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2014-10-05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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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행21:17-26)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행21:17~26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제목은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바울이 안 해도 되는 결례를 행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오늘 저는 찬양대의 찬양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결례를 행한 중심이 오늘 찬양을 통해서, 바울의 마음 중심이 오늘 찬양을 통해서 고백되었습니다. 정말 복음 때문에 흐르는 눈물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것이 나입니다. 여러분, 24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무엇을 생각하며 보내십니까? 그것이 결국은 내 삶입니다. 내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한 생각을 늘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고, 돈 때문에 성공하든지 망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여자에 대해 계속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또 요즘 웰빙(well-being) 시대가 되어서 건강에 대해 늘 신경쓰지 않습니까? 늘 건강에 대해서, 24시간 건강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루 생활 속에서 어떤 것에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중에 가장 큰 응답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응답입니다. 빌립보 4장 6절~7절에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단도 이것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단체가 나타나서 학문과 예술과 모든 예능 속에 무언가 사람들의 생각을 빼앗을 수 있도록, 마음을 빼앗을 수 있도록 무언가 자꾸 심어 나가는데 결국은 사람들이 미디어 같은 것을 통해서 보는 것으로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고 있고, 그래서 생각과 마음이 점점 황폐해지게 되어 있고, 결국은 흑암이 가득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오늘 본문은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오늘 읽은 본문 21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로마로 가게 되는, 환난과 핍박을 당하게 되는 그런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 짧은 구절 속에 바울의 중심, 바울의 관심이 오직 무엇인가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고, 또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사상들을, 가지고 있는 신념들을 버리지 못한, 유대인들 가운데 개종한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들 깊이 뿌리내려 있는 생각과 관심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본문이 오늘 본문입니다. 사실 이 바울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서 두 가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믿는 유대인들, 그러니까 유대인에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는 믿는데 유대인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서 오해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해 대적하는 사람들로 자리잡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는데 교회가 전혀 영적인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힘을 잃어버리고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빠져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사실 야고보인데,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올라온 바울을 바라보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어떤 제안을 했느냐? 당신이 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면 결국은 많은 대적하는 믿는 유대인들, 개종한 유대인들이,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마음의 불편함을 갖고 어렵게 볼 것인데 곤란한 일을 당신이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하자 하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그 제안이 무엇이냐 하면 그 자리를 피하자는 것, 그 자리를 피해가자는 그런 전략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우리 가운데 정결 의식인데 결례를 행하지 않은 네 사람이 있는데, 그 네 사람과 함께 네가 그 네 사람의 돈을 다 들여 가지고 너와 함께 그 네 사람이 같이 함께 결례를 행하라, 그리하면 유대인, 율법에 열심인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너에 대해서 떠도는 소문,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는, 그 당시 바울에 대해 떠도는 소문이 어떤 소문이었느냐 하면 21절에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바울에 대해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 예수 믿는 개종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깊은 생각들, 버리지 못한 생각들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 율법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 율법폐기론자다, 그러면서 할례도 받을 필요가 없고 전통도 습관도 규모도 규례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 이것이 바울에 대해 떠도는 소문으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믿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들이었습니다. 이런 소식들, 소문들이 사실이 아니구나 깨닫게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네가 돈을 들여서 결례를 행하지 않은 네 사람과 함께 네가 결례를 행하게 되면 결국은 많은 돈을 들여서 율법을 지켰으니까 율법을 존중하는 자라는 그런 사실로 드러날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런 위기를 모면하자하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야고보가 제안을 한 것입니다. 그 제안 앞에 바울이 오늘 26절에 보면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본문에서 바울이 결례를 했던 그 중심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을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 또 믿는다고 하지만 옛날 것을 그대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개종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관심과 생각은 무엇인가, 그리고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그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한 20년 지난 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자신들도 모르게 어려움과 환난과 핍박 속에서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왜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가?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놓쳐 버린 부분들을 찾아낸다면 새로운 응답이 시작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이 부분들을 놓고 특별히 이번 한 주간 이 말씀에 대해 생각하시면서 바울의 관심과 중심이 무엇이었고, 또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이, 믿는 유대인들이 가진 관심과 생각은 무엇이며, 왜 초대교회의, 그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강하고 담대함으로 복음 전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왜 두려움 속에, 무서움 속에 빠지게 되었는가, 이 사실을 찾아냄으로 새로운 응답이 시작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의 싸움
그렇다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오늘 본문에 믿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생각들, 이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바라보면서 특히 이 부분 속에서 바울이 그 속에서 어떻게 인도받았는가를 같이 한 번 생각해 보면서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데, 먼저 바울에게 있어서 항상, 바울의 전도사역에 있어서 바울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전도사역에 있어서 바울을 곤경에 빠뜨리고 곤란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인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사역 속에 바울을 어렵게 만든 것이 있다면 믿는다고 하면서도 유대인의 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율법주의자들, 그들 때문에 바울은 늘 항상 그 사람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설명한 내용을 보게 됩니다. 참된 전도사역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들이,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사상을 버리지 않고 있는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오는 공격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성경에 보면 이미 사도행전 10장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이방인 고넬료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세례 받은 것을 통해서 이 유대인들이 무어라고 공격해 왔습니까? 