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가장 가치 있는 삶
2016-02-21 00:00:00
관리자
조회수   53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2월 21일 주일 2부 예배 김철연 선교사
“가장 가치 있는 삶”
(빌3:8~14)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 빌3:8~14

■ 저는 만 10년 전, 2006년 3월에 중남미 순회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중남미, 특히 멕시코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멕시코가 상당히, 좀 시끄럽고 항상 문제가 많고 또 치안이 불안한 나라인데 우리 하나교회 성도님들이 그 소식을 다들 잘 아시니까 저 김철연 선교사를 잘 좀 보호해 달라고 얼마나 성도님들이 밤낮으로 하나님 앞에 졸라댔는지 하나님께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하와이로 그냥 전격적으로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정말 저와 상관이 전혀 없는 곳이었고,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하와이로 하나님께서 옮겨주셨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하나교회 원로목사님과 담임 목사님, 우리 모든 당회원 장로님들과 모든 성도님들이 특히 우리 중남미 선교회를 위해서, 남미 선교를 위해서, 특별히 또 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도해 주셨는지 저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심으로 마음 속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하는 일에 생을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생을 걸 만한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머님들은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던지는 어머님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 엄마에게는 내 자식이 내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정했습니다. 제가 멕시코에 있을 때에 집 옆에 옛날 고향 생각이 나서 닭을 키웠습니다. 닭을 보니까 아침에 눈 뜨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갈 때까지 종일 생각하는 것이, 종일 하는 일이 먹는 것만 생각하고 먹는 것만 찾습니다. 우리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동물들이 살지만 그 동물들은 본능이 의해서 다 먹는 것만을 추구하며, 그것이 동물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피조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가장 가치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는 가치를 추구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살 것인가? 내 생애를 마감하고 나의 장례식에 와 모인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서 무어라고 말을 할 것인가? 아, 정말 저 선교사님, 정말 저 장로님, 정말 저 권사님은 값지게 사신 분이다! 아름답게 사신 분이다! 정말 저 분은 멋있게 사신 분이다! 우리 후대들에게 남겨준 교훈이 너무나 고귀한, 그런 교훈을 남겨주신 분이다! 그것을 우리는 모두가 마음 속에 바라고, 또 기도하고 그렇게 살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사도바울은 자기 생애에 자기 생을 걸 만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자랑거리, 과거에 내가 자랑하던 가문, 혈통, 나의 모든 배경을 배설물로 여기노라,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가문의 자랑이 무슨 배설물이 될 수가 있습니까? 그 말은 그것이 배설물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 지식,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내가 지금까지 자랑으로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만큼 내가 발견한 그리스도 예수는 너무나도 고귀한 것이다! 자기가 발견한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서 가문이나 혈통이나 나의 배경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라는 하나님의 절대목표를 발견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절대목표를 이해하고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되고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면 저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가장 원하는 것, 하나님이 가장 소원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 되었다,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거 아무나 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 마음 속에 웬일인지 그것이 나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중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 중의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누가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삽니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사명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표를 깨달았다면 그것이 바로 사명이요 이 사명을 깨닫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최고의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를 잘 아시지요? 어떻게 자기의 생업과 모든 소유물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우리의 소유물을 정말 포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우리의 생업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베드로가 그 가난 속에서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수 있었던 그 중요한 이유는 가장 소중한 사명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로 소중하다고 생각했느냐?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던질 만큼 소중한 사명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무엇을 깨달았기에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을까요? 무슨 사명을 깨달았기에 자기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헌신했을까요? 오늘 12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리스도께 잡힌 나의 사명을 위해서 나는 나의 생애를 옆으로도 뒤로도 어디로도 바라보지 않고 그 사명과 그 푯대를 향해서 나는 달려가겠다, 내 생을 드리겠다, 나는 다른 데 관심 가지지 아니하겠다. 14절 말씀에 “푯대를 향하여”라고 했습니다. 바울에게 무엇이 푯대였을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원한 천국에 비하면 서론 중의 서론이요 점찍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 땅 나그네 길은 영원한 우리의 삶에 비하면 하나의 점찍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관심을 점찍는 것에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진짜 우리의 삶이 진행되는 본론인 영원한 천국에 우리의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이 있고 거기서 우리의 진짜 삶이 진행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지식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관심이 거기에 있습니까, 점에 있습니까? 