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기도하고 있더라
2014-03-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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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기도하고 있더라”
(행12:6~17)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13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14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15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16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 행12:6~17

■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저는 매주일 우리 찬양대 찬양을 들으면 소름이 끼칩니다. 나쁜 소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은 찬양대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주실 것인가. 사실 제 메시지가 찬양대에 다 나갔습니다, 오늘. 설교 안 해도 됩니다. 정말로 세상을 변화시킬 그 비밀이 기도 속에 있다고 우리 찬양대 찬양으로 영광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영원히 부를 이름,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그게 바로 초대교회에 있었고 그것이 세계를 살렸습니다. 그 축복을 회복하는 귀한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무나 은혜로운 찬양 참으로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지금 우리가 사도행전을 죽 같이 살펴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은 각 장마다 중요한 의미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를 놓고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사도행전 1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를 위한 증인을 준비하시는 부분을 보게 되고, 그 다음에 13장부터 28장까지 보면 증인을 준비하신 하나님께서 현장에 모든 것들을 준비하셔서 그 축복을 찾아 누리게 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부터 11장까지, 그 다음에 11장 마지막 말미에 안디옥 교회, 세계선교를 위해서 안디옥 교회가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가 나오는데 넘어가서 13장에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를 기도함으로 세워 놓는 그런 사역이 시작되고, 그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로마까지 세계복음화하는 그런 응답의 역사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누리게 하시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이 12장입니다. 지금 지난 주에 이어서 우리가 오늘 살펴 보고 있는 12장인데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 다 준비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그것을 위해서 기도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다락방 말씀 운동은 그 시작과 완성이 어디에 있느냐? 현장에서 기도 응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게 다락방 말씀 운동의 시작이요, 완성입니다. 특히 지금 초대 교회는 위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헤롯이 정치적인 의도에서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예수 믿는 지도자들을 죽이게 되는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칼로 베임을 당하고 또 베드로조차도 이제 내일이면 죽게 되는 그런 상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베드로가 아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 보시면 아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평안함으로 잠을 잤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위기 상황에. 그런데 어느 정도 평안함으로 잠이 들었느냐? 천사가 와서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말씀했습니다. “급히 일어나라” 말씀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상황 속에서 이렇게 잠을 잘 수 있느냐? 베드로는 기도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비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도 주께 맡겨 버린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 평안함이 오늘 하나교회 예배 참여한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든 환경들 속에서 주님께 맡겨 버리고 주님 하시는 일들을 기대하면서 보는, 그런 기도 속에서 그 평안함을 누리는. 요즘 가면 갈수록 이 평안함이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 평안이 없습니다. 참된 기도 속에서 이 평안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와 더불어 오늘 초대교회는 그 위기 가운데서도 사실은 베드로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그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5절에 보면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초대교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기도는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기도는 있었습니다. 오늘 예배 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참된 기도의 비밀을 회복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의 시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메시지를 받고 훈련 속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밑바닥에는 무엇보다도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기도의 비밀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정상에, 영적인 써밋(summit)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밀 중 하나가 있다면 바로 기도의 비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두 가지로 말씀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기도 - 그리스도를 누려라.
