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2017-04-0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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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창12:10~20)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12:10~20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오늘 이 시간 주님 내게 약속하신 그 은혜 앞으로 우리 모두가 나아가는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인생의 선택과 결정들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그 기준이 복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결정을 하고 아무리 훌륭한 기준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복음을 모르면 결국 그것은 바벨탑이 되는 것이고 마태복음 7장의 비유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반석 위에 세운 것이 아니라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의 모든 조건과 환경들, 배경들은 사실적으로 임시적인 조건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이고 사업하면서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조건과 결정은 임시적인 조건과 임시적인 결정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절대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이 절대적인 조건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잘 되게 되어 있고 응답받게 되어 있고 축복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는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보면 염려하지 말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서 기다리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주간에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지 않습니까? 너는 복이 될지라. 그렇습니다. 요셉 때문에 노예도, 또 요셉 때문에 감옥도, 또 왕궁도 그 나라도 살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때문에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지역도, 이 시대, 이 나라도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에 대한 증인으로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이 사실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응답과 축복과 승리의 역사가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서 심한결 준목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만 사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종을 내어보내면서 다른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복음과 전도의 사명이 소통되는 그 사람을 찾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은 다른 세상의 그 어떤 조건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이런 절대적인 조건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설령 세상의 조건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절대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응답받게 되어 있고 성공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와 시험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도 계속적인 고난이 있어 왔던 부분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왜 우리에게 고난이 계속되는가? 왜 절대적인 축복 가운데 세운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고난이 계속되었는가? 사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시험과 고난과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먼저 우리는 붙잡아야 합니다.
1. 회복 해야 할 것 세 가지
그래서 먼저 오늘 첫 번째로 시험과 문제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 세 가지,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느냐? 참된 감사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이 사실을 안다면 그 자체 속에서 참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 인생에 약속하신 것이 구원의 약속이고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시고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재앙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재앙이 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 어느 누구도 결국은 재앙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재앙을 겪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그 뒤에 지옥의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고 이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구원이라 하는데 이것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앙 가운데서, 지옥 배경 가운데서 사단의 손에서 빠져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구원이라 합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사단의 손에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열두 가지 인생의 문제,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 가운데서 있었습니다만 결국은 하나님 안 믿어도 된다는 것, 이게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다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안 믿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사단의 문화 속에 빠져있는 부분. 그러니까 하나님을 안 믿어도 된다는 마음들, 또 그 결과로 결국은 사단의 문화 속에 빠져 있으니까 자기가 누구인가를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열심히 살아가는 만큼 계속적인 어려움이 올 수밖에 없는데 그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해방시켰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재앙과 지옥 배경과 사단의 문제를 다 끝냈다는 사실입니다.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권세까지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 되는 축복이라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해방될 뿐만 아니라 재앙과 지옥 배경과 사단의 역사를 이길 수 있는 권세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것, 참된 감사는 진짜 내가 구원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파멸 가운데서 속량하시고 건지시고 인자와 긍휼로 우리에게 관 씌우신 그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창세기 39장 1절~6절에 요셉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말씀했습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구원의 축복, 이 사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과 고난이 있다면 빨리 구원에 대한 은혜와 감사를 회복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 구원의 역사를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구원의 역사를 주시고 선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날마다, 매일매일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전도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 구원 받은 사실에 대해서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문제와 사건과 일들은 그대로 여전히 그들의 삶 속에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그 모든 한계를 뛰어넘은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우리에게 시험과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시험과 여러움과 고난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느냐?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성령 인도 받기 위해서. 여러분,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문제를 당하고 나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면 인도받을 것인가 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성령 인도 받는 것은 조그마한 일이라도 모든 것을 성령의 인도 받는 속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악한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도록 조급하게 만들고, 또 반대로 나태하게 만듭니다. 같은 말입니다. 조급하게 만들고 나태하게 만든다. 여러분, 에베소서 4장 30절에 보면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모든 것에 조급하게 설치게 되면 성령을 근심케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 말씀하셨는데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우리에게 역사하시는데 그 역사하시는 현장을 놓쳐 버리고 그 시간을 놓쳐 버리고 우리도 모르게 나태하게 될 때에 그것은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9절에 있는 말씀처럼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근심케 하지 말라,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라, 작은 일 하나까지도 성령의 완전한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저와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그게 저와 여러분이 있어야 할 위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그리스도 복음 안에 모든 것 다 있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알고 자꾸 그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와 아래와 옆을 봐야 하는데, 다시 말하면 하늘의 비밀과 땅의 비밀과 사람의 비밀을 아는 것입니다. 그게 위를 아는 것이고 아래를 아는 것이고 좌우를 아는 것입니다. 그게 성령의 인도 받는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도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었고 오늘도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리스도 안에서 동시에 보는 것, 그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틀린 것이 각인되어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데 진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을 꿰뚫어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하게 되고 진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내 수준과 상관 없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아무리 많은 좋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지나놓고 보면 성령의 인도 받지 않은 가운데 행한 모든 일, 좋으면 좋을수록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빠진 부분들이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보잘 것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그것은 큰 증거와 열매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과 고통과 문제를 주느냐? 