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하나님만 바라보라
2017-06-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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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만 바라보라”
(창17:1~8)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창17:1~8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우리 찬양대 찬양이 너무 은혜 되니까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박수를 치려고 손을 들고 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 오늘 이 시간에 예배하는 가운데서 우리 인생의 지난 시간들을 우리가 돌이켜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 입기를 원하고요 새롭게 시작되어지는 그 축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제목이 “하나님만 바라보라”입니다. 정말로 새롭게 시작하는 그런 축복의 시작을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 렘런트들, 우리 아이들이 부모에 대해서 가장 부모님이 안 좋을 때가 언제냐 물어보면 엄마가 공부하라 공부하라 할 때가 가장 안 좋다고 해요. 그러면 분명히 자기도 할 것을 다 하는데, 나름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애쓰는데 자꾸 공부하라 공부하라 하니까 아이들이 도리어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내며 안 해! 그런 것을 봐요. 나도 할 것 다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공부하라고 하느냐. 아마 부모눈에 보기에는 뭔가 계속 노는 것 같고, 계속 공부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은 자기는 자꾸 거기에 또 하라고 하니까 신경질이 나는 것 같습니다. 또 아버지들은 대부분 자녀들에게 뭐라고 합니까? ‘니 도대체 누구 닮아서 그러니?’ ‘도대체 왜 그러느냐?’그런 말들을 쉽게 하잖아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기분 좋을 때는 좋은 것 다 해 주면서도, 기분 나쁠 때는 저놈이 어디에서 나와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또 누구 닮았겠습니까? 그 집의 그 집 아이지요. 그리고 또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서 어떤 소리를 들을 때에 가장 섭섭하냐?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어떤 소리를 들을 때에 가장 섭섭하겠어요? 예. 부모들은 자식들 앞에 ‘아빠가 도대체 나를 위해서 해 준 게 뭔데?’‘엄마가 도대체 나를 위해서 해 준 게 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안 해 준거 없거든요. 다 해 주었거든요 사실은... 여러분 그렇잖아요. 요즘은 엄마 아빠 뿐만 아니라 제가 보니까 젊은 아들, 며느리 직장 생활하고 어쩔 수 없이 같이 근무하게 되니까 시어머니, 시아버지 되어서도 아이들 뒷바라지 하면서 참 힘들겠다 하는 것을 보게 되어요. 진짜 애들 한 명 키우기가 그렇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온갖 뒷바라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나를 위해서 해 준 게 뭔데?’어~ 아이들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부모에게 섭섭한 것이지요. 자기도 할 것 다 하는데..나름대로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것 다 하는데...왜 자꾸 공부하라 공부하라 하느냐 어떤 면에서 자기도 자기 나름대로 자기 중심적인 부분들 가지고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부모된 저와 여러분도 한번 거슬려서 세대를 올라가 보면 우리도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이 뭡니까? ‘부모를 잘 못 만나가지고’,‘내 주변 환경이 안 좋아가지고’,‘내 배경이 안 좋아 가지고’... 자기 탓은 아니고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어요. 전부 다 자기 중심이예요. 나 중심이예요. 우리 삶의 방식이 자녀들이든, 부모들이든 아니 모든 사람은 우리 삶의 방식이 내 중심이라는 사실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창세기3장 사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난 사건 이후로 “나”라는 부분들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꿈틀거리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은 창세기3장 사건, ‘나’라는 부분들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버렸고요, 결국은 창세기6장의 네피림문화, 사람이 육신이 된 네피림 문화에 빠져든 것도 그 중심에는 ‘나’라는 부분들 때문에 아닙니까? 그리고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되리라 창세기3장과 네가 결국은 네피림 속에 빠져든 부분들과 하나님처럼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네피림에 빠져들었고요, 또 네가 성공할 수 있다라는 것, 그 중심에도 바로 ‘나’라는 부분들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 속에 ‘나’라는 부분들이 자리 잡게 되는 그 순간부터 결국은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오게 됩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오해하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핑계되고,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게 되고, 그 모든 것 사람 관계뿐만 아니라 오해하게 되고, 남의 탓, 아내 탓, 남편 탓, 자녀 탓이다 돌리는 그 모든 것들도 결국 ‘나’라는 부분들이 우리 삶에 들어오면서 그게 문제가 되어가지고 모든 불거져 나오는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내가 나야’ 라는 부분들 가지고 살아왔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아니고 나다’라는 것, ‘네가 네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이제는 네 인생의 주인이 나다’라는 사실을 전환시켜주는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창세기 17장입니다. 나는 내 인생을 내가 살아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라는 사실, 네가 네 인생 살아 온 게 아니고 네 인생의 주인은 나다라는 사실이예요. 그것을 오늘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 사건을 통해서 가장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는 그 흐름들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만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만 바라보라(17:1)-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그렇다면 진짜 하나님 주신 것으로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첫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그렇지요. 창세기17:1절에 보면 아브람 99세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다 했어요. 그러면 그 전에는 언제이냐? 16: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는데 그때가 나이가 86세였더라 이야기 했어요. 그리고 오늘 17:1절 바로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어요 13년 동안 가만히, 잠잠히 하나님계신 부분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은 아브라함의 중심 속에 나는 이제 할 수 없구나!, 나는 안 되는 것이구나! 내가 내 중심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나는 안 되는 것이구나! 나는 할 수 없구나! 