우리 사명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날에 하나님이 우리가 한 대로 상급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내 삶의 목표는 점에 있지 아니하고 내 삶의 목표는 이미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순종하고 베푼 대로 그 나라의 상급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상을 위해서 달려간다고 자기 생의 목표를 간직했습니다. 우리 사명자가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이미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요 사명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하신 분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참된 절대사명, 그 사명의 성공적인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요? 가장 훌륭한 가치를 발견했는데 그 가치 있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깨닫게 해 주신 몇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사명자가 그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먼저 몇 가지 변화가 와야 합니다. 그 변화에서부터 우리의 삶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우리가 변해야 할 것은, 첫 번째 우리가 바뀌어야 할 것은 주인입니다. 주인이 바뀌어야 나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제가 선교사로 파송 받은 다음에 염려할 일이 있어서 잠시 염려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에게 즉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 네가 해결할래, 내게 맡길래? 저는 즉시 회개했습니다. 주님, 주님이 주인이라고 내가 주인 노릇한 것을 그렇게 후회하고 내가 주인 노릇했기 때문에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고 그렇게 주님 앞에 회개해 놓고 또 내가 주인인 양 내가 해결하려고 또 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염려가 들어올 때마다, 이 일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마다 성령님은 조용히 저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 네가 알아서 알래, 내게 맡길래? 주님, 죄송합니다. 염려한다고 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염려한다고 해결될 일도 한 가지도 없지만 염려한다는 자체로 제가 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너의 모든 염려를 내게 맡기라고 이미 선포하신지 오래되었고 나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겼고 주인도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또 주인의 자리에서 내가 해결하려고 또 염려하고 있습니다. 즉시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일에 걸려들 때가 있습니다. 걸려드는 첫 번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분 나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상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안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앙 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 어디 있는고 하니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데 내가 중심이고 내가 주인일 때 내가 걸려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주님이 제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저는 목회를 하나의 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이 배의 선장 노릇을 너무 오랫동안 했습니다. 주님이 선장이십니다. 저는 가정의 가장이 운전대로 가정을 운전하는 운전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밤낮으로 운전하느라 제가 너무 피곤했습니다. 주님께 제 운전대를 맡겼습니다. 주님이 운전사이십니다. 저는 조수입니다. 뒤에서 일어나는 것을 선장님께 보고하고 운전사에게 보고하겠습니다. 주인 되신 주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그 날이, 그 순간이 제 생애에 비로소 처음으로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그 말씀을 처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주는 평안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감도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만족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조건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곤두박질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조건이 바뀌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문제가 생겼는데도 그 문제에 묶이지 않더라구요. 자유함이 있는 거예요. 문제로부터 자유함이 있고, 갈등으로부터 자유함이 있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으로부터도 자유함이 있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든지 안 알아주든지 거기에 메이지 않는 자유함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은 그 어떤 것에도 메이지 아니하고, 그 어떤 조건 때문에 없어지지 아니하는 참된 평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우리의 영적싸움에 승리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내가 어떻게 마귀를 상대해서 마귀를 거꾸려뜨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하고 한번 겨루어보려고 했던 존재인데 주인이 바뀌지 않으면 판판이 걸려듭니다. 주인이 바뀌고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될 때부터 나는 주님 뒤에 숨기만 하고 따라가는데 계속 승리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인생의 질문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문을 자기가 합니다. 내가 왜 이래? 내 와이프가 왜 저래? 내 남편이 왜 저래? 가정이 왜 이래? 자식이 왜 저래? 전부 내 입장에서 질문을 합니다. 그 답은 갈등입니다. 그러니까 늘 갈등이 지속되는 거예요. 가정의 갈등, 인간관계의 갈등, 교회와의 갈등, 계속 갈등이 없어지지 않는 거예요. 왜? 질문을 내 입장에서 하니까요. 다른 질문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소수의 사람들이지만 이유를 하나님의 이유를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갈등을 주셨습니까? 왜 이런 문제를 우리 가정에 주셨습니까? 하나님 왜 우리 가정에 이런 자녀가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왜 우리 가정에는 이런 경제적인 문제가 있어야 합니까? 정말 저는 복음에 생을 걸었는데 정말 하나님이 제게 물질 주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렘런트들, 후대들을 키우고 세계선교할 텐데요. 