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
2014-11-0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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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
(행26:1~12)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행26:1~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를 주셨는데 오직 예수입니다. 오늘 이 한날 오직 예수로 우리의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뿌리에 각인된 체질들이 뒤바뀌는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든다면, 물론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람들의 의식, 사고에 대한 부분을 든다면 선진국일수록 원칙과 신뢰를 중요시합니다. 신뢰라는 것은 신용, 약속을 중요시한다는 말입니다. 후진국일수록 원칙이 무시되고 또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어느 곳에서나 거짓말이 통하게 되는 사회가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한 번은 우리 교회 선교위원장 장로님과 함께 어느 나라를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가 보니 중앙선은 있습니다. 그런데 차가 중앙선을 무시하고 이쪽에서 가는 차도 그렇고 저쪽에서 오는 차도 그렇고 자기 원하는 대로 마구 달립니다. 아, 이것 참 위험하겠구나. 잘못하다가 선교지에 와서 혹시 사고당해서 죽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 아니, 막무가내로 그냥 먼저 차머리를 들이밀면 되는 것이고, 중앙선이 따로 필요없습니다. 반대에서 차들이 오면 여기서 피해줘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다 보니 큰 버스 하나가, 그런 건 처음 봤는데, 앞발통이 빠져서 버스가 처박혀 있었습니다. 아마 차가 달리다 앞발통이 빠져서 처박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로막고 있으니 얼마 동안 차가 지체되고 너무나 불편한지 그런 부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한 나라에도 가 보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은 많이 가진 나라이고 갑작스런 경제적 성장을 한 나라인데 사람들이 길거리 가다가 그냥 아무데나, 죄송합니다, 소변 보고, 그냥 횡단보도 없이 아무데나 막 다닙니다. 아, 이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아닌가. 선진국일수록 원칙, 신뢰, 신용이 철저합니다. 원칙과 신뢰, 원칙을 무시하면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일어나는 사고들을 한 번 보십시오. 세월호나 환풍구에 빠져 사망한 것이나 이런 모든 것들은 이미 오래된 것인데 원칙을 무시해서 일어난 사고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 생활 속에서도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 원칙이 무엇이냐?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에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신앙 생활의 원칙은 말씀 따라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속 따라 가야 합니다. 늦다 할지라도 말씀 따라 인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약속 따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되어지는 것도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공한 것도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고 풍랑이 일어나면 우리의 집이 모래 위에 지은 집인가 반석 위에 지은 집인가 표시가 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풍랑이 일고 바람이 몰아치는 만큼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결국은 무너지게 되고, 아무리 풍랑이 일어도 아무리 바람이 분다 할지라도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든든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서 있느냐?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 약속의 말씀 속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걸음 속에 하나님 주신 응답과 축복을 누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바울이 변론을 하는데 바울의 신앙의 근거가 무엇이냐?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것을 붙잡고 있다는 것. 우리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사실을 나는 붙잡고 있고 그 사실이 열두 지파가 간절하게 소망하는 부분들, 열두 지파가 간절히 기대하는 그 부분을 나도 붙잡고 있다는 것. 그렇습니다. 우리는 약속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젊은 남녀가 연애를 하지 않습니까? 연애를 하다가 아, 이 사람 믿을 만하다, 이 사람 내 인생을 맡길 만하다, 그러면 약속을 하지 않습니까? 그 약속을 가지고 무엇이라 합니까? 결혼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우리 성례주일, 세례식이 있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약속입니다. 어떤 약속이냐?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약속이 세례입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상사와의 약속이 있고 직장에의 약속이 있는 것이고, 또 친구 간에도 약속이 있지 않습니까? 그 약속들을 잘 지키는 사람을 가지고 의리 있는 놈이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모든 것에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원칙이 있는데 약속에 근거한 신앙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지금 자기가 심문을 받는다고 하는 그 근거, 또 열두 지파들이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그 소망이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열두 지파가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부분들, 기대하고 있는 바이고 바울이 동일하게 그 믿음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섰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야, 이미 성경에 예언되었습니다. 바로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오게 될 것을 말씀하고 유다 지파 가운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장소까지도 예언되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에 보면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장소까지도 우리 인류의 모든 문제 해결할 메시야, 베들레헴에서 오게 될 것이다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오셨는데 오셔서 고난 당하시고 채찍 당하실 것을 이미 예언했습니다. 시편 22편에 보면 뼈들을 센다 했습니다. 겉옷을 나누어 가지고 속옷을 빼앗아 간다 했습니다. 여러분, 뼈들을 센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야기합니다.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빼앗아간다, 이사야 53장에도 보면 징계를 받으며 채찍을 맞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채찍을 맞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고난 당하시고 채찍 맞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믿은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바울도 알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압니다. 이것까지는 다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유대인들이 주인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에 보면 결국 바울 자신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느냐? 왜 그걸 못 믿느냐? 그러면서 한 말이 나도 사실은 지난날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내가 믿는 도에 대해서 열심히 했고 철저히 했다, 그리고 열두 지파들이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그 소망을 나도 또한 누구보다도 열심히 소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사실 예수 그리스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아서 예수 믿는 초대교회, 마가다락방 교회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들을 핍박하였고 심지어 제사장의 도장을 맡아 가지고 가서 사람들을 돌로 쳐서 죽이는 일에 함께 찬성표를 던졌고 또 다른 성까지 쫓아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왔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예수를 믿지 않느냐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안 믿습니다. 그냥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믿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안 믿고 있습니다. 사실 세계복음화는 언제 이루어지느냐?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회복의 역사, 예루살렘이 회복되게 될 때 그 때 세계복음화가 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하나, 둘,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통곡의 벽에 랍비들이 신명기 6장 4절~9절 그 말씀을 꽂아 놓고 그 말씀을 외우면서 울면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약속하셨는데 약속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분명히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하신 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구약에 예언된 부분들은 유대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된 분이 오셨는데 그것을 안 믿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약속을 안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에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나름대로 신앙 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내 나름대로 말씀, 약속 위에 서지 않고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은 신앙 생활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메시야관에 대한 부분인데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정치적인, 로마에서 자기 민족을 해방시킬 힘 있는 왕과 같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왕이 오시면, 그 왕과 같은 힘 있는 자가 오시면 이방 나라들을 완전히 멸망시킬 것이고 보복할 것이고 그 로마 속국 가운데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다, 그래서 다윗과 같은 힘 있는 메시야가 올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는 메시야가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이 가장 존경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 나라가 광개토왕 때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던 것처럼 다윗왕 시대에 그 당시에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다윗왕은 가장 존경스러운 왕이었습니다. 외부로부터 침략 당할 때마다 유대인들은 다윗왕을 사모했습니다. 언젠가 다윗왕같이 힘 있는 왕이 와서 우리를 속박 가운데서 견져내실 것이고 모든 이방 나라들을 멸하실 것이다. 여러분, 성경에 말씀하신 부분들이 아닙니다.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것
