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2015-04-1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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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롬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6~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할렐루야! 사실 오늘 세례식과 함께 성찬식이 같이 진행되어야 합니다만, 작년까지는 같이 진행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식이나 성찬식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이 진행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따로 세례식을 먼저 하고 다음 주에 성찬식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같이 진행하니까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그래서 예배 메시지를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렇게 많지 않게 되고 너무 바쁘게 시간이 움직여지니까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수 없겠다 싶어서 한 주 앞당겨서 세례식을 하고, 한 주 뒤에 우리 세례 받은 모든 분들이 함께 참여하는 성찬예식을 통해서 더욱더 복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복음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 세례 받은 분들, 함께 참여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진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는 참된 믿음에 깊이 뿌리내리는 최고의 응답의 시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세례 받는다’라고 할 때 ‘예수 믿는다’를 같은 말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례 받는다 하면 예수 믿는다, 같은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때는 우리가 예수 믿는다 할 때, 세례 받는다 할 때 그냥 어느 정도 시간표가 되면 자유롭게 교회 왔다가 그렇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가정의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여건들 때문에 자유롭게 교회에 오는 것만도 아니더라고요,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도. 그런데 어떻든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 가운데서 자유롭게 이렇게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되면 우리가 세례를 받지 않습니까? 내가 믿는다는 고백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한때는 생명을 담보로 해서 예수 믿고 생명을 담보로 해서 세례 받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초대교회 때입니다. 초대교회는, 그 때는 예수 믿는다 하면 사형시켜도 괜찮았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가장 박해가 심했던 로마 시대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디로 파고들었느냐, 결국 카타콤에 파고들었는데 카타콤은 무덤도 되지만 믿는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서 숨은 은신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10m, 15m 밑의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드리고 워낙 박해가, 핍박이 심하니까 피해서 거기서 예배를 하고 그 속에서 생활을 했던 부분이 교회사 속에 있었던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때 카타콤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지구상에 보면 예수 믿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4월 초지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겠습니다만, 아프리카 케냐 어느 대학 안에서 극단 이슬람 단체가 148명의 대학생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학생들 148명을 일일이 한 명, 한 명에게 예수 믿느냐, 기독교인인 것을 확인하고 죽인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무렇게나 예수 믿을 수 없는 그런 환경들이고 상황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방글라데시에도 전도자 한 사람이 다른 혐의의 누명을 쓰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 감옥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교도관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을 붙여서 그 안에서 함께 포럼하고 함께 기도로써 힘을 얻는 그런 것들을 보고를 받게 됩니다만 사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살펴본다면 우리가 단지 종교 생활하고 종교 중의 한 가지 종교로 선택해서 내가 종교 생활하고 취미로 믿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가지고 예수 믿는 것이라 이야기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는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나였지만 그러나 지금부터는 내 인생이 내가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그에 대한 고백이 세례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그 결단 속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섬기고 내 평생 살겠습니다, 그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바로 세례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법이 무엇이냐? 바로 세례 받은 사람들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 로마서 1장 17절에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방법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멀뚱멀뚱하게 다른,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앉아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의 모든 삶의 방법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행한 일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의의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바울이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신 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바로 의의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짧은 시간입니다만 하나님의 의의 일이 무엇인가, 이 부분을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봄으로 정말 우리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중요한 답을 얻는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의
먼저,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다, 여러분, 자료에 보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을 크게 두 가지로 딱 구분을 한다면 첫 번째로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가 있습니다. 공의.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 이 공의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이 땅의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 그 죄는 반드시 죗값을 받는다는 것, 이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속에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 심판에 대한 의미를 두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 물론 이 하나님의 공의가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는 심판에 대해 키를,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심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가 의롭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 그걸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살펴봄으로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말씀 속에서 응답받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 - 심판에 대한 의미