매사에 성령인도 받아라고... 세 번째입니다. 진짜 우리가 회복해야 될 부분들은 계속해서 기도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통해서, 어려움을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기도 속으로 들어가서 진짜 기도의 비밀을 회복할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의 비밀을 회복하면 세상의 그 어떤 조건도 상관없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 말씀을 이야기할 때에 뒤에 부분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부분을 좋아합니다마는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우리의 현 주소가 뭐냐?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건이 좋으면 좋습니다마는, 다행입니다마는...조건이 설령 좋지 않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내가 능력 주시는 자 그 안에 있으면 그 힘으로 조건을 바꾸어갈 수도 있는 것이고요, 조건을 바꾸어 가지 못하는 그 한계에 당할 때는 하나님이 그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조건 상관없어요. 계속적인 기도의 비밀 속에 있으면...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조금만 계속해서 이 기도의 비밀 속에 있었다면 이런 불신앙 속에 빠지지 않았을 것인데 기근을 맞이해서 애굽에 내려갔잖아요.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할 아브라함이 기근을 당했다고 해서 그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또 어려움을 당하는 부분을 우리에게 본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조금만 계속해서 기도 속에 있었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장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에 있다가 마침내 가나안 땅,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보장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재앙이 끝나버리는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 축복된 약속이 있는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마는 환경에 기근이라는 부분이 찾아오니까 기도의 비밀을 놓쳐버리니까 그 환경이 크게 보이게 되고 그래서 그 환경을 따라서 기근을 따라서 애굽에 내려갔어요. 아마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아주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모든 애굽의 사람들이 전부다 그 아름다움을 보았고 또 고관들도 사래의 그 아름다움을 보고 바로 왕에게 추천했잖아요. 그래서 바로 왕이 아브라함을 불러가지고 도대체 저 아름다운 여자가 누구냐 물었잖아요. 그때에 아브라함이 뭐라 했습니까? 나의 아내라고 해야 하는데 내 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누이라고 한 이유 중에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가 죽을까 싶어 가지고 자기의 누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아니한 겁니다. 또한 여러분 여기에 애굽에 거류하려고 해서 10절에 보면 이 말은 쉽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당장 어려움을 당하니까 이 환경만 좀 피하면 될 것 아니냐 환경만 좀 피했다가 다시 올라오면 될 것 아니냐? 아마 아브라함에게도 그런 마음과 생각이 있었겠지요. 애굽에 아예 가서 살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애굽에 거류하려고..잠시 잠깐 그 자리를 떠난 겁니다. 핑계입니다 핑계.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체질대로 쉽게 문제와 사건 속에 옮겨지는.. 자기의 기준과 자기의 생각대로, 아니 진짜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이 기근 가운데 하나님께서 축복할 것인가 봐야 될 것인데, 환경에 속아가지고 그 기근을 피해가지고 핑계를 대고, 핑계를 댄 것이지요. 잠시 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될 것이 아닌가 핑계를 대고 애굽에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이 부분들이 아브라함에게만 있는 부분들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 아닙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으로 육신적인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앞에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영적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그러니까 진짜 하나님이 역사하기를 원하시는데 정녕 중요한 순간에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을 봅니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우리 안에 널리 습관화 되어 익숙해져 있는 세상적인 기준들, 육신적인 부분들 결국 이런 부분들 때문에 결국은 불신앙에 빠져드는 부분들이지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불신앙 가운데 빠질 필요가 없어요. 왜인 줄 아십니까?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은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축복의 사건이고, 문제입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문제와 사건, 반드시 응답하실 사건이예요. 그 사실을 현장을 통해서 정리되어지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반드시 여러분 그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응답하실 사건인 것을 붙잡게 되면 결국 나를 만나는 사람도 살게 됩니다. 그 응답의 역사를 현장을 통해서 누리게 되면 결국 내 가정도 살게 되고, 내 업도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나타나게 되고 내 지역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다락방부터 시작해서 지교회까지 이루어지는 역사지요. 먼저 내게 주어진 문제와 사건들은 하나님이 응답하실, 축복하실 사건이라는 것. 그것을 현장을 통해 확인하고 누리게 되면 그 사실이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이 비밀들을 현장에서 계속해서 찾고 누리게 되면 뭔가 모르게 우리 가정도 회복되고요, 내 하는 일에도 전문성의 축복의 응답이 나타나게 되고요, 그 축복의 응답의 결과로 지역도 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불신앙할 이유가 전혀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우리에게 영적인 암인 이 불신앙을 완전히 해결하는 귀한 축복된 증거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불신앙하면 따라오는 것들.
두 번째입니다. 불신앙 하면 따라오는 것들입니다. 왜 불신앙을 버려야 되는냐? 거기에 대한 중요한 이유들을 붙잡아야 되겠지요. 여러분 민수기 13, 14장 우리가 대표적으로 불신앙 하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 했던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는 성경 구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은 모세의 지도하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서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들, 사실은 사실적인 현장의 보고였지만 불신앙의 보고였어요. 왜냐? 그 10명의 보고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맞는 말이예요. 그런데 불신앙의 고백이예요.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따라오는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모세를 죽이려고 덤벼들었어요. 그러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 나온 것이 뭡니까? 대책이 나온 것입니다. 이게 인본주의 아닙니까? 우리가 한 지도자를 세워서 다시 돌아가자. 그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그 불신앙했던 10명의 정탐꾼들 결국 하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리고 불신앙했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같이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다 모래사장에 다 죽게 되었어요. 여러분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불신앙 속에 빠져들어요.
여러분 우리가 불신앙하는 부분들 보면 가장 1차적인 불신앙이 뭐냐 하면 신분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그 결과로 행동과 판단과 결정들을 하게 되어요. 이게 2차적인 불신앙이라 할 수 있어요. 여러분 행동과 판단과 결정이 그냥 불신앙의 행동, 판단,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중요한 것은 신분에 대한 불신앙이 왔기 때문에 불신앙적인 행동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우리의 1차적인 불신앙,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 되어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저런 문제들을 이야기 합니다. 이렇다 저렇다, 이 문제 저 문제 있다.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가만히 들어보면 다 맞아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무엇을 보게 되느냐 하면 다 맞는 이야기이고 맞는 말들인데 아! 이분이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인데 이 본질적인 1차적인 이 신분에 대한 부분을 놓치고 있구나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행동과 판단과 결정들이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맞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지 못하고 여기에 빠져있어요. 제가 어떤 분을 만나서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제가 당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위로하고 그래 말이야 위로할 수 있다 했어요. 그런데 그건 답이 아니다 했어요. 당신이 아무리 그런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 그렇다면 하나님께 당신이 기도하면 그 문제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고, 해결이 안 된다 할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1차적인 불신앙이 뭔지 아십니까? 진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는, 놓쳐버리는 신분에 대한 불신앙이예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행동도, 판단도, 결정도 결국은 맞는 말이지만 계속적인 문제가 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가 하면 매 순간순간 마다 우리에게 있는 불신앙을 버려야 될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매 순간순간 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불신앙을 버려야 될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여러분 아브라함이 기근을 당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요. 거기에서 또 인본주의를 쓰게 되지요. 당장 자기가 죽게 되어질 지경이 되어지니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그것 때문에 불신자 바로 왕에게서 아브라함이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네가 그렇게 함이 어찌함이냐?”오늘 본문 제목의 말씀처럼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이것은 불신자 바로 왕이 아브라함에게 꾸짖은 내용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이 불신앙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바로의 가정의 재앙이 임했어요. 여러분이 언약 놓쳐버리면 현장에 재앙이 일어나요. 불신자들에게 재앙이 임한다는 사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알게 하십니다. 아! 내가 언약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이 이렇게 재앙을 당하고 있구나! 오늘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잖아요. 약속은 아브라함이 놓쳤는데 재앙은 불신자에게 임했어요.
