면 겁나잖아요. 우리 아들은 어릴 때 동화책을 읽어줬는데 상어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 각인이 되어서 수영을 못 배워요. 왜냐? 물에 들어가면 상어한테 물릴 줄 알고 수영을 못 배워요. 그런데 진짜 수영 잘하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파도가 쳐온다 할지라도 파도를 거슬러 타지 않습니까. 그게 수영 잘 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진짜 내가 예수가 그리스도심을 체험하게 되면 어떤 문제와 사건 있다 할지라도, '아, 하나님 이걸 통해서 또다시 나에게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하시는구나.'하고 기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이게 특징입니다. 우리가 문제와 사건 당할 때마다 뭔가 두렵고 힘들고 어렵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가그릐스도임시을 체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문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문제와 시험을 주신 게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결국은 복음이 복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문제입니다. 바울이 고후1:8-9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이 전도자로서 복음 전하는 사역에 있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느냐? 8절에 자기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되었는데 깨닫고 보니까 그게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함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 언약 가진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시험과 문제와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문제를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거 아닙니다. 이 언약 붙잡고 기도만 하면 됩니다. 사실 초대 교회가 그러한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 붙잡고 행1:14에 보면, 전혀 기도 속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 언약 붙잡고 기도만 되어진다면 우리 모든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 밥솥에 밥을 앉혀놓고 콘센트를 꼽고 누워 자도 밥은 되지 않습니까. 같습니다. 우리가 언약 붙잡고, 언약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기도만 하게 되면 역사는 누가 하느냐? 하나님이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없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혹은 여러분에게 염려나 근심이나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그 어떤 것도 염려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히 그 그리스도가 역사하시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그 부분들 속에 정말로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가를 점검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진짜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고 기도하면 누가 역사하시느냐? 하나님이 굉장한 어마어마한 역사들을 우리 삶의 현장에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세상이 절대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지금 우리에게 성령으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세상에 절대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신 그 분이 그리스도인데 그분이 지금 우리에게 성령으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오늘 장학금 받는 수여자들이 이 자리에 같이 참여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성공 속에서 성공자, 엘리트를 살리는 귀중한 축복을 누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힘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하면 어느 정도는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한계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그 일을 행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전도의 문이 저절로 여렬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4에 보면 바람 같은 불 같은 역사가 임했다고 합니다. 아무 사람도 막을 수 없는 그런 역사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니까 저절로 문들이 열려졌습니다. 어떤 문이냐? 전도의 문이 열리고 현장 보는 눈이 열리고 메시지를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게 초대교회 안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41절부터 47절을 읽었는데 그 이전을 보세요. 현실적인 부분들 가지고 먼저 그 현실을 성경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그리스도기 때문에 답을 얻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그걸 가지고 메시지가 이해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현실을 성경으로 재해석하고 성경에 가장 큰 핵심이 그리스도기 때문에 그 모든 현실의 답을 그리스도로 보게 되면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 없어집니다. 이게 안 되기 때문에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현실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로 답을 얻게 되면 메시지가 이해됩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붙이시는 사람을 붙이시는 참된 전도의 문이 열리는 사실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게 오늘 읽지 않은 본문에 나옵니다. 초대교회에 방언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교회 밖의 사람들이 이 초대 교회를 바라보며 뭐라고 했느냐하면, 13절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술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것을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술이 취한 것이 아니고 요엘서에 말세의 남녀종들에게 물붓듯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했는데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대한 답을 내게 되는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예수 그리스도로 답을 냅니다. 그러면서 22,-24절에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아페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합니다. 누구를 이야기했습니까? 그리스도를 이야기했습니다. 현실적인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술 취한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방언하고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그것을 본 사람들이, 아니 저건 술 취한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면서 거기에 대한 답으로 그리스도를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보면 또 다윗을 이야기 하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현실을 보고 성경으로 해석했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로 답을 주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일어난 결과가 3000제자가 일어났습니다. 메시지가 제대로 이해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람ㅇ르 붙이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와 사건 당하게 되면 그 현실 속에서 성경으로 해석하는 일들은 어느 정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진짜 답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되는데 그걸 잡지 못해요. 그것을 잡지 못하는 증거갸 뭐냐? 문제 당하고 어려움 당하면 두려움, 걱정,염려에 사로 잡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의 현실적인 부분들 속에서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고 거기에 대한 답으로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때 그 때에 메시지가 이해되었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 오늘 초대 교회에 3000제자를 붙이셨습니다. 정말로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하고 붙잡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제자가 붙여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은 성령충만함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성령충만한 제자가 현장에서 그리스도 말해서 일꾼 세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령 충만함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무엇 때문에 구합니까? 