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부르심을 받은 자
2015-03-29 00:00:00
관리자
조회수   42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3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부르심을 받은 자”
(롬1:1~7)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 롬1: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 그의 손이 그 일을 마치노라 이 인사보다 찬양 듣는 가운데 크게 외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 우리 한번 크게 예수는 그리스도! 외쳐 보십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할렐루야! 아멘. 오늘 바로 이 복음의 역사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부분들 가지고 최고의 은혜 받는 축복된 한 시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로운 찬양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미래교회에 대해서 연구하는 미래학자 한 분이 책을 한권 내 놓았어요.「한국교회의 미래 지도」라는 책인데 2020~2050년 「한국교회의 미래 지도」제목으로 책을 내 놓았는데 앞으로 한국교회가 성장이 정체되어지고 성장이 정체되어지니까 재정적인 위기들이 교회에 몰아닥치게 되어 있고 그래서 결국 교회가 파탄되어지고 분열되어질 것이다. 그것이 빠르면 2~3년 안에 시작될 것이고, 길게는 10년 지나면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가 그 위기를 그냥 위기로 맞이하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야 된다고 여러 가지 대안들을 이야기하면서 왜 교회가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느냐 거기에 대한 이유들을 말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교회가 교회다움의 역사들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교회다움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면 오직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이 복음의 역사들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이 복음의 본질 이 사실을 상실했기 때문에 앞으로 2050년도가면 한국교회는 교인들이 500~600만밖에 안 되는 엄청난 감소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의 상실...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사실은 뭔가 열심히 나름대로 한다고 하고 바쁜데 교회가 싸움이 일어나고 또 핍박이 일어나고 분열이 되어지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이지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까지도 교회 하면 골치 아픈 곳이라고 이야기 하고 분열하고 싸움하는 곳으로 비쳐질 정도로 완전히 한국교회가 바닥을 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그 속에 있는 성도들은 방황하고 있는 것이고, 응답을 누리지 못해서 갈등하고 있는 이런 부분들을 보게 되지요. 진짜 제대로 응답받고 힘을 얻으면 방황할 수가 없는 것이고 교회는 되게 되어 있는데 응답받지 못한다는 말이고 힘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그 응답 받지 못하고, 힘을 얻지 못하는 배경에는 결국 복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현장에서 갈등하면서 방황하는 성도들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믈론 교회가 여러 가지 일들로 분주합니다. 그래서 사실 가만히 살펴보면 본질적인 것들은 다 놓쳐버리고 부수적인 것, 주변의 것, 현실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들로 바쁜 것이 요즘 한국교회가 아닌가 라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뭔가 성공하는 길이 뭘까? 취직 하는 것, 사업잘 되는 것, 좋은 학교 들어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고, 건강하고,,,거의 다 사실 본질은 아니거든요. 교회가 가져야 될 본질이 아닌데 본질을 놓쳐버리니까 주변의 것을 붙잡고 거기에 모든 시간들을 다 보내고 있으면서 가면 갈수록 더 큰 문제들로 찾아오게 되는 부분들을 보게 됩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되는 것이고, 우리 개개인이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에 총신 다니는 신학생들 한 10여명과 함께 식사하면서 잠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제 신학교 들어가서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로서 앞으로 교역자로서 어떤 중심과 자세를 가지고 인도를 받아야 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들을 같이 나누는 시간들이 있었는데요. 제가 그 시간에 같이 생각을 해 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저는 교회가 좋았어요. 그리고 너무 주의 종들이 존경스러웠고 너무 좋았고, 교회 있는 것이 좋고, 교회 가는 것이 좋고, 또 중직자 한 분 한 분 보면 너무나 귀중하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까지도 너무나 소중하고 그냥 좋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일들이 맡겨지면 그 일에 내가 쓰임 받는 그 자체가 감사했고, 내가 어쩌다가 이런 축복된 일에 쓰임 받을까 거기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했고 그냥 좋았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배경에는 결국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깨닫고부터 그냥 교회가 좋았던 것으로 생각되어졌어요. 로마서5: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이 말씀이 제 마음속에 깨달아지면서 정말로 더럽고 추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아니 죽었던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또 귀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쓰임 받도록 부르셨다는 그 자체가 감사했고, 어떤 이유와 조건이 없어요. 그냥 좋았어요. 저는 진짜 교회에 갈 때에 날아가는 듯 했고 성도들을 보면 천사들 같았어요. 그것이 언제냐 하면 참된 복음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회복했을 때였어요. 여러분 특별히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한 모든 성도님들 혹이나 뭔가 교회에 대해서 불신앙이 자꾸 들고 불평, 불만이 자꾸 일어나고 또 원망하는 일들이 자꾸 생기시면 진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교회 산업선교회 영산업인 중심으로 해서 집중훈련이 있었는데 그 집중훈련 속에 우리 장로님 한 분이 나오셔서 간증을 하셨는데 학교 교편을 잡고 계시는 분인데 이 분이 학교가 그냥 좋아요. 학생들이 그냥 좋고, 이 복음 때문에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좋고, 여러분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그렇습니까? 그런데 사실 선생님들도 교편 잡고 선생님하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런데 학교가 좋고, 아이들이 좋고, 학교 와서 복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좋고 그러면 현장은 정복된 것 아닙니까? 