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함께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
2013-11-03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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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과 함께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
(행7:44~53)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7:44~5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한 번 더 인사합시다. 이 자리에 앉아 있음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저도, 여러분 한 분 한 분도 이 자리에 계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최고로 누리시고 오늘 모든 응답이 문이 열리는 최고의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복음과 함께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응답받는 것은 간단합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주된 사역과 주된 방향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따라가면 응답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열심히 해서 응답받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주된 사역과 방향을 모른다면 결국은 응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주된 사역과 방향이 있고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주된 사역과 방향이 있고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주된 사역과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맞추어 가는 것이 신앙인이고, 그것을 맞추어서 살아가는 삶을 신앙 생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시대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주된 사역과 방향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언약으로 붙잡고 거기에 방향 맞추고 산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시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인데 바로 언약을 붙잡고 피를 잘 바르면 됩니다. 피의 비밀을 알면 구약 시대에서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시고 난 이후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고 말씀을 성취하신 그 역사를 지금도 하나님이 이루어가시고 있는데 그 사실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모든 말씀을 다 성취하시고, 말씀을 성취하신 후에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복음을 통해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 시대를 향한 주된 관심입니다. 하나님의 주된 사역입니다. 거기에 우리가 방향을 맞추어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했던 그 계획을, 지금은 교회를 통해서 복음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그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중요한 방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바로 전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전도를 모르면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모르면 우리는 많은 경우, 사실은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표가 맞지 않으니 많은 경우 하나님과 뭔가 안 맞게 되어 있고 그 속에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고 결국은 신앙 생활한다 할지라도 고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령 중직자분들이라 할지라도 전도에 대한 축복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하나님과 방향이 맞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시간표가 맞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목회자라 할지라도 전도의 중요한 방향을 놓쳐 버리면 결국은 열매가 없는 것이고 나중에 실컷 목회하고 나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에 대한 눈을 잘 열어야 하는데 우리 개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전도와 선교, 세계복음화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간표가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마가 다락방의 시간표가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디옥 교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마게도냐, 또 어떤 사람에게는 로마 교회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실 때 하나님의 계획과 뜻들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한 부분, 한 단계 한 단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 가시는데 먼저, 공생애 때는 제자들을 불러서 함께 하시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앙 생활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그런 시간표 안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단계 더 나아가 마가 다락방의 응답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가 다락방은 그리스도로 완전히 답을 가지고 이제는 현장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안디옥 교회의 응답은 바로 선교에 대해서 눈을 여는 것이고 마게도냐의 응답은 바로 문화에 대해서 눈을 여는 것이고 로마 교회에 주신 축복은 세계 선교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실 때 이 축복된 단계를 거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이 시대에 원하시는 그 언약을 나의 것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릴 때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자신의 언약으로 붙잡았습니다. 창세기 37장 1절~11절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자신의 꿈으로, 자신의 비전으로, 언약으로 붙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응답을 누렸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도 다니엘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 가운데 있는 그 삶을 청산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회복할 것을 자기의 꿈으로, 자기의 언약으로 붙잡았던 것입니다. 결국은 그 응답들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의 꿈으로, 우리의 언약으로 붙잡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 꿈과 언약이 성취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어떤 단계가 있느냐 면 하나님이 주신 꿈, 그것을 우리의 마음에 담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담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을 마음에 담은 자들에게 그 다음에 오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기와 질투를 당하는 단계, 그리고 지나면 유혹을 당하고 유혹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단계가 오고, 결국 마지막 단계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는 단계가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렘넌트 7명 가운데 한 사람의 예만 든다면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자신의 언약으로 자기 마음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결국은 구덩이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구덩이에 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시기 받고 질투 받고 노예로 끌려가게 되고 그 노예 상인 속에서도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 가운데 또 유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 가게 되고 유혹 당하고 고난 당하는 삶 속에서도 요셉은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결국 믿음으로 승리했다는 그 증거를 온 형제들 앞에 나타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창세기 45장 5절에서 형제들이 요셉 앞에 섰을 때 요셉이 한 이야기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들 앞서 먼저 보내셨다, 누가 하셨다고요?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믿음의 증거를 나타내는 그 축복의 역사를 누린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꿈을 내 마음에 언약으로 담는 단계가 있고 또 그 언약을 갖고 있으면서 시기와 질투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혹됨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면서 결국은 믿음의 증거를 보일 사람으로 세워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그 축복 가운데 세우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어도 여러분은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결국은 믿음 가지고 승리하는 증거를 보이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뭐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그 사실을 증거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비록 순교했지만 순교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한 한 사람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 스데반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당시 초대교회 사도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결국은 믿음으로 승리한 그 증거를 보인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본문에 나온 스데반은 사도가 아닙니다. 평신도 집사로서 믿음을 증거한 아주 중요한 현장 속에 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이 스데반을 통해서 마련됩니다. 성경에 보면 스데반 이전과 이후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보게됩니다. 사실 에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넘어야 될 것이 종교적인 체질들과 율법적인 체질들이었습니다. 이 스데반은 사도들이 감히 넘지 못했던 큰 산맥을 평신도 집사인 스데반이 넘었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운동을 진행했지만 성전 중심으로 율법 체계 속에서 그리스도 운동한 것입니다. 율법 체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체계는 하나님이 쓰실 수 없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고 떠나야 했기에 그 일을 이 스데반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건져내셔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한 것처럼, 사도들이 율법의 체계와 종교적인 산들을 넘지 않고서는 세계복음화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넘는 일들을 이 평신도 집사인 스데반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당시 초대교회가 율법 체계 속에서 그리스도 운동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언제 분리시키셨느냐? 이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분리시키셨습니다.
