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2014-07-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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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행16:1-5)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행16:1~5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도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여러분 든든히 세워지고 이 복음의 역사를 증거하는 전도자들로 세워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세 절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입니다. 그 오순절이 바로 맥추감사주일에 해당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세 절기를 통해서 감사를 회복했고 그 감사를 회복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한날 맥추감사주일로 주 앞에 예배드릴 때에 진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들 되시고 또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해지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유월절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애굽에서 빠져나온 사건을 기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진 저와 여러분은 모든 저주에서 해방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유월절의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길을 가는 동안, 물 한 모금 안 나오는 광야에서 약 200만 명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어 그의 백성들을 광야 속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가운데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주신 것들이 너무나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우리의 모든 걸음들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해서 불평하지만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어제 제 방에 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이런 자신의 간증을 하셨습니다. 자기 형제들 가운데 자기 가정만 예수를 믿는데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부모들도 인정을 안 하고 형제들도 인정을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들도 예수 믿는 너희들에게는 내가 재산 줄 수 없다, 그렇게 나오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 분이 장자인데, 맏이인데,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제사를 안 지내니까 형제들도 전부 삐죽삐죽하면서 그래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를 너희들 다 갖고 가라, 나는 재산 필요 없으니까, 나한테 돌아올 재산 다 줄 테니까 너희들 제사 다 갖고 가서 너희들이 제사 지내라,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가졌는데 그 가진 것을 생각함으로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없는 것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것들로 감사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자리에 세우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광야길을 가는 동안 굶어 죽는 줄 알았는데 보리를 거두어서 먹이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결국은 그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수장절입니다. 그게 바로 지금 추수감사주일로 우리가 의미를 가지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을 광야길 같은 이 세상 속에서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의 걸음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 세워주셨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오늘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오늘 이 한날 온전한 감사를 회복하고 믿음을 굳게 함으로 승리하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 세 절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킨 이 세 절기, 우리는 그 절기를 의미를 가지고 지키고 있습니다만 이 세 절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에 통하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오늘 짧은 이 성경 구절 가운데 전도자 바울이 가졌던 이 중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 절기를 중심으로 해서 가졌던 언약과 너무나 통하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잘 아시듯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하는 그런 걸음 속에 주어진 것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살펴본다면 자기 임의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부분들입니다, 1차 전도여행은. 핍박당하면 떠나게 되고 또 다른 지역에 들어가서 또 핍박당하게 되고 또 떠나게 되고. 그런데 1차 전도여행과 다르게 2차 전도여행은 자기의 임의로 인도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성령의 간섭하심이 있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의 마음대로 움직여진 걸음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움직여졌던 걸음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걸음 속에 일어난 결과의 응답이 무엇인가 5절에 보면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하나님의 인도 받는 걸음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 안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사이고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믿음이 굳건해지고 그 수가 늘어가는 것, 그게 교회입니다. 우리 개인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축복, 교회가 날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굳건해지고 수가 늘어나는 것, 그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받는 교회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오늘 이 올바른 교회의 모습이 우리 교회에 회복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전도자 바울의 중심
그러면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전도자 바울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한 제자를, 2차 전도여행에 나서는 바울의 걸음에 중요한 제자 디모데를 붙이셨습니다. 이 디모데가 어떤 제자이냐? 1차 전도여행을 통해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거기에 바울이 있었고 바울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거기에 누가 있었습니까? 디모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거기서 찾은 제자가 디모데였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가 어떠한 관계가 되었느냐? 바울의 사역에 있어 전도 사역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를 일컬어서 나의 참 형제 디모데, 나의 참 아들, 늘 항상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디모데에게 직접 두 통이나 보냈고, 또 바울이 보낸 서신서에 보면 서신서를 시작하는 1장에, 매장 서두에 인사를 나눌 때 보면, 디모데와 나 바울은, 그 형제 디모데와 나 바울은, 항상 디모데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말하느냐? 바울의 사역 속에 디모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처음부터 끝까지 했던 사람인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에 성공하고 싶지요? 신앙 생활에서 축복을 누리고 싶지요? 바울에게 디모데가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신앙 생활을 하나님 앞에 결단할 때에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디모데같은 제자들이 여러분 통해서 세워지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제자가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진짜 복음 가지고 그 어떤 것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제자가 있느냐? 그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신앙생활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특별히 바울의 전도사역을 시작하는 걸음속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합니다. 이 디모데가 어떻게 할례를 안 받았는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마는 성경학자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아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았지 않느냐? 그렇게 보기도 합니다. 이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머니는 믿는 유대여자요, 그리고 아버지는 헬라인입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디모데는 다민족입니다. 아버지가 헬라인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떻든지 할례를 받지 않은 이 디모데를 바울이 전도사역을 시작하면서 그의 걸음 앞에서 첫 번째 한 것이 할례를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받는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할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들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보지 않았지만 그런데 사실 오늘 본문이 있기까지 바울이 지난날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바울이 사실은 분쟁하고, 논쟁하고, 화를 내고 열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세가 받은 할례라는 짐을 이방인들에게 짐 지우려고 하는 그 부분들 때문에 바울이 사실은 분쟁하고, 논쟁하고, 화가 나고 그래서 예루살렘까지 간 것 아닙니까? 예루살렘 총회에 이 바울이 왜 갔습니까? 딴게 아닙니다. 