먼저 첫 번째로 기도로 그리스도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기도로! 그리스도를 누리자! 그것만 하면 다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 불렀던 찬송처럼 그 안에 다 있습니다, 사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그 사실을 기도로서 누리는 그 안에 세상 살리는 비밀이 있습니다. 예전에 계셨고 길이 되시고 지금도 길이 되시고 그의 피로 증거를 세우사, 그 피가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 피로 증거를 세우사 그 피의 언약을 붙잡고 나아가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응답을 주시는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응답들을 우리에게 준다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로 그리스도를 누리면 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응답은 전부 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초대교회, 마가다락방 교회가 12절, 14절에 보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하나되어서 기도에 힘썼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거기에 기도에 힘쓴 시작이 무엇이냐 하면 그들은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성령의 충만함 이 언약 붙잡고 전혀 기도에 힘썼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는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 그리스도입니다. 인류 전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말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가지고 있는 문제와 우리의 가지고 있는 염려들까지도 그리스도는 다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떻습니까? 그런데 지금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고 지금 우리에게 우리의 현장에 가장 필요한 이름이 있다면, 우리 인생에 진짜 도움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여러분, 사람들 어려움 당하면 이런 말 저런 말로 위로합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위로가 됩니까? 진짜 우리 인생에 도움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현장을 마음에 담고 계속해서 기도하면 한 가지가 보입니다. 왜 사람들이 어려움 당하고 왜 자꾸 무너지느냐? 결국은 세상 임금으로 악한 흑암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거기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 이 언약이 깨달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냥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영혼을 살리는 사람으로, 전도자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능으로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성령의 충만함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게 사도행전 1장에 나오는 언약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충만함. 이 약속을 붙잡고 초대교회는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기도로 그리스도를 누렸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증거의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2장 1절~47절에 보면 하나님의 응답이 일어났는데 여러분,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어떤 소원을 놓고 기도하는 부분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들을 체험하고 증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응답입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 훌륭하게 자라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또 물질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 경제의 문을 여셔서 물질적인 축복도 주시는 것, 그것 전부 다 응답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참 응답은 사도행전 2장 1절~47절, 이 사실이 내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참 응답입니다. 약속 붙잡았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이상하게 사람이 붙여지는데, 그 사람에게 전도의 문이 열려지고 그 현장에서 말씀이 성취되면서 말씀의 성취를 보는 제자들이 세워지고 일꾼들이 세워지고, 이상하게 현장에 복음이 확산되고 변화되는 그 역사, 그 응답, 그것이 참 응답입니다.
저와 여러분, 언약 가지고 기도하는 주의 백성으로서 진짜 받아야 될 응답은 사도행전 2장 1절~47절에 나오는 그 응답입니다. 그런데 그 사도행전 2장이 그냥 있는 것이 라니라 사도행전 1장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사도행전 1장을 빼버린 2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행전 2장의 응답은 기도로 그리스도를 누리는 그 사실 속에 당연히 나오는 응답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베드로와 요한이 보았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되었다는 말은 운명과 저주와 재앙 속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앉은뱅이를 바라보면서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습니다. 이 말을 그냥 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3장 1절에 보면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가운데 여러분이 선포하는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은 사람들을 운명과 저주, 재앙 가운데서 해방시키는 그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나를 변화시키는 그 복음의 능력, 그 복음의 능력이 기도하는 가운데 현장에 선포되게 될 때 현장에 지금 저주, 재앙, 운명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서 해방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일어난 역사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앉은뱅이 일으킨 사건 때문에 베드로가 종교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많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하면 이 베드로를 죽일 것인가, 또 어떻게 하면 예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그런 종교 법정에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저와 여러분이 잘 아는 그리스도 유일성에 관한 비밀을 선포했습니다. 그 현장이 어떤 현장인데. 그런데 그 현장 속에서 어떻게 이 베드로가 담대히 그렇게 선포할 수 있었느냐? 사도행전 4장 8절에 보면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말씀했습니다. 