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기 있으니
2015-03-0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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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4:7~12)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4:7~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의 손이 그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오늘 찬양 너무나 감사하고 여러분의 그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물밀 듯 밀려옴으로 하나님 원하시는 영혼 사랑하는 귀한 눈이 열리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사랑은 여기 있으니.” “사랑은 여기 있으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보시면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이 전 이집트 제목을 다스리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앞에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 와서 서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요셉이 형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이 창세기 45장 5절에 보면“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여기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이것이 전도입니다. 그 하나님의 소원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바로 저와 여러분이 생명 얻는 것이고 생명 얻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 속에 우리 받은 생명 속에 내 가족의 생명이 있고 우리가 받은 생명 속에 내 직장, 만나는 사람들의 생명이 들어 있는 것이고 내가 받은 그 생명의 역사 속에는 이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생명의 역사들이 함께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요셉을 축복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생명 살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한 시간 예배가 그 하나님의 마음, 그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분의 마음에 담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성경의 쓰임받은 사람 - 영혼사랑
생명 구원이 하나님의 소원인데 이 생명의 구원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로 성경에 보면 쓰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쓰임 받은 사람은 한결같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들을 다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주 화요집회 때 전도제자 메시지, 우리가 함께 받은 메시지입니다만, 그러나 다시 한 번 우리가 확인하면서 정말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들을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8장에 보면 소돔, 고모라의 멸망을 선언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소돔, 고모라에 의인 50이 있으면 이 소돔, 고모라를 멸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래, 50명 찾으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50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다섯 명을 감해서 45인을 찾으면 멸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45인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40명, 30명, 20명, 마지막엔 10명까지 내려갔습니다. 그 이후에 아브라함이 묻지를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그러면 소돔, 고모라성에 열 명 의인만 찾아도 소돔, 고모라를 멸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열 명만 찾아도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했는데 그 이후에 아브라함이 묻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 영혼을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는데 많은 축복들 주는 가운데 창세기 21장에 보면 끊어졌던, 여러분, 이제는 도저히 낳으려야 낳을 수 없는 사라의 몸에서 이삭을 낳게 하는, 이런 엄청난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고난, 고통 당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모든 영광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그냥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 자기 백성이 애굽 사람들에 의해서 고난, 고통 당하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모세는 자기의 영광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25절, 26절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난당하고 노예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모세는 자기에게 주어진 영광을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모세가 살인 사건을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모든 기적과 축복과 모든 응답을 모세에게 다 맡긴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하고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도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정말로 그 중심 속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여러분, 우리가 일을 열심히 하면 얼마나 열심히 하겠습니까? 사실 하나님 앞에는 그게 필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돌로 떡을 만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일을 열심히 하느냐, 어떻게 일을 많이 하느냐, 그게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얼마만큼 전도를 많이 하느냐, 여러분, 그 사실 또한 하나님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 성경에 보면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여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문을 여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내가 한 영혼을 놓고 기도하면서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이것이 없다면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사단이 비웃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사단이 알 뿐만 아니라 더 정확하게 하나님도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 교회에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또 사람 관계들이 있습니다. 너무 섣부르게 보고 판단하지 마시고 멀리 미래를 놓고 그 한 사람의 영혼을 놓고 과연 악한 사단이 이 일을 통해서 어떻게 장난칠 것인가 이런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일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말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가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바알과 아세라 우상 가운데 완전히 멸망 받고 있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엘리야의 마음에 애타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감히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영적인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멜 산에서 엘리야 선지자 하나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영적인 싸움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시는 그런 역사를 가지고 엘리야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갈멜 산 전투에서 승리한 엘리야가 왕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왕이 갈멜 산에서 승리한 엘리야의 승리를 듣고 왕이 엘리야를 죽이고자 나섰습니다. 그 당시는 왕정시대입니다. 그러면 왕이 죽이겠다고 나오면 그 왕의 손길에서 피할 수가 없어요. 살길이 없어요. 결국은 살 길이 없어서 도망을 쳐서 어디로 갔느냐 하면 로뎀 나무 아래에 가서 앉아서 하나님 저는 다했습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것이 엘리야의 고백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로 멸망 받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애타하는 그 엘리야를 어떻게 축복하셨느냐하면 천사를 동원해서 떡과 물을 가져다 주면서 40주 40야를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지치지 않는 힘을 주셨고요, 그리고 호렙산에 이르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어요. 왕을 세우라 그리고 숨겨진 남은 자 7천 제자를 찾으라 너를 대신할 엘리사 선지자를 세우라. 이것은 바로 엘리야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귀중한 응답의 역사들을 주신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엘리야의 그 마음을 보고.. 