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2014-1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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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행27:22~44)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쳐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 행27:22~44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성곽 없는 성읍의 축복을 누리십시오! 오늘 우리 찬양대 찬양드린 것처럼 우리의 갈 길 다 가도록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축복 가운데 오늘이 함께하심을 최고로 누리는 그러한 날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우리가 인사할 때마다 주일날마다 인사하는 것이 있습니다. “평안하십시오.” 이 인사가 오늘 여기에 나오는 제목입니다.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이고 또 오늘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가, 제가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그렇게 붙잡았습니다.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이 본문은 사실 죄수가 아닌 바울이 죄수선을 타고 로마로 이송되는 가운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그 풍랑 속에 백부장이 있었습니다만, 고급 관료입니다만 소용이 없었고, 선장과 선주들이 있었지만, 바다에 대해서, 바다의 기후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전문가이지만, 풍랑 속에서는 소용이 없었고, 또 든든한 배, 알렉산드리아라는 배를 타고 갔습니다만 그 배조차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풍랑 가운데서는. 인간적인 모든 방법과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도 소용이 없는, 그런 가운데 본문에 보면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바울이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2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25절에도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심은 여러분, 병원에 가서 환자들이 고통 가운데,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에 의사가 와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심하십시오, 그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있는 환자에게 의사가 다가와서 한 마디 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됩니까? 제가 수술실 앞에 한 번 기다려 봤는데, 수술실에 보면, 중앙수술실 그 앞에 보면 전광판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름이 있고, 나이가 있고, 진행되는 과정이 나옵니다. 거기에 수술 중이면 ‘수술중’, 회복 중이면 ‘회복중’, 또 대기 중이면 ‘대기중’이라 나옵니다. 그런데 수술 받는 환자도 환자이지만 수술실 밖에서 마음 졸이면서 수술이 혹여나 잘못되지 않을까 그런 걱정 가운데 잘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광판에 보면 ‘수술중’이라는 단어에서 ‘회복중’으로 넘어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단어만 나와도 마음이 안심을 합니다. 아, 이제 잘 되었는가보다. 그러면서 이제 수술을 마친 집도한 의사가 나오면서 밖에 있는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으면 한 마디 하지 않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더욱더 안심을 하지 않습니까? 인간 의사의 말도 이렇게 사람에게 안심을 주는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오늘 지금 우리에게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말씀하십니다. 참된 안심, 평안을 회복하는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참된 안심과 참된 평안이 필요한가? 여러분, 지금 이 땅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평안이 없고 안심이 없습니다. 왜냐? 인생 자체가 풍랑 만난 시대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 이야기합니다. 지금 마지막 때다. 그 마지막 때라는 근거로 무엇을 들어서 마지막 때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지금 자연재해, 천재지변 이런 부분을 보면서 말세가 아닌가,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합니다.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특히 믿는 사람들은 자연재해도 자연재해이지만 돌아가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이게 마지막 때가 아닌가, 그렇게 보기도 합니다. 바로 너무나 인생 자체, 이 땅에 어려움들이 많이 일어나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너무나 많이 편리해지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살기 좋아졌습니다만 옛날보다도 지금 걱정과 근심, 염려거리가 더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압니다. 그리고 편리한 삶을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보다 더 많은 염려, 옛날보다 더 많은 걱정, 근심, 이것은 어른이고 어린아이고 상관없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의술이 얼마나 최첨단 의료 기술을 자랑합니까? 의술이 발전하고 또 약도 얼마나 많은 약들이 나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 갈수록 환자들은 더 많아집니다. 한 번씩 병원에 심방을 가면 대구시민, 모든 사람들이 여기 다 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만큼 병원마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니, 의술이 그렇게 발전되고 약도 그렇게 많이 개발되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넘쳐나고 있고, 우리가 다 건강을 찾지 않습니까? 그래서 건강식품이나 웰빙식, 모두가 영양제 같은 것을 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 약 안 드시는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거의 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 할 정도로 모두가 약을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그래서 생명은, 수명은 조금 연장되었는지 모르지만 삶의 질은 그다지 높아지지 않은 부분을 보게 됩니다. 인생 자체가 지금 많은 풍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풍랑도 풍랑이지만 더한 것은 보이지 않는 풍랑, 다시 말하면 여러분, 사람들은 가지고 있고 그 가진 것을 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없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그 가진 것을 누리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디로 빠지느냐? 