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2016-04-10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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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신8:11~16)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8:11~16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라들을 차지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를 약속의 자녀로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승리하는 길이 있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면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이 주님을 바라보고 세상 가운데서 승리하는 축복된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을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려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문제를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형성되고 각인된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상한 습관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상한 습관들이 나오느냐? 살펴 보면 결국은 그 사람 안에 각인되어 있는 것들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 나름대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고, 실패한 사람은, 또 무언가 피해를 당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 이미 그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히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 보면 복음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극히 드뭅니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거의 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열심과 자기의 애씀으로 몸부림쳐서 결국 성공을 이루어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결국은 자기의 체면을 세우기도 하고 자기의 열등감을 채우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열등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열등감을 채우기 위해서 앞뒤 가릴 것 없이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하게 되면 결국은, 체면이 무너지게 되면 체면에 조그마한 손해를 입어도 참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열등감 때문에 몸부림쳤는데 그 열등감을 성공으로 채웁니다만 결국은 또 다른 영적인 문제들이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어떤 지위를 가지기 위해서, 명예를 갖기 위해서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언가 성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런 부분들이 무너지게 되면 모든 삶에 있어 무너지는 사실을 당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 명예가 무너지고 돈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 그것을 강한 집착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그게 무어진다면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명도 끊어버리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 나름대로 각인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빼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한 사람들, 무언가 피해를 당한 사람들도 살펴 보면 무언가 자기 나름대로 어떤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능력, 낮은 자존감, 상처와 피해의식과 비교의식, 이런 것들로 자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 비판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염려 안 해도 될 것을 미리 앞당겨서 염려하고, 그게 낮은 자존감과 자기 안에 있는 무능력으로 실패한 사람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특징이 그렇습니다. 염려 안 해도 될 것을 미리 당겨서 염려하게 되고 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방어적입니다. 모든 것에 방어적입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것도 자기 안에 각인된 것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각인된 부분들이 치유 받지 않으면 결국은 각인된 대로 응답을 받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물론 복음, 좋은 것들이 각인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만은 경우 복음에 앞서 먼저 세상의 것들이 우리에게 각인된 것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인데 이것이 왜 우리에게 쉽게 안 와 닿느냐? 그것은 바로 육신적으로 살고 있고 나 중심적인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이 부분들이 우리 마음에 쉽게 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다른 것들이 들어가기 전에, 세상의 다른 것들로 각인되기 전에 먼저 우리 안에 복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능력으로 각인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모든 영적인 상태가 바르게 인도받게 되어 있고 그 속에서 우리의 각인들이 치유되게 되어 있는 그런 축복된 역사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렘넌트 운동, 렘넌트 운동, 왜 자꾸 이야기합니까? 세상의 것, 다른 것들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으로 각인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외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복음으로 각인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공했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의 각인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각인을 치유할 것인가? 오늘 말씀 듣는 가운데 귀중한 답을 얻는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스라엘을 광야길로 인도하신 이유
먼저 우리의 각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왜 광야길로 인도하셨는가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신명기 8장 2절~3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광야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각인된 것을 빼내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애굽의 문제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는 세상의 불신 문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일이년도 아니고 무려 사백년 동안 노예살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결국은 조상들로부터 받았던 임마누엘의 축복을 다 잊어버리고 세상 체질, 육신 체질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을 한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애굽의 체질, 다시 말해서 세상의 체질로, 육신적인 체질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여러분, 애굽에서 빠져나와서 당장 처음 맞이한 것으로 홍해라는 것을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원망함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애굽에서 갖고 있던 노예 체질 속에서 나온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광야길을 가는 동안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을 때에, 그때그때마다 원망과 불평에 빠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갖고 있는 세상적인 체질, 애굽의 체질, 육신적인 체질을 갖고 살아오기 때문에 결국은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러한 각인된 것을 빼내버리시기 위해서 광야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도적으로 인도하신 사실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광야라는 곳은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환경과 인간의 문제들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광야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인본주의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고 광야라는 곳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광야인 것입니다. 