능력을 행하기 위해서, 병 고치기 위해서, 신유은사하기 위해서, 방언하기 위해서, 무언가 다른 사람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함이 아닙니다. 방언하는 것, 병 고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진짜 성령 충만함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계복음화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장을 살리는 것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일꾼을 세우는 것이 성령 충만함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성령의 역사는 세계복음화의 영입니다. 가장 성령 충만한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내가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충만해서 현장에서 일꾼에게 그리스도를 말해서 그리스도를 알아듣는 제자를 세워나가는 것이 가장 성령 충만함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이 축복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함을 기도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자기 자신의 인격을 위해서 성령 충, 자기 자신 내면의 양심적인 수양을 위해서 성령 충, 내가 교회를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마음들을 가지고 성령 충 구합니다. 전부 틀린 것입니다. 성령 충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현장을 살리기 위해서, 현장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성령 충만의 모습이 오늘 초대교회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 충만한 사람들이 현장에서 그리스도 말해서 3천 제자 세우고, 일꾼 세우는 것이 가장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저는 하나교회 성도님들이 이 성령 충만하다 비밀을 누리는 한분 한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 충만함의 결과(41~47절)
성령 충만함의 결과가 무엇인가? 사도행전 2:41-47에서 말하고 있는데 언약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은 되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부림쳐서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절로 언약잡고 기도하면 되어지게 되어있는데 오늘 초대교회안의 모습을 보면 성령 충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2:42절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씀운동 중심한 교회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면 말씀운동을 중심한 교회가 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생명 걸고 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우선해야할 것이 있다면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이 말은 목사의 말을 잘 들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분명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자녀 맞죠?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누가 말씀을 주시는가,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는 것을 보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이 내 영혼 속에 붙잡혀지게 되고, 내 영혼 속에 깊이 묵상되어질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 안에 이미 복음 외에 다른 것들로 각인되어진 것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복음 듣기 전에 많은 것들이 뿌리내려져있고 체질화 되어있고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도 모르게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근본복음으로 말미암아 각인된 것 외에 각인된 것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근본각인된 것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연세가 들면 들수록 정말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여러분을 망하게 하는 근본 각인된 것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붙잡는 것이 중요하고 그 말씀 붙잡고 깊이 묵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기 전에 1부 예배 마치고 우리 교회 한나회 할머니 두 분을 만났었습니다. 제 방에 와서 다른 이야기 때문에 말씀을 조금 나누었습니다. 이 분들이 소망지교회를 하시면서 이렇게 인도받고 있습니다 하면서 연세가 81세입니다. 엄청난 연세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복음이 있어서, 말씀이 들어가서 그런지 늙으시지를 않았습니다 너무나 고운 모습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시는데 제가 내어놓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 본부에서 매월마다 나오는 기도수첩을 하는데 할머니가 그 기도수첩을 매일매일 오늘의 말씀, 기도, 전도를 씁니다. 그런데 제가 봐도 깜짝 놀란 것이 뭐냐면, 먼저 글씨를 참 잘 쓰시는구나. 우리 고등학생들보다 글씨를 더 잘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 기도수첩을 쓰시고 그것가지고 기도하시고 한 주간 스케줄을 다 정리해놓으시고, 거기에 주의 종들을 위한 기도, 그 주간에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 지난주에는 대학부 수련회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부분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 유지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연세 드실수록 우리 안에 말씀이 있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다른 각인된 것으로 빠져들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은혜를 받는 순간마다 우리도 알지 못했던 우리 안에 잘못 각인된 것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른 것으로는 절대 치유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활력이 있어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치유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붙잡혀지고 묵상되어질 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영적인 문제들이 다 치유되어지는 축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보통 말이 아닙니다. 정말 신앙생활에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서로 교제하며" 인간적으로 잘해주고, 잘 살고, 친하게 지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서로 교제하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해서 성도의 교통함입니다. 교회 안에는 인격이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통, 서로 교제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격이 훌륭한 분은 훌륭한 대로, 그렇지 못한 분은 그렇지 못한 대로 하나 되어 한 방향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서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15-18에 보면은 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셔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사실 부끄러운 자리 아닙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 다음에 두 번째 물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다음에 세 번째 물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른 사람 비교하지 말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무엇인가? 인격가진 자나 인격 가지지 않은 자나 하나 되어서 한 방향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성도의 교제 "서로 교제하며" 그 말입니다. 거기에 성도의 교통함의 귀한 축복의 역사들이 누려지게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 "떡을 떼며" 여기에서 떡을 뗀다는 말은 예찬과 성찬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과 예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기념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밖에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초대교회는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 보혈의 피 없이는 안 됩니다. 이 고백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떡을 뗀다는 말입니다. 