하나님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은 대답을 하실 것이고 그 대답이 내게 정확한 대답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이유를 물어야 답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 질문하면 끊임없이 그 대답은 갈등입니다. 왜 이럴까, 왜 이럴까, 왜 이럴까.... 선택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결혼의 선택, 결혼 배우자의 선택에서부터 부모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생애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결혼 배우자 선택에서부터 우리는 작은 물건 선택 모든 것에 선택에 의해서 가고 있습니다. 롯과 삼촌 아브라함이 한 지역 안에서 살 수 없어서 아브라함 삼촌이 조카 롯에게 네가 먼저 선택해라 우선권을 네게 주노라. 그 사람들은 유목민들입니다. 그 분들은 우양가축을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물이고 풀입니다. 그런데 조카 롯은 환경과 유목민들에게 가장 좋은 곳을 선택을 했습니다. 동편 가장 기름진 곳을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소돔고모라 성이 멸망할 때에 함께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무엇을 선택했습니까? 아브라함이 왜 양보를 했습니까? 우선권이 본인에게 있는데... 아브라함은 먼저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선택이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며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이미 12장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13장에 서로가 헤어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 그 뒤에 나오는 것입니다. 나는 동으로 가도 괜찮다 나는 서로 가도 괜찮다. 사막으로 가도 괜찮다 나는 환경이 안 좋은 곳으로 가도 괜찮다. 왜? 하나님의 언약대로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내 육신의 판단으로 좋은 환경, 좋은 조건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좋은 환경을 선택했는데 좋은 결과가 오지 않습니다. 내 눈에 보기 좋아서 좋은 사람을 선택했는데 그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보장입니까? 하나님의 언약만이 우리의 보장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선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선택,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선택이 먼저 있어야 어떤 것도 상관없다. 환경이 나를 좌우지 하고, 환경이 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배경이고, 하나님이 나의 보장이고, 하나님이 내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하나님이 내 자녀들과 후대와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 믿음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그 어떤 조건과 그 어떤 환경보다도, 그 어떤 배경보다도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본인에게 우선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에게 모든 우선권을 양보했습니다. 조카 롯은 야! 이럴 수가 있는가? 절호의 기회구나 유목민인 내게 앞으로 성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삼촌이 내게 양보 했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느 것이 복음에 유익한가? 양보하는 것이 복음에 유익한가? 내가 죽는 것이 복음에 유익한가? 내가 손해 보는 것이 복음에 유익한가? 무슨 선택을 하는 것이 복음에 유익한가? 양보하는 것이 복음에 유익하다면 양보하세요. 한 발 물러서는 것이 복음에 유익하다면 물러서세요. 손해 보는 것이 복음에 유익하다면 손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했어요. 나의 선택의 모든 기준은 이제는 복음이다. 내 명예도 아니고, 내 부도 아니고, 내 자식도 그 어떤 것도 아니고 복음의 기준, 내 선택의 기준은 복음에 유익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 중심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도 이제는 문제되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자유함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양보해도 왜 이렇게 기쁠까요? 손해 봤는데 왜 이렇게 기쁠까요? 짓밟힘을 당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시원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이미 그의 중심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을 그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양보하시고, 다 손해보고도 기쁨이 넘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한함,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자유함, 하나님이 내 생을 보장하지 그 어떤 것이 내 생을 보장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바뀌어야 될 것은 관점이 바뀌어야 됩니다. 우리는 12정탐꾼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왠일입니까? 10정탐꾼들의 보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불신앙에 빠져버립니까? 왜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결과를 왜 초래했습니까? 왜 그들이 정직한 보고를 했는데 왜 그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완전히 멸망하게 만들었습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반대의 보고를 했습니다. 옷을 찢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아 불신앙 하지 말라 그 땅은 기름진 땅이다. 그들의 신들은 그들에게서 떠났고, 그들이 우리의 밥이다. 10명은 우리가 그들의 밥이다고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보고를 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 반대의 보고를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의 밥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았습니다. 여기의 포도송이를 보십시오. 이렇게 풍성한 포도송이가 기름진 땅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포도열매가 달립니까? 하고 증거물을 내 놓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0명의 정직한 보고 때문에 그 말을 받아들인 불신앙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땅 입구에서 40년 피난생활 끝나자마다 다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갈렙과 함께 그의 말을 따랐던 20세이하의 신진들과 함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나안 땅을 소유했습니다. 주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다음에 첫 번째 주신 메시지를 여러분들은 기억하시지요. “너희는 땅에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첫 번째 주신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정복할 수 있습니까? 다스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온 인류를 어떻게 소유하고 살릴 수 있습니까? 한 생명 한 생명, 지구에 있는 65억의 인구를 우리가 어떻게 살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그 주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관점이 바뀌어야 됩니다. 