그 광야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는데 왜, 그것도 사십 년 동안? 그들에게 오랜 동안 깊이 뿌리내려 있는 애굽의 체질, 세상 체질, 육신적인 체질을 벗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예수를 믿지 않고 있었을 때에 우리의 체질이 어떤 체질이었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을 믿고 살아왔던 것이 우리들의 모습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난날 믿지 않았을 때에 우리의 체질이 있었다면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이고 육신적인 그것이 전부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그것이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길 사십 년 동안 그들의 걸음을 움직였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의 첫걸음에 그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신명기 8장 3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광야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이들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길을 통해서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 광야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았을 때에 가졌던 생각이나 이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왔지만 광야길을 걸음을 시작하는 그 때 가졌던 생각이나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산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신명기 8장 3절에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육신적인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것, 육신적인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버리니까 영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은 아예 안 믿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에베소서 2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할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남으로 사단의 손에 장악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감각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서 인정도 안 합니다. 그게 바로 육신의 것만을 믿고 살아가는 불신자 상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현장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이야기하면, 하나님 믿으라고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느니 내 팔뚝을 믿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안 믿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 영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혹여나 내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벌 받지 않을까, 또 내가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해서 되겠는가, 뭔가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하면 되는가하는 걱정, 불안, 염려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안에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그에 대한 감각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각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신앙을 가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한다, 그것만 되어도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세상이 발전하면서 그 세상 발전에 의해서 오는 문제들이 무엇이냐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지금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에서 가면 갈수록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3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그게 실상이요 증거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2절에 보면 모든 “선진들이 이로써” 하나님의 증거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증거를 얻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3절에 무어라 했습니까?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이는 것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의해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땅의 모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계시는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안 믿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축복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여러분 만물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그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누구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고 만물을 다스리고 계시는데 우리는 이 사실들이 안 믿어지니까 자기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줄 알고,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가 열심히 해서 돈 벌고, 성공한 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영적문제 당하면 거기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지요. 한 3주 전에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이 분이 제가 목사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목사님 교회가 어떤 곳인가 알고 싶습니다.’이야기를 해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친구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전도하는 두 사람을 만났어요. 한사람은 외국인이고, 한사람은 한국 사람인데 팀을 이루어 전도하는데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그날은 제가 시간이 안 되어 가지고 제가 다음에 만나면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지난 주간 월요일 저녁에 만났습니다. 제가 그분하고 이야기 하면서 십자가를 그려가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형상가진 인간에게 모든 축복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을 죄라고 했고, 그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짓게 된 배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이 역사한 것입니다. 이 악한 사탄의 존재는 원래 하나님께 찬양하던 천사였는데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하늘에서 내어 쫓긴바 되어서 이 땅의 공중 권세를 잡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을 악한 사탄이 장악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오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인간은 운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남과 죄와 사탄의 이 부분들이 안 보이기 때문에 안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드러난 현상들만 가지고 문제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데 그것을 가지고 종교라고 합니다. 우리 청년 보이지 않는 하나님, 죄, 사단의 역사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이야기 하니까 믿어진다고 해요. 아!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하군요. 그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실만 제대로 안다할지라도 정말로 왜 예수가 필요한 이유를 알게되어 있어요. 그런데 많은 경우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줄 알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떡으로만 사는 것이 다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예요. 떡으로만 사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까 사람들은 문제 당하면서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답답함 가운데 빠지고 그래서 그들의 내면상태가 결국은 그들 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성향과 문제와 사건들, 상처들, 이런 것들이 자아를 형성하고 있어요. 이게 인간이예요. 