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나(박지온 원로목사)
2017-01-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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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주일 2부 예배 박지온 목사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나”
(창45:4~7)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 창45:4~7

■ 성경 말씀 한 군데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 다 같이 합독하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은혜를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그 은혜의 계획 속에 나를 확실히 찾고 믿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귀한 계획을 따라 인도 받는 눈이 열리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또 이 시간 우리 담임 목사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이루시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영광이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 축복으로 역사해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또 확인되는 감격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나,” 사실은 이 말에 포함된 내용이 참 많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다 제목에 쓸 수 없어서 그저 주권 속에 있는 나, 간단히, 또 적었다고 생각이 되는데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부터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까지 가장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일단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시간까지 귀한, 중요한 요점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확인 안 되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또 이것이 확인되는 순간부터 무언가 비전이, 옛날에는 비전이고 뭐고 몰랐는데 요즘은 이런 새로운 단어가 나와서, 비전이 보이고 그걸 잡고 계속해서 나아가게 되겠습니다. 저는 늘 과거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미련해서 그런지 잘 못 깨닫습니다. 특별히는 요즘 청소년들 성가, 찬양 부를 때에 따라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것이 높고 낮은 것이 심합니다. 올렸다 내렸다 빠르게 가다 느리게 가다 정신이 없습니다. 저는 입에 익지를 않습니다. 늘 찬송 부르고 이러다가 찬송은 늘 곡조가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건 잘 부르겠는데 가다가 빨리 가다가 천천히 가다가 늦게 가다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이것이 또 가사가 참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가사를 말씀 속에서 찾기 때문에 가사 자체도 뭔가 금방금방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고 가사를 이해를 했다 해도 이제 말씀하는 것처럼 찬양이 그래서 저는 그 찬양이 나올 때마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다 따라 부르는가 가끔 뒤로 돌아보고 그럽니다. 보면 거의 입 다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래 부르는 게 안 됩니다. 저는 그것이 이해가 충분히 됩니다. 젊은 사람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될 겁니다. 목사님, 저렇게 바보는 아닌데 찬송을 저렇게 못할까. 이 찬양을 못 합니다, 지금은. 저도 찬양이나 노래에 대해서 그렇게 못 하지는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요즘 나오는 찬양은 부르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에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저 앞에 찬양 부르는 젊은이들의 입만 쳐다보고 그 다음 주변에 하는 사람들 보고 혹시 앞에 선 사람들이 왜 저렇게 바보같이 가만히 있느냐 싶을 때 이해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아, 노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아마 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잘 따라하지를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못 부르니까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과거 속에 산다는 이 말이 무엇이냐 하면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전도에 대한 확실한 진행 속에 있고 그런 것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내 사실이 안 되니까. 그저 기도만 하고 있습니다. 그냥 지난 과거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느냐, 이것을 오늘 말씀드리고 혹시나 여러분이 이 시간 잡을 수 있는 확실한 말씀을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처음에 문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존재가 이해가 안 되어서 참 고생을 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방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하나님의 존재조차 이해가 안 되면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갈 길을 모르니까. 