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2014-03-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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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행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여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 행13:1~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이 한날도 예배하는 가운데서 땅끝까지 살릴 수 있는 영적인 힘을 회복하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가 본받고 싶어하는 교회가 있다면 안디옥 교회입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진짜 주님의 계획이, 주의 소원이 무엇인가를 알고 거기에 방향 맞춘 교회이고 또 그 결과로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처음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선교사가 파송된 그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였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델적인 교회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가 그렇게 아름답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쓰임 받은 이유 가운데,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 수 있지만 그 중에 한 가지는 안디옥 교회는 주님께 예배함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주님을 섬기는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금식에 대한 중요한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는 주를 섬길 줄 아는 교회였다는 것, 우리의 신앙의 가장 기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 생활의 가장 기본이 무엇이냐?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교회가 안디옥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는 그 비밀을 가지고 있으니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고 그 성령의 인도를 받아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선교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는 그 축복을 누린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 개개인은 물론이고 우리 하나교회가 이 한 시대 진짜 주님을 섬길 줄 아는 교회가 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주님을 섬기는 부분에 있어서 회복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해서 말씀을 좀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본질인 주님을 섬기는 법을 알고 있었던 이 안디옥 교회, 이 안디옥 교회를 살펴 보면서 정말로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이 주님을 섬긴다는 것이고 그리고 내가 이 한 시대 주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내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1. 주님을 섬기는 것 -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먼저 첫 번째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에게 당연히 오는 응답입니다. 하나되는 응답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나아가니 거기에 하나되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만약 우리의 동기나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야망이나 우리의 욕구를 중심으로 해서 우리가 모였다면 우리 모두가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인 이들은 하나되었습니다. 그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주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았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1절에 보면 다섯 명의 안디옥 교회의 일꾼들이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를 시작하게 된 다섯 명의 일꾼들이 나오는데 이 다섯 명의 일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따져 보면 전부 다 다른 나라, 다른 배경, 다른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될래야 하나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되었습니다. 그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바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되지 말라 해도 하나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 다섯 명의 일꾼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살펴 보면 먼저, 바나바가 나옵니다. 이 바나바는 지혜 있는 사람이고 인품 있는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엘리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사도행전 4장 36절에 보면 초대교회가 어려움 당할 때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내어 놓을 만큼, 그게 초대교회 성도들이 나누어 가짐으로 말미암아 부족함이 없도록, 넉넉하게 각각 필요를 따라 나누어 썼던 것처럼 그만큼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4장 36절에 보면 ‘레위족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인물이 보면 니게르라는 시므온, 이름이 시므온인데 이 사람이 니게르라 합니다. 이 니게르는 그러니까 어두운, 피부에 검은 색을 가진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게 흑인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실 아프리카 배경 속에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배경 속에 있었던 사람,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 피부가 검은 색을 가진 사람, 이게 니게르라는 말입니다. 흑인, 아프리카 영향 속에 있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고 또 그 다음에 나오는 인물이 구레네 사람 루기오. 구레네 사람이란 구레네 지방, 시골 사람입니다. 구레네 시골의 루기오. 여기 이 사람은 성경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로마 영향권 속에 있는 로마 사람이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오는 인물이 그 다음에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마나엔이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헤롯의 젖동생이라고 하는데 헤롯이 누구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핍박하던 사람 아닙니까? 