오늘 찬양대가 참 은혜스러운 찬양을 불러주셨는데 정말 예수 그리스도 그 보혈의 피로 여러분이 깨끗하게 되어있습니까? 어제 그리스도로 충만했습니까? 오늘도 그리스도로 충만하며 오늘도 나에게 그리스도 그 보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졌다는 것. 그것이 "떡을 떼며" 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2:42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 살릴 수 있는 기도의 비밀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것이 초대교회의 교회 색깔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지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증거를 주셨는가? 43절 보세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이런 색깔을 띄니까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주셨는가?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했습니다. 지금과는 영 딴판입니다. 지금 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합니까? 천만예요. 완전히 교회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교회에 대해서 욕합니다. 교회 목사에 대해서 조그마한 일이 있어도 신문에 드러내서 욕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복음의 역사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참된 영권을 회복한 교회가 초대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왜 지금 이 시대에 교회가 이렇게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고 짓밟히고 있는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인 현장에서 갈급한 사람에게 답을 주고, 사단에게 빠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말해서 해방시키고, 현장에서 말씀운동을 통해서 흑암세력 꺾는 이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다른 좋은 것들을 많이 한다는 빌미로 이 부분을 놓쳐버렸습니다. 진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놓쳐버렸다는 것. 그러니까 사단이 마음대로 교회 안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초대교회는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우리 하나교회가 초대교회 사도행전 2:42 이 색깔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서 교회로서의 참된 축복을 회복하는 그 응답의 역사 속에 쓰임 받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권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영권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들도 영권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43절 그 다음에 보면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환경으로도 나타나고 육신적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이어서 보면 40년 운명가운데 빠졌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이 육신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놓고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놀랍게 여기니까 베드로가 사도행전 3:12에 보면 “왜 일을 기이히 여기느냐?”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당연한 일 아니냐는 말입니다. 왜 이 일을 기이히 여기느냐, 당연한 일 아니냐. 이처럼 기사와 표적이 초대교회 안에 일어났다는 것.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보면 44-4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공산주의를 있게 한 바탕 사상입니다만은 44-45절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무슨 말입니까?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다 내어놓고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가졌다는 것. 많이 필요한 사람은 많이 가지도록, 적게 필요한 사람은 적게 가지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자기 재산을 내어놓았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간단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는 사실에 결론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것 다 내어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것 내어놓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문제 해결이고, 그리스도 안에 내 모든 것 다 있다는 것에 결론 났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아깝게 여기지 아니하고 내어놓게 되고 나눠가지게 되었다는 것. 거기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역사를 일으키시는데 47절 마지막에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교회를 섬기는 목사로서, 우리 중직자분들을, 성도님들, 렘넌트들을 섬기는 목사로서 제 마음에 기도하는 소원이 있다면 우리 교회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처럼 이러한 색깔이 띄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쓸 때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교회가 교회되어지고 교회를 시시하게 여기는 세상을 향해서 교회가 영권을 회복해서 참된 교회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줘야 되고, 그와 더불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낼 뿐 아니라 진짜 하나님이 베푸시는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이런 축복된 응답을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있었던 것이고, 지금은 없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그 말씀은 영원히 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오직 그리스도의 증인되어야겠다고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초대교회 마가다락방교회처럼 만드셔서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 쓰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색깔을 가지고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쓰임 받는 축복된 역사 속에 여러분 개개인이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8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행2:41-47)
서론: 바울은 2천년전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했습니다(행20:28).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 여러분을 세웠는데, 사나운 이리(29절)와 어그러진 말(30절)이 교회와 교인을 흔든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변질되고, 교회가 원색적인 복음을 전파하지 못할까봐 걱정했습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사단은 안팎에서 교회를 공격하고 무력화 시키며 무너뜨리고 있습니다(뉴에이지, 신천지).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초대교회와 예루살렘교회처럼, 오직 그리스도만 증거하고, 복음이 복음되어지도록 하는 올바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방향 맞게 되면, 초대교회와 예루살렘교회와 같은 축복을 지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방향 맞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1. 언약을 붙잡는 교회
(1) 언약을 발견(구원)하고 체험(성령동행)하고 누려야(성령충만) 합니다.
1) 언약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 불변의 진리임 - 곧 그리스도를 말함
2)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하나님 만나는 길(요14:6), 세상 이기는 길(요16:33), 사단 이기는 길(요일3:8)이 되심
(2) 유일한 언약 -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1) 모든 문제와 사건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체험하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고후1:8)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됨(행1:14)
(3)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는지 점검하라!!
1) 세상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성령과 권능으로 역사하심(행2:1-4)
2) 전도의 문이 열리고, 현장이 보이며, 메시지가 열림(현실을 성경으로 해석, 그 답을 성경의 핵심인 그리스도로 줌)
(4) 성령충만한 제자가 되어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말함으로 일꾼을 키우라!!
