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2014-08-3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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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행19:1-7)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행19:1~7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이 한날 예배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짐으로 자신을 치유하고 세상과 시대를 치유하는 가장 축복된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이 기쁘고 즐거움으로, 감사함으로 되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지못해 신앙 생활하고 힘들게 신앙 생활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신앙 생활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묵상 기도 때 성경 시편 16편을 읽었는데 거기 다윗은 하나님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힘들고 어려움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사함으로 신앙 생활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자신을 한 번 점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신앙 생활을 어렵고 힘들게 한다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려워지게 되어 있고 인생 자체가 힘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누리며 즐겁고 기쁜 인생으로, 행복을 누리는 인생으로 현장을 정복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지못해 힘들게, 어렵게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힘들고 어렵게 신앙 생활하는 그 배경에는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을 만나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신앙 생활해야지. 그렇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금 신앙 생활이 안 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분들을 봅니다. 맞습니다. 열심히 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으로 내가 신앙 생활이 안 된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내가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정말로? 그리고 또 많은 일들을, 교회 다니면 당연히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데 내가 바쁘다 보니 교회의 많은 일들에 헌신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신앙 생활이 어렵다, 힘들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열심히, 노력으로 우리가 많은 일들을 함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어느 정도는 될 것입니다. 우선은 뭔가 이루어 놓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나중에 가서 결국은 더 큰 문제가 오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심, 노력, 능력, 우리가 많은 일들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성경에 보면 신약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이 있다면 바울입니다. 열세 권이나 열네 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만 열네 권의 서신서를 쓴 바울, 예수님 다음으로 현장에서 전도를 제일 많이 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그 바울이 늘, 항상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가 있다면 하나님께 참 감사하다, 또 진짜 하나님의 은혜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구나, 그리고 열심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쓰시고 있다는 사실, 자신을 늘 발견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이지 않습니까? 죄인 중의 괴수 죄인이다, 만삭되지 못한 나 같은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그렇게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열심, 또 노력, 나름대로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만 신앙 생활은 그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신앙 생활이 어렵고 힘든가? 그 이유를 오늘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도 어렵고 힘이 드는가? 그리고 정말로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을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진짜 우리 신앙 생활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축복된 길이 없는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거기 한 열두 명의 제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7절에 보면 열두 명 되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냥 성도들이 아니라 다른 어떤 제자들이라 했습니다. 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어떤 질문을 던졌느냐? 2절에 보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 신앙 생활에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 신앙 생활이 어렵고 힘든가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왜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들이 무너지고 교회가 힘을 잃고 한국 교회, 세계 교회가 힘을 잃고 우상에, 종교 역사들이 현장에 일어나느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물었습니다. 그 때에 이 에베소 교회 사람들이 무어라 했습니까?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기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답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기쁘고 즐겁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답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 교회가 힘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때 바울이 그들을 불러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그 복음을 받은 에베소 사람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게 되고 세례 받으니까 안수하게 되고, 안수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는데 방언과 예언함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에베소 지역에 나타났던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귀중한 답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서 정말 기쁘고 감사함으로, 즐거움으로 신앙 생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 신앙 생활에 가장 귀중한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여러분, 여기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마가다락방에 임한 그 성령의 역사를, 오순절에 마가다락방에 있었던 그 성령의 역사를 너희들이 알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 때 에베소 사람들이 뭐라 했습니까?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고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베드로를 통해 복음 듣기 전에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아볼로도 성전에서 예수를 가르치는데 브리스길라 부부가 가만히 들어보니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불러다가 하나님의 말씀, 도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하니까 아볼로가 복음을 알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게 되고 또 유대인들을 복음으로 이기게 되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에베소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세례와 다른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이고,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까지만 하는 세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세례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어려움들이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 신앙 생활 속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먼저 받을 은혜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먼저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마가다락방에 어떤 역사가 일어난 것인가를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다. 갈보리 산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에 죄와 저주와 재앙과 사단의 문제, 운명의 모든 문제를 다 끝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다 이루었다” 선언하게 됩니다. 단순히 저와 여러분이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용서함 받았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죄 용서함 받았다는 그 정도가 아니라 그 죄의 배후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단순히 죄 용서함 받았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그 배경인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끝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 저주와 재앙과 사망의 권세, 또 지옥의 권세, 모든 운명, 팔자에서 다 끝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실패가 와도 실패가 아닙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 내 안에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안에 누가 계시느냐?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 혹여나 여러분을 영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분은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내가 예수 믿는데 요즘 와서 귀에 이상한 소리가 막 들립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당신 속에, 그리스도께서 당신 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말고 말씀 속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문제와 사건, 실패가 있었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왜냐? 내 안에 누가 계시다고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예수 믿기 전에 많은 귀신에게 시달렸습니다. 너무 많은 귀신에게 매일매일 시달리다 보니 그것을 통해서 늘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온갖 문제가 다 왔는데 그 분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앙 생활을 너무 잘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인도 받고 정말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추어서 인도 받아 나갑니다. 그런데 귀신이 안 보이느냐? 귀신 보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귀신이 자기를 어렵게, 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요즘 자기는 귀신하고 논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어떤 영적인 문제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로 다 끝냈습니다. 이미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재앙의 문제가 다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따라합시다. 다! 끝났다! 누구 이름으로? 그리스도 이름으로. 다 끝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증거를 붙잡으세요, 증거. 어디에서?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은 자는 살아났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해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놓쳐 버렸을 때 포로 되고 노예 되고 속국 되었습니다. 언제 거기서 빠져나왔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았는데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 한 번 보십시오. 많은 역사 속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그 사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까? 천만에요.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비록 모자라고 연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아는 사람 통해서 이 땅에 참된 행복이 증거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증거를 붙잡아야 하는데 가면 갈수록 현실은 더욱더 심각한 영적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이미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2장 43절~45절에 보면 귀신 한 마리가 나갔다가 자기 쉴 곳을 찾아보니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들어와서 보니 집이 소재되고 수리되고 청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집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네 하면서 한 마리가 나가서 일곱 마리 귀신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그럴 수밖에. 귀신 일곱 마리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여러분, 왜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악한 고통이 일어나느냐?
