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참된 자유
2015-10-11 00:00:00
관리자
조회수   41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10월 1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자유”
(롬14:13~23)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 롬14:13~2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의 손이 그 일을 마치십니다!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참된 자유함을 확인하고 누리는 축복의 예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은 "참된 자유"입니다. "참된 자유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말씀을 받았습니다. 자는 자여 깨라! 우리가 사회 생활 속에서 성공하는 비밀을 말씀으로 붙잡았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으라 했습니다. 그 빛의 갑옷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성령의 내주, 성령의 인도,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는 것을 가지고 바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령의 내주와 인도와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면 현장에서 불신자들을 능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 하고 또 그들과 함께 동화되게 되어 있고, 그렇다면 사실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정말로 현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신자들을 능가하는 비밀을 체험해야 하는데, 그 불신자들을 능가하는 비밀의 방법이 바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버리면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시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염려와 우리의 불신앙과 우리의 걱정, 근심들을 내가 가지고 있지 말고 주께 맡겨 버리면 성령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지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령의 내주를 누리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인간 관계 속에서 순간순간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판단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순간 선택과 판단할 일들 앞에서, 인간 관계 속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면 무언가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 같지만 제 2, 제 3의 새로운 계속되는 문제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말씀 붙잡고 성령 인도 받기 위해서 몸부림치게 되면 순간순간 선택과 판단, 인간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함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 이 사실을 누릴 때에 우리가 모든 현장의 불신자들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무능함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는데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게 되면 무언가 지금 당장은 나타나는 것이 없다 할지라도, 지금 당장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지만 불신자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생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내주, 성령의 인도, 성령의 충만함,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녀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인데 이 사실을 내가 누리는 것, 그것을 가지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비밀이 있게 될 때 사회 생활 속에서 어느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계속해서 인간 관계와 사회 생활 속에서 승리하는 비밀을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23절 마지막에 보면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들은 다 죄니라. 우리가 사회 생활, 인간 관계 속에서 참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데 어떤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가?

1. 우리는 -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받은 참된 자유인
먼저 첫 번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받은 자유인입니다. 이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유함을 받은 자유인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저주에서 우리는 해방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 보면 로마 교회 안에 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고린도 교회 안에도 많은 문제와 갈등들이 있었고 사실 세상에 있는 문제가 그대로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만 이 로마 교회 안에도 많은 갈등과 문제들이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문제와 갈등들이 어떻게 해서 왔느냐? 결국은 완전한 복음의 역사를 이해하고 거기에 뿌리내리면 넘어설 수 있는 것인데, 완전한 복음의 축복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뿌리내리지 못하니 아무것도 아닌 것도, 사소한 것도 문제가 되고 그것이 시험거리가 되고 상처가 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가만히 살펴보면 진짜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에 뿌리내리면 그냥 넘어가야 하는 것들, 지나가는 부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안 되어지니 우리도 모르게 사소한 부분에 감정이 상해서 그 때문에 상처주고 상처 입고 실패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들을 다 놓쳐 버리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로마 교회 안에 이런 사소한 감정과 갈등들이 있게 되었느냐? 로마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배경들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회에 들어와 있는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의 각각의 살아온 삶의 배경들이 달랐기 때문에 그들이 한 군데에 모이니 그들이 갖고 있는 갈등과 시험거리들, 복음이 이해되고 뿌리내리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문제가 안 되는데, 원네스(oneness)가 되는데, 그게 안 되어지니까 문제들이 문제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로마 교회 안에 두 부류의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유대교적 배경을 갖고 있는 교인들과 또 헬라 문화의 배경을 갖고 있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각기 다른 배경들입니다. 