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이 있을지어다
2017-04-1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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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23)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20:19~2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은 부활절 예배를 드립니다. 또 함께 성찬예식이 진행됩니다. 우리 인사합시다. 부활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이게 보통 인사가 아닙니다. 진짜 부활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오늘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성령으로 지금 우리 가운데 충만함을 주사 내 모든 연약한 부분이 치유되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잠시도 쉬지 않고 진행해나가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소, 이 시간까지도 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혼돈과 흑암과 공허함에 빠졌을 때에 창세기 1장 2절이죠, 거기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더라 말씀했습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나오는, 여기 나오는 빛은 해와 달에서 나오는 빛이 아닙니다. 생명의 빛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함께 함으로 누리는 것이 생명의 역사인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의 역사가 단절되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또 주신 약속이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오셨고, 지금도 그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고, 앞으로도 주님이 이 땅에 재림주로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이 하시는 주사역이 바로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특히 구원의 역사, 가장 중심에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 있다면, 복음의 가장 핵심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이 부활의 축복,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부활의 축복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예언에 대한 성취요 완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그리스도의 최고의 증거가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은혜로 우리는 거듭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우리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 능력으로 치유함을 받게 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 축복으로 참된 증인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날 부활절 예배를 통해서 사실은 날과 절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날과 절기의 주인공은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찬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찬예식을 통해서 우리가 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 새생명 가운데 살아났음을 확인케 되는 시간인데 그러면 성찬예식과 함께 부활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복음을 최고로 누리는 날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들을 만들었고 절기를 만든 것입니다. 복음을 최고로 누리는 날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진짜 우리가 복음을 최고로 알고 누리면 우리는 부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이 부활절이며, 성탄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이 성탄절이고, 진짜 복음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누리면 추수감사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이 추수감사절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한날 진짜 복음인 그리스도를 최고로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모든 문제가 끝나는 축복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 하셔야만 하는가?
그러면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느냐?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느냐?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있는 근본문제 때문입니다. 그냥 단순한 근본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바로 근본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면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고 땅에 살고 있지만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떠난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죄가 있다면, 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죄가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바로 가장 큰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가장 큰 죄인 하나님을 떠난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 인간 창조 이전에 있었던 악한 사단의 존재로 말미암아 창세기 1장 2절에 나타났고 계시록 12장 7절~9절에 이미 나타나 있는, 천사가 타락해서 사단, 마귀가 되었는데 그 악한 사단으로 말미암아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범죄 이후로 이 땅에는 지금까지 창세기 3장 현장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우리에게 수고와 고생과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이 세상을 모르도록 육신과 경제를 가지고 파고들었는데 그게 바로 창세기 6장 사건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성공, 잘못된 성공을 가지고 우리 인간을 속이는데 그게 바로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의 역사를 한번 보십시오. 계속 쌓고 무너지고 쌓고 쌓고 또 무너지고, 또 쌓고 무너지고, 모든 사람이 성공을 위해서 무언가 쌓는데 결국은 무너지는 것이 바로 이 땅의 모든 삶입니다. 지금 지구상에 가장 많이 떠도는 말들이 있습니다. 바로 네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는 것, 네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말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사단이 아담, 하와에게 와서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속였지 않습니까? 이것이 악한 사단의 말, 지금 지구상에 가장 많이 떠도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되는 줄 알았는데 그만 네피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히 사단 충만한 우상숭배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인간은 무언가 모르게 성공을 위해서 달음질칩니다. 