1)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자를 붙이심(행2:41의 3천제자를 붙이심)
2) 가장 성령충만한 모습은 복음으로 현장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며 일꾼을 세우는 것임
2. 성령충만함의 결과 (41-47절)
(1)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1)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잘못된 근본각인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음
2) 모든 교회는 말씀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심)
(2) 서로 교제하며
인격과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만나고, 그리스도를 향해 한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임(요21:15-18)
(3) 떡을 떼며
초대교회는 날마다 예찬과 성찬으로 십자가 보혈의 피를 기념함(그리스도 보혈의 피가 아니면 안된다는 고백)
(4)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1) 이때, 복음의 역사가 나타남으로 참된 영권을 회복함(행2:43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함)
2)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행2:43 기사와 표적, 행3장 앉은뱅이가 일어남), 그리스도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음(행2:44)
(5)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결론: 우리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증인되야겠다.”고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와 마가다락방의 역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가 훗날의 기억될 교회로서, 초대교회와 같은 영적색깔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개개인이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행2:41~47)
22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1~4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은혜로운 찬양을 해 주셨습니다. 인사합시다. 그리스도로 충만합시다! 오늘 찬양이 한 마디로 말하면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미 2000년 전에 교회 안에 엄청난 위기가 닥쳐올 것을 말씀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나아가는 길에 있어,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다가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려고 여러분을 세우셨다고 장로님에게 말씀하시면서 29절에 보면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 안에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여기서 말하는 사나운 이리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사단, 마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양떼들을 아끼지 않는다 했는데 양떼들인 교회와 교인들을 흔들 것이라는 사실이죠. 그러면서 30절에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한다...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복음 아닌 다른 것을 자꾸 가르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을 이야기한 것이죠. 사실은 이 에베소 장로들을 이제는 보지 못한다는 생각 속에서 밀레도에서 장로들을 불러서 고별 설교를 한 내용인데, 그것이 2000년 전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 현장에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무슨 말이냐? 사실 그 당시에 바울의 교회를 향한 염려는 복음이 변질될까봐 염려한 것이고 또 교회가 원색적인 복음을 말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이런 두려운 염려들 속에서 말한 것인데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가졌던 교회를 향한 이 마음을 오늘 여러분들 마음에 새기고, 정말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마지막 시대에 악한 사단, 마귀가, 물론 우리 성도 개개인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공격하지만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교회 안팎에서 공격해오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뉴 에이지 운동이나 프리메이슨, 또 유대인들이 일어나서 사실은 기독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도 복음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사람들이 좋게 여기는 것들, 그런 것들을 통해서 교회가 방향 맞추어 감으로 말미암아 교회 본질을 놓쳐 버리고 원색적인 복음을 놓쳐 버리고, 그렇게 지금 교회 안에서 사단의 전략으로 말미암아 교회들이 무너지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이단들이 나오고 교회 안에서 사이비가 나오고 이런 것들이 일어나서 점점 교회에 복음을 희석시키고 복음을 변질시키는, 이런 일들이 우리 현장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한국 교계에 비상이 걸려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 다 들어보셨죠, 신천지라고. 혹시 우리 교회에 신천지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 믿고 회개하고 구원 받기를 바랍니다. 이 자리에 들어와 있는 분들 계시다면. 지금 교회들마다 사실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신천지가 어떻게 활동을 하느냐? 그래도 한국에서 큰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합동 교단과 통합 교단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합동측 이렇게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개혁측입니다만. 그런데 교단마다 교단패가 있지 않습니까? 그 교단을 특정 짓는 패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 교회들이 위장을 해서 합동 교단의 교단패를 붙여 놓고, 또 교단소속증명서, 노회소속증명서까지 다 발급받아서, 위조된 것들을 받아서 버젓이 합동 교단으로 행세를 하면서 신천지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드러났는데 제가 알기로 이건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 합동측으로 위장해서 활동하고 있는 신천지가 67개 교회라고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교회 이름과 함께 장소가 기독교 신문에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교회 안에 사이비들이나 이단들이 일어나서 자꾸 복음을 희석시키고 복음을 변질시키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 사단의 가장 큰 공격 중의 공격이 있다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중요하냐? 에베소서 3장 21절에 보면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만큼 중요한 것인데, 사단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공격하고 있고, 이미 성경에도 곳곳에 마지막 때 악한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가 힘을 잃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한 시대 세계복음화해야 하기 때문에, 또 이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성경에 나와 있는 올바른 교회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교회를 공격해 오는 이런 사단의 궤계들 앞에서 그 사단의 궤계를 꺾을 수 있는 참된 복음이 복음되어지도록 하는 교회,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올바른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어떤 교회가 올바른 교회인가? 오늘 특별히 본문에 초대교회, 다른 말로 하면 예루살렘 교회죠, 이 초대교회를 통해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살펴보고 우리 함께 기도제목을 붙잡고, 교회를 살려야 하겠고 그 속에 내가 참된 축복의 응답을 받아 누림으로 말미암아 한 시대를 살리는 응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부분들은 초대교회, 다른 말로 하면 예루살렘 교회죠, 그리고 사도행전 11장부터 보면 안디옥 교회가 나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발판 삼아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고 그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세계 선교, 로마를 복음화하는 귀중한 응답의 역사들이 일어났는데 그렇다면 그 안디옥 교회의 발판 되어지는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교회였는가? 사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과 방향이 맞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도행전 2장에 초대교회를 기록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 방향 맞는 교회는 이렇다고 결과로 된 교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과 방향이 맞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과 방향이 맞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1. 언약을 붙잡은 교회