그러다가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는 그 때부터 무언가 내 마음에 비전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 비전이 저는 일단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니까 내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교회의 목회입니다. 목회를 하기 싫어서 빗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목회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목회라는 비전이 내 안에 생기면서 무언가 교회에 대한 비전이 생깁니다. 교회에 대한 비전이 생기는데 그 비전은 제가 말로 하기는 곤란합니다. 왜냐? 그 사실이 오늘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말로 하지는 못하나 은근히 마음 속에 아무리 약한 교회든지, 대구에 나와서 처음에 한 서너 사람 온전한 사람 한 두어 가정 가지고 개척을 했습니다. 그럴 때도 큰 교회에 대한 부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니까. 그래서 그 때에 가졌던 첫 번째 제게 주셨던 말씀이 바로 오늘 빌립보서 1장 6절에 하나님이 이루시기를 원하셔서 내게 하나님의 계획을 시작했습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뭐라 그랬습니까? “확신하노라.” 이것이 제가 초기에 계속 잡았던 내용입니다. 개척할 때나 그 다음에 어려울 때나 그 다음에 교회를 지을 때나 건축할 때, 또 지금까지 오면서 늘 하나님 앞에 이 구절을 늘 외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해외에 나가거나 저를 개인적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 꼭 이 말을 전제를 합니다. 이 말씀을. 그리고 하나님이 반드시, 반드시 이 복음 속에서 시작했다면 이루십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이 이루시지 내가 이루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이루시면 나는 되는 것입니다, 그냥. 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늘 계속해서 남았던 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힘들다, 어렵다, 흔들린다, 전혀 요동이 없습니다, 제 마음에. 늘 한결같습니다. 제가 개척해 오면서 세 번의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더라고요. 개척을 하면 세 번 정도는 아주 큰 위기가 생긴다고. 그러는데 그 위기 속에서 첫 번째 위기가 무엇이냐 하면 교회가 한 40명이 안 되고 그 때 한 30명 정도 되었을 때에 교회가 갑자기 중직자들이, 중직자들이 함께 못하겠다, 나가겠다 그럽니다. 그 이유는 뭐냐? 독재한다는 이유입니다. 목사님 마음대로 하고 이러니까 못 따라가겠다. 사실은 이 독재하는 교회 속의 장로님들은 참 편합니다.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안 그러면 많이 싸웁니다. 장로님들이 자체 내에서 서로들 의견 내어 놓고 견제하느라고. 독재하는 목사 밑에 있으면 목사님 한 마디 하면 따라옵니다, 그냥. 장로님들은 그냥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그걸 잘 모릅니다. 목사님이 독재하는 것이 자기 고집에 독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뭐냐? 말씀에 독재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독재. 이것이 이해되면 장로님들 참 편합니다. 저는 저희 교회를 개척하고 난 후에 장로님들 사이가 틀어져 싸우고 하는 것은 못 봤습니다. 항상 목사하고 장로가 안 맞았다는 얘기는 나는 말씀대로 독재하고 장로님들은 그게 너무 심하다고 하고. 왜? 따라가기에 너무 눌려서 살고. 그런데 한 번도 제직회나 우리 당회가 입씨름으로 싸워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보면서 요즘 들어서 아, 참 은혜이고 우리 하나교회는 기적이다 싶습니다. 아마 이런 교회 여러분들은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가 기성교회 노회의 부총회장까지 하고 총대로 갔다 왔다 하면서 겪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런 교회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다 문제는 갈등 속에서 장로끼리 부딪히고 또 집사끼리 부딪히고, 많습니다. 다소간에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갈등이 약간은 있습니다. 저는 압니다. 누가 누구하고 갈등하는가 대강은 아는데 그런 문제가 그냥 간단하게 넘어갑니다. 왜? 복음 속에 말씀이란 것이 전제가 되면 그것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도 우리 교회에 문제가 문제된 것이 없습니다. 왜? 이미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해결하셨습니다. 그 문제 해결하실 뿐 아니라 그 문제의 근본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죽음과 재앙에서 갈등과 재앙에서 이미 해결 받았습니다. 해결된 속에 여러분과 내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주권 속에 나를 찾는 그 순간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찾는다고 할 때 일단 이 문제 가지고 갈라디아 2장 20절에서 나를 버린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다 그런 거 싹 말씀하는데 많은 경우 오늘 사회에서 들어온 감각들이 들어와서 나를 버린다고 할 때에 나의 정체성까지 버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버려도 내 고집, 내 자만, 자아, 이런 것을 버린다는 것이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셔서 내가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간다, 이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버린다, 여러분, 항상 나를 버린다는 것은 나를 찾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다 버립니다. 