자꾸 이상한 곳에 집착하게 되고, 또 중독에 빠집니다. 지난 금요일 집중 훈련에서 장로님이 말씀했습니다만 지금 우리 한국에 4대 중독이 마약, 알코올, 그 다음이 도박, 인터넷 중독. 병원에 신세를 져야 하는 사람이 330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족과 연결되면 천만이 넘는다고 합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지금 집착과 중독에 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 얘기해 보면, 우리 교회에서 지금 북한을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북한이라는 나라 담당도 있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북한의 실상을 듣게 되었는데 이미 보도에 나온 부분을 저도 이렇게 보았습니다만, 여러분, 그 어떤 것보다 북한에 지금 심각한 것이 마약입니다. 마약. 돈만 있으면 돈 가지고 마약 사 먹습니다. 왜냐? 배고프니까 그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또 몸에 질병이 오면 그 질병을 치료해야 되는데 치료할 약이 없으니까, 너무 아프니까, 고통스러우니까 그걸 잊어버리기 위해서 마약을 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도 통일이지만 앞으로 중독에 대한 치유, 중독 치유에 대한 사역자가 일어나지 않으면 통일 되어도 문제라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자꾸 타락하고 왜 자꾸 중독에 빠집니까? 여러분, 인생은 풍랑을 만나고 거기에 대한 답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좀 똑똑하다고, 엘리트라 하는 사람들은 명상이나 요가, 기 운동 이런 쪽으로 자꾸 빠집니다. 그리고 교회조차도 참된 복음이 희미해지니까 어디로 빠지느냐? 이상한 신비운동에 빠지고 율법주의에 빠져서 그래서 교회가, 가면 갈수록 교회들이 지금 많은 문제들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제가 어제도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목사님, 큰일났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시렵니까 하니, 지금 대구시내 보면 교인들이 낮에는 자기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밤에는 다 어디 간다는 겁니다. 산으로 올라간다는 겁니다. 웬 산으로 올라가는가 싶었는데 예배를 드림에도 영적인 갈급함을 못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차, 3차 또 하러 가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 지난날 오래되었습니다만, 옷 로비 사건, 여러분 이미 알지 않습니까? 고위관직에 있는 분이 기도원에서 옷 로비 사건 그게 들통난 거 아닙니까? 그게 지금 어떤 면에서 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의 어떤 방황하는 모습들이고 풍랑 만난 인생의 한 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을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단이, 마귀, 귀신이 사로잡아서 인생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래서 흑암의 권세, 지옥의 권세, 사단의 권세 가운데서 언제 어떤 문제가 우리에게 나타날지 모르는, 그렇지 않습니까? 악한 사단이 인생을 잡고 있으니까 그 인생에게 어떤 문제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런 풍랑 가운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시대 속에서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우리에게 참된 안심이 필요한 이유가 이 시대는, 우리 인생은 풍랑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부분이고 바울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사실 바울도 처음에는 풍랑 가운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24절에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게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는데 두려워하지 말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풍랑 가운데 바울도 잠시 두려움 가운데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면서 안심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 안심을 누리니까 안심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안심하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데 어떻게 안심하라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 풍랑 가운데서도 안심함을 누리니까 지금 절망과 불안 가운데 떨고 있는, 구원의 여망이 완전히 끊어진, 불안 가운데 떨고 있는 같이 탔던 사람들에게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바울이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할 수 있었던 그 이유, 무엇 때문이었는가?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풍랑 만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유라굴라 강풍이라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누구나 다 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런 풍랑 가운데, 강풍 가운데서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이유, 그 이유들을 붙잡아야 하는데 바울은 세 가지 때문에, 바울은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1.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
그 첫 번째가 바울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영적인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바울에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23절에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 자기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느냐?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풍랑 가운데 있지만 풍랑 있는 가운데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께, 그리스도께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기 때문에 오늘 바울을 보면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름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사자가 곁에 서서 말했다 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았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것, 여기에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참된 안심이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들의 소속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미안합니다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했습니다. 