1. 참 교회회복의 역사를 시작
먼저, 첫째로 생각할 것은 참 교회 운동의 역사를 이 스데반을 통해서 시작케 하셨습니다. 스데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성경 중심, 율법 중심,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 중심이 분리가 됩니다. 베드로 같은사도도 감당하지 못했던 이 일들을 스데반이 감당하게 됩니다. 스데반을 돌로 때려 죽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수구 세력이라고 합니다. 개혁에서 ㅇ리어나는 것을 거부하고 기득권을 강조하며 옛날 것들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옛날에 말한 율법과 전통들을 붙잡고 성전과 모세 중심의 사상, 선민 사상을 절대 버리면 안 된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가진 이 사상들, 전통, 율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 이게 수천 년 간 이어진 역사가 아니냐? 우리는 절대 이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서도 성경에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똑같이 일어납니다. 옛날로 돌아가고자 하고 종교적인 체질, 율법적인 체질, 바리새 사상, 유대교 중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런 일들이 여전히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한 순간도 '오직 복음'되지 않으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적인 체질입니다.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율법적인 체질입니다. 그래서 한 번 보십시오. 교회들이 성장하고 많은 ㅂ흥들을 가져옵니다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교회 안에 많은 분쟁들이 일어납니다. 정죄하고 비판하고 많은 싸움이 일어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오직 복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율법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정죄하고 비판하고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보십시오. 모든 것이 다 좋은 것 아니냐며 함께 하자, 같이 가자고 하는 종교다원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시작해서 11월 8일까지 진행되는 행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기도해야 합니다. "종교는 다 좋은 것 아니냐." 이게 지금 교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모임 자리에 원불교 스님들도 오고 무속하는 사람들도 오고 각 종교 단체 지도자들이 와서 "함께 하나되자"고 합니다. 얼마나 좋은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교회들이 가면 갈수록 종교화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히브리서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사람들에게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가야합니다. 유대교는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온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성경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온전히 성경을 안 믿고 있습니다. 영적인 사실을 안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지난날의 유대교나 똑같은 겁니다. 지금 교회 안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완전히 초월해야 되는데, 사도행전 6장까지는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초월하지 않고 그냥 유대 사상의 바탕 속에서 거기에 믿는 제자들이 나오고 그 제자 중심으로 말씀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이 사건 때문에 그것과 완전히 분리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현장에서 스데반이 이 메시지를 하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이 메시지를 하고 결국은 순교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결국 모든 것을 뛰어넘고 초월하고 분리될 수 있는 역사를 이루어가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당시 유대인들과 함께 생활도하고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때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들 앞에서 잘 한다는 칭찬도 듣고 했었습니다. 생활방식이나 체질들은 안 변했다는 말입니다. 큰 골격들은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 가지고는 세계복음화 할 수 없기 때문에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완전히 분리되는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누가 하셨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 마음에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집니다. 진짜 우리 교회 안에 제 2, 3의 스데반 같은 일꾼들이 일어나야 되겠다. 오늘 우리가 렘넌트 신학 연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헌금합니다만, 그 곳의 목회자 후보생들이 정말 스데반 같은 일꾼들이 일어나도록 정말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후대들 가운데 이 스데반 같은 귀한 일꾼들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우리가 렘넌트 신학 연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저 신학 연구원을 통해서 복음이 복음되고, 세계가 복음화 되고, 인생의 모든 운명의 문제가 해결되고 재앙이 없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운명의 문제를 해결하고 재앙을 없애는 그 복음! 그 어느 것과도 하나 될 수 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살릴 수 있는 그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 이 일에 헌신하는 스데반 같은 이 일꾼들이 우리 교회 안에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결국은 오직 그리스도 그 사실들이 스데반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졌다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유일성만을 강조하는, 복음의 순수함만을 강조하는,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이러한 증인들이 일어나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후대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이 축복의 주역이 우리 후대들 가운데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2. 스데반의 설교
둘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스데반의 설교를 살펴보면서 스데반이 지적한 복음을 복음으로 누리지 못하게 하는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버려야 될 것과 선택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 가운데 가장 긴 설교가 있다면 오늘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창세기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성경의 역사들을 다 이야기한 것이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한 장속에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들을 다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체를 다 읽어야 됩니다만 시간이 없어서 44-53절까지만 읽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이번 주간에 댁에 돌아가셔서 7장 다 읽어보세요.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7장에 대한 부분을 우리가 살펴보고 넘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은 먼저 오늘 스데반의 설교를 간략적으로 같이 정리한다면, 스데반의 설교의 전체 큰 그림은 3가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모세의 율법사상에 빠진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또 그 전에 보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선민사상에 빠진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성전에 대한 부분들을 쭉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7:1-19까지 보면 이 스데반이 유대인들을 보고 메시지를 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그 지위, 또 모세의 율법, 성전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지금 집착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유대교적인 오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을 세우고,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시고, 성전을 주신 것은 특별해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실 것이라는 구체적인 하나의 과정일 것이 아니냐. 예수 그리스도 오신다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단계에 불과한 것이지 이것이 어찌 특별한 것인 것처럼 선민사상에 빠져있느냐.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스데반이 설교한 내용입니다. 빨리 그 특권의식에서 빠져나와야 될 것이 아니냐. 왜 거기에 묶여 있느냐. 이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로운 역사가 이미 열려졌지 않느냐. 그 부분들을 설교한 것이 1-19절의 스데반의 설교였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로 7:20-36에 보면 모세의 역사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지도자가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도저히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430년간 애굽의 종살이하는 곳에서 빠져나오게 한 지도자가 누구냐? 모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모세는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이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율법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 빠져있는가? 모세 숭배사상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들을 스데반이 지적하면서 모세가 훌륭해서 쓰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언약 다시 말하면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언약을 붙잡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냐. 라고 스데반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모세를 우상 숭배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우리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면 모세처럼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스데반의 설교였습니다.
