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
2017-07-09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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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실패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
(창20:1~17)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창20: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안다고 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가운데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 언약의 백성들을 실패할 수 없는 자리에 세우셨는데 그 축복의 역사들을 오늘 확인하고 누리는 최고의 응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실패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 오늘 제목입니다. 여러분 한 주간 동안에 이 말씀 붙잡고 있는 현장에서 승리하는 그런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은 절대로 어떤 일과 사건들을 만나든지 간에 실패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 축복의 비밀들 가지고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모든 걸음 걸음 속에 승리케 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리는 그런 한 주간 되시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시대가 어려워지고 세상이 어렵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또 실제로 지금 경제도 많이 어려워지고 있고요, 또 인간관계도 힘들어지고 있어요. 사람관계가 안되어지는 부분들을 많이 보게 되고요. 그래서 홀로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있게 되고 그래서 문제들을 가지고 많은 문제들 속에서 방황하면서 어렵게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열심히 살아와 놓고도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씀하는 분들이 많고요,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보여지는 길이 있어요. 문제가 보여지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생도 보여지고 문제도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지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올 수가 없느니라”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진짜 그리스도 알면 보여집니다. 우리의 문제들도 정말 여러분이 그리스도 알면 보여집니다. 왜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알고 누려야 될 부분들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특별히 우리가 잘 되느냐 안 되느냐 많은 관심들이 있지요. 거기에 대한 기준도 오직 예수그리스 이 복음의 역사들을 아느냐 모르느냐와 연결되어진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말씀했습니다. 멸망 받는 것은 안 되는 것이지요. 또 능력 있는 삶은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십자가의 도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다른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우리의 모든 신앙의 시작이 어떠해야 합니까?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알아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알고, 복음 안에 있는 그 은혜 안에 거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거하면 거할수록 모든 것이 올바르게 회복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2:1절에 보면 “내 아들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한 것이지요. 그리스도 예수 바로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은혜, 복음 속에 있는 은혜, 복음의 은혜를 알 때에 그 속에서 강하라 모든 것 다 회복되고 나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2:3절에 보면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진짜 우리가 복음을 알고, 복음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되면 그 속에 모든 것 올바르게 회복되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해서 각 교단들마다, 교회들마다 교회의 문제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교회가 개혁되어야 된다고 많은 부분들 이야기 합니다. 교회가 너무 말씀과 빗나가 있고,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교회들로 되어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된다. 지금 교회가 완전히 중세 교회화 되었다라고 많은 분들이 걱정들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그 걱정들 이야기 하는 부분들 들어보면 그 중에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마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교회가 복음보다도 윤리적인 부분들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라는 것, 윤리적인 삶에 대한 부분들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초대교회 때는 그리스도 복음만 말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들을 직접 보고 체험한 제자들이 나가서 현장에서 날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날마다 다른 것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실 교회가 로마 국교화 되었지요. 313년에 국교화 되어지면서 기본으로 다 믿는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삶에 대한, 윤리에 대한 부분들을 자꾸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잘못 안 것이지요. 착각하게 된 것이지요. 진짜 윤리와 삶도 복음 알고, 복음 은혜 안에 거할 때에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부분들을 자꾸 윤리적인 부분들을 이야기 하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복음은 놓치게 되고, 결국은 윤리적인 삶만 남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의 현장에 아무리 살펴봐도 사실 복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어떻게 잘 사는 것인가 어떻게 바르게 사는 것인가 그런 것들을 강조하고 그래서 중세교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진짜 우리에게는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없어요. 우리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그 능력과 힘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복음을 제대로 알고 복음 안에 있는 은혜 안에 거하면 그 속에서 모든 것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이 자리에 이제까지 신앙생활 했던 분들, 또 오늘 처음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내가 내 인생, 올바르게 살고 바르게 인도받길 원하십니까? 또 능력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복음 알고, 복음 안에 들어가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창세기 20장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왜 복음을 알고 복음의 은혜 안에 거하여야 되는가 거기에 답을 찾아내는 시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두 번째 실수, 자기 아내를 또 누이라고 속인 실수가 나오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어요. 이 부분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왜 오늘 복음 안에 있어야 되고, 복음을 알아야 되고, 복음 안에 있는 은혜 안에 있어야 되는가 그 이유들을 발견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은 승리하는 삶으로, 증인된 삶으로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그 축복을 누리고 확인하는 그 축복된 시간되시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반복하는 실수를 하는 아브라함.
먼저 첫 번째입니다. 반복하는 실수를 하는 아브라함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야기 여러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한 번도 아니고 지금 두 번째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아니 지금 자기 아내가 90살입니다. 그 할머니가 얼마나 이뻤으면 그렇찬아요. 누이라고 속였겠습니까? 그런데 이미 24년 전에 창세기12:10~20절에 보면 애굽에 내려갔을때도 똑같이 일을 저질렀어요. 거기에 내려가서도 바로 왕 앞에서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임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사실 성경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요? 똑같은 일을 또 진행 하는가? 성경에 보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해서 믿으려고 하면 성경이 안 믿어져요. 그러나 언약 가지고 보면 다 믿어지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지난 주간에 우리가 롯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았잖아요. 그 롯의 두 딸이 자기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첫째 딸이 먼저 들어가서 일을 저지르고, 그 다음날 둘째딸이 들어가서 일을 저질렀잖아요. 그러니까 그 설교를 듣고 어떤 렘런트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아버지에게 술 먹여놓고 어떻게 그 짓을 할 수가 있느냐? 이게 도저히 도덕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윤리적으로 이해 안 되고, 율법적으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이게 성경 아니다 라고 볼 수 있는 사람도 많아요. 아니 그렇기 때문에 성경입니다. 도덕책이 아니고, 윤리책이 아니고, 율법책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언약의 이해가 안 되고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 말씀이예요. 그런데 언약의 말씀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이해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두 번의 실수를 또 하게 되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늘 실수했던 것은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중간 중간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고백들을 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창세기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과의 관계 속에서 롯을 불러서 이야기하지요. 가축이 많아지고 재산이 많아지니까 아브라함의 하인들과 롯의 하인들이 싸움이 일어나니까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서 이야기합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할 것이니까 네 앞에 좋은 땅들 네가 선택해서 먼저 가라” 양보했지요. 그래서 창13:14 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 ” 결국 아브라함에게서 롯이 떠났어요.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영원한 축복을 허락하시겠다 약속하신 것을 봐요. 그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고 아브라함은 18절에 보면 상수리 마므레 수풀 가운데서 제단을 쌓았어요. 무슨 말입니까? 언약 잡고 믿음으로 나갔다는 말이지요. 롯을 떠나보낸 그 자체도 마찬가지이고, 떠나보내니까 하나님이 다시 언약을 주셨는데 그 언약 붙잡고 다시 상수리 나무 수풀아래에서 단을 쌓았어요. 믿음의 역사들을 결단한 것이지요. 또 창세기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사실은 롯이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다 빼앗겨버린 일을 당했지요. 그래서 자기 집에서 길리운 가병 318명을 데리고 가서 거기에서 사실은 롯을 구출해 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소돔 왕이 나와서 아브라함을 맞이하면서 네가 전쟁에서 승리했으니까 전리품을 네가 가져라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중요한 말을 했어요. 창세기14:21~23절에 보면 “나는 하나도 가지지 않겠다” 어느 정도로? 실오라기 하나 들메끝 한 가닥도 가지지 않겠다. 왜냐? 내가 아브라함을 치부해서 이렇게 복 받았다 할까 싶어서 나는 실오라기 하나 들메 끝 하나라도 취하지 않겠다 이 말한 아브라함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었어요. 저는 이 본문을 볼 때마다 진짜 우리 산업인들이 산업현장에서 이 믿음 가지고 나가야 할 것 아닌가 이것 없으면 산업 현장에서 그대로 동화되게 되어 있고 그대로 끌려가게 되어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로부터 주는 하나님의 것이 있다 라는 것, 이 자신 가지고, 이 확신 가지고 서야 합니다. 