이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니라.
왜 인생은 영적문제로 다 무녀지느냐? 이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니라. 그러면서 마지막에 중요한
말을 하고 있어요. 이 악한 세대가 또한 그렇게 되느니라. 가면 갈수록 현실은 엄청난 심각한 문제로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거기에 대한 유일한 답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도 답이 아니예요. 그리스도만 답입니다. 교회도 답이 아니예요. 그리스도만 답입니다. 어떤 분을 지난주에 제가 만났는데 목사님 교회한번 꼭 가볼라고 했는데 오늘 못 갔다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 순간에 제 맘에 선뜻 스쳐가는 생각이 뭐냐? 이분이 지난주에 교회에 왔다면 정말 이 분이 복음 받을 수 있었겠느냐? 이런 마음이 딱 들었어요. 그러면서 아! 정말 매 시간마다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정말 복음만 말해야 되겠다. 정말 교회에 온다고 한번 와 봤는데 복음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제가 메시지를 놓고 한번 생각을 해 봤어요.
교회 나온다고 해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요,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는 것이고, 교회 나온다고 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만 답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다른 것들이 각인되어 있잖아요. 그리스도만 답인데 다른 것들이 각인되어 있어요. 그리고 틀린 것 들이 각인되어있어요. 다른 것, 틀린 것들이 나의 것인 줄 알고 그것이 나의 것으로 각인되어 있어요. 그래서 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진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끝나는 이름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그러나 나를 살리고 시대를 살릴 수 있는 답은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갈보리 산에서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끝난 것입니다. 이 귀한 비밀들을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에서 이루시고 그 제자들을 감람산으로 부르셔서 40일 동안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을 감람산으로 부르셔 가지고 40일 동안에 하나님께서 미션을 주신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저와 여러분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배경은 천국입니다. 보좌가 나의 배경입니다. 믿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걸음을 누가 지키느냐?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셔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요 왜 자꾸 어려움 당하고 힘 드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세상에는 세상 임금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탄, 지옥의 배경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합니다마는 반드시 망합니다. 우선은 잘 되는 것 같지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전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복음 전해야 되는 것이지요. 분명히 세상에는 세상 임금이 있는 것이고, 악한 사탄 지옥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관없어요. 예수 그리스도 믿는 순간에 저와 여러분은 천국이 배경이고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보좌의 축복을 누려가며 살아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천사를 동원하셔서 주의 택한 백성들을 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위기를 당할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동원해서 도우시게 되어 있어요. 기도할 때에 저와 여러분의 배후에 천사를 동원해서 하나님께서 도우시게 되어 있어요. 이것을 누리는 신분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 약속을 붙잡은 제자들이 마가의 집에 내려왔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그 약속을 붙잡은 제자들이 마가의 집에 내려와 가지고 사도행전1:12~14절에 보면 거기서 약속 붙잡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했어요. 거기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오순절 날에 마가다락방의 그 자리에, 그 현장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때부터 제자들의 모든 것들이 바뀌어 졌어요.
이제까지 제자들의 관심이 어떤 관심이었느냐?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늘 항상 그들의 관심은 육신적인 것이었어요. 누가 높으냐, 누가 우의정하고 누가 좌의정 하느냐? 누가 오른쪽에 앉고 늘 높은 것, 이런 육신적인 것 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그들의 관심이 마지막까지 육신적인 관심에 있었어요.
뭐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전에는 모두가 어려움 당할 때에 다 뿔뿔이 흩어져서 자기 고향으로 다 돌아갔는데 이제는 죽음도 불사하고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들은 생명을 걸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일에 나서는 사람들이 되었어요.
언제, 오순절에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므로....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그냥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개개인에게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이 성령의 역사들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자신이 치유되어지고 그렇게 될 때에 참된 전도운동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자신들이 변화되게 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에 에베소에 다 알고 있으면서도 한 가지 오순절의 마가 다락방에 임한 그 성령의 역사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바울이 거기에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임했다 했습니다. 오늘 에베소 지역의 이 사건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에베소의 오순절 사건이다. 마가의 집에 오순절 사건이 있었다면 이 에베소지역에 오순절 사건,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에베소지역에 오순절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 뭐냐 하면은 에베소를 말미암아 새로운 선교, 아세아를 향한 선교가 시작되는 그 시작이 이 에베소였기 때문에 새로운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마는 어떠하든지 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된다라는 것,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도 문제 생기면 문제 속에 그대로 빠지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이 성령의 역사들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교회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상처받고 시험 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 자체가 안 되게 되어 있어요. 늘 흔들리고요. 잘 될 때는 뭔가 잘되는 것 같은데 문제와 사건 일어나면 늘 시험에 들고 흔들리고 상처받고 그러니까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그것 자체가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신앙생활 안 되니까 인생 자체도 승리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정말로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가다락방에 오순절의 역사가 있었다면, 에베소에 오순절의 사건이 있었다면, 오늘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의 역사를 받느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를 누리느냐?