그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보고. 신약시대에 보면 바울이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큰 역사 속에 쓰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에서 만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던 사람입니다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 중심이 어떻게 되었느냐 한 생명이라도 구원하는 이 일을 위해서 바울은 기도하였고 이 일을 위해서 그의 모든 사역에 생명을 걸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20:24절에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얼마만큼 영혼을 사랑하는가 그 중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로마서 9:3절에 보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내 골육이 구원 받는 일이라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저주 받아도 좋다고 했어요. 내가 그리스도 이름에서 제외진다 할지라도 괜찮다 했어요. 이 말은 저주받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이름에서 제해 버리는 것을 원하는 그 말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예요. 내 형제와 내 골육이 구원 받는 일이라면 바울의 중심에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고린도전서9:19~2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들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러면서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아래 있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한대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행한다 했어요. 그리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 없는 자가 아닌데 율법 없는 자 처럼 한다 했어요. 그리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 처럼.. 왜 그렇게 하느냐? 여러 모양의 사람을 여러 모양으로 그 중에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 말씀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한 시대에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열심히 전도하지요. 열심히 응답 받는 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왜 응답이 지속되지 않고 왜 전도가 안 되고 있습니까? 진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현장을 바라보시면서 주님의 마음입니다. 마태복음9:36~38절에 보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현장을 보면서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그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우리가 가진다면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문제와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기도가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교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어 있고요, 사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말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조금만 가진다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그 현장들을 우리가 조금만 보고 있다면 진짜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축복하실 것이고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은 축복하실 것입니다. 진짜 이 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이라면 우리 한 영혼 영혼을 놓고 기도하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언젠가부터 모르게 너무 복음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다 보니까 진짜 제대로 누리면 한 영혼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고 그 일에 헌신하고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할 것인데... 우리도 모르게 그 모든 것들 다 잊어버리고 내가 누리는 것만...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리는 것만...내가 좀 더 좋은 생활 그것은 아닙니다. 정말 오늘 이 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혼을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내가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영혼을 사랑해야 되겠다 영혼을 사랑해야 되겠다 그래서 영혼을 사랑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보면 영혼을 사랑할 수가 있어요. 외모가 아니라, 껍데기가 아니라 진짜 인간의 내적인 상태, 영적인 상태. 내면을 제대로 보면 영혼을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인간의 내적인 상태, 영적인 상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으로 볼 수 없어요.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인간을 이해하게 되어 있고,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어 있고,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인간의 내적, 영적 상태가 왜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인가 알게 되어 있습니다.
2.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라
그 복음이 무엇이냐? 두 번째 붙잡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결국은 신앙생활이란 뭐냐?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깨닫고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기 위함이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고 그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오늘 본문에도 말씀하고 있지요. 요한일서4:7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진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어요. 왜냐? 신앙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시작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진짜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9~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했어요. 오늘 우리 찬양대 정말로 날 위해 죽으시고 날 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보내신 그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예요. 그 사랑을 아무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절대 주권 속에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면서 10절에 뭐라 했습니까?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했어요.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화목제물로 주셨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을 진짜 깨닫고 누리는 사람은요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 할 줄 압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줄을 몰라요. 그래서 여러분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자녀들도 부모로부터 말미암아 풍성한 사랑을 받으면 아이 자체가 늘 사랑을 베푸는 아이가 됩니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가정에서 상처받고 그렇지 못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 가운데 자라났던 아이들, 사랑이 메마른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을 보면 뭔가 모르게 그 주위에는 사람도 없고 또 뭔가 모르게 많은 상처를 가지고 결국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체험하게 되면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받은 자가 그 사랑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깨닫고 받고 보면 내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내 가치를 깨닫는 만큼 다른 사람의 가치도 인정하게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리인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화목제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이 사실을 깨닫고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 볼 때도 이 사람은 그리스도면 되는데, 라는 눈으로 보게 되고 그 가치를 깨닫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정말 이 한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부은 바 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조건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 모르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모두가 우리가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선다면 내 자신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것도 내세울 게 없고 자랑할 게 없고 그 어떤 것 통해서도 구원받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무조건적인 사랑, 하나님의 선택적인 이 선택에 대한 부분을 설명할 때 보면 로마서 9장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서가 형입니다. 