먼저 첫 번째입니다. 언약으로 시작하였고 언약을 붙잡은 교회가 초대교회였고 마가다락방 교회였습니다. 언약을 붙잡는 교회... 언약을 잡았는가 못 잡았는가? 언약을 발견한 자는 구원을 받았고 언약을 체험한 자는 진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의 멋을 아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고, 또 그 언약을 누리는 자는 하나님의 역사가, 성령 충만한 역사가 그의 삶의 현장에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언약을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체험하게 될 때에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 멋있는 신자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고 그 언약을 체험함과 더불어 그 언약을 누리게 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 언약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불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불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언약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경이 영원한 것이고 또 인간의 영혼이 영원한 것이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고 인간의 영혼이 영원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데 그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부분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만나는 길,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 사단 이기는 길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만나는 길,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 사단 이기는 길을 말씀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냐? 바로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만 믿어야 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만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아니라면 굳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음부의 권세까지, 음부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그 저주를 당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어야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고, 음부의 자리까지 내려가는 그 저주를 친히 당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만이어야 하느냐?
여러분,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이 땅에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백년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려 지느냐, 천년 수고하고 애쓴다고 해서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열려 지느냐, 아닙니다. 도저히 인간에게는 하나님 만나는 길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땅에 그 어느 누가, 그 어떤 훌륭한 사람이, 그 어떤 훌륭한 성인이 세상을 이겼습니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을 이기시는데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죠. 그래서 요한복음 16장 33절에 보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러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사단의 종노릇에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 사단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이 땅에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단의 세력을 꺾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이 안 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안 되고,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유일한 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 그래서 이 그리스도 언약 붙잡고 이 사실을 발견한 자는 구원받은 것이고, 이 그리스도, 이 사실을 체험하는 것을 가지고 신앙 생활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를 체험하면 체험할수록 우리의 모든 문제와 사건 보는 눈들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진짜 그리스도 체험한 자는 그래서 예수가 그리스도구나,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해결자 그리스도란 말이 이 말이구나, 이게 깨달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를 발견한 자는 구원 받고, 그리스도를 체험한 자는 분명한 것은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건과 문제 속에서 오히려 기다려집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 것인가 기다려지게 되어 있어요. 왜냐? 그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되고 정말 모든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이 말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기다려지게 되어 있어요. 마치 여러분,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시험을 기다립니다. 그렇잖아요. 공부 못하는 사람이 시험하면 지겨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제가 학교 다닐 적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어떤 생각이 드느냐? 시험 때 되면 교무실에 불이 나서 시험지가 타 버리는 것이 안 좋겠냐는 그런 생각도 했다니까요. 공부를 못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공부 잘 하는 사람은 기대가 됩니다.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까 기대가 됩니다. 여러분, 수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영 못하는 사람은 물만 보면 겁나잖아요. 우리 아들은 어릴 때 동화책을 읽어줬는데 상어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이에게 각인이 되어서 수영을 못 배워요. 왜냐? 물에 들어가면 상어한테 물릴 줄 알고 수영을 못 배워요. 그런데 진짜 수영 잘하는 사람은 아무리 험한 파도가 쳐온다 할지라도 파도를 거슬러 타지 않습니까. 그게 수영 잘 하는 사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진짜 내가 예수가 그리스도심을 체험하게 되면 어떤 문제와 사건 있다 할지라도, '아, 하나님 이걸 통해서 또다시 나에게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하시는구나.'하고 기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이게 특징입니다. 우리가 문제와 사건 당할 때마다 뭔가 두렵고 힘들고 어렵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가그릐스도임시을 체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문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문제와 시험을 주신 게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결국은 복음이 복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문제입니다. 바울이 고후1:8-9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이 전도자로서 복음 전하는 사역에 있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했느냐? 8절에 자기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되었는데 깨닫고 보니까 그게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기 위함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 언약 가진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시험과 문제와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문제를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거 아닙니다. 이 언약 붙잡고 기도만 하면 됩니다. 사실 초대 교회가 그러한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 붙잡고 행1:14에 보면, 전혀 기도 속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 언약 붙잡고 기도만 되어진다면 우리 모든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기 밥솥에 밥을 앉혀놓고 콘센트를 꼽고 누워 자도 밥은 되지 않습니까. 같습니다. 우리가 언약 붙잡고, 언약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고 기도만 하게 되면 역사는 누가 하느냐? 하나님이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없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혹은 여러분에게 염려나 근심이나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그 어떤 것도 염려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분명히 그 그리스도가 역사하시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는 그 부분들 속에 정말로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가를 점검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진짜 우리가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고 기도하면 누가 역사하시느냐? 