그럼 먼저 하나님의 성품 속에 있는 의, 한 마디로 말하면 공의,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심판. 여러분, 모든 사람이 신앙 생활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면. 무언가에 매여 있고 묶여 있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그 두려움 가운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죄의식 가운데, 죄에 매여 아직까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 구원 받고 완전 해방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자들, 아니 미신 섬기는 사람들보다도 더 죄의식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벌 받지 않을까, 두려움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밉게 보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부분들이,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 중세 시대에 자력으로 구원 얻을 수 없음을 알고 이들이 무엇을 들고 나왔느냐, 행위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 앞에 내가 바르게 살지 않으면 무언가 하나님 앞에 벌 받는다는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구원 받는 것이지만 그것으로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중세 시대를 보면 온갖 것들을 다 만들어냈지 않습니까? 불안하니까, 두려우니까 언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지 모르는 그런 부분들에 그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하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어느 정도로 갔느냐, 연옥에 있던,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은 교리를 만들어서 연옥에 있던 우리 조상들이 우리가 자녀들이 헌금을 많이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선한 일을 많이 하면 그 연옥에 있던 우리 조상들이 천국으로 간다, 그까지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속죄하는 면죄부까지 팔았습니다. 그 근본에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매여 신앙 생활의 참된 자유함과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공의에 방향을 두게 될 때 나오는 결과입니다. 특히 여러분 중세 시대 루터를 한 번 보십시오. 루터는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고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 못지않게 경건 생활을 하려고, 자기 안에 있는 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죄의식 속에서 해방 받기 위해서 하루에 일곱 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고 말씀 보고 묵상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러면서 수도원 생활을 수도사들이 하는데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자기 스스로의 규율을 만들어 놓고 자기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죄의식에 대한 부분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너무나 두려우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까 두려우니까 자기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놓고 다른 수도사들도 하지 않는 스스로의 규율을 만들어 놓고 엄격하게 자기 자신을 다듬어가고 자기 자신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수도사들보다 더 혹독하게 자기 자신의 어떤 고행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부분을 루터의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참된 기쁨과 참된 즐거움과 참된 감격들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그런데 30세 되던 때에, 1511년이지요, 이 루터가 로마로 출장을 가게 됩니다. 거기 가서도 빌라도 계단이라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빌라도 계단이라는. 그 빌라도 계단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전설이 무엇이냐 하면 이 빌라도 계단을 무릎 꿇고 오르락내리락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된다,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고행하는 것이지요. 무릎을 꿇고 그 대리석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루터가 로마에 출장을 가서 그 빌라도 계단, 28개 되는 계단을 기어올랐습니다. 그러니까 옷도 헤어지고 살갗도 벗겨지고 피도 나고, 그러면서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루터는 이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힘들게 고행하고 이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러면서 더욱더 죄의식에 대한 부분들 반대면에 안되어지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 하나님에 대한 분노, 증오심 내면에 엄청난 갈등들이 있었어요. 그때 루터가 로마서를 읽는 가운데 한 말씀이 루터에게 들어왔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오늘 로마서1:17절입니다.“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놀라운 축복을 믿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주셨어요. 뭔가 인간의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믿기만 하면...찬송 가운데 있잖아요. 찬송가287 “ 우리 주 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믿기만 하면 나의 모든 것 끝나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여기에서 루터가 그 안에 참된 해방과 그 안에 참된 자유함고, 참된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전에는 나의 행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두려웠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나에게는 하늘을 통하는 문이 열려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감격하고 감사했던 이런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루터만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의 현장에 이러한 바탕을 가지고 이런 배경 속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뭔가 사고가 나고 어려움 당하면 내가 주일성수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닌가 벌을 주시는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으로 내가 십일조 안했더니만 내게 이런 문제가 생겼다. 이게 전부 다 그런 바탕을 갖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중남미 팀에서 한번은 멕시코를 거쳐서 파나마로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멕시코 성당에 갔었는데 가달루뻬 성당 이라고 해서 그 성당은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가 인디안의 모습으로 현현했다고 해서 세계 성모 현현한 세계 성당 안에 들어가는 성당이예요. 그 성당 광장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그런데 백발이 훤하신 연세 있는 분이 그 성당을 무릎으로 기어서 그 광장을 통과해서 본당 성전 안까지 들어가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런 사람들이 특별히 어떤 명절이 되면 세계적인 성지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한 5킬로 전부터 그렇게 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무릎이 다 까지고 피가 철철 나도 이것을 통해서 내가 뭔가를 이룬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근본 배경에는 두려움에 대한 부분들, 자유롭지 못하고 기쁨 없는, 뭔가 신앙생활에서 두려운 부분들 하나님이 벌주시지 않을까 그 두려움 속에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렇습니까? 예레미야29:11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생각은 재앙이 아니다 라고 했어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해방 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어요. 진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자유함과 함께 로마서8:1~2“그런즉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한번 받아 합시다.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렇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느니라. 