유대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말 그대로 유대인이었다가 그리스도 복음을 받고 개종한 사람, 이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성도로서 로마 교회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율법에 대해 철저한 사람들이고 전통과 제도와 나름대로 어떤 규례가 있는 사람들이고 어떻든 그들은 나름대로 유대교에 흘러오는 역사적인 전통을 가지고 그 속에서 말씀 가지고 율법이지만 그 율법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헬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이방인이었다가 그리스도 복음을 듣고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가진 전통과 제도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구약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고, 그러니까 말 그대로 자유롭게 막 살다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만나게 되니 완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완전히 뿌리내리면 이들이 괜찮을 것인데 그게 안 되니 교회 안에서 신앙 생활을 같이 하면서도 갈등하고 시험에 빠지는, 이런 것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교회가 진짜 오직 복음으로, 완전 복음으로 뿌리내리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사소한 것에 걸려 넘어지고 시험 들고 상처주고 상처 입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회사를 보면 사실 교회의 싸움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진리냐 진리 아니냐하는 그 싸움보다도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맞느냐 안 맞느냐 그 싸움보다도, 교인들 간에 사소한 감정의 골이 깊어서 그 싸움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많은 어려움이 왔던 사실을 봅니다. 그게 교회사 속에 일어난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악한 사단이 이용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들 가지고 그것이 전혀 복음과 상관 없는 것인데, 복음과 상관 없는 것인데 복음을 모르고 복음에 뿌리는 안 내리니까 사소한 것에 걸려서 모든 축복을 놓쳐 버립니다. 리처드 칼슨(Richard Carlson)이라는 사람의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책이 나와서 한때 많은 사람에게 읽혀졌습니다만 어떤 면에서 진짜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복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복음이 이해 안 되면 악한 사단이 자꾸 교회 안에서 주변적인 것, 진리 아닌 주변적인 것, 사변적인 것을 가지고 많은 문제들을 일으켜서 거기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라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오직 복음 속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뛰어넘는 축복의 비밀을 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로마 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특히, 읽진 않았습니다만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여러분, 믿음이 연약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이 있고 연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연약한 사람의 의견을 받되 그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다, 믿음이 강하다, 그 사람을 그대로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 교회 안에 그 부분 때문에 비판이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3절에 보면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교회 안에 업신여기고 비판하는 일들이 있었다는 말이고, 또 4절에 보면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무슨 말입니까? 지금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판하고 그러는데 비판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죽 이야기하면서 이 로마 교회 안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느냐 하면 2절에 보면 음식에 대해서, 먹는 것, 음식에 대해서 문제가, 갈등이 있었던 것을 보게 되고 5절에 보면 날짜에 대한 부분에 갈등이 있었던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고린도 교회 안에도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음식을 먹어야 하느냐 마느냐하는 부분 때문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에 대해 바울이 중요한 답을 주었는데 오늘 본문에 그러한 답을 같이 연결해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만 일단 로마 교회 안에 음식과 날짜에 대한 부분들, 그래서 서로 비판하고 또 서로 정죄하고, 이런 문제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 진짜 복음을 알면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자유함을 누릴 것인데, 요한복음 8장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했는데, 진짜 복음의 비밀을 알면 그 모든 것에서 자유함을 누릴 것인데 이 복음이 이해 안 되고 뿌리내려 있지 않으니 사소한 부분에 걸려서 축복의 역사들을 누리지 못하고 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자유를 주셨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해방된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이제는 노예가 아니고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자유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의 비밀을 모르니까 스스로 죄의 종노릇하면서 마귀의 종노릇 속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자유를 그리스도께서 주셨는데 종의 노릇하는 이런 모습 속에 우리 자신들이 빠져 있지 않은가 살펴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저주에서 해방 받은 것이 구원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된 자유함을 받은 것이 구원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그냥 교회 다니지 말고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정말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알고 구원의 축복의 비밀이 무엇인가 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교회 다녀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든 문제 속에서, 한 마디로 모든 묶인 것에서 해방된 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디에서 해방되었습니까? 어디에 묶여 있었습니까? 저와 여러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었을 때는 에베소 2장 1절에 보면, 특히 에베소 2장 1절~7절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가장 잘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 그 속에서 구원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장 설명해 주는 본문이 에베소 2장 1절~7절에 나오는 내용인데, 거기에 보면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는 과거의 죄, 원죄와 자범죄와 조상의 죄들 가운데 묶여 있었어요. 