세례 요한을 죽인 사람입니다, 헤롯. 그 사람의 젖동생이라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과연 진짜 이 마나엔이 헤롯의 친동생이었는가? 아니면 그 당시에 왕족의 자녀들을 위해서 유모가 왕실에 들어가서 젖을 먹였지 않습니까? 모세도 그러한 경우 아닙니까? 그래서 그냥 단순히 친형제가 아니라 젖을 한 유모 밑에서 먹은 그런 형제가 아닌가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한 젖을 먹고 자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릴 때부터 헤롯을 보고 자랐지 않습니까? 그러면 헤롯이 예수 믿는 사람을 대적하는 부분이나 또 정치하는 사람으로서의 권모술수 이런 것을 다 보고 자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젖동생 마나엔 이 사람은 그런 분위기, 그 환경 속에서도 예수를 믿고 제자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오늘 여기에 쓰인 바 되어지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보면 사울이라 했습니다, 사울.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던 사람, 유대인의 관원 중의 관원으로서 지금 말로 하면 관원이라는 말은 국회위원급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또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로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다섯 사람의 일꾼이, 이들이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인데 이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되는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사상도 다르고 성공하고 실패했던 그 내용도 다른 내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실 인종도 다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또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해서, 자기 명분을 쌓기 위해서 나아간다면 하나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당시 예수 믿는다는 것 자체가 편하지 않았습니다. 로마가 국법으로 예수 믿는 것을 금했고 유대교에서도 종교법으로 예수 믿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이유 때문에 잡히면 출교 당하고 그리고 몇 번 이렇게 출교 당하다가 그 다음에 또 잡히면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가 또 잡히면 결국은 사형당하게 되는, 그래서 심지어 즉결재판, 현장에서 돌을 들어 쳐 죽여도 되는 정도로 그만큼 예수 믿기가 쉽지 않은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비밀이 어디에 있느냐? 딴 게 아닙니다. 진짜 주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되라 해서 하나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 공동체가 하나되자 그렇게 하나되는 거 아닙니다. 뭔가 캠페인하고 뭔가 슬로건을 내걸고 그래서 우리가 원네스(oneness)하자 그렇게 해서 하나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우리 하나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를 섬기는 비밀이 무엇인가를 알면 하나되지 말라 해도 저절로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축복이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될 수 있는 그 비밀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주를 섬기는 그 축복이었는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들은 주님을 섬겼느냐?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 오늘 사도행전 13장 2절에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여기에서 성령이 이르시되 이 말은 성령이 말씀하셨다는 말이지요.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시킬 일이 있는데 그것을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그때에 3절에 보면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따로 세워서 두 사람을 안수하여 보냈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말씀을 실천했다는 사실 이예요. 다시 말해서 주를 섬기는 비밀에 하나 될 수 있었던 그 가장 중요한 중심에는 말씀에 하나 되어지는 그 축복된 응답이 안디옥 교회 속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렇잖아요. 연세 드신 분, 나이가 얼마 안 되는 태영아까지도. 또 교회 안에는 구원받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가라지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가라지와 알곡 비유를 이야기했지요.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이런 저런 부분들을 가지고 상처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정말 하나님의 귀한 계획이라면 거기에 생을 걸고 뛰어드는 헌신하는 사명자들도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자기 이익 따라, 자기 명분 따라 움직인다면 교회는 안 되게 되어있고,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안디옥 교회는 절대로 하나 될 수 없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하나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섬기는 비밀인 말씀에 순종함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이 일에 하나 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교회생활 속에서 진짜 말씀보다 앞서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기준과 내 경험들은 물론 좋은 경험들과 좋은 생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말씀 앞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40년, 50년, 60년 여러분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여러분 나름대로 중요한 경험들, 좋은 경험들 많이 하셨을 테지요. 그러나 그런 좋은 경험들조차도 말씀이라면, 말씀 속에 내려놓고 무릎 꿇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내소리가, 내 주장이, 내 고집이 너무 앞서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말씀 따라서 하나 되어질 때에 여기에 교회는 기적을 감당하고, 기적을 나타내게 되어 있어요. 성경에 보십시오. 한 번도 말씀으로 하나 되어 질 때에 하나님께서 그 현장에 기적을 일으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말미암아 하나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절대 빠져 나오지 못하는 430년 동안의 애굽의 종살이 하는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그 축복을 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내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내라 말씀하셨잖아요.