여러분 어떤 면에서 우리가 율법을 따라가는 것도,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라는 마음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벌 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같이 있어요. 율법을 내가 행하려고 하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그 목적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주신다라는 그 축복된 부분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 따라 가지 않고 말씀 놓쳐버리고 말씀 인도 받지 않으면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벌을 받지 않겠는가 이런 마음들이 같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저께 신문을 보면서 어떤 유명한 신학교수 한분이 글을 써 놓은 것을 봤어요. 제가 총신 신대원 다닐 때에 이분에게서 조직신학을 배웠던 교수님이신데 이 분이 어떤 내용의 글을 썼느냐 하면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강단의 위기이다. 왜냐? 강단에 복음만 선포되어야 하는데 복음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한국교회가 가진 장점이 있는데 성경말씀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고요, 그와 더불어 삶의 유일한 법칙이 이 말씀이라는 부분을 믿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까 이것이 우리의 삶의 유일한 법칙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느 쪽으로 흐르느냐 그리스도 복음이 희미해 지고 복음을 놓쳐버리니까 말씀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뭔가 내가 되어진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강단이 계속해서 율법을 행해야 한다, 삶을 강조하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어요. 그러면서 또 더불어서 같이 이야기하기를 그러므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 결국은 그리스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했어요. 율법, 말씀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이것을 강조하다 보니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 결과로 율법을,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긴 쓰는데 안 되어지니까 낙심하게 되고, 평안을 놓쳐버리고 기쁨을 놓쳐버리고 안되어지니까 구원의 확신 조차도 없어지는 것이고 그와 더불어 실제로 이 율법을 행하는 부분들을 강조하다 보니까 이것이 축복과 연결되어서 한국교회 강단이 기복적인 설교가 넘쳐나는 강단이 되었다 했어요. 제가 보면서 한국교회 전체 강단의 흐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고요 실제로 복음이 사라져서 율법, 말씀을 이야기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느냐하면 성도들이 교회 출석 잘 하는 것, 교회 봉사 잘 하는 것, 목사들에게 잘 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되었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안 되었다라는 것. 그리고 말씀 말씀 강조하다 보니까 말씀에 대해서 뭔가 세밀하게 그런 표현을 들 수 있지요. 쪼개어 가지고 성경주해를 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놓쳐 버렸다는 것. 그래서 복음은 현장에서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만 나오는 복음으로 지금 한국교회가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교회 안에 복음이 나와야 하는데 그래야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힘을 얻고 교회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는데 단순히 복음이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의 설교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중요한 말을 했어요. 강단에서 복음만 선포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거기에 사람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근본 복음 안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예요. 혹이나 우리 안에 말씀을 지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사실 우리가 말씀을 지킨다면 얼마나 지키겠습니까? 그렇다고 말씀을 내팽개치고 그냥 방임주의로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역사해야 말씀도 지키게 되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참된 두려움과 신앙생활 속에서 참된 억매임 속에서 빠져나오는 그 복음의 역사를 주셨어요. 그 속에서 참된 자유함을 얻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의 - 하나님께서 행하신 의로운 행위
그 다음에 이 하나님의 의라는 다른 부분에 하나는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라는 심판의 개념 가지고 본 것이고요,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의라는 부분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한 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한 의로운 행위,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에게서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이 없는 줄 아시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의로운 행위가 있어요. 그걸 우리가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의로운 일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끝냈다 라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인간은 창세기 3장의 문제에 빠져가지고 도무지 구원 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선한 것이라고는 그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어요. 이걸 신학적인 용어로 전적타락, 완전부패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완전 흑암 가운데 잡혀서 어둠 그 자체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시키는 대로 운명, 사주, 팔자 거기에 묶여 살다가 이 땅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지옥가게 되고 후손들까지도 망하게 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고 창세기 3장에서 모든 문제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당하는 그 문제가 어디서부터 온 건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니까 절간을 찾아가고 무당 불러서 굿을 합니다. 지난주간에 전도집중훈련을 하면서 한 분이 간증했잖아요.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3천배를 하고 그러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이상한 문제들이 자기에게 오고 있다라는 부분들. 그런 가운데 그 분이 말씀을 대하게 되고 복음 듣고 지금은 우리교회에 아주 복음 안에서 귀한 제자로 세워지고 있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만, 여러분 어려움 당하니까 절간 찾아가요. 굿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이상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로마서 10장 2 ~ 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올바른 지식으로 하지 않는 모든 열심은 헛된 것이라는 사실. 그러면 그 올바른 지식이 뭐냐?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가 올바른 지식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다 헛된 것이고 다 틀린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저와 여러분은 복음, 예수가 그리스도인 그 복음 속에 깊이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사실 오늘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을 바울이 했는데요, 이건 하박국 2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한 말씀입니다. 이미 하박국서에 나오잖아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것이다하고 예언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사는 길을 주셨는데 심판 가운데서도 사는 길을 주셨는데 그 답이 뭐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가중 귀중하고 축복된 길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면 승리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의의 일을 행하셨는데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일을 행하신 그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몸부림치다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뭔가 열심을 내면 되는 줄 알고 열심을 냅니다. 