아니, 할례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 당시 할례는 유대인이라는,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표로 할례를 받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실 이방인은 구원이 필요없다는 것, 구원받을 수 없는 짐승과 같은 존재라고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것 때문에 결국은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내가 하나님께서 세례를 주라 하시는데, 성령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주라고 하시는데 내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느냐? 그렇게 함으로 결국은 그 사건 때문에 안디옥 교회가 그 속에서 새롭게 탄생되는 사실을 교회사를 통해서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5장에도 보면 예루살렘 총회가 무엇 때문에 모였습니까? 우리가 지금 사도행전에서 계속해서 살펴보는 가운데 지난 번 살펴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예루살렘 총회가 모였는데 그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니까 이방인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은 할례를 안 받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유대 사상을 가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느냐? 이방인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구원 받는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자기들이 해결할 수 없으니까 예루살렘 총회로 올려보냈는데 예루살렘 총회 안에도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그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결론내리기를 무어라고 했느냐 하면, 그렇지, 모세의 법대로 결국은 믿는 이방인들,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설교를 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우리 조상과 우리도 매지 못하는 멍에를 어떻게 그들에게 매이고자 하느냐, 그러면서 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결론 내린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 할례를 행했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고 도장 딱딱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더 이상 할례 문제로 괴롭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늘 사역 속에서 싸움이 있었다면, 믿는 유대인들 가운데 그 사상을 버리지 못한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늘 거기에 대해서 변론하다 보니까 시간을 다 보낸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말씀 지켜야 한다, 말씀 지켜야 구원 받는다, 그게 바로 율법주의자입니다. 행해야 한다는 것,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유대인들이 결국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고,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결국은 끝에 가서 다 망하게 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이 바울의 사역 속에 계속해서 바울을 어렵게, 곤경에 빠뜨린 부분이 있다면 하나는 율법주의였고 하나는 영지주의였습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고 바울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문제입니다. 영지주의, 이것을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라고도 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영적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 앎을 통해서 깨닫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신의 세계와 물질적 세계를 철저하게 구분짓는 극단적인 이원론자들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삶의 부분들, 육신적인 모든 부분을 그냥 내팽개치게 만드는, 어느 정도로 나갔느냐 하면 의인으로 거듭난 사람은 육신으로 짓는 죄는 죄가 아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유를 방탕하게 하고 방종하게 하는, 그게 바로 영지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속에 이것이 들어와서 결국은 목사도 장로도 필요 없다. 예배도 굳이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드릴 필요가 뭐 있느냐 이런 사상으로 흘러왔습니다. 이게 바로 영지주의 속에서 흘러온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있었고, 바울 당시에 바울을 가장 어렵게 만든 부분들이었고, 지금도 우리를 공격해 오고 있는 신학사상이고 그것이 우리의 흐름 속에 그대로 묻혀서 우리에게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대 시대마다 사탄의 엄청난 도구가 되어서 복음의 역사를 막는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왜 율법주의를 이야기 하고, 영지주의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느냐? 정확한 복음을 이들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생이 해결하지 못하는 원죄문제에 대한 재앙의 문제, 창세기 3장의 문제이지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율법주의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 라는 것. 여러분 이것은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 인생의 원죄 문제가 근본 문제인 것을 알지 못함으로 나온 문제들입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창세기 3장 사건 속에 붙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은 결국은 창세기6장의 가정 속에 파고든 이 사탄의 전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이 창세기 3장이 가정 속에 파고드는데 그것이 창세기 6장의 노아시대 네피림 시대가 일어난 것이지요. 그로 말미암아 결국은 홍수 심판을 받게 된 겁니다. 이 창세기 3장이 결국은 국가 속에, 성공한 사람들 속에 파고들었는데 결국 이것이 창세기11장 사건이 되어 진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결국은 영적인 문제로 망할 수 밖에 없다라는 것. 여러분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면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무엇을 몰랐느냐? 또 유대인 가운데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개종한 사람들이 무엇을 몰랐느냐?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왜 주장하느냐? 근본적인 원죄문제, 창세기 3장의 문제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행위를 말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다른 차원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은 지금도 교회들 속에 현장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죄문제, 창세기 3장의 문제를 몰라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문제 사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지요. 그 사탄, 흑암의 역사 속에서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는데 그 저주와 재앙, 지옥배경 가운데서 모든 문제가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근본 문제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창세기 3장 문제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놓쳐버린 한 가지가 있다면 이 창세기3장 문제가 무엇인지를 몰랐어요. 그러니까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라고 행함을 강조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키며 행한다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은 구원 받을 수 없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우리와 상관없이 오게 된 우리 조상들이 지은 원죄문제, 창세기 3장 문제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함을 강조하면서 바르게 살아야 된다. 의롭게 살아야 된다. 우리가 완전하고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야고보서에 모든 것들을 다지키더라도 한 가지를 범죄 하면 그 한가지 때문에 모든 것을 범한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철저하게 다 지킨다 할지라도 여러분 한가지 범죄하면 그 한 가지 때문에 다 범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어요.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데 완전할 수가 없고, 의로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로 덮혀지지 않고서는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모르니까 행함을 강조하니까 결국 예수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은 열심히 지킨다고 지키면서 행함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망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이 놓쳐버린 것이 있다면 한가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여야 되는 그 이유들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우리가 많은 경우 정말로 오직 그리스도입니까? 그 사실, 그 이유를 깨닫는 순간에 참된 응답이 시작될 줄로 믿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 보면 오직 그리스도 성령충만 함 되었을 때는 초대교회에 환란이 오고 핍박이 와도 괜찮았어요. 이미 우리가 잘 아시듯이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언약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사도행전 2장에 바람 같은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함으로 성령충만한 가운데 초대교회 들어갔어요. 