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살아있는 복음
2014-05-0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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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살아있는 복음”
(행14:1-7)

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2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 하시니 4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6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 행14:1~7

■ 반드시 달라질 미래를 바라보면서 이들이 오늘 말씀 위에 설 수 있도록 우리 렘넌트들 위해서 많은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다시 한 번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시대의 렘넌트로 부르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한 시대 렘넌트로 부르셔서 분명히 말씀 위에 서있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 후대를 통해서 이 시대가 달라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일에 귀중한 언약 붙잡고 응답받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살아있는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한테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복음을 전해달라는 전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복음전하기 위해서 갔는데 장협착증을 가지고 있는 분이신데 근28년 넘도록 남묘호렌게쿄에서 종교생활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서 어린이들에게 전도할 때 사용하는 그림으로 나와 있는 전도핸드북을 그분에게 펴놓고 권사님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받으면서 이분이 하시는 이야기가 뭐냐면 사실 나름대로 열심히 남묘호렌게쿄를 믿어왔고 그리고 거기 간부로서 기도도 많이 해왔는데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 또 친정 쪽에도 전부 다 남묘호렌게쿄를 믿고 있는 그 배경 속에서 모두가 다 문제가운데 빠지고 자기의 자녀들까지 문제가 왔다라는 것. 그런데 "28년 동안의 나를 세워왔던 이것이 5분 만에 나를 바꾸네요." 하면서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했어요. 그리고 이 분이 링거를 꽂고 그 주간에 우리 하나교회에 등록을 했어요. 그래서 말씀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권사님이 병원에 찾아가서 말씀을 전하게 되고 이렇게 말씀 운동하는 가운데서 때에 따라 병원이 먼 거리에 있으니까 가기가 힘들 때도 있잖아요. 안가면 그 다음날 바로 전화 와서 "왜 안 왔느냐, 내가 지금 말씀이 필요한데 왜 안 왔느냐"고 막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말씀을 전하러 가게 되었는데 말씀이 전달되면서 이분이 복음을 듣고 나서 고백하는 내용이 뭐냐 하면 '내가 지금까지 너무 내 중심으로 살아왔구나. 내가 지금까지 너무 내 중심으로 살아왔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 내가 어렵게 만들었구나.' 그러면서 자기 자녀들을 생각하게 되고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너무 나 때문에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구나. 말씀이 들어가면서 치유가 된 것이죠. 그리고 한 번씩 가면 병원에 계시면서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돈을 모으고 모아서 교회에 헌금 바쳐 달라고 봉투에 넣어주면 권사님이 교회 가서 헌금하면서 말씀운동이 지속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주위에 있는 많은 분들도 이 분이 회복되어지는 부분들을 보면서 더욱이 복음 안에서 세워지는 부분들을 보면서 많은 은혜를 입고요. 나중에 이분이 고백한 내용이 2년 넘도록 장이 안 좋아서 늘 병원 신세지면서 수차례 수술 받고 2년 넘도록 밥을 못 먹었는데 내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진짜 내가 살아야 될 소망이 있다는 것. 여러분, 밥을 드시지 못한 그 과정이 2년 넘도록 되었는데 그러면서도 복음이 들어가니까 내가 살아야할 이유가 있고 살아야 될 소망이 있다는 것. 작년 2013년 12월에 수술하고 나서 이분이 조금 괜찮으니까 교회 나가봐야겠다고 해서 아침에 병원에서 출발해서 교회를 오셨습니다. 시간 맞춰서 오신다고 오셨는데 교회 도착하니까 12시가 넘었어요. 그러면 교회 예배 끝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교회에 왔으니까 밥이나 먹고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식사하고 가셨는데 늦은 이유가 뭐냐 하면 병원에서 맞춰서 온다고 오셨는데 지하철 타고 오시는 동안 9번이나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시면서 교회 도착하니까 12시가 넘은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살아있는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받게 되면 반드시 변화되게 되어있고요. 누구든지 이 복음을 받게 되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귀신이 쫓겨나는 그런 살아있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이 살아있는 복음입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지금 현장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또 여러분, 각각 마음에 맞도록 자기 시간에 맞도록 방송만 틀면 자기에 맞는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얼마나 훌륭한 설교들이 많은지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성도들은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자립을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또한 여러분, 지금 재앙의 시대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바로왕이 애굽의 산파들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받아서 남자아이면 그 자리에서 죽여라. 그리고 출애굽기 3장에도 보면 모세 어머니도 모세를 3개월 동안 젖을 먹이다가 더 키울 수가 없어서 나일강에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잖아요. 재앙의 시대입니다. 그 시대가 재앙의 시대였습니다. 후대들이 죽는 시대. 마태복음 2장에 보면 헤롯왕 때에 동방박사들에게 예수님이 태어난다는 소리를 듣고 헤롯왕이 2세 이하 아이는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죠. 그 시대, 재앙의 시대입니다. 재앙의 시대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후대들이 죽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28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올라가는 걸음 속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올라가는 그 모습 속에서.