그 다음에 7:37-43절에 보면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의 죄를 들먹이는 사실들이 나옵니다. 광야의 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고 입혔는데 그 광야길을 가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행한 것은 염려하고, 걱정하고, 의심하고, 불신앙하고, 나중에 가서는 결국은 우상숭배까지 한 것이 광야에서의 삶입니다. 그것을 지적하면서 지금 그리스도로 오셔서 말씀을 성취하셨는데 그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당신들은 옛날 것을 계속 주장하면서 지금 종교생활 속에, 우상숭배 속에 빠져있지 않느냐. 거기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지금 꿰뚫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44-50에 보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었습니다마는 성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과 마음은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조차 숭배하는 사상들이 유대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스데반이 성전의 주인이 그리스도 아니냐.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냐.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아가야하지 아직까지 성전을 숭배하는 그것을 붙잡고 우리가 살아가서는 되겠느냐. 이렇게 스데반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설교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2:50-53절에 보면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 예언한 그 선지자를 죽였지 않느냐. 그리고 예수조차도 그리스도조차도 너희가 죽이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우리가 회개하자. 그 말을 하면서 결국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된 것입니다.
스데반이 한 설교들을 쭉 읽어보시면,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조목조목 하나님을 대항하고 복음에 역행했던 항목들과 행동들을 구구절절하게 지적하면서 결국은 얼마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결국은 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 않느냐. 이제는 그런 짓 그만하고 그리스도로 돌이키고 회개하자는 설교를 한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듣고 결국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 죽은 것이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스라엘 초대교회 역사 속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새로운 엄청난 축복의 문들을 열어가게 되는 그 시작이 바로 스데반이 순교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에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결국 돌을 들어서 스데반을 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누구였습니까? 옛날 것을 놓치지 않는 수구 세력입니다. "옛날 율법은 좋은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놓칠 수 있느냐. 몇천년 동안 이루어진 옛날 전통을 우리가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느냐." 옛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결국 돌을 들어서 스데반을 쳤다는 사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분명히 같이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결국 스데반을 돌에 맞게 죽음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분리시켰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났느냐?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결국은 회복된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 사건을 보고 고민하고 갈등한 사람이 사울이라는 사람인데 나중에 회심하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세계복음화의 귀한 인물로 시작된 것이 바로 바울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라는 사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붙잡을 것이 있다면 오직 복음 외에 그 복음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스데반이 유대인들을 향해서 지적한 이 지적들이 오늘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 전통을 붙잡고 있고, 옛날 율법을 가지고 있고, 복음이야기 하지만 복음이 아니라 다른 것 더 강조하고, 다른 것 더 붙잡고 있는 것 때문에 오늘 완전하신 그 복음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제가 모 일간지 신문에 보니까 WCC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첫날 개회식에 참석했던 어떤 해외 신학자 한 사람이 오직 예수만 강조하는 WCC 개회식이라고 써놓았다. 정말 오직 예수입니까? 아니잖아요. 다른 것이 강조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지금 시대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 안에 오직 복음 그 사실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우리 안에 뭔가 여러분 나름대로 과거의 것들, 뭔가 복음 외에 더 좋은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부분들이 보여지게 될 때에 그 속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것이고, 복음이 복음 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 복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는 참된 힘을 아는 비밀 가진 사람이 스데반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는 참된 것을 아는 그 힘을 가진 사람이 스데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까지 유대나라에 머물러 있었던 그 복음의 역사가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본격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어져 나갔다는 사실. 