그런다고 됩니까? 착한 일을 하면 될 줄 알고 착한 일을 합니다. 그런게 됩니까? 정치인을 갈아치우면 뭔가 사회가, 세상이 좋아질 것 아니냐!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집니까? 아닙니다. 근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이 땅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고 아니 이땅의 문제가 어디에서 온 줄도 모르고 원인도 답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 길이 그리스도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행한 일이요,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가 믿음이라 할 때는 다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 하나님의 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걸 내 것으로 받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 주셔서 영접하게 했어요. 내 힘으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 ~ 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었어요.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 되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살아가는 삶 또한 무엇으로 살아가야 되느냐?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이 이루신 의, 그 의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인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 ~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할렐루야! 어두움 가운데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왜 망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답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인생 문제를 십자가에게 다 끝냈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훌륭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에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어떤 행위를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단순한 그리스도, 하나님이 이루신 그 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했어요. 로마서 3장 28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장 30절에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했어요. 무엇으로요? 믿음으로! 우리는 그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 번 믿음으로 구원 받은 축복, 영원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 하나님의 손에서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어요. 요한복음 10장 28 ~ 29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만물보다 그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붙잡고 계세요. 그 어떤 것에서도 우리는 무너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로마서 11장 29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후회함이 없도다 했어요.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빌립보서 1장 6절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착한 일을 시작한 그 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어 가십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하나님이 이루신 의의 일, 그 믿음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받아들임으로 정말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믿음으로 승리하는 귀한 전도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4월 1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롬1:16-17)
서론: 세례 받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초대교회 시대에는 세례 받는 것이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케냐 대학 사건, 방글라데시 사건). 그러나 예수를 믿는 것은 수많은 종교 중에 한가지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삶이 내가 주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주님이 나의 주인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들의 삶의 방법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 의의 일입니다.
1. 하나님의 의
(1) 하나님의 성품속의 공의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면 심판 받음)
1) 중세시대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맞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함(죄의식, 공의에 대한 두려움)
루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고백(노력과 행위가 아님)
2)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가운데 고생하면서 몸부림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인 줄로 착각함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시고(렘29:11) 결코 정죄하지 않으심(롬8:1-2)
(2) 하나님이 행하신 의 (예수가 그리스도)
1) 우리를 위해 행한 의로운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끝내신 것(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것)
2) 전적타락(완전부패)하여 빠진 운명(사주,팔자)에서, 올바른 지식으로 해방됨(롬10:2-3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
2.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1)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1) 이 땅의 문제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답도 모르는 우리의 근본을 바꿔주심(엡2:4-5)
2)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아가고(합2:4) 믿음 역시 은혜로 받은 선물임(엡2:8)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1) 이 땅의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롬3:10),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도 없음(롬3:20)
2)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믿음이며(롬3:28)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롬3:30)
결론: 우리는 영생을 받아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요10:28). 또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뺏을 수도 없습니다(요10:29).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붙잡고 계시기에 그 어떤 것에서도 무너질 수 없습니다. 우리를 부르심에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롬1:29),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어 가십니다(빌1:6).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루신 의의 일을 믿음으로, 한주간 현장에서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구원을 받았지만 내 삶의 주인이 나였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며,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되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속의 공의와 그 행하신 의를 보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어지게 하옵소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고백처럼, 한주간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나 자신과 모든 만남, 가정과 가문, 모든 분야와 지역현장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롬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6~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할렐루야! 