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말씀하셨는데 바로 희생제사의 비밀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붙잡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어떤 능력이 임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 왕이 내놓지 않았는데 언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같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랐을 때에 애굽에서 빠져나오는 그 기적을 이룬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원네스 되어지고 하나 될 때에 하나님이 역사를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요단강 앞에 섰을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요단이라는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광야 길을 가는 인생이라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언약궤를 따라서 들어가라 했습니다. 여러분 언약궤는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따라서 광야길을 움직였는데요 그 언약궤 안에는 만나 담은 항아리가 있는 것이고, 또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는 것이고, 그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두 돌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언약궤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갔는데 요단 앞에 이르렀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언약궤를 따라서 들어가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라는 거예요. 거기에 하나님은 요단을 가르시는 그 기적을 이룬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서 지나가는 동안에 여리고가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언약궤을 멘 제사장들 뒤를 따라서 돌아라 했습니다. 돌되 말 한마디 하지 말고, 아무 말 하지 말고 돌아라 했습니다. 왜냐? 우리의 체질과 우리의 근본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입만 열면 불신앙하고 불평하는 말들 하잖아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입 열지 말고 돌아라 했습니다. 언약궤를 따라 돌아라 했습니다. 언제까지? 무너질 때까지 돌아라 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앞두고 언약궤를 따라 도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그 기적을 이룬 사실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교회는 말씀 붙잡고 그 말씀을 실현시키고, 말씀을 실천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 되어질 때에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와 가정과 개인에게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 광야에 모였습니다. 그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너희 모든 우상숭배하던 모든 것들을 내어버리고 미스바에 모여서 회개하라 했어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가 자기가 믿던 우상숭배 모든 것들을 다 정리하고 미스바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때 미스바 광장에 모였다는 이 부분들을 블레셋이 보고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블레셋이 군사를 일으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해 왔어요. 그때에 미스바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 달라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림으로 제사를 지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미스바 광야에서 하나 되어서 있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블레셋이 전쟁을 일으켜서 쳐들어오는데 그 블레셋 진영에 큰 우레를 발하심으로 말미암아 싸우지도 않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기게 되어지는 그래서 블레셋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지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 붙잡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을 올바로 섬기면서 나가게 될 때에 역사는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하시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도행전 1:12~14절에도 마찬가지이지요. 초대교회가 그리스도, 하나님의 나라, 성령의 충만함 이 언약을 붙잡고 14절에 보면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그때에 이 지구상에 가장 큰 응답. 성령이 임하는 오순절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언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 될 때에 그 응답들이 일어났던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특별히 초대교회가 위기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 위기 속에서 교회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위기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었는데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내용이지요. 바로 기적이 일어났어요. 하나님의 사자가 동원되어서 베드로를 옥에서 꺼집어 내고요. 헤롯이 충이 먹어 죽게 되는 그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온 성도들이 주님을 섬기는 일에 하나 되어질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내 고집, 내 주장, 내 경험, 내 기준들...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말씀 속에, 말씀 앞에 모든 것 내려놓으시고 말씀에 인도받는 우리 하나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님을 섬기는 방법?
두 번째입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을 섬기는 방법이 무엇인가? 나름대로 주님을 섬긴다고 누구나 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보면 결국은 체질대로 주님을 섬겨요. 나름대로 체질대로 주님을 섬겨요. 그러면 세상적인 체질, 세상적인 기준으로 주님을 섬기게 되면 결국 결과는 실패하는 신앙생활이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섬기되 중요한 것은 복음적인, 성경적인 체질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의 체질을 가지고 주님을 섬겨야 되는데 그러면 복음적인, 성경적인 신앙의 체질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방법이 뭐냐?
