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나의 보호자
2015-10-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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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나의 보호자”
(롬16:1~2)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 롬16:1~2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그의 손이 그 일을 마치십니다! 우리 찬양대 찬양을 불러주셨는데, 그 찬양대 부른 찬양으로 한 번 더 함께 인사하겠습니다. 막을 수 없는 복음 전하는 전도자이십니다!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한 시대에 폐할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그 복음의 역사를 증거하는 전도자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이 한 날 예배드리는 가운데 전도자에게 주시는 귀중한 축복된 응답들을 찾아 누리는 최고의 시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년 10월이 되면 전 세계적으로 수여하는 상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노벨상입니다. 알프레드 노벨이라는 사람이 다이너마이트를 만들고 나서, 한 마디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알프레드 노벨이 어느 날 프랑스의 호텔에 숙박을 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조간 신문을 펼쳐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신문 기사에 보면 ‘죽음의 상인, 어떻게 하면 어느 때보다 사람을 빨리 죽일 것인가 개발했던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라는 신문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자기가 죽었다고 신문 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가만 알고 보니 그것은 신문 기사가 잘못 쓴 오보였는데 자기의 형인 루드비히 노벨이 죽은 사건을 이름을 잘못 알고 알프레드 노벨로 해서 내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단은 거기 나온 문구를 보고 이 분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상인, 어느 때보다도 사람을 많이 죽이는 개발을 한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라는 그 문구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호텔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 곰곰이 생각 속에 빠졌습니다. 결국은 이 알프레드 노벨이 죽음 이후에 자기가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 하는 부분을 미리 본 것입니다. 아, 결국 내가 성공한 것이 아니구나! 돈을 가졌고 명예를 가졌고 나름대로 구축할 부분들을 다 구축해 놓았는데 결국 나의 미래가 이렇게 평가된다면, ‘죽음의 상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것을 개발한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라는 이 부분을 보면서 나의 죽음이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다면 나는 결국 성공한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이 사람이 호텔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정말 후회 없는 인생이 되어야 하겠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노벨상입니다. 그래서 1901년부터 노벨상이 수여되어 지금까지 계속해서 매년 여섯 개 분야에서 노벨상이 주어지고 있는데 여러분,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 뿐인 생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으로 여러분이 하나님과 우리 후대 앞에서 기억되기를 원합니까? 분명히 한 번 뿐인 생에 후회 없는 삶을 모두가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한 번 뿐인 생에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이 우리의 생애를 후회 없는 삶으로 만들어 줄까요? 명예가 우리 자녀들에게, 성공한 명예를, 돈을 물려준다고 해서 과연 내가 내 인생이 성공한 생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전달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 앞과 후대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거기에 모델로 나오는 것이 로마서 16장의 인물들입니다. 로마서 16장에 보시면 거의 34명, 16장에 나오는 인물들을 이야기해 놓은 것을 보면 각각 다 다릅니다. 서른 명, 서른 네 명, 서른 일곱 명까지 보는 분들도 있는데 어떻든 서른 네 명 정도,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성공한 인생이 어떤 것인가를 모델로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별명이 붙여져 있고 그 별명은 그냥 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러한 역할들을 감당했음을 우리에게 이미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이 예배 참여한 여러분 모두 한 번 뿐인 생에 정말로 후회 없는 삶으로 성공한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인도받으면 과연 후회 없는 삶으로 성공한 인생이 될 것인가 오늘 말씀 듣는 가운데 답을 찾고 여러분 한 생애가 하나님 앞과 후대 앞에서 기념비적인, 정말 시대적인 귀한 축복된 기념비를 남기는 그러한 응답의 주역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많은 사람 - 틀린말