전혀 약속하신 부분들을 붙잡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신앙 생활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은 무엇이냐? 자기 민족만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과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나라들을 살리기 위해서 한 나라를 택해야 하기 때문에 그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가지고 착각했습니다. 뭐냐? 자기들만, 자기 민족만 선택받은 백성이다, 그래서 이방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느냐? 이방 나라는 구원이 필요 없고 이방 나라들은 개, 돼지, 짐승 같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기도 가운데 내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나는 감사하노라, 유대인들의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만이라는 선민사상, 민족주의에 빠져서.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 그래서 그 율법을 행한 것을 자랑하고, 이게 유대인들 아닙니까? 결국은 여기서 전도, 선교,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방향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지 못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대교에서 사실은 세상을 멸망시키는 모든 종교들이 나왔습니다, 유대교에서. 지금 세상에 가장 위험을 주는 종교 중의 하나가 있다면 모슬렘입니다. 여러분, 이 모슬렘이 네덜란드를 완전히 장악했고, 네덜란드가 원래 화란 신학이라 해서 신학이 가장 발전한 곳이 네덜란드였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신학자들 가운데 네덜란드의 화란 신학교를 나온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런데 아예 나라 자체가 모슬렘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영국도, 유럽도 모슬렘들이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우리나라도 2020년에 모슬렘이 140만이 차지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펴는 전략이 무엇입니까? 한국 여자들과 결혼해서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지금 아이를 많이 낳지 않잖아요. 살기 힘들고 그러니까 아이도 안 놓고 결혼도 안 하고 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이들은 무조건 종족을 퍼뜨립니다. 앞으로 정말로 우리 후대들이 없어지는 반면에 모슬렘이 완전히 장악하는 시대가 옵니다. 그 모슬렘이 어디서 나왔느냐? 사실 유대교에서 나왔습니다. 영국, 유럽 쪽에 보면 아이를 워낙 아예 안 놓으니까 국가, 정부에서 책임진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를 안 놓고 결혼도 안 하고요. 그런데 그 틈을 이용해서 모슬렘들이 아이를 낳기 시작해서 유럽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여러분 결혼하는 것도 싫어하고 가치관도 달라져서 아이를 낳으면 몸이 망가진다고 아이를 안 놓잖아요. 그런데 그 틈을 이용해서 모슬렘들은 완전히 아이를 많이 낳도록 해서 완전히 장악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미국조차도 예배당이 모슬렘에 넘어가고 있는 상황들입니다. 그 모슬렘이 어디서 왔느냐? 유대교가 모슬렘의 모체입니다. 결국 전도, 선교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유대인들이 놓쳐 버리니까 세상을 멸망 시키는 종교가 거기서 나온 것이에요. 여호와의 증인도 유대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고, 안식교도 유대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고, 지금 저와 여러분이 3단체, 3단체 기도 합니다만 프리메이슨이나 뉴에이지 운동이 전부 다 유대인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주교도 마찬가지로 율법주의입니다. 마리안리즘으로 철저하게 유대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어렵게 만들고 멸망시키는 세상에 영적인 혼란과 문제를 가져오는 악한 종교들이 어디서 나오느냐? 유대교에서 다 나왔다는 것 입니다. 한 가지, 약속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자기 기준,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결국은 세상이 어려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내 기준을 버려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 따라 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찬송 불렀습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 하시니' 주님과 맺은 약속은 영원히 불변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주님 나라 가는 그 날 까지.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약속에 근거해서 약속을 붙잡고 나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경우에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뭔가 모르게 말씀 기준이 아닙니다. 자기의 어떤 기준과 어떤 의와 자기 계획과 자기 생각들 가지고 자기 합리화를 가지고 신앙생활 합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해보니까 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마음은 이 예수를 놓아줘야 하겠다, 왜냐면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총독으로써 그 당시에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우리나라 광복절 이럴 때 보면 대통령이 특별사면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그 당시에 유월절이 되면 총독 마음대로 죄수를 놓아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가깝고 예수를 놓아줘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마침 빌라도 총독 현지에 있는 아내가 빌라도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일에 당신이 간섭하지 말라. 왜냐면 내가 어제 밤에 꿈을 꿨는데 너무 꿈 자리가 혼란스럽고 뒤숭숭하고 그러니까 당신이 예수님의 그 일에 간섭하지 말라' 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유대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묻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바나바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주랴?' 사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가지고, 그 당시에 최고 강도로 유대인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나바는 강도입니다. 그 강도와 함께 예수님을 세웠습니다. 바나바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주랴? 그 때 유대인들이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했습니다. 우리에게 바나바를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어쩔 수 없이 민란이 일어날 까 걱정해가지고 결국 예수를 넘겨주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이 일에 대해서 무죄하다.' 면서 대야에 물을 떠 와서 손을 씻었습니다. 나는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와 너희 후대들이 당하라’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좋습니다. 이 핏값을 우리와 우리 후대들이 당하겠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2,000년 동안에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세계 전체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전 세계에 흩어져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한 것을 교회 역사 속에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나는 무죄하다 손 씻었습니다. 그런데 무죄한다고 무죄합니까? 빌라도가 책임이 없습니까? 전혀 관계 없습니까? 아닙니다. 빌라도는 자기 자신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나는 무죄하다고 손을 씻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신앙고백 하잖아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사. 사도신경 고백하면서 늘 항상 그 고백을 합니다. 저는 그 고백을 할 때 마다 빌라도가 지옥에서 얼마나 귀가 따갑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만 전혀 관계 없는 것이 관계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말미암아 나는 무죄하다 손 씻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이 나름대로 자기 합리화 시키고, 이렇게 하면 주님이 알아주겠지, 이렇게 하면 주님이 용서하겠지. 약속 전혀 없이 그래서 문제와 사건 당하면 흔들리고, 실패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영원히 변함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길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이 있어도 약속 붙잡게 될 때에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을 쭉 설명해 놓았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어떻게 승리했습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노아는’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약속을 붙잡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히브리서 11장 38절에 보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환경속에 있든지 여러분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을 자기 기준으로 합리화 하지 마시고, 영원히 주님 앞에 가는 날 까지 변하지 않는, 영 불변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 속에서 참된 승리할 수 있는 응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다른 길이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이 내 신앙의 기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2. 약속?