모세가 행하는 할례를 이방인들이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할례의 짐을 지우려 하기 때문에 이 바울은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 너희가 지었고, 너희 조상들도 메지 못하는 멍에를 왜 이방인들에게 메게 할려고 하느냐? 할례가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결국 예루살렘 총회에 갖고 갔던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전도사역을 위해서 나가는 걸음 속에 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첫 번째 할례를 받도록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것이..전도자 바울의 이중적인 모습이 아닌가? 그렇게 보여 질 수 있는 부분들 아닙니까? 그리고 또 갈라디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내려와서 안디옥에 돌아왔습니다. 안디옥에 돌아와서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가 그 자리를 은근슬쩍 도망쳐 나옵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도 이 베드로의 외식함에 시험에 들었고 성경에 보면은 바나바도 이 베드로의 외식함에 유혹되었다 했어요. 많은 유대인들과 바나바조차도 베드로가 은근슬쩍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함께할 수 없는 그 자리에 있는 그 사건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 했어요, 유혹 받았다 했어요. 그런데 그 사건을 놓고 이 바울이 베드로에게 심한, 신란한 질책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 베드로를 질책합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앎으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하면서 이 베드로를, 이방인 자리를 은근슬쩍 피해서 도망가는 이 베드로를 향해서 모든 사람 보는 앞에서 신란하게 질책을 했어요. 이런 바울인데 오늘 본문에 보면 분명히 행함으로 구원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이야기 해 놓고도 오늘 디모데를 데리고 나가면서 할례를 받도록 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떤 일입니까? 제가 갈라디아 2장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사실은 중요한 신앙을 고백해 놓고도, 또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사도행전15:7절에 고백했잖아요. 예루살렘 법정 앞에서..그래 놓고도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이 온다 하니까 은근슬쩍 도망쳐 나왔어요. 이게 뭡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옛날 체질들과 옛날 습관들 버리지 못하는 부분들. 유대식으로 믿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베드로의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그 부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해결자이다 이야기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충분하시고, 모든 것이다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옛 체질로 돌아가요. 그렇잖아요 옛날 우리의 믿지 않는 모습대로. 우상숭배하고 점술하던 그 모습대로 돌아가요. 마치 베드로가 옛날 유대인 식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런식으로 우리 자신들이 돌아갈 때가 있다니까요. 그래서 정말로 그리스도가 충분하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고, 완전 하시다라는 사실을 올바로 믿는 믿음의 고백하는 한 사람 나오면 그 사람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날 것인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쉽지 않다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날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가 필요한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신란하게 질책을 했는데 오늘 본문은 이 바울이 그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한다? 뭔가 맞지를 않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여기에서 성경 본문을 자세히 보면 바울의 중심을 볼 수 있어요. 할례를 행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어요. 할례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증거 되어지고 전도가 되어진다면 할례 받는 것 괜찮은 것이다 라는 것. 만약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면 할례 받지 않는 것도 괜찮다는 것. 그 기준은, 바울이 중요하게 보는 것은 할례가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 이 복음이 증거 되어지는 일이냐 그렇지 않느냐 여기에 바울의 중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8:18절에 보면 바울이 머리를 깍는 모습이 나옵니다. 중요한 결단을 하고 머리를 깍게 되지요. 머리를 깍는 모습 속에서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만약에 머리를 깍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증거되어 진다면 머리를 깍겠다는 겁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이 복음에 유익하다면 머리를 기른다는 것, 머리를 깍고 기르고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울에 중심 속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머리를 기르는 것이 복음에 유익하다면 머리를 기르는 것이고 머리를 깍는 것이 걸림돌이 안 된다면 오히려 머리를 깍는 것도 좋다라는 것. 그 중심에는 이것이 과연 복음에 유익한 것이냐? 이것 통해서 과연 전도가 되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 부분들입니다. 바울이 그의 고백들 가운데 많은 경우 이런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마는 고린도전서 8장에도 보면 우상숭배지역인 고린도에서 먹고 마시는 문제 때문에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일어났잖아요. 우상숭배로 바쳐진 음식들이 고린도시장 바닥에 나오니까 그 우상 숭배로 받쳐진 음식들을 먹는 것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바울이 중요한 고백을 했어요. 고린도전서 8:9절에 보면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했습니다. 나도 우상숭배에 들여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유함이 있지마는 이것이 굳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것을 바라보면서 믿음에 유익함을 주지 않는 것이라면 굳이 꾸역꾸역 먹을 필요가 뭐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의 중심에는 복음이라는 사실, 전도가 되느냐 안되느냐 여기에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9장에도 보면 사도권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바울이 중요한 고백을 했어요. 고린도전서9:19절에 보면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모든 일에 있어서 바울의 중심입니다. 전도가 되는냐 안되느냐, 이 복음이 증거 되느냐 안되느냐, 그래서 고백했지요. 내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마는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해 있다 했어요. 왜 그렇게 했느냐?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이 복음에 유익한 대로, 이 복음이 증거되는 이 일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사람처럼, 저런 사람에게는 저런 사람처럼 그렇게 자기의 모든 삶을 인도받아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의 중심에 이 바울의 중심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 1장에 보면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지요. 그 감옥에 들어가는 그 사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서 시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어요. 그런데 바울이 그 사건을 놓고 어떻게 결론 내렸느냐? 빌립보1:12절부터 쭉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시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든지, 증거 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니 내가 이 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했어요. 그 어떤 것도 복음이 증거 되는 일이라면 문제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자 바울에게 있었던 마음의 중심입니다. 오직 복음, 오직 이 복음 전달되어지는 전도, 여기에 바울의 중심이 있었다라는 사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전도는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입니다. 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가 가져야 될 중심이 어떤 중심인가? 그 부분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가지고 있고요, 복음은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정말로 오직 복음이냐? 하나님이 아십니다. 악한 사단도 그것을 압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오직 복음 이야기 하면서도 요한복음19:30절에 “다 이루었다” 복음은 끝난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이상한 다른 사상들이 들어와서요 복음보다 다른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요. 우리 한국교회 안에 복음 보다 다른 이상한 사상들이 들어와서 방언 강조하고, 능력행하고 ,기적행하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물론 다 좋은 겁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자 다 좋은 겁니다. 그런데 복음보다 다른 것 들어와 있다 라는 것. 문제는 복음 외에 다른 것 들어와 있는 그 다른 것들 때문에 저주와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복음, 충분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인데 이것이 안 되어 지니까 안되어지는 만큼 우리가 다른 것에 몸부림을 쳐요. 그런데 다른 것에 몸부림 치는 만큼 결국은 개인도, 교회도 재앙의 역사가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마지막 시대에 우리 하나교회에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한분, 한분, 또 하나교회가 대구 도성을 향해서 정말로 여러분의 중심이 오직 복음이 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고,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제자로 쓰시는 것입니다.