이 아브라함이 그 믿음 가운데 고백한 거예요. 들메 끝 하나, 실오라기 한 가닥 가지지 않겠다.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이 아브라함이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17장에도 보면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또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지요.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러면서 또 언약을 주셨습니다. 또 씨에 대한, 언약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셨는데 그 사건 앞에 사실 이름도 바꾸고,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열국의 아비로 이름을 바꾸고 언약에 대한 부분을 주셨는데 그 언약 앞에 아브라함이 결국은 할례를 행함으로, 아브라함의 가문에 할례를 행함으로 그 믿음의 역사를 나타낸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창세기 18장에도 보면 22절부터 보면 소돔, 고모라를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제는 멸망시켜야겠다 이야기했습니다.그 때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를 두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의인 50이 있으면 이 소돔, 고모라를 사하여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의인 열 명까지 내려가지 않습니까? 정말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소돔, 고모라를 두고 열 명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나아갔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게 뭡니까?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또 아브라함이 문제 속에 빠집니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면 우리도 모르게 빠지는 부분입니다. 아브라함이 또 문제 속에 빠지는데 환경과 사건 속에 빠지고 인간 관계, 문제 속에 빠지고 그리고 결국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 아브라함이 믿음과 영적인 힘이 떨어지니까 결국은 아, 내가 이 곳에, 이 땅에는 사람들이 나의 아내 때문에 나를 죽일 것 아니냐, 그래서 그 상황과 사건들을 두려워해서 결국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여러분, 상황과 사건들, 우리가 믿음을 놓쳐 버리고 영적인 힘이 없으면 전부 다 골리앗처럼 보입니다. 너무 커 보이고 그러니까 저절로 그 속에서 그냥 동화되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을 가지고 선교했던 바울은 상황과 문제와 사건들 앞에서 어떤 고백을 했는지 아십니까?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신분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과 어떤 사건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것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없으니까 상황과 사건들 속에서, 11절에 보면 “이 곳에서,” 이 곳에서란 상황과 사건들 속에서입니다. 이 곳에서. 그러면서 결국은 아브라함이 인본주의를 취하게 되는데 여러분, 우리가 힘이 없으면 인본주의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관계도 전부 인본주의로 얽히고설켜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인본주의로 얽히고설키면, 아셔야 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인본주의로 얽히고설킨 인간 관계는 반드시 가면 갈수록 더 문제를 가지고 더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진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도와야 할 사람이고 사람들을 살려야 할 사람입니다. 인본주의로 살아갈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살릴 사람이고 사람들을 도울 사람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사람들은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사람들은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사람을 살릴 사람이고 사람을 도와야 할 사람입니다. 이 영적 힘이 없으니까 인간 관계에서 인본주의를 써서 계속 문제가 꼬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 아브라함이 오늘 본문을 보면 11절 마지막에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했습니다. 죽일까 생각되었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지 아십니까? 여러분, 불신자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잘 사는 것처럼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근본에는 내세에 대한 부분이 해결이 안 되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문제, 내세에 대한 부분이 끝난 것 아닙니까?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미 내세는 끝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얼마나 평안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다, 여러분,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의 근본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평생 마귀에게 종노릇한다 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그게 인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것과 차원은 다르지만 내가 이 곳에서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 아내 때문에 내가 죽을 것이 아닌가, 그 죽음에 대한 문제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는 말입니다. 이게 왜 그렇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니까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람인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까 죽음에 대한 문제들, 사건과 상황 속에 빠지고 인간 관계 문제에 빠져서 하나님의 축복을 못 누리게 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아브라함의 실수를 보면서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이 얼마나 완벽한 축복 가운데 부름 받았지 아십니까? 창세기 12장 1절~3절에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갈대아 우르 우상 동네에 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1절에 보면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무슨 말입니까? 매순간순간,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세밀하게 인도하시겠다는 말입니다. 보여준 땅이 아니라, 어느 곳 보여준 땅이 아니라 보여줄 땅으로 가라 했습니다. 이 말은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축복 가운데 부름 받은 아브라함, 그런데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을 보고 여러분은 무엇을 느낍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었고 여전히 메시야가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뿐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은,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진짜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본다면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진짜 그리스도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신분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물론 우리가 구원 받았다, 얼마나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까? 세 가지 저주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는 말은 세 가지 저주의 문제가 해결된 것인데, 그 세 가지 저주는 재앙과 사단의 운명과 지옥 배경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이 세 가지 저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순간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그 세 가지 저주의 문제는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고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악한 사단 마귀가 세상 임금, 마귀가 세상 신으로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땅입니다. 이 악한 사단 마귀가 언제까지 활동하느냐?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악한 사단 마귀를 지옥에 가두기까지 분명히 활동한다 말씀했습니다. 그 악한 사단 마귀가 불신자들만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어떻게 해서든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의 힘으로 사단의 역사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신 것 아닙니까?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은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복음 받기 전에, 구원 받기 전에 있었던 모든 각인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치유 받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사단이 우리를 공격해오기 때문에 거기에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아셔야 할 것은,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있는 말씀처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서, 때때로 우리는 넘어질 수 있고 때때로 우리는 사단의 공격을 받아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때를 따라서, 때때로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 그리스도로 끝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오늘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안에 거하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사실은 엄청난 은혜 가운데 시작했지만 이 축복의 역사를 놓쳐버리니까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속아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알고 복음 안에 있는 은혜를 알아야 하는데 그 사실을 놓쳐버리면 우리도 모르게 사단이 우리를 공격해옵니다. 속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공격해오느냐? 우리에게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체질 가지고, 각인, 뿌리, 체질 되어 있는 것들 가지고. 여러분,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이미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갖고 있었던 상처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듯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이 갈대아 우르에서 먼저 죽었습니다. 아버지 앞서서 먼저 죽게 되고 자기 아내 사래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아들이 없었다는 것은 자기 아들에게 모든 상속권이 물려지는데 아들이 없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염려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오기 전에 이미 자기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죽게 됩니다. 이런 죽음의 문제들, 자기 동생도 죽게 되고 아내도 아들이 없고, 이런 부분 속에서 이런 것들이 체질되어 있었고 이런 체질 따라서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마음대로 체질 따라 행동했던 부분들도 보입니다. 자,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기근이 오니까 바로 어디로 떠납니까?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습니까? 이게 체질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금방금방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문제를 피해서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애굽에 들어가서도 자기도 원치 않게 불신앙 가운데서 거짓말하게 됩니다. 그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창세기 12장에 보면 그것 때문에 바로가 죽을 뻔했다가 다시 아브라함을 내어놓으면서 많은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올 때는 바로 왕이 준 재물 때문에 아브라함이 거부가 되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부분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이었느냐? 많은 재물을 가졌지만 부끄러움을 실컷 당하고 실패하고 그냥 나왔는데 이게 과연 축복이었느냐?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아브라함이 결국은 그 체질이 어디서 나오느냐?