사실 오늘 세례식과 함께 성찬식이 같이 진행되어야 합니다만, 작년까지는 같이 진행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식이나 성찬식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같이 진행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따로 세례식을 먼저 하고 다음 주에 성찬식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같이 진행하니까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그래서 예배 메시지를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렇게 많지 않게 되고 너무 바쁘게 시간이 움직여지니까 제대로 된 의미를 찾을 수 없겠다 싶어서 한 주 앞당겨서 세례식을 하고, 한 주 뒤에 우리 세례 받은 모든 분들이 함께 참여하는 성찬예식을 통해서 더욱더 복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복음을 확인하는 시간으로 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 세례 받은 분들, 함께 참여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진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는 참된 믿음에 깊이 뿌리내리는 최고의 응답의 시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세례 받는다’라고 할 때 ‘예수 믿는다’를 같은 말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세례 받는다 하면 예수 믿는다, 같은 말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때는 우리가 예수 믿는다 할 때, 세례 받는다 할 때 그냥 어느 정도 시간표가 되면 자유롭게 교회 왔다가 그렇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만 가정의 여러 가지 상황들 때문에, 여건들 때문에 자유롭게 교회에 오는 것만도 아니더라고요,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도. 그런데 어떻든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 가운데서 자유롭게 이렇게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되면 우리가 세례를 받지 않습니까? 내가 믿는다는 고백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데 이것이 한때는 생명을 담보로 해서 예수 믿고 생명을 담보로 해서 세례 받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초대교회 때입니다. 초대교회는, 그 때는 예수 믿는다 하면 사형시켜도 괜찮았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가장 박해가 심했던 로마 시대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디로 파고들었느냐, 결국 카타콤에 파고들었는데 카타콤은 무덤도 되지만 믿는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서 숨은 은신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10m, 15m 밑의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배드리고 워낙 박해가, 핍박이 심하니까 피해서 거기서 예배를 하고 그 속에서 생활을 했던 부분이 교회사 속에 있었던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때 카타콤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지구상에 보면 예수 믿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4월 초지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겠습니다만, 아프리카 케냐 어느 대학 안에서 극단 이슬람 단체가 148명의 대학생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학생들 148명을 일일이 한 명, 한 명에게 예수 믿느냐, 기독교인인 것을 확인하고 죽인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무렇게나 예수 믿을 수 없는 그런 환경들이고 상황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방글라데시에도 전도자 한 사람이 다른 혐의의 누명을 쓰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 감옥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교도관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을 붙여서 그 안에서 함께 포럼하고 함께 기도로써 힘을 얻는 그런 것들을 보고를 받게 됩니다만 사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살펴본다면 우리가 단지 종교 생활하고 종교 중의 한 가지 종교로 선택해서 내가 종교 생활하고 취미로 믿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가지고 예수 믿는 것이라 이야기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는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나였지만 그러나 지금부터는 내 인생이 내가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그에 대한 고백이 세례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의지적으로 결단하고 그 결단 속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섬기고 내 평생 살겠습니다, 그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바로 세례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법이 무엇이냐? 바로 세례 받은 사람들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오늘 로마서 1장 17절에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방법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멀뚱멀뚱하게 다른,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앉아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의 모든 삶의 방법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행한 일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의의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바울이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신 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바로 의의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짧은 시간입니다만 하나님의 의의 일이 무엇인가, 이 부분을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봄으로 정말 우리가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중요한 답을 얻는 그런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의
먼저,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다, 여러분, 자료에 보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을 크게 두 가지로 딱 구분을 한다면 첫 번째로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가 있습니다. 공의.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 이 공의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이 땅의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 그 죄는 반드시 죗값을 받는다는 것, 이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속에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 심판에 대한 의미를 두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 물론 이 하나님의 공의가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는 심판에 대해 키를,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심판.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가 의롭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 그걸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살펴봄으로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 말씀 속에서 응답받는 그런 축복의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 - 심판에 대한 의미