2. 모든 기준과 배경 - 오직 복음
두 번째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준과 배경이 오직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사람이요, 역사 하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진 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준과 배경이 뭐가 되자고요? 오직 복음입니다. 사단은 자꾸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세상과 육신의 기준을, 배경을 우리의 모든 배경으로 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4장에도 보면 예수님 앞에 사단이 와서 시험할 때에 돌로 떡덩이 되도록 만들어서 먹으라고 눈에 보이는 의·식·주 문제 가지고 우리를 시험했고요. 명예심을 자극했잖아요. 높은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뛰어 내리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명예심을 자극하면서..결국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보이는 것을 통해서 내게 엎드려 절하라 경배대상을 바꾸라는 것이지요. 악한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적인 기준, 육신적인 기준과 배경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속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단이 속이는 것이예요. 특별히 지식과 돈과 사람과 권력들 이런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의지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이란 사실입니다. 세상 눈에 보이는 것, 세상을 배경으로 삼고서는 결국 속고 바벨탑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빌립보3장 8절에 보면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무슨말입니까? 배경을 그리스도로 바꾸었다는 사실이죠. 그 바울의 걸음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우리는 내안에 내 기준과 내 소견과 내 생각, 내 중심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탄의 하는 짓이에요. 내가 기준되어 있는 것, 그게 우리를 속이는 거에요. 내게 맞으면 맞는 것이고 내게 안 맞으면 안 맞는 것이고 그게 내가 기준이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내가 그러면 그런것이고 또 이것이 논리적이냐 합리적이냐 그것도 나의 기준이에요. 결국 여기에는 악한 사탄에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전도자 바울도 자기 안에 자기 중심한 부분들과 하나님 중심한 부분들이 싸우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이 로마서 7장 24절에 나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3절에 보면 무엇 때문에 그런 고백을 했느냐? 내 안에 하나님의 법을 따라 가려는 마음이 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중심한 마음을 따라가려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 세상 중심에서 살아가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 그런데 가만 눈떠보니까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고자 하는 내 마음, 이 부분들은 없어지고 세상 마음이 중심되어 있는 사실들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백했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안에 늘 이 싸움이에요.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주인이냐, 하나님이 내 배경이고 그리스도가 내 배경이고 기준이냐, 아니면 내가 내 자신이 내 배경이고 내 기준이냐, 세상이, 육신적인 것이, 자아가 내 기준이냐 배경이냐?
여러분 선악과 사건도 다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의 싸움 아닙니까? 죄가 뭐냐? 내가 주인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어야 하는데 내가 주인되는게 죄입니다. 이 싸움입니다. 그런데 악한 사탄이 이것을 통해서 인간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사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절대 기준이 배경이, 내가 되면 안됩니다. 예수님도 철저하게 모든 기준과 배경을 복음의 기준으로 봤어요.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왔을 때 이 가룟유다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뭐라했습니까? “친구여 네 할 일을 하라” 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이루어질 일들, 십자가 지시고 십자가 지셔야만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에 그 일들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는 가룟유다에게 네 할 일을 하라 하시며 복음으로 봤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한 베드로에게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바로 마태복음 16장 21절부터 쭉 보면 고난 받으실 것을 이야기 할 때 베드로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절대 이 일이 당신에게 미치지 않을것입니다” 이렇게 나왔잖아요.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뭐라 했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자로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구나”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속의 역사 앞에서 복음을 가지고 보았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보고 복음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복음을 누리고 증거하고 이 일에 기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 외에 모든 것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볼 때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는 것도 인간이 세운 기준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이 복을 받는다, 부정적인 사람이 저주 받는다는 것도 옳은 기준이 아닙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윤리적이냐, 도덕적이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도 복음이 아닙니다. 어떤면에서는 사람에게 윤리적인 것이 하나님 앞에는 틀릴 수가 있는 것이고요. 사람에게 비윤리적인 것이 하나님에게는 맞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 땅의 그 어떤 옳은 말들도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과 배경이 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아셔야 압니다. 어제의 일이 오늘 다를 수가 있어요. 과거의 옳은 것이 미래에 틀린 것이 될 수 있어요. 세상의 인간에게 나오는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기준과 절대적인 배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직 절대적인 기준과 배경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모든 세상의 것들은 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옳은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빨리 우리 자아와 세상과 육신을 기준삼아 생각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거기에 흑암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요. 오늘 우리 장로님이 한국교회를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만은 왜 한국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느냐? 초대교회는 안그랬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한국 교회 보세요. 세상 사람들 한국 교회 없애야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자아와 세상과 육신이 교회의 기준이 되어있기 때문에. 이것을 내려놓아야 흑암이 무너집니다. 이것을 내려놓아야 여기에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자아도 아닙니다. 세상도 아닙니다. 