그러면 두 번째로 이 약속의 말씀의 가장 핵심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소원했던 부분들, 약속이었는데, 그 약속의 가장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지금 심문을 받는 것, 또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라고 오늘 본문에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 12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 늘 바라고 살았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약속인데, 그 약속의 주인공은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약속의 책이다, 언약의 책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언약, 언약 하면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말입니다. 새 언약. 옛 언약인 구약은 어떤 약속입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신약은 그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가 이 한 가지,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창조 사건은 물론 중요하지만 창조 사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430년 노예살이 속에서 빠져나온 것이 중요하지만 그걸 설명하기 위한 역사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 가지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가 찬양을 불렀던 것 처럼 '오직 예수' 그 한 가지 설명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 역사를 하나님께서 동원 하시기도 합니다. 그걸 위해서 모든 사건을 움직이시기도 합니다.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 그 설명을 하기 위해서. 그러면 오늘 짧은 시간이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한 가지, 이 한 가지가 여러분 영혼 속에 각인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여러분 속에 잘못 각인되었던 것, 뿌리내려졌던 것들이 치유되어짐으로 새로운 재창조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창조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이죠. 우리 인간은 육신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가진 존재고, 하나님의 영혼이 있는 영적 존재로 우리 인간이 창조된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조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속았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어디에 빠졌습니까? 원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이를 가지고 영적인 문제, 근본 문제라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죄는 우리가 살면서 죄를 많이 짓는데, 그런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창세기 3장 하나님 떠난 죄는 윤리적인 죄, 그런 부분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하나님 떠난 원죄를 말하는데, 로마서 3장 23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 할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님의 형상 가진 존재가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께 예배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최고의 첫 번째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속아서 멸망 가운데 빠지고, 또한 우리 가정이 파괴 되어지고, 우리 자녀들도 파괴되어지고 무너지고 쓰러지는, 멸망 받는 그 문제를 해결 할, 사단의 존재를 꺾을 여자의 후손, 그 여자의 후손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15절 이를 보고 원시 복음이라고 하고 원 복음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멸망의 문제, 원죄의 문제, 실패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여자의 후손.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미 하나님이 이 약속을 로마서 16장 25절에 보면 영세 전부터 예비하셨습니다. 로마서 16장 25절에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 부터 감추어 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다'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그 이름을 예비 하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거에요.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또 약속을 잊어버리고 네피림 시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또 약속을 주셨는데, 매나 한 가지입니다. 두 가지 길이 아닙니다. 한 가지, '방주를 만들라' 였습니다. 노아는 이 방주 언약 한 가지 사실을 붙잡고, 한 가지 방주에 올인했습니다. 오직 했습니다. 오직의 방향이 방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동안에? 120년 동안에.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핍박했겠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산다, 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약속을 붙잡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 보면 노아가 배를 열심히 만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는 산다는 이 약속을 붙잡고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방주는 누구를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 자는 다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는 다 살게 되어집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놓쳐 버렸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 노예 살이를 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8절 희생제사의 비밀. 피 언약이죠. 이 피 언약을 붙잡았는데, 거기에 바로 왕이 무릎 꿇었습니다. 다른 그 어떤 것으로 안 되었는데 피 언약 한 가지를 붙잡았는데 거기에 바로왕이 무릎 꿇었어요. 피 언약을 붙잡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노예 살이 속에서 빠져 나왔어요. 여러분 우리의 가정과 가문에 흘러 내리는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고질적인 영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피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 피 언약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피의 언약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양의 피를 흘려서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서 피를 뿌렸습니다. 대속의 의미죠. 그리고 이삭 대신에 수양을 드린 것도, 마찬가지로 대속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되고, 우리가 마땅히 멸망 받아야 되는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원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끝냈습니다. 저주와 재앙의 모든 문제를 끝냈습니다. 그래서 ‘피’는 바로 생명을 말합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피는 그냥 피가 아니라 생명을 의미하는데 생명을 바로 피에 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이 피의 언약이 누구를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백성들이 이 피 언약을 붙잡고 애굽에서 빠져 나왔는데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또 언약이 희미해지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습니까? 언약궤를 만들어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뭐냐? 상자입니다. 그냥 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상자에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언약궤’라고 이야기 합니다. 애굽에서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시작에서 하나님이 언약궤를 주셨는데 그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들어있죠.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적힌 두 돌비가 들어 있습니다. 만나는 요한복음 6장에 말씀합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뭡니까? 죽은 지팡이에서 싹이 났어요. 무엇을 말합니까? 부활의 생명, 부활의 승리를 말씀하는 겁니다. 아무리 죽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날 부활의 생명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두 돌비는 무엇을 말합니까?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은 바로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부활의 승리하신 그리스도, 진리이신 그리스도, 왕 제사장 선지자, 그리스도의 비밀들이 담겨 있는 언약궤, 이 언약궤를 앞세워 가는 걸음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요단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나가게 될 때 저와 여러분, 걸음 속에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기준이 되면 안되요. 빨리 기준을 바꾸세요. 뭐가 기준이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약속, 말씀, 그리스도가 기준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해요.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문제를 당하고 일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반드시 일을 시작할 때 이게 하나님의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찾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지금 하나님의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 말씀과 연결되어지는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말씀과 상관없이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나중에 결국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짓을 왜 할 겁니까?
여러분. 열심히 해놓고 무너지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요. 그래서 말씀이 없으니까 문제 당하면 말씀을 놓쳐 버리고 문제 당하면 말씀 붙잡아야 되는데 말씀을 놓쳐 버려요. 문제 당하면 말씀이 생각나야 되는데 말씀이 생각 안나요. 그러니까 자기 기준과 자기 생각과 자기 계획 가지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래서 망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마지막 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약속이 우리의 기준이 되도록,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도록. 그 약속과 말씀의 핵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준이 되어 지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가는 걸음 속에 모든 요단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졌어요. 오늘도 주의 약속을 붙잡고 나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이러한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노예로 갔는데 그 자리가 복이 있는 자리였어요. 왜냐? 노예로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했기 때문에 그 자리가 노예라는 자리이지만 복이 있는 자리였어요.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삶의 기준을 말씀의 기준으로, 약속을 근거해서 약속의 기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또 광야 길로 가는 동안에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무엇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가나안땅을 향하기 위해서 애굽에서 빠져 나왔을 때 첫 번째 먹고 마실 것을 주셨는데 그게 광야 길을 가는 동안 계속 되어졌는데 만나와 메추라기죠.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지키시는 그 약속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었습니다. 만나를 처음 받아먹고 얼마나 기뻤습니까? 그래서 꿀 섞은 과자 같았다고 했습니다. 밤에 자면 각 지파들이 친 천막에 소복이 메추라기가 내려앉았어요. 그걸 먹었고 아침에 이슬 같은 것이 내렸는데 보니까 만나예요. 그걸 일용할 양식으로 날마다 먹었어요. 