그 중에 먼저 오늘 바울이 가장 먼저 편지를 쓰자마자 1절, 2절에 보면 여집사, 겐그레아에 있는 여집사 뵈뵈에 대해 추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은 이 당시에 여자들은 인정 받지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전도자가 여집사, 그것도 저 시골 겐그레아 섬의 여집사 뵈뵈를 첫 번째로 거명했다는 것,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무시당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는 존귀한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 사실 그 당시에, 여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그 시대에 먼저 전도자 바울이 여자를 거론했다는 그 자체가 대단한 파격적인 부분인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뵈뵈를 통해서 우리가 살펴볼 것인데 먼저 뵈뵈, 바로 바울이 고백한 나의 보호자다, 나의 보호자인 그 뵈뵈를 살펴보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에 속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틀린 말, 거짓말에 속고 있는데 틀린 말, 거짓말에 속고 있는 크게 세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내가 신앙 생활 한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다녔는데 나는 어렵다 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우리 가정은 왜 이렇게 어려움들이 계속될까? 여러분, 그게 맞는 것입니까? 예, 맞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있고 우리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축복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된다, 안 된다 문제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 우리 가정은 왜 이렇게 안 될까, 그렇게 말씀들 하시는데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 그리스도,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생명의 빛이 임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날마다 빛 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증거는 분명히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낙심하지 말고 불신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창세기 39장 2절~5절에 보면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보디발이 요셉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보았다고 했고, 심지어 보디발의 집의 소산물까지도 하나님의 복이 요셉 때문에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빛이 드러나게 되고 증거는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현장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전쟁이 없었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시대의 재앙 중의 재앙이 전쟁 아닙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 때문에 전쟁이 없었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들을 통해서 나는 응답이 없다, 또 특히 너무나 응답들을 못 받고 있다 보니 응답 못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래서 내가 신앙 생활하는 데 있어서 무언가 안 되어지는 부분들 속에 왜 나는 이럴까, 왜 나는,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어려움을 당할까, 그렇게 착각할 수 있는 것인데, 틀린 말이라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신다면 반드시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성도들이 속고 있는 틀린 말이 무엇이냐 하면 예전에는 나도 신앙 생활 제대로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옛날에 나도 신앙 생활 해 본다고 해 봤습니다, 그런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신앙 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여러분,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것은 그냥 예배당, 교회당 다녀서 그렇습니다. 교회당 다니지 말고 정말 그리스도를 믿기를 바랍니다. 교회당 다니면 안 됩니다. 교회당 다니면 여러분, 괜히 고생하고 어려움 당하고 실컷 고생만 하고 나중에는 실패하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정말로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예수를 알고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 시간 가면 갈수록 역사는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게 아니라 예전보다 더 큰 응답들이 날마다 우리의 걸음걸음 속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분,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쫓겨다니는 상황 속에서 그 상황 속에서 다윗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시니까 나는 부족함이 없다고 이야기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가나 혼인 잔치에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참여했습니다. 갈릴리 가나에 혼인 예식이 있어서 그 혼인집에서 준비한다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손님들을 초청해 놓고 접대하는 최고의 것이 있다면 포도주를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 가정의 제일 좋은 포도주를 내어 놓는 것이 잔치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결혼식이 진행되는 과정이니까, 혼인 잔칫집이니까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인생이 그러하고, 우리 인생이 정말로 모든 것 준비한다고 준비한다 할지라도 모자라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것은 그 자리에 바로 예수님이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을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 했습니다. 