그것이 어디에서 오느냐? 참된 복음의 본질을 붙잡게 될 때에 찾아오는 비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음을 알고 있고 복음을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기도도 달라지고, 우리의 신앙색깔도 복음을 이해하는 데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기도도 복음을 이해하는 만큼 기도가 되게 되어 있고요 전도도 되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복음이 이해 안 되었다면 전도할 수도 없는 것이고 기도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절대로 기도 안 됩니다. 복음이 없이는. 복음이 없이는 절대로 전도 안 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때에 따라서 공부도 잘할 수 있고, 사업도 잘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복음에서 시작되지 않으면 그것이 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 복음을 모르고 복음을 놓쳐버리면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고, 우리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잘 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어느 시대 보다도 지금 복음이 필요한 시대에 특별히 지난 주에도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마는 오늘 이 시간에 진짜 복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 복음이 나의 것이 되는 그런 축복된 응답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6절에도 보면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7절에도 보면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입었고,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을 잘 알아야 되지요. 거룩한 욕심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교회 성도들은 어느 현장에 가든지 복음을 제일 잘 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복음의 핵심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복음의 핵심이 뭐냐?라는 사실을 좀 정리를 해야 됩니다. 지난 주간에 로마서1:1~4절을 살펴보았는데 하나님의 복음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어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참된 능력이 있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능력이 있다고 우리가 말씀을 정리했습니다. 오늘 조금 더 그 부분을 살펴보면서 함께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데 여러분 성경 가운데서 모든 성경에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게 복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로마서1:2~4절입니다. 2절에 보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했어요. 그렇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지는데 구약은 옛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입니다. 창세기에서 말라기 구약의 옛 약속은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 할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이고 신약은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예수님으로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부분이 신약입니다. 성경전체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눅24:44~45절에 보면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이 당시에 신약성경은 다 완성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구약성경만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모세의 율법, 선지자들의 글, 시편이 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다고 했어요. 바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미리 이미 약속 하셨는데 그 약속을 아담 하와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사망상태에 이르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셨는데 창세기 3: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미리 약속하셨는데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원색복음, 원 복음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하나님을 떠나자 말자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 여자의 후손은 단 한번 있었던 사건이고요, 또 한 분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인간의 하나님 떠난 원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바로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여자의 몸을 빌어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원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 죄인 된 저와 여러분을 죄 가운데서 건져내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야 하는데 바로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같은 말이지요. 그리고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뱀에게 내린 저주인데요. 모든 권세가 깨트려진다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머리가 깨뜨려진 겁니다. 그리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문다고 했습니다. 이 발꿈치를 문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에 대한 부분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전체가 이미 우리에게 주신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실 것에 대한 구약의 모든 성경이 약속이었다라는 것 그래서 성경을 보면 노아시대의 방주사건이 나오고, 애굽에 종노릇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해방시킨 사건이 나오고,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놋뱀을 들어서 저주 재앙 가운데서 해방 받고 살 길을 주는 그 축복의 약속들이 나오는데 그 모든 약속이 전부다 누구를 이야기 하고 있느냐 하면 성경에서 미리 약속하신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성경에 보면 모든 사건과 모든 일을 다양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다양함 속에 결국은 한 가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건들이 있고, 많은 일들을 성경에서 전개를 하고 있지만 구약에 보면 결국 그것은 한 가지. 