무너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달려갑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그러나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 땅의 삶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은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이 속에 우리 개인이 있고 이 속에 우리의 가정이 있고 이 속에 우리의 자녀들이 있고 이 속에 우리의 산업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내가 이런가, 왜 내게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가, 아니, 우리 가문은 왜 이럴까, 바로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그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사단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속임으로 말미암아 문화를 가지고 파고드는데 모두가 마귀를 섬기도록, 사도행전 13장, 16장, 19장이죠, 모두가 마귀를 섬기도록. 그래서 마귀에게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은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은 운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만 여섯 가지 운명의 쇠고랑에 사람들을 채워서 영원한 멸망 가운데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바로 악한 사단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게 된 영원한, 절대적인 저주요 절대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왜 절대적인 저주요 절대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하느냐? 절대라는 말을 왜 붙였느냐? 아무도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절대라는 말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문제를, 인간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 이에 대한 약속이 성경 전체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탄생과 고난당하시고 죽으심과, 죽음에 대한 부분들과, 그리고 부활과 승천과 다시 재림주로 오시는 재림에 대한 사건들, 이게 이 성경 전체에 약속하고 있는 것이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과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우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으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심으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예언에 대한 성취인 것입니다.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고린도전서 15장 3절~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신 사건은 성경대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언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교독문 할 때 읽었습니다만 고린도전서 15장에 5절부터 6절, 7절을 죽 보시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나타났는데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리고 또 열두 제자에게와 동시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야야고보에게 보이시고 만삭되지 못한 ‘나’에게도, 바울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증거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설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 베드로의 설교의 가장 핵심은 무엇이냐?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 부활하셨다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그것이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당시에 역사적으로 거짓말이었다면 모든 사람이 들고 일어나서 돌을 들고 베드로를 쳐죽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마음에 회개가 일어나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삼천 제자가 세워졌다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두렵고 떨림으로 모여져서 날마다 성전에서, 날마다 집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가 의미로만 붙잡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11시 예배를 드리는데, 11시 예배 종이 땡 치면 모두가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 신앙고백을 할 때 하나같이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많은 사람들이 시간 가면 갈수록 그냥 부활에 대한 영적인 의미만 가지려고 하는데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반드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하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지옥의 권세, 사탄의 권세가 완전히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축복의 길이 열린 날이고,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는 사탄의 모든 저주가 무너진 날이 바로 부활의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 나의 구주로 내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인간 세상 속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죽음의 문제 아닙니까? 사망의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평생 거기에 메여 종노릇한다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거기에 메여서 일평생 종노릇 합니다. 그런데 부활은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그 증거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이 땅에서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리스도라는 최고의 증거로 주님께서 부활 하셨는데 부활하신 그 분은 바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셔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시고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3: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다”이야기 했습니다. 누구를 일컬어서 이런 말씀을 하느냐? 바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일컬어서 말씀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 시키시사 그 그리스도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쥐어 주었어요.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그 권세를 맡기셨어요. 그 증거가 어디 있느냐? 마태복음28:18절에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바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예수님을 부활 시키시사 그 예수님에게 그리스도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님께 맡기셨다 라는 것, 그 부활하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그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지금 보좌에 계시면서 땅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인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권세를 우리는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면서도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만물이 복종하는 그 어마어마한 이름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좌절하고, 왜 낙심하고, 왜 절망가운데 빠져있습니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죄 문제 해결하시고, 사탄의 운명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사 아예 우리 안에 만물을 다스리는 그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순간순간 우리는 절망에 빠지고, 낙심에 빠지고 좌절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보면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첫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줄 아십니까?