에베소 2장 3절에 보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본질상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속이 그렇습니다. 왜냐? 마귀의 소속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가 부모를 잃어버리면 부모를 만나기까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온갖 어려움들을, 이런저런 어려움들을 당하게 됩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어린아이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온갖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어려움들이 계속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어려움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결국은 이 인생 자체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악한 사단의 손에 장악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고린도 후서 4장 4절에 “이 세상의 신”이라 했습니다. 이 사단의 존재를 요한복음8:44절에는 너희 아비 마귀라고 했는데 이 인간이 범죄 하므로 하나님을 떠나서 사탄의 손에 장악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어요. 운명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없어요. 절대적인 운명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뭔가 내 맘대로 하지를 못해요. 한다고 하면 결국은 문제를 당해요. 그래서 사주, 팔자, 운명에 불신자들은 메여 있는 것 아닙니까? 이사날짜를 잡아야 하고, 결혼 날짜를 잡아야 하고 자유가 없어요. 있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면 큰 일을 당하게 됩니다. 왜냐? 악한 사탄에게 속해있기 때문에 사탄이 붙잡은 운명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자유가 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누가복음15장에 보면 집을 나간 둘째아들 탕자의 비유가 나오지요. 뭔가 부모를 벗어나면 자유로울 줄 알고 자기의 재산을 요구해서 집을 나가게 됩니다. 그게 자유입니까? 그때부터 돈의 노예가 되고 음란의 노예가 되고, 쾌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돼지의 쥐엄 열매로 먹는 것을 삼아야 되고, 돼지를 지키는 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결국 인생은 그렇게 되는데 그것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요. 자유로울 줄 아는데 아닙니다. 결국은 노예가 되고, 돼지를 키우는 종이 된다는 사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 대한 부분들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마귀 사탄의 소속이 되어 있으니까 우상 숭배해야 되고, 우상숭배는 뭡니까? 마귀 섬기는 것, 귀신 섬기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으니까 거기에 소속되어 있으니까 후대들이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악한 사탄 마귀에게 소속되어 있으니까 우상 숭배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가 오고, 육신의 문제가 오고, 또 영적인 문제가 와서 많은 문제들 가운데 죽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계시록14:10절에 사탄을 가두어 두기 위해서 만든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삶 자체가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지옥에 들어가요.
여러분 정신적인 문제, 육신의 문제, 영적인 문제 가운데 살아간다는 그 말 자체가 지옥 같은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말 이예요. 그래서 결국은 세계복음화해야 될 후대가 저주, 재앙가운데 빠지게 되는 그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인데 왜 그러냐? 하나님을 떠나서 악한 사탄에게 소속되어 있으니까... 그것으로 끝납니까?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계를 당하게 됩니다. 창세기3:5절에 보면 악한 사탄이 아담 하와에게 속였지요.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결국 하나님처럼 되긴 되었어요. 자기중심으로, 자기기준으로, 자기 생각으로, 자기 고집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데 결국은 한계가 오잖아요. 하나님처럼 된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하나님이라는 말 이예요. 내 기준으로 내 고집으로, 내 생각이 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완전합니까? 아니잖아요. 결국 한계 오면 어떻게 하느냐? 마지막을 선택하는 거예요. 그리고 창세기3:6절에 보면 악한 사탄이 속일 때에 “하나님처럼 되리라”하면서 이야기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바라볼 때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보이는 것으로 가지고 속여요. 그렇습니다. 보이는 세상, 보이는 돈,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이 낭패를 당해요. 결국 한계와 낭패 가운데서 어찌할 수 없으니까 마지막 생을 꺽게 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나서 악한 사탄에게 소속되어 있으니까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거기에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2:9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뭐냐? 그것이 바로 성령이예요.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증거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 성령은 우리의 모든 걸음을 인도하시고 기도할때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택한 소유된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해서 하늘 군대를 동원하시고 걸음걸음마다 흑암세력을 꺽으시고,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이 땅에서 세계를 정복하는 그 축복을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당연히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성령의 인도받는 성령의 역사를 누림으로 세계 정복하는 축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에게 주어진 축복이예요.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잖아요. 요한복음5:24절.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지옥의 백성에서 천국의 백성으로 옮기셨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에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기셨습니다. 