하나님이 굉장한 어마어마한 역사들을 우리 삶의 현장에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세상이 절대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지금 우리에게 성령으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세상에 절대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신 그 분이 그리스도인데 그분이 지금 우리에게 성령으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오늘 장학금 받는 수여자들이 이 자리에 같이 참여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성공 속에서 성공자, 엘리트를 살리는 귀중한 축복을 누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힘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 하면 어느 정도는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한계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그 일을 행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전도의 문이 저절로 여렬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4에 보면 바람 같은 불 같은 역사가 임했다고 합니다. 아무 사람도 막을 수 없는 그런 역사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니까 저절로 문들이 열려졌습니다. 어떤 문이냐? 전도의 문이 열리고 현장 보는 눈이 열리고 메시지를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그게 초대교회 안에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 41절부터 47절을 읽었는데 그 이전을 보세요. 현실적인 부분들 가지고 먼저 그 현실을 성경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그리스도기 때문에 답을 얻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그걸 가지고 메시지가 이해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현실을 성경으로 재해석하고 성경에 가장 큰 핵심이 그리스도기 때문에 그 모든 현실의 답을 그리스도로 보게 되면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 없어집니다. 이게 안 되기 때문에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현실을 성경으로 해석하고 그리스도로 답을 얻게 되면 메시지가 이해됩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붙이시는 사람을 붙이시는 참된 전도의 문이 열리는 사실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게 오늘 읽지 않은 본문에 나옵니다. 초대교회에 방언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교회 밖의 사람들이 이 초대 교회를 바라보며 뭐라고 했느냐하면, 13절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술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것을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술이 취한 것이 아니고 요엘서에 말세의 남녀종들에게 물붓듯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했는데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대한 답을 내게 되는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예수 그리스도로 답을 냅니다. 그러면서 22,-24절에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아페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합니다. 누구를 이야기했습니까? 그리스도를 이야기했습니다. 현실적인 사람들이 바라보면서 술 취한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방언하고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니까 그것을 본 사람들이, 아니 저건 술 취한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면서 거기에 대한 답으로 그리스도를 가지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보면 또 다윗을 이야기 하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현실을 보고 성경으로 해석했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로 답을 주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일어난 결과가 3000제자가 일어났습니다. 메시지가 제대로 이해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사람ㅇ르 붙이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와 사건 당하게 되면 그 현실 속에서 성경으로 해석하는 일들은 어느 정도 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진짜 답으로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되는데 그걸 잡지 못해요. 그것을 잡지 못하는 증거갸 뭐냐? 문제 당하고 어려움 당하면 두려움, 걱정,염려에 사로 잡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로 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말로 우리의 현실적인 부분들 속에서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고 거기에 대한 답으로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때 그 때에 메시지가 이해되었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 오늘 초대 교회에 3000제자를 붙이셨습니다. 정말로 메시지를 바르게 이해하고 붙잡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제자가 붙여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은 성령충만함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성령충만한 제자가 현장에서 그리스도 말해서 일꾼 세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령 충만함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무엇 때문에 구합니까? 능력을 행하기 위해서, 병 고치기 위해서, 신유은사하기 위해서, 방언하기 위해서, 무언가 다른 사람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함이 아닙니다. 방언하는 것, 병 고치는 것이 성령 충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진짜 성령 충만함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계복음화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장을 살리는 것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일꾼을 세우는 것이 성령 충만함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성령의 역사는 세계복음화의 영입니다. 가장 성령 충만한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내가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충만해서 현장에서 일꾼에게 그리스도를 말해서 그리스도를 알아듣는 제자를 세워나가는 것이 가장 성령 충만함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이 축복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함을 기도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자기 자신의 인격을 위해서 성령 충, 자기 자신 내면의 양심적인 수양을 위해서 성령 충, 내가 교회를 어떻게 해봐야겠다는 마음들을 가지고 성령 충 구합니다. 전부 틀린 것입니다. 성령 충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현장을 살리기 위해서, 현장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성령 충만의 모습이 오늘 초대교회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 충만한 사람들이 현장에서 그리스도 말해서 3천 제자 세우고, 일꾼 세우는 것이 가장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저는 하나교회 성도님들이 이 성령 충만하다 비밀을 누리는 한분 한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 충만함의 결과(41~47절)
성령 충만함의 결과가 무엇인가? 사도행전 2:41-47에서 말하고 있는데 언약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은 되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부림쳐서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절로 언약잡고 기도하면 되어지게 되어있는데 오늘 초대교회안의 모습을 보면 성령 충 결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2:42절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씀운동 중심한 교회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만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면 말씀운동을 중심한 교회가 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생명 걸고 잡아야 할 것이 있다면,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우선해야할 것이 있다면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이 말은 목사의 말을 잘 들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 분명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자녀 맞죠?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누가 말씀을 주시는가,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그 말씀을 붙잡는 것을 보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이 내 영혼 속에 붙잡혀지게 되고, 내 영혼 속에 깊이 묵상되어질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 안에 이미 복음 외에 다른 것들로 각인되어진 것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복음 듣기 전에 많은 것들이 뿌리내려져있고 체질화 되어있고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어렵게 만듭니다.