그것을 갖다 주었더니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포도주를 먹고 놀란 것입니다. 원래 일반적으로 잔칫집에서 포도주를 내어 놓을 때에는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어 놓고 그 다음에 나중에 가서 나쁜 포도주를 내어 놓는데, 좋은 포도주가 다 떨어지면 나쁜 포도주를 내어 놓는데,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 첫맛 좋은 것 다 내어놓고 술 취하면 아무거나 내어 놓아도 맛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손님들이 이 집의 포도주를 맛보니까 처음보다도 시간 가면 갈수록 더 좋은 것이 나오니 거기에 놀란 것입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되어진다면 우리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큰 축복과 응답들이 날마다 우리의 걸음 속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나름대로 신앙 생활을 잘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교회 다녀서 그렇습니다. 진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 되어지면 네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은, 어떻게 된다고요? 창대케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 전하다가 복음 가지고 죽었다, 어떤 면에서 복음 가지고 죽은 전도자들은 죽음 이후에 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진짜 여러분이 응답 받음으로 말미암아 예전에는 나도 신앙 생활 제대로 했는데, 그런 말들이 여러분 입에서, 그런 불신앙들이 여러분에게서 떠나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연히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날마다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 세 번째로, 틀린 말들, 우리가 쉽게 하는 틀린 말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에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금했는데 나는 실패했다는 것,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고 예배 안 빠지고 헌금 많이 하고 봉사한다고 봉사했는데 왜 나는 실패했느냐?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복음 위해서 헌신한다면 실패하는 인생이 안 됩니다. 엉뚱한 것에 우리의 생을 드려서 실패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엉뚱한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복음을 붙잡지 않고 엉뚱한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지나고 보면 결국은 실패하는 인생이 됩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우리가 우리의 동기들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연약해서 병 낫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또 가정의 자녀들 문제 때문에, 예, 좋습니다, 신앙 생활할 수 있습니다. 또 사업이 어려우니까, 하다하다 안 되니까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 교회라도 가 보자, 그래서 교회 오신 분들, 예, 좋은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빨리 그 동기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 틀린 동기를 갖고 있으면 결국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틀린 동기를 갖고 참된 응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성도들이 나름대로 세상적인, 육신적인 어떤 동기들,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니까, 자녀들 성공해야 하니까, 사업잘 되어야 하니까, 건강해야 되니까,,그런 동기들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가지고 그 동기들 바라보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작이 그렇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동기들을 빨리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 동기 벗어나지 못하는 한 결국은 우리 신앙생활은 지나놓고 보면 실패하는 인생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오직 그리스도 할 때에 거기에는 건강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물질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물질을 목표로 신앙생활 하고 건강을 목표로 신앙생활 하면 그것 따라가느라고 망하지만 오직 그리스도 복음 붙잡게 될 때에 그 속에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들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시골에 자란 분들은 아마 아실 겁니다. 고구마를 캘때 되면은 그 첫째 고구마 캐서 줄기를 죽 뽑으면 줄기에 붙어 있던 고구마들이 주루룩 따라오잖아요. 여러분 신앙생활이 쉽습니다. 그리스도만 되어지면 그 속에 모든 것 더해지고 따라오는 축복이 있게 되어 있어요. 왜 열심히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금 많이 했는데 실패하느냐 엉뚱한 것을 붙잡고 있어서 생애를 허비한 거예요. 사실은... 우리가 빨리 붙잡아야 될 것은 무엇이냐? 오직 그리스도 붙잡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 까지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4:19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할렐루야! 그 풍성한 대로,,,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풍성한 대로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겠다 했어요. 