여러분 진짜 약속을 붙잡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우리가 불신앙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불신앙 하므로, 약속을 놓쳐버렸는데 문제는 재앙이 어디에? 불신자에게 임한 거예요. 그리고 보세요. 여러분 바로가 뭐라 했습니까?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불신자가 조롱한 것 아닙니까?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여러분 우리가 불신앙 하게 되면 정말로 불신자들에게서 조롱거리가 되어집니다. 같은 비슷한 맥락에 창세기 20장에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도 똑 같이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내를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누이라고 속이거든요. 거기에 보면 실제로 이복 누이였다고 성경에 나와요. 그런데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서 절대 사라에게 손 못 대도록 했어요. 만약 손 대면 너와 네게 속한 자들은 다 죽을 것이다 했어요. 그러면서 이 아비멜렉에게 무엇을 이야기 했느냐? 아브라함을 일컬어서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는 선지자라 그를 불러서 기도를 받으라 했어요. 그리고 성경 창세기20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똑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네가 어찌 이렇게 하느냐?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서 기도해 주니까 아비멜렉 가문에 닫혔던 태의 문이 열려졌어요.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저는 이 본문을 쭉 묵상하면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 앞에 가서 누이라고 속일 때는 언제고, 어찌할 수 없어가지고 아비멜렉 앞에 가서 기도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기도해 줄 때 얼마나 죄송합니다 얼마나 쪽 팔렸겠느냐?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 언약을 놓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게 되어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 바라보면서 잘한다 좋아 한다 다 헛말입니다. 진짜 언약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요나서1장 6절에도 보면 은 요나가 풍랑가운데 배 밑에 잠자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사명자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고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으로 가라하는 말씀에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는데 그 풍랑 속에 배 밑에 잠자고 있는데 그 때 불신자 선주가 와서 뭐라 했습니까 자는 자여 어찜 이냐 그러면서 나오는 말씀 보면 은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안 되느냐 오히려 불신자가 이 요나에게 사명자 요나에게 꾸지람하는 모습이 나와요. 여러분 진짜 믿음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순간도 불신앙에 빠지면 안 돼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 많은 경우 가장 쉽게 빠지는 불신앙이 뭔 줄 아십니까? 내가 그래도 뭔가 해야지 내가 내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내 자녀들을 책임져야 하고 내가 뭔가 열심히 해야지 참 좋은 말이죠. 세상 사람들이 듣기에는 맞는 말입니다. 근데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만큼 불신앙 한 말이 없어요. 하나님이 내 가정과 내 자녀들을 책임지시고 인도해나가게 되어 있어요. 내가 자녀들을 아니고 내가 내 자신이 아니라 뭔가 그래도 계획이 있어야지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이 완벽하게 여러분 한걸음 한걸음을 인도해 나가시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안 믿는 부분들을 봅니다. 내가 책임져야지 좋은 말이죠. 여러분 잘못했다면 여러분 책임져야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책임 질수 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 인생을 책임져야 되는 것이고 우리에 일어나는 사건과 문제를 책임져야 되는 것이고 하나님 우리 가정을 책임져야 되는 것이고 우리의 자녀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빠져드는 불신앙이에요.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정말 불신앙에 빠져들 수 있는 그런 문제와 사건들이 너무 많이 우리 안에 깊이 깔려져 있어요. 여러분 아브라함도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신앙뿐만 아니라 바로 이어서 창세기 13장에 보면 롯을 데리고 나오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언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느냐? 창세기 13장 14절에 보면 은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가지고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어요. 그자체가 불신앙이에요 그래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불신앙을 버렸을 때 이 말입니다. 그 뒤에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내용이 나오죠. 또 보세요. 사실은 하갈을 맞이해서 하갈을 취해가지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누구죠 이스마엘입니다. 이 하갈은 어떤 면에서 성경을 보면 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오게 되거든요 바로 왕이 사래와 함께 많은 가축들, 은금을 주면서 빨리 나가라 합니다. 그때 같이 따라 나온 종중에 하갈이 아닌가. 그렇게 성경학자들이 봅니다. 그런데 그 하갈로 말미암아 불신앙의 씨앗이 애굽에서 데려온 종 하갈에게 있었던 것이죠.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깐 하갈을 취해가지고 누구를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 불신앙의 불신앙에 열매와 결과가 지금까지도 테러를 일으키고 있잖아요. 이스마엘의 후예들, 모슬렘. 여러분 우리가 한순간도 불신앙에 빠져들면 안됩니다. 우리의 신분이 불신앙해서는 안 되는 신분이에요.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불신앙에 빠져들잖아요. 신분 자체가 우리가 불신앙해서는 안 되는 신분이라는 겁니다. 왜 그러면 불신앙에 빠지느냐?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몰라가지고 그걸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신분과 권세에 대한 축복이 어떤 것입니까?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 우리를 정확하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하나님이 일 하세요 성령이 역사하심이죠. 이게 우리에게 주신 신분이에요. 그 따르는 권세가 뭡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 가는 곳마다 흑암의 세력들이 꺾이게 되어 있어요. 하늘군대가 동원되고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고요 그와 더불어 하늘 보좌의 축복의 비밀들을 이 땅에서 누리게 되면서 세상을 정복하고 현장을 정복하는 축복 그게 신분에 따른 권세죠. 한번 따라합니다. “나는 불신앙에 빠져서는 안 될 신분이다!” 이번 한 주간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불신앙이 해결되어지는 귀한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된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라 이 말입니다.