우리도 모르게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근본복음으로 말미암아 각인된 것 외에 각인된 것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근본각인된 것으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연세가 들면 들수록 정말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왜냐,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여러분을 망하게 하는 근본 각인된 것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붙잡는 것이 중요하고 그 말씀 붙잡고 깊이 묵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기 전에 1부 예배 마치고 우리 교회 한나회 할머니 두 분을 만났었습니다. 제 방에 와서 다른 이야기 때문에 말씀을 조금 나누었습니다. 이 분들이 소망지교회를 하시면서 이렇게 인도받고 있습니다 하면서 연세가 81세입니다. 엄청난 연세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복음이 있어서, 말씀이 들어가서 그런지 늙으시지를 않았습니다 너무나 고운 모습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시는데 제가 내어놓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 본부에서 매월마다 나오는 기도수첩을 하는데 할머니가 그 기도수첩을 매일매일 오늘의 말씀, 기도, 전도를 씁니다. 그런데 제가 봐도 깜짝 놀란 것이 뭐냐면, 먼저 글씨를 참 잘 쓰시는구나. 우리 고등학생들보다 글씨를 더 잘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그 기도수첩을 쓰시고 그것가지고 기도하시고 한 주간 스케줄을 다 정리해놓으시고, 거기에 주의 종들을 위한 기도, 그 주간에 교회에 가장 중요한 것 지난주에는 대학부 수련회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부분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 유지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연세 드실수록 우리 안에 말씀이 있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다른 각인된 것으로 빠져들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은혜를 받는 순간마다 우리도 알지 못했던 우리 안에 잘못 각인된 것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른 것으로는 절대 치유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활력이 있어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치유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붙잡혀지고 묵상되어질 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영적인 문제들이 다 치유되어지는 축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보통 말이 아닙니다. 정말 신앙생활에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서로 교제하며" 인간적으로 잘해주고, 잘 살고, 친하게 지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서로 교제하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해서 성도의 교통함입니다. 교회 안에는 인격이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성도의 교통, 서로 교제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격이 훌륭한 분은 훌륭한 대로, 그렇지 못한 분은 그렇지 못한 대로 하나 되어 한 방향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서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15-18에 보면은 고기 잡는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셔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사실 부끄러운 자리 아닙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 다음에 두 번째 물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다음에 세 번째 물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른 사람 비교하지 말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무엇인가? 인격가진 자나 인격 가지지 않은 자나 하나 되어서 한 방향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성도의 교제 "서로 교제하며" 그 말입니다. 거기에 성도의 교통함의 귀한 축복의 역사들이 누려지게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 "떡을 떼며" 여기에서 떡을 뗀다는 말은 예찬과 성찬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성찬과 예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기념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밖에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초대교회는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 보혈의 피 없이는 안 됩니다. 이 고백가진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떡을 뗀다는 말입니다. 오늘 찬양대가 참 은혜스러운 찬양을 불러주셨는데 정말 예수 그리스도 그 보혈의 피로 여러분이 깨끗하게 되어있습니까? 어제 그리스도로 충만했습니까? 오늘도 그리스도로 충만하며 오늘도 나에게 그리스도 그 보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졌다는 것. 그것이 "떡을 떼며" 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2:42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고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 살릴 수 있는 기도의 비밀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이것이 초대교회의 교회 색깔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지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증거를 주셨는가? 43절 보세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이런 색깔을 띄니까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주셨는가?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했습니다. 지금과는 영 딴판입니다. 지금 교회를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합니까? 천만예요. 완전히 교회가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심심하면 교회에 대해서 욕합니다. 교회 목사에 대해서 조그마한 일이 있어도 신문에 드러내서 욕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복음의 역사가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참된 영권을 회복한 교회가 초대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왜 지금 이 시대에 교회가 이렇게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고 짓밟히고 있는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인 현장에서 갈급한 사람에게 답을 주고, 사단에게 빠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말해서 해방시키고, 현장에서 말씀운동을 통해서 흑암세력 꺾는 이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다른 좋은 것들을 많이 한다는 빌미로 이 부분을 놓쳐버렸습니다. 진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놓쳐버렸다는 것. 그러니까 사단이 마음대로 교회 안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초대교회는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우리 하나교회가 초대교회 사도행전 2:42 이 색깔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서 교회로서의 참된 축복을 회복하는 그 응답의 역사 속에 쓰임 받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권회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영권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들도 영권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43절 그 다음에 보면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 능력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환경으로도 나타나고 육신적으로도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 이어서 보면 40년 운명가운데 빠졌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이 육신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놓고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놀랍게 여기니까 베드로가 사도행전 3:12에 보면 “왜 일을 기이히 여기느냐?”