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능력
2015-04-1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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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의 능력”
(롬1:15~17)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5~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할렐루야!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구원,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을 돌리고 오늘 이 한날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최고로 체험되는 귀한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이 자리에 영육간에 병든 가운데 참석하신 분들, 복음의 능력으로 재창조의 역사로 치유되는 축복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복음의 능력.” “복음의 능력”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교회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여러분에게 떠오릅니까? 지금 말고 여러분이 어릴 때부터 죽 신앙 생활했던 분들, 여러분의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서 교회가 어떠한 곳이었는가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이미지 속에 어떤 모습이 떠오릅니까? 70대, 80대의 어르신들에게 물어 보면,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 죽 했던 분들은 겨울이 되면 동네동네 돌아가면서 부흥회 참석하면서 은혜 받았던 것, 그게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동네들이 교회들 같이 부흥회한 것이 아니고, 그것도 겹치지 않게, 교회교회마다 부흥회 일자를 다르게 잡아서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저 동네에서 이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하고 은혜 받던, 그래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삶을 영위하며 살아갔던 부분을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저는 제 자신의 중고등부 시절, 어릴 때 신앙 생활을 생각해 보면 복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복음을 이해도 못했고 복음과 상관없이 그냥 교회 행사 위주로, 교회 안에 특히 학생들 겨울이 되면 불러 모아 놓고 문학의 밤도 하고 성가 발표회도 하고 또 크리스마스 전날 밤새도록 선물 교환하면서 놀고, 그리고 여자 보기 위해서 교회 가고. 그런 것들, 행사 위주로, 또 어떤 문학적인 부분들 이런 부분들, 이것이 제 중고 어린 시절에 신앙 생활했던 그런 모습이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복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복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깊이 포럼하고,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아마 복음과 무관하게 살아온 삶이 되어졌고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온 삶이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제 목소리가 좋지요? 제가 이 목소리 좋은 덕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성가 발표회를 하면 성시 낭독은 도맡아서 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사실은. 무슨 말이냐? 진짜 복음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복음의 능력, 복음의 영향력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부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계속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한 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지금 우리 학생들이, 대학교 다니는 아이들이나 또 직장 생활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학교 안에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복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우리 아이들이 있는가? 또 직장, 사회 생활 속에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드러내놓을 수 있는, 그런 사회 생활, 직장 생활하시는 분이 계시는가? 여러분, 혹여나 학교 생활하면서 신앙 생활한다는 것, 교회 다닌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계시지는 않는지, 또 직장, 사회 생활하면서 교회 다니는 것을 다 숨기고 부끄러워하면서 그렇게 직장 생활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그 배경은 참된 복음의 능력을 모른다는 말이고 복음의 영향력이 내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학교의 우리 친구들, 어쩌다 이제 교회 가는 모습, 신앙 생활하는 부분을 아이들에게 들키게 되면, 그건 들킨다는 것입니다, 숨기다가 들키게 되면 친구들이 무엇이라 합니까? 니 아직까지 교회 다니냐? 그런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니 아직까지 교회 다니냐? 교회 다니는 것이 뭔가 무식한 사람들이, 모자란 사람들이 다니는 것처럼 니가 아직까지 교회 다니느냐 그런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게 왜 그렇습니까? 복음의 영향력이 우리 삶의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복음, 교회 다니는 것을 숨기고 신앙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한국 교회에, 우리 한국 사람들 대상으로 해서 종교의 선호도를 한 번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런데 거기 통계에 나온 부분을 보면 가장 종교에 대해 괜찮게 생각하는 것이 천주교이고, 그 다음이 불교이고, 그 다음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3위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교회에 대해 걱정을 하고, 세상에서 교회의 싸움이나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걱정하고, 교회는 안 된다는 부분을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복음의 능력, 그 영향력들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덩달아서 거기에 예수 믿는, 신앙 생활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신앙 생활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바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신앙 가지고 복음 가지고 있는 부분들을 부끄러워하고 미련하게 보는 그런 것이 바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2절~23절에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그 당시에도 복음 가진 것을 미련하게 여기고 부끄럽게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가운데 표를 안 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 가진 것을 자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 바로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할렐루야! 바울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인데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로마서 1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은 티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표를 안 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자랑했느냐? 갈라디아 6장 14절에 보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자랑하지, 결코 자랑하지 아니하겠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반대로 말하면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것만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고 이 복음의 역사를, 제대로 영향력을 나타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바울이 로마서 1장 16절~17절, 이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면서 동일하게 오늘 로마서 1장 16절~17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말씀하면서 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복음을 자랑한 사실,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울의 마음 속에 얼마만큼 복음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 복음을 자랑해야겠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오늘 읽은 로마서 1장 16절~17절은 이 로마서 성경의 모든, 로마서 1장부터 16장까지 전체적인 성경을 축약해서 한 구절로 말한다면 로마서 1장 16절~17절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주제 말씀입니다, 사실. 로마서가 16장까지 있지 않습니까? 그 16장까지 있는 말씀을 한 구절로 축약해서 말씀을 한다면 바로 이 로마서 1장 16절~17절을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그 능력을 제대로 알고 누리고 그 사실을 증거한 바울의 고백을 보게 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러분, 이 본문을 읽다가 충격 받고 종교 개혁을 시작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마틴 루터입니다. 사실 마틴 루터는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카톨릭 교회이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아니, 하루에 일곱 번은 늘 성경보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그 삶이 수도사로서 계속되었습니다. 늘 하루에 일곱 번 찬송하고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고, 그런 삶이 계속되는데 한편으론 찬송을 하면서도 뭔가 모르게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고 답답함이 일어나고, 찬송을 하기는 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뻐야 하는데 기뻐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함께 무언가 모르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이 늘 이 루터에 마음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왜냐? 내가 무언가를 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착한 일을 하고 무언가 의를 내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열심히, 나름대로 했습니다만 그러나 참된 기쁨은 없고 신앙 생활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신앙 생활하면 할수록 더욱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러니까 분노와 증오심,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만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루터가 깨달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말씀을 딱 읽는 순간, 그 때 루터가 고백한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새로 태어나서 열린 문을 통해서 낙원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하늘을 통하는 하나의 문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생각들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롭게 성경 보는 눈이 열리면서 그렇다,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그 의가 나를 살리는 것이구나,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약속을 붙잡고 그 당시에 로마 교권 속에, 얼마나 막강했습니까? 왕들도 교권 앞에 무릎 꿇게 되는 시대였습니다. 