그것이 오히려 전환점이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또 욥바에 다비다가 돌아와서 제자로 세워지고, 또 피장 시몬이 돌아오게 되고, 나중에 결국은 세계 선교를 위해서 안디옥 교회가 탄생되어지는 축복이 일어나게 되고, 세계 선교 역사가 그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시작이 되어지고, 거기에 중요한 중심으로 쓰임 받았던 사람이 바울이라는 인물들이 세워지게 된 것이 바로 스데반의 순교를 중심으로 해서 전환점이 되어서 복음의 큰 문들이 열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스데반은 생 전체를 통해서 복음과 전도를 위해서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스데반은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누린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정말로 복음 때문에 우리 생을 바꿀 만큼 그 복음의 비밀들을 그 축복된 역사들을 최고로 누리시고 승리하시고, 그리고 정말 우리 안에 복음이 복음 되지 못하게 하는 버려야 될 것들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는 그 은혜를 가지시고, 이 한 시대에 참된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1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과 함께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
(행7:44-53)
서론: 신앙생활은 열심히 해서 응답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주된 사역과 방향을 알고 그것을 따라가면 응답받게 되어있습니다. 개인과 교회,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어 가는 사람이 신앙인이며, 그렇게 생활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알고 피의 언약을 잡으면 되었고, 오신 후에는 말씀을 성취하시고 하늘보좌에 앉으셔서 교회를 통해 복음으로 세상을 살리고 계시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입니다. 전도를 모르면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 수 없고, 시간표를 모르면 많은 경우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어 고생하게 됩니다. 심지어 목회자나 중직자라 할지라도 열매가 없고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개개인을 향한 단계별 시간표(공생애: 예수그리스도를 확인시키심/ 마가다락방: 그리스도로 답을 가지고 현장나감/ 안디옥: 선교에 눈을 엶/ 마게도냐: 문화의 눈/ 로마: 세계선교의 축복)를 알고 이 언약을 나의 것으로 붙잡는 것(창37:1-11의 요셉, 단1장의 다니엘)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꿈을 언약으로 잡는 단계(마음에 담는 단계, 시기와 질투를 당하는 단계, 미혹과 유혹을 받는 단계, 믿음으로 승리하는 단계)도 누려야 합니다(요셉의 생애). 즉,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그 사실을 증거하는 것(스데반)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교회를 종교와 율법체계 중심에서 벗어나고 떠나게 만든 스데반과 같이 쓰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참 교회 회복의 역사를 시작
(1) 스데반 순교 이후 초대교회는 성전 중심, 모세율법 중심, 선민사상 중심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1) 복음을 증거하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인 것은 수구세력(옛날의 율법과 전통을 붙잡고 있는 자들)이었음
2) 오직 복음이 되지 않으면, 결국은 종교와 율법 체질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음
(2) 복음 중심이 아닌 교회 안에서는, 지금도 계속 다른 역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1) 유대교와 바리새 역사 및 종교체질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 계속 됨(종교다원주의, WCC집회 등)
2) 참된 복음 운동은 그리스도 외에 강조되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초월해야 함(행7장부터 본격적으로 분리됨)
(3) 교회와 후대 가운데 제2의, 제3의 스데반과 같은 일꾼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하라!!
2. 스데반의 설교
(1) 스데반은 성경과 역사를 꿰뚫으며,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설교했습니다.
1) 유대인들 보고 한 메시지(행7:1-19)
“아브라함 후손이라는 지위, 모세의 율법, 성전 등에 집착하지 말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새로운 역사를 보라!”
2) 모세의 역사의 교훈(행7:20-36)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언약을 깨닫고 순종하여 쓰임 받은 모세처럼, 우리도 시대적 계획을 쓰임받자!”
3)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을 지적(행7:37-43)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씀을 성취하셨는데 왜 아직까지 종교생활, 우상숭배 속에 빠져있느냐!”
4) 성전 숭배사상(행7:44-50)
“성전의 주인은 그리스도이기에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가라!”
5) 회개하라(행7:51-53)
“선지자를 죽였듯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를 죽인 것을 지금이라도 회개하라!
(2) 스데반의 순교는 새로운 축복의 문들을 열어가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1) 스데반의 순교사건으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고, 사울이 회심 후 세계복음화의 귀한 인물이 됨
2) 우리 안에 ‘복음을 이야기 하면서도 복음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정확히 보고 빠져나와라!!