야곱은 동생입니다. 그러면 우선 축복받아야 할 사람은 에서입니다. 장자가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다 했습니다. 결국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뭔가 에서가 잘못해서 그러냐? 야곱이 잘 해서 그러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조건 없이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게 우리에게 주신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야곱처럼 전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인데 하나님이 조건 없이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신봉준, 너 이리 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보면 로마서 5장 7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또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악인을 위해서 죽는 자는 없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악인을 위해서 죽는 자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는데 언제 죽으셨느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된 나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모든 저주와 재앙, 사단, 지옥의 문제를 다 끝내신 것입니다. 어디서? 십자가에서. 그게 조건이 있느냐? 아닙니다. 죄인된 나를 위해서. 조건 없습니다. 선한 일을 했기 때문에? 아닙니다.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용감한 사람은 죽는 사람 있습니다. 있잖아요. 그런데, 악인을 위해서 죽는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인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 이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있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에서와 야곱이 태에 있을 때 쌍둥이였습니다. 자, 태어나서 잘한 것, 못한 것, 행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저주했고 야고는 축복받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 11-1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선택하심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의 선택입니다. 무엇을 행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절대주권 속에서의 선택이라는 사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내게 임한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내가 구원 받은 사실을 안다면 오늘 지금 여러분 옆에 앉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옆을 한번 보세요. 그 사람도 하나님이 절대주권 속에 조건 없이 하나님이 주신 무조건적인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6절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어 가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이루어 가시게 되어 있어요. 빌립보서 2장 13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렇습니다. 내게 소원을 두고, 오늘까지 나를 인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내 주위에 있는 그 사람에게도 소원을 두고 하나님이 행해 가신다라는 사실이에요. 이 눈이 열려져야 제대로 영혼을 사랑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들이 보여져야 내 옆에 있는 한사람 한사람 나와 함께 생활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가치가 보여지며 그를 위해 정말 중심 있는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다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전도라는 것은 오늘 우리 장로님이 기도하셨습니다만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사랑이 너무 크고 감사해서 이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 이게 전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축복을 주셨잖아요. 여러분, 지난날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문제와 사건들, 때로 고통 가운데 아픔가운데 눈물짓는 날도 있었지만 상처가운데 마음의 아파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를 깨닫고 나니까 그게 오히려 내게 없었으면 안 되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되었고 사람을 수용하는 것이 되었고 정말로 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그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서론에 제가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왔을 때 “두려워하지 마소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당신들 앞서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좋은 환경 속에서 상처 없이 살았기 때문이 아니잖아요. 많은 사건과 일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사랑, 그 구원의 역사들을 이 요셉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상처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형제들을 이해하는 발판이 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을 보면 사무엘상 22장 2절에 보면 거기에 아둘람굴로 다윗이 도망갔을 때 환란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나왔는데 약 4백 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임금 되었을 때가 아닙니다. 아둘람굴로 다윗이 도망간 그 자리에서 거기 어떤 사람이 모여들었느냐? 원통한자, 마음의 상함을 가진 자, 환란당한 자, 빚진 모든 자가 모였는데 충신들이 다 모여진 거예요. 4백 명. 여러분 왜 다윗에게 그런 사람들이 모였느냐? 다윗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 그 어려움 가운데서 깨닫게 되니까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살리게 되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마음에 담는 그릇이 되어진 것입니다. 혹여나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들이 있습니까? 그 문제와 사건 때문에 아파합니까? 그게 바로 지금 여러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부분들이고 지금 여러분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아파함과 슬퍼함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픔과 슬픔이라는 사실이 보여 지면 문제 보는 눈이 달라 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전도운동은 흑암의 역사들을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운동의 시작은 뭐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전도운동이 시작되어집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은 주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이 축복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 정말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시고 여러분 통해서 전도운동이 일어남으로 이 한 시대에 흑암을 막는 일에 쓰임을 받는 주역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3월 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4:7~12)
서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는 귀한 눈이 열려지는 축복을 받으면 됩니다.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것, 곧 전도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저와 여러분이 생명을 얻고, 또 우리를 위해 또다른 생명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생명에는 우리의 직장과 만나는 사람들의 생명이 담겨있습니다. 나아가 시대와 지역의 생명의 역사들이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1.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1) 성경에 쓰임 받은 인물들
1) 아브라함 : 하나님께서 축복할 수 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마음 (소돔과 고모라)
2) 모세: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모든 영광을 포기함 (히11:24-26)
3) 엘리야: 바알과 아세라의 멸망 받는 현장을 보며 애타는 마음 (선지자 850명과 영적인 싸움을 제시함)
4) 바울: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함 (행20:24, 롬9:3, 고전9:19-22)
(2)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고, 그 일에 헌신하라!!