첫 번째로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직 복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체질이 되어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복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무너지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창세기 3:15에 보면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늘 실패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그리스도를 고백해놓고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계집 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저주까지 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언제 바뀌어졌는가? 바로 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맞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졌을 때 베드로는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불러서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들었던 그 메시지가 죽은 메시지가 아니라 살아나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베드로가 결국은 앉은뱅이 일으킨 사건 때문에 종교 법정에 서게 되어서 재판장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베드로는 사도행전 4:12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다고 담대히 고백했습니다. 이 힘이 어디에 있었는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맞구나 사실들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나오는 담대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할지라도 진짜 왜 사람 때문에, 환경 때문에, 문제들 때문에 넘어집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들이 확인되어지면 사람과 환경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그 힘이 주어지는데 이 사실들이 누려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 앞에, 환경 앞에, 문제들 앞에 때때로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오직 복음만 체험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생애를 놓고 복음을 체험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진짜 예수가 그리스도가 맞구나!' 이 사실에 대한 확인, 이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 가지 복음만 주셨어요. 그리스도만 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운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고요. 이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고요. 이 그리스도만이 사탄 마귀 권세를 깨뜨리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생명이고, 그리스도만이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어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영접하는 순간에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생명은 누가 주신 것입니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주신 거예요. 내가 교회 다녀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거예요. 그리스도 말미암아. 그래서 에베소서 2:8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고 해서, 열심히 교회를 위해서 헌신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생명입니다. 그와 더불어 특별히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어쩌다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은 그 자체도 하나님이 믿게 하셔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주셔서 믿게 된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에베소서 2:8에 보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내가 어쩌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 있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우리에게 생명 주셔서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유일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 복음밖에 없어요. 다른 길이 없어요. 생명 얻는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고요. 그리스도가 생명이고요. 또,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나름대로의 길을 갑니다. 그런데 진짜 참된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 어느 성도님이 몸에 질병가운데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2번 찾아뵜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질병가운데 힘든 고통가운데 있으면서도 너무 평안하셨어요. 그리고 기도할 때 손도 꼭 잡으시고 기도할 때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너무나 확신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날 살아온 생애는 제가 듣기에는 부인 집사님이나 자녀들에게 그렇게 모델 될 만한 삶은 살아오지는 않으신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 자리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길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길을 주신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가정이 아버지의 죽음 앞에,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진짜 지난날의 생을 생각해보면서 진짜 중요한 하나님이 생명주신 이 사실을 알고 이제 자녀손들이 다른 길 가지 않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사람들이 많은 다른 길을 가잖아요. 건강에 길이 있는 줄 알고, 돈에 길이 있는 줄 알고, 명예가 길 인줄 알고, 인기가 길 인줄 알고 나름대로 그것을 길로 찾아서 몸부림칩니다마 나중에 보면 허상입니다. 진짜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리스도밖에 없어요. 오늘 불렀던 찬송처럼 다른 길로 가지 맙시다. 오직 그리스도 그 길만은 가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그 길만 가야합니다. 악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다른 길을 가도록 자꾸 만들어요. 여러분, 성경에 보시면 창세기 1:27-28 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셨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것 아닙니까. 함께하도록 축복하셔서 에덴동산을 주셨어요. 그러면 그 사실을 가지고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놓쳐버렸어요.