황제조차도 이 교권 앞에 무릎 꿇게 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한낱 힘없던 이 루터가 어떻게 그 종교 개혁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까? 딴 게 아닙니다. 참된 복음의 능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에 감히 그 시대 종교 개혁을 이루면서 새로운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감당함으로 이 개신교,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잘 아시지요?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정말로 복음의 능력을 누리는 그 축복 속에 여러분이 들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역사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그 구원의 역사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 그게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이 한 시대 속에서,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아니,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악한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공격해오는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복음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제대로 복음의 능력을 알지 않고서는 현장을 살릴 수 없고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예배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진짜 복음의 능력을 힘입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통해서 모든 현장과 사람이 살아나는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복음은 왜 능력이 있는가?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복음은 왜 능력이 있는가입니다. 복음은 왜 능력이 있는가?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눈에 보이는 육신 세계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사실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세계, 현실적인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11장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어요. 지금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나타난 것으로, 실지로 드러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되어졌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이고, 육신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어나는 일들, 하나님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해서 돕는 천사들을 동원 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악한 사탄이 그 영을 붙잡고 멸망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짜 제대로 영적인 세계를 보면 성령이냐 악령이냐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어요. 감히 악령의 역사들을 어떻게 성령의 역사와 같은 반열에 둘 수 있겠습니까마는 같은 반열을 주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영적인 역사에는 성령이냐 악령이냐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이냐 사탄이냐입니다. 그 중간지대는 없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대구노회 캠프가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모여서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서 천사들에 대해서, 사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너무나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데 영적세계에 대해서 얼마만큼 실제를 아느냐에 따라서 세상 현장을 살리고 현장의 리더자가 될 수 있고, 현장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결론적으로 이야기 했어요. 악한 사탄의 역사, 믿는 자에게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 얼마나 알고 얼마나 이 사실을 실제적으로 누리느냐에 따라서 마지막 시대에 모든 현장을 살릴 수 있고, 현장속의 리더자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귀신 충만해서 사탄 숭배자로서 평생을 살아왔던 사람, 한 32년동안 살아왔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 받고 간증한 내용을 제가 봤는데요 그 사람의 간증을 들어보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현실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일들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일이 영적 세계에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영적세계에서 일어난다. 사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영적문제 이 말 자체도 몰랐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든 영적세계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보다 더 구체적인 일들이 더 실제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이야기 했어요. 지난 주간에 어떤 분과 말씀을 나누고 이분이 말씀 나눈 뒤에 식사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분은 불교에도 심취해 봤고, 주역 있잖아요. 그냥 대충하는 사람이 아니고 한 가지에 빠지면 진짜 끝을 보는 사람이예요. 몰두해 봤어요. 그런데 이분이 복음을 받고 인도받고 계시는데 마치고 나서 잠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서 파룬궁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파룬궁 들어보셨지요? 어디 공원 같은 곳에 가보면 무도인처럼 하잖아요. 그런데 중국에서 핍박이 일어나니까 전 세계로 흩어져서 제가 홍콩에 가서도 봤고요, 어느 나라에 가 보니까 산꼭대기에 와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데 파룬궁이예요. 그런데 이 분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파룬궁에서는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이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의 영을 부린다고 해요, 영을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 했느냐 하면 결국은 사탄이네요. 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배경은 성령의 역사이냐 사탄의 역사이냐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여기서 일어나요. 우리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느냐 중요합니다. 물론 사탄의 배경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공부해서 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느냐가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이예요. 결국은 복음 위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결국은 나중에 가서 다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 있는 부분들 놓고 보지 마시고요, 우리는 근시안적인 눈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당장 된다 안된다 그것 가지고 판단하는데 아닙니다. 마지막을 놓고 결론을 놓고 봐야 합니다. 진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의지해서 인도받고 있느냐?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출세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예요. 왜냐? 반드시 악령의 역사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진짜 우리가 중요하게 눈을 열어서 볼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4월 초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자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이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번영신학, 그리고 성공, 인간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성경의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서 어떻든지 인간의 성공을 위해서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할 수 있다. 긍정의 힘 이런 부분들 가지고 전 세계를 움직였잖아요. 그런데 지금 수정교회. 크리스탈 처어치라고 해서 전부 유리로 지은 세계 초대형교회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기사를 보면서 재미있는 글을 봤어요. 뭐냐 하면 결국 번영신학과 성공의 탑이 무너졌다. 지금 그 교회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 그 교회가 교회 운영이 안 되어서 파산되어지고 지금은 아예 카톨릭 교회에 매각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로버트 슐러 목사와 함께 그 교회 번영신학의 몰락이다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글을 쓴 그 분에 의하면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부활의 역사에 대해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고 오직 인간이 번영하고 성공하는 것만 그것을 위해서 모든 성경을 동원한 사람이다 라고 그렇게 지적한 부분을 보게 됩니다마는 여러분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로 나의 성공이 성령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성공이냐? 여러분 공부하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뭔가 이루어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여러분 건물이 높으면 높을수록 무너짐이 심한 것처럼 진짜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 나오는 모든 성공은 결국은 그 무너짐이 더욱 더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만도 일어나는 일들을 보세요. 나름대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 한순간에 문제들이 일어나니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내가 죽으면 되지해서 결국은 그 순간에 악령에게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매일매일 삶 속에서도 성령께서 인도하시지만은 믿지 않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악령의 역사에 사로잡혀서 결국은 생명을 끊게 되는 역사를 가져와요. 성공이 다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 중요합니다. 다가 아닙니다. 어느 바탕 속에, 어느 위에 서 있느냐? 여러분 우리가 진짜 은혜 받지 못하면, 복음 깨닫지 못하면 성공하는 그 자체가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복음 깨닫지 못하고 진짜 믿지 못하고 은혜 받지 못하면 가지고 있는 돈, 부자 되었습니까? 그것이 오히려 복음을 내가 받아 들이는 일에 방해가 되어지고, 그것이 우상이 되어지고, 그것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도 보게 되어요. 복음 없이 여러분 건강하십니까? 백이면 백 어디로 빠지느냐 타락과 음란으로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복음가지고 은혜가운데 있다. 지금 안되는 것이 안 되는 것 아닙니다. 좀 부족하고 연약해도 여러분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고 실수한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는 것이고, 문제를 당한다 해도 우리가 은혜 속에 있으면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히 이 세계는 영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있고, 그 영적인 세계 배후에는 창세기3장의 악한 사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세계에 존재하는 비밀을 안다면 거기에 유일한 답은 복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 땅에 없어요. 