여러분 인간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근본에는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요, 그 영적인 문제에 더해서 거기에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상처받는 것들, 이런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의 인격이 되어지고, 그 사람의 체질되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그 배경에는 하나님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악한 사탄이 그들의 인생을 붙잡고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사탄은 뭐냐? 또 다른 우상을 계속해서 섬기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정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세상 체질, 애굽의 체질이 뭐냐? 망할 수 밖에 없는 체질이예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애굽의 체질, 세상의 체질, 이게 바로 악한 사탄이 붙잡고 있는 영적인 체질들입니다. 여기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체질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 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대로 영적인 눈을 떠서 영적인 축복을 누리는 체질로 바꾸어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광야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노력으로, 능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물이 없는 곳이고, 척박한 곳이고, 그런 척박한 곳을 200만, 3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움직여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가운데서 결국은 그 광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부르짖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요, 그렇잖아요. 광야 길은 우리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그래서 그런 세상 속에 200만, 300만이 움직여졌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부르짖게 될 때에 그들에게 그 광야에서 눈이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아! 그래서 결국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그 배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광야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광야 걸음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영적인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라는 사실들이 깨달아지게 될 때에 여기에 굉장한 생각과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요, 생각이 변화된 거기에 참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우리의 잘못 각인된 것들이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어져야 거기에 치유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제대로 그런 의미에서 광야를 본다면 광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 하나하나 그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복입니다. 영적인 눈을 열게 하는 복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영적인 사실에 눈을 열도록 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광야의 문제는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 8:16절에 마찬가지 광야에 걸음을 인도하신 부분들을 이야기 하셨는데 한 번 보십시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그 다음에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려 하심이었느니라 할렐루야! 광야의 모든 삶이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문제와 사건을 주실 수 있고, 문제와 사건을 붙일 수 있어요. 그래야 우리가 기도하니까...워낙 기도안하고 워낙 말씀 안 붙잡으니까 문제와 사건 주어서 그래서 기도하도록 하고 결국은 눈을 열게 하시면서 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명을 주관하고 계고,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구나 이 영적인 눈을 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광야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문제를 허락하시기도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답만 가지면 그 문제 필요없어요. 사실은... 한번 받아합시다. 광야의 모든 문제는 복이다. 여기에 아멘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문제 앞에 우리 자신들도 무너져 내리고 하염없이 눈물도 흘렸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영적인 눈을 열게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생각이 변화될 때에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각인된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치유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야 길을 걸어가는 우리 앞에 지금 있는 문제는 복입니다. 정말 이 축복을 누리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른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른 것을 요구하시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처음부터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 누리도록 하셨지. 우리 인간이 무엇을 하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굉장한 것을 이루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창세기1:27절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모든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있을 때에 모든 축복을 누리도록 우리 인간을 만드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순종하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축복을 다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나안 땅에 역사를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길을 걸어가면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입니까? 약속의 말씀을 네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들에게 이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라 이것이 신명기 주제 아닙니까? 그렇게 되어지면 7족속 31왕이 네 앞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지면 너희들에게 아름다운 그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했어요. 다시 말해서 지금씩으로 말하면 진짜 그리스도 약속만 붙잡으면 참된 승리와 대적들을 이기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신명기서를 보면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내가 뭔가 대단히 굉장한 것을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만 붙잡으면 모든 축복을 그 안에서 누리게 된다라는 것,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하나님이 우리 앞에 주신 모든 축복을 우리는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마는 이 본문을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7장에 보면 14절에 보세요. 마찬가지로 모든 법도를 듣고 지키라 그렇게 말씀하면서 14절에 그러면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여기에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이 말은 만민보다 승리한다는 말씀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게 될 때에, 약속의 말씀을 순종하게 될 때에 다시 말해서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게 될 때에 만민보다 승리한다는 이 축복을 주신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7:24절에 보세요.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때에 우리를 당할 자 없다 했어요. 그렇습니다.