기도로 그리스도를 누리는 누림 속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인도하시고 그 가운데 담대함으로 그 종교 법정 앞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포하게 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6장에 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빨리 눈치를 채고 사도들이 답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말씀 전하는 것과, 뭐하기에? 뭐하기에? 기도하기에 전무하리라. 바르게 붙잡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돌에 맞는, 돌에 맞아 순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러분, 말이 돌에 맞아 순교를 하는 것이지 얼마나 아픈 자리입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자리입니까? 그런데 그 고통을 스데반이 어떻게 이길 수 있었느냐? 스데반은 평상시에, 평소에 기도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고통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 거기에 대한 답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에 보면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그렇습니다. 핍박, 교회안의 시험, 또 환란들. 일어나는 그 상황 속에서 이 초대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봤다는 거에요.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이 되도록 그리스도만 바라봤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힘으로 핍박을 이겼고, 시험을 이겼고, 환란들을 이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 뭐냐? 그것이 기도예요,.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게 기도라는 거예요. 우리는 기도로서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이 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얼마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다른 많은 것들이 우리 안에 있는지 모릅니다. 다시 말해서 오직 그리스도 바라보지 못하는 내 안에 뭔가 많은 것이 있어요. 여러분 정말로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이 되어지는 그 축복의 역사를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8장에 빌립은 주의 사자가 이르되 주의 성령에 이끌린 바 되어 갔는데..어디입니까? 그것이 한 나라를 살리는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는 만남의 축복이 이루어졌어요. 어디에서? 기도 속에서 ... 사도행전 9장에도 아나니아가 다메섹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거기에 시대적인 전도자 사울을 붙이셨고요. 로마 문이 열렸습니다. 베드로로 말미암아, 거기에 베드로가.. 사도행전 10장 9절에 보면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보자기의 환상을 보여주시면 결국은 그를 통해서 만나게 된 사람이 고넬료이고 그 고넬료가 로마의 백부장으로서 로마의 문을, 이방의 문을 여는, 귀한 전도의 문을 여는 귀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전부다 하나같이 어디에서? 기도로 그리스도를 누리는 그 누림 속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문들을 여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락방 운동은 딴 게 아닙니다. 다락방 말씀운동은 현장에서 기도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락방 이예요. 그리고 가서 기도응답에 대해서 전달하는 것. 그것이 팀 사역이거든요. 불러서 기도응답의 비밀을 가르치는 것. 그것이 미션 홈입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든 현장에 응답받는 시작이요 완성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정말 그리스도, 날마다 우리에게 항상 필요한 것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입니다. 불신자들은 복음 받을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한 번도 듣지 못하고 그래서 왜 예수를 믿어야 되는가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는가 그 이유를 몰라서 안 믿는다손 치더라도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전도자,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사명자, 전도자들에게 더더욱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입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전도자에게 더 더욱이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왜냐? 전도자를 악한 사탄이 가만두지 않잖아요. 그 사실을 알면 더더욱이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내가 정시로, 무시로, 집중해서 누리는 기도, 그것이 다라는 거예요. 이번 한 주간 그 축복을 회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기도의 비밀,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이 되어지는 이 기도의 비밀을 놓쳐버리면 아무리 지난날 경험하고 체험했다 할지라도 오늘, 지금 역사하는 사단의 역사에 틈을 내주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 삽비라 나오지요. 동기 가지고 그것이 사탄이 틈타는 통로가 되어서 멸망받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 아나니아 삽비라가 사도행전 1장, 2장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증거의 역사를 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리스도 바라보는 것이 안 되어지니까.. 자기 동기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 동기의 틈을 이용해서 악한 사단이 실패시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 그 사실을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도 보면 교회 안에 파벌문제가 나왔지요. 인본주의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지요. 인본주의가 나왔는데 그것이 뭡니까? 헬라파 유대인들이 가만히 보니까 자기의 과부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에게 자꾸 제외되거든요. 구제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히브리파 사람들이 자기 사람들만 챙기고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을 챙기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화가 나서 교회 안에 구제 문제로 분쟁이 일어났잖아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바라보지 못하게 될 때 온갖 인본주의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되어있어요.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가 안 되면 동기가 들어오고요. 잘한다고 하는 것도 결국은 실패하게 되고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가 안 되어지면 나도 모르게 인본주의가 들어오게 되고 그것가지고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얼마만큼 그리스도를 기도로 누리느냐?