뭐가 중요합니까?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5절에 아담 하와가 뱀 속에 들어간 사탄의 속임에 빠져서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독립선언입니다. 나는 하나님 없어도 된다는 독립선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문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고, 이 땅의 모든 인생에게 문제가 오게 된 것이지요. 인간이 실수해서, 공부를 못해서 문제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서 문제가 왔다라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악한 사탄이 지배하기 시작했어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에게 일어나는 문제들, 어떤 문제들입니까? 사탄이 인생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우상 숭배 해야 되고요, 우상 숭배하니까 인간이 정신적인 문제가 오지요, 육신의 문제가 오지요. 여러 가지 온갖 질병이 옵니다. 그 정신적인 문제와 육신의 온갖 질병속에서 사회적인 문제, 가정의 모든 문제들이 나와요, 그리고 하나님이 계심을 알지 못하니까 지금 있는 것이 다예요. 그런데 뭔가 모르게 인간에게 내세에 대한 불안들이 늘 있는 거에요.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그 불안가운데 살면서 저주와 재앙의 삶을 나도 원치 않지만 후대들에게 그대로 영적인 유산으로 물려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서 사탄이 인생을 지배하니까 나오는 역사들입니다. 그래서 복음 말고는 이 땅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복음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되어도 괜찮고 안 되어도 괜찮고 상관없어요. 일이 잘되어도 상관없고요, 일이 전혀 안되어도 상관없어요. 요셉 보세요. 복음가진 요셉, 감옥으로 가도 상관없었고요, 노예로 가도 상관없었어요. 총리가 되어도 교만하지 않았어요. 어떤 일을 당해도 요셉은 승리했어요. 왜냐? 복음만이 해답이기 때문에 그 복음을 요셉이 가졌기 때문에...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이 안 되어 있으면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고, 모든 게 문제예요. 잘되면 잘 되는대로 문제이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문제고, 이래도 저래도 모든 것이 문제로 올 수 밖에 없는 것이예요. 왜냐? 그 근본에 창세기 3장의 원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복음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음인 그리스도를 보내사 사탄을 꺽을 수 있도록 하셨고,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응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내신 것이고, 축복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것입니다. 복음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래서 창세기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여기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한다. 네 머리를 깨트려 버린다는 사실이예요.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은 남자의 후손이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납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밖에 없어요. 여자의 후손으로 왔다는 말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없는 남자가 없는 아이라면 사생아입니까? 그런 말이 아닙니다.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말은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탄과 원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여시고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는데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베드로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행4: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그렇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 얻을 수 없고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원죄 문제 해결 할 수 없고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사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될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복음 안으로만 들어가면 됩니다. 복음의 능력만 체험하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축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마귀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길, 기도응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성령인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그 고질적인 문제, 아무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친히 그리스도를 주신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복음이고, 그리스도 복음이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면 알수록 다른 것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이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많은 것들을 자꾸 기웃거리는데요,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러분 복음 그 속에 더욱 더 깊이 들어가게 되어있고 복음을 체험하면 할수록 결국은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보게 되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어느 교파 중에서는 예수 외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이야기 하는 곳도 있어요. 지금 WCC 시대라고 이야기 하는데 세상 바깥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예수 외에도 구원 받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기는 믿되 거기에 뭔가를 보태야 된다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은 TV의 대담 프로를 봤는데 도올 김용옥씨와 천주교의 신부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아주 유명한 분이 대담하는 내용을 봤어요. 김용옥씨가 물었어요. 왜 기독교는 독선적으로 그리스도만 믿어야 된다고 이야기 하느냐? 그때 신부님이 하신 이야기가 “예수 믿어도 구원 받고 착한 일을 해도 구원 받는다고 했어요.” 여러분, 그렇다면 굳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굳이 이 좋은날에 여러분 뭣 하러 여기에 와 계십니까? 오늘 새벽기도를 마치고 가다가 보니까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차를 대절해서 얼마나 산에 오르기 좋은 날입니까? 많은 사람이 배낭 하나씩 매고 차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더라구요. 여러분, 착한 일을 해 가지고 선한 일을 하고 덕을 쌓아서 구원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이런 좋은 날 여기 와서 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기독교인들 보니까 나쁜 짓들만 다하고.. 나는 그것들(기독교인들) 보다 더 착하다. 남에게 피해도 안주고 남에게 해도 안 끼치고 나는 그것들 보다 더 착하다.” 뭔가 착각을 해도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는 우리의 원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아무 가치도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이사야 64장 6절에 우리의 가진 뭔가 자랑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게 하나님 앞에는 누더기 옷과 같다고 했어요.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것이 인생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이 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안 됩니다. 착각하지 마셔야 합니다. 나는 죄도 안 짓고... 여러분 죄 안 짓는다고 해도요, 가지고 있는 원죄 문제 그 부분을 해결 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해적선 이야기를 아시죠. 우리의 원죄 문제를 해결 하지 않으면 아무리 착해도 해적선 안에 있는 도둑놈은 어떻습니까? 그 안에 있으면서 착하면 착할수록 오히려 더 나쁜 놈입니다. 그렇잖아요. 거기서 빠져 나와야죠. 거기서 빠져 나오는 유일한 것이 바로 복음이고 그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을 주신 거예요. 그리고 뭔가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예수그리스도 말고 뭔가를 더 보태는데 아닙니다. 결국 교회가 지금 그런식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삶을 강조하고 덕을 강조하고 모든 윤리 도덕을 강조하면서 자꾸 그런 식으로 뭔가를 자꾸 더 보탭니다. 그러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나중에 더해진 거기다가 자꾸 더하다 보면 본질은(그리스도) 다 빠지고 더해진 것만 남게 되요. 그게 교회사 속에 흘러온 내용들이에요. 여러분, 우리에게 참된 복음 그리스도, 그 능력을 체험함으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는 결론 가진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이 복음의 능력을 알게 되면 다른 일에 분주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장 28-29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리이까?” 그때 예수님이 중요한 말씀을 했어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이것하고 저것하고 그게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믿는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그 복음의 능력 알면 알수록 그 복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모든 것이고 내가 복음 속에 들어가면 갈수록 거기에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훈련에서 안양 동부교회의 김동권목사님이 말씀했어요. 자기는 자기 교회의 부교역자들에게 “일하지 말라. 왜 자꾸 일하려고 하느냐? 일하지 말고 복음 누려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 누리면 누릴수록, 복음의 능력 체험하면 할수록 결국 누가 일하시느냐? 하나님이 일하시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복음이 필요해요. 나는 복음의 역사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혹시나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을 향해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합니다.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복음의 능력 속에 들어가는 것, 그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로마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고 있는데 바울이 로마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느냐? 로마서 1장 15절에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이미 로마에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했어요. 이게 무슨말입니까? 13절에도 보세요.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8절도 보세요.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교회를 이야기 하면서 너희 모든 사람,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닙니까?