여러분 우리가 애써야 합니까?
노력해야 합니까? 열심을 해야 합니까? 물론 좋습니다. 또 성령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훈련받아야 합니까? 시험을 쳐야 합니까? 아니지요. 간단합니다.
오늘 본문에 간단하게 답을 말씀 하고 있어요.
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지금 믿으면 지금 성령이 임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애써서, 노력해서 아닙니다. 뭔가 열심히 그래서 빼앗아 내는 것이 아니 예요. 예전에 우리가 그랬잖아요. 소나무뿌리 몇뿌리 뽑아야 성령 충만 하는 줄 알고 산에 올라가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습니까? 목이 다 쉬도록...물론 그것도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마는 아닙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지금 믿으면 성령이 내 안에 임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1:12절에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하고 있지요.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고린도전서2:12절에 있는 말씀“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처럼 세상의 영이 거두어졌어요. 하나님께로 온 영을 가진 거예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고전3:16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구원 받으므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순간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성전삼고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우리 걸음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조금만 성령의 인도 받기 위해서 기도하게 되면 분명히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비로소 흑암이 결박되게 되어 있어요. 흑암이 꺽여져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주와 재앙의 세력들이 떠나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고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어지고 흑암의 역사들이 결박되어지고 거기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저주와 재앙이 떠나게 될 때에 우리가 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수준, 생각과 상관없이 우리의 모든 하는 일들 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요.
하는 일들 속에, 만남 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가정을 살리고, 가문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조금만 기도하시면 됩니다. 조금만 기도하면 이미 구원받은 내 속에 하나님의 영,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에게 성전 삼고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기도할 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시는데 바로 하늘 군대를 동원하셔서 흑암세력을 꺽고, 저주와 재앙의 세력들이 떠나가게 만들면서 모든 만남 속에, 하는 일들 속에 나는 일 하는데 그 일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요. 그러니까 그것이 살게 되는 겁니다.
사람도 살고, 일도 살고, 모든 직장도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복음화의 축복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우리는 가장 좋은 것, 가장 귀중한 축복, 선물인
성령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이나 근심되는 일, 염려되는 일이 있습니까?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26~27절에 보면“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겠다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우리에게 있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엇을 염려하고 근심하십니까?
요한복음16:13절에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니리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성령이 임하게 될 때에 우리의 장래 일을 알게 할 것이다 했습니다.
무엇을 염려하고 근심하십니까?
요한일서2:20절에 보면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있게 될 때에 모든 것을 알게 된다 했어요.
27절에는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모든 것을 아니까 다른 그 어떤 것이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이 어마어마한 성령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축복을 다 놓치고 살아가니까 힘들고 어려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찾아내야 합니다. 찾아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19:2)
-영적 세계에 대한 무지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렵고 힘이 드느냐? 왜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왜 어려움을 당하고 왜 문제를 당하느냐?
왜 우리 인생들이 영적인 문제로 무너지느냐?
2절에 성령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기에 답이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사실에 대해서 모르고 무관심하고 무지함으로 살아가요.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는 겁니다. 신앙생활에 힘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이것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이고, 지금 현장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러분 말세의 특징이 뭡니까?
영적인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를 비유할 때마다 성경에 보면 노아시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시대는 어떤 시대이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시대.
홍수가 내려서 다 망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했어요. 말세를 비유할 때마다 늘 노아시대를 이야기해요.
노아시대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시대..
무엇을 말합니까? 보이는 대로,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쾌락적으로 흐르는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사실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생은 영적인 존재인데 영적인 사실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지하니까 결국은 영적인 문제를 당하고, 결국은 어디에 빠집니까? 집착에, 중독에 빠지는 겁니다.
그런데 보면 영적인 사실은 무지하고 무관심한데 지금 현 시대를 보면 우상과 귀신에게 매달려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잖아요. 영적으로 무관심하고 무지한 시대인데 귀신에게, 우상에게 매달려 있는 영적인 천박함 가운데 빠진 시대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아덴에서.. 철학의 도시 아닙니까?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늘 새로운 학문을 듣고 말하는 것 외에 달리 시간을 쓰지 않는 철학의 도시 아덴.
그런데 거기에 바울이 볼 때에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심지어 어느 정도이냐 하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드리는 제단도 있는 그런, 한마디로 말하면 가장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그 도시에 가장 우상이 많은 도시가 되었어요.
우상의 천박함, 영적인 천박함에 빠지는 그런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한 시대입니다.
영적인 무관심과 무지 속에서 이상하게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은 귀신에게 시달리고 우상숭배에 매달리고 있어요. 영적인 사실, 영적인 축복을 몰라가지고,,,,
심지어는 이것이 교회 안에 조차 들어와 있어요.