우리의 요구와 우리가 필요한 것,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우리의 모든 쓸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사실이예요. 오직 그리스도 붙잡게 될 때에... 에베소3: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한번 받아 합시다.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붙잡으면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우리의 구하는 것은 우리의 가운데 우리 한계 가지고 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우리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우리에게 축복 하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붙잡아야 합니다. 다른 것 붙잡지 마시고요, 엉뚱한 것 붙잡고 신앙생활 하지 마시고요, 우리의 모든 동기는 오직 그리스도! 이것이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고 그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게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10:42절에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제자의 이름으로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다. 그 냉수 한 그릇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게 되면 상급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준비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어요. 고린도전서15:58절에 뭐라 했습니까?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그러면서 뭐라 했습니까? 그러면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여러분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는 길이 있어요. 주 안에서 우리의 수고, 결코 헛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복음 때문에 핍박 받고, 그 복음 때문에 핍박받고 헌신하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모른다 하시겠습니까? 아니예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로마시대에 열황제가 일어나서 온갖 박해를 초대교회에 퍼부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것은 기본이고요, 죽은 사람의 송장을 산 사람과 같이 묶어서 ..그게 사람을 서서히 고통가운데 죽어가게 만드는 것이거든요. 죽은 사람의 송장을 같이 묶어서 죽이는 그 방법을 실시했고요, 짐승의 가죽 껍데기를 벗겨서 아이들에게 뒤집어 씌워서 죽이는 죽음도 있었고요, 엄청난 죽음,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승리했습니까? 그 핍박했던 로마가 결국은 힘없어 보이는 초대교회 앞에 완전히 무릎 꿇게 되었어요. 270년만에 ... 그래서 콘스탄티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역사가 일어났잖아요. 그런 역사가 일어났잖아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지금 응답이 된다 안된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틀린 말들을 벗어버리고요, 정말로 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있다면 우리는 축복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빨리 우리 안에 있는 틀린 말들을 벗어버리는 그런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안에 고정관념화 되어 있는 틀린 말들, 이 말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준비된 응답을 누릴 수 있어요. 이것이 우리 마음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어서 한마디로 말하면 불신앙, 고정관념 이런 틀린 말들이 우리 안에 완전히 사로잡혀 체질화 되어가지고 주신 응답도 누리지 못해요. 이미 눈떠 보면 와 있는 응답인데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 때문에 틀린 말들에 속아 가지고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그것 당연한 것 아니예요. 여러분...분명히 응답 받게 되어 있고 시간 가면 갈수록 더 큰 응답이 나타나게 되어 있고요, 핍박이 일어난다. 핍박가운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분명히 상급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축복을 누려야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우리가 워낙 이 응답을 못 받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틀린 말들에 익숙해 져 있고, 틀린 말들에 길들여져 있어요.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틀린 말들에 치유 받고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들이 치유 받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응답의 문들이 열려지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한 뵈뵈
두 번째입니다. 이 뵈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무엇이 인생 속에서 가장 가치있는 인생인가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뵈뵈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1절에 보면 대전도자 바울이 로마교회에 이 뵈뵈를 추천했습니다. 여러분 추천한다는 말은 지금 말로 하면 보증 선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을 내가 보증서께, 그리고 이 사람이 당하는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그 문제들을 내가 다 책임질게. 그것이 추천한다는 말 이예요. 여러분 함부로 보증 안서잖아요. 뻔히 망할 사람인데 누가 어리석게도 보증섭니까? 보증 안서잖아요. 분명히 문제를 일으킬 사람인데 보증서겠습니까? 