여러분, 성경에 보면 결국은 묻지도 않고 하갈을 취해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 이스마엘로 말미암아 결국 지금까지 중동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번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이루어진 저 역사를 보십시오. 이게 전부 다 체질 속에서 나오는, 깊이 뿌리내린 그 뿌리 속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보면 또 두 번째 아비멜렉,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또 속이는 사건, 오늘 본문에도 보면 아비멜렉에게 또 은혜를 입어서 나올 때 또 재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또 돈을 가지고 나옵니다. 이게 축복입니까? 축복은 아니지요. 그런데 어떻든 또 거짓말해서 거기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사실 이런 부분들이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그 전에 있었던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었던 부분들 속에서 드러나는 부분들입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믿지 않았을 때, 세상 속에서 살았을 때, 또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려야 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을 때 우리 앞에 먼저 각인된 것, 뿌리내린 것, 체질된 것 다 있습니다. 다 있습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거기 속습니다.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각인, 뿌리, 체질된 것, 그리스도 복음 아닌 다른 것으로 각인되고 뿌리내린 것, 체질된 것 다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저와 여러분을 전도자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때에 내 각인, 뿌리, 체질된 것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에 따라서 우리에게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왜 이렇게 안 될까, 나는 해도 안 되네, 낙심하고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일수록 더욱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 아니냐, 또 이 일로 말미암아 이런 문제를 당한 사람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데 이 일로 하나님이 나에게 증인 삼고자 내게 먼저 이 문제를 주신 것이 아니냐, 오늘도 내게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내게 그리스도가 주인 되십시오 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 실수로 주신 것입니까? 잘못해서 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연히 있어지는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간에 그게 이미 여러분에게 오래 되어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고,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여러분, 저는 확신합니다. 그 사건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그 부분들 때문에 너무나 세상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일에 증인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내게 먼저 그 사실을 체험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흑암이 꺾입니다. 악한 사단이 공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만 안달하는데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여러분의 문제들, 각인, 뿌리내리고 체질되어서 나오는 부분들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증인으로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분이라는 사실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안에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 몰라서 그렇지 전부 다 사단이 심은 것입니다. 복음을 알지 못해서. 사단이 심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단이 심은 것 가장 중심에 핵심에 뭐가 있느냐? 결국은 살펴보면 ‘나’입니다. 나입니다. 다시 말해 ‘너’입니다. 여러분, 사단이 그렇게 심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지금 전세계를 장악한 것이 뭡니까? 명상 운동 아닙니까? 명상 운동, 잠재의식, 무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이 사람들이 그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깨우기 위해서 명상 운동을 들고 나왔습니다. 결국은 그 중심에는 너이고 나입니다. 무슨 말이냐? 사람들은 생각이 주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의식을 이야기합니다. 왜냐? 생각이 의식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데 너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너에 대한 의식을 깨워야 한다, 그래서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다이다. 그래서 너, 돈, 성공, 이것을 심어야 한다고 자꾸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한때 여러분, 아실 것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가운데 인기 있는 책들이 있었습니다. 시크릿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시크릿의 법칙. 끌어당김의 법칙입니다. 내가 생각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 내가 돈 벌어야지, 그래서 그것을 자꾸 생각하면 돈 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은 마인드 컨트롤로 나아갔습니다. 이게 뭡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이 다라는 것. 네가 의식하고 있는 것이 다라는 것. 잠재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속에 어마어마한 잠재의식이 있는데 너에 대한 잠자고 있는 잠재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그 말은 그게 아니라는 것. 이미 네 안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그것이 나오는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네 안에 있는 그 잠재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것. 무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무한한 세계인데 그것을 자꾸 계발하게 될 때 네가 엄청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계발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은 명상 운동에 빠집니다. 지금 전세계가 명상 운동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식인일수록. 그래서 세계의 엘리트들, 지식인들은 지금 명상 중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명상 운동의 가장 핵심이 무엇입니까? 네가 명상을 통해서 깨달으면 하나님처럼 된다 했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 5절의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사단이 속인 말 아닙니까? 이것 그대로입니다. 그 중심에는 너입니다. 나입니다. 이게 사단이 결국 나라는, 너라는 이 부분을 가지고 우리도 모르게 인간의 열두 가지 인생의 문제 속에 파고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네가 하나님이 된다, 네가 네피림이다, 네가 바벨탑 짓는 것이다, 네가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개인이 여섯 가지 멸망에 빠진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재앙과 사단과 지옥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여러분, 나로부터, 너로부터 시작된 이 부분들이, 결국은 그 배경에는 깊이 깔린 그 배경에는 바로 사단과 지옥 배경과 재앙의 역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몰라서 그렇지 진짜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면 어마어마한 능력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인 것, 아니, 하나님께 맡기면 될 것 아닙니까? 90살 된 노인, 맡기면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그런데 이미 깊이 뿌리내려 있는, 자기가 힘써서 무언가 해야 하겠다는 그 중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런데 이게 아브라함에게만 있는 것입니까? 저는 이 본문을 죽 묵상하면서 아브라함이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았는데 나는 두 번 팔지 않았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는 더한 사람입니다. 더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 자리에 빠지면 아브라함은 두 번 팔았지만 나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깊이 뿌리 내려진 그런 부분들 결국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무슨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데 못 맡기잖아요. 아브라함만 안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도 못 맡기잖아요. 내 자신도 못 맡기고 내 아내도 못 맡기고 남편, 자녀도 못 맡기잖아요. 그게 우리에게 있는 문제에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는 그리스도고 그리스도가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진짜 내게 예수가 그리스도고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 이 사람도 그리스도면 되네. 이 사람도 복음이면 되네. 왜 저 사람이 저럴까 아 결국은 복음 몰라서 그런거 아닌가? 당연한 것이구나 이해가 되요. 다시 말 하면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드시 나를 깨달으면 은 인간관계도 풀려집니다. 교회 관계도 풀려집니다. 세상 속에 직장 생활 속에서도 관계도 풀려집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가치를 깨달으면 은 다른 사람 보면 은 복음이면 된다는 속에서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어떤 사람이던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인간관계가 해결되게 되어있어요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영혼 속에 잘못된 것 정말로 뿌리 뽑아 지고 말씀으로 각인, 뿌리, 체질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들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실수한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입니다. 실수한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절, 6절, 16절, 18절에 보면, 결국 아비멜렉을 꾸짖으시고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사실이 나와요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는데, 누가 혼나느냐 아비멜렉이 꾸지람을 당하게 되어요. 결국,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가지고 남편이 있는 아내이니깐 돌려보내지 않으면 반드시 네 집에 벌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 벌이 임했어요. 어떤 법이 임했느냐? 17절 보면 은 그 아비멜렉과 그 집에 태에 문이 닫혀지는 벌이 임했어요. 그러면은 잘못 생각하면은 하나님이 믿지 않게 되면 은 또 하나님을 잘못하게 되면 은 벌주시는 하나님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은 여러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잘했다고 축복하고 잘못했다고 벌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권선징악의 하나님이 아니세요. 불신자들에게는 인과응보, 업보라는 말이 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잘못해도 실수해도 하나님이 보호하세요. 그러면 만약에 우리가 잘했기 때문에 복 받고 잘못했기 때문에 벌 받는다 그러면은 우리가 어느 정도 잘해야 됩니까? 얼마만큼 잘해야 됩니까? 