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에 다시 말하면 오직 그리스도 붙잡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응답들, 축복들을 주시겠다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막상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있어서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 영적인 눈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열려지지 않으면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문화와, 그 땅의 물질, 그 땅의 환경을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이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그래서 광야 길이 하나하나 복이라는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그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의 풍부한 물질들에, 분명히 하나님은 진멸하라 했는데 진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같이 짝해서 잘 먹고 잘 살걸요, 누구나 다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그것이 결국은 우리에게 올무가 된다 했어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된다 했어요. 그것이 오늘 읽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지요. 11절에 보면 “네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 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될까 염려하노라” 여러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그 문화를 따라가고, 그 물질을 따라가게 되면 결국은 거기에서 잘 먹고, 잘 살다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진멸하라 했는데 잘 먹고 잘살다 보면 결국은 그것이 우리에게 올무가 되어지고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고 내가 내 능력으로 모든 재물을 가졌다고 교만하게 된다고 말씀했어요. 오늘 17-18절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네 능력으로 그런 재물을 가진 것이 아니다라는 것. 1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승리할 수 있는 그 훈련들이 어디에서? 광야에서 하나님이 훈련시키신 겁니다. 그렇다면 광야에 길 하나하나가 모두가 우리에게 복이고 응답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이 말씀이 맞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세 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집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져야 육신을 따라 살아가지 아니하고 아!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것이 맞는 것이구나! 하고 인도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꾸신 것입니다. 여러분 가나안이 어떤 곳입니까? 멸망 받을 세상을 모델로 보여주는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가나안 땅이라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 가나안 땅에 속해 있는 선교사입니다. 믿습니까? 그 가나안땅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이 뭐냐?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는 아 말씀따라 사는 것이 맞는 것이구나! 오직 그리스도 붙잡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구나! 이것이 가나안 땅 속에 살면서 그 가나안땅을 바꾸는 비밀입니다. 이 축복된 일들을 어디서? 광야길에서. 다시 말해, 지금 여러분의 문제와 사건 속에 그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으시면서 가나안 땅, 세상 속에서 약속가진 사람으로 세상 현장을 바꾸어 가는 증인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영광을 주앞에 올려드립니다. 광야같은 세상 속에서 기어코 우리의 체질을 바꾸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가나안 땅을 바꿀 수 있는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축복의 훈련들을 시켜 나감을 알게 하시고 오늘 지금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려하심인 것을 깨닫게 하시사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어떤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진 문제,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고 그렇다면 내게 있는 그 문제는 반드시 가나안 땅 속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누릴 수 있는 그 축복된 응답이 그 속에 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축복의 문제인 것을 알게 해 주시고 특별히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니라 이 축복된 언약의 역사들을 그대로 붙잡고 응답으로 승리하는 귀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 병상에 있는 육신의 질고 가운데 어려움 당하고 있는 우리 렘넌트와 모든 성도들에게도 정말로 가나안땅을 정복하기 위해 주신 광야, 하나님 주신 응답으로 붙잡는 그런 축복된 시간들 되게 주님 역사하여 주옵시고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이 축복된 언약 붙잡고 승리하는 귀한 응답의 시간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6년 4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신8:11-16)
서론: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 복을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문제 보는 눈들이 새롭게 열려지면 됩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형성되어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자존심, 열등감, 체면, 집착), 실패한 사람이나 피해를 당한 사람들도(무능한 생각, 낮은 자존감, 상처, 피해의식, 비교의식, 부정적, 비판적, 염려, 방어적, 자기중심적) 모두 이미 각인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각인된 대로 응답 받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복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 능력으로 각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후대들에게 어릴때부터 올바른 각인을 심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각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
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각인된 것을 빼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불신배경 문화 속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다 잊어버렸음 (세상체질, 육신체질)
2) 광야는 인본주의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야 살아갈 수 있는 곳임
나. 광야의 모든 삶은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를 주시면서까지라도 영적인 눈을 열게 하심
2) 광야의 모든 문제는 복이다!! - 깊이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이 치유되는 것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라!! (신8:3, 히11:1-3, 요1:3) - 영적인 축복을 누려라!!
2. 다른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신 하나님
가.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모든 축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1)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기도하면 이 땅의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음
2) 진짜 그리스도 약속만 붙잡으면 참된 승리와 대적들을 이길 수 있음 (신7:14,24)
나.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1) 가나안땅에 들어가긴 하지만, 그 곳의 문화, 물질, 환경을 따라가게 됨
2) 결국은 자신에게 올무가 되고 여호와를 잊어버리며 교만하게 됨(12-13)
☞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영적체질로 바꿔가라!! -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깨달아라!!
결론: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생각 바뀝니다. 또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면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광야길 가는 동안 이스라엘에게 바꾼 것입니다. 가나안땅은 멸망 받을 세상을 모델로 보여주는 곳(하나님 떠난 땅)입니다. 우리는 그 가나안땅에 속한 선교사로서, 그 땅을 바꿀 사명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영적인 눈을 열고 말씀따라 살며 오직 그리스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문제와 사건 속에서 그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주간 이 사실 붙잡고 세상 속에서 약속 가진 사람으로 세상 현장을 바꿔가는 증인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신8:11~16)
11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8:11~16