여러분.. 로마 교회가 믿음이 있어가지고 그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되었다고 했어요. 뭐가 부족할 게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로마교회에 바울은 복음 전하기를 원했다는 거예요. 지금 구원 받았다고 하는 저와 여러분이 복음에 뿌리 내리고 복음의 능력 속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도 복음 알고 세상에 복음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그 복음의 능력들이 체험되어져야 됨을 이 부분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정말로 복음의 능력 속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살리는, 교회를 살리는 그 축복된 응답은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바울의 고백 - 복음의 능력을 안 바울의 고백
두 번째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오늘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의,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의인은 산다.. 이 복음의 역사들을 너무나 감격스러워 했던 부분을 보게 됩니다. 이 바울은 골로새서 2장 2~3절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 이라고 말하면서 3절에 그 안에 모든 지혜와 모든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 졌다, 누구 안에?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는 것. 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믿습니까? 바울은 빌립보서 3장 8절에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복음을 깨닫고 나서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 여러분 그리스도로 모든 문제에 답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왜냐? 가장 고상한 지식, 그리스도를 가졌기 때문에. 이런 체험들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에베소 2장 8~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 바울이 감격스러운 복음의 능력 앞에 고백한 내용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 하는 것이죠.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가지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고 했는데 그 믿음조차도 은혜에 의하여, 그게 누가 주신 것이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어요. 바울의 복음의 능력을 안 감격 속에서 나온 고백이에요. 여러분, 이 복음의 능력을 알게 되면 우리의 관심이 변해요. 지난 날 세상에 좋았던 것들이 뭔가 모르게 세상이 싫어져요. 담배 태우고 술 마시고 그런 것들이 뭔가 모르게 복음 깨닫고 누리고 복음의 능력 알면 저절로 멀어지게 되어 있어요. 세상 좋아 하는 것들이 저절로 멀어지게 되어 있어요. 복음의 능력 제대로 체험하면.. 그리고 분명히 증거가 오게 되어 있어요.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나는 복음으로 말미암은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 있고 그 다음에 복음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뭐냐 하면 사실은 우리의 모든 현장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가 보여지게 되요. 그러니까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편 34편 8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 정말 복음의 능력을 맛보아 아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했어요. 단순히 생명 얻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복음의 능력들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체험하시느냐? 말씀 받을 때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각인되도록. 그게 우리의 기도 속에서 뿌리가 내려지도록. 그게 우리의 체질이 되도록 증인으로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가지고 복음의 맛을 체험함으로 참된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 통해서 현장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현장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주역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4월 1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의 능력
(롬1:15-17)
서론: 직장속에서 학교속에서 예수를 믿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부끄러워하며 숨기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모르고 복음의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교회 다니는 것이 무식하고 모자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숨기고 신앙생활 하게 됩니다. 이런 부분들이 바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고전1:22-23). 그러나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1:24, 롬1:16)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못 박힌 것만 자랑(갈6:14)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고백(로마서의 핵심구절, 롬1:16-17)을 붙잡고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이루었습니다. 왕과 황제도 교권에 무릎을 꿇던 시대에 참된 복음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이루며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시며,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현장과 사람을 살리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1. 복음은 왜 능력이 있는가?
(1) 이 땅의 모든 배경은 영적인 세계와 육신의 세계로 구분됩니다. (성령이냐? 악령이냐?)
1) 우리의 성공은 어느 배경에서 이루어지는지가 중요함(아니면 더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음)
2) 은혜 받지 못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면, 성공자체가 저주와 재앙이 될 수 있음(우리가 어디에 있느냐?)
(2) 그러기에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 창3:5 하나님을 떠남으로 우상숭배문제, 정신·육신·사회문제, 죽음과 후대문제에 빠짐(원죄로 인한 불신자 상태)
2) 창3:15 복음 말고는 이 땅에 다른 길은 없으며(행4:12) 우리에게 복음만 있다면 문제될 것 없음(요셉)
(3) 복음은 능력입니다. (요15:5, 그리스도가 아니면 될 것이 없음)
1) 우리의 의는 하나님 앞에 누더기 옷과 같으며(사64: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임(요6:28-29)
2) 복음은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마귀를 꺾을 수 있으며, 기도응답을 받고 성령인도를 받는 유일한 길임
2. 바울의 고백
(1)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바울의 고백
1)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자 의(롬1:16-17)이며, 모든 지식과 지혜, 보화가 감추어져 있음(골2:2-3)
2) 복음은 가장 고상한 지식(빌3:8)이고,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구원을 받음(엡2:8-9)
(2) 복음의 능력을 알고 깨닫고 누리면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1) 복음의 능력을 누리면, 우리의 관심이 변하고 오는 여러 세대에 임하는 증거가 오게 됨
2) 그때부터 현장 속에 가장 필요한 것이 보여짐으로 승리할 수 밖에 없음
결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4:8),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하기 위함입니다(요10:10).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면 됩니다. 어떻게 누릴 것이냐? 말씀 받을 때 각인되도록, 기도속에서 뿌리 내리도록, 전도를 통해 체질되도록 하면 됩니다. 한주간 이 축복과 능력을 누림으로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현장을 살리는 주역되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복음의 능력을 알고 복음의 영향력이 나타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자랑스럽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의 모든 배경이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로 구분되는 것을 보며, 우리의 성공이 오직 성령의 배경에서 복음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옵소서. 한주간 복음의 능력을 체험함으로 우리의 관심이 변하고 현장의 필요가 보여짐으로 승리를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복음의 능력”
(롬1:15~17)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5~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할렐루야!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구원, 그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을 돌리고 오늘 이 한날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 개개인에게 최고로 체험되는 귀한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이 자리에 영육간에 병든 가운데 참석하신 분들, 복음의 능력으로 재창조의 역사로 치유되는 축복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복음의 능력.” “복음의 능력”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교회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여러분에게 떠오릅니까? 지금 말고 여러분이 어릴 때부터 죽 신앙 생활했던 분들, 여러분의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서 교회가 어떠한 곳이었는가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이미지 속에 어떤 모습이 떠오릅니까? 70대, 80대의 어르신들에게 물어 보면,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 죽 했던 분들은 겨울이 되면 동네동네 돌아가면서 부흥회 참석하면서 은혜 받았던 것, 그게 제일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동네들이 교회들 같이 부흥회한 것이 아니고, 그것도 겹치지 않게, 교회교회마다 부흥회 일자를 다르게 잡아서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저 동네에서 이 동네로 돌아다니면서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하고 은혜 받던, 그래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삶을 영위하며 살아갔던 부분을 고백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저는 제 자신의 중고등부 시절, 어릴 때 신앙 생활을 생각해 보면 복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복음을 이해도 못했고 복음과 상관없이 그냥 교회 행사 위주로, 교회 안에 특히 학생들 겨울이 되면 불러 모아 놓고 문학의 밤도 하고 성가 발표회도 하고 또 크리스마스 전날 밤새도록 선물 교환하면서 놀고, 그리고 여자 보기 위해서 교회 가고. 