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당연한 일 아니냐는 말입니다. 왜 이 일을 기이히 여기느냐, 당연한 일 아니냐. 이처럼 기사와 표적이 초대교회 안에 일어났다는 것.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보면 44-4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공산주의를 있게 한 바탕 사상입니다만은 44-45절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무슨 말입니까?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다 내어놓고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가졌다는 것. 많이 필요한 사람은 많이 가지도록, 적게 필요한 사람은 적게 가지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자기 재산을 내어놓았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간단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는 사실에 결론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것 다 내어놓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것 내어놓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문제 해결이고, 그리스도 안에 내 모든 것 다 있다는 것에 결론 났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아깝게 여기지 아니하고 내어놓게 되고 나눠가지게 되었다는 것. 거기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역사를 일으키시는데 47절 마지막에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교회를 섬기는 목사로서, 우리 중직자분들을, 성도님들, 렘넌트들을 섬기는 목사로서 제 마음에 기도하는 소원이 있다면 우리 교회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처럼 이러한 색깔이 띄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쓸 때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교회가 교회되어지고 교회를 시시하게 여기는 세상을 향해서 교회가 영권을 회복해서 참된 교회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줘야 되고, 그와 더불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낼 뿐 아니라 진짜 하나님이 베푸시는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이런 축복된 응답을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있었던 것이고, 지금은 없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그 말씀은 영원히 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오직 그리스도의 증인되어야겠다고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초대교회 마가다락방교회처럼 만드셔서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 쓰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색깔을 가지고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쓰임 받는 축복된 역사 속에 여러분 개개인이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8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행2:41-47)
서론: 바울은 2천년전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설교를 했습니다(행20:28).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 여러분을 세웠는데, 사나운 이리(29절)와 어그러진 말(30절)이 교회와 교인을 흔든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이 변질되고, 교회가 원색적인 복음을 전파하지 못할까봐 걱정했습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사단은 안팎에서 교회를 공격하고 무력화 시키며 무너뜨리고 있습니다(뉴에이지, 신천지).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초대교회와 예루살렘교회처럼, 오직 그리스도만 증거하고, 복음이 복음되어지도록 하는 올바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방향 맞게 되면, 초대교회와 예루살렘교회와 같은 축복을 지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방향 맞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1. 언약을 붙잡는 교회
(1) 언약을 발견(구원)하고 체험(성령동행)하고 누려야(성령충만) 합니다.
1) 언약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대 불변의 진리임 - 곧 그리스도를 말함
2) 그리스도만이 유일하게 하나님 만나는 길(요14:6), 세상 이기는 길(요16:33), 사단 이기는 길(요일3:8)이 되심
(2) 유일한 언약 -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
1) 모든 문제와 사건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체험하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임(고후1:8)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됨(행1:14)
(3)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는지 점검하라!!
1) 세상이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성령과 권능으로 역사하심(행2:1-4)
2) 전도의 문이 열리고, 현장이 보이며, 메시지가 열림(현실을 성경으로 해석, 그 답을 성경의 핵심인 그리스도로 줌)
(4) 성령충만한 제자가 되어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말함으로 일꾼을 키우라!!
1)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자를 붙이심(행2:41의 3천제자를 붙이심)
2) 가장 성령충만한 모습은 복음으로 현장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며 일꾼을 세우는 것임
2. 성령충만함의 결과 (41-47절)
(1)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1) 성령충만을 받지 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잘못된 근본각인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음
2) 모든 교회는 말씀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심)
(2) 서로 교제하며
인격과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만나고, 그리스도를 향해 한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임(요21:15-18)
(3) 떡을 떼며
초대교회는 날마다 예찬과 성찬으로 십자가 보혈의 피를 기념함(그리스도 보혈의 피가 아니면 안된다는 고백)
(4)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1) 이때, 복음의 역사가 나타남으로 참된 영권을 회복함(행2:43 사람들이 교회를 두려워함)
2)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행2:43 기사와 표적, 행3장 앉은뱅이가 일어남), 그리스도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음(행2:44)
(5)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결론: 우리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의 증인되야겠다.”고 결단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와 마가다락방의 역사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교회가 훗날의 기억될 교회로서, 초대교회와 같은 영적색깔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개개인이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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