그런데 가만 보면 교회 안에도 말씀운동 한다고 빌미를 가지고 이상한 일들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상한 짓을 하고요, 우리 교회는 없지만은 진짜 말씀 운동 한다고 하면서도 이상한 짓을 하고 이상한 말들을 퍼뜨리고, 그래서 성도들을 어렵게 만드는 그런 것을 봐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바울이 뵈뵈를 추천한다고 했는데 얼마만큼 이 뵈뵈가 확실했으면 로마교회에 이 바울이 그 뵈뵈를 추천했겠습니까? 그 당시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평신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컬어서 어디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을까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야기하기를 행2:10절에 보면 거기에 로마에서 온 나그네라고 나오지요. 아마 로마에서 온 나그네 그 사람들이 마가다락방에 왔다가 은혜 받고 돌아가다가 교회가 시작되었지 않느냐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단 바울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다는것, 평신도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졌는데 그렇다면 그 교회의 약점이 무엇이겠습니까? 평신도들끼리 모여 있는 현장이니까 아마 교리적으로도 약한 부분들이 있었겠지요. 그러면 교리적으로 약한 교회에 바울이 아무나 보내겠습니까? 아니잖아요. 얼마만이나 바울이 이 뵈뵈를 확신했으면, 이 뵈뵈를 그 당시 여성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그 시대에 이 여집사, 겐그리아 출신인 이 뵈뵈를 로마교회에 보내겠습니까? 그만큼 전도자 바울의 마음에는 이 여자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추천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받아야 될 응답입니다. 교회가 여러분을 추천할 수 있을 만큼 그런 축복된 응답을 찾아 누리길 바랍니다. 누구누구 이야기하면 걱정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고요,,,주의 종들이 볼 때 아! 믿을 만해... 교회가 볼 때에, 또 장로님들이 볼 때에 아! 저사람 진짜 믿을만해...여러분 이렇게 새가족들이 오면 아무나 시키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또 우리가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 연결해서 말씀운동 속에 인도받고자 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아무나 연결시키는 것 아니거든요. 그래서 정말로 여러분 한분 한분이 받아야 될 응답이 있다면 교회가 인정하는, 교회가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주의 종들이 인정하고, 특별히 중직자분들, 우리 장로님들이 인정하는 추천할 만한 그런 인정받는 받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뵈뵈 였어요. 대전도자 바울이 그 로마교회를 향해서 추천한 사람이 이 여집사 뵈뵈 였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고, 무시 받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존귀한 사람이었다라는 것. 그런데 이 뵈뵈는 주 안에서 헌신한 사람이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헌신할 때 정말로 주 안에서 하는 헌신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심히 헌신해 놓고 시험 들게 되고 열심히 헌신해 놓고 결국은 응답도 못 받고 실패하는 그런 인생이 되어져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많아요. 나름대로 자기 어떤 동기를 충족하기 위하여 열심을 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결국은 나중에 가면 어려움을 당하고 실패하는 인생을 사는 것을 보게 되어요. 왜 그렇습니까? 주 안에서의 헌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주 안에서의 헌신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뵈뵈가 누렸던 축복인데요. 복음의 대열 속에 서 있는 사람이었어요. 복음의 대열 속에 서 있으면서 그로 말미암아 주시는 힘 가지고 한 사람. 그게 바로 뵈뵈였어요. 여러분 가면 갈수록 이 시대에 복음이 없어져 가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모든 것 다 있는데 가면 갈수록 한 가지 복음이 없어져 가고 있어요. 유럽도 마찬가지이고, 남미도 마찬가지이고, 러시아들 가보니까 러시아도 마찬가지고, 성모마리아는 주장하고 드러내는데 예수는 없어요, 그리스도는 없어요.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지금 문들을 다 닫고 있고요, 예수가 아니라 온갖 혼합 것들이 다 일어나서 완전히 현장에 저주와 재앙의 역사들이 판을 치고 있어요. 그게 지금 세계 현장 이예요. 복음하나 놓쳐버렸기 때문에.. 미국도 마찬가지이지요.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가면 갈수록 복음이 없어져 가고 있어요. 여러분 지금 보세요. 교회들이 구제 운동한다고, 봉사 운동한다고 거기에 모든 것들을 투자해요. 물론 좋은 일입니다. 구제하고 봉사해야 됩니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될 일입니다. 그것이 주가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복음운동 해야 되고, 그리스도 운동해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이지 구제, 봉사가 주가 아니지요. 그런데 교회가 어디로 흘러가느냐 구제, 봉사로 흘러가고요, 삶을 강조하면서 율법주의에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설교들마다 참된 복음보다도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삶에 대한 부분들이 많이 나옵니다. 물론 삶에 대한 부분들도 이야기 되어야 되지요. 그냥 막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삶도 복음안에서 나오는 삶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삶을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전부다 율법주의에 빠지고 이상한 신비주의에 빠지면서 진짜 복음이 없어져 가고 있어요. 그리고 교회들조차도 교회가 세속화되어져 가고 있고요, 신학조차도 직업화, 교권화 되어지고 있어요. 