요한일서3:2절에 너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는데 하나님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신 첫 번째 증거가 무엇이냐? 먼저, 우리에게 참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이, 안심이 있게 됩니다. 요한복음14:27절에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내 안에는 계시니까 나는 하나님의 소유고 그리스도가 내 주인 되어 주시니까 내 안에는 참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첫 번째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같은 말 이예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된 증거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 어느 곳에서도 줄 수 없는 안심과 평안함이 하나님께 소속된 자녀들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았어요.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나는 하나님께 속한 바 된 사람이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심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2. 말씀
두 번째입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어요. 여러분 그렇습니다. 내가 누군가에 대한 나에 대한 정체성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말씀이 들리어지고, 말씀이 누려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냥 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거든요. 아브라함에게도, 모세에게도, 요셉에게도, 다윗에게도, 오늘 본문의 바울에게도 분명히 하나님이 시대적으로 쓰시는 사람들에게는 말씀을 주셨어요. 이 말씀이 내가 누구인가 나에 대한 정체성이 깨달아지는 만큼 말씀이 들리어지고, 말씀이 응답으로 누려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을 주시는데 23절에 “내가 속한 바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젯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했어요. 말씀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25절에도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 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이 바울에게 말씀을 주셨어요. 이 말씀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어떤 풍랑과 그 어떤 좌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공포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자기가 가진 소망을, 희망을 전달합니다. 그러면 이 바울이 어떻게 소망과 희망이 있었느냐? 다 같이 똑같은 환경 속에서 풍랑 가운데 절망할 수 밖에 없고, 공포 가운데 빠질 수 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이 바울은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었느냐?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들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있다 할지라도 평안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변화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평안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상황이 변화면 좋겠습니다마는 변화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씀이 있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 이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바울에게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풍랑과 공포에 좌절 가운데,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에게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이 있게 될 때에. 정말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쭉 보시면 결국은 말씀 가지고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느냐?
모든 현장의 흐름을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자 중심으로 해서 움직여 가는 것을 보게 되요. 우리가 현장에서 말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기도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현장의 주인공으로 삼으세요. 그래서 언약 붙잡고 기도하는 그 사람 통해서 그 현장의 모든 분위기와 환경들을 움직여 가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세요. 27절~31절에 보면 이제 육지에 가까워오니까 배에 탔던 사람들이 깊이가 어느 정도 되느냐 알아보기 위해서 재었습니다. 바다 깊이가 20길이라 했어요. 여기에 한길이 그 당시에 1.85미터 정도로 잡았어요. 그러면 2미터로 잡으면 20길이면 40미터지요. 조금 더 가다가 보니까 15길이예요. 30미터지요. 그러니까 사공들이 닻을 내리는 체하면서 거룻배를 띄워 내렸습니다. 29절에 닻을 내리고 30절에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고는 여기에서 거룻배는 구멍보트를 말합니다. 자기들만 살아남고자 사공들이 닻을 내리는 척 하면서 구멍보트를 내려 놓았어요. 그러니까 이것을 백부장과 군인들이 감지하고 해결해야 하는데 백부장과 군인들이 감지하지 못하고 바울이 눈치를 챘어요. 그래서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명령을 합니다. 저 거룻배를 끊어버리라 그렇지 않으면 이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이 다 죽게 되니까 저 거룻배를 끊어버리라 백부장과 군인이 명령해야 하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죄수의 신분인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에게 명령하고 그 명령 받은 군인들이 그 줄을 끊어 버리지요. 무엇을 말합니까? 그 배 안의 실제적인 주인은 바울인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약속 잡은, 말씀 잡은 바울인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또 오랫동안 먹지 못하다가 이제는 먹어도 되니까 바울이 이제는 먹으라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본으로서 먹고 먹는 것을 나누어 줬어요. 그러니까 배에 탔던 사람들이 같이 먹었다 했어요. 그리고 배가 부르니까 옆에 사람들이 보여지니까 아마 숫자를 세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276명 이었더라 나와요.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이 먹고 나서 너희들도 먹어라 했어요. 숫자를 세어보니까 276명이예요. 그런데 조금 가다가 이제 진짜 육지에 다다랐어요. 그래서 배를 안전하게 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쪽 저쪽에서 물이 몰아쳐 오면서 배의 뒷부분이 깨어져서 배가 좌초될 위기를 당했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군인들이 죄수들을 다 죽이려고 했어요. 