우리에게 구원 얻는 이름 바로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오시느냐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육신의 모습을 입고 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님이 바로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오신다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이미 예언하신 부분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1: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족보에 대해서 쭈욱 설명하고 있는 것이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데 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2:6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바로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하나님이 약속대로 그 분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입니다. 다음 주간이 부활주일이고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산으로 올라가신 그 주간이 이번 주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고난 주간보다도 더 고난의 시작이 어디에 있었느냐 하면 바로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더 큰 고난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빌립보2:6~8절 말씀처럼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말씀하시면서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낮아지셨다 말씀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도 고난이지만 하나님이 인간 세계 속에 들어오신 이 사건이 이것이 고난 중의 고난입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우리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셔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1:14절에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이 피조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왜 오셨느냐? 우리의 먹고 사는 것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배고픔을 먹여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고요, 우리의 병든 부분을 치유해 주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니고요, 물론 그런 부분들도 없지 않아 있지요. 그런데 왜 육신의 몸을 입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느냐? 그리스도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그리스도의 일이 무엇이냐? 4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우리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뭔가 없는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서, 우리의 병든 부분을 고쳐 낫게 하기 위해서 온 것도 온 것이지만 그것이 근본 이유가 아닙니다. 본질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 그리스도의 일은 바로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여기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했을 때에 축복을 선언하시고 나서 마태복음16:21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비로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우리가 모든 것들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왔는데 그러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내가 오른편에 왼편에 내가 앉을 자리로 찜해 놓았는데 만약에 예수님이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가운데서 특별히 용기 있는 베드로가 “결단코 이 일이 주께 미치지 못하나이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나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로다”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오셨어요. 죽으셔야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죽으셔야 우리의 참된 해방을 주실 수 있기 때문에 죽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나를 위한 것이고, 나의 생명을 위한 죽으심입니다. 반드시 죽어야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잖아요. 죽어야 우리의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그리고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오늘 4절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에서 사망에서 생명을 주셨고요, 이로 말미암아 지옥의 배경을 가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에게 하늘보좌의 배경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바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러면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 당하고 있는 모든 문제, 고통, 저주, 모든 근원을 해결하셨어요.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일을 하셨는데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모든 고통과 저주와 재앙과 모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셨는데, 그 근원은 바로 죄와 사탄과 하나님을 떠난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죄의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범죄하게 되고, 분열을 일으키고, 분쟁을 일으키고, 온갖 이상한 짓들을 하게 되어 있어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참 제사장으로 오셔서 이 죄로 인한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서8: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말씀 했습니다. 우리가 혹 살아가다보면 연약한 관계로 육신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넘어질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그리스도 언약 붙잡으면 새롭게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사1:1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할렐루야! 우리가 연약할 수 있고, 부족할 수 있고, 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죄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 언약 붙잡으면 새로운 시작과 함께 승리를 보장 받은 신분이 저와 여러분의 신분인 것입니다. 요한일서1:9절에도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나니”할렐루야! 죄 문제 끝났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 인한 저주 끝났어요. 그 뿐만 아닙니다.