그래서 이 영적인 무지, 영적인 무관심이 교회 안에도 들어왔는데 영의 축복을 모르니까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해요. 그것을 가지고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하면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교만하고, 그것이 안 되면 낙심해 버리고요. 그리고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할려고 하니까 말씀보다도 내 체험을 강조해요. 그것이 불건전 신비주의예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체험을 더 강조해요.
말씀이 가라면 가고 말씀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내 체험이 기준이 되어서 내 체험으로 그것을 보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이것이 불건전 신비주의예요. 그러면 우상숭배하는 자와 같이 똑같이 망하게 되어요.
그리고 내 힘으로, 내 계획대로, 내 방법대로 살아가야 되니까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내 의 내 방법이 기준이 됩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3장의 문제, 재앙과 사탄과 지옥배경을 우리 자신의 의로서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어요. 재앙과 사탄과 지옥의 배경은 절대로 우리 자신의 의로서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붙잡은 것이지요.
사탄과 재앙과 지옥의 배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복음인 것이지요. 오직 그리스도 복음만이 우리 인생을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 받고 우리 인생을 인생의 굴레에서 해방 할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실패에서 해방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일을 그리스도로서 다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빼앗아 갈 수 없도록 지금 성령으로 그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언제까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이것을 가진 자가 우리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가진 것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고 미련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그 이름. 그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연결시키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삶을 거기에 연결시키게 될 때에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살리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어떻게 누릴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가지고 내 스케쥴을 세우면 됩니다. 그것이 오늘의 삶이지요. 전도자의 삶. 오늘의 삶입니다.
그 속에서 내 달란트가 나오는 것이고, 그 속에 우리의 미래가 보여지는 것이고,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성공, 그것이 참 성공이지요.
그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말씀과 기도와 전도,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삶의 모든 스케쥴을 맞추어 감으로 성령충만함으로 현장을 살리는 일에 증인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8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행19:1-2)
서론: 우리는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함으로 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이 아니라면 삶이 어려워지고 인생 자체가 힘들게 되어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 바쁘기 때문에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나의 열심, 노력, 능력이 아님). 바울 사도는 늘 감사와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이 시간에 말씀을 통해 어렵고 힘든 이유, 삶 속에서 해결 받을 수 있는 길, 기쁨과 감사함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답을 붙잡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에베소사람들은 “성령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인생문제의 모든 답, 교회가 힘이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1) 마가다락방에 일어난 역사 -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가장 먼저 받을 은혜)
1) 갈보리산 - 죄, 저주, 사탄의 문제 끝내시고(요19:30 다 이루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심(롬8:1-2)
2) 감람산 -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심(천국 보좌의 배경 가운데, 천사를 동원하여 도우심)
3) 마가다락방 - 이 약속을 잡고 내려와 오로지 기도할 때(행1:12-14),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
(2) 어떻게 하면 성령의 역사를 받는가? - 믿을 때
1) 성령의 역사는 노력하고 애쓰거나, 어떤 수준이나 과정, 훈련을 통하여 받는 것이 아님
2) 지금 우리가 믿으면, 지금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심(요1:12, 고전2:12, 고전3:16)
3) 기도할 때마다 천군천사 동원되고, 흑암이 결박되며, 저주와 재앙의 세력 떠나감
4) 하는 일들마다, 만남만남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가문과 지역, 민족과 시대를 살리는 축복을 누림)
5)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 가운데 장래의 일을 염려, 근심하지 않음(요14:26~27, 요16:13, 요일2:20,~27)
2.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1) 영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 · 무관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말세의 특징).
1) 말세시대는 노아시대와 같이 육신적으로 집착하고 중독에 빠짐(마24:37~42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
2) 영적인 존재인데 영적인 사실에 무지하기 때문에, 우상과 귀신에게 매달려 살고 있음(영적으로 천박한 삶)
(2)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하는 신앙생활
1) 인본주의 -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교만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함
2) 불건전 신비주의 -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체험만을 강조하게 됨
3) 율법주의 -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와 방법, 은혜를 받지 못함
(3) 그래서 우리에게 오직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은혜, 의로 우리 인생에 주신 것)
결론: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작은 것이라도 작은 것이 아닙니다.(보잘것 없고, 미련한 것으로 보여도 절대적인 것)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어마어마한 축복을 우리의 모든 삶에 연결시킬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살리는 역사를 누리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가지고 스케줄을 세우면 됩니다(오늘의 삶, 전도자의 삶). 그 속에서 자신의 달란트가 나오고 미래가 보여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성공과 축복이 있습니다. 한주간 모든 스케줄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현장을 살리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함으로 될 줄 믿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심으로 천군천사가 동원되고, 흑암이 결박되며, 저주와 재앙의 세력 떠나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만남과 하는 일들을 통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길 원합니다. 한주간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 빠진 현장과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성령이 임하시는 축복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행19:1-7)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행19:1~7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이 한날 예배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짐으로 자신을 치유하고 세상과 시대를 치유하는 가장 축복된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이 기쁘고 즐거움으로, 감사함으로 되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지못해 신앙 생활하고 힘들게 신앙 생활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신앙 생활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묵상 기도 때 성경 시편 16편을 읽었는데 거기 다윗은 하나님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힘들고 어려움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고 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사함으로 신앙 생활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자신을 한 번 점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신앙 생활을 어렵고 힘들게 한다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려워지게 되어 있고 인생 자체가 힘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누리며 즐겁고 기쁜 인생으로, 행복을 누리는 인생으로 현장을 정복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지못해 힘들게, 어렵게 신앙 생활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힘들고 어렵게 신앙 생활하는 그 배경에는 내가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을 만나 보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신앙 생활해야지. 그렇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금 신앙 생활이 안 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분들을 봅니다. 맞습니다. 열심히 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으로 내가 신앙 생활이 안 된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많은 분들이 내가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정말로? 그리고 또 많은 일들을, 교회 다니면 당연히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데 내가 바쁘다 보니 교회의 많은 일들에 헌신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신앙 생활이 어렵다, 힘들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열심히, 노력으로 우리가 많은 일들을 함으로 우리의 능력으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어느 정도는 될 것입니다. 