너무나 좋은 신학이 교권화 되어져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있어서 이 복음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교권가지고, 율법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일에, 정죄하는 일에 지금 신학이 쓰임 받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저께 뉴스들을 보신 분들은 아시지요. 참 낯 뜨거운 모습입니다. 부끄러운 겁니다. 저는 저녁에 그게 뉴스가 나왔다는데 보지 못하고 새벽에 씻다가 그것을 봤는데요 어떻게 저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정말로 너무나 부끄러워서 낯을 들지 못할 정도로..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이게 지금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복음이 없어져 가고 있어요. 이런 시대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알게하셨고 붙잡게 하셨는데 진짜 여러분 이 뵈뵈가 복음의 대열속에 복음 붙잡고 그 현장을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 오직 복음 붙잡고 복음의 대열속에 섰던것 처럼 여러분 한분한분이 이 시대 현장을 바라보면서 오직 그리스도 복음 붙잡고 복음의 대열에 서는 축복이 있길 축원 합니다.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 인생에 절대 해결할수 없는 문제 3가지 있는데, 그 3가지 문제를 해결한 그리스도 그게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인생의 절대 해결할수 없는 3가지 문제가 뭐에요? 죄의 문제고, 지옥의 문제고 사단의 문제입니다. 죄라는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원죄라고 하죠. 그로 말미암아 이 땅에 모든 저주와 재앙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어요. 하나님을 떠난 그 결과로 결국은 지옥에 가게 되어 있고 지금의 삶도 지옥배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입니다. 세상 따라가고 있고 물질 따라가고 있고 나 중심 따라가고 있고 출세, 성공 따라가고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비밀이 그 안에 모든 축복이 다 숨겨져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세상 따라 갈 수밖에 없고 성공 따라 갈 수밖에 없고 물질 따라 갈 수밖에 없고 나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성공한다고 합니다만, 성공한 사람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하고 그렇다고 해서 또 성공하지도 못해요. 그게 이 땅의 문제에요. 나름대로 성공하려고 몸부림치는데 성공하지도 못하고 또 성공한다할지라도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 인생의 문제고 이 땅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본인이 있는데 그 존재가 바로 사탄이라는 존재입니다. 이 악한 사탄이 우리 인간에게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하면서 속였잖아요. 그래서 전부 다 나 중심으로 살아가요. 내 기준으로 살아요. 내가 좋으면 다 좋은거고 내가 싫으면 다 싫은 겁니다. 복음을 놓쳐 버리니까 내 중심으로 내가 하나님이에요. 복음을 놓치면 어떻습니까? 창세기 3장 6절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니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게 보이는 나무 열매라고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보기에 좋은 대로, 그래서 결국은 보이는 것 쫓아가다가 인생이 멸망 받는 겁니다. 이것이 이 땅의 인생문제입니다. 이게 우리 인생의 문제만 아니라, 우리 믿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도 똑같이 이 문제 속에서 진짜 복음을 알지 못하면 망하는데 어떻게 망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불신앙으로 망하고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세상 배경 쫓아가다가 망하고 내 기준 가지고 가다가 망하는 겁니다. 구원 받았다 할지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와 지옥과 사탄의 손에 붙잡혀서 망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망할 수가 없는데 실패할 수가 없는데 왜 어렵고 실패하느냐? 결국은 불신앙하기 때문에. 결국은 세상 배경을 나의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우린 그리스도가 나의 배경인데 세상 배경으로 살아가려고 하니까. 그리고 왜? 내 기준으로 살려고 하니까. 그러니까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 하는데 내 기준으로 내 힘으로 살려고 하니까 믿는 자들도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유일한 해결책을 주셨는데 그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왕으로 오셔서 우리 인생을 멸망으로 끌고 가는 사탄의 머리를 깨트려 버리신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먼저 하나님이 약속하셨죠.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탄의 머리를 깨트린다는 말이에요. 그 예언대로 주님이 오셔서 히브리서 2장 15절에 보면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며.. 했어요. 모든 사람이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일평생 종노릇하고 있는데 히브리서 2장 15절에 보면 그 죽음의 권세를 누가 잡고 있느냐? 마귀가 잡고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그 마귀를 멸하셨다고 말씀했어요. 요한일서 3장 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이라” 했어요. 왕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사탄의 세력을 꺾으신 겁니다. 그리고 제사장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 할렐루야! 죄에서 구원할 자 예수그리스도. 성경 로마서 8장 2절에 보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게 우리를 깨끗게 하셨다” 했어요. 