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9절에 보면 해산하지 못하는 여자가 또 잉태하지 못하는 여자가 먹이지 못하는 여자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아니, 아이를 낳는 것이 복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이 더 낫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지막 때에 재앙의 시대 후대들이 멸망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가 우리 후대들이 멸망 받는 재앙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개인에게도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속에서 잘못 각인된 것들 때문에 개개인이 많은 영적문제들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미자립 교회, 재앙의 시대, 개인이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시대. 또, 오늘 어린이주일로서 아이들이 나와서 찬양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같은 마음으로 진짜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예쁘게 하는지 그것만 쳐다보시는 것 같더라고요. 예배 전에도 우리 소년부에서 나와서 율동하고 하는데 누가 예쁘게 하고 귀엽게 하냐는 것만 눈에 아른 거리니까 보시는 것 같은데 진짜 중요한 것은 어린이 주일 가정의 달이라고 5월을 이야기하는데 우리 안에 있는 쓴 뿌리들이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게 되어있는데 내게 있는 쓴 뿌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전달되어진 쓴 뿌리를 끊어버릴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인가? 아닙니다. 있습니다. 살아있는 복음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16에 보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했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은 복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복음 속에 들어가면 됩니다. 지금 현장과 교회는 살아있는 복음을 말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어렵고 힘들고 미자립과 재앙 시대를 당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한 시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살아있는 복음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복음 시대를 여는 주역으로 쓰시기를 원해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확신가지고 온 교회가 살아있는 복음 속으로 들어가는 귀하고 복된 시간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오직 복음
살아있는 복음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로 우리가 "오직 복음"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 지역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 복음 전하는 내용이 무엇이었는가?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여기에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라고 하는데 원래 원어의 뜻이 뭐냐 하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전에 했던 메시지 그대로 전했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하니 이렇게 나와 있어요. 영어로 so가 붙어서 그 말을 하니. 그 말은 뭐냐? 전에 했던 그 내용과 그 방법을 그대로 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이고니온에서 전한 내용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전에 했던 내용과 방법이 뭐였느냐? 바로 앞에 13장에 지난주와 그 지난주에 계속 살펴본 것처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다른 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성경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성경대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 그래서 다윗처럼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래서 그 이름을 힘입어서 죄 사함을 받고 그 이름을 힘입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진다는 사실. 이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여기에 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또 그 복음을 듣고 싶어서 다음 안식일에 들어와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요청했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 안식일에 들어가서 바울팀이 복음을 전했는데 거기에 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로 결국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어떻게 되느냐? 유대인들이 시기해서 핍박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핍박당해서 도망쳐서 오늘 이고니온이라는 지역에 왔습니다. 이고니온 지역에 와서 한 메시지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한 그 메시지 그 방법대로 그대로 전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떤 환경과 조건 상관없이 그들은 오직 복음만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올지 핍박이 올지 상관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어떻게 어려움에 처하게 될지 상관없었습니다. 왜냐, "오직 복음" 이것만이 살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들의 환경 상관없었고 자기들의 어려움이 상관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과 함께 바나바가 가진 복음은 오직 복음이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어느 현장 속에 들어가든 지간에 다른 것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로 바울이 오직 복음에 결론을 내렸는가? 고린도전서 2:2에 보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여러분, 바울이 몰라서 없어서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습니까? 아닙니다. 뭔가를 바울은 안 것 입니다. 진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안 것 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바울은 안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하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다는 사실을 바울은 안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 결단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에도 보면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리스도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진짜 바울이 자랑할 것이 없어서 없다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바울을 알잖아요. 