언제까지 잘해야 됩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면서 벌 받아도 이미 죽어도 몇 번 죽었어요. 그게 우리 아닙니까? 잘못 했기 때문에 벌 받는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은 무조건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결국은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가 이야기 했어요 결국은 너희들이 받게 되는 복이 아브라함으로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면서 7절에 보면 은 그는 선지자라 여러분, 아브라함이 실수해도 하나님께 축복받은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는 선지자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살게 되는 겁니다. 선지자는 뭡니까? 하나님 만나는 인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선지자 아닙니까? 불신자들은 하나님 만나야 삽니다. 불신자는 하나님 떠나 있기 때문에 영이 죽어버렸어요 흑암의 세력에 붙잡혀 있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무리 영이 죽고 흑암세력에 붙잡혔다 할지라도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 되신 선지자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나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선지자란 말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뿐만 아닙니다. 저 또한 여러분 또한 하나님 앞에서 선지자로 부름 받은 줄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믿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 만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된 백성이니 이야기 하면서 그 아내보면은 전부다 왕, 제사장, 선지자 세 가지 직분을 다 담고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왕, 제사장, 선지자 직분으로 주셔서 세웠다라는 것. 그래서 저와 여러분 통해서 세상이 축복받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역이 저와 여러분 때문에 살게 됩니다. 여러분 가정도 저와 여러분 때문에 살게 됩니다. 교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어요. 그래서 여러분은 축복받을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축복받는 만큼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이 살아나요 여러분 불신앙에 빠지고 믿음 잃어버리면요 옆에 주변에 있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해요. 창세기 12장 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 받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약속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붙잡고, 복음알고 복음의 은혜 안에 들어가면 은 우리가 살고 힘을 얻으면 은 우리와 관계된 모든 현장이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가서 머리에 손을 얻어 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아비멜렉의 집과 태의 문이 열려졌습니다. 모든 것 회복되는 축복이 있었어요. 그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에요. 저는 이 본문을 준비하면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생각했어요. 거짓말 할 때는 언제고, 일단은 들통 나서 일단 기도해줘야 되니깐 기도해주는 아브라함. 물론 손을 얻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기도하지만 사실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그런데 일단은 아비멜렉에게 하나님께 말씀했어요. 그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리니 7절에 보면 은 그는 선지자인데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그래서 결국은 오늘 17절에 보면 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더라. 했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기도 할 때마다 여러분 모든 것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실수도 많고 무너지고 연약했지만 망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브라함은 언약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언약의 중심은 씨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 13장 14절,17절, 17장 4절 5절 마지막에 더욱 구체화되어지는데 22장 17~18절에 보면 은 네 씨로 말미암아 자손이 번성하겠고 네 씨로 말미암아 대적의 문을 얻게 되겠다. 더 구체화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죠. 그 씨가 누구냐?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 주인공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면 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무리 연약해도, 실수하고 무너져도, 아브라함은 망할 수 없었어요. 하나님의 가장 관심 있는 씨, 그 언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들 보십시다. 우리가 연약하고 무너지고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체질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언약입니다. 언약 있는 사람, 언약 있는 교회의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실패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 언약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성공했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언약 놓쳐버리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지금부터 모든 일, 모든 삶, 모든 사건들 복음 중심으로 나가면 됩니다. 우리가 정말 붙잡고 힘써야 될 부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있는 생명, 그 사실 알고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 축복 역사가지고 이번 한주간 실패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인 것들을 여러분 현장을 통해서 확인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7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실패 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
(창20:1-7)
서론: 인생이 보여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 알면 우리의 인생이 보여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기 때문입니다. 잘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기준도 그리스도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고전1:18). 신앙의 시작이 복음을 아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고 복음의 은혜를 누릴수록 모든 것이 회복 되어집니다(딤후2:1, 골2:3).
1. 실수를 반복 하는 아브라함
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 - 24년 전 애굽에서도 누이라고 속임(창12:10-20)
1) 믿음의 고백 했던 아브라함 - 조카 롯을 떠나 보냄(창13:1-13, 14, 18), 롯을 구하고 전리품을 거절(창14:21-23), 99세에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음(창17장),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중보기도(창18장)
2) 또 다시 반복되는 문제 속에 빠짐 -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환경, 사건에 빠짐(인본주의를 사용, 죽음을 생각)
나. 하나님의 은혜, 메시야가 필요한 존재
1) 완전한 축복, 완전한 계획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창12:1-3)
2)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 받은 신분(재앙, 사단, 지옥 배경에서 해방) - 사단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감(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심)
3) 매 순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감(히4:16)
다. 은혜를 못 받고 그리스도를 못 누리면 사단에게 속음
1) 문제 앞에서 각인, 뿌리, 체질따라 결정, 선택 - 누이라 속임, 불신앙의 결과로 이스마엘을 낳음
2) 각인, 뿌리, 체질 - 인정, 하나님 앞에 내려 놓고 그리스도를 고백(흑암이 꺽여지고 증인으로 쓰심)
3) 사단이 심어 놓은 각인, 뿌리, 체질 - 그 중심에 “나”(잠재의식, 무의식을 일깨움 - 명상운동)
라. 그리스도가 필요한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발견 - 인간관계, 교회생활, 직장생활이 풀려짐(이해, 수용)
2. 실수한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3, 6, 16-18)
가. 아비멜렉을 꾸짖으시는 하나님(3, 6)
1) 아비멜렉과 그 집의 태를 닫으심(17-18)
2) 권선징악X - 하나님의 자녀는 무조건 보호하심
3) 아브라함이 실수하지만 선지자로 부르심(7) -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제시(벧전2:9)
나. 언약 가진 자 -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얻고 은혜 받으면 모든 것이 회복
(아브라함의 기도로 아비멜렉의 가정의 모든 것이 회복)
결론: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언약 가진 자와 언약 가진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일, 모든 것을 복음 중심으로 살아가는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실패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
(창20:1~17)
1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류하며
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에게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창20:1~7
■ 할렐루야! 영광의 박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선언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십시다.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안다고 했습니다. 오늘 예배하는 가운데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 언약의 백성들을 실패할 수 없는 자리에 세우셨는데 그 축복의 역사들을 오늘 확인하고 누리는 최고의 응답의 시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실패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 오늘 제목입니다. 여러분 한 주간 동안에 이 말씀 붙잡고 있는 현장에서 승리하는 그런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은 절대로 어떤 일과 사건들을 만나든지 간에 실패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그 축복의 비밀들 가지고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모든 걸음 걸음 속에 승리케 되어지는 그 축복을 누리는 그런 한 주간 되시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시대가 어려워지고 세상이 어렵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또 실제로 지금 경제도 많이 어려워지고 있고요, 또 인간관계도 힘들어지고 있어요. 사람관계가 안되어지는 부분들을 많이 보게 되고요. 그래서 홀로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있게 되고 그래서 문제들을 가지고 많은 문제들 속에서 방황하면서 어렵게 살아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열심히 살아와 놓고도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씀하는 분들이 많고요,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보여지는 길이 있어요. 문제가 보여지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생도 보여지고 문제도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지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올 수가 없느니라”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진짜 그리스도 알면 보여집니다. 