■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나라들을 차지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를 약속의 자녀로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승리하는 길이 있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면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이 여러분이 주님을 바라보고 세상 가운데서 승리하는 축복된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을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려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문제를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살아오면서 형성되고 각인된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상한 습관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상한 습관들이 나오느냐? 살펴 보면 결국은 그 사람 안에 각인되어 있는 것들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 나름대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고, 실패한 사람은, 또 무언가 피해를 당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 이미 그 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히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 보면 복음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극히 드뭅니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거의 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 중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열심과 자기의 애씀으로 몸부림쳐서 결국 성공을 이루어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결국은 자기의 체면을 세우기도 하고 자기의 열등감을 채우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열등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열등감을 채우기 위해서 앞뒤 가릴 것 없이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는 것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하게 되면 결국은, 체면이 무너지게 되면 체면에 조그마한 손해를 입어도 참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열등감 때문에 몸부림쳤는데 그 열등감을 성공으로 채웁니다만 결국은 또 다른 영적인 문제들이 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어떤 지위를 가지기 위해서, 명예를 갖기 위해서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언가 성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런 부분들이 무너지게 되면 모든 삶에 있어 무너지는 사실을 당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 명예가 무너지고 돈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러냐? 그것을 강한 집착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그게 무어진다면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명도 끊어버리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 나름대로 각인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빼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패한 사람들, 무언가 피해를 당한 사람들도 살펴 보면 무언가 자기 나름대로 어떤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능력, 낮은 자존감, 상처와 피해의식과 비교의식, 이런 것들로 자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 비판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또 염려 안 해도 될 것을 미리 앞당겨서 염려하고, 그게 낮은 자존감과 자기 안에 있는 무능력으로 실패한 사람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특징이 그렇습니다. 염려 안 해도 될 것을 미리 당겨서 염려하게 되고 그 뿐만 아니라 결국은 방어적입니다. 모든 것에 방어적입니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것도 자기 안에 각인된 것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각인된 부분들이 치유 받지 않으면 결국은 각인된 대로 응답을 받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물론 복음, 좋은 것들이 각인되어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만은 경우 복음에 앞서 먼저 세상의 것들이 우리에게 각인된 것들이 너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인데 이것이 왜 우리에게 쉽게 안 와 닿느냐? 그것은 바로 육신적으로 살고 있고 나 중심적인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이 부분들이 우리 마음에 쉽게 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다른 것들이 들어가기 전에, 세상의 다른 것들로 각인되기 전에 먼저 우리 안에 복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능력으로 각인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모든 영적인 상태가 바르게 인도받게 되어 있고 그 속에서 우리의 각인들이 치유되게 되어 있는 그런 축복된 역사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렘넌트 운동, 렘넌트 운동, 왜 자꾸 이야기합니까? 세상의 것, 다른 것들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 아이들에게 복음으로 각인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예외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복음으로 각인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공했던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의 각인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각인을 치유할 것인가? 오늘 말씀 듣는 가운데 귀중한 답을 얻는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스라엘을 광야길로 인도하신 이유
먼저 우리의 각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왜 광야길로 인도하셨는가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신명기 8장 2절~3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광야길로 인도하신 이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이라는 세상에서 각인된 것을 빼내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애굽의 문제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는 세상의 불신 문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일이년도 아니고 무려 사백년 동안 노예살이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결국은 조상들로부터 받았던 임마누엘의 축복을 다 잊어버리고 세상 체질, 육신 체질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을 한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와 사건을 당하면 어디로 돌아가느냐? 애굽의 체질, 다시 말해서 세상의 체질로, 육신적인 체질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여러분, 애굽에서 빠져나와서 당장 처음 맞이한 것으로 홍해라는 것을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원망함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애굽에서 갖고 있던 노예 체질 속에서 나온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광야길을 가는 동안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을 때에, 그때그때마다 원망과 불평에 빠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갖고 있는 세상적인 체질, 애굽의 체질, 육신적인 체질을 갖고 살아오기 때문에 결국은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러한 각인된 것을 빼내버리시기 위해서 광야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도적으로 인도하신 사실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광야라는 곳은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환경과 인간의 문제들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광야라는 곳은 어떤 곳이냐? 인본주의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이고 광야라는 곳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광야인 것입니다. 그 광야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는데 왜, 그것도 사십 년 동안? 