그럼 먼저 하나님의 성품 속에 있는 의, 한 마디로 말하면 공의,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심판. 여러분, 모든 사람이 신앙 생활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면. 무언가에 매여 있고 묶여 있고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그 두려움 가운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죄의식 가운데, 죄에 매여 아직까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 구원 받고 완전 해방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자들, 아니 미신 섬기는 사람들보다도 더 죄의식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벌 받지 않을까, 두려움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밉게 보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부분들이,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 중세 시대에 자력으로 구원 얻을 수 없음을 알고 이들이 무엇을 들고 나왔느냐, 행위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 앞에 내가 바르게 살지 않으면 무언가 하나님 앞에 벌 받는다는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구원 받는 것이지만 그것으로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중세 시대를 보면 온갖 것들을 다 만들어냈지 않습니까? 불안하니까, 두려우니까 언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지 모르는 그런 부분들에 그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많이 하도록 만들었고 심지어 어느 정도로 갔느냐, 연옥에 있던, 성경에 나와 있지도 않은 교리를 만들어서 연옥에 있던 우리 조상들이 우리가 자녀들이 헌금을 많이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선한 일을 많이 하면 그 연옥에 있던 우리 조상들이 천국으로 간다, 그까지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래서 죄를 속죄하는 면죄부까지 팔았습니다. 그 근본에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매여 신앙 생활의 참된 자유함과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공의에 방향을 두게 될 때 나오는 결과입니다. 특히 여러분 중세 시대 루터를 한 번 보십시오. 루터는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고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 못지않게 경건 생활을 하려고, 자기 안에 있는 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죄의식 속에서 해방 받기 위해서 하루에 일곱 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고 말씀 보고 묵상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러면서 수도원 생활을 수도사들이 하는데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엄격한 자기 스스로의 규율을 만들어 놓고 자기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죄의식에 대한 부분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너무나 두려우니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까 두려우니까 자기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놓고 다른 수도사들도 하지 않는 스스로의 규율을 만들어 놓고 엄격하게 자기 자신을 다듬어가고 자기 자신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수도사들보다 더 혹독하게 자기 자신의 어떤 고행을 통해서 어떻게 해서든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부분을 루터의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참된 기쁨과 참된 즐거움과 참된 감격들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도. 그런데 30세 되던 때에, 1511년이지요, 이 루터가 로마로 출장을 가게 됩니다. 거기 가서도 빌라도 계단이라는 계단이 있었습니다, 빌라도 계단이라는. 그 빌라도 계단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 전설이 무엇이냐 하면 이 빌라도 계단을 무릎 꿇고 오르락내리락하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된다,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고행하는 것이지요. 무릎을 꿇고 그 대리석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루터가 로마에 출장을 가서 그 빌라도 계단, 28개 되는 계단을 기어올랐습니다. 그러니까 옷도 헤어지고 살갗도 벗겨지고 피도 나고, 그러면서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루터는 이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힘들게 고행하고 이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러면서 더욱더 죄의식에 대한 부분들 반대면에 안되어지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 하나님에 대한 분노, 증오심 내면에 엄청난 갈등들이 있었어요. 그때 루터가 로마서를 읽는 가운데 한 말씀이 루터에게 들어왔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오늘 로마서1:17절입니다.“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놀라운 축복을 믿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주셨어요. 뭔가 인간의 노력과 행위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십자가의 은혜를 믿기만 하면...찬송 가운데 있잖아요. 찬송가287 “ 우리 주 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믿기만 하면 나의 모든 것 끝나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여기에서 루터가 그 안에 참된 해방과 그 안에 참된 자유함고, 참된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전에는 나의 행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두려웠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나에게는 하늘을 통하는 문이 열려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백하면서 감격하고 감사했던 이런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루터만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의 현장에 이러한 바탕을 가지고 이런 배경 속에서 신앙생활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뭔가 사고가 나고 어려움 당하면 내가 주일성수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닌가 벌을 주시는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으로 내가 십일조 안했더니만 내게 이런 문제가 생겼다. 이게 전부 다 그런 바탕을 갖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중남미 팀에서 한번은 멕시코를 거쳐서 파나마로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멕시코 성당에 갔었는데 가달루뻬 성당 이라고 해서 그 성당은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가 인디안의 모습으로 현현했다고 해서 세계 성모 현현한 세계 성당 안에 들어가는 성당이예요. 그 성당 광장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그런데 백발이 훤하신 연세 있는 분이 그 성당을 무릎으로 기어서 그 광장을 통과해서 본당 성전 안까지 들어가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런 사람들이 특별히 어떤 명절이 되면 세계적인 성지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한 5킬로 전부터 그렇게 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무릎이 다 까지고 피가 철철 나도 이것을 통해서 내가 뭔가를 이룬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근본 배경에는 두려움에 대한 부분들, 자유롭지 못하고 기쁨 없는, 뭔가 신앙생활에서 두려운 부분들 하나님이 벌주시지 않을까 그 두려움 속에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렇습니까? 예레미야29:11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생각은 재앙이 아니다 라고 했어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해방 받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어요. 진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자유함과 함께 로마서8:1~2“그런즉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한번 받아 합시다.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렇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느니라. 여러분 어떤 면에서 우리가 율법을 따라가는 것도,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라는 마음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이 벌 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같이 있어요. 