3. 불신앙 했으나 망하지 않은 아브라함
세 번째입니다. 불신앙 했으나 망하지 않은 아브라함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많은 큰 업적을 남겨도 반드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삶에 근본과 배경이 멸망 조건 속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에베소서 2장 3절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 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은 인생의 12가지 멸망의 조건 속에 가두어져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착하고 훌륭해도 많은 업적들을 남겨도 결과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 합니다. 실패할 수 있어요 왜 시험 들고 실패하느냐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또 아직 세상 속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이 분명히 지금도 활동하고 있어요.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은 영적 싸움을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 창세기 3장 그 현장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잖아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아직 부활하신 영화로운 몸으로 바뀌어진 것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있어요. 그리고 분명히 사탄의 역사가 현장을 장악하고 있어요. 이 사실을 알지 못 하면은 결국은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구원은 받았다 할지라도 영적 싸움을 싸우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실패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세력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적 싸움을 싸우게 될 때에 실패하는 인생이 아니라 승리하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우리 현장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게 되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비록 아브라함이 실수해서 불신앙해가지고 잠시 실패했지만은 결국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보세요. 마지막 20절을 보세요. 또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을 보게 되는데요. “바로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물을 보내었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실수해서 불신앙했지만은 또 결과적으로 축복하심을 보게 되요. 이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불신앙 할 수 있다는 것은요 우리의 신분과 우리에게 주신 권세 축복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진짜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시고 또 우리가 불신앙에 빠지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를 왜 하나님께서 왜 부르셨는지 부르심의 이유와 사명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시고 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까? 바로 그것은 신분과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살리고 모든 사람, 답을 잃어버린 세상에 답을 주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회복함으로 여러분 가는 걸음걸음 마다 이번 한 주간에도 여러분 통해서 이 축복의 역사가 전달되어지는 귀한 응답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4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창12:10-20)
서론: 인생의 선택과 결정은 중요합니다. 복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모든 조건, 환경, 배경은 임시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절대적인 조건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 하시기 때문에 응답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 때문에 노예, 감옥, 왕궁, 나라가 살아났습니다. 복음 가진 우리 때문에 현장(지역, 나라, 시대)이 살아 날 수 밖에 없습니다.
1. 회복 해야 할 것 세 가지
가. 참된 감사를 회복해라.
1) 구원 받은 사실을 알 때 감사 – 재앙, 지옥 배경, 사단의 손에서 해방
2)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의 12가지 문제 – 예수 그리스도로 끝내심(요19:30)
3) 재앙, 지옥,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권세(요1:12), 하나님이 함께(창39:1-6, 시23:4)
나.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
1) 자리, 위치(작은 일에 성령의 인도) - 조급, 나태하도록 속임(엡4:30 성령을 근심하게, 살전5:19 성령을 소멸)
2) 어떻게 성령의 인도? - 9가지 포인트
복음 안에 높이, 넓이, 깊이, 위(하나님의 비밀), 아래(땅의 비밀), 옆(사람의 비밀), 과거, 현재, 미래
3)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을 꿰뚫어 보게 됨,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
다. 기도의 비밀을 회복하라
1) 기도의 비밀을 가지면 어떤 조건도 상관 없음(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
2) 기근 만난 아브라함 – 과거의 방법, 기준, 생각으로 선택(불신앙에 빠져 애굽에 거류)
3) 내가 가진 문제, 사건들이 현장에서 정리 되어지면서 응답(다락방), 나를 만나는 사람을 살림(팀사역), 가정이 살아남(미션홈, 업, 직장의 축복(전문사역), 나를 통해 지역이 살아남(지교회)
2. 불신앙 하면 따라 오는 것들
가.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민13, 14장) - 원망, 불평, 인본주의
나. 두 종류의 불신앙(신분을 모름 / 잘못 된 행동, 결정, 판단)
다. 매 순간 버려야 할 것 - 불신앙
1) 기근으로 애굽에 내려 감, 아내를 누이가 속임, 롯을 데리고 나옴, 분쟁의 씨앗(이스마엘)
2) 아브라함의 불신앙 – 불신자(바로의 집)의 집에 재앙이 내림
3) 신분(성령내주, 인도, 역사)과 권세(흑암결박, 천군천사, 하늘시민권, 세계복음화)를 회복
3. 불신앙 했으나 망하지 않은 아브라함
가. 불신자가 망하는 이유 – 삶의 근본과 배경이 멸망 조건 속에 있음(엡2:3 본질상 진노의 자녀)
나. 신자들의 실패 –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살며 사단이 존재하는 사실을 모르고 영적 싸움 하지 않기
때문에
다. 현장에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 – 그 이름으로 영적싸움 싸워라
결론: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세상에 답을 주고 살리며, 이 축복이 현장에 전달 되기를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창12:10~20)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12:10~20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갑시다! 오늘 이 시간 주님 내게 약속하신 그 은혜 앞으로 우리 모두가 나아가는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을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인생의 선택과 결정들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그 기준이 복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결정을 하고 아무리 훌륭한 기준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복음을 모르면 결국 그것은 바벨탑이 되는 것이고 마태복음 7장의 비유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반석 위에 세운 것이 아니라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의 모든 조건과 환경들, 배경들은 사실적으로 임시적인 조건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이고 사업하면서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조건과 결정은 임시적인 조건과 임시적인 결정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절대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이 절대적인 조건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잘 되게 되어 있고 응답받게 되어 있고 축복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는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보면 염려하지 말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서 기다리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주간에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지 않습니까? 너는 복이 될지라. 그렇습니다. 요셉 때문에 노예도, 또 요셉 때문에 감옥도, 또 왕궁도 그 나라도 살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때문에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지역도, 이 시대, 이 나라도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에 대한 증인으로 저와 여러분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이 사실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응답과 축복과 승리의 역사가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서 심한결 준목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만 사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의 아내 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종을 내어보내면서 다른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복음과 전도의 사명이 소통되는 그 사람을 찾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은 다른 세상의 그 어떤 조건이 아무리 좋다 할지라도 이런 절대적인 조건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국은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설령 세상의 조건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절대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면 반드시 응답받게 되어 있고 성공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문제와 시험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도 계속적인 고난이 있어 왔던 부분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왜 우리에게 고난이 계속되는가? 왜 절대적인 축복 가운데 세운 아브라함에게도 이런 고난이 계속되었는가? 사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시험과 고난과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먼저 우리는 붙잡아야 합니다.