이 마음 가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아시고 그때 하나님이 개입하신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응답받는 비밀을 ‘나’라는 부분들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갈 때에 100% 순종하며 나갈 때에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고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만 바라봐야 된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인 나에게 어떤 말씀을 주실 것인가 그 기대함을 가지고 말씀 받는 일에 참여한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정확한 말씀을 통해 답을 주실 것인데 한 주간 세상 살면서 이런 저런 주워들은 것, 보고 배운 것, 많은 잡다한 사건과 일들 속에 있는 그런 모든 것들 가지고 그 생각 그대로 가지고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앉아 있어요. 그러니까 말씀이 임하지 않고,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겁니다. 말씀이 들려지면요, 말씀이 우리에게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어지고, 말씀이 들려지는 거기에서 내 자신의 정체성이 깨달아지게 되어 있고, 말씀이 들려지는 그때부터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지혜를 말씀 속에서 깨닫게 되어 있고, 거기에 성령의 역사 속에서 능력 있는 삶으로 우리의 삶이 나타나게 되어질 것인데 많은 생각들 가지고 그대로 가지고 앉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주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토요일을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을 한 번 맞춰보세요. 집중할 수 있는, 주일에 전심할 수 있도록, 집중할 수 있도록, 율법적으로가 아니고요, 우리가 너무 세상에 체질되어 있으니까 그냥 주일날도 덜렁덜렁 그냥 와서 예배를 드려요. 내 생각 그대로 가지고...뭘 적는다고 적는데 자기의 생각들, 악한 사탄이 주는 생각들이겠지요. 앉아 있으면 희한하게 잠만 잘 오는 것이 아니고 생각도 이상한 생각들이 나요. 그 생각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는 생각이 아닌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예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예배가 피곤한 예배가 되어지지요. 정말 우리가 말씀을 받고,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면 예배드리면 드릴수록 힘이 나는 것이지요.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힘이 나는 겁니다. 그 힘 가지고 우리가 사실은 한 주간 현장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은혜 받지 못하느냐 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그 말씀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느냐? 우리 안에 많은 생각들 그대로 가지고 와서 예배 속에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거기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진 생각들, 우리가 가진 계획들, 거기에 역사하는 것. 물론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역사하시겠지만 우리의 모든 것 내려놓게 될 때에 그때부터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개입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결국은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또 13년 동안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그런 시간들 통해서 아브라함이 아! 결국은 내가 아니구나 내가 할 수 없구나 깨닫게 될 때에 하나님이 정확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개입하셨는데 하나님이 99세 때에 라고 이야기 했어요. 무슨 말입니까? 99세 때에 하나님이 분명히 아시고 세밀히 살피셨다가 아시고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말씀으로 나타나셨는데 하신 무슨 말씀이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이 부분을 아브라함에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네 열심과 네 기준과 네 노력으로 살아온 것 결국 안 되지 않느냐?’‘나는 할 수 없구나’‘나는 모든 것 안 되는 것이구나’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나타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시라’말씀했어요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로 우리가 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있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결단하고 결심하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복음은 아니예요 사실은. 복음 속에서 나오는 힘 가지고 결단하고 결심하고 노력하는 그런 부분들 되어야 하는데 인간적인 노력으로 내가 결단하고 결심하고 각오하고 다짐하고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갑니까? 한 3일 갑니까? 아니 3일이 뭡니까? 하루도 안가잖아요. 그리고 조그마한 일들 당하면 거기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흔들리고 그리고 남 탓하고 그게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또 내가 알고 있는 그런 부분들 사실은 자그마한 부분들밖에 안 되고요. 내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 내가 모르고 있는 부분들이 더 많아요. 뭔가 열심히 노력해 왔는데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는데, 성실하게 일 했는데 어느 날 나와 내 가정에, 내 산업에 재앙의 역사가 닥쳐지는 거예요. 이것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그런데 분명히 재앙이 있거든요. 저주가 있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재앙의 역사가 왜 일어납니까? 지옥 배경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재앙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그 배후에는 지금도 살아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악한 사탄이 우리 인생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이 지옥 배경 가운데 살아가고 있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재앙의 역사, 어느 날 닥쳐오는 재앙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을 불신자들이 알 수 있습니까? 아니 믿는 성도들도 잘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불신자들이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문제와 사건이 일어나면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영적인 사실이 아니라 내가 육신적으로 뭔가 모자라서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닌가? 물론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결국은 재앙의 문제고, 지옥배경 가운데 있기 때문이고, 사탄의 역사 속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사람은 가면 갈수록 나 중심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고요, 악한 사탄이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자꾸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고요, 성공이라는 것을 주어서 거기에 속아서 영적인 축복을 놓쳐버리도록 사탄이 만들어가고 있잖아요. 이것을 누가 알 겁니까? 모르고 있잖아요 사실은. 우리가 각오하고 결단하고 그것은 일부분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열두 가지 문제, 우리가 이미 메시지를 통해서 정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인생의 문제는 절대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 결심으로, 결단으로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인생의 문제, 절대적인 답이 바로 그리스도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네가 네 인생 지금 네 노력으로 살아왔다면 안 되는 것을 봤지 않느냐, 그러면서 지금부터 하나님만 바라보라. 