우리의 문제들도 정말 여러분이 그리스도 알면 보여집니다. 왜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우리가 날마다 날마다 알고 누려야 될 부분들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 특별히 우리가 잘 되느냐 안 되느냐 많은 관심들이 있지요. 거기에 대한 기준도 오직 예수그리스 이 복음의 역사들을 아느냐 모르느냐와 연결되어진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말씀했습니다. 멸망 받는 것은 안 되는 것이지요. 또 능력 있는 삶은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십자가의 도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다른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우리의 모든 신앙의 시작이 어떠해야 합니까?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알아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냐?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알고, 복음 안에 있는 그 은혜 안에 거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거하면 거할수록 모든 것이 올바르게 회복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2:1절에 보면 “내 아들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씀한 것이지요. 그리스도 예수 바로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은혜, 복음 속에 있는 은혜, 복음의 은혜를 알 때에 그 속에서 강하라 모든 것 다 회복되고 나온다 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2:3절에 보면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진짜 우리가 복음을 알고, 복음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되면 그 속에 모든 것 올바르게 회복되게 되어 있다 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해서 각 교단들마다, 교회들마다 교회의 문제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서 교회가 개혁되어야 된다고 많은 부분들 이야기 합니다. 교회가 너무 말씀과 빗나가 있고,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교회들로 되어져야 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들을 바라보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된다. 지금 교회가 완전히 중세 교회화 되었다라고 많은 분들이 걱정들 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그 걱정들 이야기 하는 부분들 들어보면 그 중에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마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교회가 복음보다도 윤리적인 부분들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라는 것, 윤리적인 삶에 대한 부분들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초대교회 때는 그리스도 복음만 말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역사들을 직접 보고 체험한 제자들이 나가서 현장에서 날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날마다 다른 것 이야기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실 교회가 로마 국교화 되었지요. 313년에 국교화 되어지면서 기본으로 다 믿는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 다음에 나온 것이 삶에 대한, 윤리에 대한 부분들을 자꾸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잘못 안 것이지요. 착각하게 된 것이지요. 진짜 윤리와 삶도 복음 알고, 복음 은혜 안에 거할 때에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바르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착하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부분들을 자꾸 윤리적인 부분들을 이야기 하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복음은 놓치게 되고, 결국은 윤리적인 삶만 남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의 현장에 아무리 살펴봐도 사실 복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들마다 어떻게 잘 사는 것인가 어떻게 바르게 사는 것인가 그런 것들을 강조하고 그래서 중세교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진짜 우리에게는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없어요. 우리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없습니다. 그 능력과 힘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복음을 제대로 알고 복음 안에 있는 은혜 안에 거하면 그 속에서 모든 것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이 자리에 이제까지 신앙생활 했던 분들, 또 오늘 처음 오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내가 내 인생, 올바르게 살고 바르게 인도받길 원하십니까? 또 능력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복음 알고, 복음 안에 들어가는 그런 축복의 시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창세기 20장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왜 복음을 알고 복음의 은혜 안에 거하여야 되는가 거기에 답을 찾아내는 시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두 번째 실수, 자기 아내를 또 누이라고 속인 실수가 나오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어요. 이 부분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왜 오늘 복음 안에 있어야 되고, 복음을 알아야 되고, 복음 안에 있는 은혜 안에 있어야 되는가 그 이유들을 발견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은 승리하는 삶으로, 증인된 삶으로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그 축복을 누리고 확인하는 그 축복된 시간되시기를 다시 한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반복하는 실수를 하는 아브라함.
먼저 첫 번째입니다. 반복하는 실수를 하는 아브라함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야기 여러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한 번도 아니고 지금 두 번째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아니 지금 자기 아내가 90살입니다. 그 할머니가 얼마나 이뻤으면 그렇찬아요. 누이라고 속였겠습니까? 그런데 이미 24년 전에 창세기12:10~20절에 보면 애굽에 내려갔을때도 똑같이 일을 저질렀어요. 거기에 내려가서도 바로 왕 앞에서 자기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임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사실 성경을 보면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요? 똑같은 일을 또 진행 하는가? 성경에 보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해서 믿으려고 하면 성경이 안 믿어져요. 그러나 언약 가지고 보면 다 믿어지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지난 주간에 우리가 롯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았잖아요. 그 롯의 두 딸이 자기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첫째 딸이 먼저 들어가서 일을 저지르고, 그 다음날 둘째딸이 들어가서 일을 저질렀잖아요. 그러니까 그 설교를 듣고 어떤 렘런트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아버지에게 술 먹여놓고 어떻게 그 짓을 할 수가 있느냐? 이게 도저히 도덕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윤리적으로 이해 안 되고, 율법적으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이게 성경 아니다 라고 볼 수 있는 사람도 많아요. 아니 그렇기 때문에 성경입니다. 도덕책이 아니고, 윤리책이 아니고, 율법책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언약의 이해가 안 되고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 말씀이예요. 그런데 언약의 말씀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이해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두 번의 실수를 또 하게 되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늘 실수했던 것은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중간 중간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고백들을 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창세기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과의 관계 속에서 롯을 불러서 이야기하지요. 가축이 많아지고 재산이 많아지니까 아브라함의 하인들과 롯의 하인들이 싸움이 일어나니까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서 이야기합니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할 것이니까 네 앞에 좋은 땅들 네가 선택해서 먼저 가라” 양보했지요. 그래서 창13:14 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 ” 결국 아브라함에게서 롯이 떠났어요.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영원한 축복을 허락하시겠다 약속하신 것을 봐요. 그 약속을 언약으로 붙잡고 아브라함은 18절에 보면 상수리 마므레 수풀 가운데서 제단을 쌓았어요. 무슨 말입니까? 언약 잡고 믿음으로 나갔다는 말이지요. 롯을 떠나보낸 그 자체도 마찬가지이고, 떠나보내니까 하나님이 다시 언약을 주셨는데 그 언약 붙잡고 다시 상수리 나무 수풀아래에서 단을 쌓았어요. 믿음의 역사들을 결단한 것이지요. 또 창세기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사실은 롯이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다 빼앗겨버린 일을 당했지요. 그래서 자기 집에서 길리운 가병 318명을 데리고 가서 거기에서 사실은 롯을 구출해 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소돔 왕이 나와서 아브라함을 맞이하면서 네가 전쟁에서 승리했으니까 전리품을 네가 가져라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중요한 말을 했어요. 창세기14:21~23절에 보면 “나는 하나도 가지지 않겠다” 어느 정도로? 실오라기 하나 들메끝 한 가닥도 가지지 않겠다. 왜냐? 내가 아브라함을 치부해서 이렇게 복 받았다 할까 싶어서 나는 실오라기 하나 들메 끝 하나라도 취하지 않겠다 이 말한 아브라함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있었어요. 저는 이 본문을 볼 때마다 진짜 우리 산업인들이 산업현장에서 이 믿음 가지고 나가야 할 것 아닌가 이것 없으면 산업 현장에서 그대로 동화되게 되어 있고 그대로 끌려가게 되어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로부터 주는 하나님의 것이 있다 라는 것, 이 자신 가지고, 이 확신 가지고 서야 합니다. 이 아브라함이 그 믿음 가운데 고백한 거예요. 들메 끝 하나, 실오라기 한 가닥 가지지 않겠다. 하나님이 자신을 축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이 아브라함이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17장에도 보면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또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지요.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러면서 또 언약을 주셨습니다. 또 씨에 대한, 언약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셨는데 그 사건 앞에 사실 이름도 바꾸고,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열국의 아비로 이름을 바꾸고 언약에 대한 부분을 주셨는데 그 언약 앞에 아브라함이 결국은 할례를 행함으로, 아브라함의 가문에 할례를 행함으로 그 믿음의 역사를 나타낸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창세기 18장에도 보면 22절부터 보면 소돔, 고모라를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제는 멸망시켜야겠다 이야기했습니다.