결론: 지금까지 유대나라에 머물러 있었던 복음의 역사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사마리아성의 빌립 욥바의 다비다, 피장 시몬, 바울의 회심, 안디옥 교회 탄생) 스데반은 복음을 위해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축복을 지금 우리들에게 주시길 원하십니다. 복음 때문에 생을 바꿀 만큼 축복된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주간 ‘복음이 복음 안되게 하는 것’에서 떠나고,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의 증인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복음과 함께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
(행7:44~53)
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45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7:44~5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한 번 더 인사합시다. 이 자리에 앉아 있음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저도, 여러분 한 분 한 분도 이 자리에 계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최고로 누리시고 오늘 모든 응답이 문이 열리는 최고의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복음과 함께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응답받는 것은 간단합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주된 사역과 주된 방향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따라가면 응답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여러분, 열심히 해서 응답받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신앙 생활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주된 사역과 방향을 모른다면 결국은 응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주된 사역과 방향이 있고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주된 사역과 방향이 있고 각 시대마다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주된 사역과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맞추어 가는 것이 신앙인이고, 그것을 맞추어서 살아가는 삶을 신앙 생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시대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주된 사역과 방향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언약으로 붙잡고 거기에 방향 맞추고 산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시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인데 바로 언약을 붙잡고 피를 잘 바르면 됩니다. 피의 비밀을 알면 구약 시대에서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시고 난 이후에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고 말씀을 성취하신 그 역사를 지금도 하나님이 이루어가시고 있는데 그 사실을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모든 말씀을 다 성취하시고, 말씀을 성취하신 후에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복음을 통해 세상을 살리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 시대를 향한 주된 관심입니다. 하나님의 주된 사역입니다. 거기에 우리가 방향을 맞추어서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했던 그 계획을, 지금은 교회를 통해서 복음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고 세상을 복음화하는 그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중요한 방향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바로 전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전도를 모르면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모르면 우리는 많은 경우, 사실은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표가 맞지 않으니 많은 경우 하나님과 뭔가 안 맞게 되어 있고 그 속에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고 결국은 신앙 생활한다 할지라도 고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령 중직자분들이라 할지라도 전도에 대한 축복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면 하나님과 방향이 맞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시간표가 맞지 않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목회자라 할지라도 전도의 중요한 방향을 놓쳐 버리면 결국은 열매가 없는 것이고 나중에 실컷 목회하고 나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에 대한 눈을 잘 열어야 하는데 우리 개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전도와 선교, 세계복음화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간표가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마가 다락방의 시간표가 있는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안디옥 교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마게도냐, 또 어떤 사람에게는 로마 교회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실 때 하나님의 계획과 뜻들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한 부분, 한 단계 한 단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루어 가시는데 먼저, 공생애 때는 제자들을 불러서 함께 하시면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신앙 생활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그런 시간표 안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단계 더 나아가 마가 다락방의 응답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가 다락방은 그리스도로 완전히 답을 가지고 이제는 현장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안디옥 교회의 응답은 바로 선교에 대해서 눈을 여는 것이고 마게도냐의 응답은 바로 문화에 대해서 눈을 여는 것이고 로마 교회에 주신 축복은 세계 선교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실 때 이 축복된 단계를 거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이 시대에 원하시는 그 언약을 나의 것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릴 때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자신의 언약으로 붙잡았습니다. 창세기 37장 1절~11절에 보면 하나님이 주신 세계복음화의 언약을 자신의 꿈으로, 자신의 비전으로, 언약으로 붙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응답을 누렸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도 다니엘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 가운데 있는 그 삶을 청산하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회복할 것을 자기의 꿈으로, 자기의 언약으로 붙잡았던 것입니다. 결국은 그 응답들을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의 꿈으로, 우리의 언약으로 붙잡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 꿈과 언약이 성취되는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어떤 단계가 있느냐 면 하나님이 주신 꿈, 그것을 우리의 마음에 담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담을 뿐만 아니라 그 꿈을 마음에 담은 자들에게 그 다음에 오는 단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시기와 질투를 당하는 단계, 그리고 지나면 유혹을 당하고 유혹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단계가 오고, 결국 마지막 단계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는 단계가 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렘넌트 7명 가운데 한 사람의 예만 든다면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자신의 언약으로 자기 마음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결국은 구덩이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구덩이에 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시기 받고 질투 받고 노예로 끌려가게 되고 그 노예 상인 속에서도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 가운데 또 유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 가게 되고 유혹 당하고 고난 당하는 삶 속에서도 요셉은 범죄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결국 믿음으로 승리했다는 그 증거를 온 형제들 앞에 나타내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창세기 45장 5절에서 형제들이 요셉 앞에 섰을 때 요셉이 한 이야기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들 앞서 먼저 보내셨다, 누가 하셨다고요? 하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믿음의 증거를 나타내는 그 축복의 역사를 누린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꿈을 내 마음에 언약으로 담는 단계가 있고 또 그 언약을 갖고 있으면서 시기와 질투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혹됨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면서 결국은 믿음의 증거를 보일 사람으로 세워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그 축복 가운데 세우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어도 여러분은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결국은 믿음 가지고 승리하는 증거를 보이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뭐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그 사실을 증거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스데반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비록 순교했지만 순교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승리한 한 사람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 스데반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당시 초대교회 사도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결국은 믿음으로 승리한 그 증거를 보인 사람이 스데반입니다.
본문에 나온 스데반은 사도가 아닙니다. 평신도 집사로서 믿음을 증거한 아주 중요한 현장 속에 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이 스데반을 통해서 마련됩니다. 성경에 보면 스데반 이전과 이후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보게됩니다. 사실 에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넘어야 될 것이 종교적인 체질들과 율법적인 체질들이었습니다. 이 스데반은 사도들이 감히 넘지 못했던 큰 산맥을 평신도 집사인 스데반이 넘었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운동을 진행했지만 성전 중심으로 율법 체계 속에서 그리스도 운동한 것입니다. 율법 체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체계는 하나님이 쓰실 수 없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고 떠나야 했기에 그 일을 이 스데반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건져내셔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한 것처럼, 사도들이 율법의 체계와 종교적인 산들을 넘지 않고서는 세계복음화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넘는 일들을 이 평신도 집사인 스데반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당시 초대교회가 율법 체계 속에서 그리스도 운동을 같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언제 분리시키셨느냐? 이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서 분리시키셨습니다.