그런 것들, 행사 위주로, 또 어떤 문학적인 부분들 이런 부분들, 이것이 제 중고 어린 시절에 신앙 생활했던 그런 모습이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복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복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깊이 포럼하고,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아마 복음과 무관하게 살아온 삶이 되어졌고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온 삶이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제 목소리가 좋지요? 제가 이 목소리 좋은 덕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성가 발표회를 하면 성시 낭독은 도맡아서 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사실은. 무슨 말이냐? 진짜 복음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복음의 능력, 복음의 영향력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부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계속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한 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지금 우리 학생들이, 대학교 다니는 아이들이나 또 직장 생활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학교 안에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복음에 대해서 얘기하고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우리 아이들이 있는가? 또 직장, 사회 생활 속에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드러내놓을 수 있는, 그런 사회 생활, 직장 생활하시는 분이 계시는가? 여러분, 혹여나 학교 생활하면서 신앙 생활한다는 것, 교회 다닌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계시지는 않는지, 또 직장, 사회 생활하면서 교회 다니는 것을 다 숨기고 부끄러워하면서 그렇게 직장 생활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다면 그 배경은 참된 복음의 능력을 모른다는 말이고 복음의 영향력이 내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학교의 우리 친구들, 어쩌다 이제 교회 가는 모습, 신앙 생활하는 부분을 아이들에게 들키게 되면, 그건 들킨다는 것입니다, 숨기다가 들키게 되면 친구들이 무엇이라 합니까? 니 아직까지 교회 다니냐? 그런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니 아직까지 교회 다니냐? 교회 다니는 것이 뭔가 무식한 사람들이, 모자란 사람들이 다니는 것처럼 니가 아직까지 교회 다니느냐 그런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게 왜 그렇습니까? 복음의 영향력이 우리 삶의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복음, 교회 다니는 것을 숨기고 신앙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 지금 한국 교회에, 우리 한국 사람들 대상으로 해서 종교의 선호도를 한 번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런데 거기 통계에 나온 부분을 보면 가장 종교에 대해 괜찮게 생각하는 것이 천주교이고, 그 다음이 불교이고, 그 다음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3위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교회에 대해 걱정을 하고, 세상에서 교회의 싸움이나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걱정하고, 교회는 안 된다는 부분을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복음의 능력, 그 영향력들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덩달아서 거기에 예수 믿는, 신앙 생활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신앙 생활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바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신앙 가지고 복음 가지고 있는 부분들을 부끄러워하고 미련하게 보는 그런 것이 바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22절~23절에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그 당시에도 복음 가진 것을 미련하게 여기고 부끄럽게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가운데 표를 안 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 가진 것을 자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4절, 바로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할렐루야! 바울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인데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로마서 1장 16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은 티를 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표를 안 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복음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어느 정도로 자랑했느냐? 갈라디아 6장 14절에 보면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자랑하지, 결코 자랑하지 아니하겠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반대로 말하면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힌 그것만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고 이 복음의 역사를, 제대로 영향력을 나타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바울이 로마서 1장 16절~17절, 이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면서 동일하게 오늘 로마서 1장 16절~17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말씀하면서 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복음을 자랑한 사실,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울의 마음 속에 얼마만큼 복음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이 복음을 자랑해야겠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오늘 읽은 로마서 1장 16절~17절은 이 로마서 성경의 모든, 로마서 1장부터 16장까지 전체적인 성경을 축약해서 한 구절로 말한다면 로마서 1장 16절~17절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주제 말씀입니다, 사실. 로마서가 16장까지 있지 않습니까? 그 16장까지 있는 말씀을 한 구절로 축약해서 말씀을 한다면 바로 이 로마서 1장 16절~17절을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그 능력을 제대로 알고 누리고 그 사실을 증거한 바울의 고백을 보게 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러분, 이 본문을 읽다가 충격 받고 종교 개혁을 시작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마틴 루터입니다. 사실 마틴 루터는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카톨릭 교회이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아니, 하루에 일곱 번은 늘 성경보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그 삶이 수도사로서 계속되었습니다. 늘 하루에 일곱 번 찬송하고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고, 그런 삶이 계속되는데 한편으론 찬송을 하면서도 뭔가 모르게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고 답답함이 일어나고, 찬송을 하기는 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뻐야 하는데 기뻐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함께 무언가 모르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이 늘 이 루터에 마음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왜냐? 내가 무언가를 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착한 일을 하고 무언가 의를 내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열심히, 나름대로 했습니다만 그러나 참된 기쁨은 없고 신앙 생활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신앙 생활하면 할수록 더욱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러니까 분노와 증오심,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만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말씀을 읽는 순간 루터가 깨달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말씀을 딱 읽는 순간, 그 때 루터가 고백한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새로 태어나서 열린 문을 통해서 낙원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하늘을 통하는 하나의 문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모든 생각들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롭게 성경 보는 눈이 열리면서 그렇다,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그 의가 나를 살리는 것이구나,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약속을 붙잡고 그 당시에 로마 교권 속에, 얼마나 막강했습니까? 왕들도 교권 앞에 무릎 꿇게 되는 시대였습니다. 황제조차도 이 교권 앞에 무릎 꿇게 되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한낱 힘없던 이 루터가 어떻게 그 종교 개혁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까? 딴 게 아닙니다. 참된 복음의 능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알았기 때문에 감히 그 시대 종교 개혁을 이루면서 새로운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감당함으로 이 개신교,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잘 아시지요?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정말로 복음의 능력을 누리는 그 축복 속에 여러분이 들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역사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그 구원의 역사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 그게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이 한 시대 속에서,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아니,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악한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공격해오는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복음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제대로 복음의 능력을 알지 않고서는 현장을 살릴 수 없고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예배 참여한 여러분 모두가 진짜 복음의 능력을 힘입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통해서 모든 현장과 사람이 살아나는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복음은 왜 능력이 있는가?