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처음 달려갔어요. 빈 무덤인 것을 보면서 거기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천사들이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여자의 어찌하여 우는가?’ 가장 기쁨과 영광의 현장에 서 있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어떤 면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 모습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 엄청난 권세 가지신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이 권세를 사용하면 되는데 사용하지 못해서 순간순간, 찰나 찰나에 우리도 모르게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절망 가운데서 마치 마리아가 우는 것처럼 우리 자신들이 문제 앞에서 전혀 힘쓰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 권세로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 권세를 사용하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도행전3:1~12절에 보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자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그러니까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취했는데 성전미문에 앉아서 남이 던져주는 동전을 가지고 구걸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베드로와 요한이 그 현장을 주목하여 보면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손을 내밀고 일으키니 그가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했습니다. 절대적인 운명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앉은뱅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운명의 문제가 해결된 이 엄청난 역사를 누린 사실을 보게 되어요. 그렇습니다.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이름이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이기 때문에 그 이름의 권세가 증거 되어지는 현장마다 운명의 역사들이 꺽이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현장이든지 간에 여러분 먼저 내가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 그 이름의 역사들을 증거 하세요. 사도행전8:4~8절에 보면 수 백년 동안 복음이 한 번도 증거 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온갖 영적인 문제와 육신의 문제들이 가득 찬 사마리아 지역에 평신도 중직자 빌립이 들어가 가지고 그 현장에서 다른 것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그 사실을 증거 했는데 그 안에 많은 영적인 문제와 육신적인 부분들이 치유되어지면서 8절에 보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했어요. 할렐루야! 사도행전16장에 보면 루디아라는 한 여자를 바울 팀이 만났습니다. 그 루디아가 이 바울 팀을 맞이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루디아로 말미암아 어떤 역사가 일어났느냐? 그 루디아가 속해 있는 빌립보 지역에 큰 전도의 문들이 열려지는 증거의 역사들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타났어요.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온갖 우상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붙잡혀 있는 에베소 지역에, 거기에 바울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거기에 우상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지고 그 응답을 발판으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런 엄청난 축복의 역사들이 나타났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을 사용하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증거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현장에 성경에 있는 그 약속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 비밀을 아는 일꾼들이 나가게 될 때에 마치 마게도냐와 로마가 바뀌어졌던 것처럼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지고 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걸음 속에 모든 것 바뀌어지는 변화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어떤 문제를 여러분 갖고 있습니까?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현장에서 안 좋고 여러분을 절망시키고 좌절시키는 것들이 있다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도전하세요.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든지 간에 그 환경을 축복의 환경으로 바꾸십시오. 왜냐하면 나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은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재창조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겁낼 것 없어요. 두려워할 것 없어요. 걱정할 것 없어요. 망해도 괜찮아요. 왜냐? 주님은 재창조의 역사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괜찮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6:8~10절에 보면 " 나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말씀 했습니다. 재창조의 역사로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모든 걸음 속에 참된 재창조의 역사들이 나타나는 그 축복의 역사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 번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 앞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제자들은 어찌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온 내용이지요.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앉아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냥 벽을 통과해서 들어오셨습니다. 문을 열지 아니하고 그냥 벽을 통과해서 들어오셨어요. 그런 주님께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참된 소망의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두려워, 무서워 문을 닫고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두 번이나 이야기하면서 참된 제자들에게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두려움 가운데 빠집니다. 날마다 염려가운데 빠집니다. 날마다 걱정가운데 빠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많으냐 성경을 찾아보니까 거기에 대한 성경구절이 한 365개 정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우리의 하루하루가 일년 365일 아닙니까? 