그 때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를 두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의인 50이 있으면 이 소돔, 고모라를 사하여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의인 열 명까지 내려가지 않습니까? 정말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소돔, 고모라를 두고 열 명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나아갔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이게 뭡니까?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아브라함에게 있었습니다만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또 아브라함이 문제 속에 빠집니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면 우리도 모르게 빠지는 부분입니다. 아브라함이 또 문제 속에 빠지는데 환경과 사건 속에 빠지고 인간 관계, 문제 속에 빠지고 그리고 결국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 아브라함이 믿음과 영적인 힘이 떨어지니까 결국은 아, 내가 이 곳에, 이 땅에는 사람들이 나의 아내 때문에 나를 죽일 것 아니냐, 그래서 그 상황과 사건들을 두려워해서 결국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여러분, 상황과 사건들, 우리가 믿음을 놓쳐 버리고 영적인 힘이 없으면 전부 다 골리앗처럼 보입니다. 너무 커 보이고 그러니까 저절로 그 속에서 그냥 동화되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믿음을 가지고 선교했던 바울은 상황과 문제와 사건들 앞에서 어떤 고백을 했는지 아십니까?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했습니다. 이게 우리의 신분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과 어떤 사건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것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없으니까 상황과 사건들 속에서, 11절에 보면 “이 곳에서,” 이 곳에서란 상황과 사건들 속에서입니다. 이 곳에서. 그러면서 결국은 아브라함이 인본주의를 취하게 되는데 여러분, 우리가 힘이 없으면 인본주의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인간관계도 전부 인본주의로 얽히고설켜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인본주의로 얽히고설키면, 아셔야 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인본주의로 얽히고설킨 인간 관계는 반드시 가면 갈수록 더 문제를 가지고 더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진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도와야 할 사람이고 사람들을 살려야 할 사람입니다. 인본주의로 살아갈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살릴 사람이고 사람들을 도울 사람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것은 사람들은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사람들은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사람을 살릴 사람이고 사람을 도와야 할 사람입니다. 이 영적 힘이 없으니까 인간 관계에서 인본주의를 써서 계속 문제가 꼬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 아브라함이 오늘 본문을 보면 11절 마지막에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했습니다. 죽일까 생각되었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지 아십니까? 여러분, 불신자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잘 사는 것처럼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근본에는 내세에 대한 부분이 해결이 안 되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문제, 내세에 대한 부분이 끝난 것 아닙니까?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미 내세는 끝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얼마나 평안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다, 여러분,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의 근본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평생 마귀에게 종노릇한다 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그게 인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것과 차원은 다르지만 내가 이 곳에서 이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 아내 때문에 내가 죽을 것이 아닌가, 그 죽음에 대한 문제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는 말입니다. 이게 왜 그렇습니까? 믿음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힘을 잃어버리니까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사람인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까 죽음에 대한 문제들, 사건과 상황 속에 빠지고 인간 관계 문제에 빠져서 하나님의 축복을 못 누리게 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아브라함의 실수를 보면서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이 얼마나 완벽한 축복 가운데 부름 받았지 아십니까? 창세기 12장 1절~3절에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갈대아 우르 우상 동네에 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셔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1절에 보면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무슨 말입니까? 매순간순간,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세밀하게 인도하시겠다는 말입니다. 보여준 땅이 아니라, 어느 곳 보여준 땅이 아니라 보여줄 땅으로 가라 했습니다. 이 말은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축복 가운데 부름 받은 아브라함, 그런데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을 보고 여러분은 무엇을 느낍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었고 여전히 메시야가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뿐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은,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진짜 우리 자신을 제대로 본다면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고 진짜 그리스도 아니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신분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물론 우리가 구원 받았다, 얼마나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까? 세 가지 저주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았다는 말은 세 가지 저주의 문제가 해결된 것인데, 그 세 가지 저주는 재앙과 사단의 운명과 지옥 배경입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이 세 가지 저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순간 끝나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그 세 가지 저주의 문제는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고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악한 사단 마귀가 세상 임금, 마귀가 세상 신으로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땅입니다. 이 악한 사단 마귀가 언제까지 활동하느냐?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악한 사단 마귀를 지옥에 가두기까지 분명히 활동한다 말씀했습니다. 그 악한 사단 마귀가 불신자들만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어떻게 해서든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셨지 않습니까? 우리의 힘으로 사단의 역사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신 것 아닙니까? 이 땅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은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복음 받기 전에, 구원 받기 전에 있었던 모든 각인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치유 받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사단이 우리를 공격해오기 때문에 거기에 넘어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아셔야 할 것은,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날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있는 말씀처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서, 때때로 우리는 넘어질 수 있고 때때로 우리는 사단의 공격을 받아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때를 따라서, 때때로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 그리스도로 끝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오늘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안에 거하는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사실은 엄청난 은혜 가운데 시작했지만 이 축복의 역사를 놓쳐버리니까 결국은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속아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알고 복음 안에 있는 은혜를 알아야 하는데 그 사실을 놓쳐버리면 우리도 모르게 사단이 우리를 공격해옵니다. 속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공격해오느냐? 우리에게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체질 가지고, 각인, 뿌리, 체질 되어 있는 것들 가지고. 여러분,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이미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갖고 있었던 상처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듯 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이 갈대아 우르에서 먼저 죽었습니다. 아버지 앞서서 먼저 죽게 되고 자기 아내 사래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아들이 없었다는 것은 자기 아들에게 모든 상속권이 물려지는데 아들이 없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염려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오기 전에 이미 자기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죽게 됩니다. 이런 죽음의 문제들, 자기 동생도 죽게 되고 아내도 아들이 없고, 이런 부분 속에서 이런 것들이 체질되어 있었고 이런 체질 따라서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마음대로 체질 따라 행동했던 부분들도 보입니다. 자,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기근이 오니까 바로 어디로 떠납니까?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습니까? 이게 체질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금방금방 떠나버리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문제를 피해서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애굽에 들어가서도 자기도 원치 않게 불신앙 가운데서 거짓말하게 됩니다. 그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창세기 12장에 보면 그것 때문에 바로가 죽을 뻔했다가 다시 아브라함을 내어놓으면서 많은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올 때는 바로 왕이 준 재물 때문에 아브라함이 거부가 되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부분을 보면서 과연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축복이었느냐? 많은 재물을 가졌지만 부끄러움을 실컷 당하고 실패하고 그냥 나왔는데 이게 과연 축복이었느냐?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아브라함이 결국은 그 체질이 어디서 나오느냐?