그런데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어느 정도 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일에 식상했느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도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새롭게 누리지 못하면 우리도 동일하게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원망을 했느냐? 이제 메추라기가 이빨 새에 끼니까 이게 싫다라는 겁니다. 이 만나 밖에 없느냐? 민수기 21장에 보면 원망합니다. 이 하찮은 식물밖에 없느냐.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올려보내 가지고 왜 이곳 광야에 보내가지고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게 만드느냐? 이 하찮은 식물뿐이냐.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서 그들이 물려죽게 했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놋을 녹여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올리도록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장대에 높이 올려진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뭐 그것 쳐다본다고 사느냐 한 자는 다 죽었어요. 그런데 쳐다본 자는 다 살았어요. 그 놋뱀이 누구를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삽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살게 되어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죠. 왜 가나안 땅이냐? 메시야 오실 땅이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 할 그리스도가 오실 땅이기 때문에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한 겁니다. 아니,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신데 애굽에 있는 그 애굽 사람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살게 하면 안 됩니까? 능력이 있는 하나님인데..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애굽에서 끄집어내서 광야 길을 걸어가는데 홍해를 만나게 하시고 아말렉과의 싸움을 하게 하시고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아낙산지를 점령하게 하시고 드디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어요. 광야 40년 동안 왜 이 일을 허락하셨느냐? 여러분 중요한 것입니다. 언약 붙잡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가 충만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그 축복을 누린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광야 길을 가는 모든 걸음, 사건, 일들은 하나님께서 복음 충만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사건들이었어요. 그것 가지고 세계 살려야 하니까.. 그게 가나안 땅의 축복이에요.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그리고 그 가나안 땅에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낼 땅으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언약을 주신 것이죠. 그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그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빌립보서 2장 6-7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하나님의 본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어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셨어요. 그리고 죄 없으신 거룩한 분이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어요. 왜 그렇게 오셔야 되느냐? 그길 만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이고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원죄 가운데서 해방 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죄 없으신 거룩한 그분이 친히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다라는 사실. 그리고 오셔서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시고 백성들에게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심판 주가 되신 것입니다. 왜냐? 우리가 가진 영적문제, 근본문제, 원죄문제, 하나님을 떠난 문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게 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우신 사건은 대속의 죽음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좀 전에 말씀 드렸죠. 내가 죄를 지었어요.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 대신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대속하셨어요.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최고의 약속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최고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없이는 우리의 죄문제, 절대 해결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겁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원죄를 끝냈어요. 그리고 에베소서 2장 1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리고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고 죽음으로 끝난게 아닙니다.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예수가 나의 주고 나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했다는 그 증거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어요.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만 주셨어요. 다른 이름 주신 적이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 알게 될 때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구약의 모든 약속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게 성취되어 집니다. 그리고 약속으로 오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나신 그 일이 믿어졌는데 그게 내게 의가 되고 구원이 되었어요.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약속으로 오신 그 그리스도, 조상에게 약속 하신 그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 믿어졌는데 그게 내게 의가 되고 그게 내게 구원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한 가지입니다. 이 이름 이보다 더 귀한 이름이 없어요. 그래서 그 이름 주시고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한가지 이름을 주시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어요.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나갈 때마다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말씀처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모든 원수 사탄의 권세가 깨뜨려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을 약속 가운데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그 어느 때 보다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복음이 사라지고 복음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 우리가 복음 속에 들어서 있음을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디를 둘러보세요. 복음 없어요. 기독교 방송을 틀어보세요. 오직그리스도, 오직복음 이야기가 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시대를 당한 겁니다. 안티그리스도 시대를 당한 겁니다. 복음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 가지만 주셨어요. 복음만 주셨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 복음 앞에 내가 결단하면 됩니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종교법정 앞에서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쳐다보는 그 앞에서 한마디 잘못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 자리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결단한 겁니다. 그때 유대지도자는 뭐라 했습니까? 불러다가 도대체 안 되겠다. 경고했어요. 이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가르치지도 말라. 그런데 베드로가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사도행전4장 19-20)” 복음 한 가지 그 속에 결단하게 될 때 여러분 모든 삶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삶을 책임지시는 전도자의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복음에 뿌리 내리고 복음 가지고 우리의 체질 바꾸고 각인을 바꿈으로 우리 속에 복음운동이 일어나는 큰 역사 가운데 지역과 민족과 세계 살리는 전도자로 쓰임 받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11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
(행26:1-12)
서론: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뿌리․각인․체질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의 원칙은 말씀 따라, 약속 따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되어지거나 성공하는 것도 참된 성공이 아닙니다(모래 위에 지은 집). 우리의 신앙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서있어야 합니다(반석위의 지은 집). 오늘 본문에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의 변론이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의 신앙 근거를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12지파가 간절히 바라는 약속)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은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
(1) 이스라엘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 - 때가 되면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겠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베들레헴(미5:2)에 오셔서 고난 당할 것도 예언하심(시22:17, 사53:4-5)
2) 이 약속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음 - 자기 기준 때문에
3) 전도와 선교를 놓친 유대교에서 세상을 멸망시킬 모든 종교들이 나옴 (모슬렘,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3단체, 천주교)
(2) 신앙생활은 내 기준을 버리고 약속을 따라가야 합니다.
1) 마27:24 빌라도의 재판 : 자의적인 해석으로 예수를 넘겨주고 무죄하다고 했지만 사도신경 고백마다 등장함
2) 히11장 아브라함과 노아는 믿음으로 약속을 잡으니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됨(히11:38)
2. 약속
(1)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구약: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아를 약속, 신약: 그 분이 그리스도로 오심)
(2) 하나님은 이 한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동원하시고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1) 창3장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 떠나 원죄에 빠짐(롬3:23) - 하나님은 원시 복음을 약속(창3:15, 롬16:25)
2) 창6장 네피림 시대 - 오직을 잡고 믿음으로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듦(히11:7)
3) 430년 애굽의 노예 - 희생제사의 비밀(출3:18)로 바로 왕을 꺾음(레17:11 피는 생명을 뜻 함)
4) 출애굽 - 언약궤 : 생명의 그리스도(만나항아리), 부활의 그리스도(싹 난 지팡이), 진리의 그리스도(두 돌비)
5) 광야길 가운데 불신앙으로 불 뱀에게 물림 - 놋 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게 됨(요3:14 놋뱀은 그리스도)
6) 가나안 땅 - 모든 문제를 해결할 그리스도가 올 땅(복음 충만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광야에서 40년간 훈련)
7)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심 -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심판주가 되심(빌2:6-7)
(3) 하나님의 최고 약속, 그리스도를 붙잡으라!! (막10:45 대속의 죽음, 롬5:8 최고의 사랑, 롬8:2 참된 해방)
1) 믿을때 약속이 성취되고(롬10:9-10) 기도할 때 응답을 받으며(요14:14, 16:24) 권세가 나타남(눅10:19)
2) 모든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연결된 부분을 찾아내라!!