우선은 뭔가 이루어 놓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나중에 가서 결국은 더 큰 문제가 오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심, 노력, 능력, 우리가 많은 일들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성경에 보면 신약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이 있다면 바울입니다. 열세 권이나 열네 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만 열네 권의 서신서를 쓴 바울, 예수님 다음으로 현장에서 전도를 제일 많이 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그 바울이 늘, 항상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가 있다면 하나님께 참 감사하다, 또 진짜 하나님의 은혜다,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구나, 그리고 열심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쓰시고 있다는 사실, 자신을 늘 발견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의 고백이지 않습니까? 죄인 중의 괴수 죄인이다, 만삭되지 못한 나 같은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그렇게 고백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열심, 또 노력, 나름대로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만 신앙 생활은 그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신앙 생활이 어렵고 힘든가? 그 이유를 오늘 알아야 합니다. 왜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도 어렵고 힘이 드는가? 그리고 정말로 우리의 삶 속에서 그것을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진짜 우리 신앙 생활에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축복된 길이 없는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거기 한 열두 명의 제자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7절에 보면 열두 명 되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냥 성도들이 아니라 다른 어떤 제자들이라 했습니다. 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어떤 질문을 던졌느냐? 2절에 보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 신앙 생활에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왜 신앙 생활이 어렵고 힘든가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왜 가면 갈수록 우리 자신들이 무너지고 교회가 힘을 잃고 한국 교회, 세계 교회가 힘을 잃고 우상에, 종교 역사들이 현장에 일어나느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물었습니다. 그 때에 이 에베소 교회 사람들이 무어라 했습니까?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기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답이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기쁘고 즐겁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답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 교회가 힘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때 바울이 그들을 불러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그 복음을 받은 에베소 사람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게 되고 세례 받으니까 안수하게 되고, 안수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는데 방언과 예언함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에베소 지역에 나타났던 사실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귀중한 답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서 정말 기쁘고 감사함으로, 즐거움으로 신앙 생활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 신앙 생활에 가장 귀중한 부분입니다. 신앙 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여러분, 여기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마가다락방에 임한 그 성령의 역사를, 오순절에 마가다락방에 있었던 그 성령의 역사를 너희들이 알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 때 에베소 사람들이 뭐라 했습니까?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고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고넬료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베드로를 통해 복음 듣기 전에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아볼로도 성전에서 예수를 가르치는데 브리스길라 부부가 가만히 들어보니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불러다가 하나님의 말씀, 도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하니까 아볼로가 복음을 알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게 되고 또 유대인들을 복음으로 이기게 되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에베소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세례와 다른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이고, 요한의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까지만 하는 세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세례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만 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어려움들이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 신앙 생활 속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먼저 받을 은혜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먼저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마가다락방에 어떤 역사가 일어난 것인가를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하겠습니다. 갈보리 산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에 죄와 저주와 재앙과 사단의 문제, 운명의 모든 문제를 다 끝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다 이루었다” 선언하게 됩니다. 단순히 저와 여러분이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용서함 받았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죄 용서함 받았다는 그 정도가 아니라 그 죄의 배후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2절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단순히 죄 용서함 받았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그 배경인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 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 모든 문제를 십자가에서 끝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 저주와 재앙과 사망의 권세, 또 지옥의 권세, 모든 운명, 팔자에서 다 끝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떤 실패가 와도 실패가 아닙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 내 안에 모든 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안에 누가 계시느냐? 하나님이 계십니다. 여러분, 혹여나 여러분을 영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분은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내가 예수 믿는데 요즘 와서 귀에 이상한 소리가 막 들립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당신 속에, 그리스도께서 당신 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말고 말씀 속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증거를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문제와 사건, 실패가 있었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왜냐? 내 안에 누가 계시다고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예수 믿기 전에 많은 귀신에게 시달렸습니다. 너무 많은 귀신에게 매일매일 시달리다 보니 그것을 통해서 늘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온갖 문제가 다 왔는데 그 분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앙 생활을 너무 잘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인도 받고 정말 세계복음화에 방향 맞추어서 인도 받아 나갑니다. 그런데 귀신이 안 보이느냐? 귀신 보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귀신이 자기를 어렵게, 해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요즘 자기는 귀신하고 논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어떤 영적인 문제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로 다 끝냈습니다. 이미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재앙의 문제가 다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 따라합시다. 다! 끝났다! 누구 이름으로? 그리스도 이름으로. 다 끝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증거를 붙잡으세요, 증거. 어디에서?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은 자는 살아났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해도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놓쳐 버렸을 때 포로 되고 노예 되고 속국 되었습니다. 언제 거기서 빠져나왔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그 이름 붙잡았는데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 한 번 보십시오. 많은 역사 속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그 사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까? 천만에요.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비록 모자라고 연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아는 사람 통해서 이 땅에 참된 행복이 증거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증거를 붙잡아야 하는데 가면 갈수록 현실은 더욱더 심각한 영적 문제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이미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12장 43절~45절에 보면 귀신 한 마리가 나갔다가 자기 쉴 곳을 찾아보니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시 들어와서 보니 집이 소재되고 수리되고 청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집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네 하면서 한 마리가 나가서 일곱 마리 귀신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그럴 수밖에. 귀신 일곱 마리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여러분, 왜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악한 고통이 일어나느냐?