1) 현장의 목자 없이 유리방황하는 양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라 (마9:36~39)
2)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사람, 문제와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교회내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음
2.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떠라!!
(1) 무조건적인 사랑
1)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조건이나 자격이 있을 수가 없음
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도록 하심(롬5:8)
(2) 절대주권 속에 있는 사랑
1) 하나님께서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심(롬9:11~13, 야곱과 에서)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빌1:6) 소원을 두고 행하심(빌2:13)
결론: 전도운동은 흑암의 역사를 막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운동의 시작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를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한 영혼을 사랑하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주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전도운동으로 한 시대에 흑암운동을 막는 일에 주역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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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먼저 주심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귀한 눈을 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소원인 ‘생명을 구원하는 것’에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하시고, ‘한 영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주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주권 속에 있는 사랑으로 현장의 흑암역사를 막는 주역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4:7~12)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4:7~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의 손이 그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오늘 찬양 너무나 감사하고 여러분의 그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 속에 물밀 듯 밀려옴으로 하나님 원하시는 영혼 사랑하는 귀한 눈이 열리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사랑은 여기 있으니.” “사랑은 여기 있으니”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보시면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이 전 이집트 제목을 다스리는 그런 자리에 서게 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 앞에 요셉을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 와서 서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요셉이 형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이 창세기 45장 5절에 보면“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여기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이것이 전도입니다. 그 하나님의 소원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바로 저와 여러분이 생명 얻는 것이고 생명 얻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이 속에 우리 받은 생명 속에 내 가족의 생명이 있고 우리가 받은 생명 속에 내 직장, 만나는 사람들의 생명이 들어 있는 것이고 내가 받은 그 생명의 역사 속에는 이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생명의 역사들이 함께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요셉을 축복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생명 살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축복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한 시간 예배가 그 하나님의 마음, 그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분의 마음에 담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성경의 쓰임받은 사람 - 영혼사랑
생명 구원이 하나님의 소원인데 이 생명의 구원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로 성경에 보면 쓰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쓰임 받은 사람은 한결같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들을 다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주 화요집회 때 전도제자 메시지, 우리가 함께 받은 메시지입니다만, 그러나 다시 한 번 우리가 확인하면서 정말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들을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가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8장에 보면 소돔, 고모라의 멸망을 선언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소돔, 고모라에 의인 50이 있으면 이 소돔, 고모라를 멸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래, 50명 찾으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50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다섯 명을 감해서 45인을 찾으면 멸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45인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40명, 30명, 20명, 마지막엔 10명까지 내려갔습니다. 그 이후에 아브라함이 묻지를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그러면 소돔, 고모라성에 열 명 의인만 찾아도 소돔, 고모라를 멸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열 명만 찾아도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했는데 그 이후에 아브라함이 묻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 영혼을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는데 많은 축복들 주는 가운데 창세기 21장에 보면 끊어졌던, 여러분, 이제는 도저히 낳으려야 낳을 수 없는 사라의 몸에서 이삭을 낳게 하는, 이런 엄청난 축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고난, 고통 당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모든 영광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그냥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 자기 백성이 애굽 사람들에 의해서 고난, 고통 당하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모세는 자기의 영광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25절, 26절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난당하고 노예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모세는 자기에게 주어진 영광을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모세가 살인 사건을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모든 기적과 축복과 모든 응답을 모세에게 다 맡긴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함에 있어서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하고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도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정말로 그 중심 속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여러분, 우리가 일을 열심히 하면 얼마나 열심히 하겠습니까? 