결론: 복음이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시대(적그리스도 시대)에, 우리가 복음 속에 서 있음을 감사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가지, 복음만 주셨기에 우리는 결단만 하면 됩니다(행4:12). 복음 한가지 속에 결단 할 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지시는 전도자의 삶을 허락하십니다(행4:19-20). 한주간 복음으로 우리의 뿌리, 체질, 각인을 바꾸는 복음 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지역과 민족, 세계를 살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우리의 뿌리와 각인, 체질까지 바꿔주실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나의 기준을 버리게 하시고 오직 약속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최고 약속인 그리스도를 붙잡고 모든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된 부분을 찾을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복음이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시대 가운데 한주간 오직 복음으로만 결단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
(행26:1~12)
1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행26:1~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를 주셨는데 오직 예수입니다. 오늘 이 한날 오직 예수로 우리의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뿌리에 각인된 체질들이 뒤바뀌는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든다면, 물론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람들의 의식, 사고에 대한 부분을 든다면 선진국일수록 원칙과 신뢰를 중요시합니다. 신뢰라는 것은 신용, 약속을 중요시한다는 말입니다. 후진국일수록 원칙이 무시되고 또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어느 곳에서나 거짓말이 통하게 되는 사회가 후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한 번은 우리 교회 선교위원장 장로님과 함께 어느 나라를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가 보니 중앙선은 있습니다. 그런데 차가 중앙선을 무시하고 이쪽에서 가는 차도 그렇고 저쪽에서 오는 차도 그렇고 자기 원하는 대로 마구 달립니다. 아, 이것 참 위험하겠구나. 잘못하다가 선교지에 와서 혹시 사고당해서 죽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 아니, 막무가내로 그냥 먼저 차머리를 들이밀면 되는 것이고, 중앙선이 따로 필요없습니다. 반대에서 차들이 오면 여기서 피해줘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한 번은 차를 타고 가다 보니 큰 버스 하나가, 그런 건 처음 봤는데, 앞발통이 빠져서 버스가 처박혀 있었습니다. 아마 차가 달리다 앞발통이 빠져서 처박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로막고 있으니 얼마 동안 차가 지체되고 너무나 불편한지 그런 부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또 한 나라에도 가 보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은 많이 가진 나라이고 갑작스런 경제적 성장을 한 나라인데 사람들이 길거리 가다가 그냥 아무데나, 죄송합니다, 소변 보고, 그냥 횡단보도 없이 아무데나 막 다닙니다. 아, 이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아닌가. 선진국일수록 원칙, 신뢰, 신용이 철저합니다. 원칙과 신뢰, 원칙을 무시하면 문제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일어나는 사고들을 한 번 보십시오. 세월호나 환풍구에 빠져 사망한 것이나 이런 모든 것들은 이미 오래된 것인데 원칙을 무시해서 일어난 사고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 생활 속에서도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 원칙이 무엇이냐?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에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신앙 생활의 원칙은 말씀 따라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속 따라 가야 합니다. 늦다 할지라도 말씀 따라 인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약속 따라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되어지는 것도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공한 것도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고 풍랑이 일어나면 우리의 집이 모래 위에 지은 집인가 반석 위에 지은 집인가 표시가 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풍랑이 일고 바람이 몰아치는 만큼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결국은 무너지게 되고, 아무리 풍랑이 일어도 아무리 바람이 분다 할지라도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든든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서 있느냐?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 약속의 말씀 속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걸음 속에 하나님 주신 응답과 축복을 누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 이야기하는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입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바울이 변론을 하는데 바울의 신앙의 근거가 무엇이냐?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것을 붙잡고 있다는 것. 우리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사실을 나는 붙잡고 있고 그 사실이 열두 지파가 간절하게 소망하는 부분들, 열두 지파가 간절히 기대하는 그 부분을 나도 붙잡고 있다는 것. 그렇습니다. 우리는 약속에 근거한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젊은 남녀가 연애를 하지 않습니까? 연애를 하다가 아, 이 사람 믿을 만하다, 이 사람 내 인생을 맡길 만하다, 그러면 약속을 하지 않습니까? 그 약속을 가지고 무엇이라 합니까? 결혼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우리 성례주일, 세례식이 있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약속입니다. 어떤 약속이냐?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약속이 세례입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상사와의 약속이 있고 직장에의 약속이 있는 것이고, 또 친구 간에도 약속이 있지 않습니까? 그 약속들을 잘 지키는 사람을 가지고 의리 있는 놈이라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모든 것에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원칙이 있는데 약속에 근거한 신앙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지금 자기가 심문을 받는다고 하는 그 근거, 또 열두 지파들이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그 소망이 무엇이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열두 지파가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부분들, 기대하고 있는 바이고 바울이 동일하게 그 믿음을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섰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야, 이미 성경에 예언되었습니다. 바로 유다 지파를 통해서 오게 될 것을 말씀하고 유다 지파 가운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을 통해서 장소까지도 예언되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에 보면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장소까지도 우리 인류의 모든 문제 해결할 메시야, 베들레헴에서 오게 될 것이다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오셨는데 오셔서 고난 당하시고 채찍 당하실 것을 이미 예언했습니다. 시편 22편에 보면 뼈들을 센다 했습니다. 겉옷을 나누어 가지고 속옷을 빼앗아 간다 했습니다. 여러분, 뼈들을 센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야기합니다.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빼앗아간다, 이사야 53장에도 보면 징계를 받으며 채찍을 맞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채찍을 맞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고난 당하시고 채찍 맞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믿은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바울도 알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압니다. 이것까지는 다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유대인들이 주인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에 보면 결국 바울 자신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느냐? 왜 그걸 못 믿느냐? 그러면서 한 말이 나도 사실은 지난날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내가 믿는 도에 대해서 열심히 했고 철저히 했다, 그리고 열두 지파들이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그 소망을 나도 또한 누구보다도 열심히 소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도 사실 예수 그리스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아서 예수 믿는 초대교회, 마가다락방 교회 성도들을 잡아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들을 핍박하였고 심지어 제사장의 도장을 맡아 가지고 가서 사람들을 돌로 쳐서 죽이는 일에 함께 찬성표를 던졌고 또 다른 성까지 쫓아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왔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예수를 믿지 않느냐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안 믿습니다. 그냥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믿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안 믿고 있습니다. 사실 세계복음화는 언제 이루어지느냐?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회복의 역사, 예루살렘이 회복되게 될 때 그 때 세계복음화가 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하나, 둘,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통곡의 벽에 랍비들이 신명기 6장 4절~9절 그 말씀을 꽂아 놓고 그 말씀을 외우면서 울면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약속하셨는데 약속대로 믿지 않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분명히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하신 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 구약에 예언된 부분들은 유대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된 분이 오셨는데 그것을 안 믿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약속을 안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 생활에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바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나름대로 신앙 생활을 한다 하면서도 내 나름대로 말씀, 약속 위에 서지 않고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은 신앙 생활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메시야관에 대한 부분인데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정치적인, 로마에서 자기 민족을 해방시킬 힘 있는 왕과 같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왕이 오시면, 그 왕과 같은 힘 있는 자가 오시면 이방 나라들을 완전히 멸망시킬 것이고 보복할 것이고 그 로마 속국 가운데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다, 그래서 다윗과 같은 힘 있는 메시야가 올 것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는 메시야가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이 가장 존경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왜 그러냐? 우리 나라가 광개토왕 때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던 것처럼 다윗왕 시대에 그 당시에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다윗왕은 가장 존경스러운 왕이었습니다. 외부로부터 침략 당할 때마다 유대인들은 다윗왕을 사모했습니다. 언젠가 다윗왕같이 힘 있는 왕이 와서 우리를 속박 가운데서 견져내실 것이고 모든 이방 나라들을 멸하실 것이다. 여러분, 성경에 말씀하신 부분들이 아닙니다.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한 것