그렇다면 매일 매일 염려, 걱정, 두려움 속에 빠진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두려움 속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말씀했어요.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긴장 가운데 살아가요. 그렇잖아요. 오늘 내게 어떤 삶이 일어날지, 어떤 문제가 터질지 늘 긴장 가운데 살아가요.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참된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여러분 마음에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골키퍼는요 골대 문에 딱 서 가지고 어떻게 하면 골이 안 들어가게 할 것인가 온 몸을 던져서 그 공을 막습니다. 그런데 공이 안 들어갈 수가 있나요? 공이 들어가고 나면 허무함에 빠집니다. 여러분 인생이 아무리 이 땅의 많은 문제와 사건 속에서 그게 내게 안 닥치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열심히 살지만 어느 날 알고 보면 마치 골대 안에 골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게 닥쳐진 문제 속에 우리도 모르게 빠지게 되어요. 그래서 허무함 속에 빠질 수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할 존재가 아니예요. 여러분 우리는 당당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긴장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당당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당당함이 있어야 하느냐? 여러분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전쟁을 준비해 놓고 전쟁의 총 사령관으로 나를 따르라 하면서 앞으로 나가잖아요. 그런 당당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저 우주를 향해 쏘아 날리기 위해서 모든 것 다 준비해 놓고 우주 조종사가 우주선 안에 딱 타서 나가는 것처럼 그런 당당함으로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왜냐? 주님께서 그런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런 비밀들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예요. 자 보세요. 벽을 통과해서 그냥 들어왔어요. 문을 안 열고 들어왔어요.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어요. 그 많은 권세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권세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오늘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2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요20:21에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원자로 보내신 것 같이 오늘 본문에 말씀했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물을 복종할 수 있는 그 권세를 가지고 우리를 세상을 향해서 보낸다 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어마어마한 권세를 가지고 세상 현장을 향해서 파송된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여러분 대사가 당당함으로 나가야지요. 쫄아 가지고 그렇게 나갈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서 22절에 뭐라 했습니까?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했어요. 최선을 다하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성령을 받으라”했어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고, 넘을 수 있는 성령의 역사, 열심히 살아라 최선을 다하라 이야기 하지 않고 “성령을 받으라”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23절에 보면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정말로 누구든지 우리 때문에 사하는 역사가 현장에 일어난다는 사실이예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활은 주님께서 만드신 지구 최고의 날입니다. 이 부활의 날에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고 있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능력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이 축복 가운데 이 축복 누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통해서 모든 현장에 부활의 축복이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4월 1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23)
서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잠시도 쉬지 않고 진행해 나가십니다. 혼돈, 공허, 흑암에 빠졌을 때 빛을 만드셨습니다(창1:3).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누리는 것이 생명인데 놓침으로 단절 되었습니다. 이 때 여자의 후손(창3:15)을 약속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고, 앞으로도 이루어 나가십니다. 구원의 역사의 중심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기독교의 핵심). 부활은 예언에 대한 성취, 완성,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1.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 하셔야만 하는가?
가. 인간의 근본문제 때문
1)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창조 되었음 – 하나님을 떠나면 멸망
2) 타락한 천사인 사단,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을 떠남
나 자신이 기준 되어 고생, 수고하며 살아감(창3장), 육신, 경제로 침투(창6장), 거짓된 성공, 잘못된 성공으로 인도(창11장), 문화로 파고 들어 속임(행13, 16, 19장), 개인에게 불신자 6가지 상태
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모든 문제 해결
1)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예언의 성취, 역사적 사건)
2) 모든 문제를 끝내신 날 –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이 열린 날, 사단이 무너진 날
다. 그리스도의 최고의 증거가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
1) 그리스도의 이름은 만물이 복종하는 것(빌3:21), 모든 만물을 주관하는 능력(마28:18)
2)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행3:1-12), 증거(행8:4-8, 행16:15) - 마게도냐, 로마를 변화
2. 평강이 있을지어다
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심
나. 염려, 두려워 하는 체질 – 세상을 이길 축복을 약속
다. 하나님의 역사를 약속 – 세상을 향한 파송(21), 성령을 받으라(22), 나를 통해 모든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23)