그러면 먼저 첫 번째로 복음은 왜 능력이 있는가입니다. 복음은 왜 능력이 있는가?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눈에 보이는 육신 세계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사실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는 육신적인 세계, 현실적인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부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11장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어요. 지금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나타난 것으로, 실지로 드러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되어졌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영적인 세계가 있는 것이고, 육신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일어나는 일들, 하나님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해서 돕는 천사들을 동원 하시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악한 사탄이 그 영을 붙잡고 멸망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짜 제대로 영적인 세계를 보면 성령이냐 악령이냐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어요. 감히 악령의 역사들을 어떻게 성령의 역사와 같은 반열에 둘 수 있겠습니까마는 같은 반열을 주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영적인 역사에는 성령이냐 악령이냐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이냐 사탄이냐입니다. 그 중간지대는 없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에 대구노회 캠프가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모여서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서 천사들에 대해서, 사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너무나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데 영적세계에 대해서 얼마만큼 실제를 아느냐에 따라서 세상 현장을 살리고 현장의 리더자가 될 수 있고, 현장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결론적으로 이야기 했어요. 악한 사탄의 역사, 믿는 자에게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 얼마나 알고 얼마나 이 사실을 실제적으로 누리느냐에 따라서 마지막 시대에 모든 현장을 살릴 수 있고, 현장속의 리더자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귀신 충만해서 사탄 숭배자로서 평생을 살아왔던 사람, 한 32년동안 살아왔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 받고 간증한 내용을 제가 봤는데요 그 사람의 간증을 들어보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현실적인 세계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일들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일이 영적 세계에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영적세계에서 일어난다. 사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영적문제 이 말 자체도 몰랐던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든 영적세계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보다 더 구체적인 일들이 더 실제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이야기 했어요. 지난 주간에 어떤 분과 말씀을 나누고 이분이 말씀 나눈 뒤에 식사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분은 불교에도 심취해 봤고, 주역 있잖아요. 그냥 대충하는 사람이 아니고 한 가지에 빠지면 진짜 끝을 보는 사람이예요. 몰두해 봤어요. 그런데 이분이 복음을 받고 인도받고 계시는데 마치고 나서 잠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서 파룬궁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파룬궁 들어보셨지요? 어디 공원 같은 곳에 가보면 무도인처럼 하잖아요. 그런데 중국에서 핍박이 일어나니까 전 세계로 흩어져서 제가 홍콩에 가서도 봤고요, 어느 나라에 가 보니까 산꼭대기에 와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하는데 파룬궁이예요. 그런데 이 분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파룬궁에서는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이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의 영을 부린다고 해요, 영을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 했느냐 하면 결국은 사탄이네요. 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배경은 성령의 역사이냐 사탄의 역사이냐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여기서 일어나요. 우리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느냐 중요합니다. 물론 사탄의 배경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고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공부해서 잘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떤 배경 속에서 이루어지느냐가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이예요. 결국은 복음 위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결국은 나중에 가서 다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 있는 부분들 놓고 보지 마시고요, 우리는 근시안적인 눈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당장 된다 안된다 그것 가지고 판단하는데 아닙니다. 마지막을 놓고 결론을 놓고 봐야 합니다. 진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의지해서 인도받고 있느냐?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출세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예요. 왜냐? 반드시 악령의 역사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진짜 우리가 중요하게 눈을 열어서 볼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4월 초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자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이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번영신학, 그리고 성공, 인간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성경의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서 어떻든지 인간의 성공을 위해서 이야기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할 수 있다. 긍정의 힘 이런 부분들 가지고 전 세계를 움직였잖아요. 그런데 지금 수정교회. 크리스탈 처어치라고 해서 전부 유리로 지은 세계 초대형교회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기사를 보면서 재미있는 글을 봤어요. 뭐냐 하면 결국 번영신학과 성공의 탑이 무너졌다. 지금 그 교회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 그 교회가 교회 운영이 안 되어서 파산되어지고 지금은 아예 카톨릭 교회에 매각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로버트 슐러 목사와 함께 그 교회 번영신학의 몰락이다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글을 쓴 그 분에 의하면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부활의 역사에 대해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고 오직 인간이 번영하고 성공하는 것만 그것을 위해서 모든 성경을 동원한 사람이다 라고 그렇게 지적한 부분을 보게 됩니다마는 여러분 우리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로 나의 성공이 성령의 역사 속에 일어나는 성공이냐? 여러분 공부하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것도 참 중요합니다. 뭔가 이루어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여러분 건물이 높으면 높을수록 무너짐이 심한 것처럼 진짜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 나오는 모든 성공은 결국은 그 무너짐이 더욱 더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만도 일어나는 일들을 보세요. 나름대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들, 한순간에 문제들이 일어나니까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내가 죽으면 되지해서 결국은 그 순간에 악령에게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매일매일 삶 속에서도 성령께서 인도하시지만은 믿지 않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악령의 역사에 사로잡혀서 결국은 생명을 끊게 되는 역사를 가져와요. 성공이 다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 중요합니다. 다가 아닙니다. 어느 바탕 속에, 어느 위에 서 있느냐? 여러분 우리가 진짜 은혜 받지 못하면, 복음 깨닫지 못하면 성공하는 그 자체가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복음 깨닫지 못하고 진짜 믿지 못하고 은혜 받지 못하면 가지고 있는 돈, 부자 되었습니까? 그것이 오히려 복음을 내가 받아 들이는 일에 방해가 되어지고, 그것이 우상이 되어지고, 그것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도 보게 되어요. 복음 없이 여러분 건강하십니까? 백이면 백 어디로 빠지느냐 타락과 음란으로 빠지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복음가지고 은혜가운데 있다. 지금 안되는 것이 안 되는 것 아닙니다. 좀 부족하고 연약해도 여러분 모든 걸음 속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고 실수한다 해도 그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는 것이고, 문제를 당한다 해도 우리가 은혜 속에 있으면 그것이 오히려 축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히 이 세계는 영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있고, 그 영적인 세계 배후에는 창세기3장의 악한 사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세계에 존재하는 비밀을 안다면 거기에 유일한 답은 복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 땅에 없어요. 뭐가 중요합니까?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3:5절에 아담 하와가 뱀 속에 들어간 사탄의 속임에 빠져서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독립선언입니다. 나는 하나님 없어도 된다는 독립선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 땅의 모든 문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었고, 이 땅의 모든 인생에게 문제가 오게 된 것이지요. 인간이 실수해서, 공부를 못해서 문제가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서 문제가 왔다라는 사실이예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악한 사탄이 지배하기 시작했어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생에게 일어나는 문제들, 어떤 문제들입니까? 사탄이 인생을 지배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우상 숭배 해야 되고요, 우상 숭배하니까 인간이 정신적인 문제가 오지요, 육신의 문제가 오지요. 여러 가지 온갖 질병이 옵니다. 