다 버리면 뭐가 옵니까? 악한 사단이 틈타 들어옵니다. 버리는 사람 속에 들어옵니다. 왜? 제일 들어오기 쉽기 때문입니다. 버리고 텅 비었으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악한 사단이 나갔다가, 아, 귀신이 나갔다가 돌아다녀보니까 거할 데가 없습니다. 옛날 집 주인한테 와서 보니 텅 비었고 너무 장소가 좋습니다. 왜, 놀던 장소가 다시 오니까 좋지요. 그래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랬습니다. 나중에 더 어떻게 되느냐, 더 힘듭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가 아니거든요. 나를 버린다, 그럴 때에 나를 찾는다는 의미, 뭐냐? 예수 그리스도로 나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 되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무언가 요즘 불교의 교리가 버린다는 의미가 기독교가 복음이 아니면 오히려 불교의 교리가 훨씬 더, 아주 고상하다 그러는데 아닙니다. 불교는 버린다는 순간에 사단이 매입니다. 제일 잡신이 많이 들어와 있는 데가 불교입니다. 그리고 제일 잡신이 많은 데가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신비주의적인 교회가 잡것들이 많습니다. 나의 하나님 부르고 떠드는데도 잡귀신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안 그랬습니까, 옛날에? 우리 교회가 한참 떠들 때에 뭔가 뜨겁게 잘 하는데 잡귀신이 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에는. 방언을 받아도 잡귀신이 좀 있습니다. 순수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받고도 이것이 진짜냐 가짜냐 그것을 저한테 점검을 받으러 많이 왔습니다, 그 때. 일단 해 보라고 합니다. 해 보라고 하면 합니다. 잘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그러나 한 가지 꼭 묻습니다. 당신이 이 방언이 들어올 때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확실히 영접하고 이 사실을 확인하고 믿음으로 이걸 받았느냐, 꼭 이렇게 묻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괜찮다고 합니다. 개구리 소리를 하든지 뭔 소리를 하든지 괜찮습니다. 왜? 믿음으로 받는 것은 상관 없습니다. 불신앙으로 받는 것이 잡귀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참 마음에 착각하는 것이 우리가 모든 일에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우상숭배했던 우상의 재물도 뭐라 그랬습니까? 믿음으로 먹으면 됩니다. 믿음으로 안 먹으면 그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님도 신앙이 신앙주의는 아닌데 신비적입니다. 우리 어머님은 어디가서든지 우상재물을 먹으면 설사를 해요. 아버지는 절대 설사를 안해요. 동네 제사를 지내고 난 것을 다 우리 아버지한테 다 가지고와요.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다 잡숩니다. 어머니는 절대 못잡숩니다. 아버지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아버지 믿음은 신비적인 믿음보다도 현실적인 믿음이에요. 요즘 말하면 약간 자유적인 그런, 그래서 아버지는 항상 강단에 서도 뭔가 신비적인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어요. 항상 사실적인 이야기, 사실적인 이야기에 가장 가까운 것이 역사 이야기입니다. 역사 이야기를 잘 하십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그 설교가 마음에 안 들어요. 왜? 말씀을 좀 이야기 해 주어야 하는데 항상 역사이야기를 하니까 ...문제는 말씀 중심으로 한 신비가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가 말씀 없는 신비는 신비주의로 빠지지만 말씀 잡고, 말씀 속에, 말씀으로 인도받을 때 그것은 성령인도 받습니다. 말씀을 떠난 성령의 역사는 없어요. 지금 우리교회가 그동안 하나님 은혜를 받고 또 말씀주의를 통해서 계속 성장을 잘 할 수 있었던 배경이 저도 처음부터 말씀 위주였습니다. 말씀 아니면 안 가고, 말씀 없으면 안 가고, 말씀 따라서 누구의 인도를?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무엇으로 받습니까?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항상 말씀 구절이 이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착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날까지 ...바로 그 착한 일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우리가 확신하노라 그래서 하나님이 내 안에 심어주신 나도 모르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교회 관에 대해서 내게 심어주신 것이 내 안에 말하면 건방지다고 하니까 그때는 말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 일이 오늘 여러분과 제가 보는 현실입니다. 현재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뭐가 오느냐? 저에 대해서 서울에서도 오라 대구에서도 제가 옛날에 교육 전도사로 있었던 교회에서 장로님이 직접 찾아 오셔가지고 오시라..그때에 교인이 250명 정도 300명이 체 안 되던 그러한 때입니다. 그래도 한 번도 흔들려 본 적이 없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젼이 반드시 이루실 줄을 확신했기 때문이예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어요. 