1. 참 교회회복의 역사를 시작
먼저, 첫째로 생각할 것은 참 교회 운동의 역사를 이 스데반을 통해서 시작케 하셨습니다. 스데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성경 중심, 율법 중심,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 중심이 분리가 됩니다. 베드로 같은사도도 감당하지 못했던 이 일들을 스데반이 감당하게 됩니다. 스데반을 돌로 때려 죽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수구 세력이라고 합니다. 개혁에서 ㅇ리어나는 것을 거부하고 기득권을 강조하며 옛날 것들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옛날에 말한 율법과 전통들을 붙잡고 성전과 모세 중심의 사상, 선민 사상을 절대 버리면 안 된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가진 이 사상들, 전통, 율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포기할 수 있느냐? 이게 수천 년 간 이어진 역사가 아니냐? 우리는 절대 이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 안에서도 성경에 일어나는 이런 일들이 똑같이 일어납니다. 옛날로 돌아가고자 하고 종교적인 체질, 율법적인 체질, 바리새 사상, 유대교 중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런 일들이 여전히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한 순간도 '오직 복음'되지 않으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종교적인 체질입니다.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율법적인 체질입니다. 그래서 한 번 보십시오. 교회들이 성장하고 많은 ㅂ흥들을 가져옵니다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교회 안에 많은 분쟁들이 일어납니다. 정죄하고 비판하고 많은 싸움이 일어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오직 복음이 아니라 교회 안에 율법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정죄하고 비판하고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보십시오. 모든 것이 다 좋은 것 아니냐며 함께 하자, 같이 가자고 하는 종교다원주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시작해서 11월 8일까지 진행되는 행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기도해야 합니다. "종교는 다 좋은 것 아니냐." 이게 지금 교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모임 자리에 원불교 스님들도 오고 무속하는 사람들도 오고 각 종교 단체 지도자들이 와서 "함께 하나되자"고 합니다. 얼마나 좋은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교회들이 가면 갈수록 종교화 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히브리서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사람들에게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가야합니다. 유대교는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온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교회 안에 성경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온전히 성경을 안 믿고 있습니다. 영적인 사실을 안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지난날의 유대교나 똑같은 겁니다. 지금 교회 안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완전히 초월해야 되는데, 사도행전 6장까지는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초월하지 않고 그냥 유대 사상의 바탕 속에서 거기에 믿는 제자들이 나오고 그 제자 중심으로 말씀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이 사건 때문에 그것과 완전히 분리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현장에서 스데반이 이 메시지를 하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스데반이 이 메시지를 하고 결국은 순교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결국 모든 것을 뛰어넘고 초월하고 분리될 수 있는 역사를 이루어가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지만 당시 유대인들과 함께 생활도하고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때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들 앞에서 잘 한다는 칭찬도 듣고 했었습니다. 생활방식이나 체질들은 안 변했다는 말입니다. 큰 골격들은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 가지고는 세계복음화 할 수 없기 때문에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서 완전히 분리되는 일을 허락하셨습니다. 누가 하셨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서 마음에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집니다. 진짜 우리 교회 안에 제 2, 3의 스데반 같은 일꾼들이 일어나야 되겠다. 오늘 우리가 렘넌트 신학 연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헌금합니다만, 그 곳의 목회자 후보생들이 정말 스데반 같은 일꾼들이 일어나도록 정말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후대들 가운데 이 스데반 같은 귀한 일꾼들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우리가 렘넌트 신학 연구원을 위해서 기도할 때 저 신학 연구원을 통해서 복음이 복음되고, 세계가 복음화 되고, 인생의 모든 운명의 문제가 해결되고 재앙이 없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운명의 문제를 해결하고 재앙을 없애는 그 복음! 그 어느 것과도 하나 될 수 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살릴 수 있는 그 복음이 복음 되게 하는 이 일에 헌신하는 스데반 같은 이 일꾼들이 우리 교회 안에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결국은 오직 그리스도 그 사실들이 스데반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졌다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의 유일성만을 강조하는, 복음의 순수함만을 강조하는,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이러한 증인들이 일어나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후대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도 이 축복의 주역이 우리 후대들 가운데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될 것입니다.