율법을 내가 행하려고 하고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그 목적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주신다라는 그 축복된 부분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 따라 가지 않고 말씀 놓쳐버리고 말씀 인도 받지 않으면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벌을 받지 않겠는가 이런 마음들이 같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저께 신문을 보면서 어떤 유명한 신학교수 한분이 글을 써 놓은 것을 봤어요. 제가 총신 신대원 다닐 때에 이분에게서 조직신학을 배웠던 교수님이신데 이 분이 어떤 내용의 글을 썼느냐 하면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는 강단의 위기이다. 왜냐? 강단에 복음만 선포되어야 하는데 복음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한국교회가 가진 장점이 있는데 성경말씀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고요, 그와 더불어 삶의 유일한 법칙이 이 말씀이라는 부분을 믿고 있어요. 그렇다 보니까 이것이 우리의 삶의 유일한 법칙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느 쪽으로 흐르느냐 그리스도 복음이 희미해 지고 복음을 놓쳐버리니까 말씀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뭔가 내가 되어진다는 것이예요. 그래서 강단이 계속해서 율법을 행해야 한다, 삶을 강조하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어요. 그러면서 또 더불어서 같이 이야기하기를 그러므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 결국은 그리스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했어요. 율법, 말씀을 지킴으로, 행함으로 이것을 강조하다 보니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 결과로 율법을, 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긴 쓰는데 안 되어지니까 낙심하게 되고, 평안을 놓쳐버리고 기쁨을 놓쳐버리고 안되어지니까 구원의 확신 조차도 없어지는 것이고 그와 더불어 실제로 이 율법을 행하는 부분들을 강조하다 보니까 이것이 축복과 연결되어서 한국교회 강단이 기복적인 설교가 넘쳐나는 강단이 되었다 했어요. 제가 보면서 한국교회 전체 강단의 흐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고요 실제로 복음이 사라져서 율법, 말씀을 이야기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느냐하면 성도들이 교회 출석 잘 하는 것, 교회 봉사 잘 하는 것, 목사들에게 잘 하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되었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안 되었다라는 것. 그리고 말씀 말씀 강조하다 보니까 말씀에 대해서 뭔가 세밀하게 그런 표현을 들 수 있지요. 쪼개어 가지고 성경주해를 합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놓쳐 버렸다는 것. 그래서 복음은 현장에서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만 나오는 복음으로 지금 한국교회가 그렇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교회 안에 복음이 나와야 하는데 그래야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힘을 얻고 교회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신앙생활 하고 있는데 단순히 복음이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의 설교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중요한 말을 했어요. 강단에서 복음만 선포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거기에 사람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근본 복음 안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깊이 뿌리내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예요. 혹이나 우리 안에 말씀을 지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사실 우리가 말씀을 지킨다면 얼마나 지키겠습니까? 그렇다고 말씀을 내팽개치고 그냥 방임주의로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 안에 역사해야 말씀도 지키게 되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참된 두려움과 신앙생활 속에서 참된 억매임 속에서 빠져나오는 그 복음의 역사를 주셨어요. 그 속에서 참된 자유함을 얻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의 - 하나님께서 행하신 의로운 행위
그 다음에 이 하나님의 의라는 다른 부분에 하나는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있는 공의라는 심판의 개념 가지고 본 것이고요, 또 한 가지 하나님의 의라는 부분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한 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한 의로운 행위, 그게 무엇입니까? 우리에게서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이 없는 줄 아시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의로운 행위가 있어요. 그걸 우리가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의로운 일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끝냈다 라는 것.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인간은 창세기 3장의 문제에 빠져가지고 도무지 구원 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선한 것이라고는 그 어느 곳에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되었어요. 이걸 신학적인 용어로 전적타락, 완전부패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완전 흑암 가운데 잡혀서 어둠 그 자체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시키는 대로 운명, 사주, 팔자 거기에 묶여 살다가 이 땅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지옥가게 되고 후손들까지도 망하게 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고 창세기 3장에서 모든 문제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당하는 그 문제가 어디서부터 온 건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니까 절간을 찾아가고 무당 불러서 굿을 합니다. 지난주간에 전도집중훈련을 하면서 한 분이 간증했잖아요.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3천배를 하고 그러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이상한 문제들이 자기에게 오고 있다라는 부분들. 그런 가운데 그 분이 말씀을 대하게 되고 복음 듣고 지금은 우리교회에 아주 복음 안에서 귀한 제자로 세워지고 있는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만, 여러분 어려움 당하니까 절간 찾아가요. 굿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더 이상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오게 되어 있는 겁니다. 로마서 10장 2 ~ 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올바른 지식으로 하지 않는 모든 열심은 헛된 것이라는 사실. 그러면 그 올바른 지식이 뭐냐?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가 올바른 지식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다 헛된 것이고 다 틀린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저와 여러분은 복음, 예수가 그리스도인 그 복음 속에 깊이 들어가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사실 오늘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을 바울이 했는데요, 이건 하박국 2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한 말씀입니다. 이미 하박국서에 나오잖아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것이다하고 예언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사는 길을 주셨는데 심판 가운데서도 사는 길을 주셨는데 그 답이 뭐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가중 귀중하고 축복된 길이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면 승리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 의의 일을 행하셨는데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일을 행하신 그 일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의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문제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몸부림치다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뭔가 열심을 내면 되는 줄 알고 열심을 냅니다. 