그리고 새로운 응답이 시작되었는데 그 응답과 함께 초대교회 성도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응답과 함께 악한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은 복음을 막는 핍박과 어려움 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했던 초대교회.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눈 하나 까닭하지 않았어요.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어려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기도는 달랐어요.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느냐 하나님이 이 사실을 보시고 이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복음을 담대하게 우리의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기도가 달랐어요. 어려움을 없애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어요. 그 어려움과 핍박과 환란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부족한 입술에 입을 열어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그 기도를 했다는 것. 핍박과 환란을 당하는 그 자세가 달랐어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사도행전 5장에도 보면 이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어쩌다가 핍박받는 자리에 내가 서 있는가! 그것 때문에 기뻐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위해서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 했어요. 여러분 핍박도 어려움도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는가 그것을 기뻐했던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어요.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여러분 다른 좋은 말 하면서 그 자리를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환란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르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는 순교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줄 몰랐겠습니까?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성령 충만한 주의 종들 핍박과 어려움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교회 지도자 야고보를 위시해서 사실은 이들이 제안한 대안을 보면 그것을 피해 가자는 것. 비록 한 20년 지난 시간들이었지만 시간이 흘러오면서 자기들도 모르게 오직 그리스도에서 성령충만함 속에서 점점 멀어졌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인 계산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오늘 여기에 바울에게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 대안은 신앙에 대한 부분들이 아니라 인간적인 인본주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핍박과 어려움을 피할 것인가 그래서 대안을 제시했는데 우리 가운데 네 사람이 결례를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과 함께 네가 그들의 돈도 네가 내어서 결례 행하면 이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 이사람 듣는 소문하고 다르게 정말 율법에 열심 있는 사람이네 그렇게 여길 것 아닌가? 인간적인 생각들이었지요.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안 되면 시간 가면 갈수록 우리도 모르게 신앙생활 한다는 그 자체가 걸림돌이 되어지게 되어 있어요. 인본주의 쓸 수밖에 없어요. 왜냐? 하나님 바라보지 않으니까 오직 그리스도 안 되니까 내 인본주의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세상 앞에 무섭고 두려움으로 서게 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 놓쳐 버리고 결국 부끄럽게 살아가게 된 인생이 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공격해 옵니다. 뭐 그렇게 별스럽게 믿을 필요가 있느냐? 대충대충 믿으면 되지 않느냐? 편협되게 뭐 그렇게 외골수로 믿을 라고 하느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 자꾸 세상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오직 그리스도 안 되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 앞에 서면 설수로, 문제 앞에 서면 설수록 어떤 상태에 빠지는 줄 아십니까? 오늘 본문에 나와 있던 것처럼 문제와 사건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어지니까 시간가면 갈수록 문제와 사건들이 크게 보여지고 그 앞에 두려워서, 무서워서 인본주의 쓸 수 밖에 없는 사실들을 보게 되어집니다. 저는 요즘 이렇게 현장을 보면서 정말로 우리가 신앙을 바르게 지킨다는 것 그 자체가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운다는 것 그 자체가 영적싸움 중에 싸움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세상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도록 이끌어 가요.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그냥 젖어 살아요. 여러분 한사람도 그냥 우리 자신들이 정말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세우지 않으면 가만두면 창세기 3장으로 금방 돌아갑니다. 우리의 체질이 그래요.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 말씀 받고, 시간시간 다락방 참여하고 말씀운동에 참여해서 영적인 힘을 얻지 못하면 그냥 가만 두면 저절로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요. 그게 우리예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어요. 그래서 시간 시간 내가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운다는 그 자체가 이 마지막 시대에 영적싸움 중에 싸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도 신앙생활 뭐 그렇게 별스럽게 할 필요가 있느냐? 그냥 주일 교회 가서 예배 드리고 오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나중에 있는 것도 다 빼앗겨 버리고 다 잃어 버리고 완전히 힘을 잃게 됩니다. 저는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진짜 큰일났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어떤 목사님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주일날 오후예배 이제는 사람도 별로 안 오고 하는데 오후 예배 없애야 되겠다. 주일 1부예배 새벽기도 겸 드리고, 11시 2부 예배 드리고, 주일 오후예배는 각 가정에 돌아가서 알아서 예배드리도록...여러분 가정에 돌아가서 알아서 예배드린다는 것 쉽지 않잖아요. 우리가 명절 때도 그렇게 합니다마는 사실 그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교인들도 얼마 안 오고 하니까 주일 오후 예배도 없애고 성도들이 부담가지고 성도들이 꾸역꾸역 앉아 있는 그 자체가 부담이니까 예배 주일 날 한번이라도 제대로 드리고 그냥 오후에는 마음껏 생활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겠느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깜짝 놀랐어요. 사실은... 여러분 그것이 좋을 것 같지요? 결국은 그것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고,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영적인 문제를 알고, 현장의 영적인 문제를 제대로 알고,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알면 알수록 예배드리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가를 알게 되어 있어요. 주일 예배 성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교회에도 보면 주일 예배 때 그 절반이 오후예배에 와요. 그리고 오후예배 절반이 수요예배에 참여해요. 여러분 편한 게 편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로 이 마지막 시대에 영적싸움에서 우리 자신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힘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 시간이 언제이냐 예배 시간이예요.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예배의 축복을 안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1부 참여한 사람들이 2부 예배에도 참여하고요. 왜 그러느냐? 영적인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예배 시간시간 성령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결국은 20년 전의 예루살렘 초대교회 그러지 아니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붙잡아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끝날 까지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이 약속 붙잡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것. 정말로 다른 사람들 어떻다 할지라도 여러분 만큼이라도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고 세상을 능히 살리는 전도자로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짜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고 우리의 현장을 제대로 알면 예배시간, 영적인 힘을 얻는 것이 전부 다 잖아요. 우리가 그냥 한번 대충 주일날 마지못해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그게 아니잖아요. 진짜 하나님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힘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예배에 생을 걸게 되어 있어요. 이걸 모르니까 시간 갈수록 나도 모르게 세상 것이 내 안에 들어오고 그 세상의 기준이 들어오면 올수록 결국은 무서움과 두려움에 빠져서 나중에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세상에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그리스도” 이 언약 붙잡고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음의 가치를 아는 바울