2. 스데반의 설교
둘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스데반의 설교를 살펴보면서 스데반이 지적한 복음을 복음으로 누리지 못하게 하는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버려야 될 것과 선택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 가운데 가장 긴 설교가 있다면 오늘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창세기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성경의 역사들을 다 이야기한 것이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한 장속에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들을 다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전체를 다 읽어야 됩니다만 시간이 없어서 44-53절까지만 읽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이번 주간에 댁에 돌아가셔서 7장 다 읽어보세요.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7장에 대한 부분을 우리가 살펴보고 넘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은 먼저 오늘 스데반의 설교를 간략적으로 같이 정리한다면, 스데반의 설교의 전체 큰 그림은 3가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모세의 율법사상에 빠진 부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또 그 전에 보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선민사상에 빠진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성전에 대한 부분들을 쭉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7:1-19까지 보면 이 스데반이 유대인들을 보고 메시지를 한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그 지위, 또 모세의 율법, 성전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지금 집착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유대교적인 오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을 세우고,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시고, 성전을 주신 것은 특별해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실 것이라는 구체적인 하나의 과정일 것이 아니냐. 예수 그리스도 오신다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단계에 불과한 것이지 이것이 어찌 특별한 것인 것처럼 선민사상에 빠져있느냐.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 스데반이 설교한 내용입니다. 빨리 그 특권의식에서 빠져나와야 될 것이 아니냐. 왜 거기에 묶여 있느냐. 이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시대가 그런 시대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로운 역사가 이미 열려졌지 않느냐. 그 부분들을 설교한 것이 1-19절의 스데반의 설교였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로 7:20-36에 보면 모세의 역사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지도자가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도저히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430년간 애굽의 종살이하는 곳에서 빠져나오게 한 지도자가 누구냐? 모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모세는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이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율법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 빠져있는가? 모세 숭배사상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들을 스데반이 지적하면서 모세가 훌륭해서 쓰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언약 다시 말하면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언약을 붙잡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냐. 라고 스데반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모세를 우상 숭배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우리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면 모세처럼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스데반의 설교였습니다.
그 다음에 7:37-43절에 보면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의 죄를 들먹이는 사실들이 나옵니다. 광야의 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고 입혔는데 그 광야길을 가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행한 것은 염려하고, 걱정하고, 의심하고, 불신앙하고, 나중에 가서는 결국은 우상숭배까지 한 것이 광야에서의 삶입니다. 그것을 지적하면서 지금 그리스도로 오셔서 말씀을 성취하셨는데 그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당신들은 옛날 것을 계속 주장하면서 지금 종교생활 속에, 우상숭배 속에 빠져있지 않느냐. 거기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지금 꿰뚫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44-50에 보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읽었습니다마는 성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과 마음은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조차 숭배하는 사상들이 유대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스데반이 성전의 주인이 그리스도 아니냐.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냐.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아가야하지 아직까지 성전을 숭배하는 그것을 붙잡고 우리가 살아가서는 되겠느냐. 이렇게 스데반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설교하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2:50-53절에 보면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 예언한 그 선지자를 죽였지 않느냐. 그리고 예수조차도 그리스도조차도 너희가 죽이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우리가 회개하자. 그 말을 하면서 결국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게 된 것입니다.
스데반이 한 설교들을 쭉 읽어보시면,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조목조목 하나님을 대항하고 복음에 역행했던 항목들과 행동들을 구구절절하게 지적하면서 결국은 얼마 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결국은 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 않느냐. 이제는 그런 짓 그만하고 그리스도로 돌이키고 회개하자는 설교를 한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듣고 결국은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 죽은 것이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스라엘 초대교회 역사 속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새로운 엄청난 축복의 문들을 열어가게 되는 그 시작이 바로 스데반이 순교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에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결국 돌을 들어서 스데반을 쳤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누구였습니까? 옛날 것을 놓치지 않는 수구 세력입니다. "옛날 율법은 좋은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놓칠 수 있느냐. 몇천년 동안 이루어진 옛날 전통을 우리가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느냐." 옛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결국 돌을 들어서 스데반을 쳤다는 사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분명히 같이 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결국 스데반을 돌에 맞게 죽음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분리시켰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났느냐? 