그런다고 됩니까? 착한 일을 하면 될 줄 알고 착한 일을 합니다. 그런게 됩니까? 정치인을 갈아치우면 뭔가 사회가, 세상이 좋아질 것 아니냐!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집니까? 아닙니다. 근본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이 땅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고 아니 이땅의 문제가 어디에서 온 줄도 모르고 원인도 답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 길이 그리스도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행한 일이요,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가 믿음이라 할 때는 다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 하나님의 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걸 내 것으로 받는 것을 가지고 ‘믿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 주셔서 영접하게 했어요. 내 힘으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 ~ 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게 되었어요.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 되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살아가는 삶 또한 무엇으로 살아가야 되느냐?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이 이루신 의, 그 의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인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4 ~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할렐루야! 어두움 가운데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왜 망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답도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인생 문제를 십자가에게 다 끝냈습니다. 그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훌륭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에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어떤 행위를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단순한 그리스도, 하나님이 이루신 그 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했어요. 로마서 3장 28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장 30절에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했어요. 무엇으로요? 믿음으로! 우리는 그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 번 믿음으로 구원 받은 축복, 영원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 하나님의 손에서 아무도 빼앗을 자가 없어요. 요한복음 10장 28 ~ 29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만물보다 그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붙잡고 계세요. 그 어떤 것에서도 우리는 무너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 로마서 11장 29절에 보면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후회함이 없도다 했어요.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빌립보서 1장 6절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착한 일을 시작한 그 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어 가십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하나님이 이루신 의의 일, 그 믿음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받아들임으로 정말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믿음으로 승리하는 귀한 전도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4월 1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롬1:16-17)
서론: 세례 받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초대교회 시대에는 세례 받는 것이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케냐 대학 사건, 방글라데시 사건). 그러나 예수를 믿는 것은 수많은 종교 중에 한가지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 삶이 내가 주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주님이 나의 주인임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들의 삶의 방법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 의의 일입니다.
1. 하나님의 의
(1) 하나님의 성품속의 공의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면 심판 받음)
1) 중세시대 :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맞지만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함(죄의식, 공의에 대한 두려움)
루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고백(노력과 행위가 아님)
2)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가운데 고생하면서 몸부림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인 줄로 착각함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평안과 미래와 희망을 주시고(렘29:11) 결코 정죄하지 않으심(롬8:1-2)
(2) 하나님이 행하신 의 (예수가 그리스도)
1) 우리를 위해 행한 의로운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끝내신 것(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것)
2) 전적타락(완전부패)하여 빠진 운명(사주,팔자)에서, 올바른 지식으로 해방됨(롬10:2-3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
2.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1)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1) 이 땅의 문제가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답도 모르는 우리의 근본을 바꿔주심(엡2:4-5)
2)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아가고(합2:4) 믿음 역시 은혜로 받은 선물임(엡2:8)
(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1) 이 땅의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롬3:10),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도 없음(롬3:20)
2)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믿음이며(롬3:28)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롬3:30)
결론: 우리는 영생을 받아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요10:28). 또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뺏을 수도 없습니다(요10:29).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붙잡고 계시기에 그 어떤 것에서도 무너질 수 없습니다. 우리를 부르심에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롬1:29),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어 가십니다(빌1:6).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루신 의의 일을 믿음으로, 한주간 현장에서 승리하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구원을 받았지만 내 삶의 주인이 나였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며,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되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성품 속의 공의와 그 행하신 의를 보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어지게 하옵소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고백처럼, 한주간 오직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나 자신과 모든 만남, 가정과 가문, 모든 분야와 지역현장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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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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