그 정신적인 문제와 육신의 온갖 질병속에서 사회적인 문제, 가정의 모든 문제들이 나와요, 그리고 하나님이 계심을 알지 못하니까 지금 있는 것이 다예요. 그런데 뭔가 모르게 인간에게 내세에 대한 불안들이 늘 있는 거에요.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그 불안가운데 살면서 저주와 재앙의 삶을 나도 원치 않지만 후대들에게 그대로 영적인 유산으로 물려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서 사탄이 인생을 지배하니까 나오는 역사들입니다. 그래서 복음 말고는 이 땅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복음만 제대로 되어 있으면 되어도 괜찮고 안 되어도 괜찮고 상관없어요. 일이 잘되어도 상관없고요, 일이 전혀 안되어도 상관없어요. 요셉 보세요. 복음가진 요셉, 감옥으로 가도 상관없었고요, 노예로 가도 상관없었어요. 총리가 되어도 교만하지 않았어요. 어떤 일을 당해도 요셉은 승리했어요. 왜냐? 복음만이 해답이기 때문에 그 복음을 요셉이 가졌기 때문에...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이 안 되어 있으면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고, 모든 게 문제예요. 잘되면 잘 되는대로 문제이고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문제고, 이래도 저래도 모든 것이 문제로 올 수 밖에 없는 것이예요. 왜냐? 그 근본에 창세기 3장의 원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복음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음인 그리스도를 보내사 사탄을 꺽을 수 있도록 하셨고, 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응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내신 것이고, 축복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것입니다. 복음 말고는 다른 길이 없어요. 그래서 창세기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여기에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한다. 네 머리를 깨트려 버린다는 사실이예요.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은 남자의 후손이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납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은 오직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밖에 없어요. 여자의 후손으로 왔다는 말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남자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없는 남자가 없는 아이라면 사생아입니까? 그런 말이 아닙니다.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말은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탄과 원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 땅에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을 여시고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시고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여시는데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베드로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행4: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그렇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 얻을 수 없고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원죄 문제 해결 할 수 없고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사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아니면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면 될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복음 안으로만 들어가면 됩니다. 복음의 능력만 체험하면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축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마귀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길, 기도응답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성령인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그 고질적인 문제, 아무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친히 그리스도를 주신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복음이고, 그리스도 복음이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면 알수록 다른 것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이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니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많은 것들을 자꾸 기웃거리는데요,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 복음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여러분 복음 그 속에 더욱 더 깊이 들어가게 되어있고 복음을 체험하면 할수록 결국은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보게 되어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의 어느 교파 중에서는 예수 외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이야기 하는 곳도 있어요. 지금 WCC 시대라고 이야기 하는데 세상 바깥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예수 외에도 구원 받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기는 믿되 거기에 뭔가를 보태야 된다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은 TV의 대담 프로를 봤는데 도올 김용옥씨와 천주교의 신부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아주 유명한 분이 대담하는 내용을 봤어요. 김용옥씨가 물었어요. 왜 기독교는 독선적으로 그리스도만 믿어야 된다고 이야기 하느냐? 그때 신부님이 하신 이야기가 “예수 믿어도 구원 받고 착한 일을 해도 구원 받는다고 했어요.” 여러분, 그렇다면 굳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굳이 이 좋은날에 여러분 뭣 하러 여기에 와 계십니까? 오늘 새벽기도를 마치고 가다가 보니까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차를 대절해서 얼마나 산에 오르기 좋은 날입니까? 많은 사람이 배낭 하나씩 매고 차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더라구요. 여러분, 착한 일을 해 가지고 선한 일을 하고 덕을 쌓아서 구원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이런 좋은 날 여기 와서 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기독교인들 보니까 나쁜 짓들만 다하고.. 나는 그것들(기독교인들) 보다 더 착하다. 남에게 피해도 안주고 남에게 해도 안 끼치고 나는 그것들 보다 더 착하다.” 뭔가 착각을 해도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는 우리의 원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아무 가치도 안 되는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이사야 64장 6절에 우리의 가진 뭔가 자랑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그게 하나님 앞에는 누더기 옷과 같다고 했어요.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 가치 있는 것이 인생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이 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안 됩니다. 착각하지 마셔야 합니다. 나는 죄도 안 짓고... 여러분 죄 안 짓는다고 해도요, 가지고 있는 원죄 문제 그 부분을 해결 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해적선 이야기를 아시죠. 우리의 원죄 문제를 해결 하지 않으면 아무리 착해도 해적선 안에 있는 도둑놈은 어떻습니까? 그 안에 있으면서 착하면 착할수록 오히려 더 나쁜 놈입니다. 그렇잖아요. 거기서 빠져 나와야죠. 거기서 빠져 나오는 유일한 것이 바로 복음이고 그 유일한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을 주신 거예요. 그리고 뭔가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예수그리스도 말고 뭔가를 더 보태는데 아닙니다. 결국 교회가 지금 그런식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삶을 강조하고 덕을 강조하고 모든 윤리 도덕을 강조하면서 자꾸 그런 식으로 뭔가를 자꾸 더 보탭니다. 그러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나중에 더해진 거기다가 자꾸 더하다 보면 본질은(그리스도) 다 빠지고 더해진 것만 남게 되요. 그게 교회사 속에 흘러온 내용들이에요. 여러분, 우리에게 참된 복음 그리스도, 그 능력을 체험함으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는 결론 가진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짜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이 복음의 능력을 알게 되면 다른 일에 분주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6장 28-29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리이까?” 그때 예수님이 중요한 말씀을 했어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일은 이것하고 저것하고 그게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믿는게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 그 복음의 능력 알면 알수록 그 복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모든 것이고 내가 복음 속에 들어가면 갈수록 거기에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핵심훈련에서 안양 동부교회의 김동권목사님이 말씀했어요. 자기는 자기 교회의 부교역자들에게 “일하지 말라. 왜 자꾸 일하려고 하느냐? 일하지 말고 복음 누려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 누리면 누릴수록, 복음의 능력 체험하면 할수록 결국 누가 일하시느냐? 하나님이 일하시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복음이 필요해요. 나는 복음의 역사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혹시나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세상을 향해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합니다.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복음의 능력 속에 들어가는 것, 그게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를 쓰면서 로마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고 있는데 바울이 로마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기를 얼마나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느냐? 로마서 1장 15절에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이미 로마에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에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고 했어요. 이게 무슨말입니까? 13절에도 보세요.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8절도 보세요.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교회를 이야기 하면서 너희 모든 사람,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닙니까?