이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니라.
왜 인생은 영적문제로 다 무녀지느냐? 이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니라. 그러면서 마지막에 중요한
말을 하고 있어요. 이 악한 세대가 또한 그렇게 되느니라. 가면 갈수록 현실은 엄청난 심각한 문제로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거기에 대한 유일한 답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도 답이 아니예요. 그리스도만 답입니다. 교회도 답이 아니예요. 그리스도만 답입니다. 어떤 분을 지난주에 제가 만났는데 목사님 교회한번 꼭 가볼라고 했는데 오늘 못 갔다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 순간에 제 맘에 선뜻 스쳐가는 생각이 뭐냐? 이분이 지난주에 교회에 왔다면 정말 이 분이 복음 받을 수 있었겠느냐? 이런 마음이 딱 들었어요. 그러면서 아! 정말 매 시간마다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정말 복음만 말해야 되겠다. 정말 교회에 온다고 한번 와 봤는데 복음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제가 메시지를 놓고 한번 생각을 해 봤어요.
교회 나온다고 해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요, 기독교를 믿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는 것이고, 교회 나온다고 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만 답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다른 것들이 각인되어 있잖아요. 그리스도만 답인데 다른 것들이 각인되어 있어요. 그리고 틀린 것 들이 각인되어있어요. 다른 것, 틀린 것들이 나의 것인 줄 알고 그것이 나의 것으로 각인되어 있어요. 그래서 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진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끝나는 이름은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그러나 나를 살리고 시대를 살릴 수 있는 답은 오직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갈보리 산에서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끝난 것입니다. 이 귀한 비밀들을 예수님께서 갈보리 산에서 이루시고 그 제자들을 감람산으로 부르셔서 40일 동안에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을 감람산으로 부르셔 가지고 40일 동안에 하나님께서 미션을 주신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저와 여러분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배경은 천국입니다. 보좌가 나의 배경입니다. 믿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의 걸음을 누가 지키느냐?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하셔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요 왜 자꾸 어려움 당하고 힘 드느냐? 다른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세상에는 세상 임금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탄, 지옥의 배경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합니다마는 반드시 망합니다. 우선은 잘 되는 것 같지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전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복음 전해야 되는 것이지요. 분명히 세상에는 세상 임금이 있는 것이고, 악한 사탄 지옥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관없어요. 예수 그리스도 믿는 순간에 저와 여러분은 천국이 배경이고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보좌의 축복을 누려가며 살아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천사를 동원하셔서 주의 택한 백성들을 도우시게 되어 있습니다. 위기를 당할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동원해서 도우시게 되어 있어요. 기도할 때에 저와 여러분의 배후에 천사를 동원해서 하나님께서 도우시게 되어 있어요. 이것을 누리는 신분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 약속을 붙잡은 제자들이 마가의 집에 내려왔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그 약속을 붙잡은 제자들이 마가의 집에 내려와 가지고 사도행전1:12~14절에 보면 거기서 약속 붙잡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했어요. 거기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오순절 날에 마가다락방의 그 자리에, 그 현장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그때부터 제자들의 모든 것들이 바뀌어 졌어요.
이제까지 제자들의 관심이 어떤 관심이었느냐?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늘 항상 그들의 관심은 육신적인 것이었어요. 누가 높으냐, 누가 우의정하고 누가 좌의정 하느냐? 누가 오른쪽에 앉고 늘 높은 것, 이런 육신적인 것 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리고 심지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면서도 그들의 관심이 마지막까지 육신적인 관심에 있었어요.
뭐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전에는 모두가 어려움 당할 때에 다 뿔뿔이 흩어져서 자기 고향으로 다 돌아갔는데 이제는 죽음도 불사하고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들은 생명을 걸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전하는 일에 나서는 사람들이 되었어요.
언제, 오순절에 마가다락방에 성령이 임하므로....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그냥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개개인에게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이 성령의 역사들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 자신이 치유되어지고 그렇게 될 때에 참된 전도운동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자신들이 변화되게 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에 에베소에 다 알고 있으면서도 한 가지 오순절의 마가 다락방에 임한 그 성령의 역사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바울이 거기에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임했다 했습니다. 오늘 에베소 지역의 이 사건을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에베소의 오순절 사건이다. 마가의 집에 오순절 사건이 있었다면 이 에베소지역에 오순절 사건,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에베소지역에 오순절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는 배경이 뭐냐 하면은 에베소를 말미암아 새로운 선교, 아세아를 향한 선교가 시작되는 그 시작이 이 에베소였기 때문에 새로운 성령의 역사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마는 어떠하든지 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된다라는 것,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도 문제 생기면 문제 속에 그대로 빠지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이 성령의 역사들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교회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상처받고 시험 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 자체가 안 되게 되어 있어요. 늘 흔들리고요. 잘 될 때는 뭔가 잘되는 것 같은데 문제와 사건 일어나면 늘 시험에 들고 흔들리고 상처받고 그러니까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그것 자체가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신앙생활 안 되니까 인생 자체도 승리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정말로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가다락방에 오순절의 역사가 있었다면, 에베소에 오순절의 사건이 있었다면, 오늘 지금 이 자리에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의 역사를 받느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의 역사를 누리느냐?