바울은 누구보다도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 왕손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최고가는 랍비가 가말리엘 랍비인데 이 대스승 가말리엘의 제자입니다. 그 당시 가말리엘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여러분, 유대사회 속에서 토라에도 나와 있는 이름인데 힐렐이라는 대 랍비가 있었어요. 이 힐렐이라는 대랍비의 손자가 가말리엘입니다. 그런데 그 가말리엘의 제자가 누구냐? 이 바울입니다. 그래서 이 가말리엘이 어느 정도로 사람들에게 존경받았는가? 이름 뜻이 뭐냐 하면은 율법을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가말리엘이 죽고 나니까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율법의 영광이 떠났다고 이야기하면서 율법 속에서 오는 정결도 성결도 사라졌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만큼 유대사회 속에서 존경받는 사람 중의 사람이 누구냐? 가말리엘입니다. 그런데 이 밑에서 자란 바울입니다. 얼마나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 중의요. 또 서른 살도 이전에 유대인의 관원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은 지금 격으로 말하면 새파란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로마시민권, 여러분 얼마나 힘 있었으면 그 로마시민권을 사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돈을 모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가진 로마시민권은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로마 시민권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배경을 가진 바울이 뭐라 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세상의 문제, 현장의 문제,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세상의 문제, 현장의 문제, 인생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체를 사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 장악해버렸습니다. 그리고 프리메이슨, 뉴에이지, 유대인 3단체가 일어나서 세상을 다 장악해버렸습니다. 이들이 정신세계라는 것을 가지고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정신을 이용해서 정신운동을 통해서 다 장악했고요. 그리고 그럴듯한 수준 있게 문화라는 것을 가지고 다 장악해버렸는데 그 배후에는 귀신의 문화 사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것이 발전하는 것 같지만 거기에 재앙이 계속 점점 더해지고 있다라는 것. 발전하는 것 같지만 정신병들이 일어나고 있고요. 발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자살자와 또 살인하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요. 발전하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세상은 점점 더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경제인들도 지식인들도 여기에서 예외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더해지고 있어요. 이러한 세상 속에 오직 복음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 그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고린도전서 9장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오히려 화가 있으리로다 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면 분명히 현장은 살 것인데 세상은 회복될 것인데 이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복음을 말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했어요. 오직 복음의 비밀 이 비밀을 바울은 어떤 것인가를 알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요한 것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제대로 몰라서 그래요. 복음을 제대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또, 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의 종교로 보고 있습니다. 또 훌륭한 사람들 중, 4대 성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이 어떠한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인생이 어떠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원래 인간은, 원래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면서 살도록 복된 존재로 우리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죄의 원인, 근본, 뿌리인 원죄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어마어마한 권세를 알지 못하고 마귀에게 속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죄 가운데 빠져서 결국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이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단의 손에 장악되어, 하나님을 떠나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삶이었고 지금도 그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한계는 죽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처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죽음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또, 저주와 재앙,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에 살아가는 일에 있어서 많은 문제들이 나옵니다. 영적인 문제들, 정신의 문제들, 육신의 불치의 병들, 마음의 상처들, 마음의 문제들, 가정의 문제들, 많은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처음에 그 문제들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손에 장악되어서 온 인류에게 물밀 듯 밀려오고 있는 문제입니다. 반드시 오는 문제입니다. 이게 인간의 실존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모두가 거기에 빠져 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님 떠난 사건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배후에 사단의 역사 속에 붙잡힌 바 되어서 결국 저주 받고 재앙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 인생은 물 떠난 물고기와 같은 것입니다. 뿌리가 뽑힌 나무와 같은 존재가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냥 거기에 우리를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해결하기 위해서 해결책을 주셨는데, 바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아,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 말씀했습니다. 그 약속대로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구약, 신약 성경은 무엇을 말합니까? 