죄수들이 이 틈을 타서 도망하게 되면 누구에게 책임을 묻게 되느냐? 자기들이 책임을 져야 되잖아요. 그래서 모든 죄수를 다 죽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도행전27장 43절에 보면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하여..” 지금 이 배 안에 누구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 움직이고 있습니까? 바울 중심으로, 약속의 말씀 가진 바울 중심으로. 그렇습니다. 지금도 현장에서 아무리 풍랑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약속의 말씀을 가진 저와 여러분 중심으로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움직여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 때문에 지구의 역사를 움직이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가진 저와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이 이 땅에 모든 역사를 움직여 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저는 제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압니다. 제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잘 압니다. 물론 모르는 것도 있죠. 그런데 제가 교회를 섬기면서 미안하고 또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부끄러운 것이 뭐냐 하면, 제게 있는 영적인 문제가 들통 나고 그것 때문에 분명히 내가 어려움 당해야 되는데 내가 들통 나고 내가 부끄러움을 당해야 되는데 내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 그분들을 통해 들추어 내 가지고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면서 저거는 내가 당해야 되는데...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교회의 담임목사로 세웠다는 그 이유 때문에 나를 너무나 세밀하게 하나님이 보호해 나가시는구나! 이 사실들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저 뿐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여러분 중심으로 모든 현장의 역사들을 바꾸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금요일 우리 집중훈련에 모 장로님이 간증하셨잖아요. 약속된 말씀의 흐름 놓치지 않고 계속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느냐? 장로님 중심으로 모든 것 다 움직여 갔어요. 아! 이것이 영적인 서밋의 자리에 선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저는 그것을 봤고 이 장로님 중심으로 해서 교회 밖에 전도의 시스템, 교회 안에 전도의 시스템, 그것뿐만이 아니라 한국 속에서도 장로님 통해 많은 문들을 열어 가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약속의 말씀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기도만 했는데.. 장로님이 그 말씀을 하셨어요. 기도만 했는데... 그렇습니다. 우리가 뭘 하는게 아닙니다. 이것 했기 때문에 저것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그게 아닙니다. 약속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기도 속에 있다면 하나님은 약속잡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역사를 바꿔 가실 줄로 믿습니다. 그 자리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어요. 마치 배 안에서 이 바울 중심으로 모든 것을 움직여 나갔던 것처럼.. 그래서 말씀 붙잡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놓친다는 그 자체가 저주와 재앙이에요. 왜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등으로 빛으로 주셨어요. 잠언서 29장 18절에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말씀이 없으면 백성들이 타락하게 되어 있어요. 다시 말해 저주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말씀을 붙잡게 되면 어떤 현장이든지 간에 그 현장에 주인공으로서 말씀 붙잡은 여러분 때문에 다 살게 되어 지는 그 축복된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정말 말씀이 있으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어요. 그리고 진짜 여러분, 어려움 당해 보신 분들 사람들 말이 위로가 안 되잖아요. 우리에게 참된 마음의 안심을 주고 평안을 주는 것은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3. 사명
세 번째입니다. 어떻게 바울이 풍랑 가운데 안심할 수 있었느냐? 바울에게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24절에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사도행전 9장에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나서 아나니아를 통해서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말씀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5절에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 약속의 사명을 가지고 바울이 복음 전하는 현장에 나갔는데 첫 번째 현장이 유대인의 현장이었어요. 그 현장에서 사도행전 9장 20절에 보면 바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니까 유대인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했어요. 계속해서 복음 전하는 현장에 바울이 나가게 됨으로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에베소에 큰 응답의 역사가 일어난 후에 바울이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사도행전 23장에도 마찬가지로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오늘 사도행전 27장 24절에도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하는 사명이 있었어요. 이 사명을 위해서 바울은 어느 정도로..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보면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했어요.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총독들이 죄 없다고 했잖아요. 이 자리에서 그냥 내 달라면 풀어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바울은 아닙니다. 나는 복음 때문에, 이 사명 때문에 로마에 가야 됩니다. 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리고 항소 당해도 나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합니다. 사명 때문에 가게 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대부분 먹는 것, 떡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렇잖아요. 세상의 보이는 것을 위해 늘 염려하고 걱정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죽어도 상관없었어요. 아니, 풀어주겠다는데 아니라고 했어요. 로마로 가야한다,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고 했어요. 