결론: 부활은 최고의 날입니다. 부활 하신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복종케 하실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모든 현장에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23)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20:19~23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오늘은 부활절 예배를 드립니다. 또 함께 성찬예식이 진행됩니다. 우리 인사합시다. 부활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이게 보통 인사가 아닙니다. 진짜 부활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오늘도 누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성령으로 지금 우리 가운데 충만함을 주사 내 모든 연약한 부분이 치유되는 축복의 시간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잠시도 쉬지 않고 진행해나가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소, 이 시간까지도 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혼돈과 흑암과 공허함에 빠졌을 때에 창세기 1장 2절이죠, 거기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더라 말씀했습니다. 창세기 1장 3절에 나오는, 여기 나오는 빛은 해와 달에서 나오는 빛이 아닙니다. 생명의 빛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함께 함으로 누리는 것이 생명의 역사인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실을 놓쳐버림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의 역사가 단절되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또 주신 약속이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오셨고, 지금도 그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고, 앞으로도 주님이 이 땅에 재림주로 오시는 그 날까지 주님이 하시는 주사역이 바로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특히 구원의 역사, 가장 중심에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 있다면, 복음의 가장 핵심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이 부활의 축복,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부활의 축복은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예언에 대한 성취요 완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그리스도의 최고의 증거가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은혜로 우리는 거듭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우리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 능력으로 치유함을 받게 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그 축복으로 참된 증인의 축복을 누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한날 부활절 예배를 통해서 사실은 날과 절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날과 절기의 주인공은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찬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찬예식을 통해서 우리가 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 새생명 가운데 살아났음을 확인케 되는 시간인데 그러면 성찬예식과 함께 부활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복음을 최고로 누리는 날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들을 만들었고 절기를 만든 것입니다. 복음을 최고로 누리는 날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진짜 우리가 복음을 최고로 알고 누리면 우리는 부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이 부활절이며, 성탄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이 성탄절이고, 진짜 복음을 알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누리면 추수감사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이 추수감사절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한날 진짜 복음인 그리스도를 최고로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모든 문제가 끝나는 축복의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 하셔야만 하는가?
그러면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느냐?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느냐?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있는 근본문제 때문입니다. 그냥 단순한 근본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바로 근본문제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면 망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고 땅에 살고 있지만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 있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을 누리며 살도록 지음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떠난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죄가 있다면, 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죄가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바로 가장 큰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가장 큰 죄인 하나님을 떠난 죄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 인간 창조 이전에 있었던 악한 사단의 존재로 말미암아 창세기 1장 2절에 나타났고 계시록 12장 7절~9절에 이미 나타나 있는, 천사가 타락해서 사단, 마귀가 되었는데 그 악한 사단으로 말미암아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범죄 이후로 이 땅에는 지금까지 창세기 3장 현장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우리에게 수고와 고생과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이 이 세상을 모르도록 육신과 경제를 가지고 파고들었는데 그게 바로 창세기 6장 사건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성공, 잘못된 성공을 가지고 우리 인간을 속이는데 그게 바로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의 역사를 한번 보십시오. 계속 쌓고 무너지고 쌓고 쌓고 또 무너지고, 또 쌓고 무너지고, 모든 사람이 성공을 위해서 무언가 쌓는데 결국은 무너지는 것이 바로 이 땅의 모든 삶입니다. 지금 지구상에 가장 많이 떠도는 말들이 있습니다. 바로 네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는 것, 네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말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사단이 아담, 하와에게 와서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속였지 않습니까? 이것이 악한 사단의 말, 지금 지구상에 가장 많이 떠도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되는 줄 알았는데 그만 네피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히 사단 충만한 우상숭배 가운데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인간은 무언가 모르게 성공을 위해서 달음질칩니다. 무너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달려갑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그러나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 땅의 삶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흐름은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이 속에 우리 개인이 있고 이 속에 우리의 가정이 있고 이 속에 우리의 자녀들이 있고 이 속에 우리의 산업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내가 이런가, 왜 내게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가, 아니, 우리 가문은 왜 이럴까, 바로 창세기 3장과 6장과 11장의 그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사단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속임으로 말미암아 문화를 가지고 파고드는데 모두가 마귀를 섬기도록, 사도행전 13장, 16장, 19장이죠, 모두가 마귀를 섬기도록. 