구약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메시아를 보내시겠다는 것이고 신약은 그 분이 오셨는데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그 이름 믿게 될 때, 그리스도 우리에게 구원자로 오셨기 때문에 그 이름 믿게 될 때 구원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원의 주로 오셨기 때문에 그 이름을 믿게 될 때, 영접하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과거, 현재, 모든 미래 문제 완전히 끝나 버린 것입니다. 그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한 가지 이름, 오직 그 길은 한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오직 한 길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만 주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길이 있다면 다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 길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한 길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가지만 붙잡으면 어떻게 하느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붙잡아야지, 한 가지만 하면 어떡하느냐? 많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느냐? 그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법은 그 한 가지 안에 모든 것을 다 담아 주셨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세상에 천 가지, 만 가지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그 문제의 해답은 한 가지, 그리스도입니다. 그 그리스도 한 가지 붙잡게 될 때에 만 가지 모든 문제의 축복된 응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안에 하나님은 모든 답을 다 담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2장 2절에 바울이 고백한 내용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라 말하면서 2장 3절에 뭐라 했습니까?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그 안에 모든! 그렇습니다. 골로새서 3장 11절에 보면 만유의 주라 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그 한 가지 붙잡게 될 때 그 속에 모든 것 다 누리게 되는 그 축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입니다. 오직 복음. 이 오직 복음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완전, 충분한 모든 것이 되시는 복음이란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한 가지, 복음을 주시면서 그 안에 완전하도록 하셨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도록 하셨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 비밀을 알았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 그리스도 모시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만족하십니까? 여러분, 찾아내야 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내가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나는 만족한다 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 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와서 40일 동안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협박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소년 다윗이 형들 앞에 갔습니다. 왕 앞에 갔습니다. 왕이 군복을 입혀 봅니다. 칼을 쥐어 봅니다. 전혀 맞지 않습니다. 다 내팽개쳤습니다. 군인도 있었고, 방패도 있었고, 갑옷도 있었습니다만 다윗은 그것이 필요없었습니다. 17장 45절에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설 때 뭐라 했습니까? 담대히 달려가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사실 다윗에게는 창도 필요없었습니다. 많은 군인도 필요없었습니다. 갑옷도 필요없었습니다. 하나님, 그 이름만으로 만족했습니다. 그러니까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직 복음. 정말로 이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그냥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 그 속에 모든 우리의 인생이 누려야 할 축복을 다 담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정말로 복음은 완전한 것이다. 복음은 모든 것이다. 복음은 충분한 것이다 고백하게 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흑암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인생의 문제도 그 속에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본문을 통해서 오직 복음 해야 할 이유가 또 무엇이냐? 2절을 한 번 보십시오.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그러면서 4절에 보면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5절에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평소에 이야기도 안 하는 사람들입니다. 상대하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여기에 복음을 전하게 되니까 이들이 전한 복음이 오직 복음이었고 살아 있는 복음이란 증거가 무엇이냐, 복음이 증거되니까 그것을 따르는 사람도 있고 핍박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만약에 여러분, 교회가 새마을운동하고 잘 살기 운동하고 구제운동하고 하면 세상이 교회 욕 안 합니다. 욕 안 해요. 잘 한다, 같이 하자고 나옵니다. 그런데 오직 복음하기 때문에 세상이 교회를 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들이 전한 복음이 오직 복음이었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로 핍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게 살아 있는 복음이라는 증거입니다. 분명히 빛이 비춰지는 곳에는 어둠이 도망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사단의 역사가,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사단이 정체가 드러나니까 그것을 통해서 박해할 수밖에, 핍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유대인들이 사실 평상시에는 이방인들과 말도 안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복음을 핍박하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찌 지금 시대와 똑같지 않습니까? 이러한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진짜 살아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복음 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디 속에 들어가야 하느냐?