1. 회복 해야 할 것 세 가지
그래서 먼저 오늘 첫 번째로 시험과 문제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것 세 가지,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느냐? 참된 감사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이 사실을 안다면 그 자체 속에서 참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 인생에 약속하신 것이 구원의 약속이고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시고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 구원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인간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재앙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재앙이 임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그 어느 누구도 결국은 재앙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재앙을 겪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그 뒤에 지옥의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단의 손에 붙잡혀 있고 이 속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구원이라 하는데 이것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재앙 가운데서, 지옥 배경 가운데서 사단의 손에서 빠져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구원이라 합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사단의 손에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열두 가지 인생의 문제, 오늘 우리 장로님 기도 가운데서 있었습니다만 결국은 하나님 안 믿어도 된다는 것, 이게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다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안 믿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사단의 문화 속에 빠져있는 부분. 그러니까 하나님을 안 믿어도 된다는 마음들, 또 그 결과로 결국은 사단의 문화 속에 빠져 있으니까 자기가 누구인가를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열심히 살아가는 만큼 계속적인 어려움이 올 수밖에 없는데 그 속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해방시켰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재앙과 지옥 배경과 사단의 문제를 다 끝냈다는 사실입니다.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권세까지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 되는 축복이라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다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해방될 뿐만 아니라 재앙과 지옥 배경과 사단의 역사를 이길 수 있는 권세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것, 참된 감사는 진짜 내가 구원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파멸 가운데서 속량하시고 건지시고 인자와 긍휼로 우리에게 관 씌우신 그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창세기 39장 1절~6절에 요셉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말씀했습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이 구원의 축복, 이 사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과 고난이 있다면 빨리 구원에 대한 은혜와 감사를 회복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 구원의 역사를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구원의 역사를 주시고 선물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날마다, 매일매일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전도자들이 가장 많이 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 구원 받은 사실에 대해서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문제와 사건과 일들은 그대로 여전히 그들의 삶 속에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가지고 그 모든 한계를 뛰어넘은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우리에게 시험과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시험과 여러움과 고난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회복하기를 원하시느냐?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성령 인도 받기 위해서. 여러분,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큰 문제를 당하고 나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면 인도받을 것인가 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성령 인도 받는 것은 조그마한 일이라도 모든 것을 성령의 인도 받는 속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악한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도록 조급하게 만들고, 또 반대로 나태하게 만듭니다. 같은 말입니다. 조급하게 만들고 나태하게 만든다. 여러분, 에베소서 4장 30절에 보면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모든 것에 조급하게 설치게 되면 성령을 근심케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 말씀하셨는데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우리에게 역사하시는데 그 역사하시는 현장을 놓쳐 버리고 그 시간을 놓쳐 버리고 우리도 모르게 나태하게 될 때에 그것은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9절에 있는 말씀처럼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근심케 하지 말라,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라, 작은 일 하나까지도 성령의 완전한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게 저와 여러분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그게 저와 여러분이 있어야 할 위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그리스도 복음 안에 모든 것 다 있습니다. 그래서 그 복음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알고 자꾸 그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와 아래와 옆을 봐야 하는데, 다시 말하면 하늘의 비밀과 땅의 비밀과 사람의 비밀을 아는 것입니다. 그게 위를 아는 것이고 아래를 아는 것이고 좌우를 아는 것입니다. 그게 성령의 인도 받는 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도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었고 오늘도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의 응답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리스도 안에서 동시에 보는 것, 그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틀린 것이 각인되어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데 진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을 꿰뚫어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하게 되고 진짜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내 수준과 상관 없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아무리 많은 좋은 일을 한다 할지라도 지나놓고 보면 성령의 인도 받지 않은 가운데 행한 모든 일, 좋으면 좋을수록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빠진 부분들이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보잘 것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그것은 큰 증거와 열매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과 고통과 문제를 주느냐? 