그래서 마귀에게 노예되고 포로되고 속국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은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은 운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만 여섯 가지 운명의 쇠고랑에 사람들을 채워서 영원한 멸망 가운데로 끌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바로 악한 사단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게 된 영원한, 절대적인 저주요 절대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왜 절대적인 저주요 절대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하느냐? 절대라는 말을 왜 붙였느냐? 아무도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절대라는 말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문제를, 인간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 이에 대한 약속이 성경 전체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탄생과 고난당하시고 죽으심과, 죽음에 대한 부분들과, 그리고 부활과 승천과 다시 재림주로 오시는 재림에 대한 사건들, 이게 이 성경 전체에 약속하고 있는 것이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과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우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으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심으로,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예언에 대한 성취인 것입니다.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고린도전서 15장 3절~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신 사건은 성경대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언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교독문 할 때 읽었습니다만 고린도전서 15장에 5절부터 6절, 7절을 죽 보시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나타났는데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리고 또 열두 제자에게와 동시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야야고보에게 보이시고 만삭되지 못한 ‘나’에게도, 바울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증거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설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 베드로의 설교의 가장 핵심은 무엇이냐?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다, 부활하셨다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그것이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당시에 역사적으로 거짓말이었다면 모든 사람이 들고 일어나서 돌을 들고 베드로를 쳐죽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마음에 회개가 일어나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삼천 제자가 세워졌다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두렵고 떨림으로 모여져서 날마다 성전에서, 날마다 집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가 의미로만 붙잡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있었던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11시 예배를 드리는데, 11시 예배 종이 땡 치면 모두가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 신앙고백을 할 때 하나같이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많은 사람들이 시간 가면 갈수록 그냥 부활에 대한 영적인 의미만 가지려고 하는데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반드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하신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죄, 죄로 인한 저주와 재앙, 지옥의 권세, 사탄의 권세가 완전히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축복의 길이 열린 날이고,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는 사탄의 모든 저주가 무너진 날이 바로 부활의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것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 나의 구주로 내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땅의 인간 세상 속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죽음의 문제 아닙니까? 사망의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평생 거기에 메여 종노릇한다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거기에 메여서 일평생 종노릇 합니다. 그런데 부활은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예요.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그 증거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이 땅에서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리스도라는 최고의 증거로 주님께서 부활 하셨는데 부활하신 그 분은 바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셔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시고 지금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3: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다”이야기 했습니다. 누구를 일컬어서 이런 말씀을 하느냐? 바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일컬어서 말씀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 시키시사 그 그리스도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쥐어 주었어요. 하나님이 그리스도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그 권세를 맡기셨어요. 그 증거가 어디 있느냐? 마태복음28:18절에 보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바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예수님을 부활 시키시사 그 예수님에게 그리스도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그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님께 맡기셨다 라는 것, 그 부활하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그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지금 보좌에 계시면서 땅에 있는 하나님의 성도인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권세를 우리는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면서도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만물이 복종하는 그 어마어마한 이름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좌절하고, 왜 낙심하고, 왜 절망가운데 빠져있습니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하나님 만나는 길이 되시고, 죄 문제 해결하시고, 사탄의 운명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사 아예 우리 안에 만물을 다스리는 그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까 순간순간 우리는 절망에 빠지고, 낙심에 빠지고 좌절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보면 오늘 읽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첫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줄 아십니까?