그래서 에베소2: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 우리의 과거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죄로 말미암아 저주와 재앙이 일어나는데 그 죄의 뿌리는 원죄에 있습니다. 이 원죄 때문에 우리 인류는, 인간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죄 문제를 인간의 그 어느 누구도 절대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가지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원죄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와 우리 조상의 죄들, 모든 죄들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9:11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사장으로 오셨다 말씀하시고, 12절에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순간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순간에 동이 서에서 먼 것 처럼 우리의 모든 죄과를 주님에게서 멀리 옮기셨습니다.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8장에 보면 바울이 자신 있게 이야기 하지요. 누가 너희를 정죄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너희를 정죄하리요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 문제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짓는 죄, 우리 조상의 죄, 우리의 모든 죄의 근본 뿌리인 원죄 이 모든 죄들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끝냈다라는 사실...이 참된 축복의 역사들이 날마다 여러분에게 누려지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고통가운데 빠져있지 말고요, 죄로 인한 죄책감 가운데 날마다 밤을 지새워가면서 고민하고 애타하지 마시고요, 여러분 죄를 안 짓는 존재로 우리 인간을 축복하신 것이 아니고요, 죄를 지어도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 문제 해결 받을 수 있는 그 길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어주신 거예요.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과거는 끝난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빠진 우리 인생에게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오늘을 어떻게 삽니까? 현재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가지요. 그게 에베소2:2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지금 사탄의 손에, 사탄의 법에 메여 있어요. 마귀와 마귀의 법에 메여 있어요. 그러니까 이들은 열심히 살아간다고 살아가면서 사탄의 법에 메여 있으니까 밤마다 시달리고요, 악몽에 시달리고, 여러 가지에 시달려서 잠도 못 자고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참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뭔가 사탄의 법에 메여 있으니까 이사하는 날짜도 잡아야 되고요, 매장하는 날짜도 잡아야 되고요, 또 방향도 잡아야 되고 모든 것이 묶여 있고 메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 받았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불신자들을 보세요. 이사를 함부로 못해요. 방향도 함부로 못 잡아요. 묘를 매장하는 것도 함부로 하지 못해요. 꼭 날짜를 잡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게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바로 사주팔자 운명에 붙잡혀 있다라는 것, 마귀와 마귀의 법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지금 믿지 않는 사람들은 사주팔자 운명에서 못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가지고 그 마귀의 일을 십자가에서 멸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셨음이라”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와 마귀의 법에 메여있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 이 축복을 우리가 누려야 되요. 그리고 이런 과거와 현재 문제가 해결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 무엇입니까? 에베소2:6절에 보면 “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의 미래는요, 죽음에서 우리를 부활시키시고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도록 우리를 축복하시는 완전한 미래가 다 준비되어지고, 미래가 다 결정되어지고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아는 순간에 우리의 과거문제, 현재문제, 미래문제 다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말이지요. 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든 문제, 이 문제를 끝난 부분들을 한 구절의 성경말씀으로 가장 잘 말씀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골로새서1:13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나니...” 무슨 말입니까? 통치 받는 것이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지난 날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악한 사탄 마귀의 통치 받았지만 지금은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하나님의 통치 받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느냐 너무나 중요하지요. 북한 주민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오늘도 우리 장로님이 북한을 위해 기도했습니다마는 여러분 그들이 그냥 북한에 태어났다는 그것 때문에 김정은의 독재하에서 ...어제 70주년이라해서 열병식을 하고 퍼레이드를 하고 했습니다마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죽어가고 있잖아요. 이미 우리가 북한의 실상을 알고 있잖아요. 왜 그렇습니까? 김정은의 통치 속에 있기 때문이예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마귀에게 지배받고 지옥의 권세아래, 영원한 묶임 가운데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 축복된 자리로 우리를 옮기셨습니다. 이 비밀을 알고 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바로 우리에게 주신 참된 자유함이지요. 요한복음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면서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냈습니다. 나사로가 나왔는데 온 몸이 베로 감겨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1:44절에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풀어놓아 자유롭게 다니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문제를 완전히 십자가에서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지옥의 권세에서, 사탄의 권세에서, 사망의 법안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 자유함을 날마다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자유를 - 어떻게 사용하면 되겠는가?