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만 충분하다는 사실을 내가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하다는 사실을 내가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마지막 시대를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악한 사단이 마지막 시대에 마태복음 24장 25절에 얼마나 핍박을 하며 적그리스도를 일으켜 심지어 죽는 데까지 우리를 내어 준다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 시대를 살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이 오직의 비밀 속에 들어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의 중심 가장 우선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 다음에 두 번째입니다. 오직의 복음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중심은 그들의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내가 복음에 은혜 받고 그 은혜를 누리는 그것이 가장 일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마음 중심에 지금 가장 우선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 생활하면서 여러분 마음 중심에 지금 가장 우선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초대교회는 오직 복음, 그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 중심이 무엇이냐? 내가 이 복음 때문에 죽어도 좋다는 그 삶이 나왔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 모이면 안 됩니다. 당연히 안 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모였습니다. 왜냐? 오직 복음, 그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의 가장 우선순위는 내가 이 복음을 누리고 이 일에 은혜받는 것이다 여기에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 1절~7절에 보면 일곱 명의 집사를 세우게 됩니다. 그 당시에 일곱 명을 임직한다는 것은 지명수배자로 내어 놓는 것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오직 복음 그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그 삶에 가장 우선하는 것이 내가 이 일에 증인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54절~60절에 보면 스데반이 설교 한 번 하고 죽게 됩니다. 그런데 오직 복음의 이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그 삶의 우선이 뭐냐? 내가 이 복음 한 번 전함으로 죽는 것, 그것도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복음이 증거된다면 그게 가장 귀한 것이 아닌가, 거기에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직 복음하면서 우리의 마음 중심에 지금 가장 우선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어린이 주일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우리가 가르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셔야 할 것은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가 가르친 대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대로 자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의 말과 우리가 사는 삶을 자녀들이 봅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의 말과 사는 삶을 봅니다. 사는 것을 봅니다. 그 사는 것을 보고 자랍니다, 사실은.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아, 우리 부모님은 진짜 중심에 복음 중심이고, 신앙 생활을 가장 우선으로 삼고 있구나. 그렇게 되어질 때 우리 자녀들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날 여덟 가지 미션에 대한 집중 훈련이 있었는데 거기에 전도사님이 자기 가정에 대한 간증을 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아빠가 직장에서 월급 받아오면 엄마가 그것을 구분해서 새 돈으로 바꾸어 헌금을 꼬박꼬박 챙기고, 그리고 목사님이 어려우니까 돈을 모아놨다가 한 번씩 목사님 쓰실 수 있도록 아무도 모르게 그냥 그것을 어느 날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문틈으로 밀어놓고 또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주의 종들을 위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입 열자마자 당장 날아온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릴 때 그것이 이해가 안되었다라는 것. 상처만 있었다라는 것. 그런데 자라면서 복음 조금 알고 나니까 그 부분들이 이해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오늘 있게 된 그 자리가 바로 부모님들의 신앙을 보고 자란 자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중심에 어린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전에 내가 신앙생활을 가장 우선으로, 복음을 가장 우선으로, 은혜 받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잡고 나아가게 될 때 우리 자녀들은 누가 책임지시느냐? 하나님이 책임지시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요즘 우리 일어나는 일들 보세요. 돈이 전부인 세상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사건 아닙니까? 성공이 전부인 세상 아닙니까? 그래서 일어나는 세상 아닙니까? 사실은 교육을 그렇게 받아왔어요. 나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개인주의 이기주의적인 교육을 받아왔고 돈이면 다다, 성공이면 다다 라고 하면서 몸부림쳐왔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에도 교육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고 또 교육학 박사님도 계시지만 아셔야 될 것은 사실 세상 교육 학교 교육 참 중요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사실 교육이 중요해요. 그런데 세상 교육 학교 교육만으로 우리 자녀들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그 교육이 어디에서 여러분 가정 속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을 통해서 신앙생활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 자녀들이 가정에서 보고 자랄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 교육 중요합니다. 세상 교육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육시키는 대로 아이들이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기에 우리의 모든 자녀들을 맡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성공만 돈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만들어놓은 것 아닙니까. 진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그 교육들이 어디에서 우리의 가정들속에서 여러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미국의 교육 철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존 듀이 아닙니까. 