미쳐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이에요.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 사명 다하기 까지 사명 가진 자는 하나님께서 그 사명 다하기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9-31절에 보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어요. 30절에 그리고 너희의 머리털 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했어요. 31절에 너희는 참새보다 더 귀하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거기에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진짜 하나님의 사명가진 자는 그 사명 다하기까지 주님께서 완벽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명가진 자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 나의 로마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 만에게 주신 사명, 나의 로마가 있습니까? 여러분, 그걸 발견함으로 하나님이 지키심을 체험하는 그 증거 있는 제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어느 정도 확신했느냐? 25절에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말씀에 대한 성취를 믿는다는 말도 되지만 그만큼 사명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26절에 보면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사명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44절에 사명가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다 구조되었어요. 그 구조된 곳이 어떤 곳인가 보니까 28장 1절에 보니까 벨리데 섬이에요. 사명 가진 한 사람 세워지게 될 때, 그 한 사람 통해서 다 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풍랑 가운데 있는 세상 속에 안심하십니까?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 내가 누구인가 나에 대한 정체성을 발견하시고 정체성이 깨달아 지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응답으로 누려집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고 응답으로 누려지는 만큼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눈이 열려지게 됩니다. 이 비밀을 가지게 될 때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안심을 누릴 수 있는 것이고 풍랑 만난 현장에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여러분이여 이제는 안심하라.”승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4년 11월 3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행27:22-24)



서론: 오늘 본문처럼 풍랑 가운데서는 백부장과 선장, 선주와 든든한 배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이 땅은 인생 자체가 풍랑 만난 시대로, 참 안식과 평안이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제는 안심하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22절, 25절).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고 있는데 참된 행복이 없기에 자꾸 이상한 곳에 집착, 중독(마약, 알콜, 인터넷, 도박)에 빠집니다. 엘리트들은 명상과 요가, 기운동에 빠지며 교회조차도 참된 복음이 희미해지니 신비운동, 율법주의에 빠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눈에 안 보이는 악한 사탄이 인생을 장악하는 이때에 바울이 오늘 안심하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영적 정체성 (소속감에 대한 확신) - 내가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 (23절)
(1) 사람들이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하나님을 떠나 사탄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1) 소속이 마귀 자녀로(요8:44, 엡2:3, 고후4:4) 자유없이, 운명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음(눅15장 탕자의 모습)
2) 그 결과 우상숭배 가운데 정신, 육신적인 문제가 오고 후대들이 망하며 결국 지옥에 들어감(계14:10)
(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벧전2:9)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인도, 역사하심(요5:24, 빌3:20, 요일3:2)
2) 또 하늘 군대를 동원하사 걸음마다 흑암 꺾으시고 천국시민권을 주시며 세계를 정복할 축복을 주심
2. 말씀 -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3절)
(1)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 먼저 말씀을 주십니다. (아브라함, 모세, 요셉, 다윗, 바울)
1) 우리의 정체성을 깨달아지는 만큼 말씀이 들려지고 주어진 말씀이 약속으로 붙잡힘
2) 말씀이 붙잡히면 풍랑 같은 공포와 좌절이, 희망과 소망으로 바뀌고 평안할 수 있음(23절, 25절)
(2) 우리는 현장의 주인공: 하나님은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자를 중심으로 현장을 움직이십니다.

3. 사명 -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24절)
(1) 바울은 말씀의 약속(행9:15, 19:21, 23:11, 27:24)을 붙잡고 생명을 다했습니다(행20:24).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바울에게 주신 사명이 다 할 때까지 보호하고 지키심(마10:29-31)
(2)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로마(나에게만 주신 사명)를 찾아서 결단하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진 한 사람만이라도 제대로 설 때, 주위의 모든 사람이 살아남


결론: 풍랑을 만난 세상 속에서 안심하십니까? 우리는 정체성이 발견되는 만큼, 말씀이 들려지고 응답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 주신 사명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가운데 주위의 모든 사람을 살리실 것입니다. 한주간 풍랑 만난 현장 가운데 “여러분이여 안심하라”고 당당히 고백하며 주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죄와 저주 가운데 사탄의 종이 된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셔서 자녀삼아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확실한 영적 정체성 가운데 말씀이 들려지고 붙잡힘으로, 현장의 주인공으로 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길 원합니다. 한주간 하나님께서 주신 나만의 사명을 찾아 결단함으로, 성령의 보호하심과 지키심 가운데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살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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