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처음 달려갔어요. 빈 무덤인 것을 보면서 거기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천사들이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여자의 어찌하여 우는가?’ 가장 기쁨과 영광의 현장에 서 있는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 어떤 면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 모습이 아닌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 엄청난 권세 가지신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이 권세를 사용하면 되는데 사용하지 못해서 순간순간, 찰나 찰나에 우리도 모르게 넘어지고, 쓰러지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절망 가운데서 마치 마리아가 우는 것처럼 우리 자신들이 문제 앞에서 전혀 힘쓰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살펴봐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 권세로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 권세를 사용하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도행전3:1~12절에 보면 나면서 못 걷게 된 자 그것도 40년 동안이나 그러니까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취했는데 성전미문에 앉아서 남이 던져주는 동전을 가지고 구걸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베드로와 요한이 그 현장을 주목하여 보면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손을 내밀고 일으키니 그가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했습니다. 절대적인 운명가운데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앉은뱅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운명의 문제가 해결된 이 엄청난 역사를 누린 사실을 보게 되어요. 그렇습니다.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이름이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이기 때문에 그 이름의 권세가 증거 되어지는 현장마다 운명의 역사들이 꺽이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현장이든지 간에 여러분 먼저 내가 있는 현장에서 그리스도 그 이름의 역사들을 증거 하세요. 사도행전8:4~8절에 보면 수 백년 동안 복음이 한 번도 증거 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온갖 영적인 문제와 육신의 문제들이 가득 찬 사마리아 지역에 평신도 중직자 빌립이 들어가 가지고 그 현장에서 다른 것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그 사실을 증거 했는데 그 안에 많은 영적인 문제와 육신적인 부분들이 치유되어지면서 8절에 보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했어요. 할렐루야! 사도행전16장에 보면 루디아라는 한 여자를 바울 팀이 만났습니다. 그 루디아가 이 바울 팀을 맞이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루디아로 말미암아 어떤 역사가 일어났느냐? 그 루디아가 속해 있는 빌립보 지역에 큰 전도의 문들이 열려지는 증거의 역사들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나타났어요.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온갖 우상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붙잡혀 있는 에베소 지역에, 거기에 바울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거기에 우상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지고 그 응답을 발판으로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런 엄청난 축복의 역사들이 나타났던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을 사용하고, 그리스도 그 이름을 증거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현장에 성경에 있는 그 약속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 비밀을 아는 일꾼들이 나가게 될 때에 마치 마게도냐와 로마가 바뀌어졌던 것처럼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그리스도의 비밀을 가지고 나가는 저와 여러분의 걸음 속에 모든 것 바뀌어지는 변화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어떤 문제를 여러분 갖고 있습니까?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든 현장에서 안 좋고 여러분을 절망시키고 좌절시키는 것들이 있다면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도전하세요.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든지 간에 그 환경을 축복의 환경으로 바꾸십시오. 왜냐하면 나와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은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재창조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겁낼 것 없어요. 두려워할 것 없어요. 걱정할 것 없어요. 망해도 괜찮아요. 왜냐? 주님은 재창조의 역사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괜찮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6:8~10절에 보면 " 나는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말씀 했습니다. 재창조의 역사로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 이 축복의 역사를 누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모든 걸음 속에 참된 재창조의 역사들이 나타나는 그 축복의 역사를 체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평강이 있을지어다.
두 번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 앞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제자들은 어찌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온 내용이지요.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앉아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냥 벽을 통과해서 들어오셨습니다. 문을 열지 아니하고 그냥 벽을 통과해서 들어오셨어요. 그런 주님께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참된 소망의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두려워, 무서워 문을 닫고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두 번이나 이야기하면서 참된 제자들에게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두려움 가운데 빠집니다. 날마다 염려가운데 빠집니다. 날마다 걱정가운데 빠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많으냐 성경을 찾아보니까 거기에 대한 성경구절이 한 365개 정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우리의 하루하루가 일년 365일 아닙니까? 그렇다면 매일 매일 염려, 걱정, 두려움 속에 빠진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두려움 속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말씀했어요.