그 교육 철학이 뭐냐 하면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해라. 그것이 교육 철학입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그래서 아이들이 경험하고 아이들이 뭔가 체험하고 그 중심으로 해서 그래서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하는 보조역할을 하게 하는 것밖에 안 돼요. 그러니까 미국 교육 자체가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어요. 자기중심주의로 빠질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나타난 첫 번째가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니까 자기중심으로 바뀌어졌어요. 이것이 지금 우리의 교육에도 임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미국 교육이 개인주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빠져버려요. 그런데 유대인 교육은 그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가 아니라 조상들이 했던 대로 하라입니다. 그러면 조상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가 어떠했는가. 그래서 그들의 기준은 율법과 법도가 거기에서 나왔어요. 자,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자기중심적으로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빠지는데 결국 교사들의 권위도 떨어지는 이유, 부모의 권위가 떨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그런데 유대인의 교육은 조상들이 했던 대로 하라. 그러니까 조부모부터 부모 다 살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 공경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가장 죄악이 뭐냐? 부모 공경하지 않는 것. 하나님 앞에도 가장 죄악이 뭐냐? 부모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에 근거한 거죠. 그리고 이 존 듀이가 이야기한 내용 중에 전문성이 있는 아이들에게 아이의 교육을 맡기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죠. 아이의 교육을 전문성 있는 교사들에게 맡기라 했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책임을 교육의 장을 학교에 한정시켜 놓았어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교육의 장이 학교가 아닙니다. 가정입니다. 가정이 교육의 장이에요. 그래서 홈스쿨에 대한 원조가 사실은 유대인들입니다. 가정 안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미국이나 한국 우리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부모가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잖아요. 또 돈 좀 있으면 유학 보내주고 그것으로 내가 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리고 가정에서 전혀 아이들을 책임 못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닙니다. 가정에서. 우리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놓고도 교회가 아이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부모들은 교회 보내놓고 할 것 다했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진짜 우리 후대들에게 바른 언약이 심어질 수 있도록, 어릴 때 언약이 바르게 들어가면 한 시대를 살리는 일꾼들 다 되었어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런 인물입니다. 모세도 사무엘도 마찬가지고 어릴 때 들어간 그 복음의 각인이 그 시대를 살리는 지도자들로 세워진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그냥 세상 학문 학교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내가 할 일 다 했다고 맡겨놓는 식으로 교회도 그렇게 맡기지 마시고 여러분이 정말 주일날 교회 렘넌트 말씀 예배 하는 가운데 한번 들어가 보시고 예배에 참여해보시고 같이 기도하시는 것이 되어져야 합니다. 우리 부모 신앙이 중심이 정말 신앙이며 다다.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신앙에 두게 될 때 그것을 보고 우리 후대들이 자라난다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삶의 중심이 정말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 오직 복음 속에서 말만 오직 복음이 아니라 정말 우리 중심이 은혜 받는 이 일을 가장 우선으로 두시면서 승리하는 여러분 개인과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직 복음" 이 일을 위해서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 가장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될 것인가? 여러분, 혹여나 어려운 문제들 있습니까? 돈과 가난 때문에 또 질병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오직 복음 속으로 들어가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해 안 되는 문제들이 있습니까? 복음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속에서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는 큰 증거를 주시게 되어있습니다. 살아있는 복음이라면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 개인이 오직 복음 속으로 들어가시고 그리고 모든 신앙의 중심을 은혜 받는 신앙을 가장 일순위로 두시면서 여러분 개인을 성공시키시고 우리 자녀들을 성공시키며 이 한시대의 복음시대를 여는 주역으로 쓰임 받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5월 4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살아있는 복음
(행14:1-7)


서론: 복음은 살아있는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받으면 변화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귀신이 쫓겨나갑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도는 가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미자립 교회시대). 또한 모세와 헤롯왕, 예수님 당시의 시대처럼 후대들이 멸망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재앙의 시대). 더구나 개인은 무의식 속의 잘못 각인된 것으로 영적인 문제를 당하고 있습니다(개인 영적문제 시대). 이렇듯 우리 안의 쓴 뿌리들이 후대들에게 전달되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쓴 뿌리를 끊어버리는 길은 없을까요? 해답은 살아있는 복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롬1:16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복음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교회가 살아있는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 현장은 어렵고 힘들며, 교회는 미자립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운데 복음 주역으로 쓰시기 원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 오직 복음
(1)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오직 복음만 전했습니다.