육신도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은 오직 복음밖에 없어요. 그러면 왜 오직 복음밖에 없느냐? 그 이유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어느 날 다가오는 재앙의 문제. 그 재앙의 문제를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어요. 열심히 바르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이 멸망받고 있어요. 지식도 발전하는데 자꾸 흑암속에 빠져요. 그러면 세상은 모든 사람은 재앙과 멸망과 흑암에 빠지고 있어요. 이것이 지구의 모든 인간에게 계속해서 오는 문제예요. 여러분, 재앙은 무엇 때문에 옵니까? 죄로 말미암아 재앙이 오고 있어요. 그리고 결국은 개인의 멸망이 어떻게 옵니까? 사탄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멸망이 옵니다. 그리고 어떻게 흑암에 빠집니까? 지옥 배경 가운데 있기 때문에 흑암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른 이름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신 참 제사장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는 참 왕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흑암에 빠지게 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참 선지자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 제사장, 참 왕, 참 선지자 이 세 가지 직분을 합쳐서 그리스도라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근본 문제가 재앙의 문제와 멸망의 문제와 흑암의 문제 아닙니까? 이 문제 해결한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으면서도 믿는 자들이 어디에 빠지느냐? 세상속에 빠지고요. 사탄속에 빠지고요. 재앙속에 빠집니다. 무엇을 몰라서 그러느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축복을 몰라서 그래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배경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반석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면 될 것인데 이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바로 사탄의 권세를 깨트릴 수 있는 음부의 권세를 그리스도 고백하는 자에게 주셨는데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우리도 모르게 사탄의 권세아래 살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 지옥의 배경을 바꿀 수 있는 축복을 그리스도 고백하는 자에게 주셨는데 천국 열쇠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지옥의 배경을 바꾸는 비밀. 천국 열쇠를 누구 이름으로?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래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모든 삶도 오직 복음이어야 된다는 사실이에요. 이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세전에 주셨고(에베소서 1:3), 또 로마서 16:25에 보면 영세전에 계획하셨고요.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세전부터 계획하신 복음이에요. 그리고 로마서 16:26에 보면 바로 이제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세전부터 감추어졌던 그 복음이 이제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요, 로마서 16:27에 그냥 한번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기준과 배경이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오직 복음되어야 됩니다. 복음으로 보고 복음으로 판단하고 복음으로 해석하고 복음 누리고 복음 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축복의 사람으로 쓰임받는 그런 주역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오직 복음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해석하고 복음 누리고 복음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시작하세요.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다 찾아내세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어요.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셨어요. 그래서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지는 것을 보고 바로 그리스도 아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진 사람을 그리스도 아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진짜 내가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지면, 모든 사건과 문제도 다 내게 답이 됩니다. 다 내게 답이 돼요. 그리고 교회와 교인들에게 답을 줄 수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답을 줄 수 있어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로 모든 것 보는 눈이 열려짐으로 이 한 시대 참된 감사를 회복하시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7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하여지고
(행16:1-5)
서론: 이번주는 맥추감사절(오순절)입니다(3대 절기: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 유월절은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받고 복음으로 해방된 것을, 오순절은 광야길을 가는 동안 완벽하게 인도하심을, 수장절은 우리를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하심을 뜻합니다. 이 세 절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임의대로 인도받고 핍박 당하면 떠나는 걸음이었다면, 오늘 본문의 2차 전도여행은 절대적인 성령의 간섭 가운데 철저하게 성령인도를 따라서 움직인 걸음입니다. 이때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5절). 이것이 올바른 교회이자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모습이며, 우리교회가 받아야 할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쓰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전도자 바울의 중심
(1)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한 바울
1)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을때 현장에 있었던 증인으로 바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
2) 믿음으로만 구원받고, 베드로의 외식함에 신랄한 질책(갈2장)도 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음
(2) 바울의 중심
1) 바울의 중심은 할례를 행하고 말고가 아닌, ‘복음이 증거되는 것에 유익한가 아닌가’에 있었음
2) 머리를 깎음(행18:18), 우상숭배한 음식문제(고전8:9), 모든사람의 종이 됨(고전9:19-23), 투기와 분쟁의 전도문제(빌1:18)
(3) 오늘 우리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1) 전도는 말이나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닌, 중심으로 하는 것임
2) 복음은 다 이루었지만(요19:30), 우리안의 다른 사상들(방언, 능력, 기적, 긍정적 마인드 등)으로 저주와 재앙이 임함
2. 모든 기준과 배경 - 오직 복음
(1) 사탄은 눈에 보이는 것(세상과 육신)으로, 우리의 기준과 배경을 삼도록 합니다.
1) 지식과 돈, 권력이나 명예심 등, 사탄은 세상의 것으로 속이는 것임
2) 결국은 속고 바벨탑처럼 무너질 수 밖에 없음 (빌3:8 바울은 배설물로 여김 - 배경을 그리스도로 바꿈)
(2) 절대적인 기준은 그리스도!!
1) 내(자아, 세상, 육신)가 기준 되어있으면, 악한 사탄이 이것으로 타락하게 만듦
2) 모든 것을 복음으로 보고 해석하며 판단하고, 복음만 누리고 증거하라!! (가롯유다와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
(3) 왜 복음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까?
1) 근본문제: 죄로 인해 재앙에 빠지고, 사탄 때문에 멸망하며, 지옥배경으로 흑암에 빠져 있음
2) 해 결 책: 참 제사장(죄 사함), 참 왕(사탄 결박), 참 선지자(하나님 만나는 길)되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
3) 삶의방법: 세상배경이 아닌 그리스도의 반석으로, 음부의 권세를 깨뜨림으로, 지옥배경 바꿀 천국 열쇠로!!