그러면 두 번째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말씀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신 그 자유함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입니다. 믿음을 따라 사용해야 되지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된 자유함을 주셨는데 그 자유함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우리의 직장에서 어떻게 봉사하고, 어떻게 헌신해야 되는것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직장 속에서, 우리의 사회생활 속에서, 오늘 사회생활 속에서 인간관계에 승리하는 비밀이라고 말씀했는데 이 사회생활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헌신하고 봉사해야 되느냐입니다. 거기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데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탄을 좋게 하면 안됩니다. 사탄을 기쁘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도 모르게 사탄을 좋게하고 기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사탄을 좋게 하고 기쁘게 하는 일들이 어떤 일인가 13절에 한번 보세요. 거기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그것이 우리의 형제들 앞에 거친돌이 되어진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시험들 일을, 자유를 가지고 시험될 일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 본문의 내용과 연결해서 고린도전서에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주신 메시지가 있는데 고린도전서8:8~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 문제 때문에 생겨진 문제에 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답을 주는데 8: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 사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씀하면서 9절에 보면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그 모든 것에서 자유 할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자들이 혹 우리의 행동을 보고 실족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 할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하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의 삶을 한번 살펴보세요. 우리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말과 행동들 앞에 서 있는가? 우리가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가 하는 말들이 그냥 생각없이 하는 말들인데 우리의 그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되고요, 뭔가 우리가 말한다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그 사람의 신앙생활에 특별히 믿음이 연약한 자들의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일도 우리는 스스럼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어요. 오늘 이 부분에 중요한 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께 죄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에게 그들이 그것을 통해 걸려 넘어진다면 그리스도 앞에 죄짓는 것이다 했어요. 그러면서 또 15절에 보면 어떤 것을 사탄이 좋아하느냐 하면 15절에 보세요.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여러분 근심케 하는 것, 형제들로 말미암아 근심케 하는 것, 그것은 사랑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심케 한다는 말이거든요. 이것은 남의 눈치를 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쉽게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내가 좋으면 좋지, 상대방이 무슨 상관이야. 그런 말들을 쉽게 하잖아요. 이게 극단적인 이기주의예요. 극단적인 개인주의예요. 그런데 이런 부분들을 우리의 말들을 들어보면 쉽게 그냥 해요. 아니 내 좋은 대로 행하고요, 상대방이 어떻든 상관없이... 그렇다고 해서 굳이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눈치를 보라는 그 말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는 그런 것들은 모두가 성도들의 근심을 준다는 것, 이것을 악한 사탄이 이용해서 결국은 상처가지고 갈라지게 하고 문제를 가져오게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16절에 보세요. 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우리게 쉽게 빠질 수 있는 것인데요.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하라”여러분 여기에 선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한 것은 복음 밖에 없어요. 이 땅에서 선한 것은 복음밖에 없어요. 그러면 무슨말이예요. 복음이 비방 받지 않도록 하라 했어요. 우리가 쉽게 복음 복음 말을 하면서요, 맘대로 생각하고 맘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방탕이고, 방종입니다. 그것이 복음을 비방 받게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가치 있는 복음을 내가 자유롭다 해 가지고 그 자유함으로 내 맘대로 살아간다. 그것이 복음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것이고 복음을 비방 받도록 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 정신 차리고 제대로 알고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주셨는데 그 엄청난 축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쉽게 사회생활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이 복음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도록 만드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여러분 율법주의하고 율법하고는 다릅니다. 율법주의는 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율법은 좋은 거예요. 율법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 필요한 이유를 알고 율법 때문에 우리가 죄인된 이유를 알거든요. 그래서 율법을 예수님께서 완성한 것이지, 폐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로 이미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 몸부림치잖아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규모 있는 삶을 살 것인가, 말씀대로 살아갈 것인가, 그래서 말씀(율법)을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그 모든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그 방법이 율법(말씀) 속에 있어요. 