그들에게 오랜 동안 깊이 뿌리내려 있는 애굽의 체질, 세상 체질, 육신적인 체질을 벗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에 예수를 믿지 않고 있었을 때에 우리의 체질이 어떤 체질이었습니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을 믿고 살아왔던 것이 우리들의 모습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난날 믿지 않았을 때에 우리의 체질이 있었다면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이고 육신적인 그것이 전부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그것이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길 사십 년 동안 그들의 걸음을 움직였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의 첫걸음에 그들이 갖고 있었던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신명기 8장 3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광야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이들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길을 통해서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서 광야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았을 때에 가졌던 생각이나 이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왔지만 광야길을 걸음을 시작하는 그 때 가졌던 생각이나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산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신명기 8장 3절에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육신적인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것, 육신적인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버리니까 영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은 아예 안 믿습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에베소서 2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할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남으로 사단의 손에 장악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감각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서 인정도 안 합니다. 그게 바로 육신의 것만을 믿고 살아가는 불신자 상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현장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이야기하면, 하나님 믿으라고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느니 내 팔뚝을 믿으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안 믿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 영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혹여나 내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벌 받지 않을까, 또 내가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해서 되겠는가, 뭔가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하면 되는가하는 걱정, 불안, 염려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여러분 안에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그에 대한 감각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감각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신앙을 가질 수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인정한다, 그것만 되어도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세상이 발전하면서 그 세상 발전에 의해서 오는 문제들이 무엇이냐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 지금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세상에서 가면 갈수록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3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그게 실상이요 증거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2절에 보면 모든 “선진들이 이로써” 하나님의 증거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증거를 얻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3절에 무어라 했습니까?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했습니다.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보이는 것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의해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땅의 모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이지 않는 모든 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고 계시는데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안 믿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축복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여러분 만물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그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누구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만물을 주관하고 계시고 만물을 다스리고 계시는데 우리는 이 사실들이 안 믿어지니까 자기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줄 알고,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가 열심히 해서 돈 벌고, 성공한 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 영적문제 당하면 거기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지요. 한 3주 전에 한 젊은이를 만났는데 이 분이 제가 목사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목사님 교회가 어떤 곳인가 알고 싶습니다.’이야기를 해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친구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전도하는 두 사람을 만났어요. 한사람은 외국인이고, 한사람은 한국 사람인데 팀을 이루어 전도하는데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그날은 제가 시간이 안 되어 가지고 제가 다음에 만나면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지난 주간 월요일 저녁에 만났습니다. 제가 그분하고 이야기 하면서 십자가를 그려가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형상가진 인간에게 모든 축복을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난 것을 죄라고 했고, 그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짓게 된 배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이 역사한 것입니다. 이 악한 사탄의 존재는 원래 하나님께 찬양하던 천사였는데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하늘에서 내어 쫓긴바 되어서 이 땅의 공중 권세를 잡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을 악한 사탄이 장악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오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인간은 운명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남과 죄와 사탄의 이 부분들이 안 보이기 때문에 안 믿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드러난 현상들만 가지고 문제해결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데 그것을 가지고 종교라고 합니다. 우리 청년 보이지 않는 하나님, 죄, 사단의 역사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이야기 하니까 믿어진다고 해요. 아!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하군요. 그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보이지 않는 영적인 사실만 제대로 안다할지라도 정말로 왜 예수가 필요한 이유를 알게되어 있어요. 그런데 많은 경우 보이는 것만이 전부인줄 알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떡으로만 사는 것이 다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예요. 떡으로만 사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축복의 비밀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까 사람들은 문제 당하면서 불안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답답함 가운데 빠지고 그래서 그들의 내면상태가 결국은 그들 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성향과 문제와 사건들, 상처들, 이런 것들이 자아를 형성하고 있어요. 이게 인간이예요. 여러분 인간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근본에는 영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요, 그 영적인 문제에 더해서 거기에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상처받는 것들, 이런 모든 것들이 그 사람의 인격이 되어지고, 그 사람의 체질되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그 배경에는 하나님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악한 사탄이 그들의 인생을 붙잡고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사탄은 뭐냐? 