보고 듣고 느끼는 현실이 사실이라고 보고했던 10정탐꾼, 말은 맞지만은 그 말은 하나님이 원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언약의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 아마 여러분들이 오늘 예배를 마치고 밖에 나가자마자, 가정으로 돌아가자, 직장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을 만나자 이런 저런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니까요. 그것이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이니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즉시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입술로, 언어로, 말로,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10정탐꾼처럼 말합니까? 여호수아 갈렙처럼 말합니까? 미안합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다수의 사람들이 열 정탐꾼처럼 말하지 않겠냐? 맞는 말, 여보 당신 다 좋은데 그게 문제요. 그 맞는 말이거든요. 그것 때문에 싸운다니까요. 그런데 이제부터 거짓말하면 절대 안 싸워요. 나 죽어도 다시 깬다면 당신하고 결혼할거야! 난 당신같이 이쁘고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그것이 진실한 사람도 있겠지만은 아마 대부분 안그럴걸요. 그런데 그런 거짓말하면 절대로 안 싸워요. 점점 좋아져요. 그런데 10정탐꾼처럼 맨 날 맞는 말 하다가 싸운다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안 그런지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표정이 그런 것 같아요.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인생을 고귀한, 값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10정탐꾼처럼 말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정말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언어가 바뀌어야 되요. 언어가 바뀌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합니까? 관점이 바뀌어야 되어요. 무슨 관점? 하나님의 언약의 관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하나님의 약속이잖아요. 하나님의 언약이잖아요. 언약대로 됩니까? 내 기분대로 됩니까? 언약대로 됩니까? 환경대로 됩니까? 언약대로 됩니까? 조건대로 됩니까? 많은 사람들이 조건대로 된다고 생각한다니까요? 내 경제적인 조건이 좋으면 잘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잘 됩니까? 내 배경이 든든하면 든든하다고 생각합니까? 든든합니까? 무엇이 참된 나의 배경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 지금 문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런저런 문제 나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문제로 보지 아니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유를 묻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지금 안고 있는 이 문제 여기가 종착역이 아닙니다. 여기가 목적지가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표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과정일 뿐입니다. 과정에 속지 않게 하옵소서. 목적은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어떤 과정에도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기가 목적지가 아니니까요. 우리의 관점이 바뀌면, 우리의 언어가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보는 것이 바뀔 것입니다. 아! 문제 아니야. 문제를 문제로 보면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면 반드시 내가 염려하게 됩니다. 염려가 불신앙의 시작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보는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아니할 수 있는 우리의 관점이 바뀌어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유를 물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정확한 대답을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제일 가장 먼저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나야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항상 문제로 보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부분은 절대 헌신입니다.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위해서 절대헌신 합니다. 어느정로이냐 하면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아니할 정도로 ...이유는 자기 생명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모이는 이 하나교회 공동체,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자기의 살과 피를 쏟아서 다 숨이 거둘 때까지 자기 피를 다 쏟아서 세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뿐인 자기 외아들을 십자가에 희생시켜서 구원한 성도들이 모인 곳이 하나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있으면 성도들이 모이는 이 교회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영접인 말씀을 공급해 주시고, 성도들을 돌보시고, 양육해 주시는 주의 종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중심으로 깨닫게 됩니다. 누가 목회자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고 사랑이 됩니까? 누가 자기 몸에서 난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사랑하게 됩니까? 하나님이 독생자를, 외아들을 희생시켜서 구원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요, 그들을 양육하는 귀한 주의 종들,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하라고,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그것이 우리 아버지의 마음인데 왜 그렇게 사랑이 안 됩니까? 아버지의 마음이 찢어지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이 평안하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이 즐겁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이 해피하겠습니까? 우리가 성도를 어느 정도 사랑해야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부모인, 우리의 영적인 부모인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해피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끼리 관계가 안 좋으면 부모 마음이 안 좋은 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이 우애 있게 살 때 부모의 마음이 해피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해피하겠습니까? 교회의 중직자, 교회의 전도자, 사역자, 얼마나 소중한 분들입니까? 정말 우리에게 그 분들이 소중합니까? 정말 우리에게 그 분들을 존중할 마음이 있습니까? 