여러분, 그리스도를 기도로 누리는 사람은 문제 오면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숨은 계획들이 보여지게 되어있어요. 그러나 그리스도를 기도로 누리지 못하면, 문제 오면 그 문제 속에서 걱정거리가 되고 그것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염려거리로 와지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동일하게 당합니다. 구원받은 자도 문제 당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도 문제 당합니다.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라 할지라도 문제 당하는 사건 속에서 그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 내가 그리스도를 기도로 누리고 있으면 그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숨은 계획이 보여지고 그 응답을 향해서 또 나아가게 됩니다. 반대로 그 사실이 안 되어지면 문제만 보여지고 그것을 걱정하고 염려거리가 생겨지고 거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2장은 결국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어떤 상황 속에 있든 지간에 정말로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를 놓치지 않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실패는 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누리는 기도에 실패하기 때문에 악한 사탄이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에 실패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 12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느냐? 어떤 상황이 우리 앞에 놓인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만은 놓치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기도 속에서 평안함을 누렸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초대교회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기도만은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2. 기도 - 버려야 할 것이 보임(포기할 것, 선택할 것)
두 번째입니다.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기도로 그리스도를 누리게 되면 버려야할 것이 보여지게 됩니다. 지난주도 말씀드렸죠. 언약 붙잡고 기도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포기할 것을 포기하게 하고 선택할 것을 선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기도 속에서 버려야 할 것이 보여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경우 버려야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이것이 안보여서 지금도 우리가 얼마나 헤매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까? 내가 뭔가 모르게 문제 속에서 헤매고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가 안 되어지고 있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나아가시면 됩니다. 분명히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면 기도 속에서 버려야할 것이 보여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버려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과거, 상처들, 상한 감정들.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응답받느냐, 응답받지 못하느냐. 응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과거 상처들 고스란히 그대로 가지고 있었어요. 결국 어떻게 되느냐? 다른 것에 빠져요. 다른 것에 빠지면 괜찮은데 결국은 틀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계속해서 깨어진 상태로 상실된 나를 가지고 살아가요. 내 안에 있는 상처들, 상한 감정들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응답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죠. 결국은 상처들을 가지고 이 부분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열심을 내는 만큼, 오래 사시면 오래 사는 만큼 뭔가 모르는 혼동이 오게 되어있어요. 창세기 1:2에 흑암과 혼돈이 오게 되어있어요. 사실은 내 안에 상처들 때문에 그래요. 그 부분을 버리지 못해서 그래요. 그래서 혼돈이 오는데 구원은 받았다 할지라도 결국은 중요한 하나님의 응답들을 놓치게 되는 것이죠. 혹이나 병든 분들 있습니까? 요즘 워낙 시대가 그래서 우울증 걸린 사람이 많은데 진짜 버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상처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그 사실을 보게 하고 그 사실 앞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버려지게 되어있어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를 회복하면 버려야 될 것이 보여지면서 거기에 다른 것이 보여지게 되어있습니다. 버려질 것이 버려지게 되고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응답받은 사람들은 다 그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어떻게 내가 성공할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왕궁에서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 늘 이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도 없고 보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결단 했습니다. 히11:24-26에 보시면 모세가 버린 것이 나와요. 24절에 바로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 했어요.26절에 보면 자기가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기고 주님 주시는 상급을 더 바라보고 자기 애굽의 모든 능욕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한번 찾아봅시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다." 애굽의 모든 보화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었고 그때 보게 되었습니다. 아,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노예 살이 종살이하고 있는 것이구나. 이때 모세에게 "내 백성을 인도해내라"는 하나님께서 중요한 천명을 허락하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버려야 합니다. 버려야 보여지게 되어있어요.