왜냐? 악한 사탄이 다른 길 가도록 만들었어요. 사탄이 자꾸 불신앙을 심어 넣어서 자기 생각 붙잡도록 해서 결국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든거예요. 욕심과 어떤 자기의 생각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도록 만든 거예요. 그래서 자기 기준, 자기 생각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서 결국 이 땅에 모든 문제가 왔잖아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바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자마자 다른 길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3:15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복음 그리스도를 주신 거예요. 그리고 이 약속을 붙잡으면 되는데 붙잡고 살아가다가 또 보면 사탄이 다른 길을 가도록 만들었는데 가인을 통해서 종교를 붙잡도록 했어요. 여러분, 가인이 하나님을 안 믿은 것이 아닙니다. 믿었어요. 그런데 가인의 마음속에는 왜 굳이 피제사냐. 농사지은 것으로 제사 드릴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자기 농사지은 것으로 제사를 드린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자기 기준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거예요. 이것이 이렇게 하는 존재가 누구예요? 결국은 사탄이에요. 그런데 종교는 자기 기준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겁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느냐? 늘 틀리게 되요. 다른 길을 주신 적이 없는데 자기 기준 가지고 신앙생활해요. 이것이 사탄의 전략이에요. 또 보세요. 또 언약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네피림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때 또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어요. 그게 뭡니까? 다른 것 안주셨다니까요. 다른 것 줬으면 우리가 다른 것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왜 자꾸 강단에서 오직 그리스도 늘 했던 복음만 이야기하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른 것을 줬다면 다른 것을 이야기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 시대나, 늘 항상 한 가지만 줬어요. 그것이 뭐냐? 방주의 비밀입니다. 똑같은 것 아닙니까. 노아 시대에 네피림 시대에 방주의 비밀을 주셨어요. 그 언약을 붙잡고 노아 가족이 구원받았습니다만 또 바벨탑사건이 일어나고 바벨탑이후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세워서 또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셉 때에 많은 어려움과 위기들이 있었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언약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시대를 정복하는 축복을 누렸어요. 그런데 요셉이 죽고 난 후에 또 이스라엘백성들이 그 언약을 놓쳐버렸어요. 그때 또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또 똑같은 거예요. 출애굽기 3:18에 희생제사 유월절 어린양의 비밀입니다.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한 가지만 주셨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그 한 가지 안에 모든 것을 다 담아주셨습니다. 그 한 가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천 가지 만 가지 모든 문제가 온 거예요. 하나님은 그 한 가지를 주셨는데 우리가 그 한 가지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많은 인생들이 천 가지 만 가지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살아가요. 그 한 가지가 뭐냐?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그 한 가지 안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 그리스도 복음만 붙잡으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복음. 다른 길로 가지 맙시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을 섬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체질.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체질이 뭐냐? 오직 복음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오직 기도. 여러분, 기도란 뭐냐? 지난 시간에도 우리가 살펴봤습니다만 기도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의 숨은 계획과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들이 보여지게 되어있어요.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고 기도하게 될 때 문제와 사건과 일 속에 하나님의 숨은 계획과 숨은 응답들이 보여지는데 그래서 요한복음 16:24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며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게 될 때, 모든 문제와 사건과 일들 속에 하나님의 중요한 응답과 계획이 보여지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문제 속에 빠지지 않고요. 일들 속에 빠지지 않게 되어있어요. 어떤 환경과 어떤 문제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 가지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24시 기도예요. 예수님께서도 보면 예수님은 새벽부터 기도하셨어요. 새벽기도를 어떤 놈이 만들었냐? 가 아니라 예수님이 새벽기도를 시작했어요. 항상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새벽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역이 기도하는 가운데 진행되었고요. 또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 하면서 마태복음 27장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신께서 친히 기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어요. 모든 삶이 기도로 이어졌어요, 예수님의 24시 삶이 기도로 이어졌어요. 그리고 부활하시자마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신 것이 뭐냐? 사도행전 1:4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무엇을 하면서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기도하면서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사도행전 1:12-14에 약속을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가는 그 비밀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의 비밀 가운데 있었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 뿐 아니라 한 시대를 살렸던 전도자 바울은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24시 기도의 비밀을 누린 사람입니다. 모든 사건과 일들 가지고 그리스도 누리는 그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 어떤 응답이 왔느냐? 바울에게 내가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25시의 그 응답이 왔어요. 구약에 다윗을 보세요. 시편 5:3, 17:3, 23:1에 무엇을 말합니까? 새벽에, 저녁에, 항상 24시 기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기도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른 세계를 보게 됩니다. 다른 응답을 받게 되요. 그것이 25시의 응답이에요. 이 25시의 응답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내가 성령 충만한 비밀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함 속에 들어가면 내 기준, 내 수준가지고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잖아요. 그것이 성령 충만함이고 25시의 응답이에요. 그때, 우리 앞에는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데 베드로후서 3:8에 있는 말씀처럼 천년동안 이루어졌던 것이 하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그 응답이 오게 되어있어요. 그것이 바로 25시 응답과 함께 영원한 응답과 축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가지고 모든 것을 가지고 24시 기도 속에 들어가고 오직 기도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에 문제들이 있습니까? 자녀의 문제들이 있습니까? 산업에 문제들이 있습니까? 고민하고 갈등하지 말고 그것가지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세요. 그것이 24시 기도입니다. 그리고 24시 기도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도 속에 들어가면 거기에 힘을 얻고 거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행복함이 있게 되어있어요. 그것이 24시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기도. 중요한 것은 오직 복음에 결론 내려지면 오직 기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오직 기도는 나오게 되어있어요.