두 번째입니다. 오늘 바울의 중심을 한번 본문을 통해 보면서 바울은 참된 복음의 가치를 아는 그 중심에는 오직복음 밖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바울은 하나님을 공경한다, 섬긴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만난 이후에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인생의 해답이 다 내려진 거예요. 성경에 구약성경, 다 보여 지는 눈이 열려졌어요. 우리 인생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사탄의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구나! 우리 인생에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 떠난 원죄문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구나! 내가 이 사실을 몰라가지고 예수그리스도 믿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아닌가! 바울은 사실 결론 내렸어요. 그래서 바울은 어느 정도로 여기에 대한 결단을 내렸느냐? 얼마만큼 이 복음이 바울의 중심에 각인이 되어 있었냐면,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있으리라 하며 절대적인 것으로 자울은 이 복음을 가졌어요. 고린도전서 9장 16절이죠.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도리어 화가 있으리로다. 반드시 복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살 길을 주셨는데 이 복음을 맡은 자로서 복음을 말하지 않으면 그게 화가 된다는 사실을 바울은 알았던 것입니다. 복음의 가치, 복음의 능력을 안 것이죠. 베드로도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무슨 말입니까? 복음의 절대적인 가치를 베드로는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원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복음 밖에 없어요. 하나님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복음 밖에 없어요. 우리가 지금 모르고 당하고 있는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사탄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길은 복음 밖에 없어요. 그래서 복음은 뭐냐?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기도 응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받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능력이에요. 우리를 저주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능력, 하나님 만나게 하는 구원 받는 능력, 우리도 모르게 우리 가운데 있는 우리 조상들 아담 하와가 물려준 고질적인 문제에서 빠져 나오는 복음, 복음 자체가 능력이에요. 이 사실을 바울이 알았기 때문에 이 복음의 역사들을 몰라가지고 유대인들이 지금 멸망 받고 있는 사실을 알았어요. 모든 것 다 가지고 있지만, 훌륭하고 똑똑하지만 한 가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 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서 지금 멸망 가운데에 있는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이구나! 이 사실을 바울이 제대로 본 것입니다. 말씀을 행한다고 하면서 왜 멸망 받는가? 그 이유를 바울은 제대로 안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증거 되는 일을 위해서는 내가 그 어떤 것이라도 손해 볼 수 있고 양보할 수 있다라는 것. 이게 바울이 가졌던 복음에 대한 중심이었어요. 이 복음만이 살 길인데 그렇다면, 이 복음이 증거 되는 이 일을 위해서는 내가 그 어떤 것도 손해볼 수 있고 양보할 수 있다라는 것.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사실 바울은 결례를 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 앞에 보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바울이 파송 받은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머리 숙여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중심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이 시시하게 여기는 생명운동, 이 생명운동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것도 내려놓을 수 있다라는 것. 모든 것 양보할 수 있다라는 것. 손해볼 수 있다라는 것. 그 마음 중심에서 오늘 바울이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니.. 했어요. 이게 바울의 중심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되어지는 바울의 중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요. 고린도전서 9장 19-22절을 봅시다. 바울이 결례를 행한 그 중심에는 이 사실을 가지고 바로 나갔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의 중심에는 오직그리스도, 로마복음화 이 한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 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다른 사람과 결례를 행함으로도 이 복음이 증거 된다면 이 생명이 증거 된다면 나는 그 어떤 자리에도 들어갈 수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중심은 ”오직그리스도“ 였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들을 그대로 가지고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그리스도 이 부분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왜 초대교회에 성령충만한 가운데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오늘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인본주의를 쓸 수밖에 없는 영적인 힘을 잃어버렸습니까? 오직복음, 오직그리스도를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중심에는 오직복음, 오직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얻고자 자기는 모든 것 할 수있다라고 고백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잡을 결론입니다. “오직그리스도” 그 속에 모든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 외에는 되는 것 같지만 끝에가서 실패합니다. 그것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그리스도에서 모든 것 다 나와야 됩니다. 다른 나머지는 끝에 가서 실패합니다. 그러나 오직그리스도 되어지면 빌립보서 1장 6절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지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십니다. 그게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너희가 주안에서 하는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고 했어요. 그래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 주안에 수고는 하나도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직그리스도 붙잡고 나가는 축복은 우리에게 당대에 주시는 축복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후대들에게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것을 붙잡으시고 남은 생애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오직그리스도 그 이름이 여러분 속에서 희석되지 않고 더욱 더 확신 가운데 승리하는 귀한 전도자의 축복된 삶이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10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행21:17-21)
서론: 우리의 중심에, 복음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그것이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24시간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응답은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빌4:6-7)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의 중심, 바울의 관심이 오직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교인들이 믿는다고 하지만 예전 것(유대인 사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초대교회의 시작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영적인 영향력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어려움과 환란에 대해 무서움과 두려움에 잡힌 것은 왜입니까? 여기에 답을 내고 새로운 응답이 시작되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1. 오늘 우리의 싸움
(1) 초대교회와 바울을 가장 어렵게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지금도 계속되는 부분).
1) 율법주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음(행10장: 고넬료 세례문제, 행15장: 예루살렘 총회문제)
2) 영지주의: 영적인 지식(앎을 통해 깨달으면)으로 구원받기에 육신적인 부분은 무시함(목사, 장로, 예배 필요없음)
(2) 오직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1) 원죄(창3장 인간의 근본문제)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임
2) 이 사실을 모르면 가정(창6장), 국가와 성공자(창11장)들도 계속해서 행위를 강조하다가 완전히 망하게 됨
(3) 오직 그리스도가 희미해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생활이 인생의 걸림돌이 됩니다.
1) 처음의 초대교회는 환란과 핍박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음(행5장 핍박받는 자리를 기뻐함, 행7장 스데반의 순교)
2) 20년이 지난 후의 모습은, 어떻게 하면 핍박을 피해갈 수 있을지 인간적인 대안을 내놓음(바울에게 결례를 요구)
(4) 마지막 시대에 영적싸움 중의 싸움 -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
1) 우리의 체질은 가만히 두면 저절로 창3장으로 돌아감 - 자신을 쳐서 복종하라!!
2) 그렇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아야 함(이 비밀이 예배)
2. 복음의 가치를 아는 바울
(1) 복음만이 참된 능력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길, 사탄 꺾을, 모든 죄 문제 해결할, 기도응답 받을)
1) 바울의 각인: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2) 베드로의 각인: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행4:12)
(2) 복음의 가치를 안다면, 생명운동 이외에 다른 모든 것들을 손해보고 양보할 수 있습니다.