결론: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시작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찾아내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자입니다. 이때부터 모든 사건과 문제가 내게 답이 되기에 이 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습니다. 한주간 참된 감사가 회복되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지난 전반기를 인도하셨듯이 남은 한해도 완벽한 성령인도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바울의 걸음과 중심을 보면서 우리의 중심이 복음이 증거되는 것에 있도록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기준과 배경이 오직 그리스도가 됨으로, 모든 것을 복음으로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며 복음만 누리고 증거하길 원합니다. 한주간 이러한 축복과 역사의 답이 우리의 모든 만남에 전달될 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행16:1-5)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행16:1~5
■ 할렐루야, 모든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도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여러분 든든히 세워지고 이 복음의 역사를 증거하는 전도자들로 세워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세 절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입니다. 그 오순절이 바로 맥추감사주일에 해당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세 절기를 통해서 감사를 회복했고 그 감사를 회복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한날 맥추감사주일로 주 앞에 예배드릴 때에 진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들 되시고 또 여러분의 믿음이 굳건해지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유월절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애굽에서 빠져나온 사건을 기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진 저와 여러분은 모든 저주에서 해방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유월절의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길을 가는 동안, 물 한 모금 안 나오는 광야에서 약 200만 명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어 그의 백성들을 광야 속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가운데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주신 것들이 너무나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우리의 모든 걸음들을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해서 불평하지만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이 어제 제 방에 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이런 자신의 간증을 하셨습니다. 자기 형제들 가운데 자기 가정만 예수를 믿는데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부모들도 인정을 안 하고 형제들도 인정을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들도 예수 믿는 너희들에게는 내가 재산 줄 수 없다, 그렇게 나오는 것이고. 그러니까 이 분이 장자인데, 맏이인데,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제사를 안 지내니까 형제들도 전부 삐죽삐죽하면서 그래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를 너희들 다 갖고 가라, 나는 재산 필요 없으니까, 나한테 돌아올 재산 다 줄 테니까 너희들 제사 다 갖고 가서 너희들이 제사 지내라,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가졌는데 그 가진 것을 생각함으로 참된 감사를 회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없는 것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것들로 감사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자리에 세우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광야길을 가는 동안 굶어 죽는 줄 알았는데 보리를 거두어서 먹이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결국은 그 곡식을 창고에 저장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수장절입니다. 그게 바로 지금 추수감사주일로 우리가 의미를 가지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을 광야길 같은 이 세상 속에서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의 걸음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 세워주셨다는 것, 그리고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오늘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오늘 이 한날 온전한 감사를 회복하고 믿음을 굳게 함으로 승리하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 세 절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킨 이 세 절기, 우리는 그 절기를 의미를 가지고 지키고 있습니다만 이 세 절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에 통하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오늘 짧은 이 성경 구절 가운데 전도자 바울이 가졌던 이 중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 절기를 중심으로 해서 가졌던 언약과 너무나 통하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잘 아시듯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하는 그런 걸음 속에 주어진 것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을 살펴본다면 자기 임의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부분들입니다, 1차 전도여행은. 핍박당하면 떠나게 되고 또 다른 지역에 들어가서 또 핍박당하게 되고 또 떠나게 되고. 그런데 1차 전도여행과 다르게 2차 전도여행은 자기의 임의로 인도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성령의 간섭하심이 있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의 마음대로 움직여진 걸음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움직여졌던 걸음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걸음 속에 일어난 결과의 응답이 무엇인가 5절에 보면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하나님의 인도 받는 걸음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 안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사이고 사도행전적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날마다 믿음이 굳건해지고 그 수가 늘어가는 것, 그게 교회입니다. 우리 개인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축복, 교회가 날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굳건해지고 수가 늘어나는 것, 그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받는 교회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오늘 이 올바른 교회의 모습이 우리 교회에 회복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전도자 바울의 중심
그러면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전도자 바울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한 제자를, 2차 전도여행에 나서는 바울의 걸음에 중요한 제자 디모데를 붙이셨습니다. 이 디모데가 어떤 제자이냐? 1차 전도여행을 통해 바울을 통해서 복음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거기에 바울이 있었고 바울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거기에 누가 있었습니까? 디모데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거기서 찾은 제자가 디모데였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가 어떠한 관계가 되었느냐? 바울의 사역에 있어 전도 사역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를 일컬어서 나의 참 형제 디모데, 나의 참 아들, 늘 항상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편지를 디모데에게 직접 두 통이나 보냈고, 또 바울이 보낸 서신서에 보면 서신서를 시작하는 1장에, 매장 서두에 인사를 나눌 때 보면, 디모데와 나 바울은, 그 형제 디모데와 나 바울은, 항상 디모데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말하느냐? 바울의 사역 속에 디모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처음부터 끝까지 했던 사람인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에 성공하고 싶지요? 신앙 생활에서 축복을 누리고 싶지요? 바울에게 디모데가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신앙 생활을 하나님 앞에 결단할 때에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디모데같은 제자들이 여러분 통해서 세워지는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정말로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제자가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내가 진짜 복음 가지고 그 어떤 것으로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제자가 있느냐? 그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신앙생활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특별히 바울의 전도사역을 시작하는 걸음속에서 바울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도록 합니다. 이 디모데가 어떻게 할례를 안 받았는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마는 성경학자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아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았지 않느냐? 그렇게 보기도 합니다. 이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머니는 믿는 유대여자요, 그리고 아버지는 헬라인입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디모데는 다민족입니다. 아버지가 헬라인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떻든지 할례를 받지 않은 이 디모데를 바울이 전도사역을 시작하면서 그의 걸음 앞에서 첫 번째 한 것이 할례를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받는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할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들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보지 않았지만 그런데 사실 오늘 본문이 있기까지 바울이 지난날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바울이 사실은 분쟁하고, 논쟁하고, 화를 내고 열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모세가 받은 할례라는 짐을 이방인들에게 짐 지우려고 하는 그 부분들 때문에 바울이 사실은 분쟁하고, 논쟁하고, 화가 나고 그래서 예루살렘까지 간 것 아닙니까? 