성도의 헌신은 반드시 하늘의 상급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점을 찍는 것에 불과한, 점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요, 우리의 내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고 사는 값진 사람들입니다, 사명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약속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빌립보 3장 14절에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점이 지나고 영원한 본향, 진짜 우리의 삶이 시작될 그 날에 하나님은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상상치 못했던 놀라운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달려가는 것은 이 세상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를 위해서 우리는 달려가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선교대회에, 하나교회 3회 선교대회에, 이 자리에는 지금 중남미에서, 아니, 지금 또 중국권에서, 필리핀에서, 여러 나라에서 선교사님들과, 또 현지 사역자들이 이 자리에 와서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아는 사람에게 선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해외에서 오신 분들에게 여러분들이 선물을 한다면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하늘나라의상급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기 파나마의 신학생들이 와 있습니다. 저는 파나마에 여러 번 가서 사정을 잘 압니다.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가 하는 것을 잘 압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이름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 몇 주 동안 여기서 훈련하는데 여러분들이 관심만 가지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여러분들이 마음을 담고 헌금을 하거나 그 분들을 도와 주신다면 그 상은 지상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늘나라의 하나님이 상급을 준비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 하나교회 제 3회 선교대회로 전 세계에서 오신 많은 외국인 사역자들과 우리 선교사님들과 하나교회 우리 온 식구들이 마음을 담고 선교를 가슴에 담고 예배하기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원인 인류를 구원하는 그 일에 우리의 마음을 담고 우리의 남은 생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이번 선교대회는 차세대 선교사를 발굴하는 목표를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 이 선교대회를 통해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선교에 대한 새로운 눈이 열리게 하시고 하늘나라의 상급이 보이게 하시고 절대 가치 있는 일에 목숨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절대가치를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내 생에 절대목표가 되게 하시고 절대사명이 되게 하시고 그리고 나의 생애를 드릴 수 있는 진정한 절대헌신이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선교대회 이후에 하나교회는 물론이거니와 온 성도님들 개개인이 새로운 생애, 가장 가치 있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에 도전하게 하시고 그 일에 응답받게 하시고 그 일에 인도함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해서 기도하며 계획하며 준비하며 헌신한 모든 주의 종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참된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시옵소서. 또 해외에서 오셔서 함께 훈련받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 강건함을 주시고 저들에게 참된 기쁨과 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6년 2월 21일 제3회 하나선교대회 김철연 선교사
가장 가치 있는 삶
(빌3:8-14)



서론: 동물들은 종일 먹는 것만 찾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피조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가치를 쫓는 본능적인 마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은 자기 생을 걸만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외에 가문이나 혈통, 나머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절대목표
가. 절대목표를 발견한 바울
1) 바울은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만큼 절대목표를 발견함(그리스도를 생의 목표로 잡음)
2)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음(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나. 절대사명을 깨달은 베드로
1) 베드로는 가난 속에서도 소유와 생업을 포기하고 오직 주님을 따라감
2)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던질만큼 그리스도께 잡힌 소중한 사명을 깨달음(푯대를 향하여)

2. 절대사명 - 어떻게 성공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가. 나 자신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1) ‘나’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음(나 중심이 되면 자기자신이 걸림돌이 됨)
2) 주인이 바뀌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행복, 만족 가운데 영적싸움에서도 계속 승리하게 됨
2) 인생의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1) 내 입장에서 오는 질문의 답은 갈등뿐입니다(가정, 인간관계, 교회에서의 갈등)
2) 모든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이유를 묻는 사람이 되어라
3) 우리의 선택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1) 결혼(배우자)에서부터 작은 부분에까지, 바른 선택을 하라(소돔땅을 선택한 롯)
2) 하나님의 언약, 말씀에 대한 믿음의 선택이 있으면, 어떤 것도 상관없음(우선권을 양보한 아브라함)
4) 우리의 관점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이때부터 언어도 바뀜)
1) 10명의 정탐꾼은 정직한 보고를 했음에도,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불신앙을 하게 됨
2)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으면서까지 복음의 관점으로 보고함(인류에게 주신 첫 메시지, 창1:28의 관점)

3. 절대 헌신
가. 하나교회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값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1) 교회에 모인 공동체(구원 받은 성도)와 그들을 양육하는 목회자는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음
2) 중직자와 전도자, 사역자와 렘넌트가 소중하고 또 존경할 수 있는 하나교회가 되라!!
나. 성도의 헌신은 하늘의 상급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냉수 한그릇도 절대 상을 잃지 않음)


결론:: 바울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본향, 진짜 우리의 삶이 시작될 그날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놀라운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믿음 가운데 영원한 하늘의 상급을 위해 달려가실 줄 믿습니다. 제3회 선교대회를 맞이하여, 여러 나라에서 오신 선교사님들과 현지사역자분들 모두가 절대 가능의 언약을 붙잡고 차세대 선교사의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