전혀 약속하신 부분들을 붙잡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신앙 생활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은 무엇이냐? 자기 민족만 선택받았다는 선민사상과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말미암아 세계 모든 나라들을 살리기 위해서 한 나라를 택해야 하기 때문에 그 중에 이스라엘을 선택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가지고 착각했습니다. 뭐냐? 자기들만, 자기 민족만 선택받은 백성이다, 그래서 이방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느냐? 이방 나라는 구원이 필요 없고 이방 나라들은 개, 돼지, 짐승 같은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기도 가운데 내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나는 감사하노라, 유대인들의 기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신앙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만이라는 선민사상, 민족주의에 빠져서.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 그래서 그 율법을 행한 것을 자랑하고, 이게 유대인들 아닙니까? 결국은 여기서 전도, 선교, 하나님이 원하시는 축복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방향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지 못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대교에서 사실은 세상을 멸망시키는 모든 종교들이 나왔습니다, 유대교에서. 지금 세상에 가장 위험을 주는 종교 중의 하나가 있다면 모슬렘입니다. 여러분, 이 모슬렘이 네덜란드를 완전히 장악했고, 네덜란드가 원래 화란 신학이라 해서 신학이 가장 발전한 곳이 네덜란드였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신학자들 가운데 네덜란드의 화란 신학교를 나온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런데 아예 나라 자체가 모슬렘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영국도, 유럽도 모슬렘들이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우리나라도 2020년에 모슬렘이 140만이 차지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들이 펴는 전략이 무엇입니까? 한국 여자들과 결혼해서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지금 아이를 많이 낳지 않잖아요. 살기 힘들고 그러니까 아이도 안 놓고 결혼도 안 하고 있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이들은 무조건 종족을 퍼뜨립니다. 앞으로 정말로 우리 후대들이 없어지는 반면에 모슬렘이 완전히 장악하는 시대가 옵니다. 그 모슬렘이 어디서 나왔느냐? 사실 유대교에서 나왔습니다. 영국, 유럽 쪽에 보면 아이를 워낙 아예 안 놓으니까 국가, 정부에서 책임진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를 안 놓고 결혼도 안 하고요. 그런데 그 틈을 이용해서 모슬렘들이 아이를 낳기 시작해서 유럽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여러분 결혼하는 것도 싫어하고 가치관도 달라져서 아이를 낳으면 몸이 망가진다고 아이를 안 놓잖아요. 그런데 그 틈을 이용해서 모슬렘들은 완전히 아이를 많이 낳도록 해서 완전히 장악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미국조차도 예배당이 모슬렘에 넘어가고 있는 상황들입니다. 그 모슬렘이 어디서 왔느냐? 유대교가 모슬렘의 모체입니다. 결국 전도, 선교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유대인들이 놓쳐 버리니까 세상을 멸망 시키는 종교가 거기서 나온 것이에요. 여호와의 증인도 유대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고, 안식교도 유대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고, 지금 저와 여러분이 3단체, 3단체 기도 합니다만 프리메이슨이나 뉴에이지 운동이 전부 다 유대인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주교도 마찬가지로 율법주의입니다. 마리안리즘으로 철저하게 유대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어렵게 만들고 멸망시키는 세상에 영적인 혼란과 문제를 가져오는 악한 종교들이 어디서 나오느냐? 유대교에서 다 나왔다는 것 입니다. 한 가지, 약속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자기 기준,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기 때문에 결국은 세상이 어려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내 기준을 버려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 따라 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찬송 불렀습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 하시니' 주님과 맺은 약속은 영원히 불변하시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주님 나라 가는 그 날 까지.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약속에 근거해서 약속을 붙잡고 나가는 신앙생활이 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경우에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뭔가 모르게 말씀 기준이 아닙니다. 자기의 어떤 기준과 어떤 의와 자기 계획과 자기 생각들 가지고 자기 합리화를 가지고 신앙생활 합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해보니까 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마음은 이 예수를 놓아줘야 하겠다, 왜냐면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총독으로써 그 당시에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우리나라 광복절 이럴 때 보면 대통령이 특별사면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그 당시에 유월절이 되면 총독 마음대로 죄수를 놓아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가깝고 예수를 놓아줘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마침 빌라도 총독 현지에 있는 아내가 빌라도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일에 당신이 간섭하지 말라. 왜냐면 내가 어제 밤에 꿈을 꿨는데 너무 꿈 자리가 혼란스럽고 뒤숭숭하고 그러니까 당신이 예수님의 그 일에 간섭하지 말라' 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유대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묻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바나바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주랴?' 사실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가지고, 그 당시에 최고 강도로 유대인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나바는 강도입니다. 그 강도와 함께 예수님을 세웠습니다. 바나바를 놓아주랴? 예수를 놓아주랴? 그 때 유대인들이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했습니다. 우리에게 바나바를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어쩔 수 없이 민란이 일어날 까 걱정해가지고 결국 예수를 넘겨주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이 일에 대해서 무죄하다.' 면서 대야에 물을 떠 와서 손을 씻었습니다. 나는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와 너희 후대들이 당하라’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좋습니다. 이 핏값을 우리와 우리 후대들이 당하겠습니다’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2,000년 동안에 나라 없는 민족으로서 세계 전체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전 세계에 흩어져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당한 것을 교회 역사 속에서 보게 됩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나는 무죄하다 손 씻었습니다. 그런데 무죄한다고 무죄합니까? 빌라도가 책임이 없습니까? 전혀 관계 없습니까? 아닙니다. 빌라도는 자기 자신의 자의적인 해석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고 나는 무죄하다고 손을 씻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신앙고백 하잖아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사. 사도신경 고백하면서 늘 항상 그 고백을 합니다. 저는 그 고백을 할 때 마다 빌라도가 지옥에서 얼마나 귀가 따갑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만 전혀 관계 없는 것이 관계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말미암아 나는 무죄하다 손 씻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이 나름대로 자기 합리화 시키고, 이렇게 하면 주님이 알아주겠지, 이렇게 하면 주님이 용서하겠지. 약속 전혀 없이 그래서 문제와 사건 당하면 흔들리고, 실패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영원히 변함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길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문제와 사건이 있어도 약속 붙잡게 될 때에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을 쭉 설명해 놓았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어떻게 승리했습니까?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노아는’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약속을 붙잡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히브리서 11장 38절에 보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환경속에 있든지 여러분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을 자기 기준으로 합리화 하지 마시고, 영원히 주님 앞에 가는 날 까지 변하지 않는, 영 불변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 속에서 참된 승리할 수 있는 응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다른 길이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이 내 신앙의 기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2. 약속?