예루살렘 총회에 이 바울이 왜 갔습니까? 딴게 아닙니다. 모세가 행하는 할례를 이방인들이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할례의 짐을 지우려 하기 때문에 이 바울은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 너희가 지었고, 너희 조상들도 메지 못하는 멍에를 왜 이방인들에게 메게 할려고 하느냐? 할례가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결국 예루살렘 총회에 갖고 갔던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전도사역을 위해서 나가는 걸음 속에 이 디모데를 데려다가 첫 번째 할례를 받도록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것이..전도자 바울의 이중적인 모습이 아닌가? 그렇게 보여 질 수 있는 부분들 아닙니까? 그리고 또 갈라디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내려와서 안디옥에 돌아왔습니다. 안디옥에 돌아와서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가 그 자리를 은근슬쩍 도망쳐 나옵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도 이 베드로의 외식함에 시험에 들었고 성경에 보면은 바나바도 이 베드로의 외식함에 유혹되었다 했어요. 많은 유대인들과 바나바조차도 베드로가 은근슬쩍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함께할 수 없는 그 자리에 있는 그 사건 때문에 시험에 들었다 했어요, 유혹 받았다 했어요. 그런데 그 사건을 놓고 이 바울이 베드로에게 심한, 신란한 질책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 베드로를 질책합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앎으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하면서 이 베드로를, 이방인 자리를 은근슬쩍 피해서 도망가는 이 베드로를 향해서 모든 사람 보는 앞에서 신란하게 질책을 했어요. 이런 바울인데 오늘 본문에 보면 분명히 행함으로 구원받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이야기 해 놓고도 오늘 디모데를 데리고 나가면서 할례를 받도록 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떤 일입니까? 제가 갈라디아 2장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이게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사실은 중요한 신앙을 고백해 놓고도, 또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다는 사실을 사도행전15:7절에 고백했잖아요. 예루살렘 법정 앞에서..그래 놓고도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하다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이 온다 하니까 은근슬쩍 도망쳐 나왔어요. 이게 뭡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옛날 체질들과 옛날 습관들 버리지 못하는 부분들. 유대식으로 믿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베드로의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그 부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해결자이다 이야기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시고, 충분하시고, 모든 것이다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옛 체질로 돌아가요. 그렇잖아요 옛날 우리의 믿지 않는 모습대로. 우상숭배하고 점술하던 그 모습대로 돌아가요. 마치 베드로가 옛날 유대인 식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런식으로 우리 자신들이 돌아갈 때가 있다니까요. 그래서 정말로 그리스도가 충분하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고, 완전 하시다라는 사실을 올바로 믿는 믿음의 고백하는 한 사람 나오면 그 사람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날 것인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쉽지 않다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날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가 필요한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바울이 신란하게 질책을 했는데 오늘 본문은 이 바울이 그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한다? 뭔가 맞지를 않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여기에서 성경 본문을 자세히 보면 바울의 중심을 볼 수 있어요. 할례를 행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울에게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어요. 할례를 행함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증거 되어지고 전도가 되어진다면 할례 받는 것 괜찮은 것이다 라는 것. 만약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면 할례 받지 않는 것도 괜찮다는 것. 그 기준은, 바울이 중요하게 보는 것은 할례가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 이 복음이 증거 되어지는 일이냐 그렇지 않느냐 여기에 바울의 중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8:18절에 보면 바울이 머리를 깍는 모습이 나옵니다. 중요한 결단을 하고 머리를 깍게 되지요. 머리를 깍는 모습 속에서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만약에 머리를 깍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증거되어 진다면 머리를 깍겠다는 겁니다. 머리를 기르는 것이 복음에 유익하다면 머리를 기른다는 것, 머리를 깍고 기르고 그것이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울에 중심 속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약에 머리를 기르는 것이 복음에 유익하다면 머리를 기르는 것이고 머리를 깍는 것이 걸림돌이 안 된다면 오히려 머리를 깍는 것도 좋다라는 것. 그 중심에는 이것이 과연 복음에 유익한 것이냐? 이것 통해서 과연 전도가 되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 부분들입니다. 바울이 그의 고백들 가운데 많은 경우 이런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마는 고린도전서 8장에도 보면 우상숭배지역인 고린도에서 먹고 마시는 문제 때문에 교회 안에 많은 문제가 일어났잖아요. 우상숭배로 바쳐진 음식들이 고린도시장 바닥에 나오니까 그 우상 숭배로 받쳐진 음식들을 먹는 것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바울이 중요한 고백을 했어요. 고린도전서 8:9절에 보면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했습니다. 나도 우상숭배에 들여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유함이 있지마는 이것이 굳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것을 바라보면서 믿음에 유익함을 주지 않는 것이라면 굳이 꾸역꾸역 먹을 필요가 뭐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의 중심에는 복음이라는 사실, 전도가 되느냐 안되느냐 여기에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9장에도 보면 사도권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바울이 중요한 고백을 했어요. 고린도전서9:19절에 보면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모든 일에 있어서 바울의 중심입니다. 전도가 되는냐 안되느냐, 이 복음이 증거 되느냐 안되느냐, 그래서 고백했지요. 내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마는 율법아래 있는 자처럼 해 있다 했어요. 왜 그렇게 했느냐?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이 복음에 유익한 대로, 이 복음이 증거되는 이 일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사람처럼, 저런 사람에게는 저런 사람처럼 그렇게 자기의 모든 삶을 인도받아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의 중심에 이 바울의 중심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 1장에 보면 바울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지요. 그 감옥에 들어가는 그 사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인정받기 위해서 시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어요. 그런데 바울이 그 사건을 놓고 어떻게 결론 내렸느냐? 빌립보1:12절부터 쭉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시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하든지, 증거 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니 내가 이 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했어요. 그 어떤 것도 복음이 증거 되는 일이라면 문제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자 바울에게 있었던 마음의 중심입니다. 오직 복음, 오직 이 복음 전달되어지는 전도, 여기에 바울의 중심이 있었다라는 사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전도는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입니다. 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가 가져야 될 중심이 어떤 중심인가? 그 부분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가지고 있고요, 복음은 모든 문제 해결자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정말로 오직 복음이냐? 하나님이 아십니다. 악한 사단도 그것을 압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오직 복음 이야기 하면서도 요한복음19:30절에 “다 이루었다” 복음은 끝난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이상한 다른 사상들이 들어와서요 복음보다 다른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요. 우리 한국교회 안에 복음 보다 다른 이상한 사상들이 들어와서 방언 강조하고, 능력행하고 ,기적행하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물론 다 좋은 겁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자 다 좋은 겁니다. 그런데 복음보다 다른 것 들어와 있다 라는 것. 문제는 복음 외에 다른 것 들어와 있는 그 다른 것들 때문에 저주와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복음, 충분하고 완전하고, 모든 것인데 이것이 안 되어 지니까 안되어지는 만큼 우리가 다른 것에 몸부림을 쳐요. 그런데 다른 것에 몸부림 치는 만큼 결국은 개인도, 교회도 재앙의 역사가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마지막 시대에 우리 하나교회에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한분, 한분, 또 하나교회가 대구 도성을 향해서 정말로 여러분의 중심이 오직 복음이 되도록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쓰시는 것이고,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제자로 쓰시는 것입니다.