여러분 결국은 죄를 짓게 만드는 그 배후의 세력이 있어요. 저주, 재앙 가운데로 끌고 가는 그 배후의 세력이 있어요. 그 배후세력이 뭐냐? 바로 창세기 3장의 뱀이라고 있는데, 그 뱀은 바로 사탄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악한 사탄으로 말미암아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속에 악한 사탄이 역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창세기3장 사건을 일으켰고요,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서 모든 사람을 타락하게 만들었는데 노아 홍수로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타락으로 몰고 갔어요. 그것이 바로 창세기6장의 네피림 사건이었고요, 또 이 악한 사탄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을 대항하도록 만들었어요. 그게 바로 창세기11장의 바벨탑 사건입니다. 이 악한 사탄이 정치를 파고 들었어요. 사도행전13장에 보면 총독이 여기에 메여 있었어요. 정치를 파고들었어요. 이 악한 사탄이 경제를 파고 들었어요. 그래서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을 바울팀이 귀신을 쫓아내니까 그것을 통해 이익을 보던 자들이 바울팀을 고소해 버렸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악한 사탄이 경제를 파고 들었어요. 사도행전19장에 보면 우상을 통해서 결국 악한 사탄이 모든 사람을 멸망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의 인생을 악한 사탄이 붙잡고 사탄의 운명 가운데서 멸망시키는 존재가 바로 이 배후의 세력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참 왕으로 오셔서, 이 사탄의 머리를 깨트려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 끝났어요.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에게 악한 사탄 공격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악한 사탄이 마지막 자기 남은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발악하는데 속지만 않으면 됩니다. 악한 사탄의 머리는 이미 깨트려버리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뿐만 아닙니다. 결국은 그 배경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독립선언을 한 것이예요. 나는 하나님 필요없다 라는 것, 내 혼자 잘 할 수있다 라는 것, 내 기준, 내 생각, 내 계획대로 살아가면 된다라는 것이예요. 우리들 마음속에 만연하고 있잖아요, 우리 후대들 가운데 이런 부분들이 지금 파고들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하나님을 떠난 사건입니다. 나는 하나님 필요없다라는 것,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 안에 있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났다...결국 한계가 오게 되어 있고요. 그래서 결국은 내가 중심되어지고, 내 기준, 내 계획대로 살아가게 되니까 거기에 대해서 어떤 일을 당하면 집착하게 되어있고, 중독에 빠지고, 결국 할 수 없는 무능함 속에 빠지게 되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 떠난 인간에게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선지자로 그리스도를 보내 주사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 놓으시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되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축복의 비밀들을 온전히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복음에 대해서 알아야 되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냐?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이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문제, 죄와 바로 사탄과 하나님을 떠난 문제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해 버린 것입니다.

2. 복음의 절대가치를 실제로 체험하라.
두 번째입니다. 이 복음의 역사를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이 복음의 절대가치를 내가 체험해야 됩니다. 오늘 성경 로마서 1장 5절에 보면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직분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복음과 나와 관계가 되어 있는 ‘복음의 개인화’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게 되어 지니까 7절 마지막에 보면 “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로 복음이 사실적으로 내 개인화 되니까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의 절대가치를 내가 사실화해야 되는 것이고 실제로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갈대아우르, 우상숭배 하는 동네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축복하신 것이 창세기 12장 1-3절인데 “내가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러면서 “천하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주었습니다. 이 약속 붙잡고 아브라함이 그 축복을 누려야 되는데 문제를 당했습니다. 바로 창세기 12장 10절에 보면 그 땅에 기근이 들었어요. 그러면 진짜 복음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그 기근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이 엄청난 약속을 주셨는데 어떻게 하시는가 보자하고 기다리면 되는데 그 기근이 들었을 때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 애굽에 내려가게 되었어요. 그로 말미암아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되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죽을 지경까지 위기가운데 빠진 사실을 보게 됩니다. 거기 하나님이 손을 대어서 또 깨닫게 하신 부분을 보게 되죠. 여러분 대부분 우리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 가운데 세워 놨는데 문제와 사건과 일들을 당하면 우리도 모르게 거기에 빠져서 약속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복음의 역사들을 사실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 축복을 못 누리는 겁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사자굴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어요. 이미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았습니다. 다리오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 절을 하면 분명히 사자굴에 들어갈 줄을 알았다니까요. 알면서도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했잖아요. 조서에 어인이 찍힌 줄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를 보내실 그 땅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했다는 말이죠. 그리스도, 그 복음을 놓치지 않았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알게 되니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마지막에 보면 “감사함으로 기도했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분명히 알았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자굴에서 다니엘을 보호하시는 복음의 능력을 사실적으로 체험한 사건들을 보게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습니다.