사실 하나님 앞에는 그게 필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돌로 떡을 만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일을 열심히 하느냐, 어떻게 일을 많이 하느냐, 그게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가 얼마만큼 전도를 많이 하느냐, 여러분, 그 사실 또한 하나님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 성경에 보면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여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문을 여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내가 한 영혼을 놓고 기도하면서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이것이 없다면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하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사단이 비웃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사단이 알 뿐만 아니라 더 정확하게 하나님도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라 했습니다. 특히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 교회에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또 사람 관계들이 있습니다. 너무 섣부르게 보고 판단하지 마시고 멀리 미래를 놓고 그 한 사람의 영혼을 놓고 과연 악한 사단이 이 일을 통해서 어떻게 장난칠 것인가 이런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일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정말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가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바알과 아세라 우상 가운데 완전히 멸망 받고 있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엘리야의 마음에 애타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감히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영적인 싸움을 벌인 것입니다. 영적인 싸움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멜 산에서 엘리야 선지자 하나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영적인 싸움이 일어났는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시는 그런 역사를 가지고 엘리야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갈멜 산 전투에서 승리한 엘리야가 왕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왕이 갈멜 산에서 승리한 엘리야의 승리를 듣고 왕이 엘리야를 죽이고자 나섰습니다. 그 당시는 왕정시대입니다. 그러면 왕이 죽이겠다고 나오면 그 왕의 손길에서 피할 수가 없어요. 살길이 없어요. 결국은 살 길이 없어서 도망을 쳐서 어디로 갔느냐 하면 로뎀 나무 아래에 가서 앉아서 하나님 저는 다했습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그것이 엘리야의 고백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로 멸망 받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애타하는 그 엘리야를 어떻게 축복하셨느냐하면 천사를 동원해서 떡과 물을 가져다 주면서 40주 40야를 걸어가도 피곤치 않고 지치지 않는 힘을 주셨고요, 그리고 호렙산에 이르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어요. 왕을 세우라 그리고 숨겨진 남은 자 7천 제자를 찾으라 너를 대신할 엘리사 선지자를 세우라. 이것은 바로 엘리야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귀중한 응답의 역사들을 주신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엘리야의 그 마음을 보고.. 그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보고. 신약시대에 보면 바울이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큰 역사 속에 쓰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에서 만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섰던 사람입니다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 중심이 어떻게 되었느냐 한 생명이라도 구원하는 이 일을 위해서 바울은 기도하였고 이 일을 위해서 그의 모든 사역에 생명을 걸었던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20:24절에 보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얼마만큼 영혼을 사랑하는가 그 중심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로마서 9:3절에 보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내 골육이 구원 받는 일이라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저주 받아도 좋다고 했어요. 내가 그리스도 이름에서 제외진다 할지라도 괜찮다 했어요. 이 말은 저주받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이름에서 제해 버리는 것을 원하는 그 말이 아닙니다. 무슨 말이예요. 내 형제와 내 골육이 구원 받는 일이라면 바울의 중심에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고린도전서9:19~22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들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러면서 바울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아래 있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한대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행한다 했어요. 그리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 없는 자가 아닌데 율법 없는 자 처럼 한다 했어요. 그리고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 처럼.. 왜 그렇게 하느냐? 여러 모양의 사람을 여러 모양으로 그 중에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 말씀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한 시대에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열심히 전도하지요. 열심히 응답 받는 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왜 응답이 지속되지 않고 왜 전도가 안 되고 있습니까? 진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현장을 바라보시면서 주님의 마음입니다. 마태복음9:36~38절에 보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현장을 보면서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그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우리가 가진다면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문제와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기도가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교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어 있고요, 사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말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조금만 가진다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고 방황하는 그 현장들을 우리가 조금만 보고 있다면 진짜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축복하실 것이고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은 축복하실 것입니다. 진짜 이 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이라면 우리 한 영혼 영혼을 놓고 기도하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언젠가부터 모르게 너무 복음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다 보니까 진짜 제대로 누리면 한 영혼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고 그 일에 헌신하고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할 것인데... 우리도 모르게 그 모든 것들 다 잊어버리고 내가 누리는 것만...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리는 것만...내가 좀 더 좋은 생활 그것은 아닙니다. 정말 오늘 이 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지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혼을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내가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영혼을 사랑해야 되겠다 영혼을 사랑해야 되겠다 그래서 영혼을 사랑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내면을 제대로 보면 영혼을 사랑할 수가 있어요. 외모가 아니라, 껍데기가 아니라 진짜 인간의 내적인 상태, 영적인 상태. 내면을 제대로 보면 영혼을 사랑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인간의 내적인 상태, 영적인 상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것으로 볼 수 없어요.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인간을 이해하게 되어 있고,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어 있고, 복음을 제대로 알면 알수록 인간의 내적, 영적 상태가 왜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인가 알게 되어 있습니다.