어떤 면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심정 속에 이 부분을 심어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 강력한 메시지가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엘 사다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내 이익과 내 기업과 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정말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는 축복이, 새롭게 눈이 열리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자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주인된 자리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면 됩니다. 내가 주인된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면에서 오늘 13년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귀중한 언약을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이 부분을 보면 86세 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가 13년 동안 침묵하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 이제는 포기하자, 그냥 내 삶에 안주하고 이대로 만족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 사실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도 얻었고 많은 재산도 있고 이제는 안주해버리면 될 것 아니냐, 이제 내 삶에 만족하면 될 것 아니냐. 그래서 어떤 면에서 13년 동안 응답이 없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이제는 잊어버리고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도 아브라함을 떠나신 것이 아니고 세밀하게 아브라함을 지켜보고 계시다가 가장 정확한 시간표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고 13년 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 때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시다가 가장 정확한 타이밍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는데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세밀하게 살피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나를 알고 계십니다.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떠나버리신 것 같다,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리신 것 같다, 내가 응답을 못 받다 보니까 응답 가운데 있으면서도 응답인 줄 알지 못하니까, 답답하니까, 나는 이제 하나님이 내게서 멀리 떨어진 것 같다, 떠나버리신 것 같다,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렸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하나님이 말씀으로 답을 주고 계십니다. 이사야 49장 14절,1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9장 14절~15절에 보면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여러분,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일 때에 젖먹는 아이를 잊습니까? 자기 태에서 난 아이를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까? 다 잊지 못하고 긍휼히 여기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할렐루야! 한번 따라합시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부모도 자식을 잊지 않는데 혹 잊어버릴 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겠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으시겠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그 어떤 부모가 자식을 낳아놓고 젖을 먹이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젖 먹는 자식을 잊어버리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요즘은 워낙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그런 부모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 했습니다. 시편 27편 9절~10절에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시편 기자도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했는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입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세상의 부모는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신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려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포기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삶 속에 13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처럼 느껴집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나를 떠나셨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러나 그 때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시고 간섭하시는 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세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모세가 뭘 해 보겠다고 나왔는데 결국 살인자가 되어 저 미디안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장인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처가살이를 하면서 양을 치던 사십 년 동안의 모세의 삶. 그냥 모세의 삶이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 사십 년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를 하고 있는,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고 있는 모세도 세밀하게 살피시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시간표가 되니 모세가 나이 팔십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호렙산 불꽃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셔서 능력의 하나님인 것을 말씀하시면서 결국 모세를 이끄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로 하나님이 쓰신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 인생 가운데 들어오셔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됨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 되시도록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실은. 마치 십삼 년 동안이나 아브라함을 기다리고 계시다가 나는 이제 할 수 없구나, 내가 하는 것이 아니구나, 이 사실을 알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저는 이 본문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진짜 급한 마음으로, 진짜 아브라함에게 이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 아니야, 내가 네 인생을 책임질게, 내가 네 인생을 내가 맡고 나아갈게, 얼마나 하나님이 마음이 이 말 속에 담겨 있는가, 네 기억과 네 생각과 네 기준과 지금까지 네가 살아왔던 네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라, 내가 책임지마, 그 말이 바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정말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축복된 응답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완전하라(창17:1)