엘리사는 부자 집안에 농사짓는 일꾼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소 열두 겨리 되는 소를 이끌고 농사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열두 겨리면 24마리입니다. 어느 날 엘리야가 찾아와서 "나를 따르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엘리야는 어떤 상황이냐? 이세벨에 의해서 아합왕이 지명수배 내린 사람이에요. 그를 따른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야 합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아합왕 이세벨이 화가 나서 엘리야를 죽이지 않으면 먹지 않겠다고 해서 엘리야를 추격해왔잖아요. 그때 엘리야가 도망쳐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실망과 절망에 빠져서 "이제 내가 다 끝났습니다. 죽여주옵소서." 이때 엘리야에게 사명주시면서 다시 내보내시잖아요. 그런 가운데 엘리야가 엘리사를 만나서 나를 따르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자리, 자기의 이익, 내가 이 사람을 따라가서 유일이 될 것인가를 계산하잖아요. 그런데 엘리사는 소 한 겨리를 잡아서 사람들에게 먹이고 그리고 소의 모든 기구를 불살랐다고 했어요. 아니, 중고품 가게에 내어놓으며 돈이 될 것인데 모든 기구를 불살랐다는 말은 무슨 말이에요? 뒤돌아갈 수 있는 것들을 다 제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버려도 철저하게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 엘리사에게 하나님께서 도단성의 축복을 주셨고 불말과 불병거가 동원되어지는 그 엄청난 축복의 역사를 주셨다는 사실. 버려야 합니다. 뭐 좋은 것이라고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상처들, 상한 감정들 때문에 축복을 다 빼앗기고 있고요. 열심히 살다가 어느 날 그것 때문에 다 놓치게 되는데 마치 여러분이 상처와 상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숯불을 종이에 싸는 것과 같습니다. 숯불을 종이에 쌀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고 문제 당하면 옛날 생각들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것이 해결 안 되었다는 말이죠. 진짜 해결되어지면 '아, 이것 아니면 하나님의 복음을 받을 수 없었는데 이것 때문에 복음을 받았구나!' 감사가 나올 것입니다. 오늘 장로님 기도한 것처럼 내가 실패했던 그것이 내게 메시지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메시지가 되도록 기도했잖아요. 그것이 바로 상처를 버린 겁니다. 상한 감정을 버린 겁니다. 아브라함 보세요. 갈대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말씀했는데 아브라함 마음에 늘 롯이 자리 잡혀있었어요. 하나님이 겉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창세기 13:14에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아브라함 마음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롯을 내어 놓았어요. 15-17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즉각적으로 바로 축복하셨어요. 무엇입니까? 네 눈을 들어서 동서남북을 보라. 네가 동으로 걸어보라. 네가 밟는 모든 땅을 네게 주었노라. 언제? 버릴 때, 내려놓을 때. 우리가 정말로 버릴 때 하나님의 약속도 보여지게 됩니다. 버릴 때 하나님의 나라가 보여지게 됩니다. 뭔가 내가 불안하고 뭔가 내가 두렵고, 뭔가 내가 조급하고, 뭔가 내가 안정이 안 됩니까? '정말 하나님이 하실 일과 그리스도를 붙잡고 내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게 되어있어요. 버릴 때.
마지막 초대교회 보세요. 초대교회 마가다락방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성공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출세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자리에 모일 수 없는 상황이에요. 생을 걸고 모였는데 출세와 성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모일 수 없어요. 그런데 그들은 버렸기 때문에 모일 수 있었어요. 거기에 참 응답을 주셨어요. 사도행전 2장에 세계를 살리는 참 응답의 기준을 초대교회를 통해서 주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사실은 회개함으로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주셨는데 이 사실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곱 번의 재앙의 역사가 온줄 알았어요. 현장을 제대로 안 것이죠. 결국은 가장 중요한 축복인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다른 좋은 것들 때문에 ,그리스도를 놓친 이유 때문에 이 땅에 재앙의 역사가 일곱 번이 임한 줄 알고 회개하면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붙잡았다는 사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종교를 버렸습니다. 이전까지는 율법, 제도, 규례에 따라 살아왔던 사람들이에요. 또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토라, 쉐마, 탈무드 이런 부분들을 붙잡고 이것을 기준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것까지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다음에 초대교회는 불신앙을 회개했고 불신앙을 버렸어요. 특별히 여러분, 구약 성경에 보시면 욥기서에 보면은 욥이 두 번 회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죄를 덮어쓰고 털옷을 입고 회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언제 나오느냐? 1장에 보면 하나님이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데려갔잖아요. 그러면 원망해야 하는데 욥은 뭐라고 했느냐? 21절에 보면 내가 알몸으로 이 땅에 왔는데 알몸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지금 성경에는 알몸이라고 나와 있는데 옛날 성경에는 내가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빈털터리로 왔다가 빈털터리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했느냐? 주신 자도 여호와시고, 취하신 자로 여호와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 앞에 보면 20절에 욥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가 잘못한 것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앙한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욥기 42장에도 보면 욥이 회개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자녀들을 배로 축복하시고 재산도 배로 축복하셨잖아요. 그러면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한 것이 아니었어요. 