2.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라
그 복음이 무엇이냐? 두 번째 붙잡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결국은 신앙생활이란 뭐냐?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깨닫고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기 위함이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고 그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오늘 본문에도 말씀하고 있지요. 요한일서4:7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진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어요. 왜냐? 신앙생활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시작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이기 때문에 진짜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9~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했어요. 오늘 우리 찬양대 정말로 날 위해 죽으시고 날 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보내신 그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예요. 그 사랑을 아무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절대 주권 속에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면서 10절에 뭐라 했습니까?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했어요.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화목제물로 주셨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을 진짜 깨닫고 누리는 사람은요 사랑받은 사람만이 사랑 할 줄 압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줄을 몰라요. 그래서 여러분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우리 자녀들도 부모로부터 말미암아 풍성한 사랑을 받으면 아이 자체가 늘 사랑을 베푸는 아이가 됩니다. 그런데 뭔가 모르게 가정에서 상처받고 그렇지 못한 환경 속에서 어려움 가운데 자라났던 아이들, 사랑이 메마른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을 보면 뭔가 모르게 그 주위에는 사람도 없고 또 뭔가 모르게 많은 상처를 가지고 결국 어렵게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체험하게 되면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받은 자가 그 사랑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깨닫고 받고 보면 내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내 가치를 깨닫는 만큼 다른 사람의 가치도 인정하게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리인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화목제물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이 사실을 깨닫고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 볼 때도 이 사람은 그리스도면 되는데, 라는 눈으로 보게 되고 그 가치를 깨닫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정말 이 한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부은 바 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조건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 모르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모두가 우리가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선다면 내 자신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것도 내세울 게 없고 자랑할 게 없고 그 어떤 것 통해서도 구원받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무조건적인 사랑, 하나님의 선택적인 이 선택에 대한 부분을 설명할 때 보면 로마서 9장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에서가 형입니다. 야곱은 동생입니다. 그러면 우선 축복받아야 할 사람은 에서입니다. 장자가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하셨다 했습니다. 결국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뭔가 에서가 잘못해서 그러냐? 야곱이 잘 해서 그러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조건 없이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게 우리에게 주신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야곱처럼 전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인데 하나님이 조건 없이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신봉준, 너 이리 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성경에 보면 로마서 5장 7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또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악인을 위해서 죽는 자는 없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악인을 위해서 죽는 자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는데 언제 죽으셨느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된 나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모든 저주와 재앙, 사단, 지옥의 문제를 다 끝내신 것입니다. 어디서? 십자가에서. 그게 조건이 있느냐? 아닙니다. 죄인된 나를 위해서. 조건 없습니다. 선한 일을 했기 때문에? 아닙니다.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용감한 사람은 죽는 사람 있습니다. 있잖아요. 그런데, 악인을 위해서 죽는 사람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인된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 이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있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에서와 야곱이 태에 있을 때 쌍둥이였습니다. 자, 태어나서 잘한 것, 못한 것, 행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저주했고 야고는 축복받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9장 11-13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선택하심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의 선택입니다. 무엇을 행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절대주권 속에서의 선택이라는 사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내게 임한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 내가 구원 받은 사실을 안다면 오늘 지금 여러분 옆에 앉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옆을 한번 보세요. 그 사람도 하나님이 절대주권 속에 조건 없이 하나님이 주신 무조건적인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1장 6절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어 가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이루어 가시게 되어 있어요. 빌립보서 2장 13절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렇습니다. 내게 소원을 두고, 오늘까지 나를 인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내 주위에 있는 그 사람에게도 소원을 두고 하나님이 행해 가신다라는 사실이에요. 