두 번째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말씀하시면서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했습니다.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참 부담되는 말씀들입니다. 행하라는 말씀이 있고 또 완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얼마나 부담됩니까?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답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씀은 우리가 노력해서 신앙 생활 잘 하라는 그 말이 아닙니다. 애써서 완전함으로 들어가라는 그 말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닙니다. 언약 잡게 될 때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바로 우리의 신앙 생활입니다. 내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일은 누가 하시느냐,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신앙 생활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 2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라”가 아니고 “하리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4절에도 보면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뭐요? “되라”가 아니고 “될지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것이고 되게 하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하는 것은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 생활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뭔가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하고 윤리적으로 흠이 없어야 하고, 물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함 속에 들어가는 방법이 아닙니다. 또 교회 생활 하면서도, 신앙 생활 하면서도 뭔가 교회에 헌신을 해야 하고 봉사해야 하고 헌금도 많이 해야 하고. 물론 중심을 가지고 인도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완전함에 들어가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 완전함은 우리가 이루는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루는 방법이 아닙니다. 여기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은 원래 의미로 표현한다면 나의 앞에서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나의 앞에서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가 노력하고 행위를 가지고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될 때,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게 될 때 그것이 완전함 속에 들어가는 길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오셨지 않습니까? 완전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여주시고 우리를 끌어안으시고 우리가 주님 나라 가는 그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완전함의 축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들 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자체가 완전함이라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그 자체가 바로 완전함의 이르는 길입니다. 내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뭔가 실천해가지고 내가 이루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방법인데 하나님 바라보는 것! 내가 그리스도 바라보고 그리스도 언약 안에 들어가는 것 그게 완전함의 축복을 누리는 길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서 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존경받는가? 또 특별히 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큰 소리 칩니까? 아니잖아요. 이 땅에 완전한 인간이 있을 수 없어요. 또 교회 오는 사람들 가운데 교회 다니면서 실망하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교회도 별것 없네, 사람들 보고 실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많은 모습들 보고 실망하기 때문에 근데 여러분 아셔야 될 것은 교회조차도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완전합니까? 부족하고 모자라고 그렇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부르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리스도 속에서 완전한 자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행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방법인데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될 때 우리는 완전한 자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한번 확인해 보십시다. 시편62편 5절 6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 도다” 정말로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볼 때 그 속에서 나오는 소망이 있는데, 하나님 바라보지 않으니깐 우리가 흔들리게 되어요. 그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참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을 나의 소망으로 삼게 될 때에 흔들리지 않는 요동치지 않는 그런 신앙이 되어지는데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고 세상 바라봐요 돈 바라봐요 사람 바라봐요 그러니깐 우리의 신앙생활이 흔들리는 겁니다. 환경 바라보고 사건 바라보니깐 우리의 신앙생활이 흔들리는 겁니다. 하나님만 바라라 했어요 여러분 참된 소망, 하나님께 두기를 바랍니다. 그다음에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보면 은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바울이 자기 몸에 있는 사단의 가시라고 하는 그 질병의 문제를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죠. 그때 주신 바울에게 주신 답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러면서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여러분에게 한계 상황 있습니까? 오히려 한계 상황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기회 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포기 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어진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다 할 때에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내게서 멀어집니다. 진짜 절망해도요 어설프게 절망하지 말고 확실하게 절망하고 확실하게 낙심해버리면은 복음 받을 수 있어요. 복음 깨닫게 되어있어요 복음 안에 풍성함을 누릴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게서 하나님의 자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께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게 나의 완전함 속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리스 도속에 들어갈 때 그게 나의 완전함 속에 들어가는 비밀입니다. 