1) 1절: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하니 - 전에 했던(비시디아 안디옥) 그 내용과 방법을 그대로 전했다는 뜻
2) 오직 복음만이 살 길임을 알았기 때문에 어떤 환경과 조건, 핍박과 어려움에 상관없이 복음만 전함
a. 고전2:2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 - 복음은 충분함, 완전함, 모든 것임
b. 갈6: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 바울은 누구보다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음
c. 고전9장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 많은 사람들은 복음이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잘못 생각함
(2) 복음은 인생이 어떤 것인지 말해줍니다.
1) 인생은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을 떠남으로, 저주와 재앙 가운데 살아가게 됨
2) 하나님의 해결책 : 그리스도를 약속 (구약: 메시야를 보내시겠다, 신약: 오셨는데 그리스도로 오심)
3)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 (골2:2 하나님의 비밀 / 골2:3 지혜,지식,모든보화 감춰두심 / 골3:11 만유의 주 / 삼상17:45 다윗 고백)
(3) 오직 복음을 해야 하는 이유!!
1) 복음이 증거되니 따르는 사람과 핍박하는 사람이 생김 : 복음이 증거되면 사탄 정체가 들어나기에 핍박할 수 밖에 없음
2) 오직 복음으로 충분하고 완전하며 모든 것임을 체험할 때, 악한 시대 가운데 승리할 수 있음
2. 우리의 중심 - 가장 우선되는 것이 무엇인가?
(1) 오직 복음이 된 사람의 삶 중심은, 우선순위가 바꾸어집니다.
1) 복음에 은혜받고 누리는 것이 제1순위가 됨 - 그 가치를 알았기 때문임
2) 생명건 초대교회의 모임(행1:14), 일곱 집사의 지명수배와 같은 임직(행6:1-7), 스데반의 순교(행7:54-60)
(2) 우리의 후대들은 가르치는대로 자라는 것이 아닌, 보는대로 자라납니다.
1) 세상과 학교의 교육은 결국 자기중심주의 빠지게 됨(개인주의, 이기주의, 성공주의, 물질만능주의)
2) 자녀들은 부모들의 신앙을 바라보면서 자라남(가정교육의 중요성) -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는 교육을 시작하라!!

결론: 우리는 오직 복음을 신앙생활의 가장 우선순위로 두어야 합니다. 혹시 가난이나 질병, 이해 안되는 문제로 고통 중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시고, 큰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 살아있는 복음을 누리며 은혜받는 신앙을 가장 1순위로 두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한주간 개인이 성공하고, 자녀들을 성공시키며, 복음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의 쓴 뿌리들이 후대들에게 전달되는 이 악한 시대에, 오직 살아있는 복음 속에 들어감으로 모든 쓴 뿌리를 끊어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중심의 우선순위가 바뀜으로, 후대를 두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교육을 가정에서부터 보여주길 원합니다. 한주간 살아있는 복음을 체험함으로 이 한 시대를 복음시대로 여는 주역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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