그런데 율법과 율법주의를 잘못 착각해서 “내가 말씀대로 안 살아도 돼, 마음대로 살아도 돼, 규모 없이 살아도 돼”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게 결국은 악한 사탄이 틈타는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엄청난 축복을 사실 다 놓치게 만드는 겁니다. 어제 핵심훈련에서도 말씀했습니다. 직장 속에서 전도지 들고 전도한다고 시끄럽게 쫓아다닌다면, 그게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냐? 여러분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직장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충실하게 진짜 나 때문에 이 직장이 복을 받도록 살리고 조용하게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시끄럽게 막 전도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갈급한 사람을 붙이시게 되어 있고 또 갈급한 사람이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조용히 답을 주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나아만 장군의 집에 계집아이가 나아만장군의 문둥병에 답을 준 것처럼 답을 주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직장 속에서 전도한다고 막 시끄럽게 돌아다녀요. 그러면서 직장일도 제대로 안하고.. 그러니까 같이 일하는 불신자 동료조차도 “예수 믿는 것들..” 이렇게 말해요. 그게 바로 복음이 비방 받도록 하는 겁니다. 복음이 가치 없게 비방 받도록 하는 겁니다. 조용히 직장 속에서 미리 일찍 출근해서 준비하고 기도로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위에서 시키는 것을 최선을 다해 성실히 하고 불신자동료보다 10배로 일하는 겁니다. 그러면 사장님이 보고 월급을 더 주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아 저사람 뭔가 다르구나! 저절로 전도의 문이 열려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누린다고 하면서 직장 속에서 제대로 할 일도 하지 않고 뭔가 시끄럽게 돌아다니기만 하고 또 직장 안에서 서로 부딪히고 그러니까 오히려 불신자조차도 혀를 내두르는 이런 꼴이 되어 가고 있어요. 이게 바로 한국교회 성도들의 현장의 모습이에요. 진짜 신뢰를 회복해야 됩니다. 정말 성도로서 참된 가치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데 나 때문에 가치 없어진다면 되겠습니까!! “선한 일이 비방 받지 않도록 하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로마서 14장 20절에 보면 “거리낌으로 하지 말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혼자서 뭔가 숨겨서 하는 것 있잖아요. 그건 신앙양심상 떳떳한게 못 되요. 숨겨서 할 바에는 차라리 드러내 놓고 하세요. 그러면서 22절에 “정죄하지 말라” 무슨 말인가 하면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실족시키고 남을 정죄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게 교회 안에 틈타는 사탄의 통로들입니다. 왜 그러냐? 복음이 이해되지 못하고 복음이 뿌리 내리지 못하니까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는데 결국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리스도 안에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함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직장 안에서 어떻게 헌신하고 봉사해야 되느냐?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아야 되는 겁니다. 내게 있는 자유함을 가지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19절에 말씀하고 있죠.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덕을 세우는게 무슨 말입니까?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리의 자유함을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 우리 인간에게 복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우리 사람에게 가장 복된 일은 사람이 나를 만났다, 나를 만남으로 그 사람이 세워지고 그 사람이 살아난다면, 이 일이 가장 축복된 일이 아닙니까!!
지난 추석연휴 때 갈 곳이 없어서 큰집에 조카들, 저희집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잔잔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즘 한창 신문에도 광고가 나오던데 볼만하다 싶어요. ‘인턴’이란 영화인데 70세 된 노인이 어느 회사에 부사장으로 있다가 정년퇴임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회사에서 인턴 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듣고 시니어(나이가 많은)인턴으로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많은 경쟁을 뚫고 그분이 선발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회사는 30대의 여성이 CEO로 있는 너무나 철저하고 완벽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업을 갑작스럽게 부흥 성장 시켰어요. 그런데 거기에 인턴으로 배정을 받았는데 처음에 30대 여성 CEO가 늙은 인턴이 자기에게 붙여지니까 잠시 이동하면서 보니까 영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당장 부하 직원에게 문자를 보내서 오지랖이 넓은 이 인턴을 당장 다른 부서로 배치하라고 한 겁니다. 그 이튿날 가니까 이 할아버지가 자기 자리가 없어진 겁니다. 자리가 없어져도 상관없이 그 자리에 가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젊은 CEO가 그 할아버지 인턴이 필요해서 불러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70세 되는 그 경륜을 가지고 30대의 젊은 여성을 도와가면서 사람을 세워나가는 아주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주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좀 볼 필요가 있다 싶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사람을 세우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그것만큼 인간에게 복된 일이 있을 수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함을 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으라는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옳은 말을 한다 할지라도 아무리 바른말을 한다할지라도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옳은 것이 안 됩니다. 그래서 바른 말도 좋고 옳은 말도 좋지만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되어야 됩니다. 대표적으로 고린도전서 8장 12~13절에 보면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을 때 바울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 너희들이 우상에 바쳐진 음식 먹는 것을 보고 그 약한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면서 13절에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어요. 바울은 고기를 먹을 수 있지만 그 고기를 먹는 것이 믿음이 연약한 자들, 새신자들, 약한자들이 그것을 바라보면서 실족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 안 먹겠다고 했어요. 