욥기 42:6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티끌과 재가운데 욥이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러면서 한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눈으로 주님의 역사를 본다고 했습니다. 불신앙했던 것들을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가 불신앙을 회개했고 종교를 회개하고 버리고 내려놓았고, 또 진짜 회개의 역사 그리스도 외에 좋은 것들 붙잡은 것 때문에 재앙이 일어난 사실을 알고 회개했다면,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우리가 적용할 부분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 것, 우리의 들은 것, 우리의 읽은 것이 말씀보다도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이냐? 그 말은 아닙니다. 보고 듣고 읽은 것을 다 버려야 하느냐? 예, 바울은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왜 여기는지 이유를 알았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도 모르게 신앙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보고 듣고 읽은 부분들이 내 기준이 되어 있고 그것이 내게 각인되어 있어요. 교회에 대해서도, 주의 종에 대해서도, 성도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다른 것들이 기준 되어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만큼 많은 지식들, 경험들, 문화들을 접했잖아요. 그것이 우리 안에 각인되어 있어요. 또 우리의 창세기 3장 체질들이 어디 갑니까? 거기에 연약한 것, 실패했던 것들이 각인되어 있어요.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못 보게 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 해결했습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17:1-9에 나오는 말씀처럼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오직 그리스도 되도록.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체질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짜 올바른 헌신이 뭐냐? 내가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고 일하는 것이 헌신이 아니에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이 우리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했습니다. 그 사실을 누리는 것이 올바른 헌신입니다. 오늘 중직자 연합 세미나를 놓고 홍보 영상을 준비했는데요. 중직자분들이 교회를 위해서 뭔가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헌신인줄 아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 헌신 중의 헌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사실적으로 누리는 것이 헌신중의 올바른 헌신입니다. 그렇게 되어질 때 하나님이 거기에 사도행전 2:1-47의 올바른 응답을 주심과 더불어 모든 세계의 문들을 여시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로 나를 치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상한 감정들, 여러분의 숨겨진 부분들입니다. 이것이 내가 사느냐. 못사느냐는 것입니다. 숨은 부분들인데 내가 평생 사느냐, 실패하느냐 입니다.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로 말미암아 내 자신이 치유되어지고, 내가 치유되는 만큼 그 다음에 오는 응답은 함께하는 축복의 비밀들이 누려지게 되어있어요. 무슨 말이냐? 마가다락방에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가 사도행전 1장 언약 붙잡고 함께하는 역사가 일어났잖아요.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더불어는 함께와 같은 말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12장에 초대교회가 위기를 당했는데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더라. 함께하는 축복이 임했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교회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하고 성도들 간에 서로 원수관계에 있고 서로 시험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세상을 그럴지 몰라도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바울을 통해서 주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면 한 몸이요, 한 지체라 했습니다. 함께하는 축복 이 비밀들 회복하지 않고서는 절대 하나님의 응답들을 못 누리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내 개인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속에서 치유 되어지는 만큼 만남이 복이 되게 되어있어요. 함께하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그냥 신앙고백이 아니에요. 함께하는 축복 그 속에 하나님은 모든 전도의 문을 여시게 되어있고, 그 속에 말씀 성취의 응답의 역사들을 주시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이번 한 주간 정말로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회복하는 복된 한 주간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3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기도하고 있더라
(행12:6-17)


서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비밀은 기도 속에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가운데 전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사도행전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행1~11장 : 세계복음화를 위한 증인을 준비, 행13-28장 증인을 준비하신 뒤 그 축복을 누리게 하심). 오늘 본문은 그 사이에 있는 12장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셨으니 이제 기도를 누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락방말씀운동의 시작과 끝도 현장에서 기도응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의 비밀을 가진 베드로는 아무 손을 쓸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지만 평안함으로 잠을 잤습니다(어떤 상황도 주께 맡겨버림) 초대교회 역시 아무것도 없었지만 기도는 있었습니다(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이처럼 영적인 서밋에 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기도의 비밀 속에 있습니다.