히브리서9장 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양심으로 착한 행실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 했어요. 히브리서7장 19절에 보면, 율법으로도 우리를 온전하게 하지 못한다 말씀하고 있어요. 그러면 우리를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뭐냐? 히브리서 7장 28절입니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여기에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이에요 여기 아들을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될 때, 우리는 영원히 온전해 지는 그 축복 속에 그 축복을 누리게 되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도 마찬가지입니다. 10절부터 14절까지 보겠습니다. 우리가 온전케 되어지는 유일한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아닙니다. 우리가 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물로 하면 좋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의 완전함이 우리의 행위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을 말씀하고 있는데요. 10절부터 14절 까지 교독하겠습니다. 10절 제가 읽겠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할렐루야!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 선언하신 그 한 번의 제사, 그 선언 앞에 우리는 영원히 온전한 자가 되어진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온전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우리는 온전한 자입니다. 특별히 무엇보다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을 결코 우리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만 그리스도만 드러나는 것이 신앙 생활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창세기 17장에 보면 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7장에 대해서 말하기를 모든 분들이 언약의 장이다 얘기해요. 언약의 장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집중적으로 핵심적인 언약을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 성경에 보면 쭉 읽어 보시면 은 1절부터 9절까지 읽어보면 은 “내가 내 언약을 내가 내 언약을” 계속해서 네 번이나 나와요 2절에 보면 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데요. 창세기 17장 2절에 보면 은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4절에 보면 은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그다음에 7절에도 보면 은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9절에도 중간에 보면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내 언약을 가지고 그러면서 중간 중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고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고 내가 너와 내 후손 사이에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죠.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계속해서 “내가 내 언약”을 이야기 하고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언약의 역사들은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 그동안 많은 신앙생활가운데서 헷갈리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정확한 정답 표는 주신 겁니다. 하나님만 바라봐라! 하나님만 바라봐라! 정확한 정답 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바라보는 그것이 우리가 온전함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셔서 우리가 죽어야 되고 우리가 고난당해야 될 그 자리를 주님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다 이루었다” 했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보텔 것이 있나요? 없나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확신해야 합니다. 다 이루었다 선언했어요. 거기에 우리가 보텔 것이 조금도 없어요. 그래서 바울이 이 사실 알고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했어요. 여러분 삶을 통해서 복음의 영광만 오직 복음의 영광만 드러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정말로 우리의 모든 계획, 수준과 우리가 우리 노력으로 열심히 뭔가 하려고 했던 것들을 내려놓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찾아오셔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기 위한 그 하나님 말씀을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 바라보고 나가는 그 걸음이 바로 온전함에 이르는 길인 것을 알게 하시사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높이며, 복음의 완전함만 드러내는 우리 하나교회 모든 성도들 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2017년 6월 18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하나님만 바라보라
(창17:1-8)

서론: 모든 사람의 삶의 중심은 나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창3, 6, 11장). 나 중심적인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내가 판단하고, 오해하고, 다 남의 탓으로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람이 나 중심의 삶을 살아 왔는데,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으로 바뀌어지는 부분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창17장).

1. 하나님만 바라보라(창17:1)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가. 신앙생활에 응답 받는 비밀
1) 나를 100% 내려 놓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역사
2) 말씀이 체험 될 때 정체성 발견, 힘을 얻음 - 내 생각, 나 중심의 삶을 살기 때문에 말씀이 임하지 않음
3)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엘샤다이) - 오직 하나님만 바라봄
나. 아브람의 13년의 삶(창16:16, 창17:1) - 내 인생의 주인, 간섭하고 계심
1) 아브람이 13년 동안 응답이 없었기 때문에 포기 하셨다고 생각
2) 그런데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셨고 세밀하게 지켜보고 계셨음
3) 버리지 않으시고 정확한 시간표에 나타나심(사49:14-15, 시27:9-10)
2. 완전하라(창17:1)
가. 신앙생활 -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님, 언약 잡을 때 하나님이 하심
1) 도덕적으로 완전,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것이 아님
2) 교회 안에서 헌신, 봉사, 헌금을 통해 완전함을 이루는 것이 아님
나. 완전함의 축복
1) 양심, 착한 행실(히9:9), 율법(히7:19)으로 완전함을 누리지 못 함
2) 모든 한계, 상황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기회(고후12:9)
3)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완전한 길
4)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될 때 완전함의 축복을 누림(히7:28, 히10:14)

결론: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살아나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요19:30).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는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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