여러분, 성경에 보면 결국은 묻지도 않고 하갈을 취해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 이스마엘로 말미암아 결국 지금까지 중동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 번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이루어진 저 역사를 보십시오. 이게 전부 다 체질 속에서 나오는, 깊이 뿌리내린 그 뿌리 속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보면 또 두 번째 아비멜렉, 그랄 왕 아비멜렉 앞에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또 속이는 사건, 오늘 본문에도 보면 아비멜렉에게 또 은혜를 입어서 나올 때 또 재물을 가지고 나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또 돈을 가지고 나옵니다. 이게 축복입니까? 축복은 아니지요. 그런데 어떻든 또 거짓말해서 거기서 빠져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사실 이런 부분들이 그냥 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그 전에 있었던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었던 부분들 속에서 드러나는 부분들입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믿지 않았을 때, 세상 속에서 살았을 때, 또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려야 하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을 때 우리 앞에 먼저 각인된 것, 뿌리내린 것, 체질된 것 다 있습니다. 다 있습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거기 속습니다.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각인, 뿌리, 체질된 것, 그리스도 복음 아닌 다른 것으로 각인되고 뿌리내린 것, 체질된 것 다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저와 여러분을 전도자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도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 사실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때에 내 각인, 뿌리, 체질된 것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때에 따라서 우리에게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왜 이렇게 안 될까, 나는 해도 안 되네, 낙심하고 어려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때일수록 더욱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 아니냐, 또 이 일로 말미암아 이런 문제를 당한 사람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데 이 일로 하나님이 나에게 증인 삼고자 내게 먼저 이 문제를 주신 것이 아니냐, 오늘도 내게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내게 그리스도가 주인 되십시오 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 실수로 주신 것입니까? 잘못해서 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연히 있어지는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간에 그게 이미 여러분에게 오래 되어서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되고, 괜찮습니다, 좋습니다. 여러분, 저는 확신합니다. 그 사건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그 부분들 때문에 너무나 세상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 일에 증인으로 세우시기 위해서 내게 먼저 그 사실을 체험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흑암이 꺾입니다. 악한 사단이 공격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만 안달하는데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증인으로 쓰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여러분의 문제들, 각인, 뿌리내리고 체질되어서 나오는 부분들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증인으로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분이라는 사실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진짜 우리가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안에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각인되고 뿌리내리고 체질된 것, 몰라서 그렇지 전부 다 사단이 심은 것입니다. 복음을 알지 못해서. 사단이 심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단이 심은 것 가장 중심에 핵심에 뭐가 있느냐? 결국은 살펴보면 ‘나’입니다. 나입니다. 다시 말해 ‘너’입니다. 여러분, 사단이 그렇게 심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지금 전세계를 장악한 것이 뭡니까? 명상 운동 아닙니까? 명상 운동, 잠재의식, 무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이 사람들이 그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깨우기 위해서 명상 운동을 들고 나왔습니다. 결국은 그 중심에는 너이고 나입니다. 무슨 말이냐? 사람들은 생각이 주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의식을 이야기합니다. 왜냐? 생각이 의식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데 너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너에 대한 의식을 깨워야 한다, 그래서 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이 다이다. 그래서 너, 돈, 성공, 이것을 심어야 한다고 자꾸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한때 여러분, 아실 것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가운데 인기 있는 책들이 있었습니다. 시크릿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시크릿의 법칙. 끌어당김의 법칙입니다. 내가 생각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 내가 돈 벌어야지, 그래서 그것을 자꾸 생각하면 돈 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은 마인드 컨트롤로 나아갔습니다. 이게 뭡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이 다라는 것. 네가 의식하고 있는 것이 다라는 것. 잠재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속에 어마어마한 잠재의식이 있는데 너에 대한 잠자고 있는 잠재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그 말은 그게 아니라는 것. 이미 네 안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그것이 나오는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네 안에 있는 그 잠재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것. 무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무한한 세계인데 그것을 자꾸 계발하게 될 때 네가 엄청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계발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은 명상 운동에 빠집니다. 지금 전세계가 명상 운동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지식인일수록. 그래서 세계의 엘리트들, 지식인들은 지금 명상 중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명상 운동의 가장 핵심이 무엇입니까? 네가 명상을 통해서 깨달으면 하나님처럼 된다 했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창세기 3장 5절의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사단이 속인 말 아닙니까? 이것 그대로입니다. 그 중심에는 너입니다. 나입니다. 이게 사단이 결국 나라는, 너라는 이 부분을 가지고 우리도 모르게 인간의 열두 가지 인생의 문제 속에 파고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네가 하나님이 된다, 네가 네피림이다, 네가 바벨탑 짓는 것이다, 네가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개인이 여섯 가지 멸망에 빠진 것입니다. 그 배경에는 재앙과 사단과 지옥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여러분, 나로부터, 너로부터 시작된 이 부분들이, 결국은 그 배경에는 깊이 깔린 그 배경에는 바로 사단과 지옥 배경과 재앙의 역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몰라서 그렇지 진짜 그리스도 그 이름의 비밀을 알면 어마어마한 능력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인 것, 아니, 하나님께 맡기면 될 것 아닙니까? 90살 된 노인, 맡기면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그런데 이미 깊이 뿌리내려 있는, 자기가 힘써서 무언가 해야 하겠다는 그 중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런데 이게 아브라함에게만 있는 것입니까? 저는 이 본문을 죽 묵상하면서 아브라함이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았는데 나는 두 번 팔지 않았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나는 더한 사람입니다. 더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 자리에 빠지면 아브라함은 두 번 팔았지만 나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깊이 뿌리 내려진 그런 부분들 결국은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무슨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데 못 맡기잖아요. 아브라함만 안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도 못 맡기잖아요. 내 자신도 못 맡기고 내 아내도 못 맡기고 남편, 자녀도 못 맡기잖아요. 그게 우리에게 있는 문제에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는 그리스도고 그리스도가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진짜 내게 예수가 그리스도고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 이 사람도 그리스도면 되네. 이 사람도 복음이면 되네. 왜 저 사람이 저럴까 아 결국은 복음 몰라서 그런거 아닌가? 당연한 것이구나 이해가 되요. 다시 말 하면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드시 나를 깨달으면 은 인간관계도 풀려집니다. 교회 관계도 풀려집니다. 세상 속에 직장 생활 속에서도 관계도 풀려집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실에 대한 가치를 깨달으면 은 다른 사람 보면 은 복음이면 된다는 속에서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어떤 사람이던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인간관계가 해결되게 되어있어요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영혼 속에 잘못된 것 정말로 뿌리 뽑아 지고 말씀으로 각인, 뿌리, 체질 되어지는 그런 축복된 응답들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실수한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입니다. 