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긴장 가운데 살아가요. 그렇잖아요. 오늘 내게 어떤 삶이 일어날지, 어떤 문제가 터질지 늘 긴장 가운데 살아가요.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참된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여러분 마음에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골키퍼는요 골대 문에 딱 서 가지고 어떻게 하면 골이 안 들어가게 할 것인가 온 몸을 던져서 그 공을 막습니다. 그런데 공이 안 들어갈 수가 있나요? 공이 들어가고 나면 허무함에 빠집니다. 여러분 인생이 아무리 이 땅의 많은 문제와 사건 속에서 그게 내게 안 닥치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열심히 살지만 어느 날 알고 보면 마치 골대 안에 골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게 닥쳐진 문제 속에 우리도 모르게 빠지게 되어요. 그래서 허무함 속에 빠질 수 있어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야할 존재가 아니예요. 여러분 우리는 당당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긴장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당당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당당함이 있어야 하느냐? 여러분 전쟁터에 나가기 위해 전쟁을 준비해 놓고 전쟁의 총 사령관으로 나를 따르라 하면서 앞으로 나가잖아요. 그런 당당함으로 나가야 합니다. 저 우주를 향해 쏘아 날리기 위해서 모든 것 다 준비해 놓고 우주 조종사가 우주선 안에 딱 타서 나가는 것처럼 그런 당당함으로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왜냐? 주님께서 그런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그런 비밀들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예요. 자 보세요. 벽을 통과해서 그냥 들어왔어요. 문을 안 열고 들어왔어요.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어요. 그 많은 권세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권세가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오늘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21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요20:21에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구원자로 보내신 것 같이 오늘 본문에 말씀했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만물을 복종할 수 있는 그 권세를 가지고 우리를 세상을 향해서 보낸다 했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 어마어마한 권세를 가지고 세상 현장을 향해서 파송된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여러분 대사가 당당함으로 나가야지요. 쫄아 가지고 그렇게 나갈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면서 22절에 뭐라 했습니까?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했어요. 최선을 다하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성령을 받으라”했어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고, 넘을 수 있는 성령의 역사, 열심히 살아라 최선을 다하라 이야기 하지 않고 “성령을 받으라”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23절에 보면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무슨 말입니까? 정말로 누구든지 우리 때문에 사하는 역사가 현장에 일어난다는 사실이예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활은 주님께서 만드신 지구 최고의 날입니다. 이 부활의 날에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담고 있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그 능력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이 축복 가운데 이 축복 누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통해서 모든 현장에 부활의 축복이 넘쳐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4월 16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19-23)
서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잠시도 쉬지 않고 진행해 나가십니다. 혼돈, 공허, 흑암에 빠졌을 때 빛을 만드셨습니다(창1:3).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누리는 것이 생명인데 놓침으로 단절 되었습니다. 이 때 여자의 후손(창3:15)을 약속 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고, 앞으로도 이루어 나가십니다. 구원의 역사의 중심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기독교의 핵심). 부활은 예언에 대한 성취, 완성,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1.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 하셔야만 하는가?
가. 인간의 근본문제 때문
1)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창조 되었음 – 하나님을 떠나면 멸망
2) 타락한 천사인 사단,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을 떠남
나 자신이 기준 되어 고생, 수고하며 살아감(창3장), 육신, 경제로 침투(창6장), 거짓된 성공, 잘못된 성공으로 인도(창11장), 문화로 파고 들어 속임(행13, 16, 19장), 개인에게 불신자 6가지 상태
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모든 문제 해결
1)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예언의 성취, 역사적 사건)
2) 모든 문제를 끝내신 날 –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길이 열린 날, 사단이 무너진 날
다. 그리스도의 최고의 증거가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
1) 그리스도의 이름은 만물이 복종하는 것(빌3:21), 모든 만물을 주관하는 능력(마28:18)
2) 그리스도의 권세를 사용(행3:1-12), 증거(행8:4-8, 행16:15) - 마게도냐, 로마를 변화
2. 평강이 있을지어다
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심
나. 염려, 두려워 하는 체질 – 세상을 이길 축복을 약속
다. 하나님의 역사를 약속 – 세상을 향한 파송(21), 성령을 받으라(22), 나를 통해 모든 사람이 살아나는 역사(23)
결론: 부활은 최고의 날입니다. 부활 하신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복종케 하실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축복을 누림으로 모든 현장에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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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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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 | [2025 송구영신예배]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 | 갈4:4-7 | 2024-12-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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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 | 완전한 승리를 내 것으로 누리는 성탄 | 눅2:8-14 | 2024-12-22 | |
1464 | 언약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 단3:8-18 | 2024-12-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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