1) 바울은 결례를 행할 필요도, 예루살렘교회에 보일 필요도 없었지만 로마복음화를 위해 행하였음
2) 생명운동의 참된 가치를 알고, 다른 모든 것은 손해보고 양보하는 중심을 가져라!! (고전9:19-22)
결론: 오직 그리스도를 놓치면 나약하고 초라한 모습 속에 인본주의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중심처럼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가 된다면 여러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그 속에 모든 것 나와야 합니다. 그 외에는 되는 것 같지만 끝에 가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입니다(빌1:6). 모든 것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게도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고전15:58). 남은 생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희석되지 아니하고, 더욱더 확신 가운데 증거되는 한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한주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중심이 오직 그리스도가 됨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영적싸움 가운데 항상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게 하옵소서. 복음만이 참된 능력임을 알고 복음의 참된 가치를 깨닫는 가운데, 다른 모든 것은 손해보더라도 양보하는 중심이 되길 원합니다. 한주간 큰 확신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행21:17-26)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행21:17~26
■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제목은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바울이 안 해도 되는 결례를 행한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오늘 저는 찬양대의 찬양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결례를 행한 중심이 오늘 찬양을 통해서, 바울의 마음 중심이 오늘 찬양을 통해서 고백되었습니다. 정말 복음 때문에 흐르는 눈물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것이 나입니다. 여러분, 24시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무엇을 생각하며 보내십니까? 그것이 결국은 내 삶입니다. 내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에 대한 생각을 늘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고, 돈 때문에 성공하든지 망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여자에 대해 계속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또 요즘 웰빙(well-being) 시대가 되어서 건강에 대해 늘 신경쓰지 않습니까? 늘 건강에 대해서, 24시간 건강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은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루 생활 속에서 어떤 것에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무엇을 향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중에 가장 큰 응답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응답입니다. 빌립보 4장 6절~7절에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단도 이것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단체가 나타나서 학문과 예술과 모든 예능 속에 무언가 사람들의 생각을 빼앗을 수 있도록, 마음을 빼앗을 수 있도록 무언가 자꾸 심어 나가는데 결국은 사람들이 미디어 같은 것을 통해서 보는 것으로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고 있고, 그래서 생각과 마음이 점점 황폐해지게 되어 있고, 결국은 흑암이 가득한 그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오늘 본문은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오늘 읽은 본문 21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로마로 가게 되는, 환난과 핍박을 당하게 되는 그런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 짧은 구절 속에 바울의 중심, 바울의 관심이 오직 무엇인가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고, 또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사상들을, 가지고 있는 신념들을 버리지 못한, 유대인들 가운데 개종한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인가, 그들 깊이 뿌리내려 있는 생각과 관심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본문이 오늘 본문입니다. 사실 이 바울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서 두 가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믿는 유대인들, 그러니까 유대인에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는 믿는데 유대인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서 오해하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해 대적하는 사람들로 자리잡고 있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는데 교회가 전혀 영적인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힘을 잃어버리고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빠져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사실 야고보인데, 야고보가 예루살렘에 올라온 바울을 바라보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어떤 제안을 했느냐? 당신이 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면 결국은 많은 대적하는 믿는 유대인들, 개종한 유대인들이,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마음의 불편함을 갖고 어렵게 볼 것인데 곤란한 일을 당신이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하자 하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그 제안이 무엇이냐 하면 그 자리를 피하자는 것, 그 자리를 피해가자는 그런 전략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우리 가운데 정결 의식인데 결례를 행하지 않은 네 사람이 있는데, 그 네 사람과 함께 네가 그 네 사람의 돈을 다 들여 가지고 너와 함께 그 네 사람이 같이 함께 결례를 행하라, 그리하면 유대인, 율법에 열심인 예수 믿는 유대인들이 너에 대해서 떠도는 소문,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것처럼 믿고 있는, 그 당시 바울에 대해 떠도는 소문이 어떤 소문이었느냐 하면 21절에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바울에 대해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 예수 믿는 개종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깊은 생각들, 버리지 못한 생각들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 율법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 율법폐기론자다, 그러면서 할례도 받을 필요가 없고 전통도 습관도 규모도 규례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 이것이 바울에 대해 떠도는 소문으로 적대감을 갖고 있는 믿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들이었습니다. 이런 소식들, 소문들이 사실이 아니구나 깨닫게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 네가 돈을 들여서 결례를 행하지 않은 네 사람과 함께 네가 결례를 행하게 되면 결국은 많은 돈을 들여서 율법을 지켰으니까 율법을 존중하는 자라는 그런 사실로 드러날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런 위기를 모면하자하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야고보가 제안을 한 것입니다. 그 제안 앞에 바울이 오늘 26절에 보면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본문에서 바울이 결례를 했던 그 중심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을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것이고, 또 믿는다고 하지만 옛날 것을 그대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개종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관심과 생각은 무엇인가, 그리고 초대교회는 그렇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그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한 20년 지난 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자신들도 모르게 어려움과 환난과 핍박 속에서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왜 이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가?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놓쳐 버린 부분들을 찾아낸다면 새로운 응답이 시작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이 부분들을 놓고 특별히 이번 한 주간 이 말씀에 대해 생각하시면서 바울의 관심과 중심이 무엇이었고, 또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이, 믿는 유대인들이 가진 관심과 생각은 무엇이며, 왜 초대교회의, 그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강하고 담대함으로 복음 전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왜 두려움 속에, 무서움 속에 빠지게 되었는가, 이 사실을 찾아냄으로 새로운 응답이 시작되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의 싸움