그게 바울의 중심이었어요. 무슨 말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에 자기의 자유함을 쓰겠다는 말이죠. 자기의 자유함을 방종하거나 남용하는 일에 쓰지않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겠다는 말이에요. 고린도전서 9장 19절에 보면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조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할렐루야! 우리에게 주신 자유함,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에 쓰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사람을 실족시키고 연약한 성도들, 불신자들이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 방해하는, 그것을 가로막는 일이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악한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함은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에 쓰라고 주신겁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유를 누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유는 뭐냐? 덕을 세우는 일에 쓰임 받는 자유함입니다. 이것을 진짜 자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덕을 세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세우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자유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다른말로 해서 전도와 선교라고 하는 것이죠. 이게 진짜 참된 자유함입니다. 우리 하나교회 성도님들 참된 자유함, 이 자유함을 가지고 이제는 현장을 살리되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쓰임 받는 모든 전도자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10월 11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참된 자유
(롬14:13-23)


서론: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빛의 갑옷(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성령의 내주,인도,충만 누리는 것). 이것을 누리지 못하면 현장에서 불신자를 능가할 수 없고, 오히려 동화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내주: 주께 맡기면 성령하아님께서 나를 책임지심(고전3:16), 성령의 인도: 인간관계 가운데 순간순간 선택, 판단할 일이 많기에 하나님의 지혜로 해야함. 성령의 충만: 우리는 연약하고 모자라기에, 당장은 아니더라도 불신자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심]. 이 비밀을 알고 믿음 안에서 행하다면 어느 누구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않은 것들은 다 죄입니다(23절)


1. 우리는 -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받은 자유인입니다.
가. 당시 로마교회 안에서는 사소한(롬14:1-5 음식, 날짜) 갈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1) 유대교적 배경(전통,제도,규례)의 교인들과 헬라문화 배경의 교인들간의 갈등이었음
2) 교회가 완전 복음으로 뿌리내리지 않으면, 사소한 것에 시험에 들고 상처를 주며 갈등에 빠짐
3) 업신, 비판하지 말고(롬14:1,3) 지금 모습에 속지말며(4절), 자유함 가운데(요8:32)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나. 구원은 모든 저주, 묶인 것에서 해방 받은 것입니다(참된 자유 - 히9:11, 롬8:34)
1) 과거(엡2:1) -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건져내심
2) 현재(엡2:2) -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주 권세 잡은 자, 불순종의 아들들의 역사를 멸하심(요일3:8)
3) 미래(엡2:6) - 함께 일으키사 하늘에 앉히사, 완전한 미래가 준비되어져 있음
☞ 흑암에서 건져내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심(골1:13) - 나사로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심(요11:44)

2. 자유를 - 어떻게 사용하면 되겠는가?
가. 사탄을 기쁘게 하지 말라!!
1)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시험될 일을 하지 말라(롬14:13, 고전8:8-9)
2) 다른 사람을 근심하게 하는 것을 하지 말라(롬14:16) -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임
3) 복음이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라(롬14:16)
4) 무엇이든 거리낌으로 하지 말라(롬14:21) - 숨겨서 하지말라
5) 정죄하지 말라(롬14:22) - 사탄이 틈타는 통로임
나. 내게 있는 자유함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야라!!
1)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일(화평, 덕을 세우는)만큼 아름답고 복된 일이 없음(롬14:19, 고전8:12-13)
2) 아무리 옳고 바른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죄임(고전9:19, 갈5:13)


결론: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유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자유란 덕을 세우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덕은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전도와 선교 그리고 세계복음화를 위한 것이 참된 자유인 것입니다. 한주간 현장과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쓰임 받는 전도자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로 빛의 갑옷을 입는 가운데, 성령의 내주와 인도, 성령의 충만함을 누리길 원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저주와 재앙에서 해방 받은 자로 부름 받았사오니, 완전 복음으로 각인, 뿌리, 체질되게 하옵소서. 아무리 옳고 바른 것이라도 사람을 무너뜨리는 사탄의 일에 빠지지 않길 원합니다. 한주간 우리에게 있는 참된 자유함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469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 단6:16-28 2025-01-12
1468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단5:17-31 2025-01-05
1467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갈4:4-7 2024-12-31
1466 땅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단4:28-37 2024-12-29
1465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눅2:8-14 2024-12-22
1464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단3:8-18 2024-12-15
1463 손대지 아니한 돌 단2:25-35 2024-12-08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