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는 애굽에서 빠져 나왔어요. 하나님의 기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다면 그 앞에 홍해가 있고 요단강이 있고 여리고가 있어도 그 모든 문제들은 복음의 역사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이 사실을 알았던 모세는 홍해 앞에서 “너희는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해서 행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이것을 알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같이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모세를 돌을 들어 치려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문제와 사건들 여러 가지 일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복음의 역사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주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다윗을 보면서 많은 은혜를 입는데요, 다윗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폭포소리와 같다고 했어요. 여러분 폭포소리가 얼마나 시끄럽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그냥 폭포가 아니라 ‘주의 폭포’라고 이야기 했어요. 무슨 말이냐? 모든 문제와 사건들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부분임을 알았던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환경도 문제될 것이 없고 그 환경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축복 속에 들어가게 된 것이죠. 여러분 초대교회 핍박 받는 것, 하나님이 몰랐겠습니까.. 핍박하는 바리새인들 로마 정치를 하나님이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왜 허락했겠습니까? 복음의 능력 체험하고 오직의 비밀 속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이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의 절대적인 가치를 실제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회입니다. 오직의 비밀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기회입니다. 여러분, 복음은 없어지지 않아요. 그리스도는 영원히 그리스도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그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신분을 바꾸셨어요. 골로새서 1장 13절에 보면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했어요. 왜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로 옮기셨느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라고 에베소서 1장 3절에 말씀하고 있어요. 생각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문제가 있어도 여러분, 원수 끝났고요, 저주 끝났고요, 우리의 모든 고난, 고생 끝난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모든 문제는 뭐냐? 바로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의 역사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 우리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게 되어 있어요.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 말씀했어요. 그리고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억지로 마지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넉넉하게 승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충만함을 허락하셨어요. 이 축복된 근원을 가지고 문제와 사건을 바라보면서 모든 문제를 축복의 기회로 삼는 그런 역사들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복음을 사실적으로 체험하느냐? 이 복음의 절대적인 가치를 사실적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체험하느냐? 어떤 사람은 실컷 고생하며 체험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완전히 실패해 가지고 쫄딱 망해서 체험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중한 병에 걸려서 체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다 좋은 겁니다. 어떻든지 복음의 역사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니까.. 그런데 그렇게 체험하지 마시고요, 제가 어떤 분과 다락방을 하면서 그 분이 불신자상태에 대해 쭉 이야기를 들으면서 “목사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 군데도 걸려드는 것이 없는데 내가 지금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제가 “쫄딱 망하고 예수 믿는 것도 복인데 망하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은 더 복이 아닙니까,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까!” 사실, 망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자기가 망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죠,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가 다 망해서 예수 믿는 것도 복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도 참된 복음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그게 바로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붙잡는 겁니다. 말씀으로 우리에게 각인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 때 그냥 앉아 있지 마시고, 하나님 말씀이 내 영혼 속에 각인 되도록 기도하세요. 말씀이 각인 될 때 거기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 고 했어요(히브리서4:12). 크로스비는 자기가 원치 않게 소경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어머니와 그 할머니가 어릴 때부터 하나님 말씀을 심어 줬어요. 그로 말미암아 나타난 찬송 가사들,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찬송이 되어지는 사실이에요. 말씀이 각인되는 것. 우리가 각인된 데로 응답이 나타납니다. 뭐가 각인 되었느냐? 응답이 나타난다니까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진짜 말씀으로 각인되어지는 그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시간 예배가 그냥 예배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영혼에 각인되어지는 그런 예배가 되어 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로 뿌리를 내리는 겁니다. 기도로 뿌리 내리는 것. 뿌리 내린 대로 열매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으로 각인되어지고 그것을 기도로 뿌리 내리고 그러면 증거가진 증인되어집니다. 바로 전도의 증인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증인으로서 체질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체질대로 살다가 갑니다. 