그렇다면 먼저 첫 번째입니다. 오늘 본문에 믿는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생각들, 이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바라보면서 특히 이 부분 속에서 바울이 그 속에서 어떻게 인도받았는가를 같이 한 번 생각해 보면서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데, 먼저 바울에게 있어서 항상, 바울의 전도사역에 있어서 바울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전도사역에 있어서 바울을 곤경에 빠뜨리고 곤란하게 만드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인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사역 속에 바울을 어렵게 만든 것이 있다면 믿는다고 하면서도 유대인의 사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율법주의자들, 그들 때문에 바울은 늘 항상 그 사람들에게 설교를 통해서 설명한 내용을 보게 됩니다. 참된 전도사역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들이,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사상을 버리지 않고 있는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오는 공격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성경에 보면 이미 사도행전 10장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이방인 고넬료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베드로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세례 받은 것을 통해서 이 유대인들이 무어라고 공격해 왔습니까? 아니, 할례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 당시 할례는 유대인이라는,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표로 할례를 받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사실 이방인은 구원이 필요없다는 것, 구원받을 수 없는 짐승과 같은 존재라고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례도 받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그것 때문에 결국은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내가 하나님께서 세례를 주라 하시는데, 성령이 임함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주라고 하시는데 내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느냐? 그렇게 함으로 결국은 그 사건 때문에 안디옥 교회가 그 속에서 새롭게 탄생되는 사실을 교회사를 통해서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5장에도 보면 예루살렘 총회가 무엇 때문에 모였습니까? 우리가 지금 사도행전에서 계속해서 살펴보는 가운데 지난 번 살펴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예루살렘 총회가 모였는데 그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니까 이방인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은 할례를 안 받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유대 사상을 가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느냐? 이방인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구원 받는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자기들이 해결할 수 없으니까 예루살렘 총회로 올려보냈는데 예루살렘 총회 안에도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그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결론내리기를 무어라고 했느냐 하면, 그렇지, 모세의 법대로 결국은 믿는 이방인들, 할례를 받아야 한다. 그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설교를 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우리 조상과 우리도 매지 못하는 멍에를 어떻게 그들에게 매이고자 하느냐, 그러면서 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결론 내린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 할례를 행했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고 도장 딱딱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더 이상 할례 문제로 괴롭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늘 사역 속에서 싸움이 있었다면, 믿는 유대인들 가운데 그 사상을 버리지 못한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늘 거기에 대해서 변론하다 보니까 시간을 다 보낸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말씀 지켜야 한다, 말씀 지켜야 구원 받는다, 그게 바로 율법주의자입니다. 행해야 한다는 것,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유대인들이 결국은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고,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결국은 끝에 가서 다 망하게 된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이 바울의 사역 속에 계속해서 바울을 어렵게, 곤경에 빠뜨린 부분이 있다면 하나는 율법주의였고 하나는 영지주의였습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고 바울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문제입니다. 영지주의, 이것을 그노시스주의(Gnosticism)라고도 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영적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 앎을 통해서 깨닫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신의 세계와 물질적 세계를 철저하게 구분짓는 극단적인 이원론자들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삶의 부분들, 육신적인 모든 부분을 그냥 내팽개치게 만드는, 어느 정도로 나갔느냐 하면 의인으로 거듭난 사람은 육신으로 짓는 죄는 죄가 아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유를 방탕하게 하고 방종하게 하는, 그게 바로 영지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속에 이것이 들어와서 결국은 목사도 장로도 필요 없다. 예배도 굳이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드릴 필요가 뭐 있느냐 이런 사상으로 흘러왔습니다. 이게 바로 영지주의 속에서 흘러온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있었고, 바울 당시에 바울을 가장 어렵게 만든 부분들이었고, 지금도 우리를 공격해 오고 있는 신학사상이고 그것이 우리의 흐름 속에 그대로 묻혀서 우리에게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대 시대마다 사탄의 엄청난 도구가 되어서 복음의 역사를 막는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왜 율법주의를 이야기 하고, 영지주의를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느냐? 정확한 복음을 이들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생이 해결하지 못하는 원죄문제에 대한 재앙의 문제, 창세기 3장의 문제이지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율법주의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 라는 것. 여러분 이것은 바로 창세기 3장의 문제, 인생의 원죄 문제가 근본 문제인 것을 알지 못함으로 나온 문제들입니다. 우리 모든 인생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창세기 3장 사건 속에 붙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은 결국은 창세기6장의 가정 속에 파고든 이 사탄의 전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이 창세기 3장이 가정 속에 파고드는데 그것이 창세기 6장의 노아시대 네피림 시대가 일어난 것이지요. 그로 말미암아 결국은 홍수 심판을 받게 된 겁니다. 이 창세기 3장이 결국은 국가 속에, 성공한 사람들 속에 파고들었는데 결국 이것이 창세기11장 사건이 되어 진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결국은 영적인 문제로 망할 수 밖에 없다라는 것. 여러분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창세기 3장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면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이 무엇을 몰랐느냐? 또 유대인 가운데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개종한 사람들이 무엇을 몰랐느냐?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왜 주장하느냐? 근본적인 원죄문제, 창세기 3장의 문제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행위를 말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다른 차원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은 지금도 교회들 속에 현장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죄문제, 창세기 3장의 문제를 몰라서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결국은 하나님을 떠난 문제 사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지요. 그 사탄, 흑암의 역사 속에서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는데 그 저주와 재앙, 지옥배경 가운데서 모든 문제가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근본 문제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창세기 3장 문제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놓쳐버린 한 가지가 있다면 이 창세기3장 문제가 무엇인지를 몰랐어요. 그러니까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라고 행함을 강조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키며 행한다 할지라도 저와 여러분은 구원 받을 수 없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우리와 상관없이 오게 된 우리 조상들이 지은 원죄문제, 창세기 3장 문제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함을 강조하면서 바르게 살아야 된다. 의롭게 살아야 된다. 우리가 완전하고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성경에 보면 야고보서에 모든 것들을 다지키더라도 한 가지를 범죄 하면 그 한가지 때문에 모든 것을 범한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철저하게 다 지킨다 할지라도 여러분 한가지 범죄하면 그 한 가지 때문에 다 범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어요. 인생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데 완전할 수가 없고, 의로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로 덮혀지지 않고서는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모르니까 행함을 강조하니까 결국 예수 믿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은 열심히 지킨다고 지키면서 행함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망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이 놓쳐버린 것이 있다면 한가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여야 되는 그 이유들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우리가 많은 경우 정말로 오직 그리스도입니까? 그 사실, 그 이유를 깨닫는 순간에 참된 응답이 시작될 줄로 믿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 보면 오직 그리스도 성령충만 함 되었을 때는 초대교회에 환란이 오고 핍박이 와도 괜찮았어요. 이미 우리가 잘 아시듯이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언약 붙잡고 기도 속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사도행전 2장에 바람 같은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임함으로 성령충만한 가운데 초대교회 들어갔어요. 