매사에 성령인도 받아라고... 세 번째입니다. 진짜 우리가 회복해야 될 부분들은 계속해서 기도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통해서, 어려움을 통해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기도 속으로 들어가서 진짜 기도의 비밀을 회복할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도의 비밀을 회복하면 세상의 그 어떤 조건도 상관없습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 말씀을 이야기할 때에 뒤에 부분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부분을 좋아합니다마는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우리의 현 주소가 뭐냐?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건이 좋으면 좋습니다마는, 다행입니다마는...조건이 설령 좋지 않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내가 능력 주시는 자 그 안에 있으면 그 힘으로 조건을 바꾸어갈 수도 있는 것이고요, 조건을 바꾸어 가지 못하는 그 한계에 당할 때는 하나님이 그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조건 상관없어요. 계속적인 기도의 비밀 속에 있으면...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조금만 계속해서 이 기도의 비밀 속에 있었다면 이런 불신앙 속에 빠지지 않았을 것인데 기근을 맞이해서 애굽에 내려갔잖아요. 가나안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할 아브라함이 기근을 당했다고 해서 그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서 또 어려움을 당하는 부분을 우리에게 본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아브라함이 조금만 계속해서 기도 속에 있었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장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에 있다가 마침내 가나안 땅,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보장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재앙이 끝나버리는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 축복된 약속이 있는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마는 환경에 기근이라는 부분이 찾아오니까 기도의 비밀을 놓쳐버리니까 그 환경이 크게 보이게 되고 그래서 그 환경을 따라서 기근을 따라서 애굽에 내려갔어요. 아마 오늘 성경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아주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모든 애굽의 사람들이 전부다 그 아름다움을 보았고 또 고관들도 사래의 그 아름다움을 보고 바로 왕에게 추천했잖아요. 그래서 바로 왕이 아브라함을 불러가지고 도대체 저 아름다운 여자가 누구냐 물었잖아요. 그때에 아브라함이 뭐라 했습니까? 나의 아내라고 해야 하는데 내 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누이라고 한 이유 중에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가 죽을까 싶어 가지고 자기의 누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아니한 겁니다. 또한 여러분 여기에 애굽에 거류하려고 해서 10절에 보면 이 말은 쉽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당장 어려움을 당하니까 이 환경만 좀 피하면 될 것 아니냐 환경만 좀 피했다가 다시 올라오면 될 것 아니냐? 아마 아브라함에게도 그런 마음과 생각이 있었겠지요. 애굽에 아예 가서 살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0절에 보면 애굽에 거류하려고..잠시 잠깐 그 자리를 떠난 겁니다. 핑계입니다 핑계.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체질대로 쉽게 문제와 사건 속에 옮겨지는.. 자기의 기준과 자기의 생각대로, 아니 진짜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이 기근 가운데 하나님께서 축복할 것인가 봐야 될 것인데, 환경에 속아가지고 그 기근을 피해가지고 핑계를 대고, 핑계를 댄 것이지요. 잠시 갔다가 다시 올라오면 될 것이 아닌가 핑계를 대고 애굽에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분 이 부분들이 아브라함에게만 있는 부분들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 아닙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으로 육신적인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 앞에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영적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그러니까 진짜 하나님이 역사하기를 원하시는데 정녕 중요한 순간에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을 봅니다.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아십니까? 우리 안에 널리 습관화 되어 익숙해져 있는 세상적인 기준들, 육신적인 부분들 결국 이런 부분들 때문에 결국은 불신앙에 빠져드는 부분들이지요. 여러분 중요한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불신앙 가운데 빠질 필요가 없어요. 왜인 줄 아십니까? 우리에게 있는 문제와 사건은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축복의 사건이고, 문제입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문제와 사건, 반드시 응답하실 사건이예요. 그 사실을 현장을 통해서 정리되어지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반드시 여러분 그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응답하실 사건인 것을 붙잡게 되면 결국 나를 만나는 사람도 살게 됩니다. 그 응답의 역사를 현장을 통해서 누리게 되면 결국 내 가정도 살게 되고, 내 업도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나타나게 되고 내 지역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다락방부터 시작해서 지교회까지 이루어지는 역사지요. 먼저 내게 주어진 문제와 사건들은 하나님이 응답하실, 축복하실 사건이라는 것. 그것을 현장을 통해 확인하고 누리게 되면 그 사실이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이 비밀들을 현장에서 계속해서 찾고 누리게 되면 뭔가 모르게 우리 가정도 회복되고요, 내 하는 일에도 전문성의 축복의 응답이 나타나게 되고요, 그 축복의 응답의 결과로 지역도 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불신앙할 이유가 전혀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우리에게 영적인 암인 이 불신앙을 완전히 해결하는 귀한 축복된 증거가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불신앙하면 따라오는 것들.
두 번째입니다. 불신앙 하면 따라오는 것들입니다. 왜 불신앙을 버려야 되는냐? 거기에 대한 중요한 이유들을 붙잡아야 되겠지요. 여러분 민수기 13, 14장 우리가 대표적으로 불신앙 하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패 했던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는 성경 구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실은 모세의 지도하에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서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0명의 정탐꾼들, 사실은 사실적인 현장의 보고였지만 불신앙의 보고였어요. 왜냐? 그 10명의 보고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맞는 말이예요. 그런데 불신앙의 고백이예요.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따라오는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모세를 죽이려고 덤벼들었어요. 그러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니까 그 다음에 나온 것이 뭡니까? 대책이 나온 것입니다. 이게 인본주의 아닙니까? 우리가 한 지도자를 세워서 다시 돌아가자. 그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그 불신앙했던 10명의 정탐꾼들 결국 하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리고 불신앙했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같이 광야 길을 가는 동안에 다 모래사장에 다 죽게 되었어요. 여러분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불신앙 속에 빠져들어요.