마지막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체질이 복음적이고 성경적이어야 하는데 그 체질이 무엇인가? 오직 전도입니다. 전도는 내 인생의 삶의 방향이고, 삶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교회가 나아가야 될 중요한 방향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의 역사 전도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저 애굽에 노예라는 신분으로 보냈습니다. 왜냐? 천하 만민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야 되기 때문에 안가니까 노예로 요셉을 애굽에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전도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보면 내가 전도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결국이 뭐냐? 베드로전서 1:9에 보면 "믿음의 결국은 곧 영혼에 구한을 받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의 체질이 오직 전도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이 전도는 우리 인생의 운명을 바꾸는 길이고요. 이 전도는 우리가 속한 현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길입니다. 이 전도의 축복 가지고 서게 될 때 우리 가정과 가문에 증거가 나타나게 되고 축복된 응답의 역사들이 여러분 걸음걸음마다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마태복음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전도. 이것이 우리의 오직 전도되어지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의 체질이 될 때 주님을 섬기는 올바른 방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나만의 방법. 나름대로 주님을 섬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적인 방법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인 신앙의 체질을 가져야 합니다. 세 가지.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 이 사실을 놓쳐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신앙생활이 신비주의적인 체질이 되고 율법주의적인 체질이 되고 인본주의적인 체질이 되요.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를 놓쳐버리면 우리의 신앙생활 체질이 우리도 모르게 율법주의가 되요. 근본적으로 우리가 사실은 율법주의를 다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조금 구분할 것은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율법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될 것인가 할 때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주신 것이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율법주의란 뭐냐?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주신 이 말씀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율법주의에요. 자기가 아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율법주의에요. 바리새인들이 말씀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정죄해서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그것이 율법주의예요. 무엇 때문에 이런 부분들에 빠집니까?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에 대한 올바른 신앙의 체질이 안되어지니까 신앙생활이 율법주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인본주의는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을 믿고 살아가야 되는데 말씀과 그 능력보다도 내 개인과 세상의 힘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본주의예요. 내 개인의 의를 드러내고 내 개인의 자랑을 하게 되는 것이 인본주의에요.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신비주의는 뭡니까? 신비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실보다 자기가 체험한 것들을 말씀보다 더 귀중하게 여겨요. 그래서 자기가 최고입니다. 다른 사람 말이 절대로 안 들리고 말씀이 안 들려집니다. 그래서 자기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되는 것이 신비주의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이 땅에 일어나는가?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의 체질이 안되어지기 때문에 신비주의, 율법주의, 인본주의로 빠져서 실패하는 인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을 섬기는 방법과 신앙생활을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은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앙생활은 열심이 아닙니다. 물론 열심을 내야할 때는 내야죠. 그런데 열심이 아닙니다. 요새 워낙 빠른 세상 아닙니까? 그러나 신앙생활은 속도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방향입니다. 어떤 방향인가?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가 우리의 방향이 딱 되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체질이 되며 됩니다. 다른 말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복음 누리는 예배의 귀중함을 아는 것, 성령의 인도받는 기도의 비밀을 아는 것, 현장을 변화시키는 전도의 비밀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체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부탁드릴 것은, 사소한 빌미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한 사탄이 사소한 빌미들을 줘서 넘어뜨리는데,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하세요.