그리고 새로운 응답이 시작되었는데 그 응답과 함께 초대교회 성도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응답과 함께 악한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은 복음을 막는 핍박과 어려움 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했던 초대교회.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눈 하나 까닭하지 않았어요.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 어려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기도는 달랐어요. 그들이 어떤 기도를 했느냐 하나님이 이 사실을 보시고 이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복음을 담대하게 우리의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기도가 달랐어요. 어려움을 없애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어요. 그 어려움과 핍박과 환란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부족한 입술에 입을 열어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그 기도를 했다는 것. 핍박과 환란을 당하는 그 자세가 달랐어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사도행전 5장에도 보면 이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때문에 어쩌다가 핍박받는 자리에 내가 서 있는가! 그것 때문에 기뻐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을 위해서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 했어요. 여러분 핍박도 어려움도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는가 그것을 기뻐했던 사람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어요.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
여러분 다른 좋은 말 하면서 그 자리를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환란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르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돌에 맞아 죽는 순교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줄 몰랐겠습니까?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성령 충만한 주의 종들 핍박과 어려움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교회 지도자 야고보를 위시해서 사실은 이들이 제안한 대안을 보면 그것을 피해 가자는 것. 비록 한 20년 지난 시간들이었지만 시간이 흘러오면서 자기들도 모르게 오직 그리스도에서 성령충만함 속에서 점점 멀어졌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인 계산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오늘 여기에 바울에게 대안을 제시했는데 그 대안은 신앙에 대한 부분들이 아니라 인간적인 인본주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핍박과 어려움을 피할 것인가 그래서 대안을 제시했는데 우리 가운데 네 사람이 결례를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들과 함께 네가 그들의 돈도 네가 내어서 결례 행하면 이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 이사람 듣는 소문하고 다르게 정말 율법에 열심 있는 사람이네 그렇게 여길 것 아닌가? 인간적인 생각들이었지요.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안 되면 시간 가면 갈수록 우리도 모르게 신앙생활 한다는 그 자체가 걸림돌이 되어지게 되어 있어요. 인본주의 쓸 수밖에 없어요. 왜냐? 하나님 바라보지 않으니까 오직 그리스도 안 되니까 내 인본주의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세상 앞에 무섭고 두려움으로 서게 되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 놓쳐 버리고 결국 부끄럽게 살아가게 된 인생이 되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공격해 옵니다. 뭐 그렇게 별스럽게 믿을 필요가 있느냐? 대충대충 믿으면 되지 않느냐? 편협되게 뭐 그렇게 외골수로 믿을 라고 하느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 자꾸 세상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오직 그리스도 안 되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 앞에 서면 설수로, 문제 앞에 서면 설수록 어떤 상태에 빠지는 줄 아십니까? 오늘 본문에 나와 있던 것처럼 문제와 사건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어지니까 시간가면 갈수록 문제와 사건들이 크게 보여지고 그 앞에 두려워서, 무서워서 인본주의 쓸 수 밖에 없는 사실들을 보게 되어집니다. 저는 요즘 이렇게 현장을 보면서 정말로 우리가 신앙을 바르게 지킨다는 것 그 자체가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운다는 것 그 자체가 영적싸움 중에 싸움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세상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못하도록 이끌어 가요.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그냥 젖어 살아요. 여러분 한사람도 그냥 우리 자신들이 정말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세우지 않으면 가만두면 창세기 3장으로 금방 돌아갑니다. 우리의 체질이 그래요.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 말씀 받고, 시간시간 다락방 참여하고 말씀운동에 참여해서 영적인 힘을 얻지 못하면 그냥 가만 두면 저절로 창세기 3장으로 돌아가요. 그게 우리예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어요. 그래서 시간 시간 내가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운다는 그 자체가 이 마지막 시대에 영적싸움 중에 싸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도 신앙생활 뭐 그렇게 별스럽게 할 필요가 있느냐? 그냥 주일 교회 가서 예배 드리고 오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나중에 있는 것도 다 빼앗겨 버리고 다 잃어 버리고 완전히 힘을 잃게 됩니다. 저는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진짜 큰일났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어떤 목사님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주일날 오후예배 이제는 사람도 별로 안 오고 하는데 오후 예배 없애야 되겠다. 주일 1부예배 새벽기도 겸 드리고, 11시 2부 예배 드리고, 주일 오후예배는 각 가정에 돌아가서 알아서 예배드리도록...여러분 가정에 돌아가서 알아서 예배드린다는 것 쉽지 않잖아요. 우리가 명절 때도 그렇게 합니다마는 사실 그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교인들도 얼마 안 오고 하니까 주일 오후 예배도 없애고 성도들이 부담가지고 성도들이 꾸역꾸역 앉아 있는 그 자체가 부담이니까 예배 주일 날 한번이라도 제대로 드리고 그냥 오후에는 마음껏 생활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겠느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제가 깜짝 놀랐어요. 사실은... 여러분 그것이 좋을 것 같지요? 결국은 그것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고,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영적인 문제를 알고, 현장의 영적인 문제를 제대로 알고,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알면 알수록 예배드리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가를 알게 되어 있어요. 주일 예배 성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교회에도 보면 주일 예배 때 그 절반이 오후예배에 와요. 그리고 오후예배 절반이 수요예배에 참여해요. 여러분 편한 게 편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로 이 마지막 시대에 영적싸움에서 우리 자신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힘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 시간이 언제이냐 예배 시간이예요.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예배의 축복을 안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1부 참여한 사람들이 2부 예배에도 참여하고요. 왜 그러느냐? 영적인 축복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예배 시간시간 성령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저는 이 본문을 보면서 결국은 20년 전의 예루살렘 초대교회 그러지 아니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붙잡아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끝날 까지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이 약속 붙잡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것. 정말로 다른 사람들 어떻다 할지라도 여러분 만큼이라도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 그 언약 붙잡고 세상을 능히 살리는 전도자로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짜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고 우리의 현장을 제대로 알면 예배시간, 영적인 힘을 얻는 것이 전부 다 잖아요. 우리가 그냥 한번 대충 주일날 마지못해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그게 아니잖아요. 진짜 하나님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힘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예배에 생을 걸게 되어 있어요. 이걸 모르니까 시간 갈수록 나도 모르게 세상 것이 내 안에 들어오고 그 세상의 기준이 들어오면 올수록 결국은 무서움과 두려움에 빠져서 나중에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세상에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그리스도” 이 언약 붙잡고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음의 가치를 아는 바울