여러분 우리가 불신앙하는 부분들 보면 가장 1차적인 불신앙이 뭐냐 하면 신분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그 결과로 행동과 판단과 결정들을 하게 되어요. 이게 2차적인 불신앙이라 할 수 있어요. 여러분 행동과 판단과 결정이 그냥 불신앙의 행동, 판단,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중요한 것은 신분에 대한 불신앙이 왔기 때문에 불신앙적인 행동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회복해야 될 부분들이 있다면 우리의 1차적인 불신앙,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 되어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저런 문제들을 이야기 합니다. 이렇다 저렇다, 이 문제 저 문제 있다.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가만히 들어보면 다 맞아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무엇을 보게 되느냐 하면 다 맞는 이야기이고 맞는 말들인데 아! 이분이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인데 이 본질적인 1차적인 이 신분에 대한 부분을 놓치고 있구나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행동과 판단과 결정들이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맞는 것이 아니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지 못하고 여기에 빠져있어요. 제가 어떤 분을 만나서 그렇게 이야기 했어요. 제가 당신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위로하고 그래 말이야 위로할 수 있다 했어요. 그런데 그건 답이 아니다 했어요. 당신이 아무리 그런 문제와 사건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 그렇다면 하나님께 당신이 기도하면 그 문제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고, 해결이 안 된다 할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1차적인 불신앙이 뭔지 아십니까? 진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는, 놓쳐버리는 신분에 대한 불신앙이예요. 그로 말미암아 모든 행동도, 판단도, 결정도 결국은 맞는 말이지만 계속적인 문제가 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가 하면 매 순간순간 마다 우리에게 있는 불신앙을 버려야 될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매 순간순간 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불신앙을 버려야 될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여러분 아브라함이 기근을 당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요. 거기에서 또 인본주의를 쓰게 되지요. 당장 자기가 죽게 되어질 지경이 되어지니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그것 때문에 불신자 바로 왕에게서 아브라함이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네가 그렇게 함이 어찌함이냐?”오늘 본문 제목의 말씀처럼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이것은 불신자 바로 왕이 아브라함에게 꾸짖은 내용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이 불신앙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바로의 가정의 재앙이 임했어요. 여러분이 언약 놓쳐버리면 현장에 재앙이 일어나요. 불신자들에게 재앙이 임한다는 사실.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알게 하십니다. 아! 내가 언약을 놓침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이 이렇게 재앙을 당하고 있구나! 오늘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잖아요. 약속은 아브라함이 놓쳤는데 재앙은 불신자에게 임했어요.
여러분 진짜 약속을 붙잡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우리가 불신앙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불신앙 하므로, 약속을 놓쳐버렸는데 문제는 재앙이 어디에? 불신자에게 임한 거예요. 그리고 보세요. 여러분 바로가 뭐라 했습니까?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불신자가 조롱한 것 아닙니까?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여러분 우리가 불신앙 하게 되면 정말로 불신자들에게서 조롱거리가 되어집니다. 같은 비슷한 맥락에 창세기 20장에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도 똑 같이 아브라함이 자기의 아내를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누이라고 속이거든요. 거기에 보면 실제로 이복 누이였다고 성경에 나와요. 그런데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를 데려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서 절대 사라에게 손 못 대도록 했어요. 만약 손 대면 너와 네게 속한 자들은 다 죽을 것이다 했어요. 그러면서 이 아비멜렉에게 무엇을 이야기 했느냐? 아브라함을 일컬어서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는 선지자라 그를 불러서 기도를 받으라 했어요. 그리고 성경 창세기20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똑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네가 어찌 이렇게 하느냐?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 그래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서 기도해 주니까 아비멜렉 가문에 닫혔던 태의 문이 열려졌어요.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 보세요. 저는 이 본문을 쭉 묵상하면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 앞에 가서 누이라고 속일 때는 언제고, 어찌할 수 없어가지고 아비멜렉 앞에 가서 기도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기도해 줄 때 얼마나 죄송합니다 얼마나 쪽 팔렸겠느냐?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이 언약을 놓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게 되어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 바라보면서 잘한다 좋아 한다 다 헛말입니다. 진짜 언약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요나서1장 6절에도 보면 은 요나가 풍랑가운데 배 밑에 잠자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사명자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고 하나님께서 니느웨성으로 가라하는 말씀에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만났는데 그 풍랑 속에 배 밑에 잠자고 있는데 그 때 불신자 선주가 와서 뭐라 했습니까 자는 자여 어찜 이냐 그러면서 나오는 말씀 보면 은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안 되느냐 오히려 불신자가 이 요나에게 사명자 요나에게 꾸지람하는 모습이 나와요. 여러분 진짜 믿음 회복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순간도 불신앙에 빠지면 안 돼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 많은 경우 가장 쉽게 빠지는 불신앙이 뭔 줄 아십니까? 내가 그래도 뭔가 해야지 내가 내 가정을 책임져야 하고 내 자녀들을 책임져야 하고 내가 뭔가 열심히 해야지 참 좋은 말이죠. 세상 사람들이 듣기에는 맞는 말입니다. 근데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것만큼 불신앙 한 말이 없어요. 하나님이 내 가정과 내 자녀들을 책임지시고 인도해나가게 되어 있어요. 내가 자녀들을 아니고 내가 내 자신이 아니라 뭔가 그래도 계획이 있어야지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이 완벽하게 여러분 한걸음 한걸음을 인도해 나가시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안 믿는 부분들을 봅니다. 내가 책임져야지 좋은 말이죠. 여러분 잘못했다면 여러분 책임져야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책임 질수 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 인생을 책임져야 되는 것이고 우리에 일어나는 사건과 문제를 책임져야 되는 것이고 하나님 우리 가정을 책임져야 되는 것이고 우리의 자녀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빠져드는 불신앙이에요. 우리도 모르게 우리 안에 정말 불신앙에 빠져들 수 있는 그런 문제와 사건들이 너무 많이 우리 안에 깊이 깔려져 있어요. 여러분 아브라함도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신앙뿐만 아니라 바로 이어서 창세기 13장에 보면 롯을 데리고 나오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언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느냐? 창세기 13장 14절에 보면 은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가지고 조카 롯을 데리고 나왔어요. 그자체가 불신앙이에요 그래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불신앙을 버렸을 때 이 말입니다. 그 뒤에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내용이 나오죠. 또 보세요. 사실은 하갈을 맞이해서 하갈을 취해가지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누구죠 이스마엘입니다. 이 하갈은 어떤 면에서 성경을 보면 은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오게 되거든요 바로 왕이 사래와 함께 많은 가축들, 은금을 주면서 빨리 나가라 합니다. 그때 같이 따라 나온 종중에 하갈이 아닌가. 그렇게 성경학자들이 봅니다. 그런데 그 하갈로 말미암아 불신앙의 씨앗이 애굽에서 데려온 종 하갈에게 있었던 것이죠.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깐 하갈을 취해가지고 누구를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 불신앙의 불신앙에 열매와 결과가 지금까지도 테러를 일으키고 있잖아요. 이스마엘의 후예들, 모슬렘. 여러분 우리가 한순간도 불신앙에 빠져들면 안됩니다. 우리의 신분이 불신앙해서는 안 되는 신분이에요.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불신앙에 빠져들잖아요. 신분 자체가 우리가 불신앙해서는 안 되는 신분이라는 겁니다. 왜 그러면 불신앙에 빠지느냐?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몰라가지고 그걸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신분과 권세에 대한 축복이 어떤 것입니까?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 우리를 정확하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하나님이 일 하세요 성령이 역사하심이죠. 이게 우리에게 주신 신분이에요. 그 따르는 권세가 뭡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 가는 곳마다 흑암의 세력들이 꺾이게 되어 있어요. 하늘군대가 동원되고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고요 그와 더불어 하늘 보좌의 축복의 비밀들을 이 땅에서 누리게 되면서 세상을 정복하고 현장을 정복하는 축복 그게 신분에 따른 권세죠. 한번 따라합니다. “나는 불신앙에 빠져서는 안 될 신분이다!” 이번 한 주간 우리에게 있는 모든 불신앙이 해결되어지는 귀한 축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된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라 이 말입니다.