실수한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절, 6절, 16절, 18절에 보면, 결국 아비멜렉을 꾸짖으시고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사실이 나와요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는데, 누가 혼나느냐 아비멜렉이 꾸지람을 당하게 되어요. 결국,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가지고 남편이 있는 아내이니깐 돌려보내지 않으면 반드시 네 집에 벌이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 벌이 임했어요. 어떤 법이 임했느냐? 17절 보면 은 그 아비멜렉과 그 집에 태에 문이 닫혀지는 벌이 임했어요. 그러면은 잘못 생각하면은 하나님이 믿지 않게 되면 은 또 하나님을 잘못하게 되면 은 벌주시는 하나님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은 여러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잘했다고 축복하고 잘못했다고 벌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권선징악의 하나님이 아니세요. 불신자들에게는 인과응보, 업보라는 말이 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는 잘못해도 실수해도 하나님이 보호하세요. 그러면 만약에 우리가 잘했기 때문에 복 받고 잘못했기 때문에 벌 받는다 그러면은 우리가 어느 정도 잘해야 됩니까? 얼마만큼 잘해야 됩니까? 언제까지 잘해야 됩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면서 벌 받아도 이미 죽어도 몇 번 죽었어요. 그게 우리 아닙니까? 잘못 했기 때문에 벌 받는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사람은 무조건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사실들을 말씀하고 있는데, 결국은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가 이야기 했어요 결국은 너희들이 받게 되는 복이 아브라함으로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면서 7절에 보면 은 그는 선지자라 여러분, 아브라함이 실수해도 하나님께 축복받은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는 선지자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살게 되는 겁니다. 선지자는 뭡니까? 하나님 만나는 인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선지자 아닙니까? 불신자들은 하나님 만나야 삽니다. 불신자는 하나님 떠나 있기 때문에 영이 죽어버렸어요 흑암의 세력에 붙잡혀 있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아무리 영이 죽고 흑암세력에 붙잡혔다 할지라도 하나님 만날 수 있는 길 되신 선지자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만나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선지자란 말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뿐만 아닙니다. 저 또한 여러분 또한 하나님 앞에서 선지자로 부름 받은 줄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믿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 만나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면 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된 백성이니 이야기 하면서 그 아내보면은 전부다 왕, 제사장, 선지자 세 가지 직분을 다 담고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왕, 제사장, 선지자 직분으로 주셔서 세웠다라는 것. 그래서 저와 여러분 통해서 세상이 축복받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역이 저와 여러분 때문에 살게 됩니다. 여러분 가정도 저와 여러분 때문에 살게 됩니다. 교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셨어요. 그래서 여러분은 축복받을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축복받는 만큼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이 살아나요 여러분 불신앙에 빠지고 믿음 잃어버리면요 옆에 주변에 있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해요. 창세기 12장 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니 너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 받게 하겠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약속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붙잡고, 복음알고 복음의 은혜 안에 들어가면 은 우리가 살고 힘을 얻으면 은 우리와 관계된 모든 현장이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가서 머리에 손을 얻어 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아비멜렉의 집과 태의 문이 열려졌습니다. 모든 것 회복되는 축복이 있었어요. 그게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에요. 저는 이 본문을 준비하면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생각했어요. 거짓말 할 때는 언제고, 일단은 들통 나서 일단 기도해줘야 되니깐 기도해주는 아브라함. 물론 손을 얻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기도하지만 사실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그런데 일단은 아비멜렉에게 하나님께 말씀했어요. 그가 너를 위해서 기도하리니 7절에 보면 은 그는 선지자인데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그래서 결국은 오늘 17절에 보면 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더라. 했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기도 할 때마다 여러분 모든 것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실수도 많고 무너지고 연약했지만 망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브라함은 언약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언약의 중심은 씨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 13장 14절,17절, 17장 4절 5절 마지막에 더욱 구체화되어지는데 22장 17~18절에 보면 은 네 씨로 말미암아 자손이 번성하겠고 네 씨로 말미암아 대적의 문을 얻게 되겠다. 더 구체화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죠. 그 씨가 누구냐? 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 주인공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면 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무리 연약해도, 실수하고 무너져도, 아브라함은 망할 수 없었어요. 하나님의 가장 관심 있는 씨, 그 언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들 보십시다. 우리가 연약하고 무너지고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체질이 나올 수 있어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언약입니다. 언약 있는 사람, 언약 있는 교회의 하나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실패할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 언약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성공했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언약 놓쳐버리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지금부터 모든 일, 모든 삶, 모든 사건들 복음 중심으로 나가면 됩니다. 우리가 정말 붙잡고 힘써야 될 부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있는 생명, 그 사실 알고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 축복 역사가지고 이번 한주간 실패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인 것들을 여러분 현장을 통해서 확인하는 그런 축복된 응답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년 7월 9일 주일 2부 예배 신봉준 목사
실패 할 수 없는 언약의 백성
(창20:1-7)
서론: 인생이 보여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 알면 우리의 인생이 보여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기 때문입니다. 잘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기준도 그리스도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고전1:18). 신앙의 시작이 복음을 아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고 복음의 은혜를 누릴수록 모든 것이 회복 되어집니다(딤후2:1, 골2:3).
1. 실수를 반복 하는 아브라함
가. 아내를 누이라고 속임 - 24년 전 애굽에서도 누이라고 속임(창12:10-20)
1) 믿음의 고백 했던 아브라함 - 조카 롯을 떠나 보냄(창13:1-13, 14, 18), 롯을 구하고 전리품을 거절(창14:21-23), 99세에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음(창17장), 소돔과 고모라를 위하여 중보기도(창18장)
2) 또 다시 반복되는 문제 속에 빠짐 -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환경, 사건에 빠짐(인본주의를 사용, 죽음을 생각)
나. 하나님의 은혜, 메시야가 필요한 존재
1) 완전한 축복, 완전한 계획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창12:1-3)
2)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 받은 신분(재앙, 사단, 지옥 배경에서 해방) - 사단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감(이길 수 있는 권세를 주심)
3) 매 순간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감(히4:16)
다. 은혜를 못 받고 그리스도를 못 누리면 사단에게 속음
1) 문제 앞에서 각인, 뿌리, 체질따라 결정, 선택 - 누이라 속임, 불신앙의 결과로 이스마엘을 낳음
2) 각인, 뿌리, 체질 - 인정, 하나님 앞에 내려 놓고 그리스도를 고백(흑암이 꺽여지고 증인으로 쓰심)
3) 사단이 심어 놓은 각인, 뿌리, 체질 - 그 중심에 “나”(잠재의식, 무의식을 일깨움 - 명상운동)
라. 그리스도가 필요한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발견 - 인간관계, 교회생활, 직장생활이 풀려짐(이해, 수용)
2. 실수한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3, 6, 16-18)
가. 아비멜렉을 꾸짖으시는 하나님(3, 6)
1) 아비멜렉과 그 집의 태를 닫으심(17-18)
2) 권선징악X - 하나님의 자녀는 무조건 보호하심
3) 아브라함이 실수하지만 선지자로 부르심(7) -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제시(벧전2:9)
나. 언약 가진 자 -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얻고 은혜 받으면 모든 것이 회복
(아브라함의 기도로 아비멜렉의 가정의 모든 것이 회복)
결론: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언약 가진 자와 언약 가진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과 일, 모든 것을 복음 중심으로 살아가는 축복 누리시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 말씀실현(실천사항)
● 전도대상자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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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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