바로 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다 끝내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빠지고 사탄의 손에 붙잡혔기 때문에 선지자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 누릴 수 있도록 주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 우리 인생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이 그리스도를 붙잡고 나가게 될 때 우리가 복음을 붙잡았다는 것이고 이 복음 전하는 복음의 역사와 대열 속에 있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게 되어 있어요. 이 복음의 대열속에 오늘 본문의 뵈뵈가 서 있었습니다. 이 복음의 대열속에. 그리고 단순히 이 복음의 대열속에만 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헌신했는데 주안에서 헌신한다는 말은 복음의 대열 속에 서 있다는 말이고 또 한가지는 전도의 대열속에 서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전도는 뭡니까?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가지고 나가서 말하는 것을 내게 임한 그리스도의 역사를 우리 현장에서 전달하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분명히 지금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걸음 속에는 마태복음 28장 18-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이 말씀이 성취되고 있어요. 마가복음 16장 15절에 있는 말씀처럼 “온 천하에 두루다니며 만민에게 말씀을 전하라” 이 말씀 속에 우리가 있어요.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리라” 이 언약의 성취 속에 있는자, 바로 전도의 대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그 축복의 대열속에 세워 주신 겁니다. 여러분 뵈뵈가 바울을 도왔다는건 단순한 것이 아니고 바울이 하는 전도의 대열속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하는 전도의 역사는 어떤 역사였습니까? 창세기 3장 15절 언약을 주셨는데 그 언약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노예 되어 버렸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1500년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에서 빠져 나오는 출애굽기 3장 18절에 희생제사의 비밀을 말씀했어요. 그런데 그 언약을 붙잡고 이스라엘이 해방받았는데 또 어느 날 시간이 지나가지고 또 포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800년이 지난 후에 이사야 7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해라“ 800년 만에 언약이 성취되어지는 그 역사. 이 언약을 또 놓쳐 버렸는데 거기에 700년 후에 다시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셨는데 마태복음 16장 16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그 바울의 역사 속에 그 바울을 도운 그 사역 속에 이 뵈뵈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뵈뵈는 전도의 대열 속에 있었던 사람이죠. 복음의 대열속에 있는 자, 전도의 대열속에 있는 자, 가장 최고로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걸음속에 창세기 3장 15절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 대열 속에 있다면 여러분은 최고 축복속에 있는 겁니다. 출애굽기 3장 18절 말씀처럼 피의 제사 그 역사가 이루어지는 그 대열 속에 있는자, 최고로 축복받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뵈뵈는 그 축복 속에 있으면서 전도자 바울을 도왔는데 그냥 도운 것이 아니라 보호자로서 연약한 여인이지만 세계복음화를 위한 전도자를 돕는 보호자로서 그 축복을 누렸다는 것. 여러분 우리 여자분들 또 우리 권사님들 교회 안에 연약한 분들처럼 보이지만 권사님들 기도가 아무 힘없는 기도처럼 보이지만 그런 기도를 통해서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게 뵈뵈에게 주어진 축복이에요. 특별히 무엇보다도 보호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3천명의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을 추격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사울왕의 아들인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했어요. 영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왔고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시대에 가장 악한 왕인 아합왕, 그 아합왕이 예수 믿는 선지자를 죽이는 그러한 시대에 오바댜가 선지자 50명씩 나눠서 100명을 보호했어요. 보디발, 여러분 성경 창세기에 보면 그가 축복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보디발을 축복했고 그의 밭에 소산물까지 축복했어요. 왜 그랬습니까? 요셉을 위해서, 전도자 요셉 때문에. 보디발을 축복하시고 보디발의 밭에까지 축복했어요. 여호수아 2장에 보면 기생라합,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기생라합이 감히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되고 다윗의 4대조 할머니가 되었어요. 어떻게 그런 축복을 누렸습니까? 기생라합이 여리고를 정탐하는 그 정탐꾼들을 전도자인줄 알고 보호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족보에 이르고 다윗의 4대조 할머니가 되어진 그 축복된 영광스러움을 누렸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전도의 대열속에 있고 복음의 대열속에 있는 최고 축복받은 여러분, 진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여러분이 보호자가 되어지는 겁니다. 주의 종을 위해서 기도할 때 여러분, 전도자의 보호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대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냥 기도가 아니고 여러분들의 기도는 우리 후대들을 보호하는 그 보호가 될 것입니다. 