또 다른 우상을 계속해서 섬기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정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세상 체질, 애굽의 체질이 뭐냐? 망할 수 밖에 없는 체질이예요.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 애굽의 체질, 세상의 체질, 이게 바로 악한 사탄이 붙잡고 있는 영적인 체질들입니다. 여기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체질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 하셨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육신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대로 영적인 눈을 떠서 영적인 축복을 누리는 체질로 바꾸어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광야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노력으로, 능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물이 없는 곳이고, 척박한 곳이고, 그런 척박한 곳을 200만, 3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움직여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 가운데서 결국은 그 광야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부르짖을 수밖에 없게 되었고요, 그렇잖아요. 광야 길은 우리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그래서 그런 세상 속에 200만, 300만이 움직여졌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부르짖게 될 때에 그들에게 그 광야에서 눈이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아! 그래서 결국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그 배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광야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광야 걸음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영적인 눈이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들이라는 사실들이 깨달아지게 될 때에 여기에 굉장한 생각과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요, 생각이 변화된 거기에 참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우리의 잘못 각인된 것들이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어져야 거기에 치유가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제대로 그런 의미에서 광야를 본다면 광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사건 하나하나 그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복입니다. 영적인 눈을 열게 하는 복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영적인 사실에 눈을 열도록 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광야의 문제는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말 8:16절에 마찬가지 광야에 걸음을 인도하신 부분들을 이야기 하셨는데 한 번 보십시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그 다음에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려 하심이었느니라 할렐루야! 광야의 모든 삶이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여러분 때에 따라 하나님께서 이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문제와 사건을 주실 수 있고, 문제와 사건을 붙일 수 있어요. 그래야 우리가 기도하니까...워낙 기도안하고 워낙 말씀 안 붙잡으니까 문제와 사건 주어서 그래서 기도하도록 하고 결국은 눈을 열게 하시면서 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생명을 주관하고 계고,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를 붙잡고 계시는구나 이 영적인 눈을 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광야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모든 걸음 속에 문제를 허락하시기도 한다라는 사실입니다. 다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답만 가지면 그 문제 필요없어요. 사실은... 한번 받아합시다. 광야의 모든 문제는 복이다. 여기에 아멘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문제 앞에 우리 자신들도 무너져 내리고 하염없이 눈물도 흘렸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영적인 눈을 열게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생각이 변화될 때에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려져 있는 각인된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치유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광야 길을 걸어가는 우리 앞에 지금 있는 문제는 복입니다. 정말 이 축복을 누리게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다른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두 번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른 것을 요구하시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처음부터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 누리도록 하셨지. 우리 인간이 무엇을 하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굉장한 것을 이루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창세기1:27절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모든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있을 때에 모든 축복을 누리도록 우리 인간을 만드셨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순종하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축복을 다 누리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나안 땅에 역사를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 길을 걸어가면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무엇입니까? 약속의 말씀을 네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들에게 이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라 이것이 신명기 주제 아닙니까? 그렇게 되어지면 7족속 31왕이 네 앞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어지면 너희들에게 아름다운 그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했어요. 다시 말해서 지금씩으로 말하면 진짜 그리스도 약속만 붙잡으면 참된 승리와 대적들을 이기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예요. 신명기서를 보면 강조하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내가 뭔가 대단히 굉장한 것을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만 붙잡으면 모든 축복을 그 안에서 누리게 된다라는 것, 그리스도만 붙잡으면 하나님이 우리 앞에 주신 모든 축복을 우리는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마는 이 본문을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7장에 보면 14절에 보세요. 마찬가지로 모든 법도를 듣고 지키라 그렇게 말씀하면서 14절에 그러면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여기에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이 말은 만민보다 승리한다는 말씀입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게 될 때에, 약속의 말씀을 순종하게 될 때에 다시 말해서 오직 그리스도만 붙잡게 될 때에 만민보다 승리한다는 이 축복을 주신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7:24절에 보세요.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될 때에 우리를 당할 자 없다 했어요. 그렇습니다.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게 될 때에 다시 말하면 오직 그리스도 붙잡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응답들, 축복들을 주시겠다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막상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있어서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 영적인 눈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열려지지 않으면 가나안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문화와, 그 땅의 물질, 그 땅의 환경을 따라가게 되어 있어요.