여러분 우리가 애써야 합니까?
노력해야 합니까? 열심을 해야 합니까? 물론 좋습니다. 또 성령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훈련받아야 합니까? 시험을 쳐야 합니까? 아니지요. 간단합니다.
오늘 본문에 간단하게 답을 말씀 하고 있어요.
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지금 믿으면 지금 성령이 임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애써서, 노력해서 아닙니다. 뭔가 열심히 그래서 빼앗아 내는 것이 아니 예요. 예전에 우리가 그랬잖아요. 소나무뿌리 몇뿌리 뽑아야 성령 충만 하는 줄 알고 산에 올라가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습니까? 목이 다 쉬도록...물론 그것도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마는 아닙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지금 믿으면 성령이 내 안에 임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1:12절에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하고 있지요.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고린도전서2:12절에 있는 말씀“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처럼 세상의 영이 거두어졌어요. 하나님께로 온 영을 가진 거예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고전3:16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구원 받으므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순간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성전삼고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우리 걸음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조금만 성령의 인도 받기 위해서 기도하게 되면 분명히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비로소 흑암이 결박되게 되어 있어요. 흑암이 꺽여져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주와 재앙의 세력들이 떠나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고 천군과 천사들이 동원되어지고 흑암의 역사들이 결박되어지고 거기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저주와 재앙이 떠나게 될 때에 우리가 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수준, 생각과 상관없이 우리의 모든 하는 일들 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요.
하는 일들 속에, 만남 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가정을 살리고, 가문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시대를 살리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조금만 기도하시면 됩니다. 조금만 기도하면 이미 구원받은 내 속에 하나님의 영, 성령이 거하시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에게 성전 삼고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기도할 때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시는데 바로 하늘 군대를 동원하셔서 흑암세력을 꺽고, 저주와 재앙의 세력들이 떠나가게 만들면서 모든 만남 속에, 하는 일들 속에 나는 일 하는데 그 일에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요. 그러니까 그것이 살게 되는 겁니다.
사람도 살고, 일도 살고, 모든 직장도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복음화의 축복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우리는 가장 좋은 것, 가장 귀중한 축복, 선물인
성령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이나 근심되는 일, 염려되는 일이 있습니까?
성경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4:26~27절에 보면“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겠다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이 우리에게 있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엇을 염려하고 근심하십니까?
요한복음16:13절에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니리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성령이 임하게 될 때에 우리의 장래 일을 알게 할 것이다 했습니다.
무엇을 염려하고 근심하십니까?
요한일서2:20절에 보면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있게 될 때에 모든 것을 알게 된다 했어요.
27절에는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모든 것을 아니까 다른 그 어떤 것이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이 어마어마한 성령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축복을 다 놓치고 살아가니까 힘들고 어려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찾아내야 합니다. 찾아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19:2)
-영적 세계에 대한 무지
두 번째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렵고 힘이 드느냐? 왜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왜 어려움을 당하고 왜 문제를 당하느냐?
왜 우리 인생들이 영적인 문제로 무너지느냐?
2절에 성령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기에 답이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사실에 대해서 모르고 무관심하고 무지함으로 살아가요.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는 겁니다. 신앙생활에 힘이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이것이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일이고, 지금 현장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러분 말세의 특징이 뭡니까?
영적인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세를 비유할 때마다 성경에 보면 노아시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시대는 어떤 시대이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시대.
홍수가 내려서 다 망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했어요. 말세를 비유할 때마다 늘 노아시대를 이야기해요.
노아시대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시대..
무엇을 말합니까? 보이는 대로,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쾌락적으로 흐르는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사실에 대해서 무지하고 무관심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생은 영적인 존재인데 영적인 사실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지하니까 결국은 영적인 문제를 당하고, 결국은 어디에 빠집니까? 집착에, 중독에 빠지는 겁니다.
그런데 보면 영적인 사실은 무지하고 무관심한데 지금 현 시대를 보면 우상과 귀신에게 매달려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잖아요. 영적으로 무관심하고 무지한 시대인데 귀신에게, 우상에게 매달려 있는 영적인 천박함 가운데 빠진 시대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아덴에서.. 철학의 도시 아닙니까?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늘 새로운 학문을 듣고 말하는 것 외에 달리 시간을 쓰지 않는 철학의 도시 아덴.
그런데 거기에 바울이 볼 때에 범사에 종교성이 많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심지어 어느 정도이냐 하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드리는 제단도 있는 그런, 한마디로 말하면 가장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그 도시에 가장 우상이 많은 도시가 되었어요.
우상의 천박함, 영적인 천박함에 빠지는 그런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한 시대입니다.