아닙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결국은 회복된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 사건을 보고 고민하고 갈등한 사람이 사울이라는 사람인데 나중에 회심하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세계복음화의 귀한 인물로 시작된 것이 바로 바울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라는 사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붙잡을 것이 있다면 오직 복음 외에 그 복음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스데반이 유대인들을 향해서 지적한 이 지적들이 오늘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 전통을 붙잡고 있고, 옛날 율법을 가지고 있고, 복음이야기 하지만 복음이 아니라 다른 것 더 강조하고, 다른 것 더 붙잡고 있는 것 때문에 오늘 완전하신 그 복음의 역사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제가 모 일간지 신문에 보니까 WCC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첫날 개회식에 참석했던 어떤 해외 신학자 한 사람이 오직 예수만 강조하는 WCC 개회식이라고 써놓았다. 정말 오직 예수입니까? 아니잖아요. 다른 것이 강조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지금 시대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 안에 오직 복음 그 사실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우리 안에 뭔가 여러분 나름대로 과거의 것들, 뭔가 복음 외에 더 좋은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부분들이 보여지게 될 때에 그 속에서 빠져 나오게 되는 것이고, 복음이 복음 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 복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는 참된 힘을 아는 비밀 가진 사람이 스데반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필요 없는 참된 것을 아는 그 힘을 가진 사람이 스데반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금까지 유대나라에 머물러 있었던 그 복음의 역사가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본격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어져 나갔다는 사실. 그것이 오히려 전환점이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또 욥바에 다비다가 돌아와서 제자로 세워지고, 또 피장 시몬이 돌아오게 되고, 나중에 결국은 세계 선교를 위해서 안디옥 교회가 탄생되어지는 축복이 일어나게 되고, 세계 선교 역사가 그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시작이 되어지고, 거기에 중요한 중심으로 쓰임 받았던 사람이 바울이라는 인물들이 세워지게 된 것이 바로 스데반의 순교를 중심으로 해서 전환점이 되어서 복음의 큰 문들이 열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스데반은 생 전체를 통해서 복음과 전도를 위해서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스데반은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누린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정말로 복음 때문에 우리 생을 바꿀 만큼 그 복음의 비밀들을 그 축복된 역사들을 최고로 누리시고 승리하시고, 그리고 정말 우리 안에 복음이 복음 되지 못하게 하는 버려야 될 것들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는 그 은혜를 가지시고, 이 한 시대에 참된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3년 11월 3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과 함께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
(행7:44-53)
서론: 신앙생활은 열심히 해서 응답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주된 사역과 방향을 알고 그것을 따라가면 응답받게 되어있습니다. 개인과 교회,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어 가는 사람이 신앙인이며, 그렇게 생활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알고 피의 언약을 잡으면 되었고, 오신 후에는 말씀을 성취하시고 하늘보좌에 앉으셔서 교회를 통해 복음으로 세상을 살리고 계시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전도, 선교, 세계복음화입니다. 전도를 모르면 하나님의 시간표를 알 수 없고, 시간표를 모르면 많은 경우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어 고생하게 됩니다. 심지어 목회자나 중직자라 할지라도 열매가 없고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개개인을 향한 단계별 시간표(공생애: 예수그리스도를 확인시키심/ 마가다락방: 그리스도로 답을 가지고 현장나감/ 안디옥: 선교에 눈을 엶/ 마게도냐: 문화의 눈/ 로마: 세계선교의 축복)를 알고 이 언약을 나의 것으로 붙잡는 것(창37:1-11의 요셉, 단1장의 다니엘)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꿈을 언약으로 잡는 단계(마음에 담는 단계, 시기와 질투를 당하는 단계, 미혹과 유혹을 받는 단계, 믿음으로 승리하는 단계)도 누려야 합니다(요셉의 생애). 즉,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그 사실을 증거하는 것(스데반)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교회를 종교와 율법체계 중심에서 벗어나고 떠나게 만든 스데반과 같이 쓰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참 교회 회복의 역사를 시작
(1) 스데반 순교 이후 초대교회는 성전 중심, 모세율법 중심, 선민사상 중심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1) 복음을 증거하는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인 것은 수구세력(옛날의 율법과 전통을 붙잡고 있는 자들)이었음
2) 오직 복음이 되지 않으면, 결국은 종교와 율법 체질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음
(2) 복음 중심이 아닌 교회 안에서는, 지금도 계속 다른 역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1) 유대교와 바리새 역사 및 종교체질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 계속 됨(종교다원주의, WCC집회 등)
2) 참된 복음 운동은 그리스도 외에 강조되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초월해야 함(행7장부터 본격적으로 분리됨)
(3) 교회와 후대 가운데 제2의, 제3의 스데반과 같은 일꾼들이 일어나도록 기도하라!!
2. 스데반의 설교
(1) 스데반은 성경과 역사를 꿰뚫으며,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설교했습니다.
1) 유대인들 보고 한 메시지(행7:1-19)
“아브라함 후손이라는 지위, 모세의 율법, 성전 등에 집착하지 말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새로운 역사를 보라!”
2) 모세의 역사의 교훈(행7:20-36)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언약을 깨닫고 순종하여 쓰임 받은 모세처럼, 우리도 시대적 계획을 쓰임받자!”
3)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을 지적(행7:37-43)
“그리스도께서 모든 말씀을 성취하셨는데 왜 아직까지 종교생활, 우상숭배 속에 빠져있느냐!”
4) 성전 숭배사상(행7:44-50)
“성전의 주인은 그리스도이기에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가라!”
5) 회개하라(행7:51-53)
“선지자를 죽였듯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를 죽인 것을 지금이라도 회개하라!
(2) 스데반의 순교는 새로운 축복의 문들을 열어가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1) 스데반의 순교사건으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고, 사울이 회심 후 세계복음화의 귀한 인물이 됨
2) 우리 안에 ‘복음을 이야기 하면서도 복음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정확히 보고 빠져나와라!!
결론: 지금까지 유대나라에 머물러 있었던 복음의 역사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사마리아성의 빌립 욥바의 다비다, 피장 시몬, 바울의 회심, 안디옥 교회 탄생) 스데반은 복음을 위해 자기 생을 바꾼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축복을 지금 우리들에게 주시길 원하십니다. 복음 때문에 생을 바꿀 만큼 축복된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주간 ‘복음이 복음 안되게 하는 것’에서 떠나고,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사실의 증인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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