1. 기도 - 그리스도를 누려라
(1) 기도응답을 누린 자
1) 언약(행1:1,3,8)잡고 더불어 마음을 같이한 기도(행1:12-14)속에, 세상 살릴 모든 것이 들어있음
2) 행2:1-47 하나님의 응답(행1장 전제) : 오순절 날, 15나라 문, 말씀 성취, 제자 세워짐, 현장 변화
a. 행3장 베드로 : 제 구시 기도시간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의 운명과 저주를 해결
b. 행4장 베드로 : 종교법정에서 성령에 충만(행4:8)하여 그리스도의 유일성 선포
c. 행6장 교회 안의 문제 :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기에 전무함
d. 행7장 스데반 : 평상시 기도 가운데 성령에 충만함(행7:55)으로 순교함
e. 행8장 빌립 : 주의 사자와 주의 성령에 이끌리어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남
f. 행9장 아나니아 : 기도하는 중에 시대적 전도자 바울을 만남
g. 행10장 베드로 : 지붕에서 기도하는 중에 보자기 환상을 보고 백부장 고넬료를 만남(로마를 여는 문)
(2) 기도응답을 못 누린 자
1) 기도를 놓치면 아무리 체험과 경험을 했더라도, 오늘 지금 역사하는 사탄에게 틈을 내어줌(아나니아, 삽비라)
2) 기도의 비밀을 못누리면 쓸데없는 인본주의에 빠짐(구제문제로 인한 교회내 파벌싸움)
(3)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를 놓치지 말라!!
1) 기도는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것이 되도록 하는 것임
2) 기도를 누리면서 복음이 현장에 선포될 때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나타남

2. 기도 - 버려야 할 것이 보임
(1) 기도 속에서 버릴 것을 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을 보여주십니다.
1) 모세 :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과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릴 때, 출애굽의 언약을 받음
2) 엘리사 : 모든 것을 불사르고 엘리야를 따를 때, 도단성의 축복과 불말・불병거의 동원을 봄
3) 아브라함 :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 롯을 떠나보낼 때, 영원한 축복을 받음
4) 초대교회 : 성공과 출세를 버리고 모일 때, 행2장의 세계를 살리는 귀중한 응답 받음
(2) 그리스도외에 각인된 모든 것을 버려라!!
1) 초대교회는 종교(율법,제도,토라,탈무드,쉐마)를 버렸고, 욥은 불신앙(욥1:21, 욥42:6)을 버렸음
2) 본 것, 들은 것, 읽은 것이 말씀보다도 더 각인되면 하나님의 역사를 못 봄(바울은 배설물로 여김)
3) 올바른 헌신, 헌신 중의 헌신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자리에 우리가 있는 것임(마28:16-20)


결론: 우리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로 자신을 치유해야 합니다(상한 감정, 숨겨진 부분). 그러면 함께 하는 축복(행2장: 더불어, 행12장: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치유가 되는 만큼 만남이 축복 받고 성도가 서로 교통(고전12장 교회는 한 몸이요 한 지체)할 수 있습니다. 이 속에 모든 전도의 문과 말씀 성취의 응답의 역사들이 있습니다. 한주간 이 축복 누리는 가운데 그리스도 누리는 기도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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