여러분.. 로마 교회가 믿음이 있어가지고 그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 되었다고 했어요. 뭐가 부족할 게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로마교회에 바울은 복음 전하기를 원했다는 거예요. 지금 구원 받았다고 하는 저와 여러분이 복음에 뿌리 내리고 복음의 능력 속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도 복음 알고 세상에 복음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그 복음의 능력들이 체험되어져야 됨을 이 부분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여러분 정말로 복음의 능력 속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살리는, 교회를 살리는 그 축복된 응답은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바울의 고백 - 복음의 능력을 안 바울의 고백
두 번째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오늘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의,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의인은 산다.. 이 복음의 역사들을 너무나 감격스러워 했던 부분을 보게 됩니다. 이 바울은 골로새서 2장 2~3절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비밀’ 이라고 말하면서 3절에 그 안에 모든 지혜와 모든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 졌다, 누구 안에?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는 것. 그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믿습니까? 바울은 빌립보서 3장 8절에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복음을 깨닫고 나서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 여러분 그리스도로 모든 문제에 답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습니다. 왜냐? 가장 고상한 지식, 그리스도를 가졌기 때문에. 이런 체험들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에베소 2장 8~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 바울이 감격스러운 복음의 능력 앞에 고백한 내용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 하는 것이죠.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가지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고 했는데 그 믿음조차도 은혜에 의하여, 그게 누가 주신 것이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어요. 바울의 복음의 능력을 안 감격 속에서 나온 고백이에요. 여러분, 이 복음의 능력을 알게 되면 우리의 관심이 변해요. 지난 날 세상에 좋았던 것들이 뭔가 모르게 세상이 싫어져요. 담배 태우고 술 마시고 그런 것들이 뭔가 모르게 복음 깨닫고 누리고 복음의 능력 알면 저절로 멀어지게 되어 있어요. 세상 좋아 하는 것들이 저절로 멀어지게 되어 있어요. 복음의 능력 제대로 체험하면.. 그리고 분명히 증거가 오게 되어 있어요.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나는 복음으로 말미암은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 있고 그 다음에 복음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뭐냐 하면 사실은 우리의 모든 현장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가 보여지게 되요. 그러니까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말씀을 맺겠습니다. 시편 34편 8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 정말 복음의 능력을 맛보아 아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했어요. 단순히 생명 얻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복음의 능력들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체험하시느냐? 말씀 받을 때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각인되도록. 그게 우리의 기도 속에서 뿌리가 내려지도록. 그게 우리의 체질이 되도록 증인으로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가지고 복음의 맛을 체험함으로 참된 복음의 능력이 여러분 통해서 현장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현장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주역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4월 1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의 능력
(롬1:15-17)
서론: 직장속에서 학교속에서 예수를 믿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부끄러워하며 숨기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모르고 복음의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교회 다니는 것이 무식하고 모자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숨기고 신앙생활 하게 됩니다. 이런 부분들이 바울 시대에도 있었습니다(고전1:22-23). 그러나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고전1:24, 롬1:16)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못 박힌 것만 자랑(갈6:14)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고백(로마서의 핵심구절, 롬1:16-17)을 붙잡고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이루었습니다. 왕과 황제도 교권에 무릎을 꿇던 시대에 참된 복음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이루며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시며,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 모든 현장과 사람을 살리는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1. 복음은 왜 능력이 있는가?
(1) 이 땅의 모든 배경은 영적인 세계와 육신의 세계로 구분됩니다. (성령이냐? 악령이냐?)
1) 우리의 성공은 어느 배경에서 이루어지는지가 중요함(아니면 더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음)
2) 은혜 받지 못하고 복음을 깨닫지 못하면, 성공자체가 저주와 재앙이 될 수 있음(우리가 어디에 있느냐?)
(2) 그러기에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 창3:5 하나님을 떠남으로 우상숭배문제, 정신·육신·사회문제, 죽음과 후대문제에 빠짐(원죄로 인한 불신자 상태)
2) 창3:15 복음 말고는 이 땅에 다른 길은 없으며(행4:12) 우리에게 복음만 있다면 문제될 것 없음(요셉)
(3) 복음은 능력입니다. (요15:5, 그리스도가 아니면 될 것이 없음)
1) 우리의 의는 하나님 앞에 누더기 옷과 같으며(사64: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임(요6:28-29)
2) 복음은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마귀를 꺾을 수 있으며, 기도응답을 받고 성령인도를 받는 유일한 길임
2. 바울의 고백
(1)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바울의 고백
1)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자 의(롬1:16-17)이며, 모든 지식과 지혜, 보화가 감추어져 있음(골2:2-3)
2) 복음은 가장 고상한 지식(빌3:8)이고,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구원을 받음(엡2:8-9)
(2) 복음의 능력을 알고 깨닫고 누리면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1) 복음의 능력을 누리면, 우리의 관심이 변하고 오는 여러 세대에 임하는 증거가 오게 됨
2) 그때부터 현장 속에 가장 필요한 것이 보여짐으로 승리할 수 밖에 없음
결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4:8),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하기 위함입니다(요10:10).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면 됩니다. 어떻게 누릴 것이냐? 말씀 받을 때 각인되도록, 기도속에서 뿌리 내리도록, 전도를 통해 체질되도록 하면 됩니다. 한주간 이 축복과 능력을 누림으로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현장을 살리는 주역되시길 바랍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복음의 능력을 알고 복음의 영향력이 나타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자랑스럽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의 모든 배경이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로 구분되는 것을 보며, 우리의 성공이 오직 성령의 배경에서 복음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옵소서. 한주간 복음의 능력을 체험함으로 우리의 관심이 변하고 현장의 필요가 보여짐으로 승리를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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