이 눈이 열려져야 제대로 영혼을 사랑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 부르신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들이 보여져야 내 옆에 있는 한사람 한사람 나와 함께 생활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가치가 보여지며 그를 위해 정말 중심 있는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다라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전도라는 것은 오늘 우리 장로님이 기도하셨습니다만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사랑이 너무 크고 감사해서 이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 이게 전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축복을 주셨잖아요. 여러분, 지난날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문제와 사건들, 때로 고통 가운데 아픔가운데 눈물짓는 날도 있었지만 상처가운데 마음의 아파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를 깨닫고 나니까 그게 오히려 내게 없었으면 안 되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되었고 사람을 수용하는 것이 되었고 정말로 한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그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 서론에 제가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왔을 때 “두려워하지 마소서 당신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당신들 앞서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좋은 환경 속에서 상처 없이 살았기 때문이 아니잖아요. 많은 사건과 일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사랑, 그 구원의 역사들을 이 요셉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상처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형제들을 이해하는 발판이 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을 보면 사무엘상 22장 2절에 보면 거기에 아둘람굴로 다윗이 도망갔을 때 환란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나왔는데 약 4백 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임금 되었을 때가 아닙니다. 아둘람굴로 다윗이 도망간 그 자리에서 거기 어떤 사람이 모여들었느냐? 원통한자, 마음의 상함을 가진 자, 환란당한 자, 빚진 모든 자가 모였는데 충신들이 다 모여진 거예요. 4백 명. 여러분 왜 다윗에게 그런 사람들이 모였느냐? 다윗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 사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들, 그 어려움 가운데서 깨닫게 되니까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살리게 되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마음에 담는 그릇이 되어진 것입니다. 혹여나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들이 있습니까? 그 문제와 사건 때문에 아파합니까? 그게 바로 지금 여러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부분들이고 지금 여러분의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아파함과 슬퍼함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픔과 슬픔이라는 사실이 보여 지면 문제 보는 눈이 달라 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전도운동은 흑암의 역사들을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도운동의 시작은 뭐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전도운동이 시작되어집니다.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은 주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이 축복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저와 여러분 정말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시고 여러분 통해서 전도운동이 일어남으로 이 한 시대에 흑암을 막는 일에 쓰임을 받는 주역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3월 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4:7~12)
서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은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는 귀한 눈이 열려지는 축복을 받으면 됩니다.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신 것, 곧 전도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저와 여러분이 생명을 얻고, 또 우리를 위해 또다른 생명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생명에는 우리의 직장과 만나는 사람들의 생명이 담겨있습니다. 나아가 시대와 지역의 생명의 역사들이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1.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1) 성경에 쓰임 받은 인물들
1) 아브라함 : 하나님께서 축복할 수 밖에 없는 아브라함의 마음 (소돔과 고모라)
2) 모세: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모든 영광을 포기함 (히11:24-26)
3) 엘리야: 바알과 아세라의 멸망 받는 현장을 보며 애타는 마음 (선지자 850명과 영적인 싸움을 제시함)
4) 바울: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함 (행20:24, 롬9:3, 고전9:19-22)
(2) 한 영혼의 가치를 깨닫고, 그 일에 헌신하라!!
1) 현장의 목자 없이 유리방황하는 양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라 (마9:36~39)
2)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사람, 문제와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교회내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음
2.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떠라!!
(1) 무조건적인 사랑
1)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조건이나 자격이 있을 수가 없음
2)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도록 하심(롬5:8)
(2) 절대주권 속에 있는 사랑
1) 하나님께서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심(롬9:11~13, 야곱과 에서)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빌1:6) 소원을 두고 행하심(빌2:13)
결론: 전도운동은 흑암의 역사를 막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운동의 시작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를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한 영혼을 사랑하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주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전도운동으로 한 시대에 흑암운동을 막는 일에 주역이 되시길 바랍니다.
`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아무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먼저 주심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귀한 눈을 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소원인 ‘생명을 구원하는 것’에 참된 가치를 깨닫게 하시고, ‘한 영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한주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주권 속에 있는 사랑으로 현장의 흑암역사를 막는 주역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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