2. 모든 기준과 배경 - 오직 복음
두 번째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준과 배경이 오직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사람이요, 역사 하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진 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기준과 배경이 뭐가 되자고요? 오직 복음입니다. 사단은 자꾸 눈에 보이는 것으로 세상과 육신의 기준을, 배경을 우리의 모든 배경으로 삼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4장에도 보면 예수님 앞에 사단이 와서 시험할 때에 돌로 떡덩이 되도록 만들어서 먹으라고 눈에 보이는 의·식·주 문제 가지고 우리를 시험했고요. 명예심을 자극했잖아요. 높은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뛰어 내리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명예심을 자극하면서..결국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보이는 것을 통해서 내게 엎드려 절하라 경배대상을 바꾸라는 것이지요. 악한 사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적인 기준, 육신적인 기준과 배경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속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단이 속이는 것이예요. 특별히 지식과 돈과 사람과 권력들 이런 보이는 것들을 통해서 의지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이란 사실입니다. 세상 눈에 보이는 것, 세상을 배경으로 삼고서는 결국 속고 바벨탑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들을 빌립보3장 8절에 보면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무슨말입니까? 배경을 그리스도로 바꾸었다는 사실이죠. 그 바울의 걸음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우리는 내안에 내 기준과 내 소견과 내 생각, 내 중심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탄의 하는 짓이에요. 내가 기준되어 있는 것, 그게 우리를 속이는 거에요. 내게 맞으면 맞는 것이고 내게 안 맞으면 안 맞는 것이고 그게 내가 기준이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고 내가 그러면 그런것이고 또 이것이 논리적이냐 합리적이냐 그것도 나의 기준이에요. 결국 여기에는 악한 사탄에 속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전도자 바울도 자기 안에 자기 중심한 부분들과 하나님 중심한 부분들이 싸우는 것을 고백하는 내용이 로마서 7장 24절에 나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3절에 보면 무엇 때문에 그런 고백을 했느냐? 내 안에 하나님의 법을 따라 가려는 마음이 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중심한 마음을 따라가려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 세상 중심에서 살아가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 그런데 가만 눈떠보니까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고자 하는 내 마음, 이 부분들은 없어지고 세상 마음이 중심되어 있는 사실들을 보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백했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안에 늘 이 싸움이에요. 다시말하면, 하나님이 주인이냐, 하나님이 내 배경이고 그리스도가 내 배경이고 기준이냐, 아니면 내가 내 자신이 내 배경이고 내 기준이냐, 세상이, 육신적인 것이, 자아가 내 기준이냐 배경이냐?
여러분 선악과 사건도 다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의 싸움 아닙니까? 죄가 뭐냐? 내가 주인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어야 하는데 내가 주인되는게 죄입니다. 이 싸움입니다. 그런데 악한 사탄이 이것을 통해서 인간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사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절대 기준이 배경이, 내가 되면 안됩니다. 예수님도 철저하게 모든 기준과 배경을 복음의 기준으로 봤어요.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왔을 때 이 가룟유다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뭐라했습니까? “친구여 네 할 일을 하라” 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본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이루어질 일들, 십자가 지시고 십자가 지셔야만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에 그 일들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는 가룟유다에게 네 할 일을 하라 하시며 복음으로 봤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한 베드로에게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바로 마태복음 16장 21절부터 쭉 보면 고난 받으실 것을 이야기 할 때 베드로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절대 이 일이 당신에게 미치지 않을것입니다” 이렇게 나왔잖아요.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뭐라 했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자로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구나”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속의 역사 앞에서 복음을 가지고 보았다라는 사실이에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들을 복음으로 보고 복음으로 판단하고 해석하고 복음을 누리고 증거하고 이 일에 기준이 되어야 됩니다. 그 외에 모든 것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볼 때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는 것도 인간이 세운 기준입니다. 긍정적인 사람이 복을 받는다, 부정적인 사람이 저주 받는다는 것도 옳은 기준이 아닙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윤리적이냐, 도덕적이냐 그렇지 않느냐, 그것도 복음이 아닙니다. 어떤면에서는 사람에게 윤리적인 것이 하나님 앞에는 틀릴 수가 있는 것이고요. 사람에게 비윤리적인 것이 하나님에게는 맞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 땅의 그 어떤 옳은 말들도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과 배경이 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아셔야 압니다. 어제의 일이 오늘 다를 수가 있어요. 과거의 옳은 것이 미래에 틀린 것이 될 수 있어요. 세상의 인간에게 나오는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기준과 절대적인 배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오직 절대적인 기준과 배경은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모든 세상의 것들은 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옳은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빨리 우리 자아와 세상과 육신을 기준삼아 생각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거기에 흑암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요. 오늘 우리 장로님이 한국교회를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만은 왜 한국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느냐? 초대교회는 안그랬잖아요. 예수 믿는 사람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한국 교회 보세요. 세상 사람들 한국 교회 없애야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자아와 세상과 육신이 교회의 기준이 되어있기 때문에. 이것을 내려놓아야 흑암이 무너집니다. 이것을 내려놓아야 여기에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자아도 아닙니다. 세상도 아닙니다. 육신도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은 오직 복음밖에 없어요. 그러면 왜 오직 복음밖에 없느냐? 그 이유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데 어느 날 다가오는 재앙의 문제. 그 재앙의 문제를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어요. 열심히 바르게 사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이 멸망받고 있어요. 지식도 발전하는데 자꾸 흑암속에 빠져요. 그러면 세상은 모든 사람은 재앙과 멸망과 흑암에 빠지고 있어요. 이것이 지구의 모든 인간에게 계속해서 오는 문제예요. 여러분, 재앙은 무엇 때문에 옵니까? 죄로 말미암아 재앙이 오고 있어요. 그리고 결국은 개인의 멸망이 어떻게 옵니까? 사탄으로 말미암아 개인의 멸망이 옵니다. 