그럴 수 있었던 배경이 그런 배경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비젼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확실해 지면 나의 가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을, 그 길이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길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뭔가 설명 할 수 없도록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생기느냐? 잘못되면 고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집이 아닙니다. 그 길에 하나님이 확신 주셨기 때문에 절대 외부에서,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나의 길,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그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승리뿐 아니라 영원한 승리가 되는 겁니다. 이 승리가 내 안에 확고히 서게 되면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에게 지금 문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사건이 사건이 아닙니다. 앞으로 올일, 또 생길 일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가져야 될 길입니다. 그래서 제 경우에는 아마 이것이 오늘 많은 경우 지금 강조를 하고 있는 메시지 중의 하나이지요. 미 자립 교회, 미 자립 교회 이러지요. 여러분 미 자립 교회라고 하기 전에 미 자립 목사가 중요합니다. 자립된 목사의 중심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되면 다 따라옵니다. 미 자립 교회 될 거 없어요. 제 이야기를 한다면 늘 말씀을 많이 드렸습니다마는 어느 시골 교회를 가든지 나는 첫 번째 행한 것이 도움 받는 것을 끊었습니다. 그 배경이 뭐냐? 하나님이 하시는데 남의 도움 받을 것 뭐 있나? 왜? 우습잖아요. 교회가 남의 도움을 받아 교회 유지한다는 것 말이 안 되잖아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데 이것이 제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부터 미 자립을 벗어나야 합니다. 남에게 도움 받는 것 이것 벗어야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인도받기를 바랍니다. 다 이루어지는 겁니다. 왜? 제가 겪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교 다니는 동안에 한 번도 제가 제 가족들에게도 그렇고, 저희 조카들 다 잘 삽니다. 사업하고 했으니까..한 번도 내가 무엇을 얻어 본 적이 없어요. 교회를 지을 때는 할 수 없이 너무 급하면 빌려본 적은 있어요. 왜? 돈이 있으니까 빌려 달라고 하면 2천만원까지 빌려보기도 했습니다. 그 이천만원도 문제도 아니더라고요, 그러나 그것도 잘 안합니다. 왜 믿음의 자존심인지 잘 모르지만, 나의 고집이 자존심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 속에 하나님이 하신다. 그래서 이 고집 때문에 저희 집사람이 좀 애를 먹었습니다. 문제 되면 돈 빌리려 집사람을 보내지 저는 절대 안 갑니다. 집사람이 무엇을 압니까? 대구에 살았습니까? 진주에 살았다 온 사람이 주변에 무엇을 압니까? 그래서 집사람은 딴 데 안갑니다. 여러분 돌아가신 전경자 권사님. 그때 남문교회에서 제가 전도사로 같이 뛰었습니다. 그래서 거기는 잘 아니까 돈 빌리러 가면 가면 될 줄 알고 남문교회 전경사 전도사로 있을 때 거기로 갑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다 빌려줘요 어떻든간에 그러면 빌려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그것도 잘 안갑니다. 왜? 가서 남의 교회 전도사님에게 빌린다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그러면 송현 교회 지을 땝니다. 그러면 내일 당장 그때는 간주라고 그러지요.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가고..그때는 간주가 잘 안되면 직접 멱살을 잡혀요. 무지하게 사정이 없었어요. 그러면 내일 돈을 줘야 하는데 안 주면 그 돈이 나를 통해서 나가지 다른 사람 통해서 물론 다 일은 그분 들 앞장세워하지만 실제로 재정은 제게서 나갑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확인이 안 되거나 확보가 안 되어 있으면 밤 1시쯤 되어도 나가야 되어요.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하는데 기도하다가 보면 또 한 사람 들어와요. 우리 집사람이 들어와요. 왜? 돈이라는 것이 참 무섭더라고요, 힘들어요. 여러분 돈에 쪼들리고, 돈에 문제 생긴 것, 내가 대강 이해한다기보다도 내가 체험했기 때문에 알아요, 얼마나 조급해 지고요, 힘들어요. 그러면 반드시 그날 밤으로 그 이튿날로 안 줄 돈이 나와요.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러니까 이것이 확 붙잡혀 져 있으니까 문제 생기면 뭐 합니까?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께 갑니다. 문제 생기면 하나님께 갑니다. 사람에게는 그다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든든한 빽이 바로 뭡니까? 기도의 현장입니다. 여러분 문제 생기면 기도의 현장으로 가보세요. 문제 생기면 사건의 현장으로 가 보세요. 사건의 현장에서 뭐 하느냐? 기도하면 인도하시는 것을 확실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한번 두 번 내게 쌓이면요 신기하지요. 뭐 일하다가 분명히 볼펜을 여기에 두었는데 없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뭐합니까? 하나님 볼펜이 없어졌네요.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면 금방 찾아보면 그 옆에 볼펜이 있어요. 신기합니다. 이런 삶이 인도가 되어집니다.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삶, 말하자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확실한 기도의 응답으로 이것이 응답이지요. 모든 것이 기도하기 전에 이미 준비되어 있어요. 그것을 찾아야 됩니다. 찾는 길이 기도입니다. 현장에서, 사건 속에서, 일 속에서...우리 평신도들은요 내가 뭐 전도를 하니 못하니 상관없어요. 저는 초기에 우리 권찰을 통해서 구역을 맡겼잖아요. 