그러면 두 번째로 이 약속의 말씀의 가장 핵심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소원했던 부분들, 약속이었는데, 그 약속의 가장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지금 심문을 받는 것, 또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라고 오늘 본문에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또 12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 늘 바라고 살았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약속인데, 그 약속의 주인공은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약속의 책이다, 언약의 책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언약, 언약 하면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말입니다. 새 언약. 옛 언약인 구약은 어떤 약속입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신약은 그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 전체가 이 한 가지,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창조 사건은 물론 중요하지만 창조 사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430년 노예살이 속에서 빠져나온 것이 중요하지만 그걸 설명하기 위한 역사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한 가지 주제입니다. 오늘 우리 찬양대가 찬양을 불렀던 것 처럼 '오직 예수' 그 한 가지 설명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걸 위해서 역사를 하나님께서 동원 하시기도 합니다. 그걸 위해서 모든 사건을 움직이시기도 합니다. 오직 한 가지 그리스도 그 설명을 하기 위해서. 그러면 오늘 짧은 시간이지만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한 가지, 이 한 가지가 여러분 영혼 속에 각인되어 짐으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여러분 속에 잘못 각인되었던 것, 뿌리내려졌던 것들이 치유되어짐으로 새로운 재창조의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창조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이죠. 우리 인간은 육신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가진 존재고, 하나님의 영혼이 있는 영적 존재로 우리 인간이 창조된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조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속았습니다. 창세기 3장 1~6절에 보면 사단에게 속아서 하나님을 떠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어디에 빠졌습니까? 원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이를 가지고 영적인 문제, 근본 문제라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죄는 우리가 살면서 죄를 많이 짓는데, 그런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창세기 3장 하나님 떠난 죄는 윤리적인 죄, 그런 부분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하나님 떠난 원죄를 말하는데, 로마서 3장 23절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 할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하나님의 형상 가진 존재가 원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께 예배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최고의 첫 번째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속아서 멸망 가운데 빠지고, 또한 우리 가정이 파괴 되어지고, 우리 자녀들도 파괴되어지고 무너지고 쓰러지는, 멸망 받는 그 문제를 해결 할, 사단의 존재를 꺾을 여자의 후손, 그 여자의 후손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15절 이를 보고 원시 복음이라고 하고 원 복음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멸망의 문제, 원죄의 문제, 실패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여자의 후손.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게 이미 하나님이 이 약속을 로마서 16장 25절에 보면 영세 전부터 예비하셨습니다. 로마서 16장 25절에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 부터 감추어 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다'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그 이름을 예비 하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주신 거에요. 여자의 후손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또 약속을 잊어버리고 네피림 시대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또 약속을 주셨는데, 매나 한 가지입니다. 두 가지 길이 아닙니다. 한 가지, '방주를 만들라' 였습니다. 노아는 이 방주 언약 한 가지 사실을 붙잡고, 한 가지 방주에 올인했습니다. 오직 했습니다. 오직의 방향이 방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동안에? 120년 동안에.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롱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핍박했겠습니까? 그런데 노아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가면 산다, 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약속을 붙잡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 보면 노아가 배를 열심히 만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방주 안에 들어가는 자는 산다는 이 약속을 붙잡고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방주는 누구를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방주 안에 들어간 자는 다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는 다 살게 되어집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놓쳐 버렸습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 노예 살이를 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약속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8절 희생제사의 비밀. 피 언약이죠. 이 피 언약을 붙잡았는데, 거기에 바로 왕이 무릎 꿇었습니다. 다른 그 어떤 것으로 안 되었는데 피 언약 한 가지를 붙잡았는데 거기에 바로왕이 무릎 꿇었어요. 피 언약을 붙잡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노예 살이 속에서 빠져 나왔어요. 여러분 우리의 가정과 가문에 흘러 내리는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빠져 나오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고질적인 영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 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피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 피 언약은 무엇을 말합니까? 여러분, 피의 언약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양의 피를 흘려서 제사장이 성전에 들어가서 피를 뿌렸습니다. 대속의 의미죠. 그리고 이삭 대신에 수양을 드린 것도, 마찬가지로 대속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되고, 우리가 마땅히 멸망 받아야 되는데 우리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원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끝냈습니다. 저주와 재앙의 모든 문제를 끝냈습니다. 그래서 ‘피’는 바로 생명을 말합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피는 그냥 피가 아니라 생명을 의미하는데 생명을 바로 피에 있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이 피의 언약이 누구를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또 이스라엘백성들이 이 피 언약을 붙잡고 애굽에서 빠져 나왔는데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또 언약이 희미해지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습니까? 언약궤를 만들어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뭐냐? 상자입니다. 그냥 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상자에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언약궤’라고 이야기 합니다. 애굽에서 빠져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시작에서 하나님이 언약궤를 주셨는데 그 언약궤 안에 세 가지가 들어있죠.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적힌 두 돌비가 들어 있습니다. 만나는 요한복음 6장에 말씀합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뭡니까? 죽은 지팡이에서 싹이 났어요. 무엇을 말합니까? 부활의 생명, 부활의 승리를 말씀하는 겁니다. 아무리 죽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날 부활의 생명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두 돌비는 무엇을 말합니까? 요한복음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은 바로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부활의 승리하신 그리스도, 진리이신 그리스도, 왕 제사장 선지자, 그리스도의 비밀들이 담겨 있는 언약궤, 이 언약궤를 앞세워 가는 걸음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요단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약속의 말씀 붙잡고 나가게 될 때 저와 여러분, 걸음 속에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의 기준이 되면 안되요. 빨리 기준을 바꾸세요. 뭐가 기준이 되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약속, 말씀, 그리스도가 기준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해요.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문제를 당하고 일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반드시 일을 시작할 때 이게 하나님의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찾아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지금 하나님의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 말씀과 연결되어지는 부분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말씀과 상관없이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나중에 결국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짓을 왜 할 겁니까?
여러분. 열심히 해놓고 무너지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요. 그래서 말씀이 없으니까 문제 당하면 말씀을 놓쳐 버리고 문제 당하면 말씀 붙잡아야 되는데 말씀을 놓쳐 버려요. 문제 당하면 말씀이 생각나야 되는데 말씀이 생각 안나요. 그러니까 자기 기준과 자기 생각과 자기 계획 가지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래서 망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마지막 때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어떻게? 약속이 우리의 기준이 되도록,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도록. 그 약속과 말씀의 핵심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준이 되어 지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앞세우고 나가는 걸음 속에 모든 요단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졌어요. 오늘도 주의 약속을 붙잡고 나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이러한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노예로 갔는데 그 자리가 복이 있는 자리였어요. 왜냐? 노예로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했기 때문에 그 자리가 노예라는 자리이지만 복이 있는 자리였어요.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삶의 기준을 말씀의 기준으로, 약속을 근거해서 약속의 기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또 광야 길로 가는 동안에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무엇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가나안땅을 향하기 위해서 애굽에서 빠져 나왔을 때 첫 번째 먹고 마실 것을 주셨는데 그게 광야 길을 가는 동안 계속 되어졌는데 만나와 메추라기죠.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지키시는 그 약속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었습니다. 만나를 처음 받아먹고 얼마나 기뻤습니까? 그래서 꿀 섞은 과자 같았다고 했습니다. 밤에 자면 각 지파들이 친 천막에 소복이 메추라기가 내려앉았어요. 그걸 먹었고 아침에 이슬 같은 것이 내렸는데 보니까 만나예요. 그걸 일용할 양식으로 날마다 먹었어요. 그런데 광야 길을 가는 동안 어느 정도 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일에 식상했느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도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새롭게 누리지 못하면 우리도 동일하게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원망을 했느냐? 이제 메추라기가 이빨 새에 끼니까 이게 싫다라는 겁니다. 이 만나 밖에 없느냐? 민수기 21장에 보면 원망합니다. 이 하찮은 식물밖에 없느냐.