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웬만한 문제들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문제 속에 걸려들지 말고요. 그 다음에 이 일을 위해서 진짜 내가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의 체질이 되기 위해서 교회 안에 여러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 나와 같을 수 없어요. 다 달라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 "각기 다른 지체"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우리는 그에 붙어있는 몸으로서 몸에 지체가 있는 것처럼 각기 다 달라요. 왜 나와 다르냐고 해서 원망하고 시기하고 질투하지 마세요. 다름을 인정하시고 모든 것을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문제 속에 하나님의 귀한 계획을 바라봄으로 오직 복음, 오직 기도, 오직 전도 속에 들어가서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신앙생활의 체질이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안디옥교회가 주님을 섬기는 이 일에 모델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하나교회가 이 응답을 받아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3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행13:1-3)



서론: 안디옥 교회는 모두가 본받고 싶어하는 교회였습니다. 그것은 주의 계획과 소원에 방향 맞춰 성령의 인도를 받아,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드리는 예배와 섬기는 축복을 아는 것은 신앙의 기본입니다(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그 때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고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을 섬길 줄 아는 것은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주님을 섬기는 것일까요? 그리고 내가 회복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요?

1. 주님을 섬기는 것 - 하나가 될 수 있었다.
(1) 주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되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1) 다른 인종,나라,배경,사상의 사람들이 하나가 됨(1절: 바나바, 니게르 시므온, 구레네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사울)
2) 주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자기의 동기나 욕구에 따라 움직이지 않음
(2) 하나가 될 수 있는 기준은,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1) 말씀보다 앞서는 기준(경험, 생각)을 말씀 앞에 내려놓아라!! (나의 소리, 주장, 고집을 버려라!!)
2) 그렇게 말씀을 따라갈 때 교회는 기적을 감당함(출애굽, 요단을 건넘, 여리고성을 무너뜨림, 미스바 운동, 오순절)

2. 주님을 섬기는 방법? -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신앙체질
(1)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가라!!
1)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확인, 확신, 체험하면(하나님의 은혜요 선물) 사람과 환경과 시험을 이기는 힘이 생김
2) 사탄은 계속 다른 길을 주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오직 한가지만 주셨음 (그리스도: 여인의 후손, 피제사, 방주, 희생제사)
(2) 오직 기도 -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
1)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 이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숨은 계획이 보임(24시-요16:24)
2) 하나님 주시는 다른 세계(25시-갈2:20 성령충만의 비밀)가운데, 영원한 응답 받음(영원-벧후3:8 천년의 응답)
(3) 오직 전도 - 삶의 방향과 이유, 하나교회가 나갈 중요한 방향
1)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벧후1:9)이고, 전도는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마6:33)
2) 이것을 놓치면 우리의 신앙체질이 자신도 모르게 신비주의, 율법주의, 인본주의로 됨


결론: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도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방향입니다!! 오직 복음, 기도, 전도가 우리의 체질이 되면 됩니다. ¹복음 누리는 예배의 귀중함, ²성령의 인도받는 기도의 비밀, ³현장을 변화시키는 전도의 비밀 - 이것이 신앙생활의 체질(성경적, 복음적인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악한 사탄은 빌미를 줘서 넘어뜨리지만, 지나가는 문제 속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안의 여러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면 됩니다(고전12장 - 각기 다른 지체). 그리스도가 인생의 머리되심으로, 안디옥 교회가 주님을 섬기는 일에 모델이 된 것처럼 한주간 이 응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한주간 말씀을 따라감으로 주님을 섬기는 축복 가운데 하나교회 전 성도가 하나되게 하옵소서. 혹시 내게 말씀보다 앞서는 기준이 있다면 내려놓게 하시고,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신앙생활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 들어감으로, 24시 기도로 다른 세계와 영원한 응답을 체험하는 가운데, 삶의 방향과 이유가 오직 전도가 되는, 주님 섬기는 축복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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