그런데 증거가진 증인으로서 체질되어지면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죠. 그래서 실제적인 복음의 능력, 사실적으로 체험하는 기회가 뭐냐?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붙잡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나가면 어느 날 보면 나도 모르게 기도의 서밋의 자리에 딱 서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 내 기능에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나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으니까.. 내 학업에 하나님 주시는 증거가 나타나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으니까.. 이게 기도의 서밋에 서는 것이죠. 그렇게 되고 현장 가면 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따라 올 수밖에 없어요. 마치 보디발이 요셉을 따라 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다윗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 다윗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현장에 가면 현장을 리더하는 현장의 서밋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영적인 서밋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로마서 1장 1절에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 6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무슨 말입니까? 로마 속에 있지만, 구별된 특별한 자로 하나님께서 축복해서 부르셨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지금도 악한 사탄이 영적으로 혼란과 흑암과 혼돈과 공허함 속에서 모든 인생을 멸망 길로 끌고 가고 있어요. 이런 세상 속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구별하여서 특별한 사람으로 우리를 불러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능력이 있다면 복음이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역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한 시대를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전도자들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3월 2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부르심을 입은 자
(롬1:1-7)


서론: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본질, 복음의 역사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에게 한국교회는 싸우고 분열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으며, 그 속의 성도들은 응답을 받지 못한 채 방황하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교회는 반드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롬5:8)를 회복해야 합니다. 복음을 어떻게 알고 이해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이해하는 만큼 기도도 알게 되고 전도도 되어집니다. 복음에서 시작되지 않은 모든 것은 결국은 실패하게 되어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자(롬1:1,6,7)로서, 어떤 현장에 가더라도 복음을 제일 잘 아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1. 복음의 핵심
(1) 복음의 정의
1) 성경에 약속하신 것(눅24:44-45) - 구약: 그리스도를 보내겠다. 신약: 그리스도께서 예수로 오셨다.
2)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 영적 사망에 있을 때, 아담에게 약속하신 것(창3:15)
3) 모든 사건과 일이 다양하지만, 단 한가지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임(방주, 유월절, 놋뱀)
(2)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롬1:3).
1) 다윗의 혈통으로(마1:1) 사람과 동등됨을 취해 오신 것(빌2:6) - 창조주께서 피조물로 오심
2)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1:14) 그리스도의 일(롬1:4)을 하려고 오신 것 - 죽으심과 부활하심
(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친히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롬8:2).
1) 모든 죄를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도록(사1:18) 사하시고 깨끗하게(요일1:9) 하심 - 참 선지자
2) 악한 사탄의 배후: 인생타락(창3,6,11장)과 정치,경제,문화(행13,16장,19장)의 문제 해결 - 참 왕
3) 스스로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내 기준,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만나는 길 되심 - 참 선지자
2. 복음의 절대가치를 실제로 체험하라
(1) 복음의 개인화(5절)로, 은혜와 평강(7절)을 누려라
1) 아브라함(기근으로 애굽에 내려감)과 이스라엘 백성(홍해 앞에서 불신앙)은 누리지 못할때도 있었음
2) 다니엘(사자굴)과 다윗(주의 폭포소리), 초대교회는 복음의 능력과 오직의 비밀 속으로 들어가는 축복을 누림
(2) 모든 것은 복음의 절대적 가치를 체험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 생각을 바꿔라
1) 신령한 복을 주시기 위해(엡1:3)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골1:13)로 우리를 인도하심 - 신분 바꿈
2) 혼자 있을 때도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고전3:16), 세상을 넉넉히 승리할 수 있도록 성령충만을 허락하심
(3) 어떻게 복음의 가치를 체험하느냐?
1) 말씀: 우리의 영혹 속에 각인시켜라 2) 기도: 말씀을 가지고 기도로 뿌리내려라
3) 전도: 증거 가진 증인으로 전도가 체질화 됨 4) 영적 서밋이 됨(기도의 서밋, 기능의 서밋 현장의 서밋)

결론: 바울은 -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롬1:1),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음(1:6),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1:7) -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속에 있지만 구별된 특별한 자로 축복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악한 사탄의 흑암, 혼돈, 공허의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구별하여 특별한 사람을 불러내셨습니다. 참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한주간 이 축복과 능력을 누림으로 시대를 살리는 전도자로 쓰임받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한주간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죽었던 우리를 위해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의 각인과 기도의 뿌리와 전도의 체질로 복음의 절대 가치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길 원합니다. 한주간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은 자로서 어떤 현장과 사건들 앞에서도 복음을 가장 잘 알고 누리는 전도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