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에서 올려보내 가지고 왜 이곳 광야에 보내가지고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게 만드느냐? 이 하찮은 식물뿐이냐.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서 그들이 물려죽게 했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놋을 녹여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올리도록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장대에 높이 올려진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뭐 그것 쳐다본다고 사느냐 한 자는 다 죽었어요. 그런데 쳐다본 자는 다 살았어요. 그 놋뱀이 누구를 말합니까?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삽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살게 되어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죠. 왜 가나안 땅이냐? 메시야 오실 땅이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 해결 할 그리스도가 오실 땅이기 때문에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한 겁니다. 아니,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신데 애굽에 있는 그 애굽 사람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살게 하면 안 됩니까? 능력이 있는 하나님인데..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어요. 애굽에서 끄집어내서 광야 길을 걸어가는데 홍해를 만나게 하시고 아말렉과의 싸움을 하게 하시고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아낙산지를 점령하게 하시고 드디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어요. 광야 40년 동안 왜 이 일을 허락하셨느냐? 여러분 중요한 것입니다. 언약 붙잡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가 충만하면 세계를 정복하는 그 축복을 누린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광야 길을 가는 모든 걸음, 사건, 일들은 하나님께서 복음 충만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사건들이었어요. 그것 가지고 세계 살려야 하니까.. 그게 가나안 땅의 축복이에요.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그리고 그 가나안 땅에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낼 땅으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의 언약을 주신 것이죠. 그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그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빌립보서 2장 6-7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하나님의 본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어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셨어요. 그리고 죄 없으신 거룩한 분이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어요. 왜 그렇게 오셔야 되느냐? 그길 만이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이고 저주와 재앙 가운데서 원죄 가운데서 해방 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고 죄 없으신 거룩한 그분이 친히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다라는 사실. 그리고 오셔서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시고 백성들에게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심판 주가 되신 것입니다. 왜냐? 우리가 가진 영적문제, 근본문제, 원죄문제, 하나님을 떠난 문제,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약속,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붙잡게 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우신 사건은 대속의 죽음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좀 전에 말씀 드렸죠. 내가 죄를 지었어요.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 대신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를 대속하셨어요.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최고의 약속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최고의 표현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없이는 우리의 죄문제, 절대 해결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겁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원죄를 끝냈어요. 그리고 에베소서 2장 1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리고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고 죽음으로 끝난게 아닙니다.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예수가 나의 주고 나의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했다는 그 증거로 삼일 만에 부활하셨어요.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만 주셨어요. 다른 이름 주신 적이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 알게 될 때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구약의 모든 약속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게 성취되어 집니다. 그리고 약속으로 오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삼일 만에 살아나신 그 일이 믿어졌는데 그게 내게 의가 되고 구원이 되었어요.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약속으로 오신 그 그리스도, 조상에게 약속 하신 그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 믿어졌는데 그게 내게 의가 되고 그게 내게 구원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한 가지입니다. 이 이름 이보다 더 귀한 이름이 없어요. 그래서 그 이름 주시고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한복음 16장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한가지 이름을 주시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어요. 그 이름으로 기도하며 나갈 때마다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말씀처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모든 원수 사탄의 권세가 깨뜨려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축복을 약속 가운데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그 어느 때 보다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복음이 사라지고 복음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 우리가 복음 속에 들어서 있음을 감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디를 둘러보세요. 복음 없어요. 기독교 방송을 틀어보세요. 오직그리스도, 오직복음 이야기가 잘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시대를 당한 겁니다. 안티그리스도 시대를 당한 겁니다. 복음이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 가지만 주셨어요. 복음만 주셨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그 복음 앞에 내가 결단하면 됩니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종교법정 앞에서 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쳐다보는 그 앞에서 한마디 잘못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 자리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결단한 겁니다. 그때 유대지도자는 뭐라 했습니까? 불러다가 도대체 안 되겠다. 경고했어요. 이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가르치지도 말라. 그런데 베드로가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사도행전4장 19-20)” 복음 한 가지 그 속에 결단하게 될 때 여러분 모든 삶에 하나님께서 여러분 삶을 책임지시는 전도자의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복음에 뿌리 내리고 복음 가지고 우리의 체질 바꾸고 각인을 바꿈으로 우리 속에 복음운동이 일어나는 큰 역사 가운데 지역과 민족과 세계 살리는 전도자로 쓰임 받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11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
(행26:1-12)
서론: 이 땅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뿌리․각인․체질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의 원칙은 말씀 따라, 약속 따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되어지거나 성공하는 것도 참된 성공이 아닙니다(모래 위에 지은 집). 우리의 신앙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서있어야 합니다(반석위의 지은 집). 오늘 본문에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의 변론이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의 신앙 근거를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12지파가 간절히 바라는 약속)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은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
(1) 이스라엘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 - 때가 되면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겠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베들레헴(미5:2)에 오셔서 고난 당할 것도 예언하심(시22:17, 사53:4-5)
2) 이 약속의 주인공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음 - 자기 기준 때문에
3) 전도와 선교를 놓친 유대교에서 세상을 멸망시킬 모든 종교들이 나옴 (모슬렘,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 3단체, 천주교)
(2) 신앙생활은 내 기준을 버리고 약속을 따라가야 합니다.
1) 마27:24 빌라도의 재판 : 자의적인 해석으로 예수를 넘겨주고 무죄하다고 했지만 사도신경 고백마다 등장함
2) 히11장 아브라함과 노아는 믿음으로 약속을 잡으니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됨(히11:38)
2. 약속
(1)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구약: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메시아를 약속, 신약: 그 분이 그리스도로 오심)
(2) 하나님은 이 한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동원하시고 사건을 일으키십니다.
1) 창3장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 떠나 원죄에 빠짐(롬3:23) - 하나님은 원시 복음을 약속(창3:15, 롬16:25)
2) 창6장 네피림 시대 - 오직을 잡고 믿음으로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듦(히11:7)
3) 430년 애굽의 노예 - 희생제사의 비밀(출3:18)로 바로 왕을 꺾음(레17:11 피는 생명을 뜻 함)
4) 출애굽 - 언약궤 : 생명의 그리스도(만나항아리), 부활의 그리스도(싹 난 지팡이), 진리의 그리스도(두 돌비)
5) 광야길 가운데 불신앙으로 불 뱀에게 물림 - 놋 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게 됨(요3:14 놋뱀은 그리스도)
6) 가나안 땅 - 모든 문제를 해결할 그리스도가 올 땅(복음 충만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광야에서 40년간 훈련)
7)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심 -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심판주가 되심(빌2:6-7)
(3) 하나님의 최고 약속, 그리스도를 붙잡으라!! (막10:45 대속의 죽음, 롬5:8 최고의 사랑, 롬8:2 참된 해방)
1) 믿을때 약속이 성취되고(롬10:9-10) 기도할 때 응답을 받으며(요14:14, 16:24) 권세가 나타남(눅10:19)
2) 모든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연결된 부분을 찾아내라!!
결론: 복음이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시대(적그리스도 시대)에, 우리가 복음 속에 서 있음을 감사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가지, 복음만 주셨기에 우리는 결단만 하면 됩니다(행4:12). 복음 한가지 속에 결단 할 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지시는 전도자의 삶을 허락하십니다(행4:19-20). 한주간 복음으로 우리의 뿌리, 체질, 각인을 바꾸는 복음 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지역과 민족, 세계를 살리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우리의 뿌리와 각인, 체질까지 바꿔주실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나의 기준을 버리게 하시고 오직 약속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최고 약속인 그리스도를 붙잡고 모든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된 부분을 찾을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복음이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시대 가운데 한주간 오직 복음으로만 결단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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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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