그리고 어떻게 흑암에 빠집니까? 지옥 배경 가운데 있기 때문에 흑암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다른 이름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재앙의 문제를 해결하신 참 제사장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는 참 왕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흑암에 빠지게 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참 선지자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참 제사장, 참 왕, 참 선지자 이 세 가지 직분을 합쳐서 그리스도라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근본 문제가 재앙의 문제와 멸망의 문제와 흑암의 문제 아닙니까? 이 문제 해결한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으면서도 믿는 자들이 어디에 빠지느냐? 세상속에 빠지고요. 사탄속에 빠지고요. 재앙속에 빠집니다. 무엇을 몰라서 그러느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축복을 몰라서 그래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배경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반석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면 될 것인데 이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바로 사탄의 권세를 깨트릴 수 있는 음부의 권세를 그리스도 고백하는 자에게 주셨는데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우리도 모르게 사탄의 권세아래 살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 지옥의 배경을 바꿀 수 있는 축복을 그리스도 고백하는 자에게 주셨는데 천국 열쇠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지옥의 배경을 바꾸는 비밀. 천국 열쇠를 누구 이름으로? 그리스도 이름으로! 그래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는 모든 삶도 오직 복음이어야 된다는 사실이에요. 이 복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세전에 주셨고(에베소서 1:3), 또 로마서 16:25에 보면 영세전에 계획하셨고요.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세전부터 계획하신 복음이에요. 그리고 로마서 16:26에 보면 바로 이제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세전부터 감추어졌던 그 복음이 이제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요, 로마서 16:27에 그냥 한번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기준과 배경이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오직 복음되어야 됩니다. 복음으로 보고 복음으로 판단하고 복음으로 해석하고 복음 누리고 복음 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축복의 사람으로 쓰임받는 그런 주역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오직 복음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해석하고 복음 누리고 복음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시작하세요.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 다 찾아내세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어요.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아 누릴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셨어요. 그래서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지는 것을 보고 바로 그리스도 아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진 사람을 그리스도 아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진짜 내가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려지면, 모든 사건과 문제도 다 내게 답이 됩니다. 다 내게 답이 돼요. 그리고 교회와 교인들에게 답을 줄 수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답을 줄 수 있어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로 모든 것 보는 눈이 열려짐으로 이 한 시대 참된 감사를 회복하시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7월 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하여지고
(행16:1-5)
서론: 이번주는 맥추감사절(오순절)입니다(3대 절기: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 유월절은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받고 복음으로 해방된 것을, 오순절은 광야길을 가는 동안 완벽하게 인도하심을, 수장절은 우리를 세계복음화의 역사 속에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하심을 뜻합니다. 이 세 절기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임의대로 인도받고 핍박 당하면 떠나는 걸음이었다면, 오늘 본문의 2차 전도여행은 절대적인 성령의 간섭 가운데 철저하게 성령인도를 따라서 움직인 걸음입니다. 이때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5절). 이것이 올바른 교회이자 사도행전적인 교회의 모습이며, 우리교회가 받아야 할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쓰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전도자 바울의 중심
(1)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한 바울
1) 디모데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을때 현장에 있었던 증인으로 바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임
2) 믿음으로만 구원받고, 베드로의 외식함에 신랄한 질책(갈2장)도 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음
(2) 바울의 중심
1) 바울의 중심은 할례를 행하고 말고가 아닌, ‘복음이 증거되는 것에 유익한가 아닌가’에 있었음
2) 머리를 깎음(행18:18), 우상숭배한 음식문제(고전8:9), 모든사람의 종이 됨(고전9:19-23), 투기와 분쟁의 전도문제(빌1:18)
(3) 오늘 우리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1) 전도는 말이나 행위로 하는 것이 아닌, 중심으로 하는 것임
2) 복음은 다 이루었지만(요19:30), 우리안의 다른 사상들(방언, 능력, 기적, 긍정적 마인드 등)으로 저주와 재앙이 임함
2. 모든 기준과 배경 - 오직 복음
(1) 사탄은 눈에 보이는 것(세상과 육신)으로, 우리의 기준과 배경을 삼도록 합니다.
1) 지식과 돈, 권력이나 명예심 등, 사탄은 세상의 것으로 속이는 것임
2) 결국은 속고 바벨탑처럼 무너질 수 밖에 없음 (빌3:8 바울은 배설물로 여김 - 배경을 그리스도로 바꿈)
(2) 절대적인 기준은 그리스도!!
1) 내(자아, 세상, 육신)가 기준 되어있으면, 악한 사탄이 이것으로 타락하게 만듦
2) 모든 것을 복음으로 보고 해석하며 판단하고, 복음만 누리고 증거하라!! (가롯유다와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
(3) 왜 복음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까?
1) 근본문제: 죄로 인해 재앙에 빠지고, 사탄 때문에 멸망하며, 지옥배경으로 흑암에 빠져 있음
2) 해 결 책: 참 제사장(죄 사함), 참 왕(사탄 결박), 참 선지자(하나님 만나는 길)되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
3) 삶의방법: 세상배경이 아닌 그리스도의 반석으로, 음부의 권세를 깨뜨림으로, 지옥배경 바꿀 천국 열쇠로!!
결론: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시작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찾아내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보는 눈이 열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자입니다. 이때부터 모든 사건과 문제가 내게 답이 되기에 이 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습니다. 한주간 참된 감사가 회복되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지난 전반기를 인도하셨듯이 남은 한해도 완벽한 성령인도로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바울의 걸음과 중심을 보면서 우리의 중심이 복음이 증거되는 것에 있도록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기준과 배경이 오직 그리스도가 됨으로, 모든 것을 복음으로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며 복음만 누리고 증거하길 원합니다. 한주간 이러한 축복과 역사의 답이 우리의 모든 만남에 전달될 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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