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이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그래서 광야 길이 하나하나 복이라는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그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의 풍부한 물질들에, 분명히 하나님은 진멸하라 했는데 진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같이 짝해서 잘 먹고 잘 살걸요, 누구나 다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그것이 결국은 우리에게 올무가 된다 했어요. 그것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된다 했어요. 그것이 오늘 읽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지요. 11절에 보면 “네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 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될까 염려하노라” 여러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그 문화를 따라가고, 그 물질을 따라가게 되면 결국은 거기에서 잘 먹고, 잘 살다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진멸하라 했는데 잘 먹고 잘살다 보면 결국은 그것이 우리에게 올무가 되어지고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고 내가 내 능력으로 모든 재물을 가졌다고 교만하게 된다고 말씀했어요. 오늘 17-18절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네 능력으로 그런 재물을 가진 것이 아니다라는 것. 1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했어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승리할 수 있는 그 훈련들이 어디에서? 광야에서 하나님이 훈련시키신 겁니다. 그렇다면 광야에 길 하나하나가 모두가 우리에게 복이고 응답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이 말씀이 맞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세 가지를 꼭 기억하세요.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집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져야 육신을 따라 살아가지 아니하고 아!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것이 맞는 것이구나! 하고 인도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광야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꾸신 것입니다. 여러분 가나안이 어떤 곳입니까? 멸망 받을 세상을 모델로 보여주는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가나안 땅이라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 가나안 땅에 속해 있는 선교사입니다. 믿습니까? 그 가나안땅을 바꿀 수 있는 비밀이 뭐냐? 광야길을 가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는 아 말씀따라 사는 것이 맞는 것이구나! 오직 그리스도 붙잡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구나! 이것이 가나안 땅 속에 살면서 그 가나안땅을 바꾸는 비밀입니다. 이 축복된 일들을 어디서? 광야길에서. 다시 말해, 지금 여러분의 문제와 사건 속에 그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으시면서 가나안 땅, 세상 속에서 약속가진 사람으로 세상 현장을 바꾸어 가는 증인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영광을 주앞에 올려드립니다. 광야같은 세상 속에서 기어코 우리의 체질을 바꾸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가나안 땅을 바꿀 수 있는 변화시킬 수 있는 그 축복의 훈련들을 시켜 나감을 알게 하시고 오늘 지금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려하심인 것을 깨닫게 하시사 하나님의 응답을 찾아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든 하나교회 성도들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어떤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진 문제,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고 그렇다면 내게 있는 그 문제는 반드시 가나안 땅 속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누릴 수 있는 그 축복된 응답이 그 속에 있음을 확인하게 하는 축복의 문제인 것을 알게 해 주시고 특별히 광야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니라 이 축복된 언약의 역사들을 그대로 붙잡고 응답으로 승리하는 귀한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 병상에 있는 육신의 질고 가운데 어려움 당하고 있는 우리 렘넌트와 모든 성도들에게도 정말로 가나안땅을 정복하기 위해 주신 광야, 하나님 주신 응답으로 붙잡는 그런 축복된 시간들 되게 주님 역사하여 주옵시고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라 이 축복된 언약 붙잡고 승리하는 귀한 응답의 시간들 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6년 4월 10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신8:11-16)
서론: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 복을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문제 보는 눈들이 새롭게 열려지면 됩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형성되어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자존심, 열등감, 체면, 집착), 실패한 사람이나 피해를 당한 사람들도(무능한 생각, 낮은 자존감, 상처, 피해의식, 비교의식, 부정적, 비판적, 염려, 방어적, 자기중심적) 모두 이미 각인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각인된 대로 응답 받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복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 예수 그리스도 안에 능력으로 각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후대들에게 어릴때부터 올바른 각인을 심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각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
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각인된 것을 빼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광야길로 인도하셨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불신배경 문화 속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다 잊어버렸음 (세상체질, 육신체질)
2) 광야는 인본주의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곳, 오직 하나님만 바라봐야 살아갈 수 있는 곳임
나. 광야의 모든 삶은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하심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를 주시면서까지라도 영적인 눈을 열게 하심
2) 광야의 모든 문제는 복이다!! - 깊이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이 치유되는 것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살아가라!! (신8:3, 히11:1-3, 요1:3) - 영적인 축복을 누려라!!
2. 다른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신 하나님
가.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모든 축복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1)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기도하면 이 땅의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되어있음
2) 진짜 그리스도 약속만 붙잡으면 참된 승리와 대적들을 이길 수 있음 (신7:14,24)
나.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1) 가나안땅에 들어가긴 하지만, 그 곳의 문화, 물질, 환경을 따라가게 됨
2) 결국은 자신에게 올무가 되고 여호와를 잊어버리며 교만하게 됨(12-13)
☞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영적체질로 바꿔가라!! -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깨달아라!!
결론: 영적인 눈이 열려져야 생각 바뀝니다. 또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말씀을 따라 살면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광야길 가는 동안 이스라엘에게 바꾼 것입니다. 가나안땅은 멸망 받을 세상을 모델로 보여주는 곳(하나님 떠난 땅)입니다. 우리는 그 가나안땅에 속한 선교사로서, 그 땅을 바꿀 사명이 있습니다. 그 비밀은 영적인 눈을 열고 말씀따라 살며 오직 그리스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문제와 사건 속에서 그 응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주간 이 사실 붙잡고 세상 속에서 약속 가진 사람으로 세상 현장을 바꿔가는 증인되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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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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