두 번째입니다. 오늘 바울의 중심을 한번 본문을 통해 보면서 바울은 참된 복음의 가치를 아는 그 중심에는 오직복음 밖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바울은 하나님을 공경한다, 섬긴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만난 이후에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인생의 해답이 다 내려진 거예요. 성경에 구약성경, 다 보여 지는 눈이 열려졌어요. 우리 인생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사탄의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구나! 우리 인생에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 떠난 원죄문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구나! 내가 이 사실을 몰라가지고 예수그리스도 믿는 사람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아닌가! 바울은 사실 결론 내렸어요. 그래서 바울은 어느 정도로 여기에 대한 결단을 내렸느냐? 얼마만큼 이 복음이 바울의 중심에 각인이 되어 있었냐면,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있으리라 하며 절대적인 것으로 자울은 이 복음을 가졌어요. 고린도전서 9장 16절이죠.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도리어 화가 있으리로다. 반드시 복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살 길을 주셨는데 이 복음을 맡은 자로서 복음을 말하지 않으면 그게 화가 된다는 사실을 바울은 알았던 것입니다. 복음의 가치, 복음의 능력을 안 것이죠. 베드로도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무슨 말입니까? 복음의 절대적인 가치를 베드로는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원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복음 밖에 없어요. 하나님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복음 밖에 없어요. 우리가 지금 모르고 당하고 있는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사탄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길은 복음 밖에 없어요. 그래서 복음은 뭐냐?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기도 응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받는 유일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능력이에요. 우리를 저주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능력, 하나님 만나게 하는 구원 받는 능력, 우리도 모르게 우리 가운데 있는 우리 조상들 아담 하와가 물려준 고질적인 문제에서 빠져 나오는 복음, 복음 자체가 능력이에요. 이 사실을 바울이 알았기 때문에 이 복음의 역사들을 몰라가지고 유대인들이 지금 멸망 받고 있는 사실을 알았어요. 모든 것 다 가지고 있지만, 훌륭하고 똑똑하지만 한 가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 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해서 지금 멸망 가운데에 있는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이구나! 이 사실을 바울이 제대로 본 것입니다. 말씀을 행한다고 하면서 왜 멸망 받는가? 그 이유를 바울은 제대로 안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이 증거 되는 일을 위해서는 내가 그 어떤 것이라도 손해 볼 수 있고 양보할 수 있다라는 것. 이게 바울이 가졌던 복음에 대한 중심이었어요. 이 복음만이 살 길인데 그렇다면, 이 복음이 증거 되는 이 일을 위해서는 내가 그 어떤 것도 손해볼 수 있고 양보할 수 있다라는 것.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사실 바울은 결례를 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 앞에 보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바울이 파송 받은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머리 숙여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말을 따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중심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유대인들이 시시하게 여기는 생명운동, 이 생명운동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것도 내려놓을 수 있다라는 것. 모든 것 양보할 수 있다라는 것. 손해볼 수 있다라는 것. 그 마음 중심에서 오늘 바울이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니.. 했어요. 이게 바울의 중심입니다. 오늘 본문과 연결되어지는 바울의 중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요. 고린도전서 9장 19-22절을 봅시다. 바울이 결례를 행한 그 중심에는 이 사실을 가지고 바로 나갔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의 중심에는 오직그리스도, 로마복음화 이 한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 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다른 사람과 결례를 행함으로도 이 복음이 증거 된다면 이 생명이 증거 된다면 나는 그 어떤 자리에도 들어갈 수 있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중심은 ”오직그리스도“ 였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믿는다고 하면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들을 그대로 가지고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그리스도 이 부분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왜 초대교회에 성령충만한 가운데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오늘 이렇게 나약한 모습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무서움과 두려움 속에 인본주의를 쓸 수밖에 없는 영적인 힘을 잃어버렸습니까? 오직복음, 오직그리스도를 놓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중심에는 오직복음, 오직그리스도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얻고자 자기는 모든 것 할 수있다라고 고백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붙잡을 결론입니다. “오직그리스도” 그 속에 모든 것이 나와야 합니다. 그 외에는 되는 것 같지만 끝에가서 실패합니다. 그것을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그리스도에서 모든 것 다 나와야 됩니다. 다른 나머지는 끝에 가서 실패합니다. 그러나 오직그리스도 되어지면 빌립보서 1장 6절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지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십니다. 그게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너희가 주안에서 하는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고 했어요. 그래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 주안에 수고는 하나도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직그리스도 붙잡고 나가는 축복은 우리에게 당대에 주시는 축복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 후대들에게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것을 붙잡으시고 남은 생애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오직그리스도 그 이름이 여러분 속에서 희석되지 않고 더욱 더 확신 가운데 승리하는 귀한 전도자의 축복된 삶이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10월 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행21:17-21)
서론: 우리의 중심에, 복음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그것이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24시간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응답은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빌4:6-7)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의 중심, 바울의 관심이 오직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교인들이 믿는다고 하지만 예전 것(유대인 사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초대교회의 시작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영적인 영향력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어려움과 환란에 대해 무서움과 두려움에 잡힌 것은 왜입니까? 여기에 답을 내고 새로운 응답이 시작되는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1. 오늘 우리의 싸움
(1) 초대교회와 바울을 가장 어렵게 만든 것이 있었습니다(지금도 계속되는 부분).
1) 율법주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음(행10장: 고넬료 세례문제, 행15장: 예루살렘 총회문제)
2) 영지주의: 영적인 지식(앎을 통해 깨달으면)으로 구원받기에 육신적인 부분은 무시함(목사, 장로, 예배 필요없음)
(2) 오직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1) 원죄(창3장 인간의 근본문제)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해결하실 수 있기 때문임
2) 이 사실을 모르면 가정(창6장), 국가와 성공자(창11장)들도 계속해서 행위를 강조하다가 완전히 망하게 됨
(3) 오직 그리스도가 희미해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생활이 인생의 걸림돌이 됩니다.
1) 처음의 초대교회는 환란과 핍박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음(행5장 핍박받는 자리를 기뻐함, 행7장 스데반의 순교)
2) 20년이 지난 후의 모습은, 어떻게 하면 핍박을 피해갈 수 있을지 인간적인 대안을 내놓음(바울에게 결례를 요구)
(4) 마지막 시대에 영적싸움 중의 싸움 -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
1) 우리의 체질은 가만히 두면 저절로 창3장으로 돌아감 - 자신을 쳐서 복종하라!!
2) 그렇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아야 함(이 비밀이 예배)
2. 복음의 가치를 아는 바울
(1) 복음만이 참된 능력입니다. (하나님 만나는 유일한 길, 사탄 꺾을, 모든 죄 문제 해결할, 기도응답 받을)
1) 바울의 각인: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16)
2) 베드로의 각인: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행4:12)
(2) 복음의 가치를 안다면, 생명운동 이외에 다른 모든 것들을 손해보고 양보할 수 있습니다.
1) 바울은 결례를 행할 필요도, 예루살렘교회에 보일 필요도 없었지만 로마복음화를 위해 행하였음
2) 생명운동의 참된 가치를 알고, 다른 모든 것은 손해보고 양보하는 중심을 가져라!! (고전9:19-22)
결론: 오직 그리스도를 놓치면 나약하고 초라한 모습 속에 인본주의를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중심처럼 오직 복음, 오직 그리스도가 된다면 여러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그 속에 모든 것 나와야 합니다. 그 외에는 되는 것 같지만 끝에 가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입니다(빌1:6). 모든 것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게도 축복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고전15:58). 남은 생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희석되지 아니하고, 더욱더 확신 가운데 증거되는 한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한주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의 관심과 중심이 오직 그리스도가 됨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영적싸움 가운데 항상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게 하옵소서. 복음만이 참된 능력임을 알고 복음의 참된 가치를 깨닫는 가운데, 다른 모든 것은 손해보더라도 양보하는 중심이 되길 원합니다. 한주간 큰 확신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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