그냥 율법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으로 교회를 보고 복음으로 우리 후대들을 보고 복음으로 주의 종들을 보고 내가 기도하게 될 때 그게 바로 전도자의 보호자가 되어지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 축복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문제 일어나면 교회가 왜 저래? 꼭 남의 교회처럼.. 그게 아니고 교회문제가 일어나면 아~ 하나님께서 내게 응답주시기 위해서 내게 보여주시는 거구나 그렇다면 내가 이 일을 놓고 기도하고 내가 이 일에 헌신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게 복음으로 문제를 보고 복음으로 교회를 보는 겁니다. 후대들의 모습과 주의 종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들 때문에 혹여나 실수하고 연약한 부분들 때문에 또 잘못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주의 종이 저럴 수 있나? 시험 들지 말고요, 그건 율법으로 보는 겁니다. 그럴 수 있지. 그래서 나를 기도하라고 세운 것이 아니냐! 그게 복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눈으로 가지고 보고 그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게 주의 종을 보호하는 것이고 후대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오늘 뵈뵈에게 주신 축복, 전도자의 보호자, 그 축복된 응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생애, 어떠한 영적인 캐릭터로 남을 것입니까? 아니 지금 여러분이 어떤 영적인 캐릭터로 서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의 생을 다 했을 때 어떤 캐릭터로 남기를 원하십니까? 복음 위해서 헌신하고 복음 위해서 생을 걸고 또 이 일에 함께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복음 전하는 전도자로서 특별히 복음 전하는 전도자의 보호자로서 귀한 축복된 응답이 오늘 뵈뵈의 응답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응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10월 25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나의 보호자
(롬16:1-2)


서론: 모든 사람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알프레드 노벨). 한번뿐인 생애,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과 후대 앞에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그것은 돈이나 명예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후대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던 모델이 바로 롬16장의 인물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에게 성공한 인생이 어떤 것인지 모델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별명이 붙여져 있고 그 역할을 감당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뵈뵈는 당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자로서 겐그리아 섬의 여집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기준으로 볼때는 별 볼일 없는 자가 어떻게 기념비적인 응답의 주역이 될 수 있었을까요?

1. 많은 사람 - 틀린 말
가. “교회를 다니는데 신앙생활이 너무 어렵다.”
1) 그리스도로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 임하셨기에, 시간이 갈수록 증거는 반드시 나타남
2) 요셉(창39:2-5), 사무엘(전쟁이 그침): 지금 된다, 안된다가 문제가 아님(착각하지 마라)
나. “예전에는 잘 믿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1) 교회당(예배당)만 다니지 말고, 정말 그리스도를 믿어야 함
2)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축복과 응답이 나타남: 가나 혼인잔치(요2장),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다. “열심히 헌신, 충성, 봉사, 헌금했는데 나는 실패했다.”
1) 복음 위해 헌신했다면 실패하는 인생이 될 수 없음: 엉뚱한 것을 붙잡았기에 실패함
2) 세상적, 육신적인 틀린 동기로 시작되었더라도 오직 그리스도로 바뀌어져야 함
☞ 복음을 위한 것: 구하지 않은 것이라도 쓸 것을 채우시고(빌4:19) 더 넘치도록 능히 주시며(엡3:20)
결단코 상을 잃지 않고(마10:42)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고전15:58)

2.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한 뵈뵈
가. 바울은 로마교회에 뵈뵈를 추천했습니다: 교회가 추천할만큼의 응답을 받아라!
나. 뵈뵈는 주 안에서 헌신한 사람입니다.
1) 복음이 희미해진 시대와 현장에, 복음 대열 속에 서 있는 사람 (왕, 제사장, 선지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전도의 대열 속에 서 있는 사람 (마28:18-20, 막16:15, 행1:8)
3) 연약한 사람이었으나 전도자의 보호자(요나단, 오바댜, 요셉, 기생라합)의 축복을 누린 사람
☞ 모든 것을 복음의 눈으로 보고, 기도로써 보호하라!!


결론: 마지막 생애 어떤 영적 케릭터로 남을 것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복음 전하는 전도자로서, 또 전도자의 보호자로서 뵈뵈의 응답이 우리의 응답이 되도록 기도하면 됩니다. 한주간 복음으로 나를 보호하고, 주의 종과 후대, 또 교회 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모든 약한 자들을 보호하는 보호자의 축복을 누리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 도 문 >
하나님 아버지, 한번뿐인 인생이 하나님과 후대 앞에서 기념비적인 응답을 받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틀린 말을 하고 있는 이때에, 오직 그리스도만을 위해 살아가게 하옵소서. 인생의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 안에서 헌신하길 원하오니, 복음의 대열, 전도의 대열 속에 서서 전도자의 보호자게 되게 하옵소서. 한주간 모든 것을 복음의 눈으로 보고 기도로써 보호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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