영적인 무관심과 무지 속에서 이상하게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은 귀신에게 시달리고 우상숭배에 매달리고 있어요. 영적인 사실, 영적인 축복을 몰라가지고,,,,
심지어는 이것이 교회 안에 조차 들어와 있어요.
그래서 이 영적인 무지, 영적인 무관심이 교회 안에도 들어왔는데 영의 축복을 모르니까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해요. 그것을 가지고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뭔가를 하면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교만하고, 그것이 안 되면 낙심해 버리고요. 그리고 내 힘으로, 내 방법으로 할려고 하니까 말씀보다도 내 체험을 강조해요. 그것이 불건전 신비주의예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체험을 더 강조해요.
말씀이 가라면 가고 말씀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내 체험이 기준이 되어서 내 체험으로 그것을 보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를 않아요. 이것이 불건전 신비주의예요. 그러면 우상숭배하는 자와 같이 똑같이 망하게 되어요.
그리고 내 힘으로, 내 계획대로, 내 방법대로 살아가야 되니까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인도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내 의 내 방법이 기준이 됩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3장의 문제, 재앙과 사탄과 지옥배경을 우리 자신의 의로서 해결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어요. 재앙과 사탄과 지옥의 배경은 절대로 우리 자신의 의로서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붙잡은 것이지요.
사탄과 재앙과 지옥의 배경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서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방법이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복음인 것이지요. 오직 그리스도 복음만이 우리 인생을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 받고 우리 인생을 인생의 굴레에서 해방 할 수 있는 것이고, 모든 실패에서 해방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일을 그리스도로서 다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빼앗아 갈 수 없도록 지금 성령으로 그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언제까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이것을 가진 자가 우리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가진 것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고 미련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그 이름. 그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연결시키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삶을 거기에 연결시키게 될 때에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살리는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그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어떻게 누릴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가지고 내 스케쥴을 세우면 됩니다. 그것이 오늘의 삶이지요. 전도자의 삶. 오늘의 삶입니다.
그 속에서 내 달란트가 나오는 것이고, 그 속에 우리의 미래가 보여지는 것이고,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성공, 그것이 참 성공이지요.
그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말씀과 기도와 전도,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의 삶의 모든 스케쥴을 맞추어 감으로 성령충만함으로 현장을 살리는 일에 증인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8월 3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행19:1-2)
서론: 우리는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함으로 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이 아니라면 삶이 어려워지고 인생 자체가 힘들게 되어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 바쁘기 때문에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나의 열심, 노력, 능력이 아님). 바울 사도는 늘 감사와 은혜를 고백했습니다. 이 시간에 말씀을 통해 어렵고 힘든 이유, 삶 속에서 해결 받을 수 있는 길, 기쁨과 감사함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답을 붙잡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질문을 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에베소사람들은 “성령있음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인생문제의 모든 답, 교회가 힘이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1) 마가다락방에 일어난 역사 -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가장 먼저 받을 은혜)
1) 갈보리산 - 죄, 저주, 사탄의 문제 끝내시고(요19:30 다 이루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심(롬8:1-2)
2) 감람산 -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심(천국 보좌의 배경 가운데, 천사를 동원하여 도우심)
3) 마가다락방 - 이 약속을 잡고 내려와 오로지 기도할 때(행1:12-14),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
(2) 어떻게 하면 성령의 역사를 받는가? - 믿을 때
1) 성령의 역사는 노력하고 애쓰거나, 어떤 수준이나 과정, 훈련을 통하여 받는 것이 아님
2) 지금 우리가 믿으면, 지금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심(요1:12, 고전2:12, 고전3:16)
3) 기도할 때마다 천군천사 동원되고, 흑암이 결박되며, 저주와 재앙의 세력 떠나감
4) 하는 일들마다, 만남만남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남(가문과 지역, 민족과 시대를 살리는 축복을 누림)
5)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 가운데 장래의 일을 염려, 근심하지 않음(요14:26~27, 요16:13, 요일2:20,~27)
2.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1) 영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 · 무관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말세의 특징).
1) 말세시대는 노아시대와 같이 육신적으로 집착하고 중독에 빠짐(마24:37~42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
2) 영적인 존재인데 영적인 사실에 무지하기 때문에, 우상과 귀신에게 매달려 살고 있음(영적으로 천박한 삶)
(2)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하는 신앙생활
1) 인본주의 -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교만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함
2) 불건전 신비주의 -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체험만을 강조하게 됨
3) 율법주의 -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와 방법, 은혜를 받지 못함
(3) 그래서 우리에게 오직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은혜, 의로 우리 인생에 주신 것)
결론: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작은 것이라도 작은 것이 아닙니다.(보잘것 없고, 미련한 것으로 보여도 절대적인 것) 그리스도 그 이름 안에 어마어마한 축복을 우리의 모든 삶에 연결시킬 때,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살리는 역사를 누리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가지고 스케줄을 세우면 됩니다(오늘의 삶, 전도자의 삶). 그 속에서 자신의 달란트가 나오고 미래가 보여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성공과 축복이 있습니다. 한주간 모든 스케줄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현장을 살리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신앙생활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함으로 될 줄 믿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심으로 천군천사가 동원되고, 흑암이 결박되며, 저주와 재앙의 세력 떠나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만남과 하는 일들을 통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길 원합니다. 한주간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 빠진 현장과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성령이 임하시는 축복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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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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