3. 불신앙 했으나 망하지 않은 아브라함
세 번째입니다. 불신앙 했으나 망하지 않은 아브라함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인줄 아십니까?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많은 큰 업적을 남겨도 반드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삶에 근본과 배경이 멸망 조건 속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에베소서 2장 3절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 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은 인생의 12가지 멸망의 조건 속에 가두어져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착하고 훌륭해도 많은 업적들을 남겨도 결과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실패 합니다. 실패할 수 있어요 왜 시험 들고 실패하느냐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또 아직 세상 속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사탄이 분명히 지금도 활동하고 있어요.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은 영적 싸움을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 창세기 3장 그 현장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잖아요.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아직 부활하신 영화로운 몸으로 바뀌어진 것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있어요. 그리고 분명히 사탄의 역사가 현장을 장악하고 있어요. 이 사실을 알지 못 하면은 결국은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구원은 받았다 할지라도 영적 싸움을 싸우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실패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세력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적 싸움을 싸우게 될 때에 실패하는 인생이 아니라 승리하는 그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우리 현장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입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싸우게 되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비록 아브라함이 실수해서 불신앙해가지고 잠시 실패했지만은 결국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보세요. 마지막 20절을 보세요. 또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을 보게 되는데요. “바로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물을 보내었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실수해서 불신앙했지만은 또 결과적으로 축복하심을 보게 되요. 이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불신앙 할 수 있다는 것은요 우리의 신분과 우리에게 주신 권세 축복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진짜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시고 또 우리가 불신앙에 빠지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를 왜 하나님께서 왜 부르셨는지 부르심의 이유와 사명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부르시고 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까? 바로 그것은 신분과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살리고 모든 사람, 답을 잃어버린 세상에 답을 주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회복함으로 여러분 가는 걸음걸음 마다 이번 한 주간에도 여러분 통해서 이 축복의 역사가 전달되어지는 귀한 응답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4월 2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창12:10-20)
서론: 인생의 선택과 결정은 중요합니다. 복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모든 조건, 환경, 배경은 임시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절대적인 조건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 하시기 때문에 응답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요셉 때문에 노예, 감옥, 왕궁, 나라가 살아났습니다. 복음 가진 우리 때문에 현장(지역, 나라, 시대)이 살아 날 수 밖에 없습니다.
1. 회복 해야 할 것 세 가지
가. 참된 감사를 회복해라.
1) 구원 받은 사실을 알 때 감사 – 재앙, 지옥 배경, 사단의 손에서 해방
2)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의 12가지 문제 – 예수 그리스도로 끝내심(요19:30)
3) 재앙, 지옥,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권세(요1:12), 하나님이 함께(창39:1-6, 시23:4)
나. 매사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
1) 자리, 위치(작은 일에 성령의 인도) - 조급, 나태하도록 속임(엡4:30 성령을 근심하게, 살전5:19 성령을 소멸)
2) 어떻게 성령의 인도? - 9가지 포인트
복음 안에 높이, 넓이, 깊이, 위(하나님의 비밀), 아래(땅의 비밀), 옆(사람의 비밀), 과거, 현재, 미래
3)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을 꿰뚫어 보게 됨,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
다. 기도의 비밀을 회복하라
1) 기도의 비밀을 가지면 어떤 조건도 상관 없음(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
2) 기근 만난 아브라함 – 과거의 방법, 기준, 생각으로 선택(불신앙에 빠져 애굽에 거류)
3) 내가 가진 문제, 사건들이 현장에서 정리 되어지면서 응답(다락방), 나를 만나는 사람을 살림(팀사역), 가정이 살아남(미션홈, 업, 직장의 축복(전문사역), 나를 통해 지역이 살아남(지교회)
2. 불신앙 하면 따라 오는 것들
가.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민13, 14장) - 원망, 불평, 인본주의
나. 두 종류의 불신앙(신분을 모름 / 잘못 된 행동, 결정, 판단)
다. 매 순간 버려야 할 것 - 불신앙
1) 기근으로 애굽에 내려 감, 아내를 누이가 속임, 롯을 데리고 나옴, 분쟁의 씨앗(이스마엘)
2) 아브라함의 불신앙 – 불신자(바로의 집)의 집에 재앙이 내림
3) 신분(성령내주, 인도, 역사)과 권세(흑암결박, 천군천사, 하늘시민권, 세계복음화)를 회복
3. 불신앙 했으나 망하지 않은 아브라함
가. 불신자가 망하는 이유 – 삶의 근본과 배경이 멸망 조건 속에 있음(엡2:3 본질상 진노의 자녀)
나. 신자들의 실패 –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살며 사단이 존재하는 사실을 모르고 영적 싸움 하지 않기
때문에
다. 현장에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 – 그 이름으로 영적싸움 싸워라
결론: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세상에 답을 주고 살리며, 이 축복이 현장에 전달 되기를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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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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