구역을 맡겼더니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못한대요, 안된대요. 절대로 못한대요. 자기는 한 번도 여러 사람 두 사람 앞에 서서 메시지를 전해 본 일이 없대요. 저는 남문 교회에 있을 때부터 권찰을 세워서 그 일을 시켰는데 그때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꼭 금요일마다 내가 대신해 주어야 해요. 혼이 났어요. 왜? 갈 곳이 한 두 곳이 아니예요.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나는 다락방 만나서 여러분들이 훈련을 얼마나 잘 받았든지 구역을 맡겨놓고 여러분 자신들이 처음에 전부 구역이 다락방이 아니었습니까. 한 사람도 못한다는 소리를 안하더라구요. 그 전날, 그 전 주간에, 아니면 그 주간에 메시지를 딱 주잖아요. 받아가지고 그대로 읽든지 하든지 다 잘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목사님 앞에서 못한다, 장로님 앞에서 못한다 하더니 나중에는 장로도 문제 아니고, 목사도 문제아니더라고요 당당하게 합니다. 왜? 함께 하시는 것을 느끼니까 내게 하나님이, 길이 이것이다고 라고 믿으면 내가 찾아야 될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뭐든지 당당하게 됩니다. 절대로 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잘못 보면 고집 세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당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실 길이 보이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갈 길이 보이니까 당당합니다. 여기에 겸손이라는 것이 따라오지만 그렇게 겸손이 절절매는 그런 식이 아닙니다. 당당한 겸손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하시니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니까 거기에서 나오는 겸손이지 내가 한다 자랑스런 겸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니까 나는 심부름을 할 따름이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실 것을 보니까 그것이 그냥 이루어지는 속에서 잘한다 못한다 상관없이 당당하게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인도받으니까 겸손이 나와야 됩니다. 이 일이 우리 속에 확인되면 여러분 갈 길에 아마 지금쯤 벌써 우리 속에 비젼이 다 형성되어 있어요. 거기에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성취됩니다. 이루어집니다. 이미 여러분은 체험할 것입니다. 가기도 전에 준비된 삶, 준비된 사건, 준비된 일이 확인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 보여집니다. 이 길을 찾아가는 길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나를 인도하시는 축복입니다. 믿고 감사하시는 축복이 오늘도 확인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1월 22일 주일2부예배 박지온 원로목사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나
(창45:4-7)



서론: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하나님의 인도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확인되는 순간부터 비전이 보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잡고 계속해서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에서 교회에 대한 비전도 생기고 다른 모든 갈등이나 부러움은 없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복음 속에서 시작한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1. 절대주권 - 말씀의 인도
가. 내 고집, 자아를 버려라! -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가는 나(정체성)를 버리는 것이 아님(마12:44-45)
나. 정확한 말씀의 인도 가운데, 분명한 나를 찾으라!(갈2:20)
다. 이때부터 나의 가는 길이 보이고 확실해집니다(빌1:6) -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없을만큼

2. 절대주권 - 기도의 비밀
가. 하나님께서 든든한 배경이 되시기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나아가라! – 기도의 비밀
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체험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거하라!
다. 기도는 모든 현장과 일, 사건 속에서 이미 준비된 것을 찾는 것입니다.

3. 절대주권 - 전도의 당당함
가. 내 삶을 인도하는 확신 가운데, 흔들림 없는 비전을 발견하라!
나. 가기도 전에 준비된 것을 확인함으로, 되어지는 전도를 당당히 누려라!
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겸손도 따라오게 됩니다.


결론: 절대주권 속에서 살면 가기도 전에 준비된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주권 속에 인도받는 인생입니다. 그러면 고집이 아닌 하나님의 확신 가운데 흔들리지 않습니다. 문제와 사건 있어도 하나님이 이루실 일이 있음이 확신되기에 자연히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하나님의 든든한 배경 = 기